소설리스트

6화 (6/9)

"빨아. 깨끗하게 만들어줘."

건조한 내 말을 듣고도 수연은 살짝 겁에 질린 표정으로 내 눈치만 보고 있었다.

윤정의 애액으로 번들거리긴 했지만 사정한 것도 아니었고, 사실 내 물건은 청소가 필요한 상태는 아니었다.

딱히 의미가 있는 행동이라기보다는, 곧 벌어질 일들을 위해 수연으로 하여금 익숙해질 수 있는 나름의 배려였다. 이런 행동을 배려라고 한다면 우습기 짝이 없지만. 

솔직히 윤정에 의해서만 길들여져있는 수연을 내 방식대로 바꾸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재미있는 것은 주춤주춤 오럴을 시작한 수연의 행동이 성감을 위한 오럴이 아니라, 정말로 내 물건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한 동작이었다는 거였다. 수연은 최대한 입안에 깊게 넣으려고 시도를 했다가, 그게 여의치 않자 혀를 내밀어 아이스크림처럼 핥아올리기 시작했다. 마치 자지 표면을 깨끗하게 하려는 듯이. 좋게 얘기하면 순진하고, 나쁘게 얘기하면 조금 맹한 구석이 있는 아이였다.

"이젠 네 차례지?"

수연을 거쳐 내가 다가간 곳은 혜민이였다. 혜민은 내가 다가서는 모습에 소파 위에서 자리를 잡으며 다리를 크게 벌려 나를 맞이했다. 나는 그 사이에 자리를 잡아 무릎을 꿇고는, 오늘따라 유난히 뽀송해보이는(털 있는 보지들과 나란히 놓고 보아서 그런지) 혜민의 질구에 내 물건을 조준했다.

"아아, 오빠......"

이전의 행위들과 지금까지 이어진 분위기로 인해 혜민의 보지도 충분히 젖어있었다. 이미 윤정의 질속을 드나든데다가, 수연의 침까지 덧발라져있던 내 물건은 무리없이 혜민의 질속으로 잠겨들어갔다.

"아!"

푹 하는 느낌으로 내 물건을 한번에 끝까지 밀어넣자, 혜민의 가슴이 커다랗게 한번 물결치며 톤이 높은 비음이 그녀의 입에서 터져나왔다. 무리없이 들어갔다뿐이지, 평소 혜민의 질속에서 느껴지는 빈틈없는 압박감이 고스란히 나를 덮쳐왔다. 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빈틈없이 감싸주는 부드러운 압박감, 지난 몇달동안 수십번을 박아대도 할때마다 새로운 이 느낌.

나는 연달아 갈아탄 윤정과 혜민의 보지를, 삽임감을 비교하고, 장단점을 구분하며, 심리적인 즐거움을 즐겼다. 나름의 맛을 비교하며 이 보지 저 보지 쑤시는 그맛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말이다.

그때까지도 곁에서 몸을 웅크린 채, 가늘게 몸을 떨고 있던 윤정도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윽한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얄밉다는 눈초리로 혜민을 보면서, 마치 아까전의 복수를 하겠다는 듯이, 게다가 이번에는 수연이까지도 다가오고 있었다.

"아, 아아, 아흣... 아! 아아! 아!"

내 움직임이 격해지고, 다가온 윤정은 팽팽하게 벌어진 혜민의 보지속으로 내 물건이 드나드는 것을 가까이서 보다가, 아까전의 혜민처럼 혜민의 클리토리스를 쓰다듬으며, 그대로 몸을 숙여 혜민의 한쪽 가슴을 베어물었다. 산발적인 호흡에 뒤섞여 흩어지듯 새어나오던 혜민의 신음이 몇차례 가볍게 목에 힘줄을 세우며 톤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수연이 윤정의 반대편에 앉더니, 혜민의 한쪽 손을 꼭 부여잡으며 혜민의 남은 한쪽 가슴을 베어 물었다. 흐려지고 촛점이 불투명해진 눈으로 간신히 나와 시선을 맞추려고 애쓰고 있던 혜민의 눈이 결국 그대로 감겨버렸다. 상기된 혜민의 얼굴이 더욱 붉게 달아오르는 듯 했고, 신음도 더욱 톤을 높아졌다.

"후... 혜민아, 세상에서 제일 좋은게 뭐라고?"

"아, 아! 웁, 읏......"

나는 윤정을 거쳐 혜민에 이르며, 갈수록 컨트롤하기 힘겨워지는 쾌감을 억누르고 또 억눌렀다. 혜민의 엉덩이에 찰싹거리며 맞부딪히는 기분좋은 탄력을 즐기며, 윤정과 다른 촉감, 다른 보지, 다른 신음을 즐기며, 허리를 더욱 가열차게 밀어넣으며, 가는 심호흡과 함께 혜민에게 물었다.

"왜, 애들앞에서는 얘기 못하겠어?"

"웁... 오빠 자지......"

"뭐라고?"

"읏, 아, 아! 오빠 자지요!"

내 반복된 질문에, 결국 혜민은 사이사이 신음을 섞어가며 큰소리로 대답해야했다.

혜민은 지난 재석이와의 일 이후로, 이렇게 간간히 직설적인 표현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내가 시켜서 하는 일이고, 욕을 한다거나 과격한 표현을 하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자지나 보지, 또는 정액정도의 표준어에 가까운 표현일 뿐인데다가, 행위중일때만으로 범위가 좁아지긴 하지만. 나도 이런 플레이를 딱히 즐기는 것도 아니었고, 드문드문 그녀의 입에서 나오는 직설적인 표현정도로 충분히 즐거웠다.

하지만 윤정과 수연은 나와 혜민의 문답에 움찔하는 반응을 보이며, 이후로 혜민을 더욱 집요하게 괴롭히는 것 같았다. 윤정과 수연의 어시스트가 아니더라도 이미 충분히 나에게 길들여져 있는 혜민이었다. 굳이 윤정의 클리토리스 애무에 박자를 맞추지 않아도 혜민의 오르가즘을 얼마든지 컨트롤 할 수 있던 요즘이었다. 해서 윤정은 그냥 윤정의 방식대로 신경쓰지 않았고, 나는 내방식대로 하복부에서 번져나가는 쾌감을 즐기는 일에만 집중했다.

혜민의 오르가즘이 오래걸리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막히는 듯이 가늘게 세어져 나오는 신음에서도, 뻣뻣하게 경직되어있는 몸에서도, 내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반응이 느껴졌다. 끝까지 치솟아 올라있는 혜민의 오르가즘이 느껴졌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기에는 시간이 너무 짧았다. 지릿한 쾌감이 번져오고 있는 내 물건은 조금 더 혜민의 질벽을 느끼고 싶어했고, 윤정과 수연도 짧은 애무로 그만둘 생각은 없어보였다. 혜민의 오르가즘을 컨트롤한다기보다는 각자의 욕심에 치중한 모습이었다.

"아흑... 아! 아아! 오빠! 나 어떻해! 미쳐버릴 것 같.... 아아!"

수연의 손을 맞잡은 혜민의 한쪽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가고, 다른 한쪽 손은 더이상 윤정의 손이 움직일 수 없도록 그 위로 덮어 힘주고 있었다. 하지만 혜민의 유두를 빨고 있는 그녀들의 입은 막을 수가 없었고, 더욱더 가열차게 움직이기 시작한 내 허리도 막을 수가 없었다. 상체에 이어 다리까지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고, 소파의 등받이에 부딪힌 머리칼도 엉망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렇게까지 무너지는 혜민의 모습은 근래들어 꽤 오랫만에 본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스쳤다.

경직에 경직을 거듭하던 혜민의 몸이 끝없이 이어지는 오르가즘에 힘이 부치는 듯, 이완과 떨림, 또다시 경직, 이완과 떨림을 반복하기 시작했다. 이마에 맺힌 송글송글한 땀과, 꼭 감고 있는 두눈 사이로 촉촉하게 젖어있는 속눈썹은 눈물마저 흘리는 것 같았다.

마음만 먹는다면 그녀의 오르가즘이 완만한 하향곡선을 그리도록 유도하다가, 다시 한번 치솟도록 컨트롤 할 수도 있었지만, 내 온몸을 저릿하게 휘감고 있는 쾌감에도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나는 천천히 허리의 움직임을 늦추다가, 종내에는 혜민의 자궁을 밀어올릴 기세로 깊숙히 집어넣어 귀두의 감각을 즐기며 비벼댔고, 다시금 길게 뽑아내며 몸을 일으켰다.

"아......"

내 물건이 뽑혀나가자 혜민의 입에서도 길다란 탄식이 흘렀다. 여전히 벌어져 있는 그녀의 보지 사이로 뽑혀나간 자지의 흔적을 아쉬워하듯 조그맣게 뻐끔거리는 귀여운 질구가 보였다. 그리고 이윽고 주르륵 하는 느낌으로, 평소보다 조금 끈적해진 느낌의 애액이 질구 사이를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소리로 표현하자면 주르륵, 뚝, 뚝, 뚝 이랄까. 마치 입에 물을 한모금 머금고 그상태로 살짝 입을 벌려 입에 고인 물을 턱 밑으로 흘려보내듯, 혜민의 질구를 시작으로 그녀의 엉덩이 골을 타고 꽤 많은 애액이 흐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상기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윤정이 상체를 깊숙히 숙이더니 혜민의 다리를 크게 벌리며 질구를 시작으로 애액이 흘러내린 흔적을 핥기 시작했다.

"아! 언니, 그만!"

혜민이 날카로운 소리를 내며 양손을 윤정의 머리로 가져갔지만, 윤정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으며 혜민의 질구에 입을 밀착하고 후루룹거리며 빨아들이기까지 하고 있었다. 그런 윤정과 함께 몸을 부들부들 떨어대던 혜민도 결국에는 온 몸에 힘이 빠진듯 전신이 축 쳐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묵묵히 지켜보던 나는 윤정이 얼굴을 떼기를 기다렸다가, 이윽고 윤정의 손을 잡아올리며 말했다.

"나는 아직 안끝났잖아?"

그 말과 함께 어딘가 몽롱한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는 윤정을 잡아 끌었다. 일단 나는 거의 널부러지다시피 있는 혜민의 옆에 앉았고, 엉덩이가 거의 소파 끝에 간신히 걸칠 정도로 길게 눕듯이 자세를 잡았다. 무릎을 굽히고 양발로 바닥을 지탱하고 있어서 중심을 잡는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윤정의 손을 잡으며 시선이 나와는 반대 방향으로 가도록, 내가 보는 방향에서는 윤정의 등이 보이도록 내 위에 앉혔다.

"학......"

내 위에서 좌우로 다리를 벌리며 엉거주춤 위치를 잡으려고 하는 윤정의 허리를 당기며 물건을 한번에 뿌리까지 집어넣자, 윤정이 등골을 세우며 숨을 뱉었다. 혜민과의 행위 뒤에 또다시 바로 이어져 윤정의 보지에 삽입하자, 내 물건을 타고 또다시 색다른 쾌감이 밀려왔다.

다시 강조하지만 맛을 비교하며 이 보지, 저 보지를 쑤셔보는 이 적나라한 쾌감!

이미 두번의 오르가즘으로, 그리고 이같은 혜민의 모습을 보며, 윤정의 보지는 충분히 젖어있었다. 하지만 한번에 끝까지 삽입된 내 자지로 인한 위화감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시간이 조금 필요해보였다. 나는 서두르지 않고, 윤정이 직접 움직일때까지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리고는 옆에서 숨을 헐떡이고 있는 혜민을 바라보며 키스를 유도했다. 눈을 감고 쾌감에 젖어 있던 혜민은 내 손길에 움찔하며 가볍게 놀라는 듯 보였지만, 이윽고 내 의중을 눈치채고는 살짝 입을 벌리며 내 얼굴을 덮어왔다. 나는 말랑말랑한 혜민의 알몸을 크게 쓰다듬으며 감촉을 즐기다가 혜민의 가슴으로 손을 옮겨 주무르며 부드러운 감촉을 즐겼다.

"수연아, 오빠와 언니를 즐겁게 해드려야지?"

나와의 키스 후, 혜민이 몸을 일으키며 꺼낸 말이었다. 혜민의 말에 이미 수연도 분위기에 적응한 것인지, 그다지 머뭇거리는 기색 없이 내 다리사이로 다가왔다.

나는 수연이 무슨 행동을 할지 뾰족하게 예상이 되지 않았지만, 일단은 수연이 수월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다리를 조금 벌려주었다. 윤정은 갑자기 끝까지 삽입된 압박감이 조금 버겨운지, 아직은 내 허벅지위로 양손을 지탱하고 움찔거리고 있었다.

이윽고 내 음낭에, 수연의 입술이 스치는 부드러운 쾌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마치 키스하듯이, 살짝 베어물기를 반복하며 입술의 촉감이 좌우 상하에 조금씩 번져가더니, 이윽고 촉촉한 혀가 음낭 구석구석을 훑기 시작했다.

"음......"

나는 윤정의 질압과 더불어 수연의 애무에서 오는 쾌감에 나도 모르게 낮은 신음을 뱉었다. 수연의 입술과 혀는, 전혀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운 애무를 계속하다가, 이윽고 점차 좀더 아래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위가 아닌 아래로.

어라?

혜민에게서라면 이제 익숙했지만, 오늘 처음 본, 그것도 나이 어린 수연이 상대라는 이유로, 찰나였지만 내게 긴장이 살짝 스쳐갔다. 물론 그것도 잠시.

살짝 긴장했던 내 대퇴부와 엉덩이는 이완되기 시작하며 수연의 혀를 맞이했다.

짜릿한 느낌, 수연의 혀가 닿아있는 항문에서 윤정에게 삽입되어 있는 자지까지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듯한 쾌감이 아랫배까지 기어올라오며 내 몸을 번져갔다. 가벼운 터치는 점점 압박이 가해졌고, 수연의 얼굴이 내 엉덩이를 밀어올릴 듯 밀착하며 항문을 집요하게 핥기 시작했다.

오럴에 비해, 항문 애무는 전혀 단조롭지도, 어설프지도 않았다. 핥고 빨고, 혀를 길게 뽑아 항문 속으로 집어넣기까지 해가며, 말그대로 나를 즐겁게 했다. 

이윽고 윤정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하자 쾌감은 더욱 깊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아, 이거 진짜 좋은데......"

내가 나도 모르게 소감을 드러냈다. 그러자 수연이 양손을 들어 내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애무에 강도를 더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곁에서 내 가슴을 살살 쓰다듬으며 나를 내려다보던 혜민의 입이 내 가슴을 향해 다가왔다. 또 다시 시작된 가슴 애무였다.

"하으응......"

윤정의 움직임이 점점 더 리드미컬해지고, 나는 전신을 휘몰아치는 주체할 수 없는 쾌감에 사정감을 억누르기 급급해야했다. 찡그리며 눈을 감았다가, 눈을 뜨면 풍성한 머리칼을 출렁이며 매끈하게 휘어진 윤정의 등골이 한눈에 들어왔고,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한손으로 음낭을 쓰다듬으며 항문을 핥고 있는 수연과,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유두를 애무하고 있는 혜민, 이 모든 상황이 주는 쾌감은 정말로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마치 체리보이 시절 사정감을 늦추기 위해 딴생각을 하듯이,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중에 지금 이 모습이 카메라에 잘 담기고 있는지가 걱정이 되었다. 잘만 담긴다면, 앵글만 제대로 잡힌다면 정말 대박 작품이 하나 나올 것 같은데.

한 5분쯤 즐겼을까. 나는 도저히 못참을 것 같다는 생각에 몸을 일으키며 윤정의 허리를 잡았다. 한참을 몰입하던 그녀를 부드럽게 이끌어 소파에 길게 눕히고 그 위로 올라가 자세를 잡았다. 나의 한쪽 다리는 소파 위에, 한쪽 다리는 아래에.

그러자 눈치 빠른 혜민이 옆으로 다가와 윤정의 한쪽 다리를 잡고 크게 벌려주었다. 윤정의 한쪽 다리는 내 손에 의해 소파의 등받이 위쪽으로 크게 벌려진 상태였다.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아낸 수연도 붉게 상기된 얼굴로 가까이 다가왔다. 마치 내 자지가 윤정의 몸속으로 진입하는 순간을 지켜보려는 듯이, 가까이 얼굴을 대고는 내 자지와 윤정의 벌어진 보지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윤정은 둔덕 전체가 이미 흠뻑 젖어 번들거리고 있었고, 크게 벌어진 보지 사이로 질구가 마치 숨을 쉬듯 오물거리고 있었다.

윤정은 바로 누워서 숨을 몰아쉬며 가늘게 눈을뜨고 나를 올려다 보았고, 나는 그런 그녀를 내려다 보았다. 그리고 이윽고, 완만하게 내려올 기미를 보이던 쾌락을 용서할 수 없다는 듯이, 그녀의 질속을 한번에 꿰뚫었다.

"하윽......"

자세 덕분에 격하게 들락거리는 내 자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신기하다는 듯이 수연이 접합부위 가까이에 얼굴을 대고 지켜보았고, 혜민은 이번엔 윤정의 가슴에 입을 가져갔다.

"아! 오빠! 나 맛있어? 나 맛있어? 오빠! 나 씹어 삼켜줘! 나 먹으니까 맛있어?"

"아, 씨발. 진짜 존나게 맛있어. 앞으로 두고두고 먹어줄께."

"응! 오빠! 두고두고 먹어줘! 오빠 꺼! 오빠 꺼! 다 오빠 꺼야! 오빠 다 가져! 오빠가 말만 하면 언제든 벌려줄께!"

"그렇게 좋아? 그렇게 좋아?"

"응! 보지가 터져버릴 것 같애!"

윤정이 전혀 자제하지 않고 소리지르듯 표현했다. 톤도 높았고, 말도 나보다 훨씬 많았다.

윤정을 격하게 쳐올리는 내게도 평소 몇배나 되는 저릿한 쾌감과 사정감이 등골을 타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학, 아! 혜민아! 오빠! 하, 아, 하읏, 아, 미칠 것 같애. 아, 나 또 가. 또 가. 나 또 간다구!!"

"나도 싼다! 이번엔 나도 싼다!"

"응! 오빠 싸줘! 싸줘!"

"안에다 쌀 거야!"

"응 안에다 싸줘! 윤정이 보지 가득 채워줘! 질내사정! 아! 질내사정!"

끈적거리는 눈빛을 정면으로 내게 응시하며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가 뒤통수를 후려갈기는 듯 했다.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고, 참을 생각도 없었다. 나는 단단히 부여잡은 윤정의 골반을 강하게 앞으로 당기며 미친듯이 폭풍처럼 올려쳐대던 허리를 최대한 밀착시켰다. 귀두 끝부분이, 윤정의 자궁과 맞닿은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꿀럭.

느낌만으로도 엄청난 양의 정액이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한동안 혜민과의 잠자리도 없었던데다, 계속해서 눌러참던 그날의 첫발이었으니까.

"아! 오빠! 나 죽어... 뜨거워, 뱃속이 뜨거워... 끄윽... 아. 오빠......"

윤정의 말은 더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살짝 벌어진 혜민의 입술이 윤정의 입을 덮쳤기 때문이었다. 저릿저릿한 사정의 쾌감을 느끼며 그녀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내 눈앞에서 둘의 키스가 길게 이어졌다.

"후......"

나는 완만하게 내려오는 쾌감의 곡선을 느끼며, 자지를 천천히 뽑아냈다. 어쩐일인지, 아마도 계속된 분위기로 이어진 쾌감때문이겠지만, 사정 직후인데도 물건이 죽지 않은 상태였다.

내가 윤정에게서 조금 떨어져 소파 깊숙히 등을 기대고 앉자, 곁에서 지켜보던 수연이 내 다리 사이로 다가왔다. 그리고 정액과 윤정의 애액으로 범벅이 되어있는 내 물건을 입속으로 삼켜가기 시작했다.

나는 형언할 수 없이 날카로운 쾌감을 느끼며, 수연의 머리칼을 헤치고 그녀의 뒤통수를 감싸쥐었다.

"아, 오빠 정액......"

읊조리는 듯한 혜민의 목소리에 감았던 눈을 뜨고 시선을 돌리자, 혜민이 여전히 크게 벌어져 있는 윤정의 다리 사이를 보고 있었다.

윤정은 눈을 꼭 감은 채로 숨을 고르고 있었고, 얼마나 싸지른건지, 그렇게나 깊숙히 쌌는데도, 윤정의 질구에서 걸쭉한 정액이 흘러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혜민은 서서히 입을 가져가 크게 한번 핥아 삼킨 후, 다시금 강하게 빨아먹기 시작했다. 또 다시 이어지는 끈적하고도 날이 선듯한 윤정의 신음성과 함께, 윤정의 몸이 불규칙하게 경직과 이완을 반복하고 있었다.

잠시 휴식을 취한 우리는 침실로 자리를 옮겼다. 의견을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곧 수연이 겪을 일을 위한 아주 작은 배려였다.

푹신한 침대에서, 수연과 내가 마치 신혼부부인냥 나란히 눕고, 윤정과 혜민이 주는 서비스를 즐겼다. 내 위에 윤정이가 있었고, 수연이 위에 혜민이가 있었고.

이것도 따로 의논한 것이 아니라, 나와 수연을 위한다고 이루어진 자연스러운 진행이었다. 정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편안하면서도 온몸의 감각을 일깨우는 듯한, 윤정의 진심이 느껴지는 애무였다.

이어서 몸을 일으킨 내가 수연의 다리 사이에서 자세를 잡고, 수연의 양 옆에 윤정과 혜민이 자리했다. 수연의 한쪽 다리는 윤정이, 한쪽 다리는 혜민이, 무릎 안쪽으로 팔을 걸듯이 하여 크게 벌리고 있었다. 수연의 양손도 윤정과 혜민의 손에 각각 마주 잡혀있었다. 마치 윤정과 혜민이 수연에게 힘을 주듯이. 그리고 수연은 살짝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들어간다. 조금 아플꺼야."

"울 애기, 힘내!"

내가 먼저 신호를 주었고, 그에 맞추어 윤정이 응원하듯 말했다. 혜민은 말없이 수연의 손을 가져가 입을 맞춰주었다.

나는 귀엽게 갈라져있는, 그러나 적나라하게 벌려져있는 수연의 보지, 그중에서도 연한 속살이 앙다물어져 있는 질구를 향해 정확히 내 귀두를 겨냥했다. 그리고 천천히, 조금 넣었다가, 다시 뺐다가, 다시 조금 넣었다가, 다시 물러섰다가를 반복하며 천천히 전진하기 시작했다.

"읍......"

수연은 처음 느껴보는 압박감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물론 싫은 표정은 아니었고, 솔직히 내게는 그마저도 귀여워보였다. 새삼 13살 차이라는 것이 느껴졌고, 본의 아니게 세워진 기록에 약간의 설레임도 느껴졌다.

하지만 예상했던대로, 아니 어쩌면 설마했던 느낌이 확인된 느낌이랄까, 가볍게 걸리는 느낌이 들었다. 더 진입하려면 조금 더 힘을 주라는듯이.

처녀를 따는 것이 처음도 아니었고, 그중엔 큰 무리없이 그냥 진입이 되는 경우도 있었다. 나중에서야 혈흔을 보고 알게 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수연의 경우는 꽤나 건강한(?) 처녀막인 모양이었다.

"한번에 갈께. 아프겠지만 그게 나을거야."

수연은 살짝 겁에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입을 살짝 열어 무엇인가를 말하려다가, 여의치 않는지 도로 닫아버렸다. 나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더이상 망설이지않고 한번에 자지를 밀어넣었다.

투둑.

"아!"

마치 소리가 들리는 듯한 느낌과 동시에 수연의 날카로운 신음이 침실을 울렸다.

당연하지만 쾌감에 의한 신음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뭔가에 깜짝 놀란 느낌이랄까. 꼭 감았던 눈을 뜨고 매우 흔들리는 눈빛으로 나를 올려다 보았고, 양쪽의 언니들과 맞잡은 두 손에 더욱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이정도 느낌이라면 꽤 통증이 있을 것이다.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것은 내가 죽었다 깨어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을테니까.

나는 더이상 수연을 배려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그냥 욕정이 내키는대로, 이 신상품을 마음껏 즐길 생각이었다.

하지만 나름 힘있게 밀어넣었음에도, 내 물건이 끝까지 들어간 것은 아니었다. 어째서인지 3분의 2정도 들어간 선에서 멈추어 있었고, 귀두 끝에는 벽에 닿은듯한 선명한 자극이 느껴졌다.

벌써 자궁인 것인지, 이것도 처녀라서 그런 것인지? 통증으로 인한 긴장인 것인지, 아니면 원래 그런 것인지, 질압도 상당했다. 마치 내 자지를 단단하게 물고 있는 느낌. 나는 수연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배려로, 그 상태를 조금 유지해주었다.

"울 애기, 많이 아프니?"

"네, 언니. 아파요. 너무 아파요. 흑흑......"

두 언니들에게 잡혀있는 양 다리에도 힘이 들어가고, 한 눈에 보기에도 통증을 참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수연이 보기 안쓰러웠나보다. 윤정이 부드럽게 달래듯이 묻자, 갑자기 수연이 울음을 터뜨리며 윤정에게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아픈데?"

"아래가 찢어지는 것 같고, 뱃속이 뚫리는 것 같아요. 흑흑흑......"

"그래? 오빠는 어때?"

뭔가 윤정의 표정이 이상하다. 단순하게 수연을 달래는 것 같지가 않았다.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 굳이 내 느낌을 숨기고 싶지 않아 솔직하게 대답해주었다.

"죽이는데?"

나는 짤막하게 대답하며 천천히, 아주 느릿하게, 하지만 깊고 범위가 큰 동작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흑... 오빠, 주인님, 아, 움직이지 말... 흑, 흑흑... 말아주세요. 흑흑......"

수연은 뭐가 그리 서러운지 방울도 아닌 거의 줄기에 가까운 눈물을 양옆으로 흘리며 나를 올려다보았다. 참 이상도하지.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려니 더욱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내가 변태라서겠지. 마음같아서는 더욱 과격해지고 싶었으나, 아직은 조금 참기로 했다.

"울 애기, 언니 말 잘들어?"

"네? 흑흑.. 네......"

"이 오빠가 누구라고?"

"주인님이요. 흑흑......"

"너는?"

"멍멍이요."

"풉!"

아, 그러면 안되는데, 멍멍이라는 표현에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수연이를 보고 살짝 외모에 압도되는 점이 없지 않았는데, 순간 스무살이라는 나이가 한방에 와닿고 말았다. 그 순간 수연이가 너무너무 귀여워보였다.

그 모습에 윤정이 잠시 나를 흘겨보더니, 다시금 수연에게 말했다.

"오빠는 지금 애기를 예뻐해주는거야. 언니가 그랬던 것 처럼. 그리고 오빠는 지금 울 애기 안에서 기분이 아주 좋데. 그게 다 우리 수연이가 너무 예뻐서 그런거야. 정말 다행이지? 그동안 울 애기, 예뻐지려고 노력 많이 했잖아."

"흑흑... 네......"

"울 애기, 오빠한테 더 예쁨받으려면 잘 참아야겠지? 오빠가 마음껏 기분 좋을 수 있도록."

"흑흑... 네, 참을께요."

"그래 눈물 뚝 하고."

대화가 마무리되는 도중에, 혜민이 말없이 수연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느낌탓인가? 그런 혜민의 행동이 왠지 냉정해보이기도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더이상 움직이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었다.

"아흡.... 흡......"

내가 천천히, 다시 크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수연에게서 신음이 아닌, 거의 통증을 참아내는 듯한 호흡이 간간히 끊어졌다. 그리고 내게도, 심지어 과격하게까지 느껴지는 수연의 질압이 크나큰 쾌감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문질문질.

여전히 귀두끝에 자궁이 닿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이게 또 그 부분에 문지르는 느낌이 너무 좋다는 것이 문제였다. 계속해서 깊게 깊게 박는 것을 고수했더니, 어느새 내 물건도 뿌리끝까지 무리없이 들어가고 있었다. 사람 몸은 다 늘어나게 되어있다는 듯이.

수연은 여전히 고통이 심한 것 같았고 안간힘을 다해 참는 것 같았다. 숨이 턱끝까지 차 보였고, 그러면서도 신음소리 하나 흘리지 않은 채 입을 앙다물고 있었다. 하지만 미안하게도,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더한 쾌감, 더한 정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점점 과격해지기 시작한 내 허리 놀림에 수연의 몸이 때때로 크게 요동쳤지만, 양쪽에서 붙잡고 있는 언니들 덕에 그것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그저 고스란히, 다리를 양껏 벌리고, 나를 받아들이는 것만이 수연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울 애기, 보지가 찢어질 것 같네?"

어느새 내 왼손과 교대해서, 수연의 다리를 잡고 있던 손이 자유로워진 윤정이 수연과 나의 접합부위를 만져보면서 말을 꺼냈다. 내가 보기에도, 수연의 질구는 안타까울정도로 팽팽하게 벌어져 마치 끊어버릴 것 같은 질압으로 내 물건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밑에 두껍게 깔아놓은 수건위로 흥건하게 얼룩진 선혈.

"우흡, 후... 우흡, 후.... 주인님, 수연이 윽, 예뻐요? 귀여워, 해줄.. 윽... 거에요?"

"응, 물론이지. 그런데, 너 하는 거 봐서."

이제는 조금 견딜만 한듯, 갑자기 수연이 호흡을 가다듬으며 질문을 던져왔다.

하지만 내 대답은 짓궂었다. 그보다는 자꾸 사정감이 몰려와서 참기가 힘들었다. 요 야들야들해보이는 아이를 좀 더 품고 싶은데.

"아래가 뭔가 가득 찬 느낌이, 윽... 아직도 배가 뚫.. 윽... 리는 거 같지만... 윽......"

"응"

"그래도 이제 조금... 윽... 참을만한 거 같아요 윽... 수연이, 윽... 말 잘들을 윽... 께요. 예뻐해 윽... 주세요. 윽......"

하고 싶은 말이 많아보였지만 점점 과격하게 올려치는 나로인해 수연의 말이 자꾸만 끊어졌다. 그러고보니 섹스하면서 이런 반응도 오랫만인 것 같았다. 이렇다할 신음도 없고, 글로 표현하자니 우습기만 한 윽윽거리는 소리.

"으... 이제 나올 것 같은데?"

나는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쾌감이 올라오는 것을 느끼며 윤정의 눈을 보았다.

어지간해서는 무책임하게 사정해버리는 이기적인 나였지만, 아직 나이가 어린 수연이였기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윤정의 의중을 살핀 것이었다.

"뭐야 오빠. 차별해? 수연이한테도 안에 싸줘."

에라 모르겠다. 골치 아프게 생각할 필요 없겠지. 뭔가 생각이 있을거야... 정도를 생각했던 것 같다. 거기까지 생각했을때, 다시 찌리릿하는 오르가즘이 등골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다.

문질문질.

아, 이 느낌. 나는 이번에도 최대한 깊이 박아넣으며, 귀두 끝이 문질러지는 느낌을 즐기며, 마음껏 발사했다. 역시 정액은 쾌감에 비례하는 것인지, 이번에도 꽤 많이 흘러나오는 느낌이었다.

이 포만감, 정복감.

13살차이나는 20살짜리에게, 그것도 첫경험인 아이에게 마음껏 질내사정이라니.

저절로 만족스러운 미소가 흘렀다.

"후......"

"윽.... 후웁, 후... 아... 뱃속이 따뜻해요."

나와 함께 호흡을 고르는 수연을 보며, 아직도 간간히 꿈틀거리며 정액이 흘러나오는 여운을 즐기고 있을 때였다. 눈물이 그런그렁 맺혀서 이제야 온몸의 긴장이 풀어지기 시작하는 수연의 양 옆에서, 윤정과 혜민이 번갈아 수연에게 뽀뽀하며 말했다.

"울 애기, 축하해."

"축하해 수연아."

"헤헷, 감사합니다."

뭘 축하한다는 것인지, 또 뭐가 좋다고 방그레 웃으며 감사하다고 하는 것인지, 정작 축하와 감사는 내가 받고 내가 말하고 싶다만.

이윽고 내가 자지를 뽑아내는데, 느낌탓인지 뽁~하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살짝 피로감을 느껴 수연이 옆에 벌렁 드러누워버렸다. 눕기 전에 수연의 질구에서 정액이 흘러내리는 장면을 확인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살면서 셀 수도 없이 봐왔던 장면이지만, 항상 만족의 완성을 장식하는 마지막 샷이 되어주고는 했다.

이번에도 별 기대는 없었는데,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혜민은 수연의 다리 사이로, 윤정은 나의 다리 사이로 움직였다. 그리고는 아까처럼, 뭐... 이하 생략.

이번에도 따로 상의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것 처럼 가벼운 샤워를 하기로 했다. 집이 크긴 했지만, 다 큰 성인 네명이 하나의 욕실에 전부 들어가는 것은 무리가 있었기 때문에, 거실쪽 욕실에 윤정과 수연이, 안방쪽 욕실에는 나와 혜민이 나눠서 들어갔다. 어쩌면 이쯤에서 혜민과 단둘이 시간을 가질 수 있게끔해주는 윤정의 배려였는지도 모르겠다.

우두커니 서 있는 내 앞에서, 혜민은 샤워기의 온수를 맞추고는 나를 이끌었다. 아직 많은 나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거의 텀이 없는 두번의 플레이 때문인지 만만치 않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래서인지 나를 향해 쏟아지는 따뜻한 물이 평소보다 기분좋게 느껴졌다.

"윤정 언니랑 수연이, 한번에 먹으니까 좋았어요?"

혜민이 침대에서 내려온 다음에도 이런 표현을 하다니, 오늘 그녀의 생소함을 많이 목격하는 기분이었다. 나는 쏟아지는 샤워기 아래에서 함께 물을 맞으며, 나한테 안겨오는 그녀를 가볍게 품어주었다.

"너랑 처음 잘때만 하겠어?"

"치이... 오빠 무지하게 좋아하는 것 같던데."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을 생략했다. 혜민과 잘때도 물론 좋았지만, 여기저기 내키는 대로 쑤셔보는 재미에 비할까. 사실 세명이 내앞에서 알몸이 되어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장관이 아니던가 말이다.

게다가 윤정도 수연도 충분히 맛있었다. 두번이나 사정하고 난 다음인데도, 다시 가서 몸을 부비고 싶을 만큼.

아, 다른 표현을 하고 싶다. 맛있다는 표현말고 또 뭐가 있을까. 훗날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1순위가 바로 오늘이 되겠지.

샤워기 아래서 마치 부르스를 추듯이 내 가슴에 뺨을 대고 잠시 서로 앉고 있는데, 혜민이 자연스럽게 키스를 청해왔다. 소프트한 키스, 그리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다. 턱으로, 목으로, 어깨를 거쳐 내 유두에서 혜민의 입이 잠시 머물렀다. 그리고 다시 배와 배꼽을 거쳐 아랫배를 지난 후, 이윽고 사타구니에 도착했다.

수연의 몸에서 뽑혀나올때까지만 해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던 녀석이, 따뜻한 물로 인한 나른함때문인지, 지금은 축 쳐져있었다. 이제야 내 마음도 조금 평상심을 되찾았다는 증거일게다.

하지만 혜민은 아랑곳 하지않고, 내 물건을 부드럽게 삼켜갔다.

은은한 쾌감이 번졌다. 한참을 자극에 시달린 탓도 있었고, 혜민의 애무도 성감을 위한 애무는 아닌 것으로 느껴졌다. 그보다는 뭔가, 마음을 표현한달까,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적인 부분에 대한 애무처럼 느껴진달까.

한참 후에야 몸을 일으킨 혜민이 다시 내게로 안겨왔다.

"오빠, 사랑해요. 사랑해요. 사랑해요."

읊조리듯, 메아리치듯, 혜민이 속삭였다. 품에 안은 채로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듯 쓰다듬다가,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나도 너를... 사랑... 하는 것 같다."

갑자기 혜민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눈까지 동그랗게 뜨고.

그러고보니 내 어눌한 표현이, 아니, 내 입에서 사랑이라는 말이 나온 것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0년이 넘도록 비웃기에 주저하지 않던 감정이었는데.

나를 바라보던 혜민이 무척이나 행복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깟말에 이렇게나 좋아하다니. 뻘쭘하게시리.

혜민이 다시 내 가슴에 뺨을 부비며 말했다.

"오빠, 우리 오래오래 함께 살아요."

***

물론 그날의 광란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혜민과 수연을 겹쳐놓고 번갈아가며 삽입해보기도 하고, 침대 옆 끝부분에 세명을 각자 다리를 벌리게 하여 나란히 눕혀놓고 서너번씩 쑤셔보기도 했다. 물론 세명을 나란히 후배위 자세로 엎드리게 하여 서너번씩 번갈아 쑤셔보기도 했다.

내가 힘에 부쳐서 쉬고 있을때는 어김없이 내 양쪽 유두와 자지에 그녀들이 달려들었다.

"오빠, 오빠는 그냥 느긋하게 쉬어. 이건 그냥 우리가 봉사하는 거야."

젠장, 어떻게 쉬냐고. 느긋하기에는 그날의 그녀들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결국에는 다시 욕심을 부리게 될 정도로.

정말 원없이, 분위기상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기에는 지나칠정도로, 지나고나서 생각해보니 미쳤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을 정도로.

샤워 이후에 혜민에게 한번, 다시 수연에게 한번, 다시 혜민에게 한번, 그리고 윤정에게 한번, 마지막으로 수연에게 한번.

샤워 이전에 사정했던 두번을 합치면 총 7번의 사정이었다. 말이 7번이지, 마지막 한사람이 잠들기까지 한 8시간 정도는 한 것 같다. 지금 그렇게 하라면 죽을지도 모른다. 그럴 능력도 없고.

별 것 아닌 특이사항을 덧붙이자면 모든 사정이 다 질내사정이었던 것이랄까.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반복될 질사를 하면서 그녀들을 소유하는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윤정에게 사정하기 위해 스퍼트를 올릴 무렵 혜민이 제일 먼저 잠이 들었고, 사정 직후 긴장이 풀리면서 윤정이 잠이 들었다. 나도 자려고 하다가, 강아지처럼 안겨오는 수연에게 끓는 욕심을 참지 못하고 마지막 한번을 불살랐던 것이, 그날의 마지막 기억이다.

***

나는 윤정의 의도대로, 아예 그 집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밀당 이런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고 해도,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나는 살던 집을 정리하고 그 집으로 들어갔다.

물론 집은 충분히 큰집이었다. 방이 4개 였는데, 안방겸 침실에는 화장대와 세 여자(특히 윤정과 혜민)의 물건들이 주로 많이 장식되어 있었고, 주로 게임하러 들어가는 수연이 방이 1개, 그리고 1개는 아무래도 여자만 셋이다보니 창고(주로 옷이 들어가는)가 필요했고, 나머지 방 1개를 내가 작업실로 써야했다. 

문제는 내 작업실이 너무 작다는 것이 불만이었다. 그렇다고 안방을 차지할 수는 없었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러다보니 주로 조용한 까페 등을 찾아 나가서 작업해야했는데, 이게 또 은근히 귀찮은 일이란 말이지. 아이들도 내가 나가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고.

때문에 2년쯤 후에는 결국 윤정이 바라는 대로 집을 옮기게 되었다. 옮긴 집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2층으로 되어 있었고, 1층 거실은 충분히 넓었으며, 무엇보다 내 작업실이 넓어진 것이 흡족했다. 여자들이, 특히 윤정과 혜민이 안보이는 곳에 숨어서 시도때도 없이 붙어먹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굳이 그녀들의 매력을 꼽지 않아도,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알게 된, 아무래도 성생활이 많아질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다.

내가 땡길 때, 셋 중 두명이 땡기지 않아도 한명 정도는 타이밍이 맞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사실 어지간해서는 내가 반응을 보이면 그녀들이 거절하는 일이 없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별로 땡기지 않을 때에도, 누군가 둘이 붙어있는 것을 구경하다보면 마음이 동하는 것이 어쩔 수 없기도 했고. 소파 앞에서 혜민의 팬티만 내린 채 윤정이 혜민의 다리 사이를 핥고 있는 것을 보다보면, 결국 나도 마음이 동해서 윤정의 뒤로 돌아가 윤정에게 찔러 넣는... 뭐 그런 식이랄까.

뿐만 아니라 셋다 애무를 매우 즐겨해서(아마도 레즈플의 영향이라고 생각한다) 멀뚱멀뚱 TV를 보면서도 적어도 1명은 내 다리 사이에 자리를 잡는 일이 매우 흔한 일이었고, 침대 위에서는 둘이나 셋의 서비스를 받는 일도 매우 흔했다. 나중에는 너무 익숙해져서 애무받다가 그냥 잠들기도 할 정도로.

다만 첫날과도 같은 4p는 한달에 한번 정도, 아니면 뭐 기념할만한 날이 돌아와야 벌어지게 되었다.

4p보다는 1:1이 많았고, 조금 웃기지만 1:1보다는 3p가 많은 성생활. 딱히 정해놓았다기보다, 윤정은 윤정대로, 혜민은 혜민대로, 일도 해야했고 바쁘다보니 자연스러운 현상이랄까.

집에 있는 시간이 가장 많은 사람은 수연과 나였고,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그동안 가장 많은 관계를 가진 것도 수연인 것 같다. 그것이 이유인지 유난히 수연이 유난히 나를 잘 따르는데, 어리광도 많고 가끔은 흡사 이녀석이 진짜로 스스로를 강아지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착각이 들 때도 많다. 요즘은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조금 덜한 것 같기는 하지만.

게임이 시들할 때면 내 책상밑으로 기어들어와 오럴을 하는데, 내 물건을 가지고 노는 것이 재밌단다. 물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진다나. 처음엔 여지없이 섹스로 이어졌지만, 익숙해져갈수록 그냥 내버려두게 되었다. 내버려두면 1시간이고 2시간이고 내 책상밑에서 나오지 않을때가 많다. 거기를 지 집이라고 생각하는 건지.

윤정은 다년간 작은 회사를 지휘해 본 경험이 있어서인지, 경제적 사회적으로 네명의 가족이 살아갈 집을 운영하는데 나에게 아주 훌륭한 파트너가 되어 주었다. 나에대한 존중인지, 가족에 대한 최종 결정권을 나에게 주기는 하지만 항상 윤정과 상의하는 편이다. 4살이나 어린데도 상당히 의지가 되는 친구다.

돈에 있어서는 냉정할 수 밖에 없는 세상인데도, 쿨하다고 해야할지 겁이 없다고 해야할지, 이 집을 얻을 때에도 나와 함께 돈을 합치긴 했지만 다소나마 그녀의 돈이 더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내 명의로 하자는 것을 끝끝내 우겨서 공동명의를 할 수 있었다.

생활비는 나와 윤정이 각각 150만원씩을, 혜민이 50만원을 내며, 벌이가 많지 않은 수연은 형식적으로나마 20만원 정도를 부담한다. (전기세 내고 나면 없다. -_-) 다행인지 불행인지, 최근에는 윤정과 내 수입이 역전되어 윤정이 100만원을, 내가 200만원을 부담하는 것으로 바뀌었고.

대신에 3년쯤 전부터, 윤정과 내가 각각 100만원씩을 추가로 모아서 통장을 만들었다. 유사시나, 가족에게 필요한 돈이 생길때, 휴가때 등에 사용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이었다. 매월 200만원씩 모아지는 돈이 생각외로 쓸 곳이 많이 없어서, 지금은 제법 목돈이 되어가고 있다.

혜민도 여전히 직장에 다니고 있다. 셋중 그나마 가장 가정적인 혜민이기에, 생각같아서는 집에 있어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본인의 말로는 나에게 여자로서의 매력을 잃지 않기 위해서란다.

사실 셋중에서 가장 오피스룩이(교복도ㅋㅋ) 잘 어울리기도 하고, 침착한 성격과 더불어 똑똑하고 현명한 친구라 집에 두기에는 아깝다는 생각도 든다. 다만 집에 두고 내가 원할 때 수연과 나란히 놓고 먹고 싶은 욕심이 문제일뿐.

제작년 12월.

이 글을 처음 쓰기 시작할 당시 나는 35살이었고,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직후였다.

윤정은 당시 31살이었고, 혜민은 29살, 수연은 22살이었다.

그리고 올해에는 내가 37살, 윤정은 33살, 혜민은 31살, 수연은 24살이 되었다.

앞으로 우리가 얼마나 더 함께 살게 될 지는 모르지만, 아직은 행복한 것 같다.

- END.

1장. 이벤트

선우는 복사된 글을 옮겨놓고 확인 버튼을 눌렀다.

그제야 창밖의 햇빛이 왠지 강하게 느껴졌다. 아직 2월인데, 찬바람을 막아주는 커다란 유리창 때문인지 햇살이 따뜻했다.

슬슬 봄이 오려나보다.

“오빠, 이게 뭐야?”

돌아보니 기척도 없이 윤정이 들어와 있었다. 윤정은 이제 막 새로 올라간 연재 글에 호기심을 보이는 눈치였다.

“별 거 아니야. 요즘 재미거리가 없어서. 그냥 재미삼아 쓰고 있는 거야.”

“어머, 이거 혜민이 얘기 아니야? 재석이? 혹시 그때 그?”

“응”

하필이면 마침 재석이와의 씬이 한참 진행 중일 때였다. 눈치 빠른 윤정의 파악은 순식간에 이루어졌다.

“수연이한테 듣기는 들었는데. 오빠 요즘 야한 글 쓴다고.”

“그래?”

“응. 그런데 그게 설마 혜민이 얘기일 줄이야.”

“그냥. 요즘 옛날 생각도 간간히 나고 해서.”

“그래도. 이런 거 쓰면 혜민이가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뭐 어때. 그냥 소설인데. 사실 그 애한테는 넌지시 귀띔하기도 했어. 우리 얘기를 써볼까 한다고.”

“혜민이야 늘 평소처럼 대답하지.”

“오빠 마음대로 하세요…, 라고 했겠네.”

“응.”

윤정이 제법 호기심을 느낀 모양인지, 한참을 들여다보는 눈치였다. 가끔 어머, 어머, 하는 감탄사를 연발하기도 했고, 뭐가 우스운지 깔깔대며 웃기도 했다.

“여기 우리 얘기도 나오겠네?”

“아니야. 그럼 너무 내용도 길어지고. 생각했던 것은 재석이 일 까지인데?”

“그래? 스타 한번 되어보나 했는데.”

선우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재석이와의 일 이후로 적당히 연재를 마무리 지으려고 했었다. 진행상으로도 그 부분이 클라이막스가 되리라 생각했고.

“그런데 이벤트가 뭐야?”

재미를 붙였는지, 댓글들까지 쭈욱 훑어보고 있던 윤정이 물어왔다. 재석이와의 씬이 진행되면서 부쩍 이벤트를 문의하는 쪽지가 많아지던 때였다.

물론 선우의 입장에서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었다. 등장인물이 실존한다니 호기심도 있을 것이고, 글의 내용이 그러하니 욕정이 생기는 것도 당연한 말이다. 등장인물과 한번 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거, 아무래도 등장인물이 실존한다니까, 혜민이랑 자보고 싶다는 얘기지. 이 사이트가 좀 이런 분위기가 있기도 하고.”

“어머, 세상에.”

윤정은 짧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댓글에 집중했다.

사실 선우도 워낙 많은 쪽지를 받던 차에 아주 조금은 갈등이 되던 차였다.

그래서였을까. 윤정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문득 궁금해졌던 선우는 창을 쪽지 보관함으로 이동하여 저장되어있는 쪽지들을 보여주었다.

“어머, 어머. 세상에, 세상에.”

양이 만만치 않았던 관계로 윤정은 한참을 들여다 보아야했다.

재미가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호기심인지, 꽤나 자세히 보는 눈치였다. 애매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한참을 쪽지들에 심취해있던 윤정이 이윽고 선우를 돌아보았다.

“오빠, 설마, 오빠도 다른 남자랑 혜민이랑 자보게 할 생각인 거? 그때 재석 오빠 때처럼?”

“글쎄다. 지금은 그냥 생각중이야.”

말 그대로였다.

사실 글을 써내려가면서 드는 흥분도 있었고, 재석이 때 일을 회상하면서 받는 자극도 있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원하는 사람들은 많았지만 그게 이유가 될 수는 없었다. 그런 일을 벌려야 하는 명분이 없다고 해야 할까.

“흐음…….”

윤정은 이번에도 애매한 호흡을 뱉으며 속내를 짐작하기 힘든 표정을 보였다.

***

같은 날 저녁.

선우가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일에 손을 놓고, 스포츠 뉴스만 뒤적거리고 있을 때였다.

평소대로 노크없이 들어온 윤정이 기웃거리며 선우의 모니터 화면을 훔쳐보았다.

“왜, 할 말 있어?”

선우가 의례상 묻자 잠시 뜸을 들이던 윤정이 대답했다.

“오빠, 내가 생각을 좀 해봤는데 말이야.”

“무슨 생각?”

“이벤트, 그거 하자.”

“난 아직 생각중이라고 했잖아? 이번에는 별로 내키지도 않고.”

사실이었다. 원하는 사람이 많아서 갈등은 되었지만, 사실 별로 내키는 일은 아니었다.

선우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육체관계나 소유욕 등에 내성이 좀 있을 뿐이지, 선우에게 딱히 네토에 취미가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자신의 여자가 다른 남자랑 자는 일이 반가울리 없었다.

‘그러고 보니 혜민은, 그리고 이 친구들은 내 여자인가?’

선우는 이런 생각이 들 때면 애매할 때가 가끔 있었다. 구분 짓는 것도 우습긴 하지만.

“그러니까, 오빠. 저 사이트에서 얘기하는 그런 이벤트 말고. 평범한 건 오빠도 식상하잖아? 단순하게 혜민이가 다른 남자랑 자는 것이 무슨 의미 있는 일도 아니고.”

식상하다고?

누가 들으면 선우가 수도 없이 초대 이벤트를 벌여서, 그런 일에 인이 박힌 사람인줄 알 것 같은 말이었다.

하지만 식상한 건 사실이었다. 그저 그런 초대 이벤트나 스와핑 등의 단어는 선우에게 그다지 감흥이 없는 단어였다.

“그래서?”

“저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이벤트를 해보자는 거지 내 말은.”

“우리를 위한 이벤트?”

“응. 오빠 혹시 혜민이가 바람 필거라는 생각은 안 해?”

“바람?”

“오빠 몇 번인가 다른 여자랑 잔 적 있지? 그거 혜민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해?”

“글쎄다. 모를 수도 있고, 알 수도 있겠지.”

선우는 순간, 따로 이실직고한 적도 없는 일을 어떻게 알고 있나 싶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당황한 것은 아니었다. 그냥 순순히, 바로 나올 수 있는 대답부터 꺼냈을 뿐.

경황없이 윤정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미처 마무리할 수 없었던 주변정리로 인한 부작용은 당연했다.

소개가 없었던 여자를 이제와 거론하는 것은 설명이 필요하니 생략한다고 치자. 잠깐이나마 등장했던 윤팀장도 무척 섭섭해 했다. 그러다보니 약간의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고, 그중에는 질질 끌다가 본의 아니게 횟수가 반복되기도 했다. 그나마 깔끔하게 정리가 된 것도 이제 겨우 1여년이 되어간다.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변명으로 들릴 뿐이라는 것을 선우는 알고 있었다. 모질게 끊어내지 못한 것은 결국 스스로의 잘못이니까. 어쩌면 좀 더 즐기고 싶었던 욕심인지도 모르고. 선우는 굳이 그것을 부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알고 일을 혜민이라고 모르겠어? 혜민이, 은근 소유욕 많은 애야.”

“알고 있어.”

“홧김에라도 다른 생각하지 않을까, 뭐 그런 걱정 안 해봤어?”

“바람피우고 싶으면 이미 폈겠지. 혹시 이미 다른 상대가 있는데 나만 모르고 있는 것일 수도 있고.”

딱히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선우가 억지를 부리는 것도 아니었다.

수연이야 워낙 집밖에 나가는 일이 적으니 그럴 일이 없다고 해도, 윤정과 혜민은 아니었으니까.

윤정은 귀가가 늦는 일이 상당히 있는 편이었고, 혜민은 귀가가 빠른 편이긴 하지만 늦는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이 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단지 가사를 혜민이 주로 주관해왔다는 이유 때문에 불편을 느낄 뿐.

어쩌다 늦는 일이 있어도 거의 항상 먼저 연락을 주었다.

어찌되었거나, 윤정과 혜민 둘 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선우에게 비밀로 하던, 아님 드러내놓고 하던 간에.

아니, 윤정까지도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상상은 잘 되지 않았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선우가 보기에도 윤정은 정말로 남자에게 관심이 없어보였다. 자신과 육체관계가 가능한 것이 종종 의아한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혜민은? 모르겠다. 선우로서는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혜민에게는 은연중에 정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싶어 하는 욕심이 있었다. 우리 가족, 우리 식구라는 표현도 가장 많이 사용할뿐더러, 가족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아이였다. 수연도 비슷하기는 하지만 의존적인 성격에서 오는 결과라는 점에서 혜민과는 다르다고 볼 수 있었다.

결혼에 대한 마음도 있는 것 같았다. 다만 처해있는 현실과 맞지 않을 뿐. 어쩌면 평범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고 평범한 가정을 꾸리는 데에 있어서, 이 집의 사람들 중 가장 어울리는 사람일지도.

그러고 보니 선우는 그런 생각을 한 것도 같았다.

막연하게. 지금의 이런 생활이 언제까지 유지가 될 수 있을까하는.

그때보다 나이를 먹긴 했지만, 선우도, 그녀들도 아직 대체로 젊었다. 아니, 어쩌면 선우는 이미 가정을 꾸릴 나이가 지났다고 볼 수 있고, 이 세 친구들도 대체로 그런 나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다만 수연이만이 아직 여유가 있을 뿐.

서서히 진짜 짝을 찾고 싶어지지 않을까. 남들이 보면 비정상적인, 지금의 이런 가정과 가족에 만족하고 살 수 있을까.

윤정은 애초에 결혼에 대한 생각이 없을지도 모른다. 수연은 아직 아무런 생각도 없을 수 있다. 그럼 혜민은? 혜민도 그럴까?

갑자기 생각이 길어져있는 선우를 유심히 지켜보던 윤정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다시 말문을 열었다.

“아니야. 적어도 내가 알기론 없어. 오빠도 혜민이가 그런 짓을 할 아이가 아니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 있을 텐데.”

선우는 어쩌면 자신도 그렇게 믿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뚤어진 첫사랑의 결과로, 장장 10년이 넘게 정절이란 단어를 비웃던 선우였음에도, 어느 사이 혜민의 이미지는 선우에게 그렇게 굳어져있었다. 

“그렇다 치고. 혜민이가 다른 남자를 만나겠다고 해도, 나한텐 딱히 말릴 명분이 없지 않나?”

선우가 아직 잘 정리되지 않은 생각을 슬그머니 내비치자, 윤정의 인상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오빠, 정말 그렇게 생각해? 왕 놀이는 이제 싫증난 거야? 오빠가 안 말려도 내가 말려. 아니, 나야말로 명분이 없을지언정 오빠는 말려야 하는 거 아니야? 그래서 우리랑 같이 사는 거 아니야?”

“모르겠다, 나는.”

선우는 정말 모르겠다는 생각에서 꺼낸 말이었다. 정말로 선우에게 혜민의 바람을 부정할 권리가 있으려면, 윤정과 수연의 존재도 부정해야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들을 모두 입 밖에 꺼낼 수는 없었다.

“아무튼! 내가 알기로는, 아니 무조건! 결단코 없어. 혜민이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일 따위. 지금까지는…….”

선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정색을 하고 말하는 윤정의 표정이 자못 매서웠다. 선우가 ‘네 소유욕이 더 무섭다’ 라고 말했다가는 한 대 칠 기세였다. 그럴 리는 없겠다마는.

그런데 마지막에 덧붙인 말이 선우에게 묘하게 거슬렸다.

“지금까지는?”

“그래, 지금까지는. 그런데 앞으로는 모르는 일 아니겠어? 혜민이도 사람이니까. 지칠 수도 있는 거고…….”

“지쳐?”

“응, 그래서 말인데. 한번 시험해보는 거야. 혜민이가 바람을 필지 안 필지. 어떻게 생각해?”

“그게 대체 무슨 말이야?”

“내가 우리를 위한 이벤트라고 했잖아. 사실 우리들, 한 살 한 살 먹어가면서, 서로 말은 하지 않아도 조금씩 불안해하고 있지 않을까? 이런 생활,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까, 우리들 중 누군가가 곧 떠나가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으로 말이야. 사실 그 중에서 제일 불안한 것은 오빠랑 혜민이고 말이야. 수연이는 아직 어리고, 나는 누가 보기에도 이집에서 먼저 나갈 것 같지 않은 사람일 테고.”

“그래서?”

“좀 짓궂은 말이지만 불안한 마음도 달랠 겸 테스트를 해보자는 거지. 일단 이벤트는 오빠랑 나랑 둘만 알고 있는 걸로 하고. 저 사람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이벤트가 아니라, 상황을 만들어서 혜민이가 바람을 피거나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을까 지켜보자는 거지.”

왠지 조금 억지 같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선우는 표현하지 않았다.

“내기를 해야 하는 분위기인가? 그렇다면 나는 혜민이가 유혹에 넘어가지 않는 쪽으로 걸도록 하지.”

“어머, 그렇다면 내기는 성립되지 않겠는 걸? 나도 혜민이가 바람피우지 않는다는 쪽에 걸 테니까.”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탓일까.

길게 의논한 것도 아닌 채, 선우와 윤정의 이야기는 농담조로 마무리되고 있었다. 

어쩌면 선우는 조금쯤 재미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혜민의 입장에선 기분이 상하는 일일 수도 있겠지만, 윤정의 말을 듣고 보니 실제로 궁금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성화에 가까운 이벤트 요청도, 윤정의 말 정도면 그럭저럭 라이트하게 끝낼 수도 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도 들었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선우가 다시 윤정에게 물었다.

“그래서, 계획은?”

“콜 한 거지? 오케이. 그러면 일단 오빠가 명단을 받아서 나한테 줘. 이후는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그런데 한 가지. 항상 만약이라는 문제를 등한시 할 수는 없으니까. 너희들 요즘에 약 안 먹고 있잖아? 혹시라도 우리가 예상 못한 일이 벌어졌을 때는 어쩌려고?”

피임약 얘기였다. 

한 달쯤 전이었던 것 같다. 혜민이 문득 약을 좀 쉬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꺼내왔다. 윤정과 수연이 있으니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분위기에 휩쓸리는 이집의 아가씨들은, 아마도 혜민에 대한 윤정의 배려였겠지만, 생각을 하나로 맞추게 되었다. 결과적으로 다같이, 두 달간 약을 쉬기로 의견이 모아진 것이다. 게다가 이왕 하는 김에 색다른 분위기도 느껴볼 겸, 그 두 달간 금욕의 시간을 갖기로 했었다.

선우는 자신의 입장에서 두 달은 좀 길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금지된 것은 새로운 갈증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될 수도 있으니까.

물론 삽입을 배제했을 뿐, 철저히 금욕을 고수한 것은 아니었다. 적절한 애무와 오럴정도는 당초 계획에 해가 되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오랜만에 느껴보는 가벼운 아쉬움도 나쁘지 않았고.

다만 애초에 언급한 금욕의 시간은 어디로 간 것인지, 임신의 문제가 없다는 이유로 여자들끼리의 플레이에 더욱 열을 올리는 것 같았다. 그래서 뭔가 손해 보는 입장이 된 것 같은 선우였지만, 쪼잔하게 그런 일로 불평할 수도 없었다.

그런 생활이 한 달째 지속되고 있었고, 계획대로라면 아직 한 달은 더 남아있는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생각한다면, 선우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윤정은 그런 선우의 질문에 어깨를 으쓱해 보이더니, 별것 아니라는 말투로 대답해왔다.

“오빠는 별 걱정을 다 하네. 피임약 먹는 커플보다 안 먹는 커플이 더 많을걸? 그렇다고 그 애들은 섹스 안 해? 애초에 혜민이가 바람을 핀다 쪽으로 기울어질 가능성도 낮은데다가, 만약에 그런 상황이 벌어진다고 해도 콘돔 쓰면 되지. 혜민이가 어린애도 아니고.”

“으음…….”

선우는 윤정의 말에 딱히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래, 대부분의 커플들이 콘돔을 애용하는 것도 맞는 얘기고, 애초에 혜민이 유혹에 넘어간다는 것도 가능성이 희박한 얘기니까. 우연찮게 시기가 맞물린 덕분에 괜한 기우를 하는가 싶었다.

“그래. 알겠다.”

“응, 기다릴게.”

결국 결론을 내린 선우의 말에 윤정이 애매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선우는 그 미소가 조금 신경이 쓰였지만, 대수롭지 않을 일이라고 생각해버렸다.

‘오빠는 우리를 조금 더 소중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어.’

돌아서며 생각하는 윤정의 마음을, 당시의 선우로서는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로인해 벌어지게 될 한 달 여 뒤의 미래도.

2장. 위험한 거래

“후……”

선우는 도저히 정리되지 않는 쪽지 창을 보면서 깊게 한숨을 쉬었다.

명단을 추리는 것도 생각보다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왠지 신중해야할 것 같은 느낌에 통화를 시도해보는 것도 몇 차례를 거듭하자, 이러다가는 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에는 대충 훑어보며 지나치게 무성의해 보이는 쪽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쪽지를 워드로 옮기기로 마음먹었다. 걱정이 조금 들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사실 평소에 쪽지를 주고받던 사람은 거의 없었고, 대부분은 댓글에서조차 처음보는 아이디 뿐이었다. 얄미울정도로 이런일에만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과 통화를 한다는 것도 그다지 내키지 않았고, 솔직히 귀찮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마음같아서는 이쯤에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어째서인지 도통 내키지가 않았다.

어쨌거나 약속은 약속이었고, 그렇게 대충 추려진 명단만해도 대략 300여명은 족히 되는 것 같았다.

“히야~. 이렇게 많아?”

윤정이 꽤나 놀라는 눈치로 명단을 받아들 때만 해도, 선우의 찜찜함은 그대로였다.

***

선우가 명단을 넘기고 일주일이 지났다.

화색을 하며 명단을 받아든 것 치고는, 무슨 이유에선지 윤정에게서 소식이 없었다.

한집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는 사이지만 전혀 내색도 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말을 꺼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따로 불러서 말을 하자니 왠지 조바심을 내는 것처럼 보일 것 같아 내키지 않았다.

물론 양이 양이니만큼 고작해야 일주일일 수도 있다. 일이 바빴을 수도 있고, 아직 결론이 나지 않았을 뿐 한참 진행 중일 수도 있다.

열흘째 되던 날, 선우는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윤정을 따로 불러 물어보게 되었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윤정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아, 그거? 그거 그냥 안하기로 했어. 무슨 대기업 면접도 아니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어떻게 골라? 그냥 충동적으로 저지르기에는 너무 시간을 잡아먹겠더라고. 오빠도 그다지 내켜하지 않는 것 같고 말이야.”

“그래?”

“응, 그리고 우리 계절 바뀌면서 한참 신상 런칭중이잖아. 정신없이 바빠서 그런데 신경 쓸 겨를이 없네.”

“아, 그렇지. 이제 봄이니까.”

선우로서는 오랫동안 봐왔던 익숙한 모습이었다.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는 해도, 많은 인력을 두지 않는 쇼핑몰 특성상 윤정은 일에 시달려야했다. 그나마 주말은 챙겨 쉴 수 있게 된 것도 선우와 함께 살면서 경제적인 분담이 이루어졌기 때문이었다.

그건 그렇고, 내심 마음 졸여하던 선우는 스스로가 우스워지는 순간이었다.

재밌는 것은, 한편으론 안심도 되면서, 한편으로는 뭔가 아쉬운. 쉽게 설명하기 힘든 간사함…….

***

다시 열흘이 지났다.

선우는 그동안 신경 쓰지 못한 연재도 한편을 올렸다.

윤정이 이벤트를 언급하는 바람에, 심리적인 동요가 생겨서인지도 모르겠다. 어째서인지 키보드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제 곧 마무리네. 대충 종결하면 되겠지.’

사실 재미로 시작한 일이니만큼 책임감이 크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왕 시작한 글이니 완결은 지어야겠다는 생각일 뿐.

선우는 복사된 글의 확인 버튼을 누르며 한결 편해진 기분을 느꼈다.

“오빠, 뭐해?”

새벽 1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에, 또 다시 윤정이 불쑥 선우의 방을 찾았다.

그러고 보니 요즘 부쩍, 게다가 오늘도 퇴근이 늦은 윤정이었다.

“이제 자려고. 늦었네?”

“응, 오빠. 이번 주 금요일 시간 되지?”

“나야 별 일 없지. 그런데 왜?”

“실은 우리 이번 신상들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스토리보드 식으로 멘트도 조금 넣어볼까 해서. 오빠가 도와줬으면 하거든? 해줄 거지?”

“테마를 잡겠다는 얘긴가? 쇼핑몰에서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요즘은 가끔 그런 방식도 쓰고 그래. 아무튼, 사진도 찍을 겸 혜민이랑 오빠도 같이 해서 부산에 한번 다녀왔으면 해서.”

“우리 넷이?”

“응. 우리 넷에다가 스텝 세 명 더해서.”

선우는 멈칫했다. 뭔가 의아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윤정의 쇼핑몰 매출이 안정적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너무 무리한 계획이 아닌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단지 사진을 찍기 위해 스텝을 3명이나 데리고 출장이라니.

여행이라는 명분을 생각하면 스텝이 걸렸고, 사진 촬영이라는 명분을 생각하니 상식 밖의 투자가 마음에 걸렸다.

“왜 부산이야?”

“신상도 신상이지만, 올 여름에는 수영복도 한번 취급해보려고 하거든. 아직 계절이 일러서 다른 모델은 좀 그럴 것 같고, 만만한 수연이 데리고 내친김에 찍어 보려는 거지.”

“며칠 생각하는데?”

“음, 지금 생각 같아서는 주말 3일정도?”

“3일 씩이나? 그런데 굳이 혜민이랑 나까지 갈 필요가 있을까?”

“가족 여행 겸사겸사 하는 거지. 우리 어디 놀러가 본 지 오래되었잖아? 그리고 오랜만에 혜민이 사진도 찍었으면 싶고, 오빠도 작업과정을 보는 것이 텍스트 컨셉 잡는데 도움이 되지 않겠어?”

선우는 더 이상 꼬집어 되물을 말이 없었다.

3일이라는 것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부산까지 가는데 당일치기나 1박 일정을 잡는 것이 더 무리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주 금요일 날 출발한다고?”

“으이구, 오빠. 나도 나름 회사를 운영하는 사람인데, 일정이 그렇게 벼락치기로 되는 줄 알아? 이번 주 금요일은 애들이랑 스텝들 인사시키려고, 오빠도 동행할거면 같이 만나는 게 좋겠다 싶어서.”

“아, 그래. 그럼 부산은 언제쯤?”

“음, 지금 생각으로는 2주후 쯤 생각하고 있어. 아무리 수연이라도 지금은 조금 추울 테니까.”

“그래 그럼. 그렇게 알고 있을게.”

그리고 금요일이 되었다.

약속시간은 7시였고, 장소는 몇 번인가 가본 적이 있는 혜민의 직장 근처의 호프집이었다.

선우는 혜민의 퇴근시간에 맞추어 수연을 데리고 출발했고, 약속 시간을 여유 있게 앞두고 혜민을 만날 수 있었다. 약속장소인 호프집에 도착하여 인원을 고려한 넉넉한 테이블에 자리를 잡을 무렵, 윤정이 도착했다.

“일찍 왔네?”

“뭐, 혜민이 퇴근 시간 맞추다 보니까.”

이미 얘기가 다 되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인지, 혜민과 수연은 별다른 말이 없었다.

다만 낯선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인지 수연이 조금 긴장한 듯 보였다.

“그런데 왜 호프집이야?”

공백을 메꾸기 위해, 선우는 별 의미 없는 질문을 던졌다.

“이유 있나? 다들 젊은 사람들이고, 어색하게 저녁식사 깨작거리는 거 보단 낫겠다 싶었던 거지. 괜찮지 혜민아?”

“네, 언니.”

아무렇지 않은 윤정의 말투에 혜민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선우가 무언가 시켜야하지 않을까 생각하던 중에, 갑자기 윤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멀리서 누군가 다가오는 눈치를 보아하니, 약속했던 스텝들인 모양이었다.

윤정에게 들은 얘기로 딱히 성별을 생각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남자만 세 명이었다.

“아이고, 윤정씨. 며칠 만에 또 뵙는군요. 아, 이분들인가 봅니다?”

남자들 중에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그리고 한눈에 보아도 상당히 넉살이 있어 보이는 남자가 다가오며 제일 먼저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박 상길입니다. 이번에 좋은 모델 분들 모시고 카메라를 잡게 되어 영광입니다.”

자신을 상길이라 소개한 남자는 묻지도 않은 정체를 밝히며 선우에게 악수를 청해왔다. 선우의 눈에 상길은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였기 때문에 함께 예의를 차릴 수밖에 없었다.

“네, 안녕하세요.”

마주 인사하며 청한 악수를 위해 손을 잡는데, 그리 힘을 준 것이 아닌데도 상길의 손이 꽤나 두툼하게 느껴졌다. 배가 조금 나왔고 선우보다 조금 작은 키가 흔하게 말하는 몸짱은 아니었지만, 짧은 머리에 떡 벌어진 어깨하며 굵직굵직한 선이 힘 꽤나 쓸 것 같은 인상이었다.

“안녕하세요. 김 석현입니다.”

“저는 권 정혁입니다.”

상길의 뒤에서 간단히 자신을 소개한 이들도 선우에게 대표로 인사를 한 뒤, 혜민과 수연에게는 목례로 대신하며 자리에 앉았다. 선우로서는, 사실 그다지 비중 있는 임무를 맡고 있지 않음에도 본의 아니게 보호자 역할을 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석현이라 소개한 남자는 선우와 비슷한 또래로 보였고, 선우와 비슷한 키에 한두 달 정도 운동해서는 어림도 없을 정도로 보이는 알 굵은 근육이 도드라져보였다. 전문 헬스트레이너라고 해도 전혀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였다.

셋 중에서 가장 어려보이는 정혁은 키가 상당히 컸고, 몸도 제법 좋아 보였지만, 그보다는 뼈가 굵고 골격 자체가 상당히 커 보이는 스타일이었다. 얼굴도 석현과 상길에 비해 상당한 미남형이었다.

“이 분이…….”

남자 셋이 대충 자리를 잡고 앉자, 상길의 시선이 혜민을 향하며 말을 끌었다. 소개를 요구하는 눈치였다.

“황 혜민이에요. 잘 부탁드릴게요.”

“전에 말씀드린 동생이에요. 몇 번 경험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아마추어니까 잘 부탁드려요.”

잠자코 있던 혜민이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마주 인사 했다. 이미 필요한 얘기는 전에 다 한 듯이, 옆에서 윤정이 거들고 나섰다.

“그럼 모델은 이쪽 분?”

“안녕… 하세요.”

자신을 바라보는 상길의 말에 조금 자신 없어 하는 말투로 수연이 답했다.

선우의 시선에, 수연의 낯가림은 나이를 먹었어도 나아진 것이 없어보였다.

“이렇게 보여도 카메라 앞에서는 꽤 능숙한 아이니까 걱정 안하셔도 될 거에요.”

윤정은 수연의 소개에도 거들고 나섰다.

상길은 윤정의 말과 함께 주름이 깊게 잡히는 눈웃음을 보이고는 적당한 간격을 두고 말을 이었다.

“윤정씨 처음 봤을 때도 너무 미인이셔서 놀랐는데, 두 분도 정말 미인이시군요. 이거 촬영이 즐거울 것 같아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데요?”

선우가 듣기에 인사치례치고는 조금 느끼한 말이었다.

‘애들 예쁜 거야 나도 처음 봤을 때부터 했던 생각이니 그렇다 치지만, 촬영이 즐거울 것 같다니, 혹시 수영복 촬영을 두고서 하는 말인가?’

선우가 왠지 옹졸한 생각을 떠올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으려는데, 이번에는 상길이 능숙한 말투로 소개에 나섰다.

“에, 그러니까. 석현이는 제 보조 겸 조명을 도와주기 위해 이번에 함께 가게 되었고요, 정혁이는 제가 짐 드는 것을 워낙 싫어해서 윤정씨께 무리한 요구를 드려 함께 가게 되었습니다.”

자못 이해가 되지 않는 상길의 말에 선우는 윤정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윤정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답했다.

“외부 인력인데다가 부산까지 동행하는 일이잖아. 저 정도 조건은 어쩔 수 없지 뭐.”

대답을 들어도 선우의 의아함은 개운하지가 않았다.

‘요즘 같은 인력공급 과잉 시대에, 무리한 요구 조건을 들어줄 만큼 사진사가 없나?’

하지만 역시 대화 도중에 든 의아함은 오래 갈 수가 없었다. 선우는 아마도 인원이 늘어도 비용 측면에서 큰 차이가 없었거나, 아니면 윤정의 말대로 급하게 외부 인력을 구하느라 어쩔 수 없었던 선택이겠거니 정도로 결론을 내려야했다.

이후의 술자리는 그저 평범한, 친목을 위한 자리였다. 외부 인력으로 인해 아무래도 낯을 가리는 수연과 몇 번 사진 모델의 경험이 있긴 하지만 익숙지 않은 혜민을 배려한다는 명분이었다.

수연과 혜민의 성격을 잘 아는 선우가 듣기에도 윤정의 말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었다. 윤정을 제외하고는 처음 보게 된 세 명의 남자들도 업무를 위해 나온 사람들답지 않게 술자리를 즐기는 것 같았다.

***

다음 주 수요일.

작은 민속주점의 테이블에 세 남자가 앉아있었고, 맞은편에는 윤정이 있었다.

이미 술도 세병이나 비워진 상태였고, 대화 역시 한참은 진행된 상태였다.

“그러니까, 저희는 얌전히 따라갔다만 오면 되는 거다, 이 말씀이죠?”

마치 확인하듯이, 상길이 윤정에게 물었다.

“네. 세분께서 개인적으로 필요하신 것을 빼고는, 모든 비용은 저희가 책임질 거예요. 만약 촬영에 대한 페이를 원하신다면 그것도 드릴게요.”

“아니요, 아니요. 몸만 가는 것도 황송한데 페이는 무슨, 제가 프로도 아니고. 그런데 그때 봤던 여자 분이 정말 그 소설에서 나오는 그 분이 맞나요?”

“네. 혜민이요. 왜요? 못 믿겠어요?”

“허헛, 아니요. 아닙니다. 생각했던 것 보다 너무 어려 보이셔서요.”

“혜민이가 심하게 어려보이는 것은 저도 알지만, 아쉽게도 30살이 맞아요.”

“허어, 투피스 정장이 너무 깔끔하게 잘 어울리는 것만 빼면 22살이라고 말해도 믿겠던데.”

“왜요. 직접 보고나서 실망했어요?”

“아이고, 그럴 리가요. 오히려 생각한 것 보다 너무 예쁘셔서 놀랐습니다. 미리 듣기는 했지만, 옆에 있던 수연씨도 무슨 인형이 앉아있는 것 같았고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상길은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이었다. 상길의 양 옆에 앉아있는 석현과 정혁도 기분이 좋아보였다.

‘왜 아니겠니.’

윤정은 상길의 반응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며 씁쓸한 미소를 흘렸다.

“그런데 세분은 무슨 관계세요? 수연씨가 모델인 것은 들었고, 혜민씨는 무슨 비서직이라고 소설에서 본 것 같은데…….”

“같이 살아요. 자매 같은 관계라고 생각하시면 되요.”

“아하, 네. 그럼 그때 곁에 계신 남자 분이 그 작가님?”

“네, 맞아요.”

“이거 참, 재밌네요. 작가님조차도 모르게, 윤정씨와 저희만 알고 있는 이벤트라니.”

“굳이 이벤트라고 생각 안하셔도 되요. 우리가 얘기했던 대로 그냥 사진 찍으러 부산에 잠시 다녀오신다고 생각하셔도 좋고요. 마지막 날에는 저희랑 술도 한잔 하시고, 편하게 놀다 오시면 되요.”

“으음.”

윤정의 입장에서는 배려 차원에서 꺼낸 이야기였는데, 순간 상길의 표정이 아주 조금,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곁에서 잠자코 듣기만 하던 석현이 상길의 옆구리를 찌르는 제스처를 했다.

“형님.”

“알아, 알아. 가만히 있어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석현을 자제시킨 상길은 재차 윤정에게 말을 꺼냈다.

“그래도 윤정씨, 저희 입장에서는 부산까지 가는 건데, 저희가 무슨 전설의 카사노바도 아니고, 사전에 얼굴 한 번 보고 부산 가서 3일안에 꼬셔보라는 건 너무 무리한 얘기 아닐까요?”

이런 식의 항의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윤정도 이미 예상했던 바였다.

“사전 모의를 비밀로 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어요. 두 아이 다 그런 문화는 생각해본 적도 없는 친구들이고요. 그래서 경비 일체를 저희가 부담하겠다고 말씀드린 건데, 생각이 바뀌셨어요?”

“허헛,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 솔직히 윤정씨 계획에 동조하기는 했지만, 저희가 원래 원하던 바는 그런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계시잖습니까. 경비야 부족하면 저희가 보탤 수도 있는 거고…….”

대놓고 말은 못하겠던지, 빙 둘러 상길이 얘기했지만 윤정이 그 뜻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실 저들이 원하는 것은 아무것도 얻지 못한 채, 윤정의 계획에 들러리만 서달라는 것은 조금 이기적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가급적 저는 협조적인 행동을 취하도록 할게요. 애들이 눈치 채지 못할 정도 까지만. 그 이상은 저도 어려워요.”

“그래주시면 저희야 감사할 따름이죠. 다만 확실한 게 없다보니, 당근 하나만 던져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하하.”

“당근? 뭘 바라시는데요? 괜찮으니 뾰족하게 말씀해보셔요.”

윤정은 처음부터 무리하게 자신의 요구를 관철시킨 만큼, 너무 지나친 얘기만 아니라면 가급적 들어줄 생각이었다. 이들도 부산까지 따라올 만한 동기는 필요할 테니까.

상길을 비롯한 세 남자는 잠시 서로의 눈치를 보는 듯 했다. 이윽고 석현이 상길의 귀에 뭔가를 소곤거렸고 상길의 고개가 끄덕였다.

“소설에서 보니 혜민씨가 무모라고 하던데…….”

“무모?”

“거기가 빽이라고요.”

상길의 말을 잠시 혼동했던 윤정은 이내 그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런데요?”

“저희 셋 다 선천적인 무모는 본 적이 없거든요. 그래서 한 번 보고 싶은데, 가능하겠어요?”

윤정으로서는 조금 당황스러운 얘기였지만 대답을 서두르지는 않았다.

사실 저들이 바라는 범위를 생각해봤을 때, 그 정도가 적정선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에게도, 그리고 선우에게도.

잠시 생각을 정리한 윤정이 천천히 대답했다.

“말했던 대로, 이틀째 밤에 숙소에서 술자리를 만들 거예요. 그때 분위기 봐서 적당한 타이밍에 사진을 찍자고 하세요. 멘트는 알아서 생각해주시고요. 제가 옆에서 적당히 어시스트 해드릴게요.”

“누드 사진이요?”

상길은 별로 크지 않은 눈을 오버해서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네. 대신 그것도 전에 말씀드린 대로 가져가시는 건 안 돼요. 그냥 보기만 하세요.”

“네, 네. 물론이죠. 아이고. 어려운 얘기를 쿨하게 승낙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행히 상길은 그 정도로 만족하는 것 같았다.

윤정은 그런 상길을 잠시 지켜보다가, 이제 그만 대화를 정리하고 싶어졌다. 늦은 시간이기도 했고, 요즘 자주 귀가가 늦은 탓에 피곤하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럼 이제 마지막으로 확인할게요. 주의할 점은 다들 알고 계시죠?”

“물론입니다. 촬영한 사진은 가져가지 않는다. 물의를 일으키는 무리한 행동은 하지 않는다. 자제력을 잃고 물의를 일으켰을 시,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즉각 돌아간다. 맞지요?”

자못 기분이 나쁠 수 있는 말인데도, 상길은 미소 띤 얼굴로 윤정의 요구조건 이었던 내용을 상기해주었다.

만족스러운 상길의 대답과 함께, 윤정은 예의상으로나마 미소를 보이며 다음 주 금요일에 뵙겠다는 인사를 남기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3장. 동상이몽

밤 10시가 넘은 시간에야 집으로 향하는 윤정은 몰려오는 피로를 느꼈다.

충동적으로 시작한 일이기는 하지만 이제와 돌이킬 수도 없었다. 꼼꼼히 준비를 한다는 것이 꽤나 많은 시간을 잡아먹은 지난 3주간이었다.

선우에게 명단을 받아들고 그것을 일일이 선별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한 윤정이 선택한 일은 직업을 고르는 일이었다. 대부분은 외모와 나이에 대한 정보만 적혀있었고, 헛웃음이 나올법한 경험담이 더러 추가되어 있을 뿐이었다. 소개에 직업이 포함된 것만 추려놓고 보니 그중 10%가 채 되지 않은 것 같았다.

직접적인 연락은 그때부터 시작했다.

그것도 일일이 시간을 들이기에는 너무 많아서, 일단은 소개된 직업이 사실인지를 확인하는 작업만 해야 했다. 그것만 하는 데에도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들어갔다.

시간이 많이 들어간 만큼 범위는 충분히 줄일 수 있었다. 예상 밖으로 간단한 통화만으로도 소개된 직업이 거짓임을 알 수 있었던 사람이 절반에 가까웠고, 나머지 중 또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은 신변 노출 등의 문제로 직접적인 확인을 꺼려하는 눈치였다.

직업에 귀천을 가린 것은 아니었다. 다만 계획대로 하기 위해서는 이쪽의 정보가 대부분 노출되는 만큼, 만약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반격을 위한 정보가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어째서 선우가 아닌 윤정이 연락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하는 일도 상당히 까다로운 일이었다. 당시로서는 소설 상으로도 전혀 등장한 적이 없는 윤정이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자세한 설명은 가장 마지막에 확정된 사람들에게만 하고 싶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일단 통화가 된 이후에는 윤정이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남자들이 꽤 경계심을 거두는 눈치를 보였던 점이랄까.

어쨌든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어렵게 지금의 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이게 지금 잘하는 짓인 걸까…….’

그래, 이건 나쁜 짓이다.

윤정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윤정의 계획은 자신의 계획을 아무도 모르게 하는 것이었다.

사실 이벤트 따위는 관심도 없었고, 구실에 불과했다. 처음 충동적으로 든 생각은, 선우에게 상처를 주고 싶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혜민에게 다른 남자와의 연애를 권할 수는 없었다. 그 말에 응할 혜민도 아니었고, 설사 그렇게 된 다고해도 지금의 생활이 무너질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이었으니까.

단지 가볍게 스치면서 길게 가지 않을 만남으로, 그러면서도 혜민과 자신이 속상했던 만큼 선우에게도 상처를 줄 수 있는 일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로인해 선우에게 조금의 경각심이나마 심어주고 싶었다.

그것을 위한 단발성 만남으로, 선우에게 받은 명단은 나쁘지 않은 소스였다. 모르는 사람들을 이용해먹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최대한 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겠다는 쪽으로 생각을 정리했다.

다만 그럴듯한 설정으로, 이벤트처럼 인위적인 만남이 아니라 우연을 가장한 자연스러운 현실속의 설정이어야 했다. 인위적인 만남은 단순한 자극만이 될 뿐, 윤정이 원하는 바를 이루는 것과는 거리가 있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위험한 장난인가. 아니, 이미 장난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 일을 크게 벌였나. 그래서 일이 성사되지 않아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안전장치를 최대한 확보했잖아. 괜찮을 거야. 그냥 꼼꼼하게 판을 벌여놓고, 나머지는 적당히 놀고 오면 되는 거야.’

윤정이 생각한 안전장치의 첫 번째는 그들의 직장이었다. 그들의 직장에 알릴 위험이 존재하는 한, 심각한 사고는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윤정의 생각이었다.

두 번째는 그들의 가족관계를 조사하는 것이었다. 정혁은 미혼이었지만, 상길과 석현은 유부남이었다. 그중 나이가 많은 상길에게는 고등학생인 딸도 있었다.

정상적인 가정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비상식적인 사람일 가능성이 조금은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 윤정의 생각이었다.

그중 상길은 놀랍게도, 아내의 연락처까지 건네주었다. 만일을 대비하고 싶다는 윤정의 의도를 이해한 것인지, 아니면 배려의 차원인지는 알 수 없었다.

자신들이 매너 있는 사람임을 증명하고 싶다며, 자신들이 혹시 모를 사고를 치게 되면 이 번호로 전화하여 모든 것을 밝혀도 무관하다며 알려준 연락처였다. 자신이 대표로 책임을 지겠다고.

윤정은 그렇게까지 양보하는 상길의 모습에 조금 믿음이 간 것도 사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44살이라는 상길의 나이가 윤정에게는 상당히 부담이었지만, 연장자가 하나쯤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정은 관계, 그러니까 섹스까지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모르는 남자와의 섹스라니, 그건 본인도, 아무것도 모른 채 따라나서게 될 혜민과 수연도 결코 원할 리 없는 얘기였다.

그저 적정선에서 적당히, 하지만 야하게, 선우에게도 자극이 될 만큼 놀다오는 것, 그것이 윤정이 바라는 일이었다.

***

같은 시각 민속 주점에서는 윤정이 일어선 이후에도 세 남자는 여전히 자리에 남아있었다.

“아~. 뭔가 꼬롬한데요 형님? 술이나 몇 잔 더 하다 가시죠?”

윤정이 나가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석현이 기지개를 피는 듯한 자세로 상길에게 말했다.

“와, 처음 봤을 때도 느꼈지만 되게 깐깐하네요. 저 여자.”

윤정이 있을 때에는 한마디도 하지 않던 정혁도 그제야 한마디 거들고 나섰다.

“있어봐. 우리는 아직 할 얘기가 남았잖아? 석현이 말대로 우리는 한 잔 더 하다 가자고.”

애매한 표정으로 씁쓸한 미소를 흘리던 상길이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그의 주문에 술이 추가되었고, 잔이 몇 번 돌아간 후에, 석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형님, 정말로 사진만 찍고 오실 건 아니죠? 저도 초대라면 엔간히 다녀본 놈인데요. 뭐, 갈 때마다 빈말로 미인이십니다를 입에 달고 살긴 하지만, 솔직히 눈 감고 할 때가 태반이라고요. 씹질 욕심에, 또 옆에 남친이나 남편 두고 하는 재미에 그냥 참고하긴 하지만……. 아무튼 형님, 저 정도 와꾸는 다시 보기 힘들 텐데요. 날로 먹어도 비린내 하나 안날 것 같은 느낌인데, 셋 다.”

석현이 언제 과묵했냐는 듯이 속내를 주르륵 늘어놓아도 상길은 묵묵히 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마저 잔을 다 비운 상길이 이번에는 정혁에게 시선을 두며 물었다.

“네 생각은 어떤데?”

“저야 뭐, 형님들 생각에 따라가는 거죠. 그런데 석현 형님 말씀대로 애들이 물이 정말 좋긴 하네요. 특히 그 수연이라는 애는 진짜, 아우. 그 정도면 강남에서도 눈 씻고 찾아봐야 가끔 하나 보일까 말까 할 것 같은데…….”

눈은 웃고 있었지만, 정혁의 대답은 비교적 얌전했다. 그런 정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상길은 다시 세 사람의 잔을 채우더니 건배를 권했고, 세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이 동시에 잔을 비웠다.

세 사람은 윤정을 통해 이번에 처음 알게 된 사이였다. 상길이 44살, 석현이 35살, 정혁은 30살이라는, 서로 연관성이 전혀 없는 나이도 그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비군 훈련장에 모인 남자들이 대게 그러하듯이, 사이트라는 공통점을 공유한 그들은 여과 없는 원초적인 모습을 보이며 급속도로 가까워질 수 있었다. 사이트 안팎으로 꽤 경험이 쌓인 석현이 분위기를 곧잘 이끌었고, 그런 석현보다 훨씬 더 경험이 많은 상길이 그들을 리드했기 때문이었다. 인물 덕에 여자 경험은 충분했지만, 사이트를 알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정혁도 새로운 세상을 경험한다는 기분으로 꽤나 적극적이었다.

“자, 내 얘기를 잘들 들어. 내가 이리 보여도 산전수전 공중전 우주전쟁까지 다 겪은 몸이야. 그동안 배운 게 하나 있는데, 기회가 왔을 때는 반드시 먹어야 한다는 거야.”

“그렇죠! 형님!”

상길에 말에 석현은 비로소 자신이 원하는 대답이 나왔다는 듯이 액션을 취하며 동조하고 나섰다.

다시 채워진 술잔으로 석현과 건배를 한 번 나눈 상길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동안 쭉 봐왔는데, 뭔가 사정이 있는 거 아니겠어? 이런 경우엔 딴 거 없어. 먹고 입 닦으면 돼. 다시 볼 사람도 아니고. 안 그래?”

“캬~. 맞습니다. 형님.”

“아까 저 가슴 큰 년 나가면서, 깔끔하게 계산까지 마무리 하고 나가는 거 봤지? 내가 저런 빈틈없는 년은 보지에 후장까지 씹창을 내놓고 자궁 속에다 내 좆물을 가득 채워놔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야.”

“와, 무시무시합니다. 형님? 그러다 임신하면 어쩌시려고요?”

“마, 임신하면 어쩌려고 가 아니라 반드시 임신을 시켜야지. 마음 같아서는 좆나게 후려서 내 씨로 세 년 다 배불뚝이로 만들어버리고 싶지만, 뭐 내키지 않으면 지들이 무슨 방도를 내거나 하겠지.”

“문제가 생기진 않을까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정혁이, 자못 걱정이 된다는 눈치로 끼어들었다. 상길은 그런 정혁을 보며 혀를 차다가 이내 대답했다.

“인석이, 지금까지 뭐 들었어? 저렇게 숨기는 게 있는 년은 일 크게 못 벌인다니까? 내가 마누라 연락처까지 주는 거 못 봤어? 다 못할 거 아니까, 인심 쓰는 척 신용 있는 사람인 척 하는 거지. 사실 내가 여기 끼기에는 나이가 좀 많지 않냐. 그렇게라도 해서 점수를 따야지. 큭큭.”

“그렇긴 하죠. 낄낄”

상길은 마주 웃는 석현과 함께 잔을 비웠고, 둘이 건배를 하는 모습에 정혁도 따라왔다.

상길은 술이 달다는 듯이 입맛을 다시며 재차 말을 꺼냈다.

“쟤들이 32, 30, 23이랬나? 제일 많은 애도 나랑 띠동갑이네, 띠동갑. 어디보자 23살이면, 워메 나랑 21살 차이다. 내 딸내미가 지금 19살인데, 4살 차이밖에 안 나네. 큭큭. 이번에 내 자지가 제대로 호강하게 생겼구먼.”

“개는 저하고도 띠동갑입니다. 형님, 낄낄.”

“수연이는 제가 먹을 수 있게 해주시면 안 될까요? 진짜 까리한 게 제대로 한번 자빠뜨려보고 싶은데.”

“아, 진짜 이놈이 계속 분위기 못 맞추네? 개만 먹을 거야? 셋 다 번갈아 자빠뜨려야지! 한 번씩은 다 담가봐야 하지 않겠어?”

은근슬쩍 본심을 밝히는 정혁에게 상길이 정색을 하며 혼내듯이 장난을 쳤고, 지켜보던 석현은 박장대소를 하며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이어서 셋은 기분 좋게 웃으며 부딪쳤다.

잔을 비우고 나서도 한참동안을 낄낄거리던 석현은 갑자기 뭔가 떠오른 듯이, 자못 진지하게 물어왔다.

“형님, 근데 윤정이라는 애는 사진 찍는 것 까지만 허용했잖아요? 뭔가 비책이라도 있으십니까? 혹시 골뱅이 만들어 놓고?”

“것도 재미없는 건 아닌데, 이번 일은 그런 식으로 하면 오히려 위험해. 그년이 작정하고 일벌이면 나도 타격이 있을 거고. 너도 마누라한테 걸리면 좆같은 상황이 연출되지 않겠냐?”

“음, 그건 그렇죠. 그래서요?”

“내가 이번 일하고 비슷한 경험이 몇 번 있지. 그 년처럼 뭔가 숨기는 게 있고, 우리가 본 데로 책임감이 강한 스타일은, 일이 잘못되어간다 싶으면 자신이 책임을 지고 대신 희생하려고 나서게 되어 있어. 두고 봐. 그 년만 자빠뜨리면 나머지는 알아서 따라오게 되어 있다. 큭큭.”

“오……. 뭔가, 믿음이 갑니다. 형님?”

“야, 씨발. 인생이 별거 있어? 안 되면 마는 거지?”

“낄낄, 맞습니다. 형님.”

“아무튼 그건 나만 믿고. 야, 그것보다 니네, 자지들은 쓸만 허냐?”

상길은 눈을 가늘게 뜨고, 꽤나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런 상길의 표정에 장단을 맞추듯이 석현도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맞장구를 쳤다.

“제가 이리 보여도 형님, 자지밖에 자랑할 게 없는 놈입니다. 초대받고 방문한 아줌마들 여럿 기절 시켜봤습죠. 낄낄.”

“저도 제 입으로 말하긴 뭐하지만 침대에서 꿀려 본 적은 없는데요?”

“오케이. 좋았어. 내가 실은, 저 윤정이 년 처음 봤을 때부터 금딸하고 있다는 거 아니냐? 그날 제대로 달려주려고, 다음 주 금요일까지 쭉 참아볼 생각이다. 니들도 참고 해라잉?”

“와, 씨발. 그 생각을 못했네? 저도 오늘부터라도 금딸해야겠네요. 그날 좆나게 싸줄라면.”

“저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신청하던 날부터 금딸을 하긴 했는데요. 그런데 형님, 40대도 딸을 치나요?”

마지막으로 정혁이, 정말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어오자 상길과 석현은 정색을 하고 정혁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이내 상길은 고개를 좌우로 저으며 정혁의 앞에 콜라 잔을 가져가 소주를 가득 부었다.

“너 도저히 안 되겠다. 이거 다 마셔! 이 자식은 말이 그렇다는 거지 꼭 토를 달아.”

“예! 죄송합니다. 형님! 원샷하겠습니다!”

정혁이 오버하며 장난스럽게 대꾸하는 모습을 보며 석현도 다시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그들이 웃고 떠드는 사이, 시간은 어느새 12시를 넘겨 목요일이 되어있었다.

부산행이 꼬박 일주일 남은 어느 날의 깊은 밤이었다.

4장. 누군가가 보고 있다

3월 29일 금요일 07:00.

“야! 이 수연! 쓸데없는 짐은 챙기지 말라고 했지!”

“흐잉, 네…….”

“도대체 그딴 오리 튜브는 어디에서 난거야?”

“며칠 전에 신이 나서는 인터넷에서 사던데요? 수영하러 갈 거라고.”

“맙소사. 이 날씨에 대체 어떻게 수영을 하겠다는 거야? 제정신이야?”

“수영복 촬영도 한다 길래 혹시나 해서…….”

아침부터 세 여자의 목소리가 뒤엉키며 집안이 어수선했다.

어쩌다 가끔, 어쩌면 때때로, 선우에게는 익숙한 모습이었기에 신경 쓰지 않았다. 어제까지 미리 준비를 한다고 한 것인데도, 아침이 되자 이 모양이다.

어쨌든 오늘은 금요일이었다. 약속시간은 다가왔고, 이제는 출발해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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