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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린은 하교 후 봄과 함께 자신의 집으로 왔다. 봄의 등장에 예린의 엄마, 나영선은 익숙하게 그녀를 맞이했다.
“안녕, 봄아.”
“안녕하세요.”
영선의 인사에 봄이 예의바르게 고개를 숙였다.
“식사는?”
“먹고왔어.”
“얘는 집에서 먹지않고.”
봄이가 오늘 와서 자고갈거라는 예린의 전화에 힘을 주어 식사를 준비했는데, 영선은 조금 김빠지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식사 준비는 모두 고용인들이 한 것이지만.
“우리는 바로 방에 가서 공부할거야.”
다소 쌀쌀맞은 말이었지만 영선은 예린의 말에 빙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의 죽음 이후로 집에서는 거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던 딸이었지만 최근에는 조금씩 감정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영선에게는 큰 기쁨이었다. 며칠 전에는 후배라면서 봄이를 집에 데리고 오기까지 했다. 언젠가는 남자 친구도 데려오지 않을까… 그런 기대가 되는 영선이었다.
예린은 그런 영선의 웃음을 보며 고개를 떨구고 우물쭈물 거리더니 봄이의 손을 잡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봄이는 그 손길에 별다른 저항없이 익숙한 태도로 끌려가며 영선에게 눈빛과 고개짓으로 인사한다. 영선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방으로 들어간 예린은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짧게 한숨을 쉬었다. 조금은 어두워진 그녀의 표정을 보며 봄이 예린의 뒤에서 어깨를 끌어당기며 몸을 밀착시켰다. 따듯함에 예린은 편안히 눈을 감으며 입을 열었다.
“가족들은… 특히 엄마는 불편해.”
“아빠 일은 선배 탓이 아닌 걸 알잖아요.”
“머리로는 알고있어.”
하지만 마음은? 마음이란건 왜 이렇게 이성적이지 않은걸까? 주인은 자신의 마음이 집에 올때마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걸 알면서 왜 그대로 두는걸까? 예린의 표정이 조금 더 어두워졌다. 예전처럼 격렬함은 없었지만, 많이 나아졌지만, 마음 속의 통증은 여전히 있다.
“고마워.”
봄이의 체온을 느끼며 예린이 말했다. 봄이는 몸을 떨어트리며 싱긋 웃었다. 예린도 가볍게 한숨을 쉬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못난 꼴을 매일같이 보이고 있어 부끄러우면서도 마음을 누군가에게 솔찍하게 보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특권인지를 느꼈다. 성태만큼은 아니라도 봄이는 정보화된 노예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으니까.
두 사람이 교복을 벗어던지고 가벼운 차림으로 갈아입었다. 예린은 자신의 책상 의자에 봄은 예린의 침대에 걸터앉았다. 별다른 말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최근 두사람이 연습하는 것은 서로의 연계였다. 봄이가 손에 쥔 테니스 공을 던졌다. 단순히 주고받기위해 가볍게 던지는 것이 아닌 전속력의 투구였다. 예린의 손에 들린 카드 한장이 날아가 테니스 공에 맞자 느리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느린 공을 예린이 자리에서 일어나 받았다. 예린은 손에 쥔 공을 불만스럽게 바라보았다.
“다섯번이네요.”
봄이 말하자 예린은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단 한번만에 맞춘 것 같이 보이지만 그것은 다섯번 시간을 되감은 결과였다. 한번 실패할 때마다 봄은 예린의 머리에 들어있는 미래에 공이 움직일 궤적을 예린의 시야로 전송했다. 다가올 경로를 알고 있는 예린이 카드를 던져 명중 시킨다. 처음에는 여러모로 시행착오가 많은 시도였다. 봄이 전송한 정보가 너무 선명해 시야를 가리기도 했고, 궤적이 잘 못되어 표시되기도 했다. 그리고 물체의 이동 경로를 알고 있다고는 해도 빠른 경로로 움직이는 무언가를 맞춘다는 것 자체가 쉬운 시도가 아니었다. 계속되는 노력 끝에 이 정도의 횟수로 조정된 것이다. 게다가 욕망을 크게 낭비 하지 않으며 적절한 시간을 감는 것을 조정하는 것도 섬세한 작업이었다.
“다섯번까지는 제법 잘 줄여졌는데 여기서부터는 잘 안되네. 동체시력이라던가 육체적으로 직접 움직이는 훈련도 병행해야하는 게 아닐까?”
“지금 하는 것도 충분히 육체적인 훈련도 되는 거 같은데요.”
“그래, 그렇지… 으, 자꾸 초조해지는 거 같아. 다른 학생들은 빠르게 성장하는 것 같은데.”
“제가 보기에는 예린 선배도 충분히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데요. 저는 다른 사람의 성장 데이터를 실제로 머리속에 가지고 있으니까요.”
예린은 고개를 끄덕이며 초조해하지 말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면서 시야에 어떤 정보가 보이면 더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새롭게 표시되는 정보를 보기 쉽게 수정하는 작업을 거쳤다. 연습은 계속 되었다. 한시간 정도의 연습을 했을 때 예린이 말했다.
“엄마가 30초 뒤에 올거야.”
“응, 선배의 기억을 봤어요.”
타이트하게 연습을 진행하고 있는데 엄마가 간식을 들고 방문을 연 것이다. 예린은 놀라지도 않고 단숨에 시간을 감았다. 곧 엄마가 정확한 시간에 과일을 담은 접시를 들고 방문을 열었다.
“과일 좀 먹고 하렴.”
미리 준비하고 교과서와 참고서를 편 탁자에 앉아있던 두 소녀가 과일 접시를 받고 감사를 표하자 영선이 방을 떠났다.
“마침 좋을 때네요. 이제 휴식 좀 취할까요?”
“좀 더 할 수 있지않을까?”
“저번에 욕망을 몽땅 쏟아부어서 한참 동안 아무것도 못했던거 기억하시죠?”
“윽.”
“휴식도 중요해요.”
봄이 단호한 표정으로 말하며 사과를 베어물었다. 예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입 사과를 먹는다. 봄과 연습을 시작하며 생긴 또 하나의 장점은 그녀가 적절한 브레이크가 되어준다는 것이었다. 학교에서와는 달리 집에서는 욕망이 회복되는 정도가 훨씬 느렸다. 아마도 학교가 점령지이기 때문인 모양이지. 예린은 사과를 우물거리며 아예 학교에서 자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선배는 어른이 되면 분명히 일 중독자가 될 거에요.”
봄이 예린의 생각을 읽고 말했다. 예린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봄이가 점점 주인처럼 남의 속을 막 읽고있어.
“주인님과는 다르게 노예들의 생각밖에 못 읽지만요. 게다가 표면에 들어난 생각만 읽을 수 있고.”
어느새 빈 접시를 보며 예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일 접시를 들고 나가려는데 봄이 그녀의 옷깃을 잡았다.
“조금만 더 쉬어요. 응?”
침대에 눕는 봄을 보며 예린은 얼굴을 붉히며 접시를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봄의 골반을 깔고 앉으며 상체를 숙였다. 혀로 봄의 귀를 살짝 핥는다.
“으응…”
봄이 나직히 신음을 흘리며 예린의 티셔츠 속에 손을 넣었다. 손은 더 안쪽을 탐하며 브레지어 속으로 파고들더니 예린의 가슴을 만지작 거린다. 예린이 기분 좋은 듯 몸을 꿈틀거리며 봄의 목에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그거 알아요?”
예린은 딱히 대답없이 봄의 상의를 잡아당겼고, 봄은 두 팔을 올려 그녀가 벗기기 쉽도록 도왔다. 순조롭게 상의가 벗겨지고 하얀 피부와 브레지어가 드러났다. 예린의 입술이 봄의 목을 지나 쇄골에 몇번 맞춰졌다.
“주인님도 우리 이런 기억들을 보며 꽤 재밌어하시던거.”
예린은 얼굴을 붉히며 상체를 다시 일으켰다. 티셔츠를 벗으며 말했다.
“그래서, 주인님을 기쁘게 하려고 이러는 거라고?”
“후훗, 그건 아니죠. 순전히 내가 기분 좋기 위해서.”
예린이 다시 상체를 숙이며 봄과 키스했다. 혀와 혀가 얽히고 가슴이 서로 부벼졌다. 그러는 동안 두사람의 손이 서로 자신의 바지를 벗기기 시작했다. 옷을 벗으며 몸과 몸이 비틀렸고 자극적인 마찰이 두사람을 감샀다. 조금 땀이 흐르는 것 같기도 했다. 예린은 봄에게서 좋은 냄새가 난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에요. 예린 선배 냄새 좋아요.”
봄이 예린의 머리칼을 조금 자신의 코에 가져가 맡으며 말했다. 예린은 별다른 말 없이 하반신을 봄의 몸과 맞추었다. 천천히 허리를 돌리자 음부와 음부가 비벼지며 까슬한 느낌이 감각을 자극했다. 애액이 섞이는 미묘한 느낌에 천천히 몸을 맡겼다. 주인과 할 때 처럼 격렬함은 없었지만 부드럽게 차오르는 쾌감도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예린은 손을 봄이의 보지에 가져가 몇번 더듬다가 중지를 균열 속에 밀어넣었다. 매끄럽게 빨려들어간 손가락은 다정하게 운동을 시작한다. 봄이는 자신의 입에서 점점 거친 숨소리가 나오자 예린의 어깨에 입을 가져다댔다. 방 너머에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곧 절정을 맞이한 봄이 몸을 살짝 떨었다. 예린은 자신을 강하게 끌어안으며 어깨에 얼굴을 바짝 비벼대는 봄을 즐겼다.
“엄청 야해.”
예린은 얼굴을 봄이의 얼굴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 봄이는 약간 심통이난 표정으로 대꾸했다.
“선배도 곧 야한 표정을 짓게 될걸요.”
봄이의 선언과 함께 이번에는 예린의 보지 속으로 봄의 손가락이 들어왔다. 움찔 움찔 허리를 떨며 그녀의 손가락을 받았다. 예린의 허리가 저도 모르게 들어올려졌다. 봄은 한손으로 쉼 없이 예린의 질을 공략하며 한손으로는 점점 올라가는 허리를 부드럽게 눌렀다. 곧 예린의 허리가 봄이의 몸에 밀착되었고, 봄은 하반신에서 느껴지는 예린의 떨림을 즐겼다. 종착역에 도달한 예린이 무언가 소리를 내뱉으려 할 때 봄의 입술이 예린의 입을 막았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뜨거운 숨결이 한동안 이어지다 천천히 가라앉았다.
“엄청 야해요.”
입술을 때며 봄이 말하자 예린은 얼굴을 붉혔다.
“점점 짓궂어지는 거 같아.”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요.”
말을 마친 두사람은 다시 한번 키스를 나누었다.
“예린아, 할아버지 오셨어!”
영선의 목소리에 예린은 바로 시간을 되감았다. 30초를 몽땅 감은 덕에 예린은 피곤을 느꼈다. 봄이 그녀에게 말했다.
“선배도 곧 야한 표정을 짓게 될걸요.”
“안돼, 할아버지가 올거야.”
두 소녀는 얼른 옷을 다시 입고 탁자로 내려와 서로 마주보며 앉았다. 봄은 뾰루퉁한 표정으로 예린을 흘겨보았다.
“선배는 나보고 맘대로 생각을 읽느니 어쩌느니 하지만, 훨씬 치사한 거 알아요?”
“어쩔 수 없잖아.”
“오늘 엄청 괴롭혀줘야지.”
예린은 봄이가 나중에 반드시 그렇게 할 거라는 생각을 하며 몸을 가볍게 떨었다. 곧 영선의 목소리가 들렸다.
“예린아, 할아버지 오셨어!”
예린의 얼굴이 조금 굳었고, 봄이는 예린의 표면에 떠오른 생각을 읽었다.
“할아버지 싫어해요?”
“응.”
숨길 필요도 없고, 감정을 숨길 자신도 없었기에 예린은 솔직히 시인했다. 봄이 조용히 예린의 손을 잡아주었다. 예린은 가볍게 미소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갔다. 봄도 그 뒤를 따랐다.
“손님이 있었군.”
“후배에요.”
할아버지인 이현욱의 말에 예린이 조금 굳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봄은 고개 숙여 인사하자 현욱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코트를 벗어 다가온 가정부에게 건내자 그녀가 옷을 받아 사라졌다.
“시장하군.”
그말을 끝으로 현욱은 식당으로 향했다. 식탁에는 곧 식사가 차려졌다. 봄이를 대접할 요량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기에 식탁은 풍성하게 차려졌다. 저녁은 모두들 먹었지만 의사 따위는 묻지 않고 가족과 봄이 전원의 상이 함께 차려졌다.
예린과 봄은 조금 긴장했다. 왕래가 잦지 않았기 때문에 게임을 시작한 후 현욱을 보는 것은 예린에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일반인이 보기에 말도 안되는 초능력을 지니게 된 두사람은 현욱이 풍기는 압박감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지고 있었다. 숨이 막힐 정도의 느낌이었다.
현욱이 말없이 먼저 숟가락을 들자 식사가 시작되었다. 영선도 봄과 예린도 그리 편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현욱이 수저를 놓자 식사가 끝났다. 어찌 지나갔는지도 모르는 시간이었다. 찰나 같기도 했고 영원 같기도 한…
“성태.”
현욱이 짧막하게 말했다. 예린과 봄은 그 짧은 단어에 몸을 떨었다. 주인이 왜?
“나 좀 보자고 해라. 그렇게 말하기만 하면 된다.”
예린의 머리 속으로 수만가지 생각이 휘몰아쳤다. 주인은 왜 찾는거지? 뭘 알고있나? 할아버지도 게임 참가자야? 느껴지는 압박감은 그런 생각에 설득력을 높였다.
“대답이 없군.”
“...네.”
예린은 별다른 생각을 떠올려도 소용없다고 느끼며 위축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영선은 뭐가 뭔지 몰라 시아버지와 예린의 눈치를 살폈지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난데없이 들이닥친 현욱은 별다른 말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걸치고 집을 떠났다. 배웅을 위해 일어났던 일행이 엉거주춤 서있는 상태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모두가 자리에 도로 앉았다.
“성태라니… 마왕 그룹 성태 말하는 거 맞니?”
영선의 말에 예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거… 같은데.”
“무슨 일 있어? 아는 거 있니?”
예린은 더 복잡해지는 마음을 느끼며 중얼거리 듯 대답했다.
“나도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
예린은 다음날 일찍 학교에 등교했다. 뭘 하고 돌아다니는 지 성태는 점심 시간이 되어서야 학교에 도착했다. 집중이 되지않아 별다른 연습도 못하고있던 예린은 짜증을 느꼈다.
“왜 이렇게 늦게 오는거야.”
“방학인데 늦을 수도 있지. 방학이 아니라도 내 맘대로지만.”
성태는 별다른 동요없이 대답하며 의자에 앉았다. 성태는 예린의 마음이 일렁이는 것을 보며 다른 노예에게 마실 것을 가지고 오라고 시켰다.
“소식은 봄이에게 어제 들었어.”
“응…”
“뭘 그리 걱정해. 어차피 난 최강이야.”
아무런 거부감 없이 스스로 그런 소리를 내뱉는 성태를 보니 예린은 긴장이 탁 풀렸다. 성태를 향한 신뢰는 절대적이었다. 그렇지만 어제 느꼈던 현욱이 준 압박감은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예린이 하건 말건 성태가 말했다.
“차라리 잘 됐어.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 중 이었는데.”
“어, 왜?”
예린이 놀라며 물었다.
“네가 감시 당하고 있었거든. 감시하는 사람들은 일반인이어서 처음에는 별로 신경 안썼어. 마음을 읽어보니 네 할아버지 쪽 사람들이라 별 생각 없었지. 그런데…”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감시당하기 시작했고, 유나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를 감시하는 쪽도 있었어. 아마도 다른 참가자들도 감시하는게 아닐까 싶은데. 현석은 감시 당하지 않았었지만.”
그렇게 말하고 성태는 입을 다물었다. 예린은 머리가 몇 배는 더 복잡해졌다. 역시 게임 참가자인걸까?
“왜 안 말해줬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거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지만. 네가 그렇게 느끼든 느끼지 않든.”
“...”
“아까도 말했잖아. 겁먹을 거 없어. 어차피 나는 모두에게 승리하고 왕이 될거야.”
자신감 넘치는 성태의 말에 예린이 그의 얼굴을 보았다. 조금 멋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다가 황급히 지웠다. 성태가 씨익 웃으며 예린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예린이 얼굴을 붉히며 몸을 조금 뒤로 뺐다. 성태는 킥킥 거리며 예린이 물러난 만큼 다가갔다.
“조금 멋있는 정도야? 많이가 아니고?”
“어, 어, 얼굴 좀 치워.”
예린이 시선을 돌렸다. 성태는 그녀의 옆 얼굴을 마음껏 감상했다.
“예전부터 느꼈던 건데 한국말을 잘 못하는군. 자, 따라해봐. 얼굴 좀 치워.”
“기껏 걱정해줬더니 놀리기나 하고.”
심통이난 표정으로 예린이 말했다. 고개를 조금 숙이고 흥하고 콧김을 살짝 내뱉는 모습이 귀엽다는 생각을 성태가 했다. 예린의 볼에 살짝 입을 맞추자 그녀가 눈에 띄게 당황하기 시작했다. 성태는 낄낄거렸다.
예린은 스커트 안쪽으로 느껴지는 성태의 손을 느끼며 몸이 뜨거워졌다. 조금씩 뒤로 물러나고 있었지만 등 뒤쪽으로 딱딱한 철의 감촉이 느껴졌다. 교실 제일 뒤편에 있는 사물함에 닿인 듯 했다. 더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교실에는 몇몇의 학생들이 자신의 특기나 스킬을 연마하고 있었다.
“잠깐만 애들 있잖아.”
“뭘, 새삼.”
성태의 손길에 예린의 블라우스 단추 세개가 풀려났다. 드러난 쇄골에 성태가 키스했다. 부드러운 입술의 감촉에 예린은 몸이 달아올랐지만 교실에 누군가 있다는 생각에 수치심을 느꼈다.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고개를 들었다. 성태의 손이 예린의 팬티를 능숙하게 내렸다.
“그, 그만…”
한쪽 다리가 올라가며 성태의 허리를 감쌌다. 자신의 목 아래쪽에 열심히 키스를 하는 성태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는다. 그만, 이라고 말했지만 몸은 멋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조종당하기 때문이 아니라 순수한 자신의 움직임이라는 사실에 예린은 당황했다.
“아앗… 흑…”
성태의 입이 쇄골에서 조금 내려와 예린의 가슴 둔턱에 입을 맞췄다. 예린의 브레지어는 살짝 내려가 젖꼭지만 아슬아슬 하게 가리며 걸려있었다.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브라우스의 단추가 더 벗겨지고 브레지어의 어깨끈이 양 팔굼치에 걸리며 내려갔고 귀여운 핑크빛 유두가 드러났다. 성태의 입속으로 들어간 유두는 자극적인 혀의 움직임에 까딱거리는 꼴이 되었다.
“너무… 아핫… 부끄럽단… 말이야… 사람들… 으흑… 내보…”
예린은 쉽게 말을 이어갈 수가 없었다. 입을 열 때마다 쾌감이 혀를 방해했다. 성태는 마음껏 예린의 가슴을 음미하고는 다시 그녀와 눈높이를 맞추었다. 코와 코가 살짝 닿았다. 예린은 가까이 보이는 성태의 눈동자에 눈을 감았다.
“왜 사람 눈을 피해?”
“그… 너무 가까워.”
“조금 멋진 주인님의 눈동자가 부담스럽나?”
“그만 놀리라고…”
예린은 눈을 감은 채 투덜거렸다. 성태의 키득거림이 들려왔다. 익숙한 울컥함, 익숙한 쾌락, 익숙한 수치심. 예전같이 심장이 터질 만큼 뛰지는 않았다. 하지만 익숙함이주는 묘한 안정감과 언제까지고 여기에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이 예린의 마음을 새로운 곳으로 이끌었다. 마치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가 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 보여줘. 보고싶어.”
성태의 말에 예린이 눈을 떴다. 떨리는 눈동자는 쉽게 성태를 똑바로 바라보지를 못했다. 성태는 그런 예린의 반응을 즐기며 자지를 밀어넣었다. 달뜬 숨소리가 한번 예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피스톤이 서서히 가동되었다. 성태의 허리가 천천히 움직이며 양손이 예린의 허리를 잡았다. 성태의 어깨를 잡은 예린의 손에서 부드러운 리듬의 움직임이 전해졌다.
“기분 좋아?”
“무, 묻지마.”
예린이 고개를 돌리며 성태의 당겼다. 얼굴과 얼굴이 엇갈리며 닿였다. 성태는 뺨에 느껴지는 예린의 머리칼 감촉을 즐겼다. 허리의 움직임이 조금 더 빨라졌다. 예린의 양 다리는 그의 허리를 꽉 조였고 성태의 양 손바닥이 그녀의 엉덩이를 받쳤다. 땅을 딛지 않은 예린의 몸이 오로지 성태를 의지하며 들썩거렸다.
“흐윽… 윽… 읏… 웃…”
“왜 남자가 여자를 먹는다는 표현을 많이 쓰는 걸까? 분명히 내가 잡아먹히고 있는건데.”
예린은 그런 표현이 있는 줄도 몰랐지만, 성태의 말을 약간 이해할 수 는 있었다. 자신의 보지가 쉴 새 없이 성태의 자지를 물어뜯는 것을 말하는 것이리라.
“네 보지는 정말 개걸스러워. 뼈도 못추리겠군.”
“그런 소리 좀 그만해.”
“네 반응이 재밌어서.”
키득거리는 소리에 예린이 가볍게 성태의 어깨를 물었다. 입으로도 잡아먹을 수 있어. 앙. 말로 하지 않아도 되니 편했다. 마음으로 새긴 소리도 주인은 얼마든지 느낄 수 있으니까. 나름 장난기가 발동해 했던 행동인데 성태는 온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푸하하하하! 앙은 뭐야, 앙은?”
“시, 시, 시, 시끄러… 웃… 하앗… 시끄… 아앙… 시끄러워!”
부끄러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역시 안하던 짓을 하는게 아니었다. 후회 속에서 예린이 얼굴을 붉혔다. 소리 지른 덕분에 성태와 자신의 행위에 관심없던 사람들도 몇몇은 자신을 돌아보았다. 부끄러움은 쉴 새 없이 증폭되었다.
성태의 움직임이 더 빨라졌다. 들썩거리는 몸에서 강한 쾌락이 덮쳐와 후회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른 것을 떠올릴 공간이 없었다. 예린은 성태의 머리를 강하게 끌어안으며 몸을 떨었다. 질 속에 따듯한 감각이 느껴졌다. 성태의 정액이었다.
성태는 가볍게 떨고있는 예린을 사물함 위에 앉히며 등을 가볍게 쓸어주었다. 고개를 조금 떨어트리자 예린이 팔에 힘을 불고 성태를 놓아준다. 가벼운 키스가 이어졌다. 혀와 혀가 얽혔지만 서로를 탐하는 욕정보다는 저물어가는 쾌감을 위한 건배에 가까운 느낌이었다. 애틋한 혀의 인사가 끝나고 둘의 얼굴이 떨어졌다.
“앙.”
한창 달콤함을 즐기는 예린의 귀에 성태의 소리가 들렸다. 얼굴이 붉어지며 자신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저 놀림은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 것인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게 느껴졌다. 성태의 놀림은 멈추지 않았다.
“한국말은 잘 못해도 자폭 실력은 세계 제일일거야.”
예린은 생각했다. 이번 생은 망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