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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26 여동생과 나의 비밀 (26/34)

00026  여동생과 나의 비밀  =========================================================================

                                          

나도 여동생도 기진맥진해서 그 상태로 누워있기만 했었다.

참고로 나중에 보니 2시간 넘도록 섹스를 했던 것 같았다.

여동생도 나중에 가선 별로 젖지도 않았던 것 같은데. 정액이 미끌미끌 해서 어떻게든 됬던 것 같고.

이 날에 5번 연속으로 쌋던건, 나중에 가서도 절대로 깨지 못한 개인 최고기록이 되어 버렸다.

지금도 정말 신기하고 웃긴 일이다.

"자지마."

"안자."

여동생이 내 품에 안긴채로 눈을 감고있자 난 여동생을 흔들어 깨웠다.

"피임약 먹어야지."

"응."

내 말에 여동생도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알몸으로 집안을 걸어다니다가 물하고 피임약을 들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오빠 이거봐."

"뭐?"

"오빠 정액 나온다."

여동생의 말에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여동생의 보지를 보자. 보지에서 정액이 조금씩 새어나오고 있는것이 보였다.

"피임약 안 먹으면 임신할지도 모르겠다."

"이거 진짜 내 정액 새어나오는거야?"

"응."

그 후 여동생은 피임약을 먹었고, 그날은 정말 안 되겠다 싶어서 더 이상 섹스는 하지 않았다.

그 다음날도, 여동생은 내 좆을 주물주물 하면서 안마하듯 해 주긴 했지만. 섹스는 하지 않았다.

신기할 정도로 많이 했더니, 지쳤기 때문이였다.

다음날 저녘 때 쯤에는 어느정도 회복되있어서 인체의 신비를 느끼기도 했지만, 난 일부러 여동생에게 아직 안된다고 하고 숨겼다.

그 날도 여동생하고 나는 한 침대에서 자서, 껴안고 있을 때 좆이 서 있는 걸 들켜버렸지만. 아직 아프다고 하니까 여동생은 빨리 나아라~ 빨리 나아라~ 하면서 주물주물 거리기만 하였다.

솔직히 좀 웃기기도 했고, 내 좆을 만지는 여동생을 보면서 정말 내가 어떻게 5번이나 별로 쉬지도 않고 연속으로 했을까 싶기도 했다.

지금에 와서도 미스테리고, 나중에 내가 절륜이라고 착각하는 큰 원인이 되었다.

솔직히 또 다시 5번 연속으로 할 수 있다고 해도, 하고싶지는 않다.

좆이 굉장히 아프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여동생이 자꾸

"아앙..앙, 오빠..응..! 내 보지 갈 것 같아..."

"오빠..하아..흥.. 자지 더 박아줘..."

"으응...응..내 보지 좆물로 꽉꽉 채워줘..."

"학,하악..흐응,하아..! 보지에서..! 좆물 새어나올때까지 싸줘..!"

"흥..!으응..! 오빠 좆물 보지로 먹고싶어..!"

같이. 흥분 될만한 야한 말을 잔뜩 해왔던 것도 있고, 여동생이 보지를 꾹꾹 조여오면서 허리를 계속 흔들어댔던것도 있고.

생보지가 너무 기분 좋았던 것도 있어서 계속해서 달려들었지만 솔직히 굉장히 힘들었다.

그건 여동생도 마찬가지였는지. 아니면 상당히 만족한 것인지..아니, 분명 여동생도 지쳤을 거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여동생은 그 다음날, 섹스를 하자고 자꾸 조르거나 하지 않고 내가 힘들다고 하면 어깨를 주물러주거나, 좆을 만지면서 '빨리 나아라~' 라고 하거나 혀로 핥으면서 아플땐 핥으며 낫는다고 하거나 하였다.

빨리 나으라면서 주물거리는거나, 혀로 핥으면서 아플땐 핥아줘야된다고 했을때는 솔직히 여동생이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여동생과 나는 그 후로 가끔씩 생으로 하였다.

생으로 하는 것에 맛이 들려서 그런지 피임약에 대한 것도 더 많이 알아보고 그래도 혹시 모를 부작용을 생각해 어느정도 시간을 두고 여동생이 자연피임 기간일 때 생으로 섹스했다.

임신을 걱정해 너무 많은 양을 쌋다 싶을 때는 사후피임약도 먹었고. 부작용을 걱정해 같이 복용해도 부작용이 없는 약은 무엇인지 무척이나 많이 찾아다니기도 했다.

그것에 대해서는 해외의 외국인 친구 몇명에게,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고 싶은데 그에 대해서 궁금하다는 식으로 내가 직접 여자애들에게 물어봤고.

여자애들은 처음에는 그런걸 왜 묻냐고 하다가, 내가 몇 번 조용히 부탁하자 여자친구가 부럽다면서 자기들도 조사해 자세히 가르쳐 주었다.

덕분에 한 달이 조금 지났을 때 부터는, 정말로 안심하고 질내사정을 해댈 수 있었다.

여동생도 나중엔 질내사정해달라고 조를 정도였고, 나도 생으로 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때부터 여동생과 나의 섹스 횟수는 줄어들기 시작했다.

많이 하는것보다는, 정말로 만족할 만한 섹스.

생으로 할 수 있는 날이 되기 전에는 한 주 정도는 기본으로 버티기도 했다.

질내사정도 그렇지만 나는 생으로 넣을 때의 기분이 콘돔을 꼇을때와는 정말 비교가 안 되어서 나중에는 아예 콘돔으로 할 때마다 불만이 생길 정도였다.

여동생과 했던 섹스중, 기억에 남는 것 들은 이정도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한 섹스중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 들이라고도 하는게 맞을 것 같다.

나와 여동생은 언제나 철저하게 비밀로 숨기며, 섹스 후의 방 안에 남는 열기와 냄새도 신경을 썻고, 피임약이나 콘돔 등의 처리는 철저하게 하였다.

나와 여동생은 밖에 나가서 친구들과 놀기 보다는 집 안에서 둘이 섹스를 하는것을 더 즐거워 했고, 밖에 나가지 않아도 섹스로 충분히 에너지를 소비하기 때문인지 살이 찌는 경우는 없었다.

과할 정도로 했다고 해야겠지.

당시의 나는 별 신경쓰지 않았지만. 만약 여동생이 피임약으로 인해 부작용 같은 것이라도 생겼다면 어떻게 됬을까?

이 또한, 불행인지 행운인지….

정말 잘 짜여진 퍼즐처럼 나와 여동생은 점점 정상적이지 않은 관계로 빠져들어갔다.

섹스는 저 이상의 행위로 가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들키지 않기 위해서일까, 스릴을 즐기기보다는 스릴을 느끼는 상황이 오는 것에 대한 공포 때문이였을까.

나와 여동생은 최대한 안전한 범위 내에서 관계를 계속하려고 했고, 그 한계가 바로 질내사정이였다고 생각한다.

콘돔과 피임약은 소비품이여서 사용 후 버리면 되지만. 자위기구같은것은 그렇지 않기에 그 또한 살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서, 나는 대학 시험을 치기 위해서 내가 유학하고 있던 해외의 수도로 갔다.

당시에 부모님을 졸라서, 가는김에 여행도 할 겸 여동생도 같이 데려간다고 했더니 혼쾌히 수락해주셔서, 원래는 나와 선생님 둘만 가게 됬을 것이 여동생을 넣어서 세 사람이 가게 되었다.

그리고 호텔에서 2인실과 1인실을 하나씩 잡아서, 원래는 남자인 선생님과 내가 2인실을, 여자인 여동생이 1인실을 쓰자고 했는데.

여동생이 혼자 있는건 심심하다면서 그냥 나랑 같이 자겠다고 하는 바람에 2인실을 나와 여동생, 1인실을 선생님이 쓰게 되었다.

사실 그것은 나와 여동생이 둘이서 짜고 선생님에게 말한 것이였다.

선생님은 친남매니까, 아무 일 없겠지 하는 생각에서였는지 알았다면서 1인실로 가셨지만….

"응…오빠…으응, 흥…!"

"허억…헉…진짜로 안에 싸도 괜찮아?"

"하악! 흥…! 괜찮다니까…! 응…!"

나와 여동생은 2인실에서 잔뜩 섹스하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 경치를 보면서, 방 안의 불을 꺼놓고 여동생과 야경을 바라보며 섹스하기도 했고, 샤워하면서 하기도 하고,

침대와 침대 사이에 눕혀놓고 박기도 하고, 옷장 안에 여동생의 상체만 넣어놓고, 하반신만 드러내게 한 채로 박기도 하고….

호텔에서 해 볼 만한 섹스는 거의 다 해 봤다.

TV는 언제나 일부러 켜 두었다. 신음소리가 새어나갈까봐.

호텔에서 묵게 된 나와 여동생, 그리고 선생님은 시험을 치기 한 주 전에 가서, 서류 문제를 처리하고난 뒤 입학시험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러는 동안 비어버린 3일동안 오전에는 선생님과 관광을 하고, 밤에는 여동생과 섹스를 하는 매일매일을 보냈다.

덕분에 아침마다 정신을 못 차리는 우리를 보고 밤에 게임 너무 하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셨을 때는 정말로 게임을 한 것 처럼 여동생과 죽을 맞추며 거짓말을 했는데. 우린 게임기는 가져오긴 했지만 건드리지도 않았었다.

섹스만 잔뜩 할 뿐.

선생님은 나와 여동생이 자는 방과 선생님이 자는 방의 층 수가 상당히 차이가 났다.

그래서 그런지 밤에 무슨 일이 있으면 직접 찾아오진 않고 문자나 전화로 용무를 얘기하셨고

덕분에 여동생과 나는 선생님이 완전히 잠들었다고 확신할만한 시간이 아니여도, 방 안에 들어오고나면 조금 쉬다가 섹스를 하거나 했다.

간단히 말해서 무슨 말이냐 하면, 나는 대학 시험을 치러 가서도 긴장을 하기는 커녕 여동생이랑 섹스나 해댔다는 말이다.

내가 긴장이 너무 없었던 것도 문제라면 문제였지만. 여동생이 내가 호텔에서 잔다고 말을 하는 순간 호텔에서 섹스 해보고 싶다며 따라온 것도 조금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여동생은 같이 가는 것으로 결정이 나자마자, 피임약을 먹으며 생리 주기 같은걸 조절하기 시작했던 것 같은데.

나중에는 혼자서 조금 맞지 않는 것 같다는 말을 하더니, 그래도 사후피임약 가져왔으니까 생으로 하자면서 나에게 생으로 삽입해서 질내사정 하는것을 요구했다.

"끝나자마자 샤워하면서 다 씻어내면 되지 뭐."

라는 말도 하면서.

"한번 더 할래?"

"또?"

"시험 볼 때 시원하게 칠 수 있도록 오빠 정액 내가 다 짜내줄게."

정말로 나는 고환이 텅텅 빈 상태로 시험을 쳤다.

대학 시험은 솔직히 말해서 나에겐 조금 애매한 난이도였다.

치고 나서도 자신감이 있는것도 아니고, 없는것도 아니였다.

하지만 설마 떨어지진 않겠지 하는 생각에, 나는 시험이 끝났다는 긍정적인 생각만 했고.

시험이 끝난 후, 선생님은 다음 대학 시험 칠 때 오겠다면서,그동안 관광이나 다니라며 체크아웃 하고 나가 버리셨다.

아마도 무슨 일이 있으셨던 것 같은데. 다른 대학 시험은 2주 후에나 치게 되어 있었던 나는 선생님 덕분에 정말로 안심하며 매일같이 여동생과 섹스만 해댔다.

그러다가 잔뜩 싸서 힘들다 싶으면, 같이 밖에 나가서 주변을 둘러보고 놀다 왔고.

다시 호텔에 돌아오면 발 아프다 발 아프다 소리를 하면서. 같이 침대에 눕자마자 어기적거리며 옷을 벗고 둘다 침대에 누운 채로 옆으로 박거나, 여동생이 위에서 박은 채로 엎드리듯 해서 허리만 양 옆으로 비비적 대거나 했다.

선생님이 아침에 깨우러 오는 일도 없어졌으니, 아침에 아침 발기를 한 좆을 빨아주는 것도 기본이였고. 화장실에서 서로 알몸으로 양치를 하다가 심심하면 서로의 성기를 만지작 대면서 웃어대기도 했다.

집이 아닌 곳에서 몇일동안 머물며 잔뜩 섹스 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였었다.

그리고 나는 두 번째 시험을 보고 난 뒤, 한국에 쉬러 갈 수도 있었지만 해외에 남았다.

여동생하고 섹스를 할 생각이였다.

"응...응...핫, 흐응..!응..!"

철썩 철썩 철썩 철썩

"허억..허억..아..생으로 하고싶다.."

"하아..하..응..몇일만 기다려..응..!"

철썩 철썩, 찌걱 찌걱

"안전일 몇일 남았어?"

"흥..아응..! 5일..? 응..!"

내가 대학 시험을 칠 때, 부모님은 내 대학 입학비와 시험비 등을 번다고 한국에 가 계셨기에 여동생과 나는 또 섹스만 하며 지냈다.

난 시험도 다 쳤기에, 집안에 틀어박혀서 살듯이 하다가 여동생이 학원에 갔다오면 아직 옷을 입은 채인 여동생에게 현관에서 신발도 벗지 않은 채로 좆을 입으로 빨게 하기도 했었다.

"인사 안해?"

"다녀왔습니다. 쪽, 쪽...쯔읍..쭙..움,음..쭙..."

참고로 아침에 나갈때는 다녀오겠습니다 하면서 여동생이 키스를 했었다.

나는 여동생의 학원이 끝나면 이 특이한 인사를 시키기 위해, 학원이 끝날 시간이 다가오면 미리 좆을 세워뒀다가 대기를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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