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31 여동생과 나의 비밀 =========================================================================
그 날 이후로 나는 여동생을 어찌 대해야 할 지를 모르게 됬다.
대체 어떻게 대했어야 하는걸까?
지금 생각해도 알 수가 없다.
여동생에게 무슨 말을 해 줘야 할지 난 도저히 알 수가 없었다.
사과를 하면 사과를 하는대로, 뻔뻔하고 무책임하게 여동생에게 잘못을 돌리려 하면 돌리는대로, 하고자 하는 말 전부가 입에서 흘러나오는 역겨운 오물이였다. 말을 내뱉기도 전에 그 역겨운 냄새에 구역질이 치밀어 오를 정도로 냄새가 고약했다.
사람의 몸을 기어오르는 바퀴벌레가 날 기분나쁘게 생각하지 말아달라고 설파하는 것과 같다.
하지만 그런 오물이라도 질질 흘려댔다면 그나마 사이가 나아지지 않을까?
처음부터 이런 오물을 맛있다고 들이켜댄 네가 멍청한 년이다 라고 깨닫게 해줬다면, 난 원래 이런 역겨운 인간이라는걸 확실히 깨닫게 해줬다면
그렇다면, 이전과 같지는 않더라도 남매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도 열리지 않을까.
아니, 그럴리가 없다. 말도 안되는 소리다. 그딴 짓을 해 놓고 이런 생각을 하는게 개 같은 소리다.
쓰레기 새끼. 더러운 놈.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죽어라. 제발 죽어라. 제발!
계속되는 생각을 멈추지 못 할 때면, 자책감이 지독하게 몰려와 참을 수가 없었다.
이미 여동생과 나는 남매가 아니다.
대체 우린 뭘까?
이걸 무슨 사이라고 해야하는 걸까?
난 대체 뭘 해야하는걸까?
뭘 한걸까?
지금까지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걸까?
그런 생각의 연속은 얼마 이어지지 않았다. 간단한 일이다. 뭐라 할 수 없는 쓰레기인 나에게 있어서는 당연한 일이였다.
나는 그런 모든 생각들을 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었으니까.
내가 여동생이라고 해도 나 같은 인간은 칼로 수십번을 찔러 죽이고 싶을게 분명하다.
그럴리가 없다.
아무리 그래도 여동생이니까, 오빠니까 그렇게까진 하지 않겠지.
아무 문제 없겠지.
당장이라도 입으로 흘러나올 것 처럼 머릿속에 오물이 가득 들어찼다. 온 몸에서 쓰레기 냄새가 지독하게 풍겼다.
"오빠, 안 힘들어?"
그 일이 있은 뒤 여동생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때때로 내 방에 찾아와 안부를 물었다.
바로 전에 있었던 일은 다 잊은 것 처럼, 없는 일 처럼 취급하며 여동생은 단 한마디도 그 때의 일에 대해서 말하지 않았다.
"안 힘들어."
"오빠 팔 다쳤잖아. 좀 쉬면서 해."
여동생이 나의 팔에 대한 걸 말 하면서, 조금이라도 쉬라고 해도 나는 쉬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왼손으로 쓸 수 있다면서 삐뚤삐뚤한 글씨로 커다란 스케치북에 써 가면서 왼손으로 공부를 했다.
바로 등 뒤에서 걱정스러운 듯 바라보는 여동생의 시선이 신경쓰였다.
방 안에 틀어박혀 공부를 하면서. 혹시나 여동생이 들어오진 않을까 문을 잠그고 살게 됬다.
왜 문을 잠궜냐고 하면, 누가 들어오면 집중이 안되서 잠궈놨다고 말했다.
내 방은 나 혼자만의 공간이 됐다. 식사도 집에 컵라면이 있으면 무조건 방 안에 들고와 먹고, 없으면 여동생이 해 놓은 밥을 빠르게 퍼 와서 방 안으로 들고 와 먹거나,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 주먹밥을 잔뜩 사왔다가 그걸 하나씩 먹거나 했다.
공부를 하다가 질린다 싶으면 소리를 죽이고 게임기를 켰다. 일부러 여동생을 피해다녔다. 집 안에서도, 머릿속에서도 여동생과 마주치지 않고, 생각도 하지 않으려 했다.
"..오빠, 밥 먹어."
저녁이 되면 잠긴 문을 두드리고 같이 밥을 먹자고 하는 여동생이 어려웠다.
어떻게 그 날 이후로 아무 일도 없었다는 것 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대할 수 있는걸까?
무섭다는 감정도 들었다.
마치 피해자는 자신이 아니라 나라는 것 처럼, 나를 깨진 유리 다루듯 조심조심 말하는 모습을 보면, 피해자는 나라는 생각에 이상한 우월감도 들었다.
나는 여동생의 말도 안되는 망상에 휩쓸린 피해자다.
내가 지금 느끼는건, 여동생에 대한 죄책감이 아니라, 잘못 된 길을 가는 여동생을 진작 불러세워주지 못한 것에 대한 자책감이다.
그런 행복한 생각이 계속되고 나면 잠시 뒤에는 죽고싶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어떤 말도 내게 욕을 하지 못했다. 왜 사냐는 말도 내겐 욕이 되질 못했다.
죽고싶다.
여동생에게 그런 짓을 한 나는 죽어야 한다.
그치만 여동생은 날 용서해주겠지?
내가 죽으면, 슬퍼하겠지?
분명 그럴거라고 생각했다. 내 여동생은 그런 애니까.
계속해서 자책하고, 죽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그러다가도, 여동생과 있었던 일을 떠올리면 흥분해 버려서
문을 잠근 채, 자위하기도 했다.
여동생과 섹스할 때 찍은 동영상을 틀면서, 자위했다.
그럴때면 여동생이 날 저렇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하는걸 보면 그 전에 있었던 일은 여동생이 없었던 일로 해주기로 한게 아닐까 싶어졌다.
그냥 나도 없었던 일로 취급하고, 여동생한테 한번 박아볼까?
어디를 만지면 좋아할지, 어떻게 박아주면 기뻐하는지, 무슨 말을 하면 흥분하는지 전부 다 알고 있다.
여동생이 좋아서 발목, 발가락 끝을 쭉 펴게 만들 자신이 있었다.
"읏..!"
모든 생각들이 사정과 함께 빠져나가며, 빈 자리에는 또다시 혐오감이 차오른다.
울고 싶어진다. 벽에 머리를 박고 싶어진다. 손에 쥐고 있는 펜으로 눈을 찌르고 싶다.
그렇게 장애인이 되면, 여동생이 날 돌봐주겠지. 어딘가 다치면 다들 날 불쌍하게 봐 주겠지. 양쪽 다리가 잘린 채로 공부해 대학에 합격하면 뉴스에 나올지도 모른다. 장애를 이겨낸 소년이라고.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뉴스에서 인터뷰를 하면 분명 여동생을 인터뷰 할 것이다. 오빠가 대학에 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떤 기분이였는지, 힘들진 않았는지.
힘들기도 했지만 대단하다고도 생각한다, 싸우기도 했지만 자랑스러운 오빠다.
머릿속에서 여동생이 그런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여동생은 내 휠체어를 뒤에서 밀어주면서 사진을 찍거나 할 게 분명하다.
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죽는거다.
죽고 싶다고 몇 번이고 생각하면서도, 난 죽고 싶지 않았다. 자살하고 싶지 않았다.
사고로, 누군가가 트럭으로 쳐 죽여준다거나, 갑자기 길을 가다가 하늘에서 벽돌이 떨어져서 맞아 죽는다거나, 살인범한테 칼에 찔려 죽는다거나.
죽고싶다, 죽고싶지만 어쩔 수 없는 사고로 죽고싶다. 은행에 갔는데 은행강도가 갑자기 들이닥쳐서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다가 총에 맞아서 죽고싶다.
그러면 뉴스에 나오겠지. 타지에서 죽은 용감한 유학생이라고.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여동생이랑 부모님이 울어주는거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눈물이 나왔다.
"후후후..."
눈물이 나오면서 슬픈데도, 기분이 좋았다.
망상에 빠져서 나의 행복한 죽음을 상상했다.
대체 난 무슨 생각을 하고있는 걸까? 나 자신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몰랐다. 대체 왜 이런 망상만 하는지. 그리고 그 망상은 왜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말도 안 되는 코미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난 현실도피를 하고 있었던 거다.
다른 곳에 있고 싶었다. 다른 환경에, 다른 시간에, 다른 장소에, 다른 세계에 있고 싶었다. 그 자리에 있고싶지 않았다.
나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도 아무 말도 할 수 없고, 무섭고, 두렵고, 미안하고, 갑갑하고, 짜증나고, 이기적인 여동생이 없는 세계에 있고 싶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고 나면 또다시 죽고싶어졌다.
이런 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오빠! 내 하얀 티 어디갔어? 목 긴거!"
몇일인가 시간이 지나자 시간이 모두 다 해결해 주는 것 처럼 여동생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방 밖에서 크게 소리쳤다.
그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대응에 울화가 치밀었다.
짜증이 나고, 열받고, 뭐든 좋으니 던져버리고 싶었다. 부수고 싶었다.
여동생은 정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처럼 행동했다. 아니, 확실히 이상하긴 했지만 어디까지나 조금 대하기 힘든 일이 있었던 것 뿐인 사이처럼 나를 대했다. 과자를 사 오면 먹겠냐면서 주고, 내가 화장실에 들어가 있으면 빨리 나오라고 하고, 컴퓨터를 좀 하려고 하면 자기도 써야 된다고 하고.
"그거 어제 빨았어."
"오빠가 빨았어?"
"세탁기 뒤져봐."
그럴 때마다 나는 뭐라 대답할지 당황스러웠다. 대체 여동생이 왜 이러는 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몇 번인가 좋게 대답한 적도 있지만 그러고 나면 더 답답했다.
여동생이 내게 말을 거는게 짜증난다. 이해 할 수가 없다.
여동생이 미친 년 처럼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