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불청객 1 {패숴드}
[실장님. 오늘 한잔 어때요?]
일에 밀려 오늘도 어김없이 9시가 되서야 퇴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김 대리가 서희 쪽으로 얼굴을 돌려 술먹는 시늉을 하며 히죽이 웃었다. 모두들 파김치가 되었지만, 한잔 하자는 김 대리의 말에 박 형진씨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좋아. 까짓거 한잔 하자구.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고 말이야]
[역쉬. 실장님은 화끈하셔. 자! 갑시다.]
김 대리가 껑충거리며 앞장서 사무실 문을 나서자 직원들이 왁자지껄하게 뒤 따라 나갔다.
서희는 한 번 더 거울을 보며 화장을 고치고는 바로 핸드백을 들고 일행의 뒤를 따랐다.
늦 가을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 들었다. 외투를 여미고서 그들은 회사앞 삼겹살집으로 서둘러 들어갔다. 으레 한잔코스로 어느덧 정해진 곳이다. "토방"이라는 빨간색 간판을 지난 십년동안 보아 온지라 고향집에 온 것 마냥 따뜻하고 편안한 아랫목 같은 기분이 든다.
토방은 이미 술에 취한 사람들이 꽤 들어차 있었다. 매쾌한 삼겹살 굽는 냄새와 컬컬한 담배 연기가 가게안을 뒤덮고 있었다.
[아따, 이제 끝났는가?]
토방 간판 만큼이나 오랜 시간 보아온 주인 아주머니가 서희 일행을 보자 정색을 하며 테이블로 안내했다.
[오늘도 이제사 끝난 모양이구먼?]
[아주마니. 배 고파 죽것소. 빨리 좀 내 오시오.]
[아따, 김 대리는 뭐가 그리 급한고잉. 쪼개만 기다리드라고....]
[아줌마, 일단 술부터 좀 내 주지?]
서희가 한마디하자 주인이 서희 쪽을 보며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이. 박 형진씨 담배 하나 주라. 벌써 한 갑 다 피운 모양이네....]
올해 신입사원 박 형진씨가 와이셔츠 주머니에서 디스를 빼 서희에게 권했다. 불을 붙치고 깊게 빨아드리자 폐속 깊이 담배 연기가 박히는 게 느껴졌다.
[실장님은 언제 보아도 담배를 맛나게 피네요.]
주댕이를 잠시도 두질 못하는 김 대리가 서희가 내 뿜은 담배 연기를 물끄러미 쳐다 보며 자기도 담배 한 개비를 빼들었다.
[이상하지? 난 여자가 담배 피면 왜 그리 멋지게 보이지...?
특히 실장님 담배 피우는 모습은 정말로 뷰티블이라니깐.]
김대리가 담배연기를 서희쪽으로 날리며 힐끔 그녀를 쳐다 보았다.
여자가 담배 피는 모습이 멋있다고 하는 말이 서희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은연중에 남녀를 갈라놓는, 그래서 여자는 무얼하든 남성의 평가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는 한국남성의 얄팍한 귄위의식이 김대리의 말속에 뼈마냥 베어 있는 것 같아 그녀를 언짢게 했다. 더군나 상사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무언가 모를 만만함을 내포하고 있는 그의 말투가 이뻐 보일리도 없었다.
[이 봐. 김 대리. 김대리 마누라 될 사람이 담배 피워도 멋있게 보이겠어요?]
[실장님도...... 마누라하고 걍 여자하고 같나요? 흐흐]
[김 대리는 시답잖은 이론을 펴고 있군요. 마누라는 여자가 아닌가요? ]
[아따. 실장님도 잘 아시면서..... 아직까진 조선놈들 자기 여자 담배 피는거 못 봐 줄걸요.....]
[그럼. 남의 여자는 담배피는거 괜찮고.....?]
[당연하죠. 내 께 아닌데 뭔 상관 있나요? 안그래?]
김 대리가 좌우를 휘 둘러보며 싱겁게 웃어 보였다.
박 형진씨하고 미스 민이 엷은 미소를 지으며 엽차를 홀짝였다.
[이런 말도 있잖습니까? 이 세상에는 두 부류의 여자가 있다. 하나는 마누라고 다른 하나는 그 외 모든 세상 여자이다.... 하하하]
[그렇게 마누라를 잘 아는 김대리가 왜 여지껏 장가를 못가는지 모르겠군요.]
김 대리 말하는 입 모양이 얄미워 한마디 톡 쏴 주었다.
박 형진씨하고 미스 민이 히히히 웃다가 김 대리를 힐끔 쳐다 보았다.
김 대리가 허공에 담배 연기를 후 날렸다.
[내 장가 못간 거나, 실장님 시집 못간거나 매 한가지 아닌가요? 거, 피차 노 총각 노 처녀 끼리 그러지 말자구요. ]
서희가 쏘아 보는대도 한 마디 더 붙였다.
[그래도 나는 낫지. 실장님에 비하면 아직 팔팔한 영계니깐두루......]
남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비며, 김 대리에게 한 마디 할려는데 주인이 술을 날라왔다.
솥 뚜껑을 올리고 버너에 불을 댕겼다.
배가 고파 주인이 내려 놓은 나물 몇 점을 집어 먹었다. 미스 민이 어느새 삼겹살을 솥뚜껑에 올리고 있었다. 미스 민의 섬세하고 가느다란 손가락을 보자 서희는 갑자기 젊음이 부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느덧 삼십대 중반으로까지 치 달은 자신의 나이가 밉게 느껴 졌다. 예쁘게 기른 손톱에 정성드려 발랐을 핑크빛 메니큐어가 미스 민을 더 여성스럽게 보이게 했다.
[미스 민. 올해 셋이지?]
[.....예?]
삼겹살을 뒤집던 미스 민이 갑작스런 질문에 영문을 몰라 서희를 쳐다 보았다.
[아따. 늦긴...... 스물 세 살이냐고 실장님이 묻잖아.....]
김대리가 서희에게 술을 따라 주다 미스 민을 보며 말했다.
[.....아, 예.....]
[실장님. 미스민의 젊음이 부럽죠?]
김 대리가 서희에게 술을 받으며 히죽이 웃어 보였다. 쓸데 없는 소리에 대꾸하고 싶지 않아 건배하자고 술잔을 들었다.
[원 빵이야 !]
김 대리가 소주잔을 빙글 돌리더니 강압적인 눈빛을 박형진씨와 미스민에게 보였다.
소줏잔 속에 투명하고 맑은 소주가 해 맑게 유혹했다. 첫 입술에 스치는 쌉싸름한 짜릿함에 온 몸이 전율했다. 목젖을 타고 들어간 소주가 온 내장을 스치며 지나가는 감각에 캬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캬 ~ 정말 죽이는데....]
김 대리가 소줏잔을 탁자에 탁 놓으며 잘 구어진 삼겹살을 젖가락으로 집어 탐스럽게 입안에 집어 넣었다. 오드득 오드득 씹히는 소리가 왠지 웃음을 자아냈다. 피식 웃었다.
[야. 미스 민 ! 니는 왜 안 마시고 눈치보고 있노?]
미스 민이 김 대리의 엄포에 잔을 놓지 못하고 서희와 김 대리 눈치만 살폈다. 입술에 살짝 소주잔을 대기만 해도 온갖 인상을 쓰는 미스민을 보자 서희는 문득 지난 시절이 생각났다. 그래도 그녀는 대학에서 소주가 무엇인지 이미 경험한 지라 미스 민 보다야 훨씬 나은 상태였었다. 그래도 디자인실의 꼰대들은 그녀에게 술을 더 못 먹여 안달이었었다. 조직이라는 것이 이런 것인가 싶어 그때는 술 때문에 그만 두고 싶은 심정이었었다. 정보 학교에서 바로 입사한 미스 민은 술을 대한 기회가 그리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스 민을 보자 같은 여자로서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미스 민! 나는 다 마셨데이. 나 간강당한 느낌 안 들게 해 주라 !]
김 대리가 여전히 미스 민 술 먹는거에 시비를 걸었다.
[김 대리. 미스 민 못 마시는 거 알잖아. 이제 그만 하지....]
[아따, 실장님도. 누군 태어날 때부터 소주 병을 들고 나옵니까? 안 마시니깐 못 마시는 거고, 못 마시니깐 안 마시는 겁니다.]
[김 대리님. 하하하. 거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구같은데요.]
박 형진씨가 서희에게 소주를 부어주며 히죽이 웃었다. 미스 민은 여전히 김 대리의 눈치를 보며 잔을 놓지도 마시지도 못하고 어물쩡 앉아 있었다. 보다 못해 서희가 한마디 했다.
[미스 민. 됐어요. 그만 술잔 놓고 고기나 먹어요.]
서희 말에 미스 민이 혓바닥을 삐죽 내밀더니 잔을 놓고 고기를 하나 들었다. 김 대리가 한 잔을 더 마시며 입맛을 쩍쩍 다셨다.
[좋아. 미스 민. 그럼 오늘은 하나만 약속하지. 딱 세잔만 먹는거야. 어 때? 내 제안이.....?]
미스 민이 난처해 하는 모습이 웃음을 자아냈다. 같은 여자임에도 어느새인가부터 미스 민과 같은 풋풋한 여인의 향기를 내지 못하는 조화(造化)가 되지 않았나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어 서희는 다시 소주잔을 들이켰다.
[실장님. 오늘 속도가 빠른 데요.]
김 대리가 실실 거리며 서희의 잔에 소주를 따랐다.
[실장님. 이번 디자인만 잘 되서 제품이 뜨면 우리 인센티브라도 좀 나올랑가 모르겠네요.]
[거야, 김대리가 더 잘 알 일이니, 잘 해 보지요.]
[거 볼펜이라는 거이 다 거기서 거기인지라, 특별히 나올 디자인도 없구요.]
김 대리가 일 얘기가 나오자 오랜만에 진지한 표정으로 걱정하는 눈빛을 비쳤다. 항상 실 없이 쓸데 없는 농담을 하다가도 일에 관한 것이라면 진지하게 연구하는 김 대리의 모습이 그나마 그를 건실하게 보이게 했다. 서희는 김대리의 그런 모습을 믿음직스러워 했다.
[키티 같은 캐릭터라도 개발해서 모양은 같더라도 좀 다른 때깔이 나오게 디자인해도 좋을 것 같기도 한데.....]
[김 대리. 키티 같은 캐릭터를 라이센스하는 비용이 얼만데, 우리 같은 중소 볼펜 회사가 감당할 수 있겠어요? ]
김 대리가 서희 말에 입맛을 쩍 다시며 소줏잔을 들었다.
[실장님. 우리가 캐릭터를 직접 개발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박 형진씨가 삼겹살을 오드득 씹으면서 한마디 끼어 들었다.
[야. 박! 캐릭터 개발하는게 오입하는 것 처럼 쉬운 일인줄 아나.... 철 없기는.....]
김 대리가 박 형진씨를 보며 뭘 모른다는 듯 혀를 찼다.
[김 대리님도.... 그렇게 쉬운 일이면 아무나 할 거 아니에요? 그런 일이니 우리가 하자는 것 아닙니까?]
[뭐야? 어휴, 저거 후배만 아니면 벌써 짜르는 건데.....]
[박 형진씨 입사한지 얼마나 되었죠?]
박 형진씨가 술잔을 들다 말고 서희의 질문에 의아한 듯 쳐다 보았다. 실장이라는 사람이 부하직원이 언제 입사한지도 모르나 하는 눈빛으로 비쳤다.
[......세달 좀 넘었는데요.....]
풋풋한 요즘 아이들의 감각을 서희는 미스 민과 박형준에게서 느낀다. 김 대리나 그녀나 이미 신선함을 논하기에는 너무 오래된 골동품이 되었을 것이다. 소위 디자인을 한다는 그녀가 젊은 아이들의 감각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을 요즘 피부로 느낄 때가 많았다. 단순히 볼펜 하나를 디자인하면서도 스스로 벽을 느낄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오랜 노력 끝에 시장에 내 논 상품이 요즘 아이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고 급기야 반품이라도 들어 올때면 그녀는 당장에 사표를 쓰고 싶은 절망감에 빠진다. 그럴 때일수록 중 고등학교 교문앞 문방구니 신촌이니 대학로를 부지런히 쏘다니지만, 이미 저만큼 그녀를 떠나버린 젊은 감각을 쫓기에도 힘겨웠었다.
[그래, 좀 할 만 한가요?]
술잔을 박 형진씨에게 전하며 그에게 소주를 따라 주었다.
깍듯히 술잔을 받는 그가 귀엽게 보였다. 그도 대학을 졸업하고 이미 사회적으로 훌륭한 성인인데도 서희는 그가 귀엽게 보인다. 그녀의 나이는 이미 그만한 나이의 사내를 귀엽게 볼 만큼 훌쩍 먹어버린 것이다.
[....아직, 모르겠습니다. 실장님이 잘 가르쳐 주십시오.]
박 형진씨가 다시 그녀에게 술잔을 내밀며 공손히 술을 따랐다.
옆에 미스 민은 열심히 삼겹살을 굽고 있었다.
[얌 마. 여기가 학교야? 니가 열심히 선배님 하는 것 보고 배워야지. 어디다 실장님한테 가르쳐 달라고 하나?]
[김 대리. 술 마셨어요? 으레껏 하는 소린데 뭐 그리 걸고 넘어져요?]
[아따, 실장님도..... 나도 그냥 한 소리요.....아줌마! 여기 소주 두병 더 줘요 !]
모두 유쾌한 기분에 젖어 소주를 드리켰다.
[실....장님! 2차 가셔야죠.]
넥타이를 풀어헤친 김 대리가 계산을 하고 토방을 나서는 서희를 보며 히죽이 웃어 보였다.
[김 대리. 오늘 넘 마시는 거 아닌가?]
[아따, 실장님도.... 내 주량을 아직 모르는 것도 아닐건데..... 시원하게 노래나 하나 부르러 가죠.]
[나야. 좋지만...... 미스민하고 박 형진씨는 어때요?]
박 형진씨는 괜찮다는 표정을 금새 서희에게 보냈지만, 미스 민은 괜시리 시계를 보며 먼저 가겠다는 무언의 의사표시를 해 보였다. 그런 미스 민의 어깨를 김 대리가 툭 쳤다.
[야. 민! 내가 데려다 줄테니깐, 걱정말고 이 오빠 따라 와. 알았어 !]
김 대리가 미스 민 어깨를 끌고 앞장 서 걸어가자 서희와 박 형진씨가 그들 뒤를 따라 갔다. 김 대리는 늘상 그래 왔던것처럼 황제 단란주점의 문을 활짝 열며 정말 황제마냥 들어갔다. 곧이어 웨이터의 어서 옵셔 하는 인사말이 우렁차게 들려 왔다. 황제에는 손님이 많지 않았다. 홀에 자리를 잡았다. 이미 낯이 익는 그들인지라 마담이 달려와 반갑게 인사했다. 술을 시키기 무섭게 김 대리가 한사코 빼는 미스 민을 억지로 끌고 스테이지로 나가 노래를 불렀다. 미스 민은 여지 없이 백 댄서 역할을 해야 했다.
[박 형진씨 ! 올해 몇이지?]
소파에 기대여 노래하는 김대리에게 박수로 박자를 맞추어 주는 박 형진씨에게 물었다. 서희가 딤플 병을 들자 박 형진씨가 얼른 스트레이트잔을 병 밑에 댔다.
[스물 여덟입니다.]
[음..... 좋은 나이군요....... 여자 친구는 있어요?]
박 형진씨가 서희에게 술을 따르며 그녀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모르겠습니다.]
[아니, 모르겠다니..... 있음 있고, 없음 없는 것이지....모르겠다는 말은 무슨 말이지요?]
건배를 하며 박 형진씨를 쳐다보니 벌컥 단숨에 딤플을 들어켰다. 서희도 반 잔쯤 마시다 술 잔을 내려 놓았다. 그녀도 평소에 여자치곤 술 꽤나 하는 편이지만, 오늘은 왠지 마시기 부담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달작지근한 딤플이 기도를 타고 들어가는 것이 금방 느껴졌다. 웨이터가 갔다 놓은 오마 샤리프를 한 개비 입에 물었다. 박 형진씨가 그녀의 담배에 얼른 불을 붙여 주었다.
[.... 아직 진행형이라는 건가요?]
[....아니요. 이미 나에게 넘어 온 것은 맞는 거 같은데...... 쉽게 마음이 맞질 않아요.]
[참 어려운 말이군요.]
[날 좋아한다 하면서도 내가 하자는데로 따라 주질 않으니..... 튕기는 게 성격이라 그런지.....아니면 좋아 하지도 않으면서 일단은 없으니까 날 받아 주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빈 잔에 술을 따라 주자 박 형진씨가 벌컥 바로 마셔 버렸다. 여자 때문에 고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치열하게 연애하고 헤어질땐 미련없이 돌아서 버린 지난 시절이 문득 생각나 서희는 남은 반잔을 목구멍속에 넣었다. 이제 삼십대 중반에 이른 나이에 로맨틱한 감정보다는 현실적 배경에 더 관심이 가는 나이가 되었다. 그녀에게 있어 사랑은 이미 흘러간 유행가 가사가 되었을 것이다.
여자 노래소리에 스테이지를 보니 미스 민이 요즘 아이들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김 대리는 되지도 않는 어색한 동작으로 노래에 맞취 춤을 추고 있었다.
[그러니, 제 마음이 어떻겠어요? 애인이라고 하기엔 아직 아닌 것 같고, 없다고 하기에도 그렇고....]
[음, 나도 잘 모르겠군요.]
[실장님, 제 잔 한 번 받으세요.]
[여자인 나도 같은 여자 마음을 잘 몰라요..... 그러니 꾸준히 노력해 보세요.]
박 형진씨가 따라 준 스트레이트 잔을 바로 비우고 다시 그에게 넘겼다.
술을 따르는 서희를 박 형진이 빠꼼히 쳐다 보았다.
[..... 난 실장님이 참 좋아요.]
술 병을 테이블에 놓으며 뜻밖의 말에 박 형진씨를 쳐다 보았다.
[....내가 좋다구? 참 기분좋은 말이군요.]
[실장님 같이 예쁘고 지적이고 이렇게 술도 잘 마시고.... 아뭏튼 화끈한 여자가 좋아요.]
[ 나 같은 여자 별로 매력 없을 건데요.]
[전 어렸을 때부터 연상이 좋았어요.]
[그....래요? 날 좋아한다니 과히 나쁘지 않군요. 무론 사회적 선배로서 여자치고 듬직한 상사로써 좋아하겠지만요.]
박 형진씨가 술을 벌컥 들이켰다. 그리고 그녀에게 다시 한잔을 따라 주었다. 서희는 조명에 반사돼 아름답게 빛나는 갈색의 스트레이트 잔을 음미하면서 서서히 입술을 갔다 댔다.
[..... 아니요. 여자로써 좋아합니다.]
서희가 깜짝 놀라 박 형진씨를 쳐다 보자, 그도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 보고 있었다.
[하하하 !]
갑자기 서희가 목젓이 보이도록 웃어 제치자 박 형진씨가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 보았다.
그 때 노래를 끝낸 김 대리와 미스 민이 자리로 돌아왔다.
[실장님. 뭐가 그리 재미있어 박장대소를 합니까? 젊은 영계하고 노니깐 재민나 봅니다.흐흐]
김 대리가 술을 마시며 아직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있는 서희를 쳐다 보았다. 서희는 간신히 웃음을 막을수 있었다.
[박 형진씨가 참 웃기네요. 날 여자로써 좋아 한다는 군요. 글쎄....]
그녀의 말에 박 형진씨가 무안하여 고개를 푹 숙였다.
김 대리가 그런 그를 한 번 쳐다 보더니 머리를 툭 쳤다.
[이 자식, 술 취했나. 어디 여자가 없어 저런......]
[뭐요? 김 대리도 한 때 날 좋아 했었잖아. 지금은 아닌가? 하하하.]
김 대리가 술을 마시다 말고 서희를 쳐다 보았다. 미스 민이 그녀의 말에 흥미로운 듯 김 대리를 쳐다 보았다. 김 대리는 잠시 어이 없어 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예. 한 때 정말 좋아 했지요. 근데 그 때 뿐이었지. 난 목석같은 여잔 싫거든.]
[뭐야?]
서희가 소리치자 박 형진씨가 노래 불러야 한다고 스테이지로 나갔다.
술이 부담스럽더니 역시 평소보다 훨씬 강하게 취기가 올라왔다. 서희는 한잔 더 하자는 김 대리의 의견을 뿌리치고 택시에 올라탔다. 황제 단란주검에서부터 졸리기 시작하더니 택시에 앉아마자 잠들어 버렸다. 누군가 그녀의 옆자리에 앉는 것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곧이어 택시가 떠나고 아늑하고 따뜻한 차내 공기에 젖어 점점 더 쳐지는 육신을 가까스로 부여잡았지만, 쏟아지는 졸음을 어쩔수 없었다.
잠결에 자신의 몸을 더듬는 낯설은 감촉에 서희는 눈을 뜨고 싶었지만, 눈이 떠지질 않았다. 이미 알콜은 그녀의 감각을 마비시켜 자신의 몸뚱아리가 마치 마음과는 따로 노는 감각혼란속에 놓여 있었다. 마치 벌레가 기어가듯 자신의 몸을 간지럽게 더듬는 손길을 잠결에도 떼내려 손길질을 하였다. 하지만 그 손길은 얼키고 설킨 미역넝쿨처럼 자신의 몸을 집요하게 만지며 떨어지려 하질 않았다.
[..... 김 대리야? 장난 하지 마.....]
서희의 물음에 낯선 손길이 잠시 멈추어 지더니 다시 자신의 가슴께로 슬그머니 다가 왔다.
기분나쁜 메스꺼움이 욱 하고 올라와 간신히 눈을 뜨며 그 손을 툭 쳤다.
[.....아니.....박 형진씨.......]
[난, 난 실장님이 좋아요.]
거대한 암석마냥 박 형진씨 얼굴이 그녀의 동공속으로 확 들어왔다. 벌건 얼굴이 흥분한 황소 마냥 콧바람을 그녀의 콧잔 등에 뿌려댔다. 그러면서 서희를 끌어 안으려 다가 왔다. 박 형진씨 입에서 술냄새가 확 풍겨왔다. 우악스럽게 그녀의 허리를 휘어 잡는 그의 손길이 매서웠다. 갑작스러운 황당함에 서희는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이거 왜 그래! 박 형진씨 ! 당신 나한테 이게 무슨 짓거리야!]
서희가 박 형진의 뺨을 후려 쳤다. 박 형진씨가 움찔하며 뒤로 물러섰다. 뺨이 화끈거리는지 손으로 어루만졌다. 택시기사가 백 미러로 힐끔 힐끔 쳐다보았다. 민망하고 어색한 기운이 택시안을 휘져었다. 뺨을 맞은 박 형진씨가 정신을 차린 것인지 다소곳이 앉아 그녀을 쳐다 보았다. 당황스럽지만 사태를 수습해야 하는 일도 자신의 몫임을 서희는 잘 알았다.
[아저씨. 저기 세워주세요.]
박 형진씨가 서희를 쳐다 보았다.
[....오늘 일은 술에 취해 한 행동으로 알겠어요. 여기서 내려 집으로 돌아가요.]
[....하지만, 난 정말로 실장님을 좋아 합니다.]
[......쓸데 없는 소리 그만 해요.]
택시가 길 한 켠에 멈추었지만, 박 형진씨는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머리를 숙이고 무언가 생각하는 듯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박 형진씨. 안 내릴 거예요? 내가 내릴까?]
[실장님 오늘은 내리지만요, 제가 오늘 한 행동을 술 주정으로 생각진 말아 주세요.]
박 형진이 택시를 내려 문을 꽝하고 닫자 막혔던 긴 한숨이 흘러 나왔다. 다시 택시가 움직이고 창 밖을 보자 박 형진씨가 떠나는 택시를 쳐다 보고 있었다.
오피스텔에 도착하자 밤은 이미 깊어 있었다.
거리에는 인적도 끊겨 을씨년 스럽게 차가운 늦가을 바람이 옷속을 파고 들었다. 찬 바람이 알콜을 쓸어 간 듯 정신이 바짝 들었다. 팔짱을 끼고 총총 걸음으로 오피스텔 현관문을 열었다. 경비실 아저씨가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다. 입가에 흘러 나온 침이 떨어질 듯 말 듯 매달려 있었다. 2층으로 가기 위해 계단을 올라갔다. 박 형진이 생각났다. 황당하고 버릇없는 후배의 행동쯤으로 치부하고 싶었지만, 자신도 모르게 상쾌한 기분이 온몸을 휘감아 돌았다. 그의 주정이 밉지가 않았다. 아직도 자기에게 좋아한다고 고백하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이 서희를 더 없이 상쾌하게 만들었다. 비록 부하직원이고 한참 어린 연하의 남자지만, 박 형진씨는 오랜만에 서희를 여자로 보아준 남자일 것이다. 이제 그런 로맨스에 무던할 때도 되었다고 스스로 되 뇌었지만, 막상 이런 일이 벌어지자 그동안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따뜻한 기운이 갑자기 가슴 한켠에 나타나 서희를 더 없이 상쾌하고 따뜻하게 만들어 주었다. 좋아한다는 고백을 들은 것은 실로 얼마 만인가? 갑자기 자신이 굉장히 어려진 기분이 들어 그동안 힘들게 오르내렸을 계단도 가뿐하게 뛰어 올랐다.
[....헉!]
2층 계단 끝 자락, 거기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급작스러운 누군가의 출현이 서희를 당황스럽게 했다. 이미 깊은 밤. 미지의 사람을 만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 아닐 것이다. 다시 계단을 내려가려는 자신을 틀어잡고 그 물체를 보자 그 것은 의외로 작은 몸체였다. 안심하며 가까이 다가가자 그 것은 아직 어린 사내아이였다. 계단에 앉아 곤히 잠들어 있었다.
[너, 누구니? 얘, 일어나 !]
서희가 어린 아이를 흔들어 깨웠다. 아이가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너, 누구냐구....]
[.....밥.....밥 좀 주세요......]
아이가 눈을 커다랗게 뜨고 서희를 쳐다 보았다. 얼굴에 때자국이 선명하였지만 집이 없는 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비교적 깨끗한 옷차림이 그것을 잘 말해 주었다.
[춥고 배고프면 집에 가야지.....]
[.....난 집이 없어요.]
[안 되겠다......경비 아저씨한테 가자.]
그녀가 때가 덕지 덕지 묻은 아이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 가려하자 아이가 한사코 손을 빼며 안 가려고 버텼다.
[안되요. 아줌마. 나, 거기 가면 쫓겨나요. ]
[그럼, 어쩌자고?]
[아줌마.... 한 번만 한 번만 아줌마 집에서 자면 안돼요? 나, 너무 추워요....]
아이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다시 웅크리며 계단에 앉는 아이를 물끄러미 쳐다 보았다.
[니 여기는 어떻게 들어 왔니? 경비 아저씨가 아무 말 안해?]
[....아저씬 졸고 있던데요. 그래서......]
앉아 있는 아이를 무시하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 들어 온건 니 자유니깐 니 알아서 해. 난 모르니깐 아저씨에게 안 갈려면 나도 그냥 갈테니깐, 니 맘대로 해.]
서희가 아이를 지나 걸어가자 아이가 서희를 따라 왔다.
[야, 너 왜 따라 오는 거야? 니 갈데로 가란 말야.]
[배 고파요. 아줌마]
아이의 커다란 눈에서 갑자기 눈물이 흘러 나왔다. 닭 똥같은 눈물이 두 눈에서 흘러나와 뺨을 타고 내렸다. 아이가 엉엉 울자 한동안 쳐다 보았다. 측은한 생각이 가슴속 깊이 파고 들었다. 그렇지만 혼자 사는 오피스텔에 아이를 데려간다는 것이 쉬운일이 아니었다.
[.....좋아. 오늘 밤만 우리 집에서 자고 내일은 너희 집을 찾아 보자.]
서희의 말에 아이가 언제 울었냐는 듯 헤 하고 웃어 보였다.
해 맑은 아이의 얼굴이 서희의 기분도 금새 청량하게 만들었다. 서희가 앞장서 걷자 아이가 그녀를 따라 걸어 왔다. 키를 꽂고 방문을 열자 훈훈한 기운이 기분 좋게 서희를 맞아 주었다. 방문을 열고 뒤 따라 오는 아이를 쳐다 보자 쭈빗거리며 안으로 들어 왔다.
아이는 자기 집인양 오피스텔을 이리저리 둘러 보고 익숙한 양 소파에 앉아도 보았다. 당돌한 아이가 밉게 보이질 않았다. 아직 어린 아이인지라 신경쓰지 않고 서희는 옷을 갈아 입었다. 아이가 동그런 눈으로 그런 서희를 쳐다 보았다.
[뭘 보니? 너, 일단 씻어야 겠다.]
서희가 욕탕문을 열자 아이가 먼저 깡총 거리며 욕탕으로 들어갔다.
[얘, 옷 벗고 들어 가야지. 옷은 저기 세탁기에 넣고.....]
아이가 옷을 벗자 쬐그만 몸뚱아리가 곧 드러났다. 앙상한 몸이더라도 젖꼭지며 배꼽이 제 자리를 훌륭히 차지하고 있었다. 자신이 벗은 옷을 세탁기에 넣고 아이가 팬티차림으로 다시 욕탕으로 들어가자 서희는 세탁기를 돌렸다. 웅하는 세탁기 소리를 뒤로하고 욕탕문을 열자 욕탕 시계는 벌써 시간이 2시임을 알려 주었다. 빨리 하고 자야 겠다는 생각으로 아이를 쳐다보자 벌써 물을 틀어 씻고 있었다. 좁쌀 만한 손으로 앙징맞게 얼굴을 훔쳤다.
[얘, 잠깐만. 아줌마가 씻어 줄게...]
서희가 때 타올로 박박 밀자 아픈지 아이가 인상을 쓰면서도 가만히 서 있었다. 작은 몸짓으로 서희가 몸을 만질땔마다 음찔 음찔 뒤틀었다. 풋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서희가 아이의 팬티를 벗기려 하자 아이가 팬티를 잡았다. 아이를 쳐다 보고 한 번 더 벗기려 하자 아이가 꽉 잡았다.
[...얘가 왜 이래..... 야. 빨리 벗어야 씻고 잘거 아냐.]
[...아이....그냥 해요.]
[뭐야? 쪼끄만게 뭐가 부끄러워서 그래.....안 벗으면 쫓아낸다.]
아이가 마지못해 손을 놓았다. 아이가 부끄러워하는 모양이 웃음을 자아냈다. 팬티를 벗기자 쪼그만 고추가 자신의 자리에 매달려 있었다. 어린 아이의 고추지만, 오랜만에 보는 실물이 서희를 이상 야릇하게 했다. 무시하고 아이를 씻겼다. 배와 등에서 한 움큼의 때가 뭍어 나왔다. 때 타올이 지나간 자리에 벌건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하이얀 엉덩이까지 밀고 아이를 돌리자 고추가 금방 서희의 눈에 잡혔다. 그것은 살아 있었다. 어린 아이지만 어색하고 민망했다. 배를 닦아 주면서도 자꾸 신경쓰이게 했다. 다리를 씻어주면서는 어린아이에게 너무 과민한 자신이 황당하게 생각되었다. 어린아이의 고추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자신이 부끄럽게 생각되었다. 무시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어쩔수 없이 고추를 씻을 차례가 되자 서희는 자신도 모르게 긴 숨이 흘러 나왔다. 아이가 고개를 빼꼼히 숙이고 서희룰 쳐다 보았다. 힐끔 아이를 보다 자신의 젖가슴이 내려다 보이는 것 같아 옷을 여미었다.
아이의 고추에 과감히 손을 댔다. 서희의 손길이 미치자 아이의 고추가 당돌하게 팔딱거렸다. 어색한 느낌이 금방 서희를 장악했다. 이제 서희의 손가락만 할 아이의 고추였지만, 핏줄기가 선명히 그 줄기를 타고 돌았다. 고추를 씻어주자 음,음하는 소리를 내는 것 같아 아이를 한 번 더 쳐다 보았다. 그렇지만 아이는 커다란 눈으로 서희를 쳐다만 볼 뿐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내가 왜 이러지....'
자신이 갑자기 이상한 여자가 된 것 같아 서둘러 아이를 씻기고는 나가서 닦으라며 수건을 건너고 욕탕문을 닫았다.
옷을 벗고 브레지어를 풀자 젖가슴이 풍성하게 튕겨 나왔다. 거울에 비친 여인의 얼굴은 이미 젊고 싱싱함을 갖고 있진 않았다. 인생의 연륜을 화장으로 위장하고 두꺼워진 얼굴 피부를 볼 터치로 감추며, 텁텁한 입술을 루즈로 포장한 여인이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젊었을 때부터 밉상은 아니라는 말대로 여유있는 오피스걸이 우아하게 거울속에서 웃고 있었다. 육체는 아직 처지진 않았다. 아직 임신을 한 경험이 없어서 일까? 같은 또래의 여인은 이미 아줌마가 되어 있겠지만, 서희의 젖가슴은 탱탱한 힘을 갖추고 있었다. 스무살의 풋풋함은 없을 지라도 그런대로 보아줄만한 풍성함을 안고 있었다. 엉덩이는 작년보다 조금 더 커진 듯이 보였다. 살이 붙었으리라.
아랫배의 지방은 점점 더 붙어오는 것이 눈에 띄게 보였다. 나이는 아랫배로 먹는다고 했던가. 어쩔수 없는 아랫배를 서희는 한심하다는 듯 한동아 쳐다 보았다. 아랫배 밑에 검은 거웃이 자리 하고 있었다. 남자 경험이 없다고 할수는 없을지라도 아직 풋풋한 내음을 풍기며 통통한 음순이 야무지게 입을 다물고 있었다. 몇가닥 음모가 그나마 남자 사이에서 재수 없다고 하는 그것은 아니게 하였다. 서희는 평소에 자신의 몸에 적게 자라는 음모가 늘 불만이었지만, 아직 남자 경험이 많지 않기 때문일 거라고 애써 자위하며 살아 왔다. 샤워기를 틀자 따뜻한 물이 기분 좋게 서희의 육체를 타고 흘러내렸다. 온몸에 비누칠을 하다 약간 써늘한 바람이 몸에 닿는 것 같아 뒤를 돌아보자 아이가 문을 빼꼼히 열고 쳐다 보고 있었다.
[어마! 너 뭐야! 안 나가?]
서희가 소리 지르자 아이가 깜짝 놀래는 표정을 지었다.
[난.....그냥 수건 주려고......]
[세탁기에 넣으면 돼잖아. 문닫아!]
아이가 문을 닫자 서희는 그제서야 움추렸던 몸을 폈다.
그리고 금방 자신의 반응이 웃기게 생각 되었다. 이제 젖을 떼놓았을것같은 아이에게 너무 과민한 반응을 보인 것은 아닐까? 아직 서희는 미혼녀이다. 같은 나이의 다른 여자들 처럼 벌써 얘 몇 명쯤 낳아서 기르고 남편의 바람끼에 전전긍긍할 그런 아줌마는 아닌 것이다. 아직 낯선 눈길을 어색해 하는 그런 처녀인 것이다. 언제나 혼자만의 공간이었던 오피스텔에 어린 아이가 들어오자 심리적으로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욕실문을 나서자 아이가 멍하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잠옷으로 갈아 입으며 아이를 쳐다보자 아이가 서희를 쳐다보며 웃어 보였다. 깨끗이 씻어 놓고 보자 아이가 참 예쁘게 생겼다는 것을 알았다. 계단에서의 그 아이는 이미 없었다. 말끔한 아이를 보자 절로 탄성이 나왔다. 크고 동그란 눈에 해맑은 눈동자가 서희를 빨아 들일 것 처럼 아름다운 수정구슬처럼 반짝였다. 동그랗고 갸름한 얼굴에 도톰한 입술이 빨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했다. 부드럽게 약간 웨이브진 머리카락이 몇가닥 짙은 눈썹에 내려와 매혹적인 자태를 자아냈다.
너무나 예쁘고 아름다운 용모에 잠시 정신을 잃은 서희가 정신을 차린건 아이가 그녀를 불러서였다.
[아줌마.....!]
[응? 왜?]
[나.... 배 고픈데......]
[....응 그래....뭐 먹을 게 있나 찾아보자.....]
아름다운 용모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아름다운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기쁜 마음도 주지만 경계심도 풀게 만든다. 아름다운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몇배나 더 좋은 조건을 갖고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아이가 그랬다. 서희는 아름다운 아이의 용모를 보자 금방 아이가 좋아졌다. 불과 잠시 전에 만난 아이였지만, 그 아이가 주는 아름다움에 흠뻑 젖어 아이를 집으로 데려 온 것을 잘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애? 라면 먹을래? 그것밖에는 없구나....]
서희가 아이를 보자 아이가 해맑게 웃어 보였다. 아이의 아름다운 미소를 보자 서희는 더없이 즐거워졌다. 이미 늦은 밤에 다른 사람에게 라면을 끓여 준다는 것은 그녀에게는 낯설은 일과일 것이다. 혼자 사는것에 익숙해진 서희에게 다른 사람을 위한 일은 어색하고 귀찮은 일일 것이다.
라면물을 가스 레인지에 올려 놓고 아이에게 입힐 마땅한 옷을 찾아 보았다. 발가 벗고 앉아 있는 아이가 춥게 보였다. 이리 저리 뒤져 몇 년전 입었을 흰 티를 찾아 내었다. 아이에게는 큰 옷일 것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티를 가지고 가자 서희의 행동을 유심히 바라보던 아이가 발딱 일어섰다. 아이에게 티를 입히다 서희는 또다시 놀란 눈이 되었다. 아직도 아이의 고추가 꼿꼿히 서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