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불청객 2 {패숴드}
[애, 화장실 갔다 와. ]
[나.....오줌 안 마려워요.]
[뭐가 안 마려워.... 고추에 물에 잔뜩 들어 있는데....]
[원래 이렇게 서 있어요. 나도 귀찮을 때가 많아요.]
아이의 말이 하도 당돌하여 아이를 쳐다 보자 아이가 커다란 눈으로 서희를 보고 있었다. 소 눈망울만한 맑고 깊은 눈길에 서희는 금새 가슴이 뜨거워졌다. 이 아이에게는 사람을 흡입하는 능력이 있는 것일까? 서희는 아이의 눈망울을 보면서 금새 빨려 들어가는 자신을 느꼈다.
[애, 니 이름은 뭐니?]
여전히 크기를 뽐내는 아이의 성기를 무시하고 티를 입혔다.
[...음....빈이요.]
[빈?]
[예.....유 빈.]
[음. 이름이 참 예쁘구나. 니 얼굴 만큼이나.....]
아이에게 흰 티를 입히자 아이의 하얀색 피부색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옷이었다. 그 옷은 이미 아이의 옷인것처럼 그 크기만 빼면은 너무도 멋이 나게 아이의 몸에 딱 맞았다. 서희가 다시 아이의 눈망울에 흠뻑 젖어 머리를 스다듬자 아이도 해맑은 웃음으로 서희에게 안겨 왔다. 갑작스럽게 자신에게 안기는 아이가 당돌도 하였지만, 부드러운 아이를 안자 서희의 가슴속에 무언가 뭉클한 것이 샘 솟았다.
'이것이 아이를 낳은 여인의 마음인가?'
아이가 서희를 끌어 안고 몸을 기대자 서희도 덩달아 아이를 끌어 안았다. 아이가 서희의 머리결를 스다듬는 게 느껴졌다. 아이가 갑자기 서희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서희가 쳐다 보자 더 없이 아름답고 온화한 아이의 미소가 서희를 맞아 주었다. 아이가 서희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너무 귀여워 아이의 얼굴을 스다듬었다.
아이가 서희의 입술에 입술을 갖다 대었다.
이상한 일이었지만, 서희에게는 이 순간 당연하다는 듯 아이의 입술에 같이 맞 대었다. 그것은 뽀뽀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 되었다. 아이의 입술이 서희에게 야릇한 감성을 가져다 주었다. 아이의 입술도 여인에게 알수 없는 로맨스를 느끼게 하는가? 아이의 입술이 로맨틱한 분위기를 자아내게 했다. 아이가 서희의 뺨에 이마에 한 없는 입 맞춤을 퍼부어댔다. 그리고 다시 아이의 입술이 서희의 입술에 다을 때 서희는 꿈틀거리는 작은 뱀이 자신의 입 속으로 들어오려 입술사이를 헤집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그 때쯤 자신의 가슴에 부딪치는 아이의 딱딱한 고추를 깨달았다.
작은 뱀의 집요함인지 아님, 서희자신이 은연중 바라던 것인지 아님, 숨을 쉬려 벌린 것인지 잠시 벌어진 붉은 입술 사이로 작은 뱀은 부끄러운 듯 뜨거운 열기를 안고 서희 입 속으로 들어왔다. 일순 서희는 달짝지근한 아이를 느껴야 했다. 서희는 놀라고 당황스러워 두 눈을 크게 떴지만, 아이의 감은 두눈에서 희열을 보고 말았다.
아이의 조막만한 손이 자신의 가슴께에 닿는 것이 느껴지자, 서희는 갑자기 자신을 추스리고 일어나 아이를 떼 내었다.
[.....라면 끓여야 겠다.]
아이가 부엌으로 걸어가는 서희를 쳐다보며 혀로 입술을 적셨다.
아이는 맛있게 라면 한 냄비를 비워냈다.
아이가 먹는 모습은 서희에게 더 없는 포근함을 가져다 주었다. 어여쁜 아이의 얼굴, 그 앙징맞은 입술 사이로 라면 면발이 들어가는 모습이 서희에게 배 속 가득한 충만함을 안겨다 주었다.
라면을 다 먹고 배 부름에 아랫배를 통통치는 아이의 행동이 서희에게 행복감을 주었다. 아이가 먹은 냄비를 설거지 하며 서희는 아이가 만족하는 모습이 자신에게 크나큰 행복을 준다는 사실이 이상하고 어색하였지만, 그것을 그대로 받아 들이기로 했다.
인간의 마음은 자신도 알수 없을 때가 많을 것이니까.....
서희는 아이의 잠자리를 자신의 침대 밑에 마련해 주었다. 자신의 잠자리가 침대가 아닌 것을 안 아이가 저으기 실망한 눈빛을 보였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아이가 이불속을 들어가는 것을 보고 서희는 형광등 스위치를 내리고 침실 불을 켰다.
[빈아. 아줌마 출근해야되니깐, 너 내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야 된다.]
[.........]
[ 니 네 집은 어디니?]
[..........]
[아뭏튼, 내일은 니네 집에 가는 거야. 안 그러면, 경찰서에 데려 갈꺼야....]
[.........]
아무 반응이 없자 아이를 쳐다 보았다. 이미 아이는 자고 있었다.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방금만난 아이였지만, 이미 보아온 듯한 모습으로 아이는 안락하게 잠들어 있었다. 아이의 자는 모습이 천사라고 생각했다. 서희는 아이에게 점점 빠지는 자신을 느꼈다. 불과 몇 시간전에 만난 사이였지만, 이미 서희는 아이의 아름다운 용모에 흠뻑 매료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아이에 대한 서희 자신의 모성애인지 모른다. 그동안 가슴 밑바닥에 깊숙히 감추어 놓았을 본능적 모성애가 이 아이를 통해 한꺼번에 터져 나왔을 것이다. 서희는 오랜만에 가슴속을 차 오르는 뿌듯한 포만감을 느끼며 달콤한 잠 속을 빠져 들었다.
자신의 젖가슴을 만지는 알 수 없는 야릇함에 서희는 피곤한 눈을 가까스로 떳다.
잠시 몽롱함이 자신을 애워쌌다. 여전히 자신의 젖가슴을 스다듬는 손길은 아이의 것이었다. 어느새 아이는 침대로 올라와 자신에게 착 달라 붙어 잠을 자고 있었다. 아이의 앙징맞은 손이 자신의 젖가슴을 더듬었지만, 불쾌하거나, 화가 나지는 않았다. 오히려 아이의 어깨를 감싸 주었다. 아이가 콜콜 자면서 서희의 품을 파고 들었다. 젖가슴을 더듬는 아이의 손을 잡아 주며 천진스럽게 자는 아이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꼿꼿한 아이의 고추가 자신의 허벅지에 느껴졌다. 아이가 만져주는 데도 꼿꼿하게 굳어지는 젖꼭지가 느껴졌다. 야릇한 무언가가 척추를 흘러 내려 회음부를 찡하게 했다. 이제 서희의 팔뚝만 할 아이의 다리가 서희의 허벅지에 걸쳐져 왔다. 서희는 허벅지에서 더 뚜렷하게 각인되는 아이의 성기를 느꼈다. 오줌을 싸게 해야 되지 않을까 저으기 걱정되었다.
'나, 오줌 안 마려워요.'
당돌하게 말 하던 아이가 생각나 풋 웃음이 나왔다.
아이는 자면서도 집요하게 서희의 가슴을 만졌다. 아직 어린 아이였으므로, 그리고 엄마에 굶주렸을 아이였으므로 서희는 엄마의 마음으로 아이를 내 버려 두었다. 꼿꼿하게 굳어진 젖꼭지야 아이도 뭘 의미 하는지 모를 것이다.
요란한 알람의 울림에 서희는 아프게 눈을 떴다.
늦은 잠이 피곤을 물리치지는 못했다.
서희는 잘근잘근 아려오는 머리를 누르며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아직 아이는 그녀의 품속에서 자고 있었다. 아이가 새근 거리며 자는 모습이 더 없이 평화롭게 보였다. 절로 미소가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하룻밤의 인연으로 아이는 이미 서희의 마음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아름다운 아이의 얼굴이 서희를 잠시 가슴 절이게 했다.
'참 어여쁜 얼굴이야. 이런 아들만 있다면, 세상살이가 버겁지만은 않을텐데......'
아이의 볼을 스다듬자 부드러운 피부가 손바닥에 따뜻하게 만져졌다.
세수를 하고 아이를 위해 토스트를 구웠다.
아침을 먹지 않는 서희에게 아침을 준비하는 것은 여간 번거러운 것이 아니었다. 비록 빵한조각이지만, 출근을 준비하는 서희에게는 쪼갤수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화장을 하고 침대쪽을 돌아보자 아직 빈은 자고 있었다. 아이를 깨워 내 보내야 했다. 자신의 마음을 포근하게 만드는 예쁜 아이였지만, 돌려 보내야 할 것이다.
[빈아, 일어나야지....]
아이를 흔들어 깨우자 가냘픈 몸뚱이가 배시시 눈을 떴다. 가벼운 아이를 일으켜 세웠다. 서희가 입힌 커다란 흰 티가 아이의 어깨를 송두리째 드러냈다.
[자, 세수하고 가야지.....]
빈이 화장실로 들어가자 서희는 옷을 갈아 입었다.
서희가 출근 준비를 마칠 즈음 아이가 화장실문을 열었다. 서희는 밤새 말랐을 아이의 옷을 빨래줄에서 걷어 다시 아이에게 입혔다. 아이를 식탁에 앉히고 토스트를 건네자, 아이가 서희를 빠꼼히 바라 보았다.
[아줌마는....안 먹어요?]
[응, 아줌만 원래 아침을 안 먹어....]
아이가 빵을 한 조각 배어 물며 시무룩한 표정을 지었다.
[왜? 빵이 맛이 없어?]
[....아니오.....]
[그럼 왜 그래? 자, 우유도 마시면서 먹어.]
[저.......]
[빈아, 왜?]
[나, 오늘 하루만 여기 더 있슴.......안 되요?]
빈이 접시에 빵을 내려 놓으며 서희를 쳐다 보았다. 아직 어린 아이인데도 그 표정에서 인생사를 느끼게 했다. 아이의 표정이 서희를 슬프게 했다. 기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하루 더 있게해도 될성도 싶었다. 하지만 곧 서희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안되 빈아. 여긴 니가 있을데가 아니야.]
[그치만.....]
[자, 너희 집을 찾아보자.]
[전.....전 집이 없어요.]
[그럼?]
[.....몰라요.]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 떨어졌다. 영롱하고 맑은 커다란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서희는 아이가 울게 잠시 내버려두었다. 아이에게 화장지를 주었다. 아이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이 귀여워 서희는 자기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매달았다.
[.....그럼 일단 파출소라도 가자.]
[싫어요 !]
[얘가 왜 그래? 아줌마 회사 가야한단 말야. 너하고 노닥거릴 시간도 없다구....]
[하루만 더 있을께요. 아줌마가 자꾸 경찰서 가자고 하면 저 도망갈 거예요.]
빈이 떼를 쓰자 서희는 난감함에 빠졌다. 벌써 시간이 꽤 지나 출근할 시간도 빠듯했다. 아이와 실랑이하기에도 지쳐갔다. 어젯밤 아이와 만난 것이 금새 후회로 다가왔다.
[좋아. 그럼 어쩌면 좋겠니?]
[....오늘만 있을께요. 아줌마 회사 갔다 올때까지 밖에서 놀다가요, 아줌마가 집에 오면 다시 나도 오면 되잖아요.]
아이가 하는 입모양을 바라보다, 그렇게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거나 지금은 출근이 급했다.
[좋아. 오늘 하루만 더 생각해 보자.]
아이가 금새 헤하고 웃어 보였다.
아이가 웃자 서희는 더 없이 흐뭇한 기분이 들었다. 이미 아이의 표정에서 자신의 기분이 오락가락하자 서희는 야릇한 생각이 들었다. 빈이 토스트를 크게 베어 물며 서희를 바라 보았다. 맑고 영롱한 아이의 눈을 보자 서희는 금방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은 아침.]
서희가 사무실문을 연 것은 출근시간에 근 30분이나 지나서 였다.
[아따. 실장님이 이리 지각하는 때도 있네요.]
김 대리가 서희를 바라보며 눈을 흘겼다. 서희는 김대리를 쳐다보다 옆자리의 박 형진씨에게 눈이 갔다. 어젯밤 일이 걸렸는지 박 형진씨는 서희를 똑바로 쳐다 보질 못했다. 박 형진씨에게 눈길을 한 번 더 주고 자리에 앉았다. 이미 자신의 손을 기다리는 일이 책상에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일단 신제품의 디자인을 가지고 영업부장과 미팅을 하여야 했다. 이리저리 디자인을 챙기는데 미스민이 향긋한 커피 한잔을 책상에 올려 놓았다. 고마워 미스민을 쳐다보자 미스 민이 커피내음만큼이나 향긋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제 잘 들어갔지?]
[예, 실장님. 영업부 박 부장님이 빨리 오시래요.]
[알았어.....김 대리?]
[예......]
[극세 볼펜 디자인은 어디갔지?]
디자인 미팅은 점심시간이 돼서야 끝이 났다. 어젯밤 술자리와 무엇보다 빈과의 실랑이로 서희는 벌써 피곤이 물밀 듯 몰려 왔다. 세포 하나하나에 피곤이라는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서희의 몸을 점점 처지게 했다. 간신히 사무실로 들어오자 박 형진씨가 사무실에 홀로 앉아 있었다.
[아니, 미스터 박. 왜 점심 먹으러 안 갔어요?]
서희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박 형진씨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왜? ]
서희는 박 형진씨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금방 알 수가 있었다. 머뭇거리는 그를 내버려 두고 자리에 앉았다. 필시 그는 어젯밤 일을 사과할 것이다. 서희는 애써 위엄을 보이려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 허리를 뒤로 제쳤다.
[....어젯밤 일인데요.]
[그런데요.]
[....제가 술이 과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래서요?]
[......그래서 사과 드리려고 이렇게 실장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
박 형진씨의 표정이 일그러져 보였다. 덩치 큰 사내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아 그만 됐다고 했다.
[.....하지만, 어젯밤 택시 안에서의 무례에 대한 사과입니다. 실장님.]
[그건 또 무슨 말이지요?]
[실장님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까지 사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뭐라구요?]
[제가 술김에 말씀드린거라고 생각진 말아 주십시오. 제 평소의 생각을 술 힘을 빌어 말씀 드린거니까요. 하지만, 절 부담스러워 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직까진 실장님을 여자로 좋아하기 보단 능력있고 지적인, 거기다가 미모까지 갖춘 연상의 여인에 대한 연민이니까요.....]
서희의 머리가 더욱 욱신 거렸다. 그렇지만, 자신의 입장을 확실히 밝히는 요즘 아이들의 당돌함이 싫지만은 않았다. 자신이 그만한 나이일때는 이렇질 못했다. 어쩌면 지금도 자신은 박 형진씨의 당당함을 갖고 있질 못할 것이다. 박 형진씨가 서희에게 할 말을 다했는지 자기의 자리로 돌아 갔다. 서희는 그런 박 형진씨를 빠꼼히 쳐다 보았다.
[실장님. 약속 있으세요?]
김 대리가 힐끔 힐끔 시계를 쳐다보는 서희를 보고 한마디 했다. 퇴근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이었지만, 저녁을 도시락으로 때우고 디자인실 사람들은 일 속에 파뭍혀 있었다. 오후 4시가 지나면서 서희는 시계보는 시간이 잦아졌다. 빈이 어디 있을까,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하는 걱정이 서희의 뒤 꽁무니를 사정없이 잡아 당겼다.
[거, 실장님. 데이트라도 있는 모양인데, 먼저 들어가세요.]
김 대리 말에 서희도 일단 먼저 들어가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곤에 겹친 육체적 한계도 있거니와 무엇보다 빈에 대한 걱정이 서희를 이미 집으로 보내고 있었다.
[그럼......그럴까.....?]
서희가 디자인실을 돌아보며 핸드백을 챙기자 모두 의아한 눈빛을 서희에게 보냈다.
[허 참. 별 일이네..... 실장님이 바람이 나긴 난 모양이구만.....]
김 대리가 야릇한 미소를 지으며 서희를 쳐다 보았다. 박 형진씨는 사무실 분위기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하던 일만 계속하고 있었다. 서희가 핸드미러를 한 번 더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자 김 대리의 표정이 놀라움으로 변했다.
[아, 정말 퇴근 하실려구요? 뭔 일 있으세요?]
[나라고 먼저 퇴근 하지 말란 법, 있어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
[김 대리 말 대로 데이트 있어요. 됐어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서 한 번 더 거울을 보았다. 거울에서는 여전히 사무실 사람들이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식 한 번 웃어 보여주고는 사무실 문을 열었다.
[먼저 갈테니깐, 일 마무리 짓고 퇴근 하세요. 먼저 가 미안해요. 호호]
서희의 뒷 꽁무니를 보며 김 대리가 입맛을 다셨다. 박 형진씨는 그녀가 사무실 문을 연 후에야 머리를 들고 그녀의 뒷 모습을 바라 보았다. 그리고 바로 일어나 사무실 문을 열었다.
[어? 박 형진씨! 어디 가?]
사무실 문이 다시 열리는 소리에 서희는 뒤 돌아 보았다.
[아니, 박 형진씨 어디 가세요?]
[실장님. 잠시 얘기 좀 하고 가세요.]
[얘기 하자구요? 공적인가요, 사적인가요? 공적이면 잠시 시간을 낼 수 있지만, 사적이면 사양하겠어요. 박형진씨하고는 사적으로 할 얘기가 없는 것 같아서요......]
[잠시면 됩니다. 따라 오시지요.]
박형진씨가 성큼 거리며 앞장 서 걸어 갔다. 서희는 어이가 없어 그런 그를 쳐다 보았다. 몇 발자국 앞서 걷던 박 형진씨가 뒤를 돌아보다 그대로 서있는 서희의 팔을 이끌었다.
[아니, 박 형진씨 미쳤어요?]
박형진 씨는 서희의 팔을 이끌고 비상 계단으로 나갔다. 그리고 담배 한 개비를 피워 물었다.
[박 형진씨! 내가 당신 여자친구로 보이나요? 이거 왜 이래요? 보자 보자 하니깐, 당신 상사가 한갓 당신 연애 상대로 밖엔 안 보여요?]
어쩔수 없는 상황이 서희를 당황스럽게 했다. 그녀는 비교적 위엄있는 목소리를 낼려고 노력했으나, 갈라져 나오는 목소리를 어쩌지는 못했다. 어색하고 민망한 기운이 비상계단에 가득 찼다. 쩌렁 쩌렁 울리는 서희의 목소리가 오히려 분위기를 더욱 시큼하게 했다.
[실장님. 어딜 이렇게 서둘러 가세요?]
박 형진씨가 담배를 뻐끔 거리며 피우다 서희를 쳐다 보지도 않고 물었다. 그의 실루엣이 심각하여 서희도 순간 흠찟 놀랬다. 이미 그의 본심을 알기에 서희는 상사의 위엄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비상계단에는 상사와 부하보다는 나이 많은 여자와 그 보다 조금 어린 남자가 있을 뿐이었다. 남녀의 관계란 사회적 규범도 한순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서희는 30여년의 세월속에서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남 녀의 관계란 어느 정도의 선만 넘어서면 나이란 거추장스러운 것도 아무 부담이 되질 않는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바로 잡지 않으면 서희는 그의 억지에 한없이 무너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한순간에 급박하게 무너져 내릴수 있는 여자라는 것도 누구보다 서희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누구보다 외로움에 익숙한 그녀였지만, 그리고 고독이라는 얼음으로 꽁꽁 얼어붙어 있어 차가운 여자였지만, 누군가의 잠시의 관심이라는 촛불이 조금만 그 얼음에 닿으면 금방 녹아내릴 수 밖에 없는 연약하고 소심한 여자라는 것을 누구보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기도 했다.
[박 형진씨! 당신 지금 나한테 무슨 짓이죠? 당신이 뭔데 그딴걸 물어보냐고?]
[궁금 합니다. 가르쳐 주세요.]
[그리고 박 형진씨 여자 친구도 있다고 했지 않나요? 그 여자도 당신이 나한테 이러는 거 알고 있어요?]
[그 여자하고는 정리 할겁니다. 어차피 맞지 않는 상대이고, 이미 내 마음은 실장님에게 온통 가 있으니까요. 나도 미치겠어요 !]
[이 사람, 정말 미쳤구만. 당신 조심 해!]
서희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위엄과 권위를 한껏 가슴에 품고서 그에게 독설을 퍼 붙고는 휙하고 뒤돌아 섰다. 순간, 자신을 세차게 끌어안는 아귀에 그만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너무나 힘 있는 포옹이었기에 그녀는 벗어날 수도 없었다. 그리고 푹신하고 뜨거운, 담배 내음이 배어있는 입술이 차가운 자신의 입술에 닿을 때 그녀는 정신을 차릴수 있었다.
짝 ~ !
[개 자식!]
서희는 비상 계단문을 휙 열고 쏜살 같이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금방 박 형진씨가 뒤따라 오기라도 한다는 듯 그녀는 회사를 빠져 나갔다. 자동차를 운전하면서도 아직 정신을 차릴수 없었다. 박 형진씨의 당돌함이 그녀를 낯설은 풍경으로 자꾸 이끌었다. 이제 먹을만큼 먹은 나이인데도 남자의 사랑이 어색하게 다가왔다. 첫사랑의 설레임에 가슴 아파할 나이는 이미 지났는데도 서희의 가슴은 오피스텔에 도착할때까지 마구 뛰었다.
박 형진씨는 그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 사실이 그녀를 한 없이 가슴 뛰게 했다. 그리고 뜨겁게 했다. 사랑받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 그것이 그녀의 심장에 뜨거운 물결을 일렁이게 했다. 그것은 알 수 없는 혼돈의 상태였다. 박 형진씨의 행위가 괴씸하였지만, 밉지는 않았다.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서희의 가슴을 뜨겁게 달구었다. 아직 여자로서의 관심을 잃지는 않았다는 뿌듯함이 피를 뜨겁게 했다. 회사 상사이기 이전에 여자로서 어필하였다는 믿기지 않은 사실이 서희를 아늑하게 했다. 오피스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한참을 앉아 있자 마구 뛰던 가슴이 진정되며 이성적으로 안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