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화 (4/30)

동훈이는 농구공을 집어들고 먼저 일어섰다. 명철이도 엉덩이를 털며 따라온다.

[윤지연 선생님이 10대 시절에 놀았다니 말도 안돼.]

머리카락 한 올의 흐트러짐도 허용하지 않을 듯 단정하고 깔끔한 윤지연 선생님의 모습. 예배불참에 대한 벌

로 기술실에서 마주 앉아 성경공부를 하던 때가 떠오른다. 동훈이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 교회에서도 고등부

로 승격될 것이기 때문에 윤지연 선생님과 가깝게 마주할 기회는 아마 없을 것이다.

성재가 부러워진다. 난 친구가 없어요, 난 불쌍한 아이에요 라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윤지연 선생님의 손을 잡

고 놓지 않던 성재 녀석. 윤지연 선생님은 그런 성재를 애틋하게 바라봐 주었었다. 윤지연 선생님은 성재를 

보며 흐뭇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에서 동정심과 사명감을 엿볼 수 있었다. 하나님 앞으로 인도할, 길잃은 

어린 양을 만났다는 희열도 언뜻 보였던 것 같다.

[보통은 어린 양들은 하얀데. 성재는 조금 까만 편이니까. 어린 양이 아니라, 어린 흑염손가. 흑염소즙이 

그렇게 정력에 좋다던데.]

윤지연 선생님이 성재를, 아니 어린 흑염소를 끌고 가는 모습이 연상된다. 그런데 어느 틈에 흑염소는 비닐포

장된 흑염소즙으로 바뀌어 있다. 윤지연 선생님이 흑염소즙이 든 비닐팩을 살랑살랑 흔들며 기분좋게 걷다가

입에 대고 꿀꺽꿀꺽.

"야, 최동훈. 뭐해? 가위바위보 하자니까!"

명철이의 고함소리를 듣고 동훈이는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리고 농구공을 퉁퉁 튕기며 명철이에게 다

가갔다.

"알았어. 자. 가위, 바위, 보! 보! 보."

머리가 지끈거리는 불쾌감에 은혜는 눈을 떴다. 거실 소파다. TV가 켜져있다. 보다가 잠깐 잠이 든 모양이다.

[시간이.? 음. 아직 동훈이 오려면 조금 남았네.]

뒷목도 뻣뻣하다. 은혜는 목을 빙빙 돌리며 주방으로 휘척휘척 걸어갔다.

[오늘 저녁은 뭘 해서 먹이나.]

냉장고를 열어보는데 신통한게 보이지 않는다. 아무래도 낮잠을 너무 오래 잤다. 조금만 자고 저녁 찬거리를

사러 나갔어야 했다.

[지금 빨리 갔다올까? 시간이 애매하네.]

동훈이가 학원수업을 마치고 들어올 때 덩그러니 빈 집을 보게 하기는 싫다. 공부하느라 고생한 아들의 무거운 

가방을 받아주고 따스하게 포옹도 해주고 싶다. 그리고 스트레스도 한바탕 풀어주고 싶다.

한바탕. 한바탕 진~하게.

"엄마는 창녀같아."

며칠 전 동훈이가 내뱉은 그 한 마디가 아직도 은혜의 가슴을 울린다. 되새길 때마다 머릿속이 웅웅거리고, 가

슴은 서늘해지고, 아랫도리가 찌르르 떨린다.

창녀라는 호칭은 여자 입장에서는 절대로 듣고 싶지 않은 말일 것이다. 기분이 더럽고 서글퍼질 것이다. 만

약 동훈이 아빠가 은혜를 향해 창녀같다고 했으면 그날로 이혼이다. 남편에게 그런 멸시를 당하고도 같이 살 

여자는 세상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들 동훈이로부터 들었을 때의 느낌은 아주 달랐다. 혹시 귀여운 아들이 하는 이쁜 짓으로 보였다면 

미쳤다고 욕할까?

[원래 그런거 아니겠어? 이쁜 놈은 뭘해도 이쁘고, 미운 놈은 뭘해도 밉고.]

착하고, 열심히 공부하고, 부모 말씀 잘 듣는 착한 아들이라는 믿음이 있는 한, 은혜의 눈에는 동훈이의 어떤 말

과 행동이라도 사랑스러워 보일 것 같다. 

[남자가 원래 조금 거친 면도 있어야 멋있는 법이지. 암.]

아들 동훈이가 야성적이고 멋진 사내로 커가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생각에 은혜의 모성이 뿌듯해졌다. 조금더 

거칠어져도 문제없을 것 같다.

[그나저나 저녁에 진짜 뭐해서 먹이지? 요몇일 생선만 먹었으니까 닭이라도 사서 매콤하게 볶아줄까.]

한번은 일식우동집에 갔다가 모녀덮밥이라는 것을 시켜먹은 적이 있었다. 동네근처에 새로 개업한다고 요란

하게 광고전단지를 뿌리고, 사은품도 준다기에 아는 아줌마들 몇 명과 같이 갔었다. 물론 미숙이 언니도 함께.

그런데 모녀덮밥이라는 거창한 이름과 달리 닭살에 계란얹은 것에 불과한 초라한 모습에 무척 실망했었다. 

"모자덮밥 왜 안돼? 노른자가 암컷이 될지 수컷될지 어떻게 알어?"

로부터 시작해서,

"그럼 부녀덮밥도 되겠네. 닭이 아빠일수도 있잖아."

라는 말까지. 아줌마들이 주둥이를 나불대며 양이 적다, 맛도 별로다, 값은 비싸다 등등 말들이 많았었다. 

나중에 모녀덮밥이 암시하는 성적인 의미를 우연히 접하고는 질색을 하며 놀랐다. 엄마와 딸을 어떻게 한 남자

가.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영화 <닥터 지바고>에서 엄마의 정부가 딸에게 키스를 하는 장면이 기억났다. 

[남자들은 정말 욕심도 많아. 아으으. 소름끼쳐.]

소름이 돋은 이유는 남편과 동훈이가 한 자리에서 동시에 은혜를 덮치는 장면을 상상했기 때문이다. 

[그럼 부자덮밥이 되는건가? 아서라. 그렇게 먹다 체하게.]

- 때드르릉, 때르르릉.

갑자기 집전화가 울린다. 십중팔구 아들 동훈이일 것이다. 은혜는 반갑게 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동훈이니?"

대답이 없다. 잠시 대답을 기다려본다. 그래도 조용하다. 

"누구세요?"

약간 앙칼진 목소리. 동훈이가 아닌 것같아 실망이다.

"나야, 나. 희진이 엄마. 지금 현관문앞에 있어. 춥다. 문좀 열어줘."

"미숙이 언니?"

그랬다. 미숙의 목소리였다. 

[왜 왔어? 인사하러? 귀국인사 같은거 안해도 되는데.]

은혜는 미숙의 목소리를 듣고도 아무런 감정변화없이 담담하기만 한 것에 놀랐다. 오랜만에 목소리를 들어서 

그런지 아무 일 없었던 예전의 두 사람으로 돌아가 통화를 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잠깐만 기다려봐. 지금 열어줄께."

은혜는 전화기를 내려놓고 현관문을 향해 사뿐사뿐 걸어갔다. 

"얼굴이 반쪽이 됐네? 아무래도 그쪽 음식이 입에 잘 안 맞지?"

미숙은 차대접을 사양했다. 둘은 식탁을 두고 마주보며 앉았다. 은혜의 말투가 둘 사이가 틀어지기 전처럼 부

드럽고 평온하다.

"우우. 은혜야. 미안한데 자리 좀 옮겨야겠다. 내가 지금 무슨 냄새만 맡으면 넘어와서."

미숙이 코를 잡고 일어서며 거실 소파로 향한다. 은혜는 기분이 상했다.

[킁킁. 아니 무슨 냄새가 난다구 저렇게 유난이래? 부엌냄새가 다 그렇지. 지네 집은 안 그래?]

미숙이 거실소파에 앉는 바람에 은혜가 앉을 자리가 애매해졌다. 당연히 옆에 앉기는 싫고, 마주보고 바닥에 

앉자니 미숙을 올려다 봐야 한다. 은혜는 점점 기분이 잡치기 시작했다. 결국 앉을 자리를 결정 못하고 미숙의 

앞에 섰다.

"앉어. 너한테 보여줄거 있어서 그래."

미숙은 백에서 서류봉투를 꺼내 탁자 위에 놓았다.

"이게 뭔데?"

"앉아서 안에 든건 꺼내봐."

은혜의 심장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드라마 <사랑과 전쟁>에서 많이 본 봉투다. 봉투를 열어보면 불륜사진이 

수도 없이 후두두두 떨어질거다.

"안에 뭐. 들었는데? 사진이야?"

"맞아. 사진이야."

은혜는 다리에서 힘이 주욱 빠지며 나락으로 떨어져 내리는 느낌을 받았다. 두 손을 짚고 털썩 주저앉아버린다.

[사진 맞다구? 그럼 정말 동훈이랑 내가 붙어먹는 사진?]

은혜는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불륜사진을 전문으로 찍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장소가 어디든 상관하지

않는다고도 들었다. 

[내, 내가. 부, 분명히 조심했는데. 무, 문단속도 확실히.]

은혜는 필사적으로 떠올려본다. 언제 찍힌 것일까? 지난주 목요일 아침일까? 아니면 동훈이가 졸업여행 다

녀온 날? 어디서 찍힌 걸까? 동훈이 방? 아니다. 거기는 절대 아니다. 그럼 거실? 맞다. 거실이다. 거실 

밖에 없다.

"왜 그렇게 놀라니? 아직 사진도 안봐 놓구선."

미숙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가득 배어있다.

[의기양양하겠지. 꼬투리를 확실히 잡았으니. 무서운 년. 이런 날만 기다렸겠지.]

은혜는 봉투로 손을 내밀었다. 손이 벌벌 떨린다. 미숙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기는 죽도록 싫지만 도저히 진정

되지 않는다. 그냥 불륜도 아니고 근친상간의 증거가 찍혔다. 하늘이 무너져도 절대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이 

지금 은혜에게 일어나고 있다.

- 툭!

봉투를 기울이자 사진 한 장이 떨어진다. 한 장. 달랑 한 장. 

[응? 한 장 뿐이야?]

더구나 흑백사진이다. 게다가 새카맣게 인화되어 뭘 찍었는지 도저히 알아보기가 힘들다.

[만세! 만세! 그럼 그렇지. 내가 얼마나 조심했는데.]

은혜의 얼굴이 금새 환희로 가득찬다. 이정도 사진으로는 은혜를 협박할 수 없을 것이다. 사진은 은혜나 동훈

이의 모습을 전혀 알아볼 수 없게 찍혀있다.

"이게 뭐야? 뭘 찍었길래 이렇게 시꺼매?"

은혜가 사진을 들고 미숙을 향해 흔들어 보였다. 제법 안정을 찾은 말투다.

[이 따위를 증거라고 내밀어. 헛돈 썼다, 이년아.]

"어머. 너 동훈이 낳은지 오래되서 다 까먹었구나? 그거 초음파 사진이잖아. 아기 초음파 사진."

"초음파 사진? 그런걸 왜 나한테 보여줘?"

은혜가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멍한 얼굴로 묻는다.

"어머! 은혜, 니가 안보면 누가 보니? 니 손자 사진인데. 후후. 아직은 손자인지, 손녀인지 몰라. 의사가 

안 가르쳐주더라고. 힌트도 안 주네. 우리땐 힌트라도 줬었는데. 그지?"

미숙의 목소리가 명랑하다. 여유와 자신감이 있다. 뽐내는 느낌도 든다.

"우, 우리 동훈이 애기란 말야?"

은혜는 숨이 턱턱 막혀서 똑바로 말하기가 어려웠다.

"응. 정확히 말하면 나랑 동훈이 애기지. 너는 할머니가 되는거구. 너, 생일 안 지났으니까 아직은 40살이

네? 나이 40이면 아직 한창 땐데. 할머니 소리 들으면 조금 억울하겠다. 호호호."

미숙은 그동안 준비해왔던 말을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놓는다.

아기가 세상으로 나와 말을 배울 때가 되면 가장 먼저 할머니라는 말을 가르칠 생각이다. 엄마, 아빠라는 말

은 늦배워도 서운하지 않다. 가르쳐서 은혜를 향해 줄기차게 부르도록 할 생각이다.

"희동아, 할머니.하고 불러봐."

"희동아, 할머니 저기 가신다."

"희동아, 할머니 한테 인사해야지."

"희동아, 할머니 한테 안아달라고 해."

그렇게 하루에도 수십 번씩 할머니라 불리며 은혜는 매일매일 허리가 굽고 얼굴은 쭈글쭈글해질 것이다. 그래

서 미숙보다도 훨씬 먼저 꼬부랑 할머니가 되어버릴 것이다.

그것이 미숙이 생각해낸 가장 큰 복수다. 

"내가 사진보는 법 가르쳐줄께. 이쪽이 머리고. 요게 팔. 요게 다리. 아직은 모르겠지? 나도 처음엔 잘 

구분이 안됐었는데 자꾸 보니까 보이더라."

"어, 언니. 정말. 우리. 우리 동훈이 애기 맞아?"

은혜의 목소리가 다시 덜덜 떨리기 시작한다. 눈앞이 캄캄해지는 것같더니 물방울이 몇 방울 통통 떨어지며 비

로소 물결 너머로 회심의 미소를 짓고 미숙의 얼굴이 보였다.

"아, 글쎄. 내가 지금 바로 그걸 설명하려던 참이었어. 요거 보이지? 10w5d.10w는 임신 한지 10주됐다는

얘기고. 5d는 5일이상 7일미만. 그러니까 내가 임신한지 10주하고도 5일이 경과했다는 뜻이야. 계산해

보니까 작년 12월 2일이나, 3일 쯤이었나봐. 너도 기억하지? 그때 난 서울에 있었잖아."

은혜는 바닥에 두 손을 집고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끈임없이 흘러내렸다. 왜 눈물이 나는지는 모른다. 어지럽

고 토할 것처럼 가슴이 답답하기만 하다. 은혜는 그래도 혹시나 하는 생각에 미숙의 손에서 초음파 사진을 뺏어 

들고 이름을 확인해보았다.

- KIM MI-SUK

미숙의 영문 이름이 선명하다. 

[이 여자가 어쩌자고. 어쩌자고 이따위 짓을.]

아들 동훈이의 나이 고작 16살이다. 주민등록증도 못받은 중학생 꼬맹이다. 자기 앞가림하려면 아직도 10년

은 더 부모의 둥지에 있어야한다.

"도, 동훈이도 알아요?"

"아직. 이제 얘기해줘야지. 우리 애기 아빠, 언제 와?"

미숙의 빈정대는 듯한 말투. 욱하고 솟구치는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은혜는 미숙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았다.

"얘기해서 어쩌러구? 지워. 지우란 말야. 인정할 수 없어. 절대 인정할 수 없어."

미숙은 반항하지 않고 은혜가 잡아 흔드는 대로 몸을 맡겼다. 그러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지우고 말고는 우리가 상의해서 결정할 문제야. 니가 참견할 일이 아니지. 인정할 수 없다고? 흥! 넌 참 다

른 사람일에 인정못하는게 많기도 하구나. 지 근친상간은 잘두 인정하면서."

미숙의 꼿꼿한 말이 은혜의 가슴을 사정없이 쑤셨다. 은혜는 손에 힘이 빠지며 잡았던 미숙의 멱살을 스르륵 

놓치고 말았다.

"그, 그래. 내가 잘못했어. 내가 정말 잘못했어. 언니가 하자는 대로 다할께. 그러니, 제발. 애기만은 

애기만은 지워죠. 제발 부탁이야."

은혜가 미숙의 종아리를 부여잡고 빌고 또 빈다. 자존심이 철저히 짓밟히고 있지만 그것이 문제랴. 아들 동

훈이의 장래가 걸린 절체절명의 순간이다. 동훈이는 애기의 존재를 알면 당연히 낳아야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게나 착하고 심성이 따뜻한 아들이다. 

그러나, 절대 낳아서는 안된다. 아이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거나 소홀히 하게될 것이 뻔하다. 독하디 독한 미

숙의 마수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결국 후회스런 젊은 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후. 은혜야. 여기 좀 앉아봐."

미숙이 은혜의 팔을 잡아 일으켜 소파에 앉혔다.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 너무나 지저분하고 초라해보인다. 

"나도 니가 말하는 그런 정도에서 끝낼까 하는 생각도 해봤어. 이 나이에 애를 낳으면 좋은 일이 더 많겠니, 힘

든 일이 더 많겠니. 게다가 아기를 볼모로 발목잡는거. 그거 참 치사한 짓이잖아."

은혜가 미숙의 두 손을 꼭 잡으며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한 점의 희망이라도 잡고 놓치지 않으려는 듯 

손아귀의 힘이 대단하다.

"근데. 너두 알지 그 느낌? 뱃속에서 아기 심장이 콩, 콩, 콩, 콩. 뛰는 느낌 말이야."

"그, 그래서?"

"낳을거야. 낳아서 잘 키울거야. 재민이, 희진이한테 못해준거 다해줄거야."

"언니! 제발 다시 생각해봐. 언니한테도 좋을거 하나없잖아. 아저씨가 아시면 어쩔거야? 아저씨가 모를 것 

같애? 설마 아저씨랑 이혼하고 우리 동훈이랑 어쩔 생각은 아니지?"

"이혼? 이혼같은건 안하니까 걱정마. 재민이 아빠는 모르게 할거야. 그리고, 재민이 아빠가 알고 모르고는 

나중 일이야. 지금은 오로지 건강하게 잘 낳는 것만 생각할래. 희동아, 할머니가 소리질러서 놀랬지? 걱정

말아요. 우리 할머니도 희동이 무지 이뻐해주실거에요. 태명을 희동이라고 지었는데 어때? 우리 희진이가 

붙여준거야. 희진이가 무지 좋아해. 남동생 생긴다구."

미숙이 은혜에게 잡혀있던 손을 빼내 배를 어루만지면서 말한다. 은혜는 그런 미숙의 행동을 보면서 등골이 오

싹해짐을 느꼈다.

"희, 희진이도 알아?"

"응. 임신한거. 아직은 희진이한테만 말했어. 희진이랑 붙어지내다시피 하는데 입덧을 자꾸 하는 통에 숨

길 수가 없더라구."

"언니! 언니, 제발. 한 번만 더 생각해줘. 우리 동훈이가 이 사실을 알면 얼마나 충격받겠어. 우리 동훈이 

인생도 생각해줘야지."

"말했잖니. 낳을거라고. 그러니까 그 부분은 더이상 얘기하지 말자. 동훈이가 낳지 말래도 난 낳을거야. 

그리고. 넌 아직도 동훈이를 그렇게 못 믿니? 동훈이가 이만한 일로 흔들릴 것 같니? 그렇게 못 믿으면서 어

떻게 몸을 대주고 사니?"

"지우지 못하겠으면 동훈이한테는 말하지 말고 비밀로 해줘. 어차피 동훈이 몰래 언니 혼자 가진거잖아."

"너 참 이기적이구나. 그럼 난 뭐가 되니? 그러다가 동훈이가 이 애를 재민이 아빠 애로 알면. 그러면 나를

다시 보려고 하겠니?"

은혜는 미숙의 말에 뭐라고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어쩌면. 이 일을 어쩌면 좋아.]

"은혜야. 미안하지만 물 좀 줄래? 미지근한 물이면 더 좋고."

미숙이 힘없는 목소리로 부탁했다. 어쨌든 임산부다. 은혜는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얼

굴의 눈물자국을 손바닥으로 문지르며 주방으로 갔다. 건조대에 엎어놓은 컵을 집는다. 물을 따르며 미숙을 

보니 백에서 동그란 약통을 꺼내고 있다. 얼굴이 무척 창백하다.

[임신중에는 약 함부로 먹으면 안되는데.]

이 와중에도 그런 걱정을 하는 자신의 모습에 은혜는 피식 실소를 머금었다.

"미안. 점심을 거의 못 먹었더니 조금 어지럽네. 걱정마. 이거 영양제야."

미숙이 은혜의 표정을 읽고 약통을 들어보인후 백에 갈무리해 넣었다. 역시 가까이 알고 지낸 40년이라는 긴 

세월의 흔적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다.

은혜는 그제서야 미숙의 얼굴이 헬쓱해진 이유를 정확히 알게 됐다. 미숙이 언니는 재민이를 가졌을 때도, 희

진이를 가졌을 때도 입덧으로 무진장 고생했었다. 밥냄새만 맡아도 속을 게우고 게우고 해서 은혜가 미숙의 집

에 며칠에 한번씩 가서 밥을 해주기도 했었다.

미숙이 희진이를 임신하고 4개월째 되던 때가 마침 1월 한겨울이었다. 입덧으로 며칠씩 고생하는게 안쓰러워

은혜가 시댁에서 받아온 제대로 익은 동치미를 한 통 가져다줬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밥은 한 술도 뜨지 않

고 동치미만 한 그릇 후딱 마셔버리고는 배를 두들기며 좋다고 웃는 것이다. 불쌍하면서도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습던지.

"언니. 점심 안 먹었으면. 동치미 국물에 국수라도 말아줄까?"

"응? 동치미 있니? 니 시어머니, 아직도 동치미 담가주셔?"

미숙이 대번에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미숙도 역시 그때 일이 생각나는가 보다.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입맛까

지 가볍게 다신다.

"내가 담근거야. 내가 담그기 시작한지 몇 년 됐어. 언니는 몰랐지?"

매년 겨울이 되면 미숙은 잊지 않고 그때의 먹어본 것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동치미였다고 노래를 부르곤 했

다. 그래서 말이 나올 때마다 은혜네도 아껴 먹는 동치미를 미숙에게 조금씩 나눠주곤 했었다.

은혜는 냄비를 꺼내 물을 붓고 끓이기 시작했다.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동안 김치냉장고에서 통을 꺼내 통째로 

담아둔 총각무 한 덩이를 꺼내 도마에 놓고 먹기 좋게 썰었다.

- 쩍, 쩍. 또각, 또각.

칼질하는 소리만이 고요한 집안에 울려퍼졌다. 은혜가 소면을 꺼내 끓기 시작한 물에 넣으면서 보니 미숙은 소

파에 등을 비스듬히 기대고 있었다. 두 손으로 아랫배를 감싸고 눈은 감았다. 얼굴 전체에 지치고 시달린 기색

이 역력했다.

"욱! 욱! 욱."

미숙이 갑자기 입덧을 하기 시작했다. 은혜는 삶아진 소면을 채에 담아 찬물로 씻어내다가 말고 행주에 손을 

닦은 후 급히 달려갔다.

- 툭, 툭, 자근자근.

은혜가 미숙의 등을 가볍게 두드리고 어루만져 주었다. 미숙의 얼굴이 극도로 창백해졌다.

"방에 들어가 있으랄 걸 그랬네. 국수 삶는 냄새가 역했어?"

"으응. 그랬나봐. 웁, 우웁."

하필 이 때, 초인종이 울린다.

은혜는 미숙의 등을 문질러 주느라 초인종 소리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초인종이 몇 번 더 울리더니,

- 삑, 삑, 삑, 삑, 삑, 삑, 삑! 띠리리리. 철컥.

현관문이 열린다. 미숙이 먼저 문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제야 은혜도 누가 왔다는 걸 알고 얼굴을 돌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다가 은혜와 미숙을 보고 우뚝 서버린 그 사람.

그 사람은 바로 동훈이였다.

- 후루룩. 후루룩. 아드득, 아드득.

"하아. 맛있다. 은혜야, 정말 맛있네. 니 시어머니가 담그신 거보다 열배는 더 맛있는 것 같아."

미숙은 결국 소면은 입에 대지 않았다. 동치미만 청해서 한 방울도 남김없이 맛있게 먹어버렸다. 동훈이는 곁

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어정쩡하게 서있었다. 엄마 은혜가 가까이에 있기 때문에 만나서 기쁘다는 표정도 맘

껏 짓지 못했다.

일단은 남의 집 불구경하듯 미숙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나, 거실 바닥이 어수선한 것도 그렇

고, 미숙이 선생님이 동훈이네 집에서 혼자만 동치미 국물을 마시고 있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미숙이 선

생님의 얼굴이 너무 안 좋아 보이는 것도 눈에 거슬렸다.

"은혜야. 동훈이한테는 내가 말할께. 동훈아, 잠깐 니 방으로 좀 가자."

"어, 언니. 저, 저기. 우리끼리 얘기 좀 더 하고나서."

은혜가 초조한 얼굴로 안절부절 못하며 미숙의 팔을 잡고 매달린다.

"걱정마. 어차피 언젠가 알게될 거잖아. 내가 얘기 잘 할께. 동훈아, 들어가자. 미안하지만 은혜 너는 밖

에서 좀 기다려줘."

따라들어오려는 은혜를 막아 세우고 미숙은 방문을 닫았다. 은혜는 동훈이의 방문 앞에서 털썩 주저앉았다.

"선생님! 오셨으면서 왜 연락 안하셨어요? 전화도 안 받으시구. 걱정했잖아요!"

동훈이가 미숙을 품에 안으며 침대위에 앉았다.

"미안해. 몸이 안 좋아서 그랬어."

"지금도 얼굴이 무지 안 좋으세요. 어디가 아프신거에요?"

"동훈아, 손 이리 줘봐. 호~ 호~"

미숙이 동훈이의 두 손을 잡고 입김을 불고 데우는 시늉을 잠시 하더니 원피스 자락 밑으로 잡아 끌었다. 그래

도 여전히 차가운 동훈이의 손바닥에 따스한 온기가 느껴진다.

"왜요?"

"가만히 있어봐. 어때? 뭐 느껴지는거 없어?"

미숙은 그녀의 손을 떼고 동훈이가 스스로 아랫배를 만지게 했다. 동훈이가 잠시 아무 말없이 무언가를 느끼려 

애쓴다.

"아무 것도 안 느껴지는데."

"정말? 안 느껴져? 이리 누워봐."

미숙이 거리를 조금 벌리게 한 후 동훈이가 그녀의 허벅지위에 눕도록 했다. 그리고 원피스자락을 위로 한껏 

걷어올려 아랫배의 맨살이 드러나도록 했다. 

"배에 귀를 대고 조용히 들어봐. 그래도 들리는게 없나."

동훈이가 미숙이 시키는대로 귀를 대보았다. 또 잠시 그렇게 가만히 있었다.

"안 들리는데."

"진짜 안 들려? 잘 들어봐. 숨을 죽이고. 콩, 콩, 콩, 콩. 난 들리는데. 콩, 콩."

"선생님. 선생님 혹시 임신하셨어요?"

동훈이가 미숙을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얼굴 가득 피어오르는 의혹의 그늘. 그것이 무엇에 대한 것

인지 미숙은 잘 안다. 미국에 있는 동안 재민이 아빠와의 사이에서 생긴 것 아니냐는 의혹이다.

"니 아기야. 동훈이 너랑, 내가 만든 아기."

"네? 정말요?"

동훈이가 상체를 벌떡 일으켜 앉으며 미숙을 똑바로 쳐다본다. 의혹의 그늘은 걷혀 있다. 그러나, 기뻐하는 

얼굴을 아니다.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할 것같은데 진심으로 기쁜 표정이 지어지지 않아서 얼떨떨해 하는 

얼굴이다.

[아직 실감이 안나겠지.]

재민이 아빠도 그랬었다. 너무나 쭈글쭈글해서 사람꼴이 아니던 재민이를 안고 있으면서도 아빠가 된게 실감

나지 않는다고 했었다. 재민이가 처음 분명치 않은 발음으로 아빠라고 부르며 달려가 안겼을 때 비로소 진심

으로 감격하는 표정을 지었었다.

"동훈이 니 생각은 어때? 아기. 낳을까, 말까?"

"당연히 낳아야죠. 당연한 걸 물으세요."

동훈이가 다시 미숙의 아랫배에 귀를 대보며 고개를 갸웃갸웃 한다. 

"안 들리는거 억지로 들을 거 없어. 아직은 아기가 작아서 심장소리도 아주 약해. 잘 안들리는게 정상이야."

"선생님."

동훈이가 미숙의 두 손을 맞잡고 지그시 바라본다. 표정이 복잡하다. 무슨 말이라도 해서 미숙을 위로든, 격

려든 하고 싶은데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 눈치다.

"사랑한다고 말해줘. 그 말이 제일 듣고 싶었어."

"사랑해요. 사랑해요, 선생님."

동훈이가 미숙의 얼굴로 다가갔다. 입술을 살짝 내밀고, 눈까지 감는게 키스를 하려는 태세다.

[동치미 먹고 입안도 안 헹궜는데.]

키스를 다소곳이 받아들일까, 말까 고민된다. 그냥 입술만 살짝 대고 마는 정도라면 기꺼이 응하고 싶다. 너

무나 오랫동안 갈구해 왔던 동훈이의 입술이다.

- 쪼오옥.

동훈이의 입술이 차분히 부딪혀왔다. 그리고 얼마동안 입술만으로 미숙의 입술을 어루만졌다. 그것만인데도 

충분히 감미로운 느낌이 들었다. 막힌 곳이 뚫리고, 얼었던 몸이 녹아내리는 느낌이다.

"읍, 흡."

마침내 동훈이의 혀가 입술을 두드리기 시작했을 때 미숙은 한순간도 버티디 못하고 말았다. 입을 활짝 열어 

동훈이의 혀를 받아들였다. 

- 쪼옥, 쪼오옥, 할짝, 할짝.

동훈이의 혀가 집요하게 미숙이 입안을 헤집었다. 사랑하는 이와의 정열적인 키스. 더우기 사랑하는 이의 분

신을 몸안에 품고서 그에게 안겨있다. 정신적인 충만감을 말로 다할 수 없을 지경이다.

"앗! 여보! 거기는 조심해야되요. 아직 상처가 완전히 아물지 않았어요."

동훈이의 오른손이 미숙의 왼쪽 브래지어 밑으로 파고 들려할 때였다. 미숙이 키스하던 입을 떼더니 동훈이의 

손을 황급히 잡아챘다.

"왜 그래, 미숙아?"

"잠깐만요. 제가 보여드릴게요. 눈 감아보세요."

동훈이는 미숙의 요구대로 눈을 꼬옥 감았다. 

- 부스럭, 부스럭, 뚝. 부우욱.

미숙은 브래지어를 벗겨 내렸다. 그리고 등뒤의 지퍼를 내리고 젖가슴이 보이도록 원피스를 벗었다.

"이제 됐어요. 눈 떠도 돼요."

동훈이가 눈을 떠 미숙의 젖가슴을 쳐다보았다.

"아! 이게 뭐야? 젖꼭지에 피어싱한거야?"

"네! 맞아요. 어때요? 보기 흉해요?"

서양여자들이 간혹 젖꼭지나 배꼽, 보짓살 등에 피어싱을 한다는 얘기는 전부터 들어 알고는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 은혜에 대해 질투심과 모멸감을 느끼고 뭐든 은혜가 할 수 없는 것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던 중, 미국에서 

피어싱 해주는 샵을 발견하게 됐다.

그러나, 그 샵의 문을 열고 들어설 때까지는 많은 고민이 있었다.

[안에 이상한 남자들만 있는거 아닐까. 비위생적인 도구때문에 세균에 감염되서 젖꼭지가 썩어 문드러지진 

않을까. 남편에겐 뭐라고 하지.]

일단 남편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귀국을 며칠 앞둔 날짜를 택했다. 그리고 막상 들어가보니 다행히도 위생문제

는 안심할 수 있는 샵이었다. 기술자도 여자였다. 그대신 가격이 꽤 비쌌다.

아이를 낳으면 조금이라도 모유를 먹여야한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왼쪽 젖꼭지에만 구멍을 뚫고 젖찌를 달았

다. 굳이 왼쪽 젖꼭지에 한 것은 동훈이가 오른손잡이인 걸 감안했기 때문이다. 젖찌는 덧나지 않는 것으로 반

지 정도크기의 고리에서부터 수갑만큼 큰 고리까지 여러 가지를 구입했다. 

지금 달고 있는 젖찌는 반지 크기의 둥근 고리다.

"우와. 너무 섹시하다. 와. 보기만 해도 좆이 꼴려서 미칠 것 같애. 이거 당겨봐도 돼?"

"살짝만요.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아서 쓰라려요. 아아아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동훈이가 젖찌를 지그시 당겨본다. 신기한 장난감을 본 아이마냥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

러나 눈빛은 점차 이글이글 타오른다. 아이의 눈빛이 아니다. 수컷의 눈빛이다.

"으으. 씨발. 미숙이 너. 졸라 야하다. 어떻게 젖꼭지에 피어싱할 생각을 다했어?"

"아읏. 그거야. 자기한테 이쁘게 보일려고 한거죠. 나 이뻐요?"

"이뻐 죽겠어. 아흐. 씨팔. 이렇게 당기면 느낌이 어때?"

"흐으읏. 아직 쓰라리긴 한데. 짜릿짜릿하기도 해요."

"이잇, 이잇. 하하. 씨발. 진짜 죽인다. 젖 늘어나는거 좀 봐."

동훈이가 젖찌를 주욱 당기니 미숙의 젖이 들려서 포탄모양으로 길게 늘어진다. 통증이 느껴지는지 동훈이가 

젖찌를 잡아 당기는 방향으로 가슴을 한껏 내민다.

"하아앙. 동훈씨. 우리 희동이가 들어요. 이제부턴 예쁜 말만 골라 쓰세요. 태교 해야죠."

"하하. 정말 그래야겠네? 근데 이름이 희동이야? 미숙이 니가 지었어?"

"태명 아시죠? 뱃속에 있을 때 부르는 이름. 희진이가 희동이라고 부르고 싶대요. 부르기 괜찮아요?"

"좋은 걸. 희동이. 희동이. 근데 아들이야, 딸이야?"

동훈이가 미숙의 왼쪽 젖가슴을 어루만지며 묻는다. 젖찌를 잡고 계속 당겨보는게 꽤나 마음에 드는가보다. 

효과만점이다.

"자기는 뭐였으면 좋겠어요?"

"글쎄. 음."

"딸이었으면 좋겠죠?"

"헤헤. 응. 미숙이 넌?"

"난 자기 쏙닮은 아들이었으면 좋겠어."

딸을 낳으면 미숙이보다 딸을 더 예뻐할까봐 솔직히 겁난다. 동훈이도, 은혜도 희진이가 커가는걸 보면서 얼마

나 군침을 흘려대던가.

"앞으로 출산할때까지는 섹스하면 안되는거야?"

"아이잉. 해도 되요. 근데 조심할게 한 가지 있어요. 자기는 자지가 큰 편이니까 제 보지에 너무 깊이 넣지 

않도록 조심해야되요. 너무 깊이 넣으면 자궁에 닿아서 희동이한테 안 좋거든요."

"알았어. 너무 깊이 넣지 않는다. 깊이 넣지 않는다. 근데 얼마까지 넣을 수 있는거야? 귀두만? 아니면 

자지 중간까지?"

"그거야 넣어봐야 알죠."

"히히히. 그럼 지금 넣어볼까?"

"어머! 지금요? 밖에 자기 엄마 계시잖아요."

동훈이는 엄마 얘기가 나오자 미숙의 젖가슴을 어루만지던 손길을 멈추고 움찔 놀란다. 피어싱한 젖가슴에 열

광하느라 바깥에서 엄마 은혜가 엿들고 있을 거란 생각을 미처 못했다.

"그럼 이건 어떡해? 니가 젖에 피어싱한 거 보구 잔뜩 꼴렸는데."

"미안해요. 자기. 보다시피 내가 오늘은 학교 수업도 하고, 병원도 갔다오고 해서 힘이 하나도 없어요. 입

덧하느라 먹은 것도 별로 없고요. 집에 가서 쉬었으면 좋겠어요. 오늘은 이렇게 서로 얼굴 본 걸로 만족해

요. 내일도 있고, 모레도 있잖아요. 내가 잘 먹고 기운차려서 자기 뿅가게 잘 해줄께요."

"치이. 지금 하고 싶은데."

"아이 참. 나 좀 봐주세요."

그래도 동훈이가 욕정을 참지 못하고 젖찌를 신경질적으로 잡아당기자 미숙은 난감했다. 피어싱한 것은 숨겼

다가 나중에 보여줄 걸 그랬다는 후회가 든다.

잠시 그렇게 죄없는 젖꼭지만 시달리고 있다가 미숙의 머리에 문득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동훈씨, 가서 엄마 좀 불러봐요."

"엄마? 엄마는 왜?"

"두번 말하게 하지 말고 불러나 봐요. 나 힘없어요."

"알았어. 엄마~ 엄마~"

- 찰칵, 쿵.

동훈이가 은혜를 부르는 사이 미숙은 브래지어를 올려차고 원피스를 제대로 갖춰입었다. 등뒤에 팔을 돌려 지

퍼를 올리는데 은혜가 들어선다. 세수를 했는지 아까의 눈물, 콧물 자국은 찾아볼 수 없었다.

"난 왜 불렀어? 둘이 얘기 다 끝났어?"

은혜의 얼굴엔 원망이 가득하다. 

[동훈이 모르게 어른들끼리 해결하자니까. 너무해, 언니.]

"얘기는 다 끝났는데. 은혜 너한테 내가 부탁할게 좀 있어서."

"무슨 부탁인데?"

은혜는 아까 동치미 챙겨주듯이 미숙의 집으로 종종 가서 끼니를 챙겨달라는 부탁이면 단호하게 거절할 생각이

다. 예전 재민이 때나, 희진이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혹시 입덧으로 고생하다가 마음이 바뀔지도 모른다. 아

기나 미숙이 언니가 불쌍하기는 하지만, 앞으로 벌어질 복잡한 상황과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다름이 아니구. 지금 동훈이가 몹시 하고 싶대. 그래서 니가 좀 도와줬으면 해서."

미숙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은혜와 동훈이의 눈들이 동그래진다. 동훈이는 얼굴이 빨개지고, 은혜는 질겁을 하

며 놀란다.

"선생님!"

"언니!"

"새삼스럽게 놀라는 척 할 거 없어. 내가 일부러 부탁안해도 둘이 알아서 잘 하겠지만. 은혜야. 오늘은 내가

특별히 좀 부탁할께. 네가 아까부터 봤다시피 내가 지금 몸이 너무 안 좋아. 그래서 동훈씨한테 몸을 대줄 

수가 없네. 내 대신 동훈씨한테 서비스 좀 잘 해줘."

"언니."

은혜는 어안이 벙벙하다. 한편으론 쥐구멍이 어디냐 싶고, 다른 한편으론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어련히 알아서 잘 대줄까봐?]

하던 짓도 멍석 깔아주면 안한다고. 미숙을 보기 전에 동훈이의 스트레스를 어떻게 풀어줄까 궁리하던 때와

달리 은혜는 마음 한 구석에 반발심이 생기며 몸이 뻣뻣하게 경직되는 걸 느낀다. 동훈이를 슬쩍 보니 창피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헤벌레 좋아하는 것 같기도 한 것이 미묘한 표정이다.

"은혜야, 얼굴 좀 풀어라. 진심으로 하는 말이니까 너무 고깝게 듣지는 마. 그래서 내가 부탁한다고 했잖아.

동훈씨. 아쉬워도 참고, 오늘은 엄마랑 해요. 알았죠? 제가 부탁해놨으니까 자기 엄마가 오늘은 특별히 더

잘해줄거에요."

[흥. 누구 맘대로.]

그런데 동훈이의 눈초리가 점점 심상치 않아진다. 미숙에게 고맙다고 말하는 듯한 눈짓을 몇 번 하는 것 같더

니, 은혜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눈빛이 영 느끼하다. 은혜는 참다 못해 소리를 빽 질렀다.

"뭘 그렇게 이상한 눈으로 자꾸 봐? 엄마 처음 봐?"

"에이. 엄마. 소리지르면 우리 희동이 놀래. 소리는 지르지마."

[허이구. 이 속도 없는 것아. 니 엄마가 지금 소리 안 지르게 생겼냐? 좀 있으면 할머니 소리 듣게 생겼는데.]

- 치지직.

금요일이긴 해도 들어설 때는 늦은 오후였는지라 고깃집에는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소갈비 4인분

을 시켜 석쇠위에 올려놓고 몇번 뒤집는 새 사람들이 자글자글 꼬이기 시작한다.

"동훈이 엄마, 오랜만에 왔네. 난 또 이젠 안오려나 했지. 길건너 새로 생긴 집으로 옮겼나 했어."

고깃집 주인 아줌마가 주방에서 나오다가 은혜 일행을 발견하고 다가와 반가운 척을 한다. 민아 엄마다. 

[나도 그럴까 하다가 이리 온거에요. 솔직히 오기 싫었어요.]

처음엔 동네에서 좀 멀리 떨어진 패밀리레스토랑이나, 초밥부페집으로 가려고 했었다. 그런데 인원수와 밥값

을 곱하니 들어갈 돈이 어마어마하다. 게다가 그 식당들은 미숙이 언니, 희진이와 곧잘 갔던 곳이다. 다시 가

기가 괜히 꺼려진다.

그래서 만만하다고 고른게 고깃집이고, 민아네 집이다. 새로 생긴 고깃집에 가볼까 생각도 해봤다. 어떤 이가 

민아 엄마 모르게 가봤는데 개업한지 얼마 안되어 손님을 끌어모으려 그러는지 고기인심이 꽤 후하다고 했었다. 

"분식집하는 기영이 엄마 알지? 그래, 그 뚱뚱한 아줌마. 그게 글쎄 그 집으로 우리 단골 여럿 빼갔어. 내가 

그 집 떡볶이랑 김밥을 얼마나 많이 팔아줬는데. 사람이 한 동네 살면서 의리가 있어야지."

직접 보진 못했지만 실제로 둘은 길에서 만나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대판 싸웠다고 한다. 은혜가 민아라는 애를 

싫어하면서도 결국 이 집을 찾은 이유다. 같은 동네사는 처지에 타지사람 팔아준다고 원망받지나 않을까 하는 

불편한 마음으로 먹은 고기가 제대로 소화될 리 없을 것 같다. 

"민아야, 여기 동훈이네 사이다 2병 서비스로 갔다 드려라."

민아라는 말에 은혜가 흠칫 놀라 주인 아줌마가 부르는 쪽을 보았다. 민아가 앞치마를 둘러 걸치며 대답한다.

"알았어, 엄마."

민아가 냉장고에서 사이다를 꺼내 들고 은혜네 테이블로 왔다. 누군가를 향해 찡긋 웃어보인다. 은혜가 그 웃

음이 향하는 곳을 눈으로 쫓으니 동훈이가 실실 웃으며 민아의 미소를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다.

"안녕하세요."

민아가 은혜를 향해 고개를 살짝 숙여 인사하더니 다시 동훈이 쪽을 향해 엷게 웃어 보이고 돌아섰다. 은혜는 

들고 있던 젓가락으로 테이블 밑에서 동훈이의 허벅지를 찔렀다.

은혜 생각에 학교에서 남자들만 따로 모아놓고 여자고르는 법을 가르쳤으면 좋겠다. 어디 여자가 없어 민아같

은 날라리 여우에, 미숙이 언니같은 중늙은이 아줌마란 말인가. 

어제 저녁 먹기 전 알몸으로 안겨 동훈이의 가슴팍을 뜯으며 대충 그런 내용의 푸념을 했었다. 그랬더니 이 놈

의 아들놈이 엄마 은혜한테 한다는 소리가.

"그럼 엄마는? 엄마도 내가 잘못 고른건가?"

"어허! 그건 다르지! 니가 엄마를 고른게 아니라 내가 널 골라 낳은거야."

"아니, 그건 낳은거구. 아니, 그리고. 엄마가 고른것두 아니잖아. 내가 나올 걸 알고 낳은건가 뭐? 그냥 나

오는대로 낳은거면서."

동훈이의 반박에 은혜는 더할 말이 많았지만 말문을 닫아버렸다. 동훈이 말이 절반 맞고, 은혜의 말도 절반은 

틀리지 않다. 은혜는 처녀적에 한번 애기를 지운 적이 있다. 동훈이 아빠를 만나기 전이었다. 

아기의 영혼이 하늘나라에서 줄서서 기다리다가 차례가 되어 이 세상 엄마의 몸속으로 날아들어 오는 것이라

면, 동훈이는 아마도 은혜가 아닌 다른 누구의 아들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처녀적에 지운 그 아기를 그대로 낳

았다면 말이다.

중절수술로 겪은 육체적 고통도 심했지만 정신적인 충격은 더더욱 감당해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 뒤로 한참

동안이나 고기에 손도 못댔다. 긁어낸 아기의 생살을 씹는 듯해서 죽이나 국물같이 후루룩 마실 수 있는 것 외

에는 다른 음식은 입에 넣기도 싫었었다.

그래서 미숙이 언니에게 동훈이 아이를 지우라고 말한 순간 그 때의 상처가 다시 찢어지는 것같은 아픔을 느꼈

다. 미숙이 언니 뱃속에 있는 아기에게도 미안하고, 예전에 지워버린, 이름도 지어주지 못한 그 아기에게도 너

무나 미안했다. 그래도 이를 악물 수밖에 없었다. 동훈이를 위해서.

"언니. 쟤, 이 집 딸이야?"

영재와 성재에게 소갈비를 먹기 좋게 잘라주면서 동생 은선이가 민아에 대해 물었다.

"응."

"동훈아, 너 쟤랑 아는 사이니? 보니까 너한테 아는 체 하는 것 같던데."

"네, 이모. 같은 반이에요."

"그래? 애가 참 착하네. 밖에 놀러 안가고 부모님 가게에서 도와드리고. 동훈아, 너랑 친하니?"

[친한 정도가 아니란다. 은선아. 너는 상상도 못할 걸. 저 어린 년이 얼마나 발랑 까졌는지. 착해? 흥.]

발랑까지기로 말하면 동훈이의 좆이 발라당 잘 까지기는 한다. 아직 포경수술도 안 시켰는데. 초등학교 들어

가기 전에 시킬까 하다가 팔다리에 작은 생채기만 나도 빽빽 울어제끼는 어린 동훈이의 맷집을 믿을 수가 없어 

지금까지 미뤄 왔었다. 방학 때마다 한번씩 이번에는 시켜줄까 하고 고민했었는데, 요즘 생각엔 굳이 그 아까

운 살가죽을 덜어낼 필요가 있을까 싶다. 덜어내서 누구 좆에 얹어줄 수 있다면 또 모르겠지만.

"언니나, 나나. 왜 딸 복이 없었나 몰라. 난 그래도 우리 영재는 딸일 줄 알았는데. 언니! 언니는 동훈이 

하나잖아. 지금이라도 하나 더 낳을 생각 없어?"

"얘가. 미쳤니? 내 나이가 지금 몇인데. 동훈이가 비웃어. 농담도. 얘. 하유. 참. 징그럽게."

은혜의 눈엔 지금도 미숙이 언니가 미친 것처럼 보인다. 점점 불러올 아랫배가 상상하기만 해도 징그럽다. 동

훈이는 미숙이 언니가, 기미와 주근깨가 버글버글한 43살 아줌마가 자기 애를 임신한 것을 어떻게 생각할까. 

아직은 물어보지 못했다. 자꾸 아기 이야기를 했다가 출산이 기정사실로 굳어질까 두려워서다. 어떻게든 미

숙이 언니를 설득해볼 참이다. 동훈이는 아직 미성년자이고 어리니까 엄마가 하자는 대로 따라주겠지.

"제부는 오늘 진짜 못 오는거야?"

"응. 아까 집에서 나올때 전화해 봤는데. 내일 오후에나 일이 끝난데."

"일 끝나면 집으로 바로 들어오고 그래?"

"아니. 그냥 안 들어와. 또 진탕 마시고 들어오겠지 뭐."

"이번에 보니까 예전보다 얼굴색이 더 안 좋아졌더라. 간이 안 좋은거 아니니?"

"몰라. 검사 좀 해보쟤도 말을 안 들어. 근데 형부는?"

"어. 퇴근하고 바로 온댔는데. 아마 7시나 돼야 올걸?"

"언니, 고기 더 시키자."

"그래. 더 시켜. 얼마나 더 시킬까. 3인분? 4인분?"

"언니, 소갈비 말고 돼지갈비로 시켜. 소갈비는 비싸기만 하고 양이 너무 적잖아. 우리 애들은 돼지고기를 더 

좋아해."

다음날 토요일 오후.

"김선생님은 몇 학년 신청하셨어요?"

"2학년. 박샘은?"

"저두 2학년이요. 둘다 2학년 맡게 되면 정말 좋겠어요."

"그러게."

미숙은 오전 나절에 교감선생님을 조용히 만나 임신한 사실을 알리고 신학기에 2학년 담임을 맡게 해주면 고맙

겠다고 부탁했다. 아울러 임신 사실은 당분간 비밀로 해달라고 했다. 교감은 굉장히 놀라면서도 임신을 축하

해주고 앞으로의 일을 걱정해주었다. 출산예정일이 9월이기 때문에 2학기에는 미숙이 휴가를 낼 것이고 학교

측에서는 미숙의 담임반을 맡아줄 임시교사를 채용해야 한다. 

옆반 박선생은 아마도 2학년을 맡기 힘들 것이다. 수업부담이 적은 저학년 담임은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아이들과 같이 올라가 4학년을 맡을 가능성이 가장 크고, 운이 나쁘면 5학년, 최악의 경우 수업부담이 

가장 큰 6학년을 맡게될 것이다.

"주말 잘 보내세요."

"박샘도 주말 잘 보내."

미숙은 차를 몰아 학교를 벗어났다. 처음엔 집으로 방향을 잡는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꿔 동훈이네 아파트 

쪽으로 운전대를 돌린다.

- 딩동, 딩동. 철컥!

"미숙이 언니! 뭐야? 이젠 전화도 안하고 막 쳐들어 와?"

"미안, 미안. 집에 없으면 그냥 돌아가려고 했어."

거짓말이다. 동훈이에게 전화를 걸어, 집에 아저씨가 계시는 날인지, 은혜는 어디 외출할 일 없는지 등등 세세

히 알아보고 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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