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5/30)

"어떻게 할거야? 할름, 할름. 내 말대로 할거야?"

"동훈아. 아까처럼 해줘. 아까처럼."

"해줄께. 엄마가 대답만 하면."

동훈이는 이제 아예 입도 혀도 떼버린 채 엄마 은혜의 대답을 재촉했다. 은혜는 천정을 보고 누운 채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헐떡이기만 한다. 환한 대낮이 아니었다면, 안방이 아니었다면, 열흘만의 관계가 아니었다면 

동훈이의 요구에 응해주는데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 찰싹, 찰싹.

"어떻게 할거냐구요. 시간은 자꾸 갑니다."

동훈이가 손바닥으로 은혜의 보짓살을 가볍게 때렸다. 은혜는 아랫도리에 찌릿찌릿 번개가 내려앉는 것 같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짜증도 조금 나려고 한다. 남자들은 잠자리에서 여자를 애태우는 방법으로 원하는 모든 것을 

얻어낼 수 있다고 착각한다. 때로는 그런 착각에 영합하여 순순히 져주는게 편하기는 하다.

"아, 알았어. 니 말대로. 니 말대로 할께. 니 말대로."

"하하하. 정말이지? 약속했다? 그럼 지금부터 시.작!"

동훈이는 드디어 해냈다는 성취감에 가슴이 뿌듯해졌다. 미숙이 선생님이 먼저 비슷한 성취감을 주긴 했지만 

엄마 은혜에게서 얻어낸 것이 훨씬 더 큰 것 같다. 우여곡절이 더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섹스할 때가 아닌 평

범한 일상생활속에서 엄마 은혜로부터 공손한 대접을 받는 느낌은 어떤 것일지 무척 궁금하다.

[말이 고와야 행동도 고와진다구? 흥. 웃기셔. 두고 보자. 진짜로 그렇게 되는지.]

교언영색이라고 했다. 여자의 장기다. 오르가즘까지도 진짜처럼 지어내 보일 수 있는 존재가 바로 여자다. 

[아들이 해달라고 보채는데 그까짓거 해주지 뭐. 그런다고 혓바닥이 닳아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불안하니까 자기 방에 가서 해요. 네?"

"히히히. 알았어, 엄마. 자. 일어나."

동훈이는 흡족하게 웃으며 은혜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안방문을 나선다.

- 푸욱, 푸욱, 쪼옥, 쪼옥. 푹, 푹, 쪽, 쪽.

"헉, 헉. 엄마. 씨발. 니 보지 진짜 쫄깃하다. 헉, 헉."

"흐윽, 흐윽. 여보오. 팍, 팍 박아주세요. 세게, 더 세게. 흐윽, 흐윽. 보지를. 보지를. 찢어줬으면 

좋겠어."

오랜만의 관계인데다가 남은 시간이 촉박하다는 초조함때문에 행위에 두서가 없다. 자지를 거칠게 박다가 문

득 멈추고 침이 질질 흐르도록 질펀한 키스를 나누기도 하고, 은혜가 위에 올라타 앉아서 미친 소 날뛰듯 보지

를 흔들어대다가 제풀에 지쳐 동훈이의 가슴팍에 쓰러져 거친 숨을 몰아쉬기도 한다. 

수습을 빨리 해야하기 때문에 옷도 다 벗지 못했다. 은혜는 팬티만 벗었고, 동훈이는 무릎까지 까내렸다. 자

세는 다시 정상위다. 동훈이는 엄마 은혜의 면티와 브래지어를 겨드랑이까지 젖가슴을 꺼내 유두를 핥으며 말

했다.

"엄마. 보지에 싸도 돼? 오늘 안전한 날이야? 헉, 헉."

"하아, 하아. 안전한 날이긴 한데. 하아, 하아. 입에다 싸요. 입으로 받아줄께요. 하아, 하아."

"왜? 헉, 헉."

"보지에 싸면 흘러나오기도 하고. 하아, 하아. 입으로 받아서 치우는게 제일 깔끔해요. 냄새도 적게 나고."

"아아. 그렇구나. 그럼 먹을거야?"

"먹을까요?"

은혜가 배시시 웃는다. 이마와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발그레 홍조띤 볼이 섹시하다. 사랑스

럽다. 동훈이는 좆질 속도를 늦추며 혀를 내밀어 엄마의 코끝과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핥아먹었다. 은혜가 간

지러워하며 눈을 찔끔 감았다가 다시 뜬다.

"아앙. 간지러워."

"어? 너 방금 요자 안 붙였어!"

"어머. 무서워라."

"어? 또? 이게. 아까 약속해놓고 안 지키네?"

"그 정도는 봐줘야죠. 되게 빡빡하게 구시네. 요!"

은혜가 혀를 비죽 내민다. 주민증을 까보지 않아도 아줌마임을 역력히 알 수있는 얼굴이지만 동훈이의 눈에는 

귀엽기 그지 없는 한 마리의 어여쁜 암컷이다.

"엄마, 너는 참. 이모랑 많이 다르다. 둘이 친자매 맞어?"

"이모 얘기는 갑자기 왜 해요? 기분 이상하게. 요!"

"아니. 이모는 정말 여자 안 같은데. 엄마는 참 여성스러워서 좋다는 생각이 들어."

"여자를 여자로 만드는건 남자래요."

"그런거야?"

[그럼 이모를 여자로 만드는건 어떤 남자일까?]

이모 은선도 잘 생긴 남자를 좋아할까? 남자답게 우락부락한 사람? 아니면 곱상한 샌님스타일? 지적인 모습

에 끌릴까, 아니면 근육질 몸매에 더 끌릴까? 연하는 좋아할까? 20살 어린 남자의 앞에서도 여자로 변할까?

최소한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은 알 것 같다. 

"내가 어디가 어떻게 여성스러워요?"

"너는. 일단 젖이랑 보지가 여성스럽잖아."

"에게? 겨우 고거? 여자치고 젖가슴 안 나오고 보지 안 뚫린 여자없구만."

"너어? 또 요자 안 붙인다!"

"앗! 미안. 요!"

동훈이가 주먹쥐고 꿀밤먹이는 시늉을 하자 은혜가 고개를 살짝 돌려 피한다. 그 모습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후후. 지금 이런 모습이 좋아. 귀엽고, 사랑스럽고. 음. 또. 엄마는 애교도 있고. 통통 튀는 맛도 있

고. 그 중에 제일 맘에 드는건. 나한테 순종하는 모습. 그게 가장 여성스러운 것 같애."

"흐응. 앞으로가 걱정이네요. 공부하세요. 양말 좀 뒤집어 놓지 마세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세요. 이게 

뭐에요? 이런 식으로 어떻게 엄마 노릇을 해요? 잔소리 안하고 모아 놨다가 자기 아빠 있을 때나 왕창 몰아서 

해야 할까봐. 요!"

"하하. 그러던가. 니 맘대로 해. 우리 엄마, 무지 과묵해지시겠네?"

"아잉. 정말 농담 아니라. 불편해요. 그냥 우리 똑같이 반말하고 말 트는 정도로 하면 안되요?"

"에이. 그건 여지껏 그래왔잖아."

투덜거리면서도 잊지 않고 말끝마다 요자를 붙여 존대말을 해주는 엄마 은혜가 기특하다. 사실 동훈이가 뭐라

건 은혜가 반말을 해버리면 그만이다. 물론 그랬다가는 다시 보지에 거미줄치는 신세가 되어버리겠지만.

"남자들은 참 이상해요. 같이 자고 나면 꼭."

매너좋고 점잖던 남자도 손잡고, 키스하고, 잠자리를 같이 함에 따라 호칭이 점차 낮아지곤 했었다. 은혜씨에

서 야로 순식간에 추락해버린다. 

"꼭, 뭐?"

"아니에요, 그냥 그렇다구요."

"니가 하는거 봐서 가끔 야자타임 줄께."

"치. 되게 선심쓴다. 요!"

"아빠 언제 오실까? 얼마나 남은 것 같아?"

"우웅. 한 40분?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릴수도 있구요."

"아, 씨발. 안 싸고 오래오래 했으면 좋겠다. 엄마, 너도 그렇지?"

"그럼요! 당연하죠! 며칠을 굶었는데요. 난 정말 미치는 줄 알았어요."

은혜가 아들 동훈이의 좆을 잔뜩 힘주어 조이면서 말했다. 동훈이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나온다.

"흑! 우와! 역시 이 조임. 엄마, 니 보지는 정말. 대단해. 야! 씨발. 간다."

- 찌걱, 찌걱, 쑤걱, 쑤걱, 퍼억, 퍼억, 퍽, 퍽, 퍽, 퍽.

간다는 말과 함께 동훈이가 서서히 속도를 높여가며 좆을 박아댄다. 은혜의 두 다리는 가슴쪽으로 한껏 밀어올

려져 엉덩이가 침대바닥에서 부웅 떴다. 은혜의 두 허벅지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동훈이는 두 팔로 버티고 정열

적으로 자지를 박았다. 브래지어 밑으로 삐져나온 젖가슴이 출렁거린다. 단단하게 발기한 젖꼭지도 춤추듯 

흔들렸다. 입으로 젖살을 덥석 베어무니 몽실몽실한 감촉이 아주 황홀하다.

은혜는 동훈이의 웃옷 속으로 두 손을 넣고 맨살을 어루만졌다. 알몸이 되어 온몸으로 남자의 체온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이제 이렇게 화해했으니 내일이고, 모레고 그럴 기회가 올 것이다. 그러나 당장 오

늘 이 순간 그럴 수 없다는게 너무나 안타깝다.

"흑, 흑. 엄마. 씨발. 흑, 흑. 은혜야. 헉, 헉. 니 보지 같이 생긴 건. 또 없겠지?"

"하악, 하악. 왜요? 또 있으면 어쩌게요? 하악, 하악."

"아니, 그냥. 헉, 헉."

엄마 은혜와 이모 은선은 친자매다. 둘을 놓고 보면 친자매인걸 알 정도로 얼굴이 많이 닮았다. 얼굴이 닮았다

면 젖과 보지도 비슷할 것 같다. 그게 궁금할 뿐이다. 이모 은선에게 특별히 남자로서 흥미가 있다는 건 아니

다.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알고, 짠 지 싱거운 지는 먹어봐야 안다. 이모 은선의 보지에 자지를 살짝만 담가보

고 싶다. 젖가슴도 조금만 빨아볼 수 있으면 좋겠다. 키스도 물론 해봐야 한다. 그래야 남자들이 줄 선 이유

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남자들마다 자지 생긴게 다르듯이. 하아, 하아. 여자도 모두 보지가 다르게 생겼대요. 하아, 하아. 내 보

지랑 똑같은 보지는 찾기 힘들걸요?"

"그럼. 헉, 헉. 쌍둥이는? 헉, 헉. 쌍둥이도 다르게 생겼을까?"

"우웅. 쌍둥이는 같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러엄. 자매는? 모녀는? 사촌은?"

자매는 어떨것 같냐고 물어보려다가 엄마 은혜가 이상하게 생각할까 두려워 모녀와 사촌을 덧붙인다. 

"아이. 몰라요, 몰라.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동훈이는 잠시 입을 다물고 좆을 박는데 열중한다. 누워있느라 약간 퍼진 은혜의 젖가슴살을 두 손으로 모아 

거칠게 주무르며 생각에 잠긴다.

[이모가 눈치챈 것 같다고 하면. 엄마는 기절하겠지? 어쩌면 너무 놀라서 심장이 멎어버릴지도 몰라.]

동훈이를 떠봤듯이 이모가 엄마 은혜를 떠보기라도 하면 큰일이다. 엄마 은혜에게 어렴풋하게라도 미리 언질

을 줘야할까? 방심하다가 대책없이 당하는 것보다는 마음의 준비를 해두는게 낫지 않을까?

[아니다. 엄마는 미숙이 선생님 앞에서도 당당했잖아. 그래. 엄만 좀 뻔뻔한 데가 있으니까.]

"아유우웅. 미치겠네, 정말. 하앙, 하앙. 오빠아. 나 갈거 같아요. 좀만 더. 좀만 더."

은혜가 두 손으로 입을 덮고 다급하게 터져나오는 신음소리를 필사적으로 막는다. 동훈이는 그대로 자세를 고

정한 채 같은 방향, 같은 힘으로 좆을 박았다. 

"흐읍, 흐읍. 고대로만, 고대로만. 좀만 더. 좀만 더."

요자를 왜 안 붙이느냐고 추궁할 상황이 아니다. 엄마 은혜의 입에서 새어나오는 신음소리는 점차 작아지고 

있다. 흥분이 한껏 고조될 때 나타나는 반응이다. 폭풍전야의 고요와 비슷하다. 

고요한 시간은 잠시, 폭풍같은 절정이 은혜의 몸을 덮쳐온다.

"하압, 하압, 하압, 하압, 하아아아아압. 흑, 흑, 흐으윽."

동훈이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다. 보지에서 자지를 빼어 은혜의 입가로 가져간다. 보짓물이 묻어 번들번들

하게 윤기나는 좆대를 잡자 손바닥이 미끌어진다. 절정이 휩쓸고 간 뒤라 녹초가 되어 버린 은혜가 가만히 누

워서 입을 벌려주었다. 

"허윽! 씨발! 윽, 윽."

은혜의 입안 깊숙이 자지를 박아넣고 동훈이는 몸을 부르르 떨며 좆물을 싸대기 시작했다. 은혜는 볼이 옴폭 

패이도록 동훈이의 자지를 조여 좆물을 짜내준다. 좆물이 목구멍을 간지르며 목울대를 넘어가도 은혜는 하릴

없이 받아마실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이라 좆물이 내뿜는 향기는 전보다 더욱 더 진하고 진득한 질감이 몇 배

는 더 비릿하다. 

- 날름, 날름.

은혜가 동훈이의 자지를 입 밖으로 뱉어내고 한 손으로 잡았다. 오줌구멍으로 꾸역꾸역 흘러나오는 우윳빛 좆

물을 혀 끝으로 핥아 먹는다. 동훈이는 그때마다 감전되기라도 한 듯 몸을 움찔움찔 떤다.

- 폭, 폭, 폭, 폭.

은혜는 동훈이의 자지를 귀두까지만 삼키며 말끔히 빨아주었다. 좆물은 한 방울도 남김없이 은혜의 뱃속으로 

넘어갔지만 방안에 은은하게 밤꽃향기가 퍼지는 것까지는 막지 못했다. 그러나 이 정도는 창문을 열고 잠시만 

환기시키면 금새 지울 수 있다. 동훈이는 팬티와 바지를 치켜 입으며 엄마 은혜의 옆으로 쓰러졌다.

- 철퍼덕!

"후우. 엄마. 싸우는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애. 싸우고 나서 오랜만에 먹어서 그런가. 엄마 보지가 

더 맛있네."

동훈이는 은혜에게 팔베개를 해주었다. 은혜가 일어나서 팬티를 찾아 입고 브래지어를 내려 옷매무새를 가다

듬은 후 머리매무새까지 단정하게 만진 다음 동훈이의 팔에 머리를 대고 다시 눕는다.

"평소에는 뭐라고 불러주면 좋겠어요? 동훈씨? 자기? 여보? 오빠?"

"너 부르고 싶은 대로 불러. 부르는 사람 맘이지 머."

"아이 참. 이상하다. 계속 존대말 하려니까."

"야! 너 또 요자 안 붙였어!"

"아유! 정말 쫀쫀하게, 남자가. 혼잣말이잖아요, 혼잣말!"

"그런거 없어. 내 앞에선 무조건 존대말하는거야. 자꾸 예외주면 머리꼭대기까지 기어오르려구?"

"어머! 어머! 말하는 것 좀 봐. 기어오른다는 표현은 어른이 손아랫사람에게 쓰는거에요. 자기는 나보다 나

이도 한참이나 어리면서."

"야. 존대말 받는 사람이 어른인거지. 나이가 무슨 상관이야. 항렬 따지는 거 봐. 항렬이 먼저지, 나이가 

먼저야?"

"웃기셔. 항렬로 따져도 내가 위네요. 아들이 항렬이 높아요, 엄마가 항렬이 높아요?"

"아, 그러니까 내 말은."

동훈이가 말문이 막히자 눈알만 도르륵도르륵 굴린다. 은혜는 그런 아들의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아줌마의 

입담을 인생경험이 아직 일천한 10대소년이 당해낼 리 만무하다. 그러나, 이대로 기를 죽이면 안되겠기에 은

혜는 아들 동훈이를 슬쩍 거들고 나선다.

"알아요, 알아. 자기는 내 서방님이니까 자기가 항렬이 더 높다는거."

부부 사이는 촌수가 없다. 세상 누구보다 가장 가까운 사이라서 그렇다고도 하고, 언제든지 갈라설 수 있는 남

남이라 그렇다고도 한다. 그런 부부 사이에 항렬을 따져 매긴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양성평등을 지향하는 현

대적인 부부관을 적용해도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그러나 논리를 뛰어넘고 원리원칙에 맞춰지지 않는 것이 바

로 남녀관계 아니던가.

"그, 그래. 내 말이."

"아웅. 서방님. 우리 서방님."

은혜가 동훈이의 가슴에 꼬옥 안긴다. 영영 떨어지기 싫은 것처럼 찰싹 달라붙으며 한쪽 다리를 동훈이의 다리

위에 올린다. 동훈이는 치맛자락 밑으로 드러난 은혜의 다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토요일에 놀러가기로 한 거. 가지 말까?"

"왜요?"

"엄마 너랑 나랑 화해하라고 가자고 하신 것 같은데. 우린 이렇게 화해했으니까 굳이 갈 필요없잖아. 선생님

이 고생하실 것 같아서 그래. 우리 땜에 고생하시면 미안하니까."

"이야, 우리 아드님 생각도 참 깊으시네요. 근데 온천욕은 임신부한테 좋아요. 오다가다 차안에서 조금 불편

하긴 하겠지만."

은혜는 동훈이가 미숙을 걱정하는 말을 듣고 있자니 마음이 썩 편치는 않다. 미숙이 언니를 질투하고 미워하는 

마음은 많이 없어졌지만 여자로서 그런 마음을 완전히 버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자기는 가기 싫어요? 미숙이 언니 걱정되는거 말구요. 자기. 물놀이 좋아하잖아요."

은혜는 존대말이 입에 짝짝 붙지 않고 자꾸 겉도는 느낌이다. 역시나 일상 생활속에서도 친아들에게 존대말하

며 깍듯이 대한다는 건 쉽지 않다. 동훈이가 원하니 얼마간 계속 해보기는 하겠는데 그래도 익숙해지지 않으면 

읍소를 하건 몸로비를 하건 해서 바로 잡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야 물론 좋지."

"그럼 가는 걸루 해요. 미숙이 언니가 모처럼 가자는데. 우리 넷이 뭉친지 꽤 됐잖아요."

은혜는 옛날 생각이 떠올라 마음이 들뜬다. 미숙이 언니네와의 나들이는 항상 즐거운 추억을 남겨주곤 했었다.

이번 나들이는 조금더 특별하게 다가온다. 집을 벗어나 아들 동훈이와 낯선 곳에서 함께 머물다 온다는 것에 

가슴이 설레인다. 당일치기 여행이지만 잠시나마 해방감과 자유를 느낄 것 같다. 

"자, 자. 일어납시다. 환기도 시키고."

은혜가 벽에 걸린 시계를 보더니 벌떡 일어나 창문을 활짝 열었다. 그리고 이불과 시트를 차례대로 창밖에 내

밀어 턴다. 

- 촤악, 촤악.

"옷 따숩게 입고 밖에 좀 나갔다 와요. 아까 농구하러 간다고 했잖아요. 집에만 있었다고 하면 아빠가 기분나

빠 할거에요."

"아아. 나가기 싫은데. 낮잠자고 싶다."

"일어나세요, 도련님. 그러게 남의 여자 따먹는게 그리 호락호락 쉬운 일이 아니라구요."

은혜가 동훈이의 엉덩이를 톡톡 치며 일어나라고 재촉했다. 동훈이는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다가 마지못해 

일어나 옷을 챙겨입는다.

"참! 엄마! 나랑 내일이나 모레 옷 사러 가자."

"왜요? 봄옷 사게요?"

"아니. 나 말고. 엄마 꺼."

"내 꺼요? 내 꺼를 왜요? 옷 많은데."

"많긴 뭐가 많어? 아까보니깐 하나도 없더구만."

"일 없네요, 아드님! 자기 옷이나 사러가면 몰라도. 요."

"자꾸 토단다. 비싼거 사라고 안할테니까 같이 보러나 가. 알았지?"

동훈이는 엄마 은혜를 한껏 예쁘게 꾸며서 이모 은선의 앞에 내놓을 생각이다. 엄마를 자랑하고 싶다.

- 이모! 어때? 내 여자 예쁘지? 나, 눈 높지?

언젠가는 미숙이 선생님과 희동이를 자랑할 날도 올 것이다.

꼭 올 것이다.

다음날 오후, 은선은 성재의 수업이 끝날 시간에 맞춰 학교 앞으로 갔다. 교문에서 조금 떨어진 길 모퉁이에 서

서 성재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성재를 발견하는 즉시 눈치채지 않게 뒤를 밟을 작정이다. 교복입은 학생들이 

삼삼오오 걸어나오기 시작한다.

"처제. 이번 토요일에 뭐해? 특별한 일 없으면 우리랑 물놀이나 같이 가지?"

"물놀이요? 여름도 아닌데 벌써 수영장에 가시게요?"

"수영장은 수영장인데. 노천 온천풀도 있어. 어때, 처제? 시간돼지?"

"저희야 좋죠. 형부네하고 저희. 그렇게 두 집만 가는 거에요?"

어제 저녁 동훈이네 집 거실바닥에 다같이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워먹는 자리였다. 은선은 동훈이 아빠의 제안

을 듣고 언니 은혜를 쳐다보았다. 놀러갈 일이 있으면 언니 은혜가 먼저 얘기를 꺼내는게 자연스럽다. 언니 은

혜가 형부를 향해 못마땅한 표정을 짓는가 싶더니 금새 얼굴을 바꾸고 은선이를 향해 방긋 웃는다.

"희진이네두 가기로 했어. 원래 교원공제회에서 지은 시설이거든."

"아, 그래? 미숙이 언니가 가자고 했나 보네? 우리가 껴도 돼?"

"당연히 돼지. 내가 그러잖아도 얘기하려고 했어."

"거, 누가 얘기하면 어때? 처제. 그 날 장서방도 일 쉬고 같이 가자고 해. 돈 버는게 다가 아니야. 이렇게 가

끔 아이들하고 놀아주기도 하고 그래야지."

은선은 언니 은혜가 왠지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서 기분이 내키지 않았지만 성재와 영재를 생각해서 응낙했

다. 특히 성재를 위해서는 불편함을 무릅쓰고라도 여러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를 자주 만들어 줘야할 필요가 

있다. 동훈이를 잘 따르는 점도 고려했다. 동훈이와 반나절만 같이 보내도 며칠동안은 성재의 얼굴이 확연히 

밝아진다.

[언니가 날 조금 경계하는 것 같아. 동훈이는 별 내색을 안하는데.]

언니 은혜와 동훈이 사이에서 어떤 수상한 점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말투, 스킨쉽. 그 

어디에서도 일반적인 모자지간을 벗어나는 특이사항은 찾을 수 없었다. 언니 은혜의 얼굴에서도, 조카 동훈이

의 얼굴에서도 그늘진 부분이 보이지 않는다. 최소한 언니 은혜에게서는 한 점 부끄러움을 찾아낼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동훈이는 전과 다름없고, 언니 은혜는 계절 탓인지 약간 밝아진 느낌이다. 

언니 은혜가 은선을 대하는 태도가 다소 미묘하게 다르긴 했다. 거리를 두고 곁을 주지 않으려는 느낌이다. 

뜨거운 불에 한번 데어 본 사람은 그 불에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미숙이 언니와 둘이

만 꿍짝꿍짝 죽이 잘 맞아서 친자매인데도 은선이 소외감을 느끼도록 만든게 한두 번이 아니다. 새삼스럽지도 

않다.

- 와글, 와글. 어제 드라마에서. 복작, 복작. 이따가 학원 끝나고. 

크고 작은 아이들이 시끌시끌 떠들며 은선의 주위를 지나쳐갔다. 은선은 눈을 부릅뜨고 교문쪽을 바라본다. 

학생들이 갑자기 우르르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성재를 골라내는게 만만치 않다. 모두다 같은 교복을 입고 있으

니 모래밭에서 모래알 찾기인 셈이다. 한 가지 요령은 둘둘, 삼삼, 오오 짝지어 걷는 학생들은 무시하고 혼자 

외톨이인 아이에게만 신경을 집중하는 것이다. 

[학교에 정식으로 한번 찾아 가봐야겠어.]

어제 윤지연 선생님을 배웅하던 아들 성재의 환한 얼굴을 생각하면 가슴이 뭉클하다. 동훈이 이후로 그렇게나 

누군가를 반가워하고 좋아하는 모습은 처음 본다. 엄마의 마음이 그렇다. 자식이 좋아하는 것이라면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 주고 싶다. 할 수만 있다면 윤지연 선생님을 가정교사로 초빙하여 입주과외라도 시켜서 매일매

일 성재가 환히 웃게 하고 싶다. 성재도 이제 이성에 눈뜨는가 보다. 수줍은 얼굴로 윤지연 선생님이 내민 손

을 잡고 악수하던 모습이 떠오른다. 벌써 그런 나이라니. 

[얘가 아직 안 나온거야. 내가 놓친거야.]

교문 주변은 어느덧 한산해졌다. 시각을 보니 수업 끝난지 30여분이 지났다. 어차피 쉬울 것이라는 기대는 하

지 않았다. 하염없이 지키고 서있는 그녀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진다. 성재에게 핸드폰을 마련해 주어

야할까 보다. 그러나 친구가 없는 아이다. 부모와도 하루에 몇 마디 않는다. 핸드폰을 사주면 좋아하기는 하

겠지만 오히려 고독감을 더 크게 느끼게 되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외로워도 슬퍼도 절대 울지 않는 핸드폰. 핸

드폰은 울지 않을지 몰라도 주인이 울 것 같다.

오늘같은 날을 위해서라면 핸드폰이 쓸모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정처없는 기다림의 시간을 줄여줄 수 

있을테니까. 그러나 오늘같은 날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다. 성재가 밝고 강하게 자라 엄마의 뒤치닥거리를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언니 은혜가 몹씨 부럽다. 형부는 동훈이 하나뿐이라 내내 아쉬워 하지

만 동훈이같은 아들이라면 하나로 충분하다. 

물론 첫째 성재에게 실망해서 둘째 영재를 또 나은 건 아니다. 좋은 사주의 아이를 얻기 위해 합방시간까지 정

해서 부부관계를 갖는다는 믿지 못할 얘기를 들어봤다. 반면에 가질 계획이 없던 아이를 어쩔 수없이 낳게 되

는 경우도 있다. 어떤 사연이 있건 엄마의 입장에서는 똑같이 열 달을 배아파 낳은 소중한 자식이다. 그러나 

남자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후. 오늘은 허탕이네. 내일은 물어보고 나와야지.]

이미 1시간이나 지났다. 정문이 아니라 후문 쪽으로 하교한 것 아닌가 싶다. 성재가 눈치채지 못하게 넌지시 

하교길을 물어봐야겠다. 자식을 너무 과잉보호하는 것 아니냐고 혀를 찰 수도 있다. 아이들은 다 그렇게 크는 

것이니 어른이 일일이 참견하면 올바른 성장에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충고할 지도 모른다. 남의 

일이라고 쉽게 얘기하는 사람들이다. 

은선은 돌아섰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자주 교문쪽을 뒤돌아본다. 혼자 걸어나오는 아

이는 모두 성재같다. 외롭고 불쌍해 보인다. 

[나도 그렇게 보이겠지.]

손이 허전하다. 누구라도 집 근처까지만 손을 잡아주면 좋겠다. 은선은 몇 그루의 목련나무를 지나쳐 걸었

다. 목련나무 가지에는 순백의 꽃봉오리들이 봉긋하게 앉아 있다. 아직은 작고 동그랗다. 동글동글 귀여운 

둘째 영재의 얼굴이 연상된다. 

목련꽃이 활짝 피면 수많은 꽃가루가 제 짝을 찾아 훨훨 날아갈 것이다. 그리고 열매를 맺겠지. 

열매는 아마 모를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기적에 가까운 확률로 태어났는지도. 그 부모의 얼굴도.

둘째 날, 은선은 교문 앞에서 아들 성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녀가 낳아 키운 자식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한눈에

확 들어왔다. 어제는 왜 못 보고 놓쳤을까 싶다. 간격을 적당히 띄우고 뒤를 밟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터벅터

벅, 느릿느릿. 성재의 발걸음은 생기가 없고, 어깨는 추욱 쳐져 있다. 그런 식으로 학교 앞 대로변을 따라 집을

향해 걸어간다. 어쩌다 문구점에 멈춰서기도 한다. 쪼그려 앉아 게임에 열중하는 아이 두 명을 넋나간 표정으로 

바라본다. 그러다가 또 느린 발걸음을 떼어 추적추적 걷는다. 그게 전부였다. 

셋째 날도 성재를 건드리는 학생은 발견할 수 없었다. 심심하게 홀로 걷는 아들 성재의 뒤를 따르면서 은선은 괴

롭히는 아이가 있다면 빨리 그 모습을 드러내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기다림이 긴만큼 두려움은 그 덩치를 

키우는 법이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오해였나 싶기도 한게 아들 성재의 행동거지에서 괴롭힘의 흔적이 엿보이지 

않는다. 느린 발걸음도 그렇고, 외진 골목길도 주저없이 다니는 것이 전혀 쫓기는 낌새가 아니다. 

넷째 날, 아파트 입구까지 아들 성재의 뒤를 쫓아 오다가 마침내 은선은 지쳐버렸다. 성재에게 무슨 일이 있다면 

학교안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것 같다. 나흘이나 쫓아다녔는데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으니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

었다. 

[혼자 바보처럼 이러지 말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상담을 받아볼까?]

어차피 찾아뵙고 인사를 한번 두둑히 하려고 이 날이 좋을까 저 날이 좋을까 재고 있던 중이다. 그런데 마음에

좀 걸린다.

[괜히 선생님한테 나쁜 이미지나 심어주는거 아닐까? 이제 막 입학했는데.]

담임선생님께 성재가 왕따당하는 아이로 찍혀서 무시당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은선은 고민했다. 성재의 초등학교

때 이력을 말하고 솔직히 도움을 청하려니 몰라서 좋을 일을 괜시리 자진납세하는 것 같고, 아니겠지 하는 희망을

품고 가만 있으려니 엄마로서 도저히 걱정이 멈추질 않는다.

[혹시 윤지연 선생님은 알지 않을까?]

윤지연 선생님이 성재의 담임이 되었다면 이런 고민도 퍽 수월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담임은 아니라지만 성재에

게 관심을 가지고 있는 듯하니 도움을 청해봐도 괜찮을 것 같다. 

[그래. 이번 일요일에.]

"은선아!"

누군가 은선에게 다가와 어깨를 툭 친다. 

"어머, 언니!"

"무슨 생각을 하길래 손을 흔들어도 모르고, 불러도 아는 체를 안하니? 성재 봤다. 넌 못 봤니?"

언니 은혜다. 어디로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화사한 얼굴 화장에다가 옷맵시에도 꽤나 공을 들인 눈치다.

"성재? 어. 언니, 어디 가?"

"응. 동훈이랑 옷 사러 가기로 했어."

"저녁에 무슨 모임 있어?"

"아니. 왜?"

"아니. 예쁘게 차려입었길래."

"괜찮아 보이니?"

예뻐 보인다는 말이 기분좋은지 은혜가 배시시 웃는다. 찬찬히 뜯어보니 은혜의 얼굴이 화사해 보이는 것은 화장

탓이 아니었다. 웃는 걸 보고 깨닫는다. 행복한 여자의 얼굴이 어떤지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언니 은혜의 얼굴을 

보여주면 될 것 같다. 활짝 피어난 꽃 같은 것이 이 남자, 저 남자 바쁘게 만나고 다니던 20대 시절의 얼굴로 되돌

아간 듯한 느낌이다. 얼굴에 그늘이 없다. 그늘이. 

[내 얼굴엔 아마 덕지덕지 앉아 있을 거야. 그늘이.]

"아들이랑 옷 사러 간다면서 뭔 멋을 그렇게 잔뜩 냈어? 그냥 편하게 입고 가지."

"옷에 힘주고 다니지 않으면 점원들이 깔본다, 너? 얼마나 사람을 무시하는 줄 아니?"

"그럼 점원한테 보이려고 그렇게 차려입은 거야? 아들한테 잘 보이려고 차려입은 건 아니구?"

"얘는? 어머! 나 늦겠다. 갈께!"

은혜는 은선의 왠지 뚱한 질문에 얼굴을 붉히더니 가타부타 대답도 않고 서둘러 자리를 피한다. 은선은 또각또각

하이힐 소리를 내며 멀어지는 언니 은혜의 뒤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좋아 보이네.]

언니 은혜가 부럽다. 속사정이야 어떻건 저 행복해 보이는 얼굴이 부럽다. 짧지 않은 투피스 치마정장을 입은 언

니 은혜의 엉덩이가 좌우로 씰룩거리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은선은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여자를 행복하게 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그게 그렇게 중요할까? 

"더 사자니까."

"오늘 돈 많이 썼어. 자꾸 같은 소리하게 하지말고 밥이나 먹어."

백화점에서 원피스 수영복을 사고, 의류쇼핑몰에서 치마 한 벌과 청바지 한 벌, 그리고 웃옷 두 벌을 동훈이가 골

라주는 대로 산 뒤 은혜는 배가 고파 다리에 힘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낙지볶음집으로 왔다. 그러지 않았으면 남에

게 보이기 부끄러운 옷에 아까운 돈을 더 쏟아부어야만 했을 것이다. 

양념이 너무 매워서 낙지볶음 한 젓가락에 차가운 콩나물국을 연거푸 두 번은 마셔야 한다. 혀 끝이 알알하고 이마

와 콧등에는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은혜는 바지나 긴 치마를 입고 나올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온돌바닥이

라 비스듬히 무릎꿇고 앉아 먹으려니 자세도 불편하고 치마가 자꾸 무릎께에서 걸리적 거린다. 길이가 긴 것도 아

니고 아예 짧은 것도 아니어서 애매하게 애를 먹인다. 

"왜, 엄마? 자리가 불편해?"

"아니. 괜찮아. 그냥 좀."

동훈이는 자꾸만 몸을 꼼지락거리는 엄마 은혜를 향해 말했다. 평소에 잘 입지 않던 정장 치마를 입고 나오더니 역

시 멋내는 것도 갑작스럽게는 안되는가 보다. 

"다리 쭉 뻗고 앉아. 그럼 편하지."

"치마 입었는데 어떻게 다리를 쭉 뻗고 앉니? 엄만 신경쓰지마. 괜찮으니까."

"에이. 괜찮기는? 이렇게 해봐."

동훈이가 테이블 밑으로 두 팔을 내밀어 엄마 은혜의 양 발목을 잡아당겼다. 

"어어? 야아, 하지마!"

동훈이가 갑자기 잡아채는 바람에 은혜는 하마터면 뒤로 벌렁 넘어질 뻔했다. 급히 바닥에 손을 짚고 버틴다. 그

리고 주위를 황급히 둘러보았다. 사람들이 무슨 일인가 하는 표정으로 은혜 쪽을 보다가 이내 고개를 돌려버린다.

무관심한 얼굴들이다.

"됐다. 이제 편하지? 먹자."

동훈이 말대로 은혜는 한결 편안해짐을 느꼈다. 치마입은 여자가 다리를 앞으로 쭉 뻗고 앉아 있는 모습이 남들 눈

에는 정숙해보이지 않을 것 같지만, 테이블이 가려주고 있기 때문인지 아니면 동훈이와 함께 있기 때문인지 조금 

느긋해진다. 

[그래. 아무렴 어때. 신경쓰는 사람도 없는데.]

동훈이는 오른손잡이다. 오른손으로 수저질을 열심히 하면서도 왼손은 지그시 은혜의 두 발목을 모아 누르고 있

다. 놔주면 도망쳐서 다시 불편한 자세로 돌아갈까봐 걱정되나 보다.

"동훈아. 손 놓고 먹어. 엄마 발에서 냄새나."

"냄새? 냄새 안나는데?"

"그래도. 밥먹는데 발을 잡고 먹니? 이상하잖아."

"이상하긴 뭐가 이상해?"

동훈이가 엄마 은혜의 발목을 가볍게 쥐어보며 되물었다. 스타킹이 까실까실하다. 진회색에 아무런 무늬가 없는 

평범한 스타일이다. 복숭아뼈 위로 손을 더듬어 보니 잘록해지다가 부드러운 살집이 느껴졌다. 엄마 은혜의 종아

리다.

"얘. 밥먹어. 놓고 먹으라니깐 얘가 더 그러네."

은혜가 종아리에 간지러움을 느끼고 반사적으로 다리를 오므렸다가 테이블 밑에 무릎을 찧었다. 약간 아프다. 그

런데 아픈 와중에도 동훈이의 손이 종아리를 어루만지는게 느껴진다. 바로 옆 테이블은 비어있지만 동훈이의 뒤

에 한 무리, 은혜의 뒤에도 한 무리가 식사하고 있다. 조심해야 한다.

"뭐가 어때서. 근데 엄마 얼굴 무지 빨개졌다."

"매운거 먹어서 그렇지. 너두 얼굴 빨게."

은혜는 휴지를 뽑아 얼굴에 살짝 대고 땀을 닦아냈다. 화장이 지워질까봐 꾹꾹 누르지 못한다. 당장 화장실에 달

려가서 거울을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이다. 이빨 사이에 고춧가루가 끼지는 않았을까, 입술 주변에 양념이 흉하게 

묻지는 않았을까, 화장이 군데군데 떡지지나 않았을까. 손끝에 느껴지는 얼굴의 화끈한 열기는 분명히 낙지볶음

이 너무 매운 탓일거다. 

"엄마. 머리모양 좀 바꿔라."

"왜? 엄마 머리 이상해?"

은혜가 파마끼가 거의 풀린 뒷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보며 물었다. 

"이상하다기 보다. 좀 짧게 자르면 안돼? 꼬불꼬불한 것도 스트레이트로 쫙 펴고."

"짧게 자를거면 안쪽으로 웨이브를 넣어줘야지. 스트레이트 했다가 아침마다 그 삐친 머리를 어쩌라고?"

"그런가? 암튼 그렇게 해봐. 맨날 아줌마 파마만 하지 말고."

"아줌마가 아줌마 파마하고 다니는데, 머."

"아줌마 파마가 뭐가 어떻다는게 아니라. 맨날 똑같이 하고 있지 말고 스타일 좀 바꿔보란 말이야, 내말은."

"엄마 미용실 가서 앉아 있을 시간 없어. 머리자르고 스트레이트하려면 몇 시간은 꼬박 앉아있어야 한단 말이야.

집안 일 하기도 시간이 빠듯해." 

"하루종일 집안 일만 하는 것도 아니잖아. 참, 내가 말을 말아야지. 꼬박꼬박. 좀 순순히 그러겠다고 하면 어

디가 덧나나."

동훈이가 답답하다는 듯 말을 멈추고 밥만 꾸역꾸역 먹어댄다. 은혜는 동훈이가 화가 난게 아닌가 속으로 긴장했

다. 한번 호된 냉전을 겪고 보니 작은 일에도 가슴이 철렁 놀라곤 한다. 그런데 동훈이의 손이 여전히 은혜의 종

아리를 어루만지고 있다. 부드럽고 간결한 움직임. 다행이다. 

"동훈아, 낙지 많이 먹어. 이 집 괜찮게 하는 것 같지, 그렇지?"

은혜는 동훈이의 밥그릇에 연신 낚지를 올려놔 주었다. 동훈이가 마다 않고 주는 족족 받아먹는다. 

[우리 아들. 누가 낳았는지 먹는 모습도 참 복스럽고 잘 생겼네.]

"동훈이 엄마! 어디 좋은데 갔다오나봐?"

"아, 예. 그냥 뭐 좀 사갖고 오는 길이에요. 저녁은 드셨어요?"

아파트로 돌아와 엘리베이터가 내려오기를 기다리는데 한 여자가 아는 체를 한다. 큰 딸이 작년에 명문대에 입학

했다고 틈만 나면 자랑하고 다니는 키작은 50대의 아줌마다. 은혜의 옷차림이 생소한지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동

훈이가 고개를 까닥여 인사하자 웃으며 받아준다. 평소엔 마주치기 달갑지 않은 여잔데 지금은 반갑다. 엘리베이

터에서 아들 동훈이와 둘만 있게 되는 시간이 어색할 것 같아 걱정하던 참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셋은 올

라탄다.

"아들이. 중학교 다니던가?"

"이번에 고등학교 입학했어요."

"오, 그랬어? 그럼 과외시키고 있겠네?"

"아니요. 아직 고1인데요, 머."

"아유, 아직이라니? 고1도 늦은 거야. 우리 딸래미한테 과외받겠다고 초등학생까지 줄을 서더라니까? 동훈이 

엄마도 알지? 우리 딸 작년에.?"

"아, 네. 알죠. 학교 잘 다니죠?"

"으응! 그러엄! 아이구! 벌써 6층이네? 동훈이 엄마, 나 먼저 내릴께."

"네, 들어가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만났기에 망정이지, 길가에서 만났으면 딸 자랑이 끝이 없었을 것이다. 여자의 아쉬운 얼굴이 엘

리베이터 문밖으로 사라진다. 아줌마의 레퍼토리는 항상 똑같다. 순서만 다를 뿐이지. 다만, 쫓아다니는 남자

들이 줄을 섰다거나, 학교 성적이 좋다는 자랑은 들을 수 없다. 그래도 명문대에 입학시킨 게 어디냐. 엄마로서 

자랑할만도 하다.

[우리 동훈이는 앞으로 어떤 자랑거리를 만들어 줄래나.]

"저 아줌마 딸이 어느 학교 들어갔는데?"

"으응. 연세대."

"예뻐?"

"그저 그래."

"공부만 열심히 했구나."

"그랬겠지 머."

"야! 너, 계속 반말할래?"

"응?"

동훈이가 목소리를 깔고 나지막하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은혜는 고개를 돌려 옆을 보았다. 동훈이가 눈을 부릅뜨

고 은혜를 노려보고 있다. 무슨 일인지 영문을 모르겠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동훈이의 손이 은혜의 엉덩이를 쓰

다듬고 있었다. 

[동훈이가 지금 뭐라고 했더라. 아, 참!]

"미, 미안해요. 버릇이 안되서.요."

"그게 아니지? 엄마, 너. 일부러 그러는거지?"

- 찰싹!

동훈이가 쓰다듬던 손으로 은혜의 엉덩이를 때리면서 꽈악 움켜잡는다. 은혜가 몸을 앞으로 쭈뼛 내밀며 당황한다.

"아이. 다른 사람이랑 같이 있었잖아요. 좀 봐줘요."

"또 봐줘? 내가 벌써 몇 번이나 봐줬어? 자꾸 약속 어길래? 니가 알아서 잘 해야지. 번번이 내가 얘기해야돼?"

"아! 다왔다! 드, 들어가서 얘기해요. 앞집에서 들어.요."

엘리베이터를 도망치듯 빠져나와 현관문앞에 서면서 은혜는 말 끝의 요자는 소리내지 않고 입술을 모아 흉내만 내

보인다. 그리고 손가락을 입에 대고 앞집에 들릴지 모르니 조용히 하자는 신호를 보낸다. 동훈이는 잠시 숨을 고

르고 엄마가 문을 여는 모습을 노려보며 집에 들어가서 어떻게 다그치면 좋을까 생각을 가다듬었다. 

- 철컥!

"이제 와?"

"어머! 당신 벌써 퇴근했어요?"

동훈이 아빠가 거실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있다가 상체를 일으켜 앉는다. 간편한 반바지 차림에 TV도 켜져 있다. 

동훈이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좀전까지 아빠의 여자를 훔치던 중이다. 은혜도 놀라긴 마찬가

지다. 늘 9시, 10시는 넘어야 퇴근하던 사람이 초저녁부터 떠억 앉아 있으니 말이다. 

"다녀왔습니다."

"어, 그래. 당신, 오늘 곗날이었나 보지? 예쁘게 차려입었네? 근데 어떻게 동훈이랑 같이 들어오나? 오다가 

만난거야?"

아저씨들은 아줌마들이 곗날이나 되야 모양내고 멋부리는 줄 안다. 하긴 그런 편견을 심어준 아줌마들도 문제긴 

하다. 은혜는 놀라고 죄스럽던 마음에 심통이 떠오른다. 

"곗날은 무슨 곗날이에요? 언제 퇴근했어요? 저녁은 먹었어요?"

"금방 왔어. 저녁은 먹었지. 동훈이 너는 어디 갔다 인제 오냐?"

"또 친구들이랑 어디 싸돌아 다니다 왔겠죠. 너, 공부는 언제 할래?"

은혜가 동훈이에게 표독스럽게 쏘아붙인다. 조금전 엘리베이터에서 동훈이에게 실수를 추궁당하며 쩔쩔 매던 모

습은 간데 없다. 동훈이는 벙벙한 얼굴로 입을 쩍 벌린 채 엄마 은혜의 잔소리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동훈이 너. 얼른 옷갈아 입고 씻어. 어유, 땀냄새. 그러구 다니면 엄마가 욕먹어. 아까 6층 아줌마한테 엄마

가 얼마나 창피했는줄 알아?"

"6층 아줌마? 누구 말하는거야?"

"말하면 당신이 알아요? 동훈이 담임선생님 성함도 잘 모르면서."

은혜의 면박에 동훈이 아빠도 입을 다물어 버렸다. 동훈이는 가방을 내려놓고 욕실로 터벅터벅 걸어가면서 아빠 

모르게 엄마 은혜를 째려보았다. 은혜는 동훈이의 시선을 모른 척 외면하고 안방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문을 닫

으며 동훈이의 뒤통수를 향해 혀를 비죽 내밀었다.

"죄송해서 어떡해요? 휴일에 쉬지도 못하고 운전하시게 해서."

"아이고, 괜찮습니다. 일하러 가는 것도 아니고, 놀러가는 건데요, 뭐. 우리 동훈이 엄마도 운전을 잘 하긴 하

는데. 오늘 같은 날은 당연히 제가 운전해야죠. 허허."

토요일 아침, 서둘러 출발하겠다고 이른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지만 일행이 워낙 많으니 쉽지 않았다. 톨게이트

를 통과해 서울을 완전히 벗어나면서 보니 시각은 어느덧 11시를 향해 달리고 있다. 은혜의 차에 은혜네 식구 

3명과 미숙이네 2명이 탔고, 그 뒤에 은선이네 4식구간 탄 차가 따라온다. 은혜는 조수석에 앉았다. 미숙이 언

니와 수다를 떨기엔 불편한 자리다. 그러나 뒷자석에 앉을 수 없었다. 희진이가 무서워서다. 어린 꼬마 계집애

가 뭐가 무섭냐고 할 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다. 눈을 마주치기가 꺼려질 정도로 독기서린 눈매가 매섭다.

"희진아, 어디 아파? 왜 얼굴을 찡그리고 있어?"

"아니, 오빠. 안 아파."

"희진아, 멀미할 거 같으면 엄마한테 얘기해. 참지 말구. 알았지?"

"응, 엄마."

미숙은 동훈이 아빠와 은혜에게 말을 건네는 짬짬이 동훈이에게도 지나가는 말처럼 몇 마디 건네본다.

"공부는 재밌어? 중학교 때랑은 좀 다르지? 그렇다고 지레 어렵게 생각할 거 없어. 하면 다 하게 되니까."

왠지 건조하고 재미없는 얘기만 하게 되는게 동훈이에게 미안하다. 희진이와 아저씨만 없다면 이렇게 선생님 

티를 낼 필요는 없을 건인데. 은선이네야 어차피 각오했지만 동훈이네 아저씨가 동행하게 된 건 전혀 뜻밖이

다. 은혜로부터 동훈이와 벌써 화해했다는 얘기를 이틀 전에야 전해 듣고 미숙은 김이 팍 새버렸다. 남의 눈에

서 벗어나 단 몇 시간이라도 편히 쉬고 오려고 했었다. 

[이렇게 주렁주렁 달고 갈 바에야 그냥 동네 찜질방엘 갔지.]

"꺄아아."

아이들은 파도풀과 워터슬라이드를 제일 좋아했다. 비명을 지르고 헛물을 켜면서도 첨벙거리며 신나게 논다. 아

이들은 정말 금새 친해진다. 희진이는 특히 자기보다 세 살 어린 영재가 귀여운지 곧잘 챙겨준다. 은선이 부부, 

은혜 부부, 그리고 미숙은 아이들을 따라다니며 잠깐잠깐씩 어울려 놀아주었지만 물밖에서 지켜보며 어른들끼리 

얘기하는 시간이 더 많다. 초등학생의 배 정도 차는 얕은 풀로 자리를 옮겼을 때 어른들은 어느새 두 패로 갈라져 

있었다. 남자들끼리, 여자들끼리.

여자들 셋은 모두 원피스 수영복을 입었다. 그런데 브랜드는 달라도 색상이 하나같이 짙은 곤색으로 똑같다. 앞

가슴의 볼륨감은 미숙이 제일 두드러지고, 은혜와 은선은 체형이 엇비슷한데 은선의 몸매 곡선이 조금더 몽실몽실 

둥근 느낌을 준다. 

"물이 안 차고 따뜻해서 참 좋네요. 언니, 덕분에 좋은데 알게 됐어요. 우리 여름에 같이 또 와요. 언니는 교사시

라 콘도도 할인되는 거 맞죠? 한 2박 3일 놀면 딱 좋겠다. 주변에 산도 있고."

은선이 두 손으로 아랫배를 가리며 말했다. 셋 중에 가장 젊지만 그렇다고 아줌마 뱃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

다. 은혜도, 미숙도 비슷한 자세로 아랫배를 가리고 있다. 

"언니. 희진이. 몸이 좀 안 좋은거 같지 않아?"

"왜? 아아. 입술 파래진거? 우리 희진이 물에 오래 있으면 원래 저렇게 되잖아. 좀 쉬었다 놀라고 할까?"

"아니, 그게 아니구. 아까부터 자꾸 배를 문지르는 것 같아서. 언닌 못 봤어? 저거 봐. 또 문지르잖아."

"어디? 진짜 그러네. 아침에 화장실 갔다왔는데? 왜 그러지?"

미숙은 동훈이를 틈틈이 훔쳐보느라 희진이는 건성으로 보고 있었다. 은혜의 말을 듣고 다시 보니 뭔가 심상치 않

다. 아까까지만 해도 동훈이에게 바짝 붙어서 해맑게 웃으며 놀던 아이가 지금은 눈에 띄게 외떨어져서 똥마려운 

강아지 마냥 세 남자 아이가 노는 것을 쳐다보고만 있다. 그러다 미숙과 눈이 마주치자 도움을 요청하는 얼굴로 간

절히 바라본다. 

[설마! 벌써? 아직 4, 5일은 여유있을 텐데. 내 계산이 틀렸나?]

불안한 마음으로 미숙은 딸 희진이를 손짓해 불렀다.

"희진아, 그만 하고 나와. 좀 쉬었다 해."

희진이가 천천히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걸음걸이가 영 불편해 보인다. 팬티에 똥이라도 지린 아이같다. 

지척지척 물을 가르며 걷는데 작디 작은 풀의 가장자리로 오는데 한참 걸린다. 미숙은 희진이의 겨드랑이에 팔

을 넣어 쑤욱 안아 올렸다. 아이가 몸을 벌벌 떤다.

"언니. 쟤 왜 저러지?"

"글쎄다? 점심 먹은게 체했나?"

은혜와 은선은 멀찍이서 미숙이 희진이를 안아서 등을 토닥여주는 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희진이가 미숙

의 귓가에 입을 바짝 대고 속삭인다. 미숙도, 희진이도 모녀간에 난처해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미숙이 희진이의 

엉덩이에 수건을 둘러주고 다시 안으며 은혜를 향해 시선을 보냈다. 은혜는 육감으로 와닿는게 있어서 벌떡 일어

나 미숙쪽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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