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형사 은수의 이중생활
제 6 부
쏴아아 ---
물줄기 소리가 거세다. 욕실의 소리가 밖에까지 들리고 있다. 아마도
김칠규가 욕실문을 꼭 닫지 않은 모양이다. 은수는 창 밖을 조용히 내다본다.
한 줄기 빗물이 창을 스친다. 언제부턴가 비가 오기 시작한 모양이다.
'샤워 물소리가 아니었나' 은수는 고개를 갸웃해 본다.
자신의 한심한 처지를 하늘이 아시고 안타까움의 빗물을 내려주시는 듯하다.
명색이 경찰인 몸으로 어쩌려고 호스테스생활을 계속해서 자신이 한번 잡아넣은
적이 있는 김칠규란 사내를 만나게 되고 그의 협박에 못 이겨 몸을 섞은 자신이
한심스러워 졌다. 그리고 지금 또 다시 이렇게 그의 샤워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자신의 모습...
오늘은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계속해서 그에게 끌려 다니다가는
또 한 명의 무시할 수 없는 상전을 만들게 된다. 은수는 모질게 다짐을 했다.
그리고 한가지 다행인 것은 그가 아직 은수의 본명을 모르고, 자신을 김형사로
안다는 점이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지긋이 아랫입술을 깨물며 결의를 다졌다.
사실 처음 룸에서 김칠규를 만나고 협박에 마지못해 몸을 맡긴 채 유린당할
때만 해도 은수는 여기까지 그가 집요하게 물고늘어지리라고는 예상도
못했다. 술도 먹었고 그의 손길에 몸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상태에서
'에이, 한번쯤이야, 미친개에게 물린 셈치지 뭐' 그런 심정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은수의 오산이었다. 그는 한 달포쯤 지나 경찰서 앞에 나타나
퇴근하는 은수를 반강제적으로 데리고 자신의 별장에 가서는 유린했었다.
경찰서 앞이라 실랑이를 하지 못하고 그의 차에 올라 탄 게 잘못이었다.
모든 남자의 속성이 그러하듯 김칠규는 한 번 잔 이후로 은수를 마치
자신의 여자쯤으로 여긴 것이다.
하긴 그는 스스로 은수가 무시 못할 약점을 잡고 있다고 여겼으니 그런 행동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런데 그날도 그는 은수를 김형사라 부른 것이다.
첫날은 너무 당황하고 술기운도 있고 해서 은수도 흘려들었으나 별장에서도
은수에게 '김형사님, 왜 이러실까? 우리 사이에' 하며 군침을 흘릴 때 은수는
깨달았다. 그가 자신을 김형사로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그때 다짐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두 번 다시 자신을 찾아오면 어쩔 수
없다고...
그런데 김칠규란 자는 오늘 마침내 경찰서 안에까지 은수를 찾으러 왔다.
은수가 있는 사무실의 문을 열고는 '김형사님!' 하며 싱긋이 웃고 있는 그를
보았을 때 은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마침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니 여기까지 찾아오면 어떡해요?"
"아 그야 김형사님이 만나주지도 않고 만날 방법이 없으니, 이렇게라도
해야지... 안 그렇소?" 능글맞은 웃음을 띠며 그가 말했을 때 은수는 한 대
후려갈기고픈 충동을 겨우 참았다. 경찰서에서 아득아득 악을 쓰는 날이면
모든 게 끝장이기 때문이다.
할 수 없이 은수는 그를 데리고 경찰서를 나와 그의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지금 둘은 그의 별장에 같이 있는 것이다. 가까운 교외의 모텔로
들어서는 그에게 '지난번에 갔던 그곳으로 가자' 며 은수가 제안을 하자
"그래, 거기가 좋았단 말이지? 어떤게 좋았어 나야? 별장이야?"
그는 히죽거리며 숫제 말을 놓고 있었다.
"너도 나를 기다렸지...하긴 한 번 맛들면 여자들이 더 한 법이니까?"
그러면서 운전 중이던 그는 한 손을 뻗어 은수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청바지를 입고 있어서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쉴 때 그의 손은
어느 샌가 은수의 블라우스를 헤집고 있었다.
그의 손을 떼어내며 운전 조심하라고 한참을 옥신각신 한 후에야 은수는
그의 손길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일련의 실랑이는 별장에 도착하고서도
계속되었다. 은수의 블라우스가 벗겨지고 브래지어가 떨어져 나간 후
그의 손에 몇 번이나 가슴이 유린당하고서야 그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샤워를 하러 들어 간 것이다.
은수는 시계를 보았다. '언제쯤 도착하려나...?' 박창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번 별장을 다녀간 후 은수는 박창호에게 상의했던 것이다. 당장
손을 보겠다던 박창호를 말렸던 은수는 오늘 김칠규가 경찰서에까지
찾아오자 어쩔 수 없이 박창호의 손을 빌리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박창호일행은 아직 도착하지 않고 있었다.
김칠규에게 몸을 맡기기 전에 도착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이 간절했다.
박창호가 직접 나서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막상 그들이 도착해서도
어떻게 처리할지 은수는 알지 못했다. 단지 그들이 훌륭한 계책을 세워
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아울러 박창호의 패거리에게 은수의 신분이 노출되어서도 곤란했다.
막상 박창호에게 연락을 해놓고서도 은수가 안절부절못하는 이유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멀리서 희미한 불빛이 보이는 듯 했다. 그러나 이내 다시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보았나...?' 은수가 홀로 중얼거릴 때 김칠규가
샤워를 마치고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채로 수건 한 장만 들고 나왔다.
"어이, 혜미도 어서 샤워해..!"
그는 술집에서의 은수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은수는 그의 알몸에서 시선을 거두고 욕실로 향했다.
샤워기에서는 물줄기가 시원하게 뿜어지고 있었다. 그는 샤워기를
잠그지도 않은 것이다. 은수는 천천히 옷을 벗었다. 언제 봐도 멋진
몸매였다. 그가 침을 흘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찰서까지 찾아다니며 은수를 괴롭히지만 않았어도 '가끔씩 그의 상대로
즐기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텐데...'라는 미묘한 감정의 파장이 일었다.
그리곤 이내 머리 속의 생각을 지워버리려는 듯 은수는 샤워기를
자신에게로 향했다. 물살이 아주 시원했다. 물살이 몸의 구석구석을
핧 듯이 지나갔다. 바깥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으나 은수는
무시하고 물줄기에 몸을 내맡기고 있었다.
갑자기 문이 확 열렸다. 웬 낯선 사내가 그곳에 서있었다.
은수는 샤워기를 놓치며 두손으로 몸을 가렸다.
"형님, 여기있는데요..."사내 는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욕실로 성큼
들어서더니 은수의 머리채를 잡고는 밖으로 끌어냈다. 은수는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론 몸을 가리며 알몸인 채로 거실에 질질 끌려나왔다.
거실에는 못 보던 사내 셋이 서 있었고, 김칠규는 얼굴이 부어 터져서
알몸인 채로 한쪽에 쭈그려 앉아 있었다. 김칠규는 소파에 앉아 있는
사내에게 연신 무어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이봐 홍사장....나....ㄴ... ..난...."
은수는 김칠규 옆에 앉혀졌다. 은수는 몸을 가린 채 앉아있는 사내를
보았으나 낯선 얼굴이었다. '오빠가 보낸 사람이 아닌 모양이네...'
은수는 난감함에 얼굴을 찌푸렸다.
사내는 은수에게로 걸어오더니 "나쁜 년"이라는 말과 함께 은수의
뺨을 후려쳤다. 그리고는
"니가, 감히 우리 형님을 배신하고, 저런 자식하고 붙어 먹어...?
어안이 벙벙해서 은수는 잠자코 있었다. 머리 속이 혼란했다.
박창호가 보낸 사람이라면 자신을 이렇게 다룰 리가 없는데....
김칠규는 옆에서 계속 애원하고 있었다.
"이..이봐, 홍사장...나....난 정말 몰랐어...! 홍사장 형님 사람인줄...
난 그냥 술집 가시낸 줄 알았다니까...이...이봐 ...한번 만 살려주게...
나도 속았어...난 이년이 꼬리치길래...그냥 딱 한 번... 저...정말일세..."
은수는 기가 막혀 김칠규를 쳐다보았으나 그는 시선도 돌리지 않고
사내의 바지를 잡고 애원하고 있었다.
"시끄러, 이 새끼야...너 때문에 우리 형님이 노발대발하셨어..."
사내는 말을 마치기가 김칠규를 걷어 차버렸다.
"너거 년 놈은 오늘 제삿날인 줄 알아라...그리고 이 쌍년 너...ㄴ
누가 오입질하라고 거기 내 보낸 줄 알아...으응?
다른 조직 정보나 알아 오랬더니 저 딴 xx하고 붙어먹어?"
은수는 뒤통수가 번쩍하는 느낌이 들었다. 사내의 무지막지한 손이
사정없이 내리친 것이다.
"야..! 저놈은 좆대가릴 잘라버리고 저년도 다시는 사용 못하도록 아예
걸레로 만들어 버려..."
"예, 형님"
은수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전...무슨 일인지...사람을 잘...못..." 마침내 은수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시끄러, 이년아.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놔..노란 말이야..이...이봐 홍사장...."
김칠규도 사내들에게 겨드랑이가 잡혀 끌려나가면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김칠규가 끌려나간 뒤 사내는 말을 이었다.
"너 이년, 상철이 형님 알지?"
"네...넷....상철...씨.. .."
"햐. 고년..몸매 하난 기똥차다..."
사내는 말을 하며 은수의 알몸을 이리저리 훑고 있었다. 은수의 사내의
느끼한 시선을 피하며 상념에 젖어들고 있었다.
박상철....! 박창호의 심복. 설악산에서 은수를 납치할 때 운전수였던
박상철을 어찌 잊을 수 있는가? 설악산 자락의 외딴 집에서도 유독
집요하게 은수의 몸을 탐했던 남자. 숫처녀의 몸으로 3명의 남자를 돌아가며
상대해서 기진맥진해 있는 은수에게 갖가지 부끄러운 포즈를 강요하며
자신의 욕심을 채우던 박상철....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나자 은수의 이맛살은 다시 찌푸려졌다.
그 후 박창호를 대신해서 누군가를 죽인 후 외국으로 도피했다는
얘기도 들렸고, 박창호를 배신하고 외국으로 도망갔다는 소문도 한동안
끊임없이 나돌았다. 그것이 끝이었다.
은수는 박상철을 잊고 지냈다. 베트남에 있다는 얘기도 들렸고,
러시아에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은수는 굳이 알려고 하지 않았다.
비록 자신이 지금은 박창호의 노리개가 되어 상부상조하는 사이였지만,
박상철로 인해 자신이 수렁으로 빠져들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앞의 사내의 입에서 그 박상철의 이름이 튀어나온 것이다.
뭔가 섬칫한 것이 몸을 스치고 지나는 느낌에 은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사내가 어느 틈엔가 쪼그리고 앉아 은수의 가슴을 이루만지고 있었다.
은수는 앉은 자세로 뒷걸음질치며 사내의 손길을 피했다.
"허..참..고년...니가 뭐 요조숙녀라도 되냐? 창녀주제에...."
'창녀....' 은수는 충격을 받았다. 박창호에게 유린당했을 때도, 그 후
삼총사의 노리개로 전락했을 때도, 그리고 술집을 나가면서도 한번도
스스로를 창녀라고 느껴본 적은 없었다. 술집에서 피치 못하게 가끔은
남자와 2차를 나간 적도 있었지만 모두가 박창호의 부탁 내지는 강요에
의한 것이었고 그것은 일을 위한 불가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언제까지나 자신은 박창호의 여자였고, 어쩌다 자신의 몸이 간절히
남자를 원할 때 모르는 남자를 유혹한 때도 있었지만, 자신의 몸에
음란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눈앞의 사내는 자신을 창녀라고 대놓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야! 까불지 말고 이리와서 다리 벌려봐? 어디 한번 보자..."
사내의 거친 손길이 은수의 가랑이를 확 벌렸다. 은수는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걸 느끼며 다시 뒤로 물러 앉았다.
"야...이년아! 나도 너같은 걸레는 상대 안해....고년 몸매가 이뻐서
구경이나 한 번 하려고 했더니....창녀주제에..."
사내의 입은 거침이 없었다. 그러면서 은수의 뺨을 한 대 갈겼다.
은수이 두눈에 하염없는 눈물이 소리없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후의
기억은 떠올리기도 싫다.
김규칠을 데리고 나갔던 사내들이 돌아온 후 은수가 당한 치욕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두명의 사내에게 은수를 맡기고
유유히 지켜보던 예의 우두머리인 듯한 사내는 '너는 너무 더러워서
내 신성한 것을 맛보게 할 수는 없고...'라는 치욕적인 말과 함께
집안에 있던 온갖 종류의 물건을 가지고 은수의 꽃잎을 희롱했던
것이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모든 것이 박창호의 계략이었고,
후일 은수가 박창호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는 결정적 이유가
여기서 잉태되고 있었다.
< 7부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