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엘리베이터
째각, 째각... 땡...
괘종시계는 3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유라는 한없이 늘어지는 몸을 추스
려 보려고 기지개를 켰다. 마지막 강의를 마치고 연구실로 돌아온지 한 시간이
나 지난 것이었다. 다음 주에 시험과 채점을 마치면 바야흐로 고국에서 맞는
첫 여름방학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돌이켜 보건대 모교에서의 첫 학기 강의는
참으로 다사다난했다. 혁, 이교수그리고 비에스.... 모두 생각만 해도 아랫도리가
뻐근해지는 이름들이었다. 비에스는 그 뒤로도 세 번이나 유라의 집을 방문했
다. 모두 남편은 출장 중이었다. 어떻게 집이 빈 걸 알았죠... 말하지 않았던가...
난 당신의 모든걸 꿰뚫어 보고 있지... 유라가 물음에 비에스는 이렇게 대답하
며 더욱 힘차게 밀어붙히는 거였다. 그의 힘은 혁을 능가하는 정도였다. 정말이
지 그를 받아들인 날이면, 다음날 오후까지 아랫도리에 얼얼한 여운이 남아있
곤 했다. 혁과 이교수는 여러 면에서 대조적이었다. 혁은 무시로 위험한 장소에
서 나누는 정사를 즐겼다. 빈 강의실의 문 뒤, 도서관의 구석진 서가, 학교 뒷
산의 우거진 풀숲 사이 따위가 혁이 즐기는 장소였다.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유라가 그런 곳을 찾을 때면 혁은 불쑥불쑥 나타나곤 했다. 그리고는 말도 없
이 유라의 팬티 속을 헤집기 일쑤였다. 이교수는 연구실에서 그 일이 있고 난
뒤 정중하게 유라를 불러냈다. 집필실로 쓰고 있다는 학교 앞의 작은 아파트였
다. 유라는 그 뒤로도 몇번 더 이교수의 아파트를 찾았다. 이교수는 항상 자기
의 저서인 미국현대소설의 이해 의 갈피에 쪽지를 끼워 보내오곤 했다. 유라...
4시... 거기서... 유라가 거절의 표시로 쪽지를 그대로 끼워 책을 돌려보내면 다
시 책이 오는 일은 없었다. 물론 유라는 승낙할 때가 훨씬 많았고, 그 때 마다
이교수의 아파트는 이교수와 유라가 내뿜는 열기로 가득차곤 했다. 비에스가
거친 야생마라면, 혁은 용의주도한 사냥꾼, 그에 비해 이교수는 매너좋은 제비
라고나 할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때론 혼자 헛웃음을 터뜨리고 하는 사이에
어느새 한 시간이나 흐른 거였다. 5시요... 꼭 와서 봐줬으면 좋겠소... 이교수의
신신당부가 아니었드래도 유라는 오늘 열리는 미국문학회 정기세미나에 가볼
참이었다. 이제 학교생활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으니 전공학자들 끼리의 교류
도 슬슬 시작할 만한 때라는 생각에서였다. 다섯시라... 지금 출발하면 충분하겠
군...
유라가 세미나 장소인 대운학술재단의 일층 로비에 도착한 것은 4시 20분 쯤
이었다. 미국문학회 정기학술세미나. 장소. 32층 대회의실. 주제. 미국현대문학
에 나타난 성도덕 재확립의 의지. 발표자. 이성수(연신대 영문과). 토론자. 신박
제(고운대 영문과). 로비에 놓인 표지판을 읽고 엘리베이터로 걸음을 옮기는
유라 앞에 언뜻 이교수가 나타났다.
일찍 오셨구먼, 김교수. 인사해요. 이쪽은 오늘 약정토론하실 신박제 교수.
또 이쪽은 우리 연신대 영문과의 뉴페이스 김유라 교수
처음 뵙겠습니다. 신박젭니다.
예, 전 김유라예요.
이교수 옆에 서있던 후리후리한 사람이 꾸벅 절을 했다. 유라는 맞절을 하며
흘깃 앞을 보았다. 키만 큰게 아니라 상당한 세련한 입성을 갖추고 있었다. 감
청색 더블버튼에 행커칩까지 꽂은게 흰 장갑만 끼었다면 영판 무도회에 온 젊
은 귀족 풍이었다.
이거, 이교수님 말씀 보다 훨씬 미인이신대요. 김유라교수님.
허허. 내 딴에는 한다고 했는데... 김교수 미모를 설명하기엔 내 언변이 턱없
이 부족한 모양이야.
아이, 선생님두...
세 사람이 농짓거리를 주고 받는 동안, 엘리베이터가 1층에 멈춰섰다. 사람들
이 워낙 많이 타는 바람에 세 사람은 구석으로 밀려들어갔다.
이거, 웬 사람들이...
이 빌딩이 50층 짜리 아닙니까? 늘 이렇지요.
이교수는 짜증섞인 음성이었으나, 신박제는 대수롭지 않다는 투였다. 엘리베
이터가 출발하려는 순간, 두 사람이 갑자기 올라타는 바람에 세 사람은 한 쪽
으로 쏠렸다. 그 바람에 유라의 등이 신박제의 가슴과 밀착되었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타고 내렸다. 이제 겨우 10층 남짓까지 왔는데 벌써 시간은 10여분이
나 지나 있었다.
이 빌딩에는 엘리베이터가 이거 뿐인거야? 이거, 참...
이교수의 짜증이 또 들려왔다. 짜증스럽기는 유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문
득 엉덩이께에서 이상한 느낌이 전해졌다. 뭔가 묵직한 물건이 스커트의 갈라
진 틈새를 자꾸 찔러오는 것 같았다. 묘한 흥분이 온 몸에 퍼졌다. 조금 있자니
움직임은 점점 노골적으로 되어갔다. 스커트 뒷부분에 손 와닿는듯 하더니 살
살 걷어올리는 것이었다. 어느새 그 묵직한 느낌은 유라의 엉덩이의 갈라진 틈
새를 파고들고 있었다. 유라는 짚이는 데가 있어서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아니
나 다를까 능글맞은 웃음을 흘리는 신박제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신박제는
유라와 눈이 마주치자 여전히 웃음을 머금은채 갑자기 손을 뻗치더니 유라의
손을 잡아채어 자신의 바지춤으로 이끌었다. 이교수는 아예 양미간을 잔뜩 찌
푸리고 눈을 감고 있었다. 바지자크는 어느새 끌려져 있었다. 신박제는 유라의
손에 자기의 자지를 쥐어주었다. 신박제의 그것은 매우 굵고 뜨거웠다. 유라도
의미심장한 웃음을 흘렸다. 유라의 손놀림이 빨라질수록 신박제는 흥분이 되는
듯 가는 숨을 토해냈다. 그만... 그만... 신박제가 가뿐 숨을 몰아쉬며 토해내듯
속삭였다. 어느새 32에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