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18)

몸의 변신에 익숙한 실베스트와는 달리 로한은 빈 유리병을 놓치며 의식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쓰러진 로한의 골격이 뚜둑거리며 서서히 변화하기 시작했다. 마치 뼈가 없는 연체동물인 양 로한의 몸의 어느 부위는 이따금 수축과 팽창을 거듭하기도 하며..

좁디좁은 방 안에서 그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끄으응...."

묵직한 신음소리와 함께 로한이 눈을 떴다.

모든 힘을 다 써버린 것처럼 전신이 마치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기에 로한은 한동안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목이 무척 말랐고 빨리 에너지를 보충하라는 듯 배고픔이 밀려왔다.

허나,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일단 어떤 결과가 일어났는 지 파악하려는 로한은 떨리는 손으로 자신의 안면을 매만졌다. 순간 로한의 눈썹이 급격히 휘어졌다.

얼굴에서 느껴지는 촉감이 평소와는 달랐다. 부드러운 살결이 아니라 딱딱하고 거친 질감의 피부가 느껴진 것이다.

'설마!'

정신이 번쩍 든 로한은 몸 이곳저곳을 매만졌다.

손가락을 이리저리 눈 앞에서 움직여보는 로한의 얼굴에는 경악의 빛이 역력했다

"이, 이건..."

시야에 들어온 것은 낯익은 자신의 손이 아니었다. 진한 녹색의 피부, 강인한 손톱이 자라난 두꺼운 손마디, 오크의 손이었다.

커져버린 몸에 버티지 못해 찢어져버린 바지 사이로 시야를 돌리자 로한의 물건 역시 한층 더 흉측해지고 거대해져 가히 흉기로 바뀐 상태였다.

로한은 엄청난 충격에 사로 잡혔다.

오크라니..! 로한은 400년의 긴 삶은 커녕 원래 가지고 있던 수명의 반이나 줄어들었다는 사실에 절망하며 눈물을 흘렸다. 원망스럽고, 화가 났다. 그 누구도 아닌 자신에게.. 그리고 변해버린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슬퍼할 엄마의 표정에..  

시릴듯이 싸늘해진 가슴으로.. 로한은 한기를 느끼며 몸을 떨었다.

하지만, 그 순간 모든것이 흐릿해진 인지 너머로 밑 층에서부터 엄청난 폭발 소리와 함께 듣기 싫은 쇳소리가 가득한 목소리가 로한을 다시 현실로 불러들였다.

-크하하하--!! 드디어 찾았구나! 이 빌어먹을 드워프들! 내 석판은 어디 있느냐!

매캐한 연기와 타닥거리며 나무가 타는 소리, 그리고 병장기 부딪치는 날카로운 쇳소리에 로한이 커다란 거적떼기로 2m가량 커져버린 거대한 몸을 최대한 숨긴 채 상황을 지켜보았다.

-챙! 챙!

"이런 저주답을 언데드놈들!"

-키야악! 그르륵...! 따그닥!..

스켈레톤들과 구울들을 대상으로 도끼를 휘두르며 필사적으로 백병전을 펼치고 있는 사부님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로한은 볼 수 있었다.

그런 언데드들의 군세 뒤 편에서 유유자적하게 땅에서부터 공중으로 한 뼘 가량 떠오른 채 지켜보고 있는 해골 마법사를..

그건 리치가 분명했다. 리치!

높은 경지에 오른 마법사들이 죽음 직전에 도달했을 때 영생을 얻기 위해 택하는 금단의 마법! 끊임없는 마법 연구, 또는 경지를 높이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필요로하는 마법사가 자신의 영혼을 용기(life force vessel)에 봉인하여 죽지 않고 영원히 살 수 있는, 즉 영생을 꾀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다.

언뜻 들어보면 무척 좋은 방법 같으나, 이 마법은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이 존재했다.

생명을 버리고 음차원의 마나를 이용 해 리치가 되는 과정에서 마나의 성질이 변화되어 점점 인성을 잃어가 잔혹한 언데드 몬스터가 되는 결말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치가 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고도의 마법 실력을 지녔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결국 언젠가는 미친 놈처럼 대학살을 일으키는 시한폭탄이나 마찬가지인것이다.

우선 영원히 살 수 있어 생전보다 마법의 경지도 높아지는 데다, 어지간한 물리적인 타격은 효과도 없고, 라이프 포스 베슬만 온전하다면 나중에라도 충분히 몸을 복원할 수 있는 언데드 마법사다.

상상만 해도 끔찍하지 않은가?

게다가 로한의 눈 앞에 보이는 시커먼 로브를 깊숙이 눌러쓴, 살 한 점 없는 백골의 얼굴로 눈구멍에서 붉은 안광을 내뿜는 녀석은 그런 리치 중에서도 보통 녀석이 아닌 것 아니었다.

-크흐흐흐.. 감히 내 던전을 무너뜨리고 내 연구물들을 훔쳐간 건방진 난쟁이놈들.. 네놈들을 쫓기 위해 수백미터 지하에서부터 기어올라왔다.. 이 곳에 있는 모든 생명들은 절망 속에서 몸부리치다 죽게 될 것이다!

"허허.. 쓰벌.. 어쩐지 드럽게 함정이 많더니만 이제보니 수백년 썩은 괴물의 집이었구먼!"

"푸하하! 그야말로 움직이는 석탄이로구만! 땔감으로 쓰면 아주 제격이겠어!"

그러나 심상치 않은 강적의 앞에서도 호탕하게 웃은 드워프들은 그저 배틀액스를 쥔 손에 힘을 더할 뿐이었다. 드워프 전사하면 용맹하기로 소문 난 것에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 놈들! 도끼 나가신다!"

-써걱.

대장장이 일과 채굴, 벌목 등으로 단련 된 힘이 작은 키에서부터 폭발적으로 뿜어져나와 그 날에 걸리는 것들은 구울이든, 해골이든 가리지 않고 썩은 짚단처럼 일격에 베어버리고 있었다.

-크크크크.. 난쟁이 놈들이 그 작은 발로 잘도 돌아다니며 싸우는구나.. 어디 이 놈도 상대해 봐라.

리치가 가볍게 손을 내젓자 검은 색의 아공간 마법이 펼쳐지며 그 곳에서부터 거대하고 흉측한 괴물이 튀어나왔다

-쿵! 쿵! 쿵!

"크르르..."

-우지직..!

너무 커다랗기에 몸을 숙여도 천장이 부서질 정도로 큰 크기! 퀭한 눈빛을 통해 이미 죽은 시체인 것은 짐작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육상 종족 중 최강자로 일컬어지는 오우거였다!

녀석의 키는 6m 정도로 트롤의 2배나 되는 키와 몸집을 갖고 있었다.

-우오오오! 후웅---!!

"피해--!!"

"이런.. 씹.."

-텅!!!--.. 콰직!..

거칠게 내저어 그저 한 놈만 걸리라는 듯 전력으로 휘두른 팔에 맞은 운 나쁘게 걸린 드워프 한 명이 벽에 부딪히며 그야말로 피떡이 되어버렸고 눈알 하나는 튀어나가 벽에 매달린 채 데롱거렸다.

"우오오--!! 강철모루 부족의 맛을 보여주마아--!!"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틈을 노려 다리에 힘을주고 자신의 키의 족히 3배는 넘는 엄청난 높이를 펄쩍 뛴 드워프 한명이 힘차게 도끼를 내려찍자 검은 피가 튀기며 좀비 오우거의 한 쪽 팔이 뼈가 보일 정도로 깊게 패였다.

-우어?.. 턱!!

"웁..!"

하지만 고통을 느끼지 않는 언데드에게 이러한 상처는 치명상이라 부를 수 없었다. 조금도 신경쓰지 않은 채 가까이와서 잘 됐다는 듯 드워프 한 명을 손아귀에 잡아 꼭지를 따듯이 머리를 비틀어 뽑아버리곤 떨어지는 핏물을 입으로 들이키고는 그대로 입에 넣어 씹어먹었다.

-빠드득.. 쩝..쩝.. 까드득..

강인하고 단단한 드워프의 뼈와 근육이 좀비 오우거의 입 안에서 분쇄되는 끔찍한 소리에 남은 드워프들이 수염을 떨어대며 분노하였다.

"저..저런.. 써글놈..!"

-누가 감히 신성한 정령의 숲을 더럽히는가!

그 때였다. 심상치 않은 폭발음과 사악한 언데드의 기운을 느끼고 분노하며 달려온 숲의 수호자! 번개 정령의 힘을 빌리는 트롤 주술사! 루크랄이 나타난 것이다.

그의 분노는 있어선 안 될 것을 목격한 자처럼 사납고 격렬했다.

루크랄은 제일 먼저 큰 덩치를 가진 좀비 오우거를 노렸다.

"정령들의 분노가 네놈을 파괴할 것이다!"

쩌적 쩌저적

루크랄이 양 손바닥을 가슴께에서 서로 마주보게 하자 그 사이에서 시퍼런 전기가 마구 불똥을 튕겨냈다. 그리고 그대로 전면으로 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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