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쾅.
그의 손에서 섬광이 번쩍하는 순간 오우거의 머리에서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오우거의 몸은 실 끊어진 인형처럼 그 자리에서 허물어 쓰러졌다. 머리가 완전히 날아간채 새까맣게 타버린 목의 피부를 보면 얼마나 강한 위력이었을 지 능히 짐작이 가리라.
"흐음-!!"
-콰직! 캬아악!!
귀찮게 달려드는 스켈레톤의 몸을 루크랄이 그저 주먹으로 내려치기만 해도 몸 전체가 으깨지다싶이 부셔졌다. 트롤의 강인한 몸과 지치지 않는 체력, 재생 능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무기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나의 친우여! 그대의 모습을 드러내시오!"
루크랄이 눈을 감고 입술을 달싹거리며 무언가를 중얼거리자 그의 문신이 푸르게 빛나며 수많은 전하를 온 몸에서 뿜어냈다! 그것들이 푸른 아크를 만들어내며 형태를 갖추더니 그 안에서 시퍼렇게 전기가 뭉쳤다.
-캬오오오--!!
전기로 이루어진 푸른 표범!
정령 중에서도 강력한 힘을 가지기로 유명한 번개의 정령이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윽고 번개의 정령이 구울과 스켈레톤 사이로 뛰어들자 사방 곳곳에서 감전 된 언데드들이 온 몸에서 연기를 내뿜으며 재가 되었다.
-캬오옹-!!
분노한 번개의 정령의 움직임은 아무도 피할 수 없었다. 눈부신 뇌전이 어딘가에서부터 번쩍! 하고 뻗어나와 사방으로 작열하는데, 사실 정령은 그 곳을 이미 떠난 상태이다. 너무 빠르고 어디로 튈지 모를 자유분방한 움직임에 뒤늦게 표범이 움직인 행적만이 남아 착시 현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파지직!
하지만 미리 방어 마법을 전개하고 있던 리치는 그저 눈 앞에서 방전되는 전류를 보곤 그저 흥미롭다는 듯 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클클클.. 트롤 주술사.. 네놈의 실력이 제법이구나..
-화르륵!...
조소를 흘린 리치의 손아귀에 초록색으로 빛나는 무척이나 불길해 보이는 마법이 생기자 루크랄은 몸을 떨었다.
"서.. 설마 그것은..! 데쓰 파이어..?!"
기세등등하던 루크랄이 데쓰 파이어를 알아보곤 공포를 드러내었다. 그만큼 데쓰 파이어는 전설 속에서나 등장하는 위험한 마법이었다.
닿는 모든 것을 썩어 문드러지게 만드는 공포의 공격 마법, 그 위력은 심지어 대상이 돌이나 쇠라고 하더라도 가리지 않고 재로 만들어버리는 마법이었다.
-여흥은 여기까지다!
-화륵! 화르륵!!
"어림없다 이놈!"
드워프 중 한 명이 강철 도끼로 녹색 불길을 막아냈지만 초록색 불길은 넘실거리며 꺼지지 않은 채 강철에 달라붙었고, 이내 자루를 타고 손으로 넘어갔다. 그러자 드워프 전사의 손가락 뼈가 순식간에 드러나고 팔뚝의 근육이 녹아내리더니 팔뚝 아래가 어이없이 툭- 하고 떨어졌다.
이윽고 멈추지 않는 초록색 불길은 계속해서 드워프의 몸을 썩게 만들었다.
"으.. 으아악!! 내 몸이!!"
"이런! 막지마! 무조건 피해야 한다!!"
-꺄아아악--!!
그 때였다. 무슨 일인지 상황을 보러 온 엘리야가 지옥에서나 볼 법한 끔찍한 광경들에 비명을 지르며 주저 앉았고, 리치는 이런 외진 여관에서 엘프를 볼 줄 몰랐다는 듯 흥미로워하며 데스 그랩 마법을 시전해 검은색 기운을 넘실넘실 흘리는 뾰족한 악귀의 손을 소환해 엘리야의 목을 부여잡곤 눈 앞으로 가져와 품평하였다.
"호오.. 무척이나 아름다운 엘프로군, 그냥 죽이기엔 아쉬워.. 내 특별히 밴시로 만들어 날 섬기게 해주마.."
'이런 빌어먹을 새끼가 엄마를...'
로한은 그 모습에 분노했지만, 냉철하게 어떻게든 저 리치의 약점을 공략해서 엄마를 구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서둘러 녀석이 처음에 소리쳤던 석판을 찾으러 갔다 자신이 생일선물로 받았던 심상치 않았던 고대의 석판, 그게 녀석이 이 곳까지 찾아와 복수하는 목적이 분명했다.
'빨리.. 빨리..'
-크아악!! 커헉!! 이 노오옴---!!
서둘러 다녀왔건만, 이미 그 잠깐 사이에 전투는 끝나버린 것인지 로한이 본 것은 무뤂꿇은 루크랄과 처참하게 당한 채 구울들과 좀비들에게 시체를 뜯어먹히고 있는 사부님들이었다.
"커.. 커헉..."
내장이 타는 고통에 자신의 배를 움켜쥔 채 앞으로 쓰러진 루크랄.. 곧 이어 초록색 불길이 넘실거리며 점점 번지자 주먹만한 크기의 구멍이 뚫려 두꺼운 트롤의 척추를 훤히 드러내다 옆구리마저 휑하니 부식시키며 점점 구멍이 커졌다.
트롤의 재생력으로도 생존 불가능한 상처에 루크랄은 공포에 젖은 눈으로 입술을 달싹이다 결국 숨을 거두었다.
그 모습을 여유롭게 지켜보던 리치가 손가락을 까딱이자 데스 그랩에 목줄기를 잡힌 채 의식을 잃은 엘리야가 리치의 눈 앞으로 끌려갔고 로한은 지금 막지 않으면 엄마가 밴시가 되어 영원히 저 리치의 부하가 되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끼곤 크게 소리쳤다.
"그만둬라-! 리치--! 그렇지 않으면 네놈이 찾는 이 석판을 부셔버리겠다-!!"
도끼를 크게 들어올린 채 석판을 바닥에 놓고 협박하는 로한, 먹힐지 아닐지도 확실치 않은 인질극..! 이것이 로한이 강력한 리치에게 대항하기 위해 생각한 최선의 수였다.
-오.. 내가 찾던 석판이로군 고맙구나 오크.. 네놈은 특별히 고통없이 죽이겠다.
"당장 그녀를 내려놓으라 했다! 리치! 내가 부시지 못할 것 같나!"
-크. 하! 하! 하!
가소롭다는 듯 로한을 비웃은 리치가 로한을 보며 조롱하듯 말했다.
-그게 평범한 고대 석판인 줄 아나? 얼마나 강력한 힘이 깃들었을지 아무도 모를 고대 마도문명의 유물을.. 우습구나.. 우스워 나조차 파괴 불가능한 불가사의의 석판을 가지고 날 협박하다니.. 무식한 오크 녀석..
허나, 그때였다.
-우우웅...
로한은 자신의 문신이 작게 빛나며 어떠한 공명이 석판에서부터 느껴진다는 것을 느꼈다. 마치 지금이라는 듯, 당장 날 해방시켜 달라는 듯 로한을 이끄는 끌림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석판을 연구하며 그 안에 깃든 힘을 연구했던 리치가 그러한 조짐을 못 느낄리가 없었다. 다급해진 리치는 반드시 로한을 막아야 한다는 듯 소리쳤다.
-서..설마..! 그 문신... 그리고 마도 문명의 정수.. 그런 바보같은 일이!! 멈춰라! 오크-!! 퍼즈[Pause]-!!
다급히 정지 마법을 걸어 로한을 옴짝달싹 못하게 만든 뒤 데쓰 파이어를 시전한 리치.. 로한은 유일하게 움직이는 눈동자를 또르륵 굴리며 리치의 손에서 이글거리는 초록색 불길을 보며 무력한 자신의 힘에 한탄했다. 그리고 그 결정적인 순간이었다.
-아우우--!! 콱!..
황소만한 검은 털의 다이어 울프가 달려들어 리치의 두개골을 씹어버린 것이다.
-크르릉..!! 휙! 휙!
그대로 요절을 내버리겠다는 듯 어금니에 문 채 좌우로 돌려대는 탓에 리치의 앙상한 몸이 공중에서 이리저리 휘둘렸다.
-큭.. 이 하등한 짐승 따위가!
순간 급한 나머지 방심해 굴욕을 당한 리치가 데쓰 파이어를 날리자 결국 다이어울프 또한 비명을 지르며 요절하였다.
-깨갱!! 끼잉.. 끼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