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화 (1/22)

나에겐 친구가 1명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이현진, 17살에 나랑은 클래스 메이트이자 배스트 프랜드, 일명 절친이라 말할 수 있는 사이다. 중학교 시절에 처음으로 만나 친해지고, 같은 고등학교로 와 같은 반에 바로 그 친구가 내 앞자리에 앉게 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운명으로 엮여 있다고 밖에 볼 수 없었다.

남자 새끼랑 운명으로 엮여진다는 말이 역겹게 느껴졌지만 그런 말을 써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우리는 친했다.

그 친구와 나는 평범한 고교생으로, 고교에 입학한 뒤에 우리가 정한 목표는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 수능에 치어 죽기 전에, 여자친구를 사귀어 마음껏 청춘을 구가하는 것이었다. 고교 생활하면 청춘, 청춘하면 장미빛 미래, 장미빛 미래라고 하면 역시 어여쁜 여자친구다.

……라는 것이 그 친구의 주장이다. 하긴, 이해한다. 평범한 고교생에게 여자친구가 갖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이치, 특히 성욕 왕성할 나이대인 중고등학생에게 여자친구란 용이나 봉황에 비견할 수 있는 환상의 생물이다. 때문에 일반 고교생들에게 그 목표는 지극히 당연하며 인간으로서 부끄럽지 않다. 나 역시 여자친구가 무진장 갖고 싶다.

하지만 그 친구에게는 우리와 같은 평범한 고교생에겐 없는 것이 있었다.

잘생긴 외모? 아니다. 그 녀석의 외모는 평범에서 조금 나은 수준이다.

우수한 성적? 아니다. 그 녀석은 바보라서 공부를 못한다.

빵빵한 집안? 아니다. 그 녀석은 어딜봐도 평범한 가정집의 아이다.

그따위 것보다 훨씬 더 대단한거다. 꽃미남의 외모보다, 전교 1등보다, 부잣집 아들이라는 배경이 둘째 셋째로 전락할 정도로 부럽고 부러워서 온종일 배가 아플만큼 전국 모든 남자 고교생들이 갖고 싶은 그것!

그건 바로 미소녀 소꿉친구다아아아아아아아아아앗!!

늦잠을 자려고 하면 언제나 미소녀 소꿉친구가 찾아와 깨워주는 이벤트!

어머니의 수제 도시락이나 급식으로 점심을 때우는 게 흔한 현대 고등학교의 고교생에게 최고급 레스토랑의 최고급 요리보다 더 탐나는 미소녀 소꿉친구의 수제 도시락을 가지고 미소녀 소꿉친구와 함께 옥상에 올라가 점심을 먹는 이벤트!

집도 가까워 언제나 함께 등교하고, 함께 하교하며 부모님이 안계실 땐 미소녀 소꿉친구가 찾아와 앞치마를 입고 직접 저녁을 만들어 먹는 이벤트!

미연시에서나 일어나는 그런 특급 이벤트를 일상적으로 느끼는 그 친구의 이름은 이현진, 나이 17살의 고교생이며 나의 가장 친한 친구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너희들은 이현진을 죽이고 싶은가!"

"""오오오!"""

"너희들은 이현진을 질투하고 있는가!"

"""그렇습니다!!"""

"너희들에게 이현진이란 무엇이냐!"

"""적! 적! 적! 적! 적!"""

"그럼 이현진 암살회의 15번째 회의를 시작한다! 본제는 '어떻게하면 주희 몰래 이현진을 뒷산에 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겠……."

"잠깐 기다렷!"

기분 좋게 회의를 진행하려 했지만 갑자기 내 어깨를 붙잡고 누군가 테클을 걸었다. 급격히 기분이 나빠지는 것을 느끼며 고개를 돌리자 더 기분이 나빠졌다.

"뭐냐, 이현적(敵)."

"무슨 일이냐, 이악당."

"볼일이라도 있냐, 이 짐승."

"뒈져라, 이 귀축."

"잠깐, 지호는 그나마 맨 뒷글자만 빼면 내 이름과 비슷했지만 나머진 내 이름과 전혀 관계없는 이름을 내 성에 붙였잖아! 것보다 마지막에 말한 녀석 누구야!"

"시끄러! 우리는 어떻게하면 널 뒷산에 파묻고 조용히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할 수 있는지 회의를 진행해야한단 말이다! 볼일이 없으면 나중에 오도록!"

"우와, 무지 당당해. 그런데 그거 죽이겠다는 사람 앞에서 하는 건 좀 아니지 않냐?"

"헛! 이런, 우리가 비밀리에 진행하려 했던 범행을 본인에게 들켰다!"

"뭐가 비밀이냐…… 교실에서 걸상 붙이고 당당하게 진행하고 있던 주제에."

현진이 뭐라고 떠드는 것 같았지만 비밀을 들켜버린 우리에게 그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당황해서 한 곳에 모여 어떻게하면 좋을 지 각자 의견을 내비췄다.

"어떻하지? 하필 저 녀석에게 들켰으니……."

"어쩌면 주희에게 이를지도 몰라."

"세상에, 이런 일에도 소꿉친구에게 의지하다니."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부럽다!"""

"그건 부럽다고 여기기 이전에 남자로서 부끄러운 일 아니냐!"

"""죽여버리겠다, 이 최종귀축하렘남자식아아아아!"""

"젠장, 이성을 상실했나? 우리 반은 왜 이런 일에만 단합이 쓸데없이 좋은거냐!"

제각기 의자나 무기를 쥐고 최대한 신속하게, 마치 오랫동안 훈련 받은 숙련된 병사처럼 이현진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주변을 포위하고 흉흉한 눈빛을 띄며 언제라도 재빨리 이현진은 묻어버릴 수 있도록 무기를 조준하고 있었다.

현진은 당황한 표정으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며 빠져나갈 틈을 찾고 있었지만 어림 없다. 지금 여기에 있는 자는 자신의 목숨을 버려서라도 현진을 죽이고 싶다는 각오로 가득한 질투의 화신들, 질투심 하나로 전신을 무장시킨 전사들이다. 현진 녀석이 살아남을 틈 따윈 바늘 구멍 정도라도 만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그것을 현진도 깨달았는지 얼굴이 새하얗게 되어서 식은 땀을 흘리고 있다.

후후후후후, 여기에 네 놈이 빠져나갈 틈 따윈 없다!

"자, 모두 공겨……."

드륵.

"뭐하고 있는거야, 이 바보들이!"

내가 막 손을 들어 마침내 이현진을 죽이겠다는 이현진 암살회의 오랜 염원을 이루기 위한 공격 명령을 내리려던 바로 그때! 갑자기 교실문이 열리고 그림자가 튕겨져나와 허공을 돌더니 바로 이현진의 앞에 착지했다.

"특, 최주희!"

"이현진의 소꿉친구이며 보디가드, 최주희가 나타났어!"

"젠장, 주희가 나타나기 전에 처리했어야 하는건데!"

최주희, 우리가 그토록 부러워하는 이현진의 소꿉친구이며 우리학교 3대 미소녀 중 1명이다. 동시에 온갖 무술의 유단자라 실력이 보통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가 이현진을 처리하려고 할 때마다 나타나 붙은 또다른 별명은 이현진의 보디가드! 안타깝게도 지금 또 다시 이현진을 처리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

"아니, 안돼! 이렇게 다시 물어날 수는 없어!"

쓰러질 것 같았던 정신을 일으켜세운다. 우리는 불굴의 질투의 전사! 이대로 끝낼 순 없다!

"또 너야? 유지호!"

"큭, 주희야. 미안하다. 하지만, 하지만…… 우리는 너같은 미소녀 소꿉친구를 두고도 자기가 행복한 줄 모르는 저 녀석을 진심으로 죽이고 싶어!"

"미, 미소녀라니…… 흠흠, 그런 칭찬 해봐야 아무것도 안 나오거든!"

아아, 귀엽다. 약간 얼굴에 홍조를 보이며 부끄러움 때문에 금발 트윈테일을 휘날리며 고개를 돌리는 츤츤거리는 반응이 너무 귀엽다. 게다가 그녀는 상당한 미모의 소유자, 그런 미소녀가 이러면 역시…….

"너희들, 알지?"

"아아."

"물론이지."

"""역시 저 녀석을 죽이고 싶다."""

"어째서 그런 반응을 보이는건데?!"

"""뒈져라아아아아!!"""

"이 바보들이, 바보짓 그만하라니까!"

그리고 교실은 담임 선생님이 오실 때까지 난투극이 계속되었다. 현진은 필사적으로 주희가 막아주고 도망친 덕분에 무사했다.

뭐, 이런 나날이 바로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다.

학교 수업을 마치고 하교 시간, 하교는 주로 나와 현진, 그리고 주희가 끼어서 같이 가다가 내가 먼저 해어지는 것이 일과였지만 오늘 주희는 급한 볼일이 있다고 해서 오랜만에 우리끼리 하교를 하는 중이다.

"야, 너 요즘 나에게 너무 심한 거 아냐?"

"얌마! 미소녀를 셋이나 알고, 무지 친하게 지내는 네 녀석의 실시간으로 보내는 염장이야말로 우리에게 심한 건 알고 있냐? 그냥 네 행복한 청춘 라이프에 대한 시련이라고 생각해라."

"으윽, 내가 아는 사람들이 미소녀인건 아는데 그래봤자 그냥 친하게 지낼 뿐인데……."

그 녀석이 태평스럽게 한 말에 다시 확 열이 뻗은 나는 부들부들 떨리는 입가를 히죽 말아올리며 재빨리 그 녀석의 머리에 손을 뻗어 아이언 클로를 걸었다.

"으갸갸갸갸각!"

"호오, 그냥 친하게 지낸다는 것이 소꿉친구는 아침마다 깨우러 와주고, 아침 점심 저녁을 같이 먹는 게 그냥 친한거냐? 그리고 '부장님'에겐 부의 유망한 기대주라며 기대받고, 매일 부장님이 직접 만들어오시는 스테미나 드링크를 먹게 해주고, 주말마다 도장에서 1:1로 친절하게 훈련 받으며 같이 지내는 것이 그냥 친한거냐? 마지막으로 집에 돌아오면 마치 남편을 기다린 새색시처럼 '그 아이'에게 마중 받고, 그 아이가 해주는 밥을 먹고, 같이 목욕하고, 같이 자는 그런 생활이 그냥 친하다고오오오오?!!"

"으갸갸갸갸각! 마, 마지막! 마지막 둘은 아냐! 함께 목욕한 적도 없고 잔 적도 없단 말야!"

"진짜?"

"……얼마 전에 우연히 걔가 들어가 있는 줄 모르고 문을 열었다가 알몸을 본 것과 걔가 방을 착각해서 내 침대에 잔 적은 있지만…… 아파아아아아아악!"

"이 빌어먹을 정도로 부러운 쌔끼! 걍 니가 다 해먹어라! 하렘을 만들어버렷!"

"우와아아아악!"

한참 부러움에 미칠 것 같은 마음에 체벌을 가해준 뒤,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진 거리에 도착했다.

"여기서 해어져야겠네. 그럼 내일 다시 만나자."

"아야야…… 그래. 아, 그러고보니 너도 가끔씩은 우리 집에 놀러와라. 어머니가 보고 싶어 하시더라."

"그래? 알았어. 나중에 시간 되면 갈게."

"그럼 안녕."

"내일 보자."

현진과 해어진 후, 나는 조금 걷다가 슬쩍 고개를 돌려 멀리 걷고 있는 현진의 모습을 보았다. 현진은 내 쪽을 다시 볼 생각도 하지 않고 점점 형태가 작아지고 마침내 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제서야 몸을 돌린 나는 다시 걷기 시작했다.

……하교하던 길을 그대로 되돌아가면서 말이다.

<이현진 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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