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2/22)

<최주희 SIDE>

집에 도착하고, 집사 할아버지가 차를 주차하는 동안 먼저 나와 지호가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지호는 먼저 빨랫대에 걸린 수건을 꺼내 나에게 건냈다.

"자, 이걸로 젖은 머리부터 닦아."

자기도 충분히 젖었으면서 나에게 먼저 수건을 건내는 지호의 배려에 감동하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그런데 감동한 건 감동한건데 어째서 얼굴이 이렇게 뜨거운거지? 너무 많이 맞아서 감기 기운이 생겼나?

"고, 고마워."

진정해라 나! 친구가 호의를 주고 난 그걸 받아들이는 것 뿐인데 거기서 왜 목소리가 떨리는거야! 그래, 이건 틀림없이 비를 너무 많이 맞았기 때문일거야. 내가 좋아하는 건 현진이 뿐이란 말야~!

"주희야, 너 먼저 씻을래?"

"씨, 씻어? 왜?"

지호는 날 좋아한다. 집사 할아버지가 있긴 하지만 집사 할아버지는 지호의 편이다. 그러니 지금 당장 나에게 그 마음을 내비춘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다. 설마 내가 마음이 약해진 틈을 타서 나쁜 짓을 하려는 건…….

"비를 맞았는데 당연히 씻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감기 든다고."

"아, 응! 그러내, 당연히 씻어야지."

지호는 그럴 생각이 없는데 나 혼자 착각하고, 망상하고, ……왠지 바보 같아졌다.

"너 먼저 씻어."

"아, 아냐. 주인이 먼저 있는데 손님인 내가 먼저 씻을 수야 없지."

"그게 아니라, 우리 집엔 여자 옷이 없어서 나가서 사와야 해. 어짜피 옷만 갈아입고 다시 사러 나가야 하니까 넌 그때동안 씻으면 돼."

"하지만……."

"괜찮다니까! 자자, 얼른 들어가서 씻어."

지호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먼저 씻기로 했다. 게다가 마침 젖은 옷이 몸에 달라붙어서 찝찝했고, 호의를 너무 거절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고 배웠으니까. 응응.

마치 목욕탕에 온 것처럼 탈의실에 전용 목욕탕까지 따로 존재하는 부잣집의 굉장함이 잠시 놀란 후, 젖은 옷을 힘겹게 벗어던지고 브레지어를 풀고 팬티를 벗어 탈의실 구석에 있는 세탁기 안에 넣고 돌렸다. 그런데 이 세탁기, 무지 비싸보인다.

투명한 유리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저절로 감탄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대중목욕탕과 비교할 정도로 크진 않지만, 5, 60명은 족히 들어갈 수 있을만한 넓이에 고풍스러운 용이나 바구니를 든 여인 등의 조각상들이 목욕탕의 질을 높이고 있었다. 게다가 언제 들어가도 문제 없을 정도로 적당히 따뜻한 온도로 데워진 욕탕에서 따뜻하게 올라오는 김을 보며 슬쩍 손가락을 대어 온도를 확인해봤는데, 비 때문에 차가워진 손가락에서 포근함이 느껴질 정도로 적당한 온기라 망설일 것 없이 바로 온 몸을 풍덩 담궜다.

"하아~ 낙원이구나~!"

얼굴을 제외한 몸 전체를 온수 안에 넣고, 쭈욱 몸을 펴고 있자니 전신에서 느껴지는 따뜻함에 긴장이나 응어리진 감정들이나, 모든 게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게다가 매우 세련되고 멋진 예술품 같은 조각상들이 눈에 들어와, 그런 조각상들을 감상하면서 씻고 있으니 마치 부잣집 아가씨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여기에 시중드는 메이드가 있었다면 딱 좋았겠지만 생각해보니 이 집에 메이드가 있는 것을 본 적도 없었고, 거기까지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지호에게 고마워해야겠네."

지호를 떠올리니 갑자기 얼굴에 피가 쏠려 거품을 내며 눈 밑까지 쓰윽하고 물 밑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상냥하고 다정하게 날 대해주는 지호에게 무척 기뻤지만, 지호가 날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안 이상 그 호의를 무작정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미 여기까지 받아버린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이상은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 난 현진이를 좋아한다. 비록 현진이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도망쳐버렸지만, 오해일 수도 있다. 그 광경이 뇌리에서 사라지질 않아 심장 부근이 따끔거리는 느낌이었지만, 돌아가서 천천히 대화를 해보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상 지호에게 나에 대한 미련을 주면 오히려 나중에 지호만 더 괴로워 질것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 '그냥 지호의 마음을 받아줘도 괜찮지 않아?'라고 속삭이는 악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지호는 4년째 날 짝사랑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마음을 나에게 보이지도 않고 참으며 내가 현진이랑 잘 되도록 응원까지 해주었다.

아니, 마음을 감춘 것이 아니라 현진이에 대한 사랑 때문에 모르는 척 했던 걸지도 모른다. 현진이가 나에 대한 사랑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처럼 나도 지호에 대한 사랑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하, 하하, 현진이를 천하제일의 바보둔감남이라고 욕했지만, 내가 현진이를 욕할 게 못됬네. 현진이가 천하제일의 바보둔감남이라면 난 천하제일의 바보둔감녀였어. 자신의 사랑을 알아봐주지 않는 고통이 얼마나 힘든 지 알고 있으면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것을 보는 게 얼마나 괴로운 지 알면서, 지호의 고통을 모르는 척 하고 있었다. 내 눈에 오직 현진이만 보였으니까, 현진이에 대한 마음으로 가득 차 있었으니까, 지호에 대한 마음을 알면서도 그 고통에 눈을 돌리고 있었다.

……정말로 난, 나쁜 년이구나.

자책하면서 얼굴까지 전부 물 속에 푸욱 담궜다가 쓰윽 꺼냈다. 슬슬 온탕에 너무 오래 있어서 머리가 어지럽다. 몸을 일으켜 젖은 머리카락을 짜내고 탕에서 나와 샴푸와 비누, 바디 클랜징을 꺼내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몸을 닦았다. 몸을 전부 씻고난 후, 그만 나가려고 반투명한 유리문을 열었다.

……그러자 종이봉투를 내려놓던 지호와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미, 미안. 여기 옷 있으니까 이걸 입으면 돼. 속옷은 샀지만 브레이저는 사이즈가 어떻게 되는 지 몰라서 못 샀어. 미안, 그리고 봐버려서 미안!"

쿵!

지호는 충혈된 눈으로 굳어버린 내 몸에서 눈을 때지 못하고 자기 할 말을 국어책 읽듯이 꺼내다가 나중에 화들짝 놀라 문을 쾅 닫아버렸다. 낮선 남자에게 알몸이 보여진 것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인지, 아니면 하필이면 지호에게 알몸을 보인 것에 대한 부끄러움인지, 나는 익을 정도로 몸이 달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물론 흥분 때문이 아니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미안해."

"아, 아니야.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고 나간 내 잘못도 있어. 게다가 넌 옷을 놓고 바로 나갈 생각이었잖아? 타이밍이 나빴던 걸로 치자."

"알았어. 그렇게 말해준다면야……."

옷을 입고 나가자마자 지호는 엎드려 나에게 사과했고, 나는 괜찮다고 몇 번이나 말해줘서야 몸을 일으켰다. 부끄러웠지만 사고였고, 지호도 나에게 성교육을 시켜줄 때, 자신의 부끄러운 것을 보여줬기 때문에 파장파장이라고 생각해 침착할 수 있었다.

"지호야, 너도 그만 씻어. 많이 춥겠다."

"에, 에취! 킁, 그렇네. 그럼 내 방으로 가서 만화책이라도 보고 있어. 금방 씻고 갈테니까. 궁금한 점이 있으면 집사 할아버지에게 물어보고."

"알았어."

지호가 미소를 지으며 떠나고, 나는 예전에 왔을 때 기억해뒀던 지호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호의 방은 변함이 없었고 책장에서 순정만화책이라도 볼까 싶어 확인해보고 아무 책이나 꺼내봤다.

하지만 금새 질려 덮어버렸다.

"하아~ 어떻게 하지?"

지호의 집에 와버렸지만 지금 이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어떻게 지호를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 지호가 목욕하고 돌아오면 뭘 하지? 잠? 식사? 게임? 대화?

한숨을 쉬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집사입니다. 들어가고 되겠습니까?"

"아, 들어오세요."

"실례하겠습니다."

끼익.

문이 열리고 집사 할아버지가 한 손에 노릇노릇한 쿠키를 든 접시를 들고와 내 앞에 올려놓았다.

"쿠키라도 좀 드시라고 가져왔습니다. 많이 배가 고프실테지요?"

"아, 마침 좀 출출했는데 고맙습니다."

"별 말씀을요.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죠. 지호 도련님이 사랑하시는 분인데."

"쿨럭! 쿨럭!"

쿠키 하나를 꺼내 먹으려던 바로 그때, 집사 할아버지의 말에 놀라 기침을 했다.

"이런, 괜찮으십니까?"

"쿨럭! 괘, 괜찮아요.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아, 지호 도련님이 주희 아가씨를 좋아하시는 걸 말씀이시죠? 허허, 그간 지호 도련님을 보필해온 저입니다. 어찌 도련님의 마음을 모를 수가 있겠습니까? 더구나 지호 도련님을 가장 변하게 만들어주신 분께 말이죠."

"네? 지호를 변하게 해요? 뭘요?"

내 물음에 오히려 집사 할아버지가 놀라는 표정을 지으셨다.

"이런, 도련님께서 말씀을 해주시지 않았습니까? 으음, 이 집사가 쓸데없는 말을 해버렸군요."

"저기, 무엇을……."

"그건 도련님이 돌아오시면 듣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럼 이 집사는 이만……."

"잠시만요! 집사 할아버지!"

"정말 죄송합니다. 그건 도련님의 일이라서 함부로 말할 것이 못됩니다."

다급히 집사 할아버지가 나가시고 지호에 대한 호기심으로 머리가 꽉 채워졌다.

지호가 변했다니? 지호와 만난 그 순간부터 지호는 변하지 않았던 걸로 기억…… 아니, 아니다. 난 지호와 처음 만났을 때의 지호를 모른다.

기억하고 있지 않다.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 지호가 나를 위해 총에 맞아준 이후의 일은 기억하고 있지만, 그 이전의 기억은 애매했다. 기억나는 것은 오직 이현진 암살회인지 뭔지를 만들고, 현진이를 괴롭히려 했던 순간 뿐이었던가? 아, 그러면서도 늘 현진이랑 친하게 지내는 것이 의아했었지.

지호라면, 아마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날 알고 있었을테지. 날 처음 만난 그 순간부터 좋아했다고 들었으니까.

어쩌면…… 나보다도 훨씬, 더 지호는 괴로웠던 게 아닐까? 현진이는 내 마음을 모르고 있었지만, 관심을 가져주고 대화를 나누고 어릴 적부터 친했기 때문에 우리 사이는 다른 사람이 부부라고 놀릴 정도로 가까웠다. 하지만 지호는, 내가 관심을 가져주지 않고 대화를 나눈 적도 손에 꼽을 정도로 없었음에도 아직까지 날 좋아하고 있어준 것이다.

난…… 대체 어떻게 해야하지? 지호를 어떻게 대하면 좋은거야?

끼익.

"후우, 따뜻한 물에 목욕하니까 역시 기분 좋네."

호랑이도 제 말하면 나타난다더니, 지금 고민 중인 대상이 몸을 이끌고 나타났다. 흠짓 당황해 고개를 숙이자 내 이상 행동에 지호가 의아해하며 물었다.

"왜 그래? 아직도 추워? 감기 기운이라도 있어?"

"아, 아냐. 그냥……."

필사적으로 말을 돌릴만한 소재를 찾다가, 마침 막 집사 할아버지가 했던 이야기가 떠올라 입을 열었다.

"그러고보니, 집사 할아버지가 나보고 나 때문에 가장 많이 변했다는 데 그게 무슨 소리야?"

"아…… 집사 할아버지, 쓸데없는 말을."

지호의 얼굴이 붉어지며 곤란한 듯, 빰을 긁적인다.

"궁금해서…… 굳이 말하기 싫다면 말하지 않아도 돼."

"아니야. 네가 듣고 싶다면 말해도 상관은 없지만, 재미는 없을거야."

지호는 한숨을 쉬고 내 옆에 앉았다. 난 내 옆에 앉은 지호에게 거부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지호의 입에서 나올 얘기가 궁금할 뿐이다.

"어릴 적의 난, 정말 아무도 믿지 않는 녀석이었어. 너도 알겠지만, 사정이 사정이라서……."

그건 그렇다. 지호의 형이라는 작자들이 지호에게 히트맨을 보낼 정도로 지호는 나보다도 더 심각하고 위험천만한 과거를 보냈을 것이다. 오히려 지호가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자라올 수 있었는지 신기했다.

"예전에, 난 어느 조직에 납치를 당했었어. 그 조직이 어딘지는 몰라. 하지만 그 조직에 의해서 난 3년간 끔찍한 일을 당해왔고, 누구도 날 구하러 와주지 않았어. 그 지옥 같은 3년을 버티고 버티다보니, 희망이고 뭐고 다 사라져버리더라. 그러던 중에, 날 단신으로 구하려 와준 사람이 있었어. 바로 내 어머니야."

"네 어머니가……."

"그래. 하지만 날 탈출시킨 댓가로 어머니는 그 조직에 잡혀버렸지. 난 날 납치하고 어머니를 잡은 그 조직에 복수를 하고 싶었지만 그 조직에 대한 어떤 정보로 몰랐어. 그래서 난 내 집으로 돌아가 힘을 길러 그 조직을 찾고 복수할 생각만 가득 했어. 하지만 형님들은 날 못마땅하게 여기고, 결국 집에서 쫒겨나 여기까지 왔어. 당분간 자중하면서 언젠가 반드시 형님들을 제치고 조직의 보스가 되겠다는 생각만 하면서, 형님들에게 이런 내 마음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평범한 학생을 연기하고 있었지. 그때, 현진이랑 너를 만난거야."

지호는 너무도 괴로운 추억을 담담하게 말하면서 떨리는 두 손을 강하게 움켜쥐고 있었다. 무언가, 거대한 감정을 힘껏 억누르듯이.

"행복했어. 나에겐 처음으로 느끼는 우정이었고, 처음으로 느끼는 사랑이었어. 우정을, 사랑을, 모두 지키고 싶었지만 그 사랑은 그냥 내 짝사랑이었고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처음으로 사귄 친구를 좋아하고 있었어. 친구에게 질투도 했고, 미워해본 적도 있었지만 우정을 잃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난 사랑을 포기하려고 했지. 그런데 포기하고 포기해도, 그게 내 마음대로 되질 않더라.

처음엔 연기였어. 그런데 그 연기가 점점 진심이 되어갔어. 언젠가 이 가면을 벗고 비정한 나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일상의 따뜻함에 중독되었어. 내가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아가면 가까이에 있는 너에게도, 현진이에게도 피해를 주고 말거야. 그것만큼은 싫었어. 그래서 난 사랑을 포기했고, 너가 현진이랑 잘되면 그대로 떠날 생각이었는데…… 미안. 널 여기로 데려온 것은 내 사심이 있었어. 널 포기할 수 없는 내 마음이 있었어. 알고 있는데, 널 사랑하면 안된다는 걸 알고 있는데…… 미안해. 정말, 이렇게 널 끌여들여서 미안해……."

필사적으로 사죄하며 울음을 터트릴 듯이 괴로워하는 지호를 자신도 모르게 끌어안고 있는 내가 있었다.

"주희야……?"

"괜찮아. 난 괜찮아. 자책하지 않아도 돼. 자신을 너무 괴롭히지 마……."

안타깝다. 지호가 너무 안타깝다. 그 감정은 사랑이 아닌 동정심이 훨씬 더 컸지만, 나는 지금 현진이보다 지호라는 남자에게 더욱 끌리고 있었다.

아아, 그래. 이젠 인정할 수 밖에 없다. 난 현진이를 좋아했지만, 지호라는 남자에게도 호감을 가지고 있다. 날 위해 몸을 던져주고, 날 아껴주고, 날 위해주고, 나에게 상냥하게 대해주는 이 남자에게 마음이 조금씩 끌리고 있었던 것이다.

"날 좋아해?"

"좋아해. 미치도록 좋아해. 너가 현진이를 사랑하고 있는 만큼 좋아해."

"그래, 그렇게나 날 좋아하면서…… 계속 날 좋아해주면서…… 현진이와 나를 위해서 참고 있었던 거구나."

아아, 나도 어쩔 수 없는 여자인가보다. 좋아하는 사람이 따로 있지만 이렇게나 날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게 마음이 끌린다. 날 소중하게 여겨주는 이 남자가 너무나 사랑스럽다.

"난…… 네 마음을 받아줄 순 없어."

"역시…… 그랬구나. 짐작은 했어. 알고 있었어. 넌 현진이를 좋아하니까."

"맞아, 하지만…… 오늘만큼은, 오늘 밤만큼은 조금이지만 받아줄게."

지호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고개를 든다. 나는 자애로운 웃음을 지어주면서 꼬옥! 하고 지호의 몸을 포옹해준다. 어쩌면 이리도 바보스러운지, 어쩌면 이리도 싫어할레야 싫어하지 않을 수 있는지, 어쩌면 이리도 마음이 끌리는건지…….

동정심의 발로? 아니면 모성애? 아무래도 상관없다. 나중에 이 일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난 참을 수 없었다. 이 남자를 위로해주고 싶은 이 마음을 견딜 수 없었다…….

"정말로, 날 받아줄거야?"

"조금 뿐이지만, 네 마음의 상처를 내가 쓰다듬어줄 수 있도록, 도와줄게."

지호도, 양 팔을 들어 나를 꽉 끌어안았다.

내가 지호의 품에서 벗어나 뺨을 잡고 시선을 맞춘 후, 우리가 침대로 향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아……."

뜨거운 열기를 맺은 한숨이 터져나왔다. 두 손으로 지호의 목 위를 끌어안고 물기 띈 눈동자로 지호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지호의 눈동자는 전에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나를 집어삼키고 싶다는 난폭한 짐승의 눈빛이었다. 그 눈빛에 약한 초식동물이 되버린 느낌이 들어 잠시 몸이 굳었지만 오늘만큼은 지호의 연인이 되어주기로 했으니까…… 안심하라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괜찮아. 난 여기서 떠나지 않아. 네가 좋을대로 해도 돼."

"정말이지? 정말 널 내 것으로 해도 되는거지?"

"응…… 아, 하지만 내 처녀만큼은 안돼. 처녀만 아니면 어떤 것도 받아줄테니까…… 그걸로 참아줘."

"……알았어. 여자의 순결은 소중한 거니까.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 게 맞겠지."

"응……."

갑자기 지호가 얼굴을 떨어뜨리고 내 입술을 빨았다. 키스라곤 입맞춤 밖에 한 적 없었던 나에게 이런 무시무시할 정도로 강한 키스는 날 당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호의 혀끝이 집요하게 입 속 사이사이와 입천장, 혀끝, 잇몸 구석구석까지 맛있다는 듯이 핡고 빨고 탐색하듯이 움직이는 농밀한 키스는…… 마치 영혼이 먹히는 것을 알면서도 거부할 수 조차 없게 만드는 악마의 키스였다.

"하읍…… 쭙…… 츄릅…… 으음, 하웃! 쪽…… 쪼옥…… 쭙, 츄르릅~"

"으음, 쭙…… 쭈읍…… 쩝쩝, 할짝, 쭙…… 츄릅…… 으음, 쪽쪽."

맞부딪쳐있는 입술 틈에서 끈끈한 타액이 가느다란 턱을 타고 흘러내린다. 하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보다 눈 앞의 지호의 혀에 더 어울리고 싶었다. 몰랐다. 딥키스라는 것이 이렇게 끈적끈적하고 간지럽고 상쾌한 느낌이 들게되고, 하늘에 붕 떠오르는 것 마냥 황홀하고 행복감이 들게 해주는 것이었는지…….

계속 지호와 키스만 하고 싶었다. 몸에 열기가 가득 차오르고 거기가 간지러워서 허벅지를 비비적거리며 나도 모르게 손이 허벅지 사이로 향해 있었다.

지호의 키스로 정신이 나가있던 나에게 하복부를 향해 손을 뻗어 만지작거린 것은 일부러라기보다 거의 본능에 가까운 행동이었다. 옷 위로는 참지 못하고 서둘러 입고 있던 바지의 단추를 풀고, 지퍼를 열어 팬티 안에 손을 집어넣고 작은 콩알을 만지작거리며 더더욱 적극적으로 지호의 혀를 빨며 지호의 입 속에 혀를 넣어 서로의 혀를 맞닿아 원을 그렸다.

좋아, 하아, 너무 기분이 좋아. 현진이를 생각하며 자위를 할 때도 이 정도가 아니었어. 지호랑 딥키스하면서 자위하는 거 너무 기분 좋아앙~

"츄릅…… 츄릅…… 우웁, 가, 갈 것 같아, 가…… 쪼옥! 쪽쪽…… 츄릅! 쭙."

내 애원에 지호는 키스만이 아니라 한 손으로 내 머리를 자신의 입술에서 떨어질 수 없도록 강하게 누르고 다른 한손으로는 티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브레지어 안에 손가락을 넣어 주물렀다.

아무리 지호라지만 현진이가 아닌 사람에게 가슴을 멋대로 만져지고 있다. 진한 딥키스를 나누며 혀를 맛보고 기분이 좋아서 흠뻑 젖어버린 팬티 안을 휘젖고 있다.

희미하게 가슴 속에서 타오르는 열락의 쾌감으로 가득차 다른 한 손으로 힘껏 지호의 등허리를 껴안았다.

쾌락을 더, 더 지호를 느낄 수 있도록. 지호가 주는 쾌락에 몸이 물들어져 간다.

"츄릅…… 츄르릅…… 할짝…… 아아아, 지, 지호야…… 츄릅, 나 가, 가아, 가가가가가아아앗!"

쾌락의 끝, 마침내 지호가 주는 쾌락에 정신이 무너지고 절정을 느꼈다. 볼품없이 지호가 새로 사준 팬티를 적시며 지호의 침대에 내 오줌 같은 애액이 이불에 쏟아져 더럽혔다. 등줄기에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허리가 뒤로 젖혀지고, 마지막까지 지호의 입술에 내 입술을 때어놓지 않으며, 아니, 지호가 때어놓을 수 없게 만들어 저절로 힘이 들어가 강한 흡입력으로 지호의 혀와 입술, 침 한 방울까지 전부 목구멍 속에 빨아들였다.

한 손으로 지호의 허리의 옷자락을 떨릴 정도로 강하게 쥐고,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쾌감을 느꼈다.

"하아, 하아, 지호야. 너무 기분 좋았어어……."

마침내 서로 격렬하게 탐하던 입술을 때어놓자 침으로 연결된 실이 이어졌다가 떨어졌다. 단 한번, 단 한번 키스했을 뿐인데 이 정도로 지친다. 찰나와도 같았지만, 실제로 5분동안 계속 딥키스를 하고 있었다.

지호가 동물이 이성끼리 서로 애정 표현을 하는 것처럼 뺨을 부비적대며 말했다.

"나도 주희랑 키스해서 기분 좋았어. 하지만 난 아직 만족하지 못했어."

지호가 빙긋 웃으며 한 손을 들고 자신의 바지 위에 올린다. 그러자 바지 사이의 경계가 무색할 정도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지호의 자지가 있었다.

"미, 미안. 그러고보니 나만 가버렸네."

"훗, 그럼 주희 공주님. 예전의 성교육을 떠올리며 복습을 해볼까요?"

지호는 바지 단추를 풀고 팬티까지 전부 내려 빳빳하게 세워진 자지를 밖으로 풀어냈다. 지호가 움직일 때마다 덜렁거리며 실핏줄이 보일 정도로 흥분해서, 만지기만 해도 사정할 것처럼 보였다.

지호는 바지만 벗는 게 아니라, 옷까지 전부 벗어 태초의 모습이 되어 천천히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지호의 모습에 두려우면서도 은근히 한줄기 기대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고 지호가 이제 자신에게 어떤 것을 할지 좋아하는 수업을 듣는 학생처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지호를 바라보았다.

내 눈빛을 이해했는지 지호는 옷의 단추를 하나 하나 풀면서 나를 벗겼다. 나는 지호의 행동을 막지 않았다. 부끄럽지만 오늘은 지호의 연인이 되어준다고 말했으니까. 오히려 몸을 뒤척히며 지호가 날 벗기는 걸 도왔다.

지호는 한두번 해본 솜씨가 아닌 것처럼 능숙하게 내 브레지어를 풀고 젖어버린 팬티를 벗겼다. 완벽하게 지호의 눈 앞에, 나의 나신이 일부분의 감춤도 없이 그대로 드러나 얼굴과 몸까지 부끄러웠는지 새빨개졌다.

"아름다워…… 너무 아름다워, 주희야."

"그, 그렇게 빤히 바라보지 말아줘."

"하지만, 네 몸이 너무 아름다워서 눈을 땔 수가 없어."

고개를 내려, 지호가 칭찬하는 내 몸을 보았지만 내 몸이 정말로 그렇게 아름다운 건지 잘 몰랐다. 오랫동안 단련하느라 딱딱해진 몸, 아버지의 엄명으로 피부 관리를 해와 뽀얗고 깨끗한 유우빛깔 피부나 열심히 단련한 덕분에 가는 허리는 나도 자신이 있었지만 현진이의 어머니나 현진이가 존경하고 있는 그 '부장'과 비교하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B컵의 적당한 가슴, 두꺼운 허벅지 같은 경우는 자심감이 떨어졌다.

남자는 가슴이 크면 클수록 좋고, 가는 다리를 좋아한다고 들었는데, 지호도 겉치례로 그렇게 말해주는 게 아닌가 걱정했지만 지호는 내 알몸에서 충혈된 눈을 때지 못하고 있어서 지호의 아름답다는 말이 진심임을 알고 기뻤다.

"그럼, 이걸 빨아줄래?"

"빠, 빨아?"

지호는 손으로 자지를 들어 내 얼굴에 가까이 들이밀었다. 자지를 빠는 건 이번이 두번째 경험이다. 첫번째는 현진이, 현진이의 자지를 빨아줄 때는 기교가 없어서 걱정했었는데 이번에도 잘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응, 빨아줘."

"음, 알았어. 해줄게."

용기를 갖고 양손으로 자지를 잡으려고 했지만 지호가 손으로 막았다. 의아해 시선을 들자 지호는 머리를 내저으며 말했다.

"손 없이, 입으로만 해줘."

"……알았어. 네가 원한다면."

입을 크게 벌려 지호의 자지를 입 안에 넣고 물었다. 자지가 커서 뿌리까지 다 넣기는 힘들어 반 정도만 물었는데도 숨 쉬는 게 꽤나 힘들었다. 그래도 지호를 위해서, 혀를 움직여 귀두 앞부분의 갈라진 틈을 핡자 지호가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여길 핡아주는 게 기분 좋은 거구나…… 남자의 더러운 것이 나오는 더러운 장소였지만, 현진이에게도 해준 적 있는데 지호에게는 해주지 못할 것이 뭐냐 싶어 아까 전의 딥키스를 떠올리며 지호가 나에게 해줬던 딥키스를 지호의 자지를 지호의 혀라고 생각해보면서 그대로 재현해보았다. 게다가 지호의 자지는 현진이의 자지처럼 짜기만 한 줄 알았는데, 의외로 중독될 정도로 맛있는 느낌이었다. 특히 자지를 입에 머금을 때마다 흘러나오는 향기가 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현진이에게 처음으로 해줬을 때보다 더 적극적으로 지호의 자지를 맛있게 탐하며 열심히 지호의 자지를 타액 투성이로 만들었다.

"후루룹…… 쭙, 츄르릅…… 쩝, 할짝할짝, 하웁, 츄르릅…… 후릅……."

"허억, 허억…… 그래, 그렇게. 혀를 좀 더 아래로 움직여줘. 으흑! 그래, 그렇게 움직이면서 천천히 위로 혀를 대고 귀두 사이까지 올리는거야. 허억, 허억…… 좋아, 기분 좋아, 주희야!"

지호의 칭찬에 기분이 좋아져 자지 밑둥을 핡고, 귀두 주변을 닦아주고, 뺨을 홀쭉하게 해서 자지 전체를 입 안에 따뜻하게 덮어줘 앞뒤로 움직이거나, 자지 아래의 음낭에 든 알같은 것을 빨아주거나, 혀를 뾰족하게 세워 귀두의 갈라진 틈(지호는 이걸 요도구라고 했다) 안에 조금 넣어보는 등, 지호가 가르쳐주는 그대로 혀와 입을 움직여 정성껏 지호의 자지에 봉사했다.

그 사이, 지호는 손을 내려 내 가슴을 떡 주무르듯이 만지작거리며 좀 쌔게 가지고 놀았지만 지호의 손길이 기분 좋아서 계속 하도록 내버려두고 지호의 명령대로 혀를 움직이는 일에 집중했다.

자지 끝의 요도구에서 투명한 액체가 흘러나와 혀로 핡았다. 자지가 사정할 준비가 되어가고 있다는 뜻이다. 자지의 모든 부위에 사랑스럽게 키스를 쏟아부으면서 이 달아오른 몸을 식히기 위해 빨리 사정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침이 흘러 떨어지는 것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젖이 나오길 기다리는 아기처럼 필사적으로 자지를 빨았다.

"우우, 주희야, 너무 쌔, 조금 살살……."

"……앗, 응. 미안해…… 쪽, 후루릅, 츄릅…… 쭙쭙…… 쩝…… 이렇게 하면 돼?"

"응…… 딱 좋아. 하아, ……으읏, 기분 좋아. 금방이라도 쌀 것 같아!"

"………어서 싸. 받아줄게. 정액도 전부 먹어줄게! 그러니까 싸도 좋아. 츄릅, 후릅…… 쭈읍…… 쪽쪽, 츄릅……."

"아읏! 으윽, 싸, 싼다! 싼다아아아!"

울컥울컥울컥울컥울컥울컥울컥!

자지 안의 정액이 터지며 거침없이 나의 입 속으로 흘러나왔다. 나는 놀라 먹으려했지만 양도 양이고 젤리같은 정액의 농도에 삼키지 못하고 뱉어내 콜록콜록 기침을 해댔다. 그러나 내가 괴로워하는 것도 신경쓰지 않고 지호의 자지에는 정액이 계속 흘러나왔고, 지호는 자지가 입에서 빠져나온 것이 상당히 아쉬웠는지 내 머리카락과 가슴에 겨냥하고 시원하게 싸질렀다.

퓨웃퓨웃퓨웃퓨웃퓨웃퓨웃퓨웃!

지호의 정액은 보통 사람의 정액과 달랐다. 끈적끈적하고, 새하얗고, 기분 나쁜 감각보다는 흥분제처럼 피부에 닿으면 닿을수록,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지호의 정액을 원하게 된다.

나는 정액 범벅이 되어 쓰러진 그대로 또 다시 절정에 가버려 고개를 뒤로 젖히고 찌릿찌릿하게 몸을 떨며 애액을 흩뿌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아아, 기분 좋았어. 정말 네 입은 최고였어, 주희야."

"하아…… 하아…… 하아."

행복한 표정으로 말하는 지호의 목소리를 듣는 건 기뻤지만 지호를 돌아보며 그 목소리에 응답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흉부가 크게 부풀고 가라앉는다. 내 몸은 두 번째 연속된 절정으로 제법 지쳐서 전신이 마비되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정말…… 몸을 단련해서 아픔 때문에 근육통으로 마비된 적은 있지만, 쾌락으로 몸이 마비된 경험은 처음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결코 싫지 않은 경험이었다는 것이다.

"만…… 족 했어? ……지호야."

"미안, 아직도 이래."

눈이 경악할 정도로 크게 떠진다. 보통 남자는 한번 하면 힘이 줄어드는 것이 보통 아니었나? 그런데 마치 부족하다는 듯이 아직도 딱딱함을 간직한 채로 더 해달라는 것 같이 내 앞에서 흔들리는 자지가 빳빳하게 서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나, 조금 더 하고 싶어. 뭐든지 해도 된다고 했잖아? 난 오늘 밤이 끝날 때까지 계속 널 즐기고 싶어."

"우우,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이건 곤란하다. 힐끗 벽에 걸려있는 시계를 보자 이제 겨우 30분 정도 지났을 뿐이다. 아침이 되어 학교에 가는 시간까지 앞으로 8시간 30분이나 남았다.

그럼, 이 정도의 쾌락을…… 17번이나 더 느끼야 한다고?

무리! 절대 무리! 아무리 체력이 좋아도 그건 엄청나게 무리야! 한 번만 더 느끼면 실신해버릴거야! 지금은 혀도 까딱한 힘 없는데…….

"괜찮아. 힘들면 가만히 있어도 돼. 처녀도 지켜줄거고, 내가 하고 싶었던 플레이를 잔뜩 해볼테니까."

……누가 나 좀 살려줘어어어어어어어!

결국 가슴에 문질러 2번, 입 안에 1번, 얼굴에 1번, 다리 사이에 끼어서 절정과 동시에 사정 3번, 머리카락에 2번, 겨드랑이에 1번, 발로 2번, 총 12번을 사정하고 10번의 절정을 느끼고 말았다. 더 하려는 지호에게 '앞으로 일요일마다 네 집에 찾아와 3시간동안 네 애인이 될게! 그러니까 제발 그만 쉬게 해줘!'라고 외친 뒤에야 지호는 간신히 그 끝없던 욕망을 멈췄고 그제서야 지칠대로 지친 나는 몸의 절반에 묻은 정액의 찝찝함을 느낄 틈도 없이 정액의 밤꽃 향기를 맡으며 잠들 수 있었다. 아아, 행복해. 잘 수 있어서 너무 행복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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