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세영 SIDE>
그 일은 어린 시절 첫 데이트를 하러 손을 잡고 호텔로 향했을 때보다 더 심장이 두근거렸고, 내 자매인 세리가 어릴 적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고백했을 때가 차라리 덜 충격적이었고, 내 남편이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한 운명을 가진 용사였다는 비밀을 알게 된 것와 동급으로…… 누군가 쇠망치로 내 뒤통수를 힘껏 후려친 것 마냥 격하게 마음이 흔들리고 몸이 연달아 떨렸다. 싸늘한 밤이건만 얼굴은 왜 이렇게 화끈거리는지…….
처음은 실수였다. 오늘 아침에 만난 지호네 메이드 씨와 의기투합해서 주스를 마시며 즐겼다가 잠들었는데, 너무 주스를 많이 마셨는지 한밤 중에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로 향했다.
그런데 어둡기도 했고, 잠결에 그만 남자 화장실과 여자 화장실을 착각해버린 것이다. 들어가자마자 남자 화장실인 것을 알고 돌아가려고 했는데, 문득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으읍! 으읍! 으으읍!'
'허억, 허억, 아아…… 또 싼다.'
'으음…… 아음…….'
……심연 속에 가라앉았던 정신이 또렷해지고 곧 작게 들리는 이 소리가 어떤 소리인지 성경험을 해본 나는 금방 이게 무슨 소리인지 알아낼 수 있었다. 내 남편이 살아있었던, 현진이를 낳기 전에 자신이 곧잘 이런 목소리를 내고는 했으니 모르는 것이 이상했다.
들키면 민망한 사태가 벌어질 것 같아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화장실 안의 사람이 알기 전에 얼른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발걸음이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사람의 원초적인 본능, '호기심'이 내가 자리를 뜨려는 것을 막고 있었다. 아아, 솔직하게 말한다. 누가 하고 있는지, 어떤 섹스를 하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의 성경험 상대는 오직 현진의 아버지, 즉 남편 밖에 없었다. 성에 대해서 제법 알고 있지만 남편과는 간단하고 담백한 섹스만 해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섹스는 비디오로 밖에 본 적이 없었다. 아직 외모도, 마음도 거의 청춘이라 불릴만한 나다.
여고생 시절에는 그런 거에 관심이 많아 자주 보고, 남편과 즐거운 잠자리를 하기 위해 불법 사이트에서 야동도 다운 받아보며 열심히 공부했지만…… 하나도 써먹지 못하고 지식으로만 남겨져 지금은 잊고 있었는데…….
100% 현실로 다른 사람의 섹스를 감상할 기회가 찾아오자 나는 몰래 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옆칸으로 가 조심스럽게 귀를 기울였다. 옆 칸에서 100% 리얼로 다가오는, 여인의 열기에 들 뜬 목소리와 남자의 헐떡이는 목소리, 그리고 찰싹찰싹하고 살과 살이 맞부딪치는 목소리까지…… 터질 듯이 펌프질하는 심장 소리가 혹여 들킬까 걱정했지만 다행이 서로가 내는 교성에 들키지 않은 듯 보였다.
그런데 잠깐…… 이 목소리, 어딘가 익숙해.
잠시 후, 뚝뚝하고 바닥에 하얀 백탁액이 떨어졌다. 칸 사이에 있는 아래쪽의 틈으로 볼 수 있었다.
"우윽, 배가 빵빵해에……."
"후우…… 으음, 너무 많이 해버렸나?"
"너무 심했어. 이렇게까지 무자비하게 싸다니……으윽, 배가 아파."
"하하, 미안미안…… 그래도 좋았지?"
"확실히 좋았긴 했는데…… 으으, 얼른 나가!"
"가, 갑자기 왜……."
"왜기는! 항문 속에 그렇게 관장하는 것처럼 쌌는데 나오지 않게 생겼…… 으윽, 빨리 여기서 나갓!"
"그, 그래. 알았어. 배려가 부족했네. 난 먼저 나가있을게."
"으음…… 얼른! 참는 것도 한계야!"
"어, 어!"
후다닥 남자애가 나가고, 같은 여자로서 차마 말할 수 없는 부끄러운 소리가 들리며 잠시 후, 물이 내려가는 소리와 함께 여자애가 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시간이 지날 동안 아무도 들어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나는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을 하늘에 감사하며 밖으로 나와 옆 칸으로 향했다. 새하얀 정액으로 가득한 변기 바닥…… 그 애들도 참, 정리를 하지 않으면 나중에 들켜버릴텐데 어쩔 생각인건지…….
"이게…… 지호랑 주희의……."
목소리로 알아챘다. 여기서 섹스한, 그 아이들은 지호와 주희였다.
어머어머어머어머…… 요즘 아이들은 진도가 무지 빠르다고 듣긴 했지만…… 벌써 이렇게…….
그리고 주희는 현진이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직감이 틀렸나보다. 지호와 이렇게 공공연연하게 할 정도라면 이미 연인 관계라도 생각해도 괜찮겠지.
"하아, 하아…… 지호의 정자…… 아기 씨앗……."
남편을 빼면 처음보는 정액을 자신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찍어서 문질러보았다. 진득진득하고 새하얀 점액 같은 액체…… 그리고 섹스한 뒤에 언제나 맡았던 땀과 정액 냄세가 섞인 악취…… 문득 나는 혀를 내밀어 손가락으로 찍은 정액을 맛보려고 했다는 사실을 깨달고 깜짝 놀랐다.
세상에, 미쳤어미쳤어미쳤어미쳤어미쳤어미쳤어! 아무리 성에 대해 관심이 많아도 그렇지, 어떻게 내 나이의 절반도 안되는 애에게…… 나도 참 주책이야.
얼른 벽에 걸린 휴지를 꺼내 쓱쓱 변기를 닦아내며 지호의 모습이 떠올랐다. 언제나 누님 누님하면서 자신이 진짜 친누나인 것처럼 잘 따르던 지호, 매일 같이 내가 정말 예쁘다고, 임자만 없다면 바로 청혼했을 정도로 이상형이라고 말했던 지호, 낮에만 해도 자신을 위해 뺨까지 맞아가며 도와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설마 주희랑 사귀고 있었다니…… 은근히 서운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서운해? 뭐가? 따, 딱히 지호가 누구랑 사귀든지 상관 없잖아? 진짜 친누나도 아닌데…… 하지만, 매일 날 그렇게 칭찬하고 결혼하고 싶다고 했으면서…… 나에게 얘기도 하지 않고 여자랑 사귀기 시작한 것은…… 조금, 아주 조금 실망감을 느껴버렸다.
그, 그래. 이건 아들이 며느리를 데려왔을 때랑 비슷한 감정일거야. 만약 현진이가 평생을 같이 살 여자라며 어느 여자를 데려왔다면 당연히 이런 기분을 느낄거야. 게다가 주희는, 괜찮은 아이잖아? 이국적인 금발의 내가 봐도 질투날 정도로 깨끗한 피부를 가지고, 몸매도 늘씬하고 나처럼 몸이 처지지도 않았어. 무엇보다 나랑 비교할 가치도 없을 정도로 젋은 영계고…… 나랑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돼는 일이야.
이럴 땐 축하해줘야지. 비밀로 하고 있는 것 같으니까 굳이 말하진 않고, 그 아이들이 말해줄 때까지 기다리면서 뒤에서 두 사람의 사랑을 응원해주자.
변기를 깨끗하게 치우고 휴지를 변기물에 내린 후, 나는 희미하게 허탈감을 느끼며 내 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런데 왠지 내 발걸음이 무겁다고 느껴지는 것은…… 단순한 착각일까?
<임세영 SIDE OUT>
휘적휘적 떠나는 누님을 몰래 쳐다보면서 나는 기뻐서 크게 광소하고 싶은 것을 힘껏 참고 마음 속으로만 웃었다.
이건 정말 예상 외의 기쁜 일이다. 누님이 나랑 주희가 몸을 섞던 중에 나타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폭로하지 않고, 나와 주희가 떠나자 옆 칸으로 가서 하는 행동거지를 보고 그만 웃음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것을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고맙게도 내가 정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깔끔하게 우리의 뒤처리를 해주신 누님이 떠나고, 난 예상 밖의 좋은 정보를 얻은 사실에 하늘에 감사했다.
설마 누구보다 정숙하다고 생각했던 누님이…… 그런 음란한 자질을 가지고 있을 줄이야.
내 정액을 무심코 먹으려고 했던 행동, 그 행동은 누님의 윤리관념 때문에 도중에 막혔지만 틀림없이 그녀는 남자의 향기와 맛에 끌리고 있었다.
틀림없다. 지금 누님은 남자가 그리운거다. 하긴, 누님 같은 분은 남편이 죽고 누구와도 몸을 섞은 일이 전혀 없었을테니 당연히 오랫동안 누군가와 섹스를 해본 적이 없을 것이다. 보통의 여자라면 섹스 감각이 퇴화 되었겠지만, 누님 같은 체질의 사람에겐 오히려 그 음란함이 쌓이고 쌓여 그것이 오늘, 나와 주희의 섹스를 보고 그 음란함이 일부 빠져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본래, 이번 수학여행은 다른 목적이 있었지만……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기다리세요, 누님. 제가 곧 누님의 억눌린 성욕을 풀어드릴테니까요. 쿡쿡쿡."
씨익 웃으며 나 역시 내 방을 향해 걸어갔다. 아무도 들리지 않도록 조용히…….
<정 선생님 SIDE>
모두가 잠들어버린 밤, 나는 내 행동이 드러나지 않도록 몰래 밖으로 나와 정말로 만나기 싫었지만 명령이라 어쩔 수 없이 내 직속 상관에게 무릎을 꿇고 있었다. 내 직속 상관이라고 해서 학교 쪽에 관련된 인물이 아니다. 학교측의 나, 정 선생님이라 부르는 나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만들어진 인물이다.
모두에게 감춘 내 진정한 정체는 정부의 제2비밀기관, 구룡천의 일급 비밀요원, 'J'다. 그리고 눈 앞의 인물은 그 구룡천에서도 톱의 위치에 있는 구룡천의 최고 권력자, 비교하자면 삼족오의 대장, 최광후를 예로 들 수 있다. 물론 그 영향력은 이 자가 더욱 강하지만 말이다.
일룡(一龍), 구룡천 전체를 지배하는 아홉명의 연구자 중에서 최고령의 늙은 구렁이라 불리는 노인은 내 보고를 듣고 턱의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흐음…… 고작 중급 마족에게 죽을 뻔 했을 땐 각성한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 정도로 성장이 느릴 줄이야. 역시 '편법'이 필요한가."
"편법이라 하시면……."
"자네가 알 바는 아니네. 흐음…… 그나저나 참 곤란하구먼, 곤란해."
노인은 말로는 곤란하다는 듯 보였으나 입과 눈만큼은 전혀 곤란하다는 기색이 아니었다. 오히려 흥미로운 사건을 목격한 것처럼 반짝였다. 솔직히 기분 나쁘다.
"잘못 되었다가는 용사의 정신이 붕괴되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어, 끌끌끌. 그럼 참 곤란한데 말이야……."
난 노인의 말에 당장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무슨 짓을 하려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다. 물론 그 행동은 상상으로만 가능했다. 현실에서 그런 짓을 했다간, 그것도 구룡천의 최대 지휘권자에게 그런 무례를 저지르면 어떤 처벌을 받을 지 몰랐다.
"자네, 용사의 주변에서 가장 친한 이들이 최주희, 유지호라는 아해와 용사의 어머니이자 선대 용사의 아내인 임세영이라고 했던가? 최주희란 아이는 대한민국의 전력(戰力)에 필요한 아이니 아쉽지만 넘어가고…… 그럼 유지호란 아이와 용사의 어머니만 남는군."
불안하다. 이 노인은 자신이 직속 부하가 된 이후로 평가하길 극한으로 노망 난 늙은이다. 곱게 노망난 것도 아니고, 완전 미친놈도 저리가라 할 정도로 좋지 않은 쪽으로 노망이 났다. 그런 늙은이가 중얼거리는 말을 듣기만 해도 분명 저 노인이 자신의 학생, 유지호나 학부모에게 무슨 짓을 저지를 생각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다.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모른다.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다. 자신은 이 자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으니까, 이 자의 계획을 방해할 자격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
그저, 거짓으로 담임 선생님으로 있었지만, 상당히 많이 정을 나누었던 아이가 죽을 위기에 처했다는 것을 못본 척 할 수 밖에 없는 자신을 저주할 뿐이다.
"정말 곤란하군, 끌끌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