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22)

<정 선생님 SIDE OUT>

새하얀 방, 대리석보다 더 밝고 너무 깨끗한 백색이라 조금의 더러움조차 받아들이지 않을 것 같이 숨막히도록 밝은 순백색의 정육면체 방이었다.

방 안에서 눈에 보이는 이는 단 2명, 아니, 방금 전까지 살아 숨쉬던 아이가 시체인 체로 쓰러져버렸으니 정확하게 말하면 '3명이었다'고 하는 게 알맞겠지.

옆에서 근 1년간 함께 지내왔던 아이가 죽었는데도 방 안의 2명의 아이는 죽은 아이를 바라보지 않았다. 관심조차 없었다. 방심했다간 자신들도 저렇게 될 지 모르니까, 온 힘을 다해 집중해 몸을 압박하는 압도적인 압력에 저항할 뿐.

[실험 정지, 실험 정지.]

아무것도 없는데 방 안에서 기계적인 음성이 들리며 몸의 압박감이 많이 줄어들었다. 드디어 목숨을 건 실험이 끝났고, 1명을 제외하면 우리는 모두 살아남은 것이다. 기뻐 눈물이라도 흘려야 정상이지만 그럴 수 없다. 차라리 여기서 죽는 것이 덜 고통스러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저 죽은 아이는 행운이었다.

그때, 방의 왼쪽 벽에 네모형으로 금이가며 양쪽으로 벌어졌다. 동시에 그 사이로 나타난, 우리의 모든 실험을 주관하며 우리의 상사여탈권을 쥔 원흉이 여전히 보기만해도 구렁이를 연상하게 될 만큼이나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지으며 나타났다.

"끌끌끌, 56번째 실험에서 사망자 1명…… 이번 실험체들은 너무 튼튼해서 기분이 좋구먼, 끌끌끌."

그의 눈에 죽은 아이 따윈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가 마음에 들어하는 것은 살아남은 우리들, 어떤 실험에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목숨줄이 끈즐겨진 우리들이었다.

"보자…… 호오. 과연과연, 이호(二號)야…… 너는 역시 훌륭한 실험체구나. 그 강력한 성압(聖壓)을 견뎌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오히려 그 성압에 담긴 성력을 이 정도로 흡수하다니…… 과연 특이체질의 아이답구나. 흐음, 그리고 칠호는…… 성압에 노출되지 않도록 마기를 감추는 일이 더욱 능숙해졌구나. 껄껄껄, 좋은 일이야, 좋은 일이야."

마치 자식을 칭찬하는 할아버지처럼 크게 웃는 그에게서 정(情)을 느끼는 이는 이 곳에 없었다. 그저 분노할 힘도, 기력도, 마음도 모두 잃어버렸을 뿐이다.

"그리고 십호는…… 흐음, 제법 재능이 있다고 여겼지만 슬슬 한계인가…… 그럼 오늘은 푹 쉬려무나. 나중에 자료를 다 정리하면 불러주마. 끌끌끌!"

손을 흔들며 떠나는 그에게 욕 한마디 꺼내지 못하고 보내며 털석! 하고 바닥에 쓰러지는 우리들. 방금 전은 정말로 위험했다. 마족인 나에게 성압은 두려울 정도로 무서운 힘이다. 차라리 죽고 싶다고 생각 될 정도로…….

"흐에에엥, 집에 가고 싶어! 엄마아아~"

아아, 또 우는거냐? 저 울보가…… 참 체력도 좋다. 나같은 경우는 이미 오래 전에 지쳐서 울음 따윈 낼 생각도 못했는데.

힘들어서 굳이 말을 꺼내려고 하지 않았지만 너무 시끄럽게 울어서 어쩔 수 없이 천천히 녀석에게 다가가 발로 얼굴을 차버렸다.

퍽!

"흐에…… 아악!"

"닥쳐, 죽인다."

가볍게 충고의 말을 해두고 다시 흐느적거리며 내 자리로 되돌아가는 나. 그나저나 저 시체는 언제쯤 치울 생각이지? 설마 우리보고 치우라는 말? 실험 당하는 것도 서러운데 이번엔 시체 처리까지 도맡아야하나…….

"훌쩍…… 칠호야."

"왜?"

"우리, 살아돌아갈 수 있을까?"

이호의 말에 생각에 잠겨버린 나. 살아서 세상 밖으로 나간다라……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아니, 불가능하다. 저 남자가 우릴 순순히 밖으로 내보낼 리도 없고, 설사 허락을 받고 나갈 수 있다해도 그 전에 온갖 끔찍한 실험을 당하며 죽을 확률이 높다.

"아마 불가능할껄."

"훌쩍, 왜?"

"여기가 어떤 곳인지 대충 들었잖아. 특급 기밀 기관, 인류의 적인 마족들을 없에기 위해서라면 적인 마족이든 같은 인간이든 망설임없이 데려와 실험체로 삼는 곳이야. 게다가 그 영감탱이는 이 조직에서도 최고 권력자라고 들었어. 특히 마인(魔人) 연구의 최고봉이라고…… 게다가, 우리 모두 바깥에 나가봤자 평범하게 살 수 없는 몸이야. 너도 네 몸을 봐봐. 우리 모두 마인(魔人)의 육체를 가지고 말았어. 더 이상 평범한 몸으로 되돌아가지 못해."

"그럼 인간이 될 수 없는거야?"

"아아, 그래."

나 같은 경우는 조금 틀리지만.

"……칠호야."

"앙?"

"그래도, 희망을 잃지는 말자. 언젠간 나갈 수 있다고 믿자."

"하아…… 멍청이, 그건 불가능하다니까."

"괜찮아! 누가 뭐라고 해도 난 믿을거야. 언젠가 반드시 밝은 햇빛을 볼 수 있을거라고."

참으로 태평스러운 녀석이다. 죽음에 가까운 이런 순백의 지옥 속에서 그런 어이없는 말을…… 상식 밖이다. 내 머리로는 이 녀석을 파악할 수 없다. 이해 불가능이다.

"나가면 우리집에 널 초대할게. 좀 문제가 있는 집안이지만…… 돌아가면 반드시 내가 어떻게든 해버릴거야!"

"평범한 인간의 집안이라면 가능하겠지. 마인이 된 너라면…… 힘으로 굴복시킬 수도 있고."

"굴복 시키는 게 아냐. 평화롭게 만들려는거야. 우리 집을……."

"그게 그 말이잖아. 네 지배 아래에서 평화롭게 된다."

"아이참, 그게 아니라니까!"

뭐가 다르냐? 인간이든 마족이든 평화롭게 살려면 누군가의 지배를 받아야만 한다고. 민주주의다 뭐다 하면서 세상 어지러운 이유가 서로 다른 의견들이 부딪치기 때문이잖아. 모든 의견을 통합시키고, 절대적인 지배로 자신이 불행하다는 것조차 모르게 만들면 된다. 그것이 진정한 평화라고 난 그렇게 배웠다.

"혹시…… 아주 혹시나 우연히 나갈 기회가 생겼는데, 내가 나가지 못하게 된다면…… 대신 네가 우리 집에 내 소식을 좀 전해줄래?"

"하아? 내가 왜…… 알았다, 알았어. 들어줄테니까 울려고 하지마. 짜증나니까."

"고, 고마워. 그럼 부탁할게. 참, 그리고 내 진짜 이름은 지호야. 유지호, 잘 부탁해."

"하아? 이제와서 진짜 이름을 대는거냐…… 내 이름은 케일 베로그 아듀커스다."

"외국인?"

"토종 한국인…… 은 아니지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다."

토종 한국마족이지만, 우리가 서양물이 드는 바람에 요괴가 아닌 마족으로 불리게 되면서 다들 외국 이름이 기니까 왠지 고귀해보인다면서 일부러 개명했지. 내 어머니 같은 경우도 기왕이면 아들이 멋진 이름을 가졌으면 좋겠으니까 이렇게 지었고.

"그럼 잘 부탁해, 칠호…… 가 아니고 케일."

"아아."

난 처음으로, 이 녀석의 이름을 들을 수 있었고 그것이 후일 내가 계속 쓰게 될 이름이라는 것을 모른 채 녀석의 이름을 기억 한 구석에 처박아넣었다.

눈을 뜨니 모르는 천장이다. 아니, 저건 내가 잠든 숙소의 천장인가? 몸을 들어 벽에 걸린 시간을 보니 기상 시간으로부터 조금 이른 시간…… 7시 45분이었다. 기상 시간은 8시였으니까 15분 일찍 일어났군.

"하아, 갑자기 왜 쓸데없이 옛날 일이……."

그립지만 전혀 그립지 않은 꿈이다. 찝찝함과 알 수 없는 그리움을 느끼며 짜증스럽게 이불을 개었다. 세면 세수를 끝내고 양치질을 한 뒤, 8시가 될 때까지 기다릴 생각에 자리에 앉았다.

옛날, 자신이 납치되어 연구소에서 실험을 당할 때의 기억이다. 덕분에 이 정도로 강해졌지만 고마움 따윈 눈꼽만큼도 없다. 오히려 그곳이 어딘지만 알면 당장 달려가 파괴해버리고 싶을 정도다.

"왠지 불안한걸."

오늘, 무척이나 기분 나쁜 일이 벌어질 것 같다

내 불안함을 씻겨내기라도 하듯이 두번째 날의 수학여행도 아무런 문제 없이 예정대로 흘러갔다.

우선 아침에 일어나 부장님의 주도 하에 아침 체조를 실시한다. 힘들긴 했지만 몸이 좀 풀리는 느낌이다. 그리고 산 아래로 내려가 박물관에 가서 문화재 같은 것을 신기하게 구경하고, 가볍게 점심 식사를 할 때까지 별다른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아침에 꿨던 불길한 옛날 꿈을 아예 잊고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굉장히 신경쓰이는 것이 있었다.

"저, 누님?"

"어, 응? 아, 날씨 참 좋네~!"

"누님, 오늘 날씨는 좀 흐린데요."

"……앗, 맛있어보이는 가계 발견!"

"거긴 방금 전에 우리가 점심 먹고 나온 곳입니다."

"……."

후다닥!

노골적으로 나를 피해 도망쳐버리는 누님이 문제였다. 어제 일 때문인 것 같은데…… 이렇게 질색할 정도로 큰 반응을 보일 줄은 미처 예상 못했다. 이러니 당연하게도 현진이나 주희가 나에게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던졌다.

"너, 혹시 뭔가 아줌마에게 실례되는 짓이라도 벌인거야?"

"죽인다."

"설마 평소 우리 어머니보고 누님, 누님 하더니…… 게다가 너 연상 취향이라고 했었지?"

"갈기갈기 찢어 죽인다."

"뭐?! 지호가 연상 취향이라는 말은 아예 처음 들어보는데…… 혹시 욕망을 참지 못해 불결한 짓이라도……."

"물고기 밥으로 만들어버린다."

현진과 주희의 말에 변명의 말을 떠올리며 쩔쩔 매는데 그것보다 아까부터 한 마디 한 마디가 나에 대한 살의로 끈적끈적하게 물들여진 주희 아버지의 말이 굉장히 신경쓰인다. 이 사람, 아마 주변에 아무도 없었다면 즉시 살인이라도 할 것처럼 흉흉한 눈빛을 보내며 품에 있는 권총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젠장, 어떻게든 납득시키지 않으면 난 정부 비밀기관의 대장에게 찍히는 인생을 보내고 만다.

"나야말로 묻고 싶다고!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평소처럼 대해주시던 누님이 왜 오늘 아침부터 저러는건지……."

하지만 주희와 화장실에서 섹스하는 모습을 우연히 누님에게 들켜버려서 저런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리도 없었다. 그런 걸 말했다간 다른 이유로 주희 아버지에게 죽을거다. 아마 100% 틀림없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럼 왜 어머니가 널 피하는건지 말해주실까!"

현진이가 한 걸음 내 앞으로 다가가며 불신과 호기심, 그리고 불안감을 담은 표정으로 날 노려본다.

"무진장 신경이 쓰이는데? 만약 말하지 않으면 내가 어떤 짓을 해버릴 지 몰라?"

주희가 우두둑! 손가락 뼈를 풀며 불량배처럼 협박조로 말한다. 문제는 주희의 주먹이 얼마나 아픈 지 아는 나에겐 어떤 불량배보다도 무섭다.

"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죽인다."

사랑에 미쳐버린 불쌍한 남자, 주희 아버지는 이미 동공이 풀려 목소리에는 나에 대한 살의만이 가득하다. 여자애가 해도 무서운데 험악한 인상의 중년남이 저러니 다른 의미에서 더욱 무섭다.

주변에 사람들이 있고, 또 주희가 있어서 이 정도로 참는 것 같았지만 저건 레알 위험하다고 내 직감이 경고한다. 내 본능이 아까부터 계속 이 자리에서 도망치라고 급박하게 연달아 메세지를 날리고 있었다.

난 본능에 충실한 남자다.

"그, 그럼 누님에게 가서 물어볼 테니까!"

"앗, 거기 서라!"

"말을 해주고 가야지!"

"……세영 씨에게 간다고? 죽여버리겠어!"

"아오, 아빠는 좀 조용히 있어욧!"

"깨갱……."

다급히 아까 누님이 도망친 길로 달려 누님을 만나 누님의 구명을 받으려고 할 때, 그만 모퉁이에서 누군가와 부딪치고 말았다. 다행히 무게가 별로 나가지 않아 넘어지진 않았지만 두어걸음 밀려나긴 했다. 반대로 상대는 쓰러져버렸지만.

초등학생, 많이 쳐주면 중학교 1학년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는 모자를 쓴 소녀였다. 나는 그 소녀에게 손을 내밀어 소녀를 일으켜세웠다.

"아, 미안. 괜찮니?"

"네, 괜찮습니다."

내 손을 잡고 무릎에 힘을 주어 벌떡 몸을 일으킨 그 소녀는 모자를 위로 벗어올리며 빙긋 웃었다.

"그 착한 모습은 전혀 변하질 않았네요, 이호(二號) 씨."

덥석.

"너, 누구냐."

어느 새, 나는 그 소녀의 목 위에 손을 올려 언제라도 조여 죽일 준비를 마치고 으르렁거리며 협박조로 물었다. 소녀는 자신이 죽을 위기인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방실방실 웃는 표정을 바꾸지 않도 태연하게 자신의 붉은 눈동자를 내 눈 앞에서 빛냈다.

"후훗, 그나마 지금은 상황 판단이 빨라졌군요. 그런데 여기서 절 죽여도 되나요? '아버님'의 전언, 듣지 않아도 되나요?"

"……원하는 게 뭐냐."

"일단 저 쪽에서 이야기라도 나누죠."

나는 소녀의 목에서 손을 때고, 굴욕감에 주먹을 떨면서 소녀가 가리킨 장소…… 페스트푸드점에 들어갔다. 이 자식, 혹시 나보고 사라는 것은 아니겠지?

아무튼, 오늘 아침에 꿨던 꿈이 떠올랐다. 역시 오늘은 불길한 날이 맞았다.

"오랜만이네요, 이호 씨. 그런데 절 잊다니…… 그건 좀 너무했네요."

"닥쳐, 네가 누군데."

퉁명스럽게 물으며 빨때를 입 안에 넣고 콜라를 쪼옥 빨아먹었다. 얼음을 넣은 콜라는 무척이나 차가웠으나, 내가 저 수상한 계집에게 보내는 냉랭한 분위기보다는 차갑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제 소개를 해야겠죠. 제 코드 네임은 삼십삼호(三十三號)…… 당신과 함께 실험체로 납치되었던 사람이죠. 뭐, 생각해보니 처음 납치되었을 때를 빼면 거의 만나질 못했네요."

"나에겐 무슨 볼일? 그 이전에…… 그 자식의 실험은 계속되고 있었던거군."

"네, 물론이죠. 제 아버님의 목표, 아시잖아요?"

"……아아, 초인개발(超人開發) 말인가."

인간을 뛰어넘는 인간, 초인! 세상에 인간을 뛰어넘는 인간이라 불리는 이들은 많다. 용사라 불리는 자들, 성인(聖人)이라 불리는 자들, 마인이라 불리는 자들…… 그들 모두가 바로 인간을 뛰어넘는 인간, 초월자, 초인이라 불릴 만 하다.

하지만 우리를 실험한 그 미친 놈이 원하는 것은 고작 마인, 성인 같은 걸 만드는 게 아니다. 그가 바라는 것은 진정한 초인, 성력(聖力), 마기(魔氣), 마력(魔力), 기(氣), 모든 힘을 부작용 없이 자유자제로 다루고 용사, 마인, 성인 등을 뛰어넘는 초인 중의 초인,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간!

놈이 바라는 것은 바로 그런 존재다.

그런 불가능한 목표 때문에 수도 없이 많은 이들이 실험체로 희생되었다. 분명 이 아이도 그와 다를 바 없을 터…….

"왜 그런 놈을 '아버님'이라 부르는거지?"

"그렇게 프로그램 되어있거든요. 이호 씨의 '대탈주' 덕분에 아버님은 자신이 너무 실험체에 과도한 자비를 보여주고 있었다고 후회하면서 실험체 전원에게 세뇌를 시켰습니다. 아버님에 대한 '절대복종'! 저 역시 그렇게 세뇌되어 있기 때문에 아버님께 거역할 수 없습니다."

"……그걸 말해주는 저의가 뭐지?"

"말해달라면서요? 그래서 말씀드렸을 뿐입니다. 게다가 이건 딱히 감출 일도 아니니까요."

가슴을 콕콕 찌르는 말을 꺼내고는 포장지를 벗겨 햄버거를 앙 물었다.

"우물우물, 게다가 아버님은 아직 당신을 좋게 보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돌아온다면, 그때의 그 일은 없었던 일로 해도 좋다고 합니다."

빠직.

아차, 무심코 힘을 줘서 상에 금이 가고 말았다. 나는 이 화산 폭발처럼 차오르는 분노를 눈 앞의 계집을 죽여버리는 것으로 풀고 싶었지만 참았다. 여기서 소란을 피워도 문제고, 이 계집을 죽이면 얼마 없는 단서도 놓치게 된다.

"그 자식에게 전해. 반드시 찾아가 죽여버린다고."

"……결국 거절입니까? 예상은 했지만."

"아아, 그리고 내 눈 앞의 너도 죽여버리기 전에 얼른 꺼져."

"많이 과격해지셨군요. 알겠습니다, 과연 실험 도중에 탈출한 당신이 절 죽일 힘이 있는지 없는지는 둘째 치고 당신은 아버님이 주신 마지막 기회를 차버렸다는 것을 명심해주십시요."

"꺼져."

나직히 기온을 내려버리는 차가운 음성으로 말하자 소녀는 들고 있던 햄버거와 콜라를 들고 떠나버렸다. 나는 필사적으로 상 위에 얼굴을 파묻고 힘껏 인내심을 발휘했다.

이런 굴욕을 처음이다. 반드시 찾아서 전부 다 죽여주겠어. 그 미친 놈도, 저 계집도, 실험체들도 전부 다!

……나중에서야 그 년이 계산을 안하고 갔다는 것을 눈치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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