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12)

4장..천기뇌황(千驥雷皇)과의 조우(遭遇)

아침햇살을 나무사이로 받으면서 소년을 한걸음 한걸음 나아가고 있었다.

입으로는 연신 아침에 외운 심결을 되내이고 있었다.

'아..단지 이구절 대로라면 모든것을 비우고 모든것을 채울수 있다는 것인데...'

'과연 그런일이 가능할까...'

"툭..."

소년은 뭔가에 걸려서 갑자기 쓰러졌다..

딴생각을 하고 걷느라고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아이쿠...이런..."

소년을 손을 짚고 일어서려는데 눈앞에 붉은빛의 열매가 달린 연녹색의 풀잎이 있었다.

"가만....이건...."

"홍화구엽초(紅花九葉草).."

아홉개의 잎사귀와 붉은꽃과 열매가 백년에 한번 맺히고..그효능이 만년설삼이나

성형하수오와 대등하다는 아주 희귀한 약초이다.

"이런 귀한 약초를 발견할수 있다니..."

소년은 기쁨과 흥분으로 어쩔줄을 몰랐다..

잠시 정신을 가다듬은 소년은 조심해서 약초를 캔다음 짚으로 엮어만든 가방에 넣었다.

'어머니와 아주머니께 열매를 드리고 잎은 달여서 차로 만들어야겠다.'

만약 무림인이었다면 그는 즉시 그것을 복용했을 것이다. 홍화구엽초의 열매는 무려

삼갑자의 공력을 증진시킬수 있고 그열매는 아주심한 외상도 흉터없이 치료해 준다는

그야말로 명약중의 명약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武)에 대해서는 전혀모른 소년으로서는 당연히 그럼 욕심이 없었다.

소년은 다시일어나서 약초를 찾으러 앞으로 계속 걸어갔다.

"쉬....익...."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왔다..

"휘....익...."

소년의 머리위로 무언인가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소년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지만 그저 흔들리는 나뭇가지만을 볼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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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해는 중천에 떠올랐다..

소년의 이마에도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소년은 평평한 바위를 찾아서 그곳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바위위에 걸터앉은 소년은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펼쳤다..

약간의 건량과 열매이었다.

소년은 그것으로 간단히 요기를 때운다음 곰곰히 생각에 잠겼다.

아침부터 계속해서 머리속에서 맴돌던 구절을 되새겼다.

하나하나 구절을 음미하던 소년은 갑자기 머리속이 텅비는 감각을

느꼈다..

"휘...익....쿵"

갑작스런 소리에 소년은 머리를 흔들며서 눈을 떳다.

이럴수가 소년의 눈앞에는 마의노인(麻衣老人)이 쓰러져 있는것이

아닌가.

소년은 노부의 곁으로 접근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는듯이 보였다. 살며시 소년은 노인의 어깨를 흔들면서.

"할아버지..할아버지...."

계속해서 노부를 깨우려고 했다.

잠시후 노부는 고개를 살며시 돌리며 힘겹게 눈을 떳다.

희미하게 노인의 눈앞에 소년의 얼굴이 보이기 시작했다.

"할아버지...정신이 좀 드세요..."

"으흑.....음..."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면서 노부는 돌아 누웠다.

돌아누우면서 드러나는 노부의 얼굴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풍겼다. 하지만 자세히 노인의 눈을 들여다보면 상대를 온통 빨아들이고도

남을 듯이 느껴진다. 깊디깊은 심연과도 같은 눈빛을 노인은 지니고 있는것이다.

실로 유현한 눈빛을 지닌 마의노인은 소년을 찬찬히 응시했다.

"아이야...너는 이곳에 사느냐?"

"네..할아버지.."

"너의 이름은 무엇이냐?

"운비(雲飛)이라고 합니다."

"운비(雲飛)이라고....음..."

"조금더 이리 가까이 오거라.."

소년은 노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노인은 힘겹게 손을 들어서 그의 몸과 머리며 여러군데를 만지기 시작했다.

'음..이아이에게 맡기기에는..'

'평범한 신체를 가진 아이가 아닌가..'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길어봐야..이식경(二食頃)정도이니...'

'이깊은 산중에서 다른 사람이 있을리는 만무하고...'

'음...별수 없구나...이것이 하늘의 뜻이라면...'

한참을 생각하던 노부의 입이 힘겹게 떨어졌다.

"아이야..지금 내가 하는 말을 잘듣거라.."

소년은 난생처음 보는 할아버지가 자신의 몸을 더듬는것도 이상하고, 또한

자신에게 무슨말을 하려는것이 이상했지만 가만히 대답했다.

"네..할아버지 말씀하세요.."

"먼저 노부는 천기뇌황(千驥雷皇) 백리담(百里潭)이라고 한다."

노부의 입에서 나온말 엄청난 말이었다.

천기뇌황 백리담..벽력대제(霹靂大帝) 북리황(北里凰)과 더불어 삼십년전

정사쌍웅(雙雄)으로 불리던 천하절대 고수가 아닌가.

그가 왜 이런 오지에 나타난것일까..

"네가 보기에는 아무이상이 없는듯 하지만 실상 나의 내상(內傷)은 엄청나서

회복하기에는 힘든것이니라.."

"이제 노부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느니라.."

"그래서 너에게 한가지 부탁을 하고자 하느니라.."

소년은 노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대꾸할 생각도 못하고 그저 노부의 입만

쳐다볼뿐이었다.

계속해서 노인의 말은 이어졌다.

"지금 내품속에 하나의 서찰이 있을것이다. 그것을 꺼내보거라.."

소년은 손을 들어 노인의 품에서 하나의 양피지를 꺼냈다.

"그곳에는 장차 천하무림의 안녕을 좌우할 중요한 것이니라."

"너는 그것을 한사람에게 꼭 전해...음...."

갑자기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할아버지...괜찬으세요.."

걱정된 눈빛으로 소년이 말했다.

내상이 더욱 심각해진 것이었다.

고통으로 잠시 멈추었던 노인의 말이 계속되었다..

"이 양피지를 청해암(淸海庵)의 관음신모(觀音神母)에게 꼭 전해 주길 부탁한다."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는 않다. 육개월 안에 이것을 꼭 전해주어야 한다."

"내가 보기에 너는 무예를 전혀 익히지 않은것 같은데.."

"네..할아버지..무예에 대해서는 전혀...."

"음..너가 이것을 이해할지는 모르겠지만.."

하면서 노인은 왼쪽품에서 조그만 책자를 하나 꺼내서 그것을 소년에게

내밀었다.

소년은 가만히 그책을 받아들었다.

'..파천뇌록(破天雷錄)..'

하늘을 깨뜨린다는 천기뇌황(千驥雷皇) 백리담(百里潭)의 초절정 무공을

기록한 책자이다.

그 오의(悟意)를 깨닫기가 힘들뿐만 아니라 육갑자 이상의 내공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결코 연성할수 없다는 천하제일의 뇌공중의 하나였다.

"할아버지..저는 무에는 관심이 없읍니다.."

"아니다..받아두도록해라.."

"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가지 더 부탁이 있느니라..들어줄수 있겠느냐?"

"네..할아버지 제가 할수있는 일이라면..."

"내아내가 사는곳은 산서지방의 태행산이니라..혹여 시간이 있다면

나의 아내를 만나서 소식을 전해준다면...."

"네...할아버지 꼭 소식을 전하겠읍니다.."

노인은 다시한번 소년의 눈을 보았다. 결코 거짓말을 할 그런 눈이 아니었다.

'이아이가 비록 평범하나 거짓을 말할 소년은 아니다.'

'아아..다행스런 일이다.그나마 이토록 진실한 소년을 만났으니..'

'하늘도 아직 무림을 저버린것은 아니다..'

'남은것은 이서찰이 무사히 관음신니에게 전달될것만 바랄뿐..'

"아이야...이제 시간이 얼마남지 않았느니라..."

"나를 해한 무리들이 다시 올지도 모르니 너는 어서 이곳을 떠나도록 해라.."

"할아버지 그럴수는 없습니다.."

"아니다..너가 지체할수록 더욱 위험할뿐이다. 어서..가도록해라.."

"나는 이제 잠시후면 시독(弑毒)으로 인해 모두 녹아없어질테니..너에게 그런

내모습을 차마 보여줄수는 없구나.."

"너에게는 마지막으로 나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구나.."

어느듯 노인의 말을 듣던 소년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산중에서 외롭게 자라서인지 소년은 잠시간의 만남이었지만 그가 자신의

친할아버지처럼 느껴졌다. 비록 할아버지를 남기고는 갈수 없지만 그의 마지막 말을 거역할수 없었다.

소년은 흐르는 눈물에 앞이 흐려졌다..

"어서..아이야..벌써 나의 내장들이...."

"네....할..아..버지..."

소년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간신히 대답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소년은 뒤도 안보고 무작정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할아버지..할아버지의 부탁은 반드시 들어드리겠읍니다.그럼 좋은곳으로 가세요..'

한참을 달렸을까..어느듯 소년은 자신의 집앞에 다다랐다.

마당에서 곡식을 정리하던 소년의 어머니가 놀라며 소년을 쳐다보았다.

"운비야..무슨일이냐!.."

옥경은 아들의 곁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소년의 눈가에는 눈물의 흔적도 보였다.

잠시 숨을 돌리던 소년은 천천히 입술을 움직이면서 말을하기 시작했다.

소년이 잠시 전에 노인을 만났던 이야기에서 부터 시작해서..

길게 이야기가 이어졌다.

이야기 도중에 옥경의 안색이 여러차례 변하기 시작했다.

소년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그녀를 놀라게 하기엔 충분했다.

'천기뇌황 백리담을 죽게할 정도의 고수가 존재하다니..믿을수가 없다.'

'설마 우리가문을 없앤 그들이 다시 나타났단 말인가..'

이때 소년이 자신의 품에서 양피지 한장과 책자를 꺼내서 그의 어머니에게

내밀었다.

소년이 내민 양피지를 그녀는 살며시 펼쳐보았다.

그곳에는 이름만 들어도 마인들이 치를 떠는 정도문파들의 장문인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소림의 영허선사(靈虛禪師)..

무당파의 장로 태극도인(太極道人)

개방의 부방주인 백염호개(白髥虎 ) 진방산(陣方山)

아미파의 금정신니(禁情神尼)

그리고 곤륜파의 장문인 황기진인(惶奇眞人)

이렇게 다섯사람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들은 정도의 대표라고 할수있는 구파일방의 주축인 다섯문파의 방주이거나

부방주들이었다.

'음...그들이 이번일과 무슨 연관이 있길래...'

'아뭏튼 이서찰을 청해암(淸海庵)의 관음신모(觀音神母)에게 전해주면 알수있을거야..'

옥경은 다시 양피지를 접고서 다시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음..관음신모와는 약간의 안면이 있지만..나로서는 이번에 섬서성의 태안에 가는것이 더급한일이니..'

'음...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머나..운비가 일찍 돌아왔네..."

화정은 열매가 가득담긴 바구니를 안고 장원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래...화정이에게 다녀오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나서 옥경은 다시한번 화정에게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화정은 안색이 굳어지면서..

"네..사모님..그럼 제가 다녀오겠읍니다.."

"근데...운비는..."

화정은 혼자남게된 소년이 걱정되는 투로 말을 했다.

"그렇구나..비야가 혼자남게 되는데.."

"그럼..시간이 조금 지체할지도 모르지만 수고스럽지만 너가 데리고 갔다와야겠다.."

"이번기회에 운비에게 바깥구경을 시켜주는 것도 괞찬겠지..."

"그럼 제가 데리고 다녀오겠읍니다..사모님 너무 걱정마세요.."

옥경은 자기가 데려가고 싶었지만..이번 섬서성에서의 볼일은 중요한 일이라서 운비(雲飛)를 데리고

갈수 없었다.

"그럼..화정이와 운비는 떠날 준비를 해라..."

"이번일로 보아 상당히 긴박한 일인듯하니..준비가 되는대로 내일 아침일찍 떠나도록해라.."

"네.."

소년은 대답을 하고 자신의 방을 향했다.

두여인도 자신들의 방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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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으로 들어선 두여인은 자리에 앉았다.

"이번일은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은듯하구나.."

"가는길에 각별히 조심하도록 해라.."

"천기뇌황(千驥雷皇) 백리담(百里潭)어르신이 당할정도라면 상대들은 아주 무섭고도 치밀한

집단일것이다."

"네..사모님..어쩌면 이번일이 사부님의 죽음과도 연관이 되어있는지도 모르겠읍니다."

"그래..네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읍니다.."

"관음신모를 만나거든 자세히 알아보도록 해라.."

"네..사모님..저도 어릴적에 그분을 뵌뒤로 오랜만이어서 그분 소식이 궁금하기도 하답니다.."

두여인의 대화는 계속이어졌다.

한편 자신의 방에 돌아온 소년은 이틀동안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십사년동안 산속에서 생활하면서 기껏해야..약초를 캐는 사람들만 일년이 한두번 본 정도인데..

벌써 이틀동안 두명의 노인을 만난것이다..한명은 만난것이 분명한데 깨어나보니 사라져버린것이다.

소년은 약간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휴우..이번여행은 꽤 오래걸릴것 같으니..'

소년은 자신의 의복과 간단한 장비들을 챙겼다.

'청해의 보타암까지는 적어도 한달은 걸리겠으니..'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소년은 노인에게 건네받은 책자를 꺼내보았다.

'이번기회에 이책을 봐두는 것도 괜찮을 것 같으니..'

소년은 다시 책자를 보자기에 옷가지와 같이 함께 넣었다.

어느덧 산중의 해는 기울고 멀리서 짐승들의 울음소리만이 적막을 깨트릴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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