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6/78)

"뭐야? 판텔가의 저택이 말소됐다고?"

"………"

부하로부터 그 말을 전해들은 남자는 웃음도 안나온다는 듯 황당하다는듯 인상을 찡그렸다.

남자의 인상은 지나치게 흉폭했다. 얌전하게 정장을 차려입고는 있지만 감출 수 없는 난폭한 인상과 울긋불긋한 피부. 반삭머리카락에 스크래치를 이리저리 낸 스타일이었다.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도 모르겠는데."

부하는 불탄 저택의 사진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의견을 꺼냈다.

"주제넘지만, 자살을 위장한 도주가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은 적겠지. 흑사의 암살을 미리 예견할 수 있을리는 없어."

"그렇군요."

남자는 언짢은듯 증거사진을 바라보다가, 사진안에 꾸물거리는 흰색의 덩어리같은것을 발견했다.

"이건 뭐하는 놈이야?"

보아하니 타이즈같은것을 입은 남자였다.

"……글쎄요. 조사에 따르면 판텔가의 영애가 대려온 남자였다고 합니다."

"특이한놈이군. 우리랑은 관계없지만 , 이후 행적은?"

"저택을 습격한 드래곤에게 납치되었다고 합니다."

드래곤에게 납치되었다니, 남자는 더이상 웃을기분도 들지않는다는듯한 표정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크로%26바이퍼가 모인 도시에 있다. 섣불리 접근하기 힘든 곳이군."

"……"

3명의 그랜드 마스터……. 아니, 제[帝]라고 하는게 좋을까.

"최근 이크로%26바이퍼도 움직임을 활발하게 한 것 같은데. 설마 예전같은 괴물들이 도래한다는건 아니겠지."

"……아닐거라고 봅니다."

이크로 바이퍼의 행적에는 대륙의 뒷 세력들이 전부 귀추를 주목하고있는 사항이었다. 그들이 어딜가든, 역사는 새로쓰여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상이 나쁜 남자의 신경에 묘하게 걸리는 것은, 타이즈를 입고 드래곤에의해 납치되었다는 괴상한 전적을 가지고있는 남자였다.

"이쪽도 조사를 돌려두는편이 좋겠지. 그보다 방주의 준비는 괜찮나?"

"예."

"좋아. 나는 테다님에게 가보도록 하겠어. 너도 물러가라."

부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사라졌다. 남자는 그저 흠, 하고 신음한 뒤 조용히 중얼거렸다.

"어느쪽이든 대륙의 판도가 바뀌고 있어. 성검의 이동이 가까운 지금, 무언가 큰 일이 하나 터질 것 같은 기분이야."

*

"크으으읏!"

나는 지금 신기술을 개발중이었다.

"………"

에리카는 신기하다는 듯, 내 등 뒤에서 내가 하는것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다.

나도 놀랍다.

학교의 과학시간에서도 인연이 없었던 실험용기를 구해서 연구를 하고있으니까. 이래서야 마치 학자다.

그래, 이름하여 스펌박사.

"주인님, 뭘 하고 계신건가요?"

정액을 연구중이다.

에리카도 뭘하는지는 보이지만, 왠지 부정하고싶다는듯한 목소리다.

품위있게 투명벽밖을 내려다보며 커피를 마시고있던 칼라가 그런 나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아마도 정액에 색을 부착하기위한 연구겠지. 내가 비율을 가르쳐줘서 어느정도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렇다.

칼라의 말대로, 나는 정액에 색을 부여하는것을 연구하고 있다.

내가 다루는것은 마도력이 아니라 엄연히 겉모습부터 형태가 보여지고있는 액체다.

"뭔가 굉장하군요."

칼라의 하트가 영향인지 몰라도 붉은색이 제일 먼저 색소변화가 가능했다. 만약 이 색컨트롤이 가능해진다면……

나는 투명타이즈를 가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변장을 하는것또한 가능해진다. 내 몸위에 얇게 조각을 해서 또 다른 모습을 그려내는 것이다.

정액이라면 옷도 아니라 타이즈의 거부반응도 없다. 후후, 좋아. 완벽해!

"왕녀를 범할 비책이라는 것 같던데. 에리카는 가까이가면 안돼. 영혼이 범해져버려."

칼라는 은근히 심한소리를 하고있다.

확실히 정액냄새가 심하게 나기는 했지만……….

에리카는 스믈스믈 칼라쪽으로 와서 내 연구를 지켜본다. 나는 색소배합이 멀지않았음을 느꼈다.

"그런데 칼라, 왕녀가 떠나는게 언제지?"

"글쎄, 왕녀의 체력을 생각해서 여독을 지우는데는 최소 2일은 걸리지 않을까."

"그렇군."

오늘은 하루종일 연구에 몰두하고, 그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을 결행한다. 운 좋다면 왕녀를 내 편으로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침이 주륵 흘렀다.

"………생각하는게 다 보이는걸."

칼라가 팍, 하고 망상으로 들어찬 내 머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아파!

"무슨일이야, 칼라."

"아냐. 이렇게 예쁜 누님이 눈앞에 있는데, 다른 여자를 갈구하는 모습이 보기안좋아서."

예쁜 누님이라는건 특별히 부정하지 않겠지만, 나는 왕녀를 따먹고 버릴 생각이었다.

어렸을때부터 남자라는걸 모르고 자라온 순진한 왕녀를, 그 왕자놈에게 뺏기기전에 내가 옆에서 스틸하는 것이었다.

아 상상만해도 달콤했다.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건지 칼라는 한숨을 푹 쉬곤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지만, 마지막으로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게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주의해.

 일국의 왕녀를 범한다라는건 그만한 책임이 뒤따라올 수도 있어."

"…………"

책임인가.

확실히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런 책임따위 여기와서 숲속의 요정을 따먹었을때부터 서서히 버리고 있었다.

나는 1000명의 여자를 범하고 1명의 여신을 범할 남자.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최상급의 여자를 따먹을 것이다!.

그래. 나는 정액의 용사다! (불타오른다)

연구에 더 부스터가 걸린 나는 계속해서 실험 용기를 옮기며 색소배합을 진행했다.

"주인님의 눈이 변태같아서 무섭네요."

"항상 그렇지 뭐. 여자를 섹스로 함락시키려고 하는 녀석이니까."

칼라는 쓴웃음을 지었다.

……둘은 연구에 몰두하는 나를 대화의 소재로 삼고있는 듯 하다.

"너무한데. 나도 처음부터 이런건 아니었다고."

"흐응."

내 말에 칼라가 흥미를 가지기 시작했는지, 이쪽으로 걸어온다.

"네 세계는 어떤곳인데?"

"앗. 저도 흥미가 있어요. 주인님!"

"…………"

둘은 나에게 달라붙어서 내가 살던 세계의 이야기를 해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그곳에는 마도같은것도, 검같은 무기도 없어. 인간을 위협하는 무언가도 없고 공중에 떠있는 섬도 없지.

 그곳에는 사람들이 법이라는걸 정해 스스로를 규제하며 살아가고 있고, 인간들의 지식에 의해 태어난 무기들로 손가락 하나 까딱하면 수천만명의 인간이 한순간에 일소할수도 있어."

"………잘 상상이 안 가는걸."

칼라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한다. 물론 나도 내가 말해놓고서 우리 세계를 상상하는건 힘들다고 느꼈다.

전체적인 분위기도 이곳과는 많이 다르다.

"앗, 성공했다!"

용기의 색이 무지개색으로 변하다가, 원색으로 하나씩 색깔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오오오!"

이걸로 실전에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단한데, 한번 해봐."

칼라도 신기한듯 용기를 보고있다. 이것이 바로 무지개정액! 나의 신기술의 기본바탕이 될 정액이다! (추해)

"하앗!"

정액을 바닥으로부터 소환해, 온 몸에 감싼다. 이제부터 컨트롤이 중요했다. 나의 몸을 감싸는 정액들을 사람의 형태로 빚는다. 세밀하게, 표정하나하나에 반응할 수 있도록.

그 위에서 정액의 냄새를 제거하기위한 정액막을 씌운다. 피부와 질감은 비슷하게……

여기서!!

"으으읏!"

"와……"

에리카의 감탄하는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의 몸을 세밀하게 덮은 정액막은 찬찬히 살색으로 변하고, 옷 부분은 각기 옷의 색깔로 변해간다.

……그,그런데 이거 생각보다 지치는걸.

리듬노트 게임을 하면서 웹서핑을 하는 기분이었다.

"………으으음!"

형태를 유지하려고 힘을 써봤지만, 막은 10초를 못 버티고 우르르 무너졌다.

"안돼!"

무지개 정액옷 1호, 10초만에 파괴.

"………"

내가 좌절하고 있자, 칼라랑 에리카가 내 등을 토닥거려주었다.

"색까지 바꾸면서 형태를 유지하기가 이렇게 힘들줄이야……."

용기에 담은건 소량이라 손쉬웠지만, 몸을 덮을정도로 하는건 어려운 것 같았다. 여기서 포기해야만 하는건가……!

"할 수 없지……."

칼라는 머리를 긁적이며, 적색의 분필을 꺼내 자신의 몸에 진같은것을 그려나간다.

"칼라?"

내 물음에 답하지 않고, 칼라는 조용히 주문같은걸 외우더니…… 이내 칼라의 몸이 변형되기 시작했다.

"………헉."

그 모습은 바로 왕녀의 모습이었다. 행군할때 그 안에서 드레스를 입고 걷던, 왕녀의 모습을 그대로 구현해낸 것이다.

이게 바로……!

"폴리모프라는거야?"

하지만 왕녀(칼라가 변한)는, 고개를 저었다.

"폴리모프라는게 뭐야?"

"………아. 아니었군. 그럼 그건……"

칼라의 목소리가 왕녀의 외모에서 나오니까 조금 위화감이 들었다.

빙글, 제자리에서 돌아보더니 그녀는 흠흠 헛기침을 했다.

"예전에 좀 배워두었지. 유희할때 가끔 쓰긴 하지만, 1시간 이상 유지하기는 어려워."

목소리도 못 바꾸고, 라는 말을 덧붙이는 칼라.

"그,그걸로 충분해! 날 도와줄 수 있을까?"

칼라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래. 도와줘야겠지. 에쿠를 위해서."

왕녀의 모습을 한 칼라의 입술에 기습적으로 키스한다.

"……쭙, 읏, 아?"

칼라는 멍한 표정으로 있다가 나를 팍 밀어냈다.

"자,잠깐. 한다고 얘기정도는 하라구……"

칼라는 말을 더듬는다.그러자, 옆에있는 에리카가 내 타이즈를 꾹꾹 잡아당겼다.

"주인님, 저도 해주세요."

"그래, 알았어."

에리카에게도 키스를 해주자, 만족한듯이 붉어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고, 정액의 용사와 그 부하들!"

"그 부하들은 뭐야!"

칼라가 내 머리를 퍽 내려쳤다.

"……아파!"

제자리에서 데굴데굴 구르는꼴을 한심하다는듯이 내려다보는 칼라(왕녀ver)

"시간이 얼마 안남았으니 어서 가자."

"음, 그러고보니 이제 곧 투명화야."

5시. 내가 투명인간이 되는 시간이다.

칼라는 잠시, 내 발부터 머리끝까지 시선을 옮겨 슥슥 훑어보았다.

"에쿠. 자신의 기척을 없애려면, 정액을 탄 채로 움직이는게 좋을걸."

"………뭐야, 그 흉한 이동수단은!"

절대로 취하고싶지 않은 이동수단이었다. 나중엔 정액말같은걸 만들어서 타고다니는게 아닐까 모르겠네!

"왕녀를 범하는거 아니었어?"

"…………"

칼라의 말에 잠시 고민한다.

크윽, 젠장. 어쩔 수 없지. 지금 내 형편을 따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내 몸이 투명화됨과 동시에, 나는 색소를 뺀 투명정액으로 발소리를 내지않고 칼라의 뒤를 따라붙었다.

대충 작전은 이렇다.

여관안에 들어가서, 왕녀가 개인으로 쓰는 방까지 침입해서 왕녀를 범한다.라고 하는 매우 심플한 작전이지만……….

사실 그게 심플하지가 않았다. 문앞도 안도 지키고있는건 펠란츠라고하는 괴물기사들이기 때문이었다.

"부탁해, 에리카."

칼라가 그렇게 말하자 에리카는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드복인 에리카가 연기를 잘해야만이 넘어갈 수 있는 것이다.

칼라가 말을 하면 목소리때문에 금방 들키기 때문이었다.

으리으리한 은색의 건물의 입구.

"앗, 왕녀님!"

번트라고 불렸던 기사가 칼라(왕녀ver)를 보고 화들짝 놀라서 이쪽으로 다가온다.

"어디에 가 계셨던겁니까? 안에 계셨던게……"

"아아, 기사분이 너무 왕녀님이랑 가까운거 아니에요?  자자. 물러서세요."

에리카가 중재하듯이 번트와 칼라와의 거리를 떨어트렸다. 가까우면 들킬수도 있다는 생각때문일 것이다.

"정말, 아까전에 왕녀님이 외출하셨던걸 못봤단 말이에요? 불침번을 서느라 졸았던게 분명하군요!"

에리카가 손가락을 탁, 대고 번트와 토르드를 번갈아가며 가르키자 그 둘은 머쓱한듯이 뒷통수를 긁적였다.

잘한다. 에리카!

저 둘이 새벽부터 불침번을 섰던건 사실이고, 인간인 이상 가만히 서 있는데 졸린것은 당연한 것이다.

"그럼 비켜주시겠어요? 왕녀님은 안에서 쉬셔야하니까요."

"아, 예.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둘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칼라와 에리카를 안으로 출입시켰다.

좋아, 성공!!

쾌재를 부르고싶은걸 가까스로 참으면서, 나는 멍하니있는 번트의 투구를 팍 쳤다.

"윽!? 뭐야 토르드,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말로해."

"응? 내가 뭘."

"때렸잖아. 모르는척 하지마."

토르드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번트를 바라볼뿐이었고, 번트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희들은 거기서 그러고 있어라, 나는 안에서 왕녀를 덮밥해먹을테니까!

후후후,하하하하하하하~ !

나는 왕녀로 변한 칼라의 뒤에 따라붙어, 안으로 진입하는데 성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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