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5/78)

먼저 내가 해야하는 일은 이곳을 빠져나가는것보다는 칼라와 합류하는게 먼저다.

상황은 장난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내가 위험에 처했다는 건 누가봐도 진실.

"이제보니 정말 농후하군."

바깥은 마도력이 너무나도 짙은 탓에 안개처럼 아무것도 보이지않는 상태에 이르렀다.

2시간을 기다리지 않으면 지옥으로 반전할 이 안은, 벌써부터 미래를 맞이하려는 듯 괴물의 위장처럼 꿈틀거리는것처럼도 보였다.

고개를 턴다.

"일단 칼라를 찾자!"

복도를 따라뛰어간다.

3층으로 내려가자마자 이쪽으로 다급하게 뛰어오는 칼라와 만날 수 있었다.

"칼라!"

칼라는 이 쪽으로 뛰어와서는 급한 숨을 몰아쉬고있다. 에리카도 칼라의 손을 잡고 뛰어온 것 같았다.

"저쪽에선 무슨일이 있었어?"

"에쿠랑 들은거랑 똑같은 내용일거야."

"…그래? 이제부터 어떻게 할 생각이야?"

칼라는 상체를 슥, 일으키고는 주위를 살핀다.

"밖으로 나가야해."

칼라의 당당한 태도는 문제에 직면한사람처럼 보이지않는다. 과연 드래곤, 이 마도에도 대항할 방법이 있다는걸까?

"그렇지만 이 마도를 깰 방법은 존재하지않아. 일시적으로 찢고 나갈 순 있지만, 그건 드래곤에게 있어도 힘든 일이야.

 발동하는데도 상당히 애를 먹었을거라 생각해."

"………"

칼라는 인상을 찡그렸다.

"솔직히, 드래곤을 잡는데는 황금으로 함정을 만들어서 동물을 사냥하는것만큼 이 마도는 강력해.

 그만큼 드래곤과 동행하고있는 너를 신경쓰고 있다거나, 아니면…… 그 타이즈가 신기라는걸 알아낸게 분명해."

"이 세상 어디에 강간범이 끼고있는 타이즈가 신기라는걸 알아차릴 사람이 있냐!"

내 말을 들은 칼라는 뭐가 즐거운지 쿡쿡 웃으면서, 다시 언제나처럼 눈매를 날카롭게 하고는 손에 불을 씌웠다.

"히익? 날 때릴셈이야?"

"아냐."

칼라는 그대로 땅에 손을 내려꽂는다. 마도력을 얻은 불이 바닥을 타고 지나가, 순식간에 3층 복도를 불바다로 만들었다.

이 불이 뜨겁지않다는건 에리카의 반응을 보면 알 수 있다.

곧 불위로 비명을 지르는 작은 소동물들이 나타나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사라져갔다.

"뭐야, 저것들은?"

"……뭔가의 장치라는건 확실해."

"………"

생각보다 여기 사람들도 만만치않다는건가. 현재로선 생포되지않는이상 날 어떻게 할 방법은 없겠지만 저쪽은 이런 무서운 감금수단도 가지고있다.

"가자."

칼라의 선도에따라 움직인다. 에리카도 그것에따라 움직이고 우리는 2층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2층도 크게 다르지않은 일직선 복도였다. 불도 사라진 지금 내 생각을 말할 기회가 찾아왔다.

"기다려, 칼라."

"응?"

나는 그대로 칼라의 어깨를 잡고 돌려서, 꽉 껴안은 채 키스를 했다.

"우읍!?"

칼라는 순식간에 패닉상태로 바둥바둥거린다.

"학, 갑자기 무슨 짓 하는거야!!"

칼라는 입술을 때고서 인상을 가득 찡그리곤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엷게 붉어져있는 볼이 귀엽다.

"그런데, 아닌가?"

"뭐가!"

"나는 지금껏 칼라가 그 목소리의 여자라고 생각했거든."

……칼라는 내 말이 의외였다는 듯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생각해봐. 처음에 그 녀석이 말한 건 [떨어트리는걸 바란다]라는식의 어조였는데, 우리는 너무 쉽게 만났잖아.

 안쪽에 무슨 방해를 위한 구조가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어.

 드래곤인 칼라가 나를 못만나게 하려는 방법은 감시같은게 아닐테니까, 나한테 접근한 칼라는 칼라가 아닐수도 있는거잖아."

"……호오. 꽤 생각했는걸."

칼라는 싱긋 웃으면서 내 배에 주먹을 꽂아넣었다.

퍽!

"응헉!?"

"그래서 이 상황에 키,키스할 생각이 든거지? 그럼 넌 타이즈를 입고있는 에쿠가 맞는지 인간이라면 죽을정도로 패줄게!"

"그만둬어어어어!"

칼라가 부끄러워해서 이런 반응을 돌려주는건, 보통 연인이 [오빠 몰라몰라몰라]식의 가슴을 두드리는정도지만 칼라가 한다면 늑골파손에 척추부터 내장까지 전부 산산조각이 나는건 이미 나도 잘 알고있는 일이었다.

"히익, 히이이익! 어머니! 어머니이이! 우어어어어어!"

오랫만에 느끼는 뜨거움이다. (고뇌하는 정액맨) 겁화에 휩싸여 에리카에게 닿지않게 5분을 뛰어다니고서야 겨우 불은 꺼졌다.

"견딘걸보니 에쿠가 맞는걸."

"…………"

이런걸 견디는 스스로가 신기해…….

내 몸이 손상을 입지않는다는 사실이 있어서 견딜 수 있는거지, 몸이 지글지글 녹고있었다면 못견뎠을거다.

"그런데 에쿠, 어떻게 한번의 키스로 내가 나라는걸 안 거야?"

무릎을 툭툭 털면서 일어난다.

칼라의 질문에 멍하니 생각한다. 나도 왜 칼라라고 확신했을까. 잠깐 고민하면 금방 알 수 있다.

"칼라는 다른 여자랑 달리 몸이 금방 달아오르거든. 안으면 금방 알 수 있을정도로 뜨거워져. 입술이든 몸이든……"

"맞아요. 칼라님의 팔 따끈따끈해졌었어요."

에리카까지 거들자 칼라는 몸을 홱 돌렸다.

"……쓰,쓸데없는 소리하지말고 가자."

칼라의 말에 따른다. 칼라는 무뚝뚝하게 말하면서도 꽤 부끄러워한다는 것도 금방 알 수 있었다.

후후, 이런 귀여운드래곤녀석. 내숭갑옷을 입고있는 일부 여성과는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칼라와 지낼 시간도 1시간 50분뒤면 말끔히 사라질지도 모른다.

없는 머리라도 굴리면 뭐가 나오겠지, 라는 심정으로 나는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생각한다.

이 마도결계가 결계로서 완벽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면 이 안에서 그 여자가 말했던 방식으로 나갈 수 밖에 없다.

"도착한 것 같네."

칼라의 목소리에 정신이 들어 정면을 바라본다. 복도의 끝에는 다른 문과는 다른 거대한 문이 있었다.

"뭐죠, 저게……?"

에리카도 덧붙인다. 문이라고 해야하나, 거대한 원형에 수 없이 많은 홈이 파여져있다. 마치 그 모습이 뭔가 그림을 그려논 것 같기도 하다.

"……음."

가까이 문에 다가선 칼라가, 마도력을 부어넣자 홈이 파여진 곳에 붉은 마도력이 흘러서 가득 차오르더니 문이 삐걱거리면서 열리기 시작했다.

쿠구구구구구…….

"'생각보다 넓은 건물'이라는게 이걸 의미하는거였어?"

"명색이 정비과의 건물인데, 이런 설계도 불가능한건 아닐거야."

칼라는 더욱 넓어진 건물 안으로 발을 들였다. 그 문이 이어진 곳에는 서양식 고급저택이라는 느낌은 들지않는다.

전체적으로 목재로 이루어진 건물에 바닥에 수족관이 있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물고기들이 청빛의 물을 헤엄쳐다니는 장관이 연출되고 있다.

그 위로는 빠지지않게 유리막같은걸로 덮어둔 듯 하다.

"대단해요. 이런 저택도 있는거군요."

이 집에 가장 놀란건 에리카인듯 했다.

"이런 집은 어떤식으로 청소하는걸까요……?"

"그쪽이었냐!"

난 이 집을 본 순간 본능적으로 「만드느라 돈 얼마나 들었을까」라고 생각했는데, ……나도 자본주의 사회에 찌들대로 찌든 것 같다.

"쉿."

칼라가 긴장감을 되살린다. 나도 다시금 주위를 살피지만, 「이런데서 산다면 최고의 기분이겠지」같은 대답만 머릿속에 떠다닐뿐이었다.

"칼라, 이 곳에 적은 없는거 아냐?"

장식되어있는 예술품들을 만지작거리면서 말하자 칼라는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그런 것 같지만, 빨리 나갈 방법을 찾지않으면 지옥에서 헤매는 일이 될 거야."

"……그거 농담 아니었어?"

"농담일리가 없잖아. 지옥은 실제로 존재해. 이 마도는 바렌디의 '칼던'과 근본적 성질은 같아.

 칼던은 순식간에 세계를 광범위로 반전시켜서 그 범위의 생명체를 지옥으로 떨구지만, 이건 시간제한이 있는 속박계라는점이 또 달라."

……….

진짜라고 생각했는데 새삼 놀랄게 뭐가 있겠어. 다만 실감을 얻기가 좀 어려웠을뿐이다.

"에쿠. 신의가호를 받고있는 너라면 지옥에서 나가는것도, 지옥에서 사는것도 가능할지몰라도……"

칼라는 '에리카와 나는 지옥에서 살 수 없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이 곳을 나갈 방법이 있는걸까?

마도라는건 접해본적도 얼마안되는 초보인 내가.

"내가 경솔했어. 나갈 수 있는 방법, 같이 생각해내자."

그렇게 다짐을 하고 칼라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런데, 칼라는 이쪽을 보지도않고서 멍하니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칼라?"

뭐야, 조금은 이쪽을 보고 말해줘도 되잖아.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는데.

칼라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칼라??"

칼라가 어깨를 떨고 있었다. 그녀가 시선을 보내고있는 곳을 따라가면, 그곳에는………

"!"

에리카도 쿵, 하고 뒤로 넘어진다. 가장 늦게 알아차린건 바로 나였다. 칼라의 앞에 서있는건 다름아닌……

"레시드……"

칼라의 입술이 떨린다. 레시드의 등장에 내 몸도 완전히 굳어버렸다. 이건 방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이 방을 살아나갈 수 있을지 어떨지도 불확실해졌으니까.

"흠."

레시드가 숨을 삼킨다. 그리고는, 자신의 허리에 있는 두 자루 도검중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 일련의 동작은 충분히 우리들을 공격하려는 의지가 있다는걸 알 수 있었다.

"피,피해……"

칼라의 몸이 떨린다. 이런 상태의 칼라가 레시드를 막아낼 수 있다는 생각은 들지않는다.

칼라는, 지금은 그저 연약한 여자애다.

"……"

내가 칼라의 앞에 선다. 칼라는 그제서야 주저앉고서, 시선을 레시드와 마주치지 못하고있다.

"……넌 누구냐?"

레시드가 도검을 이쪽으로 향한다.

"정액맨이다."

"………"

레시드의 과묵한 얼굴. 혹시나 레시드를 웃겨서 이 무거운 분위기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싶었는데 가망성은 없다.

아니, 기다려.

"………"

레시드는 웃음을 참고있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물론 자기가 이렇게 석화시켜논 분위기를 스스로 폭소해서 깨려는 성격은 아닌 것 같은데.

"정액맨! 나는 정액의 용사다! 이 세상의 여자를 따먹는것이 나의 임무! 하앗, 하아앗! 하아아아앗!"

포즈를 잡는다.

"………"

레시드는 도검을 땅에 찍고, 하늘을 보더니 후, 하고 깊게 한숨을 쉰다.

진정시키고 있는건가!

"자, 보아라! 이것이 바로 정액마도 최강의………"

푸부부부북!

뛰어올린 정액막이 레시드의 보이지않는 검격에의해 산산히 베어져 떨어진다.

"살려주십쇼."

나는 바로 큰 절을 했다.

미안하다. 나의 프라이드! 하지만 자존심이라는건 결국 내가 살아있어야되는거 아니겠니. 응? 아무리봐도 칼라가 두려워하는 존재인데 타이즈도 한순간에 찢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재밌는녀석이군.

 근데 내가 용건이있는건 네가 아니라 네 뒤에있는 드래곤이야."

칼라의 몸이 흠칫 떨린다.

"카,칼라만큼은 안돼! 차라리 나를 지지고 볶아라!"

"………"

레시드는 나에게 시선을 옮기더니 휴, 하고 한숨을 쉬었다.

"뭘 오해하는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저 대화가 하고싶을뿐이야."

"넌 대화를 칼로하냐!가 아니라, 대화를 칼로 하세요?"

"………"

레시드가 피식 웃었다. 난 스스로가 비참해졌다. 하지만, 이건 다 칼라를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내 자존심을 접는거야. 응, 그런거야! (눈물)

"뭐, 이쪽도 드래곤을 대하는건 무섭거든. 난 평범한 인간이니까, 보험정도는 들어둬야하지 않겠어?"

레시드는 여유있게 웃는다.

후,후,후.

평범한 인간 다 죽었냐!! 엉, 이 자식아. 너보다 평범한 인간은 이 지상에도 널렸다고. 개미떼처럼 살고있다고! 평범한 인간이 뭔지 보고오란말이다!

적어도 '어머 칼을 던졌는데 드래곤의 방벽을 뚫어버렸네♡'가 평범한 인간이라고 할 수는 없는거라고!

"레드드래곤, 재미있는 남자를 곁에뒀구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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