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꺽.
이제 뭘 말해야하지? 머릿속이 멍해져서 소재도 다 떨어졌다.
그렇게 당황하고 있을 때, 칼라가 한걸음 앞으로 나왔다.
"혹시 이 마도를 하고있는건 단 한명, 당신의 동료인 테리스야?"
"……!"
그 순간 레시드의 표정이 약간 변했다. 칼라는 역시, 라면서 한숨을 쉰다.
잠깐만. 이런 마도는 마도사들 수십명이 몰려와서 설치한거 아냐? 단 한명이 했다고?
"………역시 그랬어. 테리스는 마도의 달인이자 검술의 달인이기도 한 마검사.
대마도사가 손가락으로 못 셀만큼 모여도 설치하기 힘들다고 전해지는 마도를 혼자서 사용하다니……
하지만 하나 확신한게 있어. 이 안에 당신이 있는이상, 2시간 이후 여기가 지옥으로 반전한다는 건 거짓말이겠지?"
레시드는 씩 웃었다. 그의 표정이 뭘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남자가 풍기는 위압감은 칼라를 훨씬 웃돌고 있었다.
"멋진 추리야. 테리스가 설치한 마도라는걸 잘도 알았어. 그렇지만 잘못짚은게 있는데."
"……?"
"나는 이 마도를 언제든지 깨고부셔서 밖으로 나갈 수 있어. 하지만 너희들은 나올 수 없지, 즉…… 이 마도는 진짜야."
"………"
칼라는 순식간에 안색이 파랗게 변했다.
"그럼 네가 이 곳에 온건, 우리들…… 아니 나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어서야?"
표정만큼이나 말이 다급해진 칼라였지만, 레시드는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유있게 천천히 또박또박 말을 잇는다.
"그렇지.
먼저 네가 나에게 원한을 가지는 이유를 알고싶었거든."
칼라는 말문이 막혔다.
나도 말문이 막혔다.
레시드는 즉, 자신이 저질렀던 일들이 칼라에게 트라우마가 됐을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고있지 않다는건가? 드래곤들을 몰살, 빨랫줄에 걸었다는 내가 상상하기도 힘든 광경을.
"………몰라서 물어?"
"짐작은 가는데 오해라고 말하고싶어서."
레시드의 말에 칼라가 인상을 구겼다. 오해라니, 자신이 확실하게 기억하는 일이 어긋나있을리는 없다. 칼라는 손가락을 들어 레시드의 검을 가리켰다.
"당신이 들고있는 검! 당신이 하고있는 복장, 얼굴,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당신을 한순간이라도 잊은 적이 없어!"
"………"
심각한 상황. 누가 갑자기 죽어도 이상하지않을만큼 공기는 굳어있지만, 왠지 저 대사가 고백처럼 들려서 가슴이 뜨끔거리는건 나만 그런걸까.
"잘됐어."
레시드가 웃었다.
"그러니까, 레드드래곤. 너는 자신의 동족을 그렇게 만든 자…… 그러니까 그때의 '나'에게 복수해야할 이유가 있다는거지?"
"……"
칼라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등골이 서릿했다. 판타지 어딜가나 최강의 존재로 군림하는 드래곤조차 세 수 이상 물러설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존재에.
"그리고 거기 뒤에 둘. 너희도 레드 드래곤의 목적에 따르는 동료냐?"
"그건……"
칼라가 대답하려는 순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다면 함께하고싶어. 내 목적은 칼라의 목적을 지키면서도 병행할 수 있으니까."
"에쿠……?!"
"저도 주인님과 항상 함께합니다."
에리카의 덧붙임과 함께 레시드는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까지 상황파악을 못하고 멍하니 서 있는건 칼라뿐이었다.
지금껏 그 짐은 스스로만의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갑작스러운 내 발언에 대답할 말을 못찾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질문을 한 레시드의 의도는 뭐지? 단순히 시간을 끌어서 우릴 지옥으로 떨어트리려는걸로는 보이지 않는다.
"과거, 이 대륙에는 마수라는 존재가 있었어. 하늘을 뚫고 내려오는 마수에 대항하기위해 우리는 검을 휘둘렀고, 마수를 퇴치했지.
이 일련의 사건은 문장하나로 정리하는데에 충분하지만, 그 이후 있었던 일들은 우리도 골치를 좀 썩었는데………"
"그 이야기라면 알고있어."
칼라의 말에 레시드는 갑작스럽게 인상을 구긴다.
"말 끊지마."
"………"
공기가 무거워진다. 레시드의 단 한마디에 바닥이라도 내려앉을듯한 분위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칼라는 침을 꿀꺽,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세븐 테일이라는 드래곤들의 아종이 나타났지. 아종이라기보단 '돌연변이' 라고 하는게 옳을까.
인간의 모습을 옳바른 형태라 여기고, 드래곤의 모습으로 화하는걸 부끄러움으로 여겼던 드래곤.
하지만 보통 드래곤보다 수십 배는 강력해, 개체수는 적어도 원종 드래곤에게 강력한 위협이 되어 드래곤들의 땅에서 추방되었다."
"………"
칼라는 고개를 끄덕인다.
"그 세븐 테일중 한 마리야. 너희 동족을 쓸어버렸던 건."
"세븐 테일에 관한거라면 나도 고서적으로 몇 번 찾아본 적이 있었어. 버림받은 드래곤의 자식, 이라는 제목으로.
하지만 그 세븐테일은 이제 존재하지 않잖아? 어딨는지도 모르고 소재도 확실하지 않아! 이제와선 전설같은 존재라고!"
"………"
당연하겠지, 라며 레시드는 조용히 중얼거린다.
"내가 다 죽였으니까.
과거, 세븐테일은 다 테리스와 내 손에의해 전멸당했다."
"자,잠깐 그럼 복수고 뭐고 없잖아……!"
"문제는 거기서부터야. 이쪽은 우리들의 일이니까, 그들과 있었던 일을 다 설명해줄 순 없어.
그랬다간 한 편의 소설이 되버리거든."
레시드는 자조적으로 씁쓸하게 웃으면서, 칼라를 똑바로 바라본다.
"지금부터 이 곳이 뒤집혀서 갈 곳은 지옥이 아니다. 「도망친」 세븐 테일이 잠복해있는 곳이지.
복수를 원한다면 그곳을 향해라.
나는 가능하면 다 처리하고 싶지만…… 세계까지 교체하면서 처리할정도로 몰인정하지 않거든.
그러니까,
갈 목적이 있는 녀석이 가는게 복수라는 의미에 걸맞지않을까?"
"……내가 당신의 말을 어떻게 믿지?"
레시드는 칼을 거둬들였다. 더이상 보험은 필요없다는 듯이 자신의 말을 거둬들이는것처럼 칼집에 도검을 끼워넣고, 코트의 옷매무새를 가다듬듯 툭툭 손으로 털었다.
"나를 사칭해 그런 짓을 했다는건 나도 이번에 처음 알았어.
난 나름대로 사죄가 하고싶은것뿐이야."
"…………사죄…… 그저, 과거 저질렀던 자신의 잘못을 덮기위해 우리들을 지옥에 묻으려는거 아냐?"
칼라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