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리스는 펼쳤던 마도를 거둬들이면서, 입을 크게 벌려 하품을 했다.
레시드는 3일밤낮이라도 샌 것 같은 피곤한 표정을 하고 있는 테리스에게 다가간다.
"고생했어. 루드리넬은?"
"………저쪽에."
테리스가 가르킨 곳에는 음성확장마도로 정액맨을 도발했던 소녀가 있었다.
루드리넬 아프로슈.
레시드는 무언가가 웃기기라도 했는지 입가를 일그러트렸다.
"선조님들, 이거면 됐나요?"
소녀는 걸어와서 당당한 어조로 답했다. 말투는 차갑고 표정또한 냉정한 그녀에게 레시드는 어떤 연민을 느끼는걸까.
"네가 에반의 손녀의 손녀구나…. 뭐랄까, 시간도 빨리 흘러가는군."
"………."
레시드와 테리스는 영생을 구가하고있는 인간이다. 둘은 신마검 새크리파이스와, 대성검 델크리스의 가호를 받아 늙지도 죽지도 않는다.
원래 친구로서 함께했던 에반이라는 남자는 이 학교의 전략과 설립에 큰 기여를 한 남자였고, 처음으로 수석졸업을 마친 남자였다.
"에반의 유전자는 얼마나 우수했던거야. 대를 걸쳐 전략과를 휩쓰는구만."
테리스가 질렸다는듯이 중얼거리자 루드리넬은 조금 자랑스러운듯이 가슴을 펴고 웃는다.
"제가 우수한겁니다."
"말하는 것까지 에반이랑 똑같네, 아주."
레시드는 그런 루드리넬의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듯 쓰다듬었다.
"읏…… 저기, 선조님들. 앞으로 어떻게 하실거에요?"
"어떻게 하다니?"
루드리넬이 아무리 명석한 머리를 가지고 있다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은 분명 있다.
"먼저, 선조님들이 그 세계로 가더라해도 돌아올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잖아요.
그런데 굳이 대타로 레드드래곤을 보낸 이유가 속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해도, 신기를 가진 남자까지 보낼 필요가 있을까요?"
"………"
지나치게 효율성을 따지는것도 에반과 닮았어, 라며 레시드는 자조적으로 웃는다. 자신이 저질렀던 실수를 다시 떠올리고 있는거겠지.
"무한한 정력을 가지게해주는 신기라는 점은 그냥 웃긴 마법 악세사리로 취급해주고싶겠지만, 실상은 그렇지않아.
그 남자가 입은 타이즈는 지금의 나도 어떻게 할 수 없어."
"………"
루드리넬은 멍한 표정을 짓고는 레시드를 올려다봤다. 레시드가 어떻게 하지못할 물건이라면 도대체 어느정도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루드리넬, 몸조심해. 그 남자가 돌아오면 정말로 먹힐지도 몰라."
루드리넬은 흠칫했다. 다른세계로 갔으니 설마라며 스스로를 달래지만 불안한것은 어쩔 수가 없다.
"정력이 많다는 건 남자로선 부러워할 일이지.
하지만 여자를 기쁘게도 하고, 슬프게도 하는 능력에…… 어떤 끝이……"
"돌아가자. 배고파."
레시드의 말을 끊은 테리스는 피식 웃었다.
"………해보자 이거냐?"
"할까?"
테리스가 칼을 꺼내든다. 레시드도 기다렸다는듯이 도검을 발도했다.
"기다려요! 선조님들. 별거 아닌걸로 싸우지마세요."
루드리넬이 그 둘의 사이에 껴서 팔을 흔들어 저지한다. 그러자 레시드는 후…… 하고 한숨을 쉬더니 도검을 집어넣었다.
"너는 말이 너무 길어. 그렇게 폼잡고있을 시간이 있으면 밥이나 더 먹자고."
"아아, 그래."
둘은 그대로 함께 자신들이 거주하는 집으로 돌아갔다. 루드리넬은 그제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고 사람 한 명 없는 정비과 건물에 시선을 돌렸다.
"………"
[지하철에 치이고도 살아남은 남자]
SBK 뉴스의 정석범 기자입니다.
이번에 XX역에서 일어난 사고인데요. 지하철 선로에 뛰어든 김모군은 치인 후에도 어떤 상처도 없이 살아남아 화제가 되고있습니다.
이곳은 XX역. 아직도 사고의 흔적을 그대로 기억하는 전철의 모습입니다.
이 앞부분을 보시면 이렇게 찌그러져 있는데요. 무언가를 들이받지않고서는 이런 흔적이 생기지 않습니다.
사고를 당한 피해자는 특이한 타이즈 복장을 하고있었다고 하는데요. 지금은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있습니다만 어떤 상처도 없다고 합니다.
평소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선로에 뛰어들었다고 고백한 김모군은……
리모콘을 조정해 TV를 끈다.
왜인지 나는 병원침대에 누워있었다. 지하철에 치인 순간 무사할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정신이 아찔해져서 기절해버린 것이다.
"………"
팔에는 링겔이 꽂혀있……지 않다. 아무래도 꽂으려다가 바늘이 들어가지않자 포기한 것 같았다.
벗기려고 한 흔적도 보였지만 벗길 수 있을리 없지.
"후후."
현실로 돌아왔다.
달력을 봐도 내가 사라졌던 그 날 그 시간 그대로였다. 이 능력을 가지고서 누구나 부러워할만한 정력을 가지고서…… 나는 현대로 돌아왔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얻은 기분이었지만, 일단 칼라를 찾는게 중요하다.
칼라는 이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을게 분명하니까.
생각을 끝마친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서 밖으로 질주했다.
"몸은 괜찮으신지…… 이런 경우는 거의 없는데……"
내가 문을 나오자 말을 시작한 의사를 지나쳐 달린다.
"302호 환자가 도망친다!!"
뒤이어서 들린 외침소리를 무시하고 병원을 탈출한 나는 정액으로 모습을 변형시켜 일반인으로 둔갑한 뒤에 인파속으로 섞였다.
"후우 후우."
오랫만에 도심의 오염된 공기를 흡입해보는군.
모습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는 내게 이곳의 여자를 따먹는건 일도 아니다. 시내에는 꽤 많은 여성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이곳이 어딘지 아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잘보니 전부 내가 아는곳이었다.
학생시절 친구들이랑 자주 놀러왔던 거리같은데…… 택시만 잡으면 우리집까지 30분거리도 채 되지않는 곳이었다.
근데, 택시비가 없는데 어떻게 택시를 타지?
"………"
일단 탄 후에 냅다튈까? 그러기엔 우리 아버지가 하는일이 택시기사였기 때문에 양심에 걸려서 할 수 없다.
"(돈을 마련해보는 수 밖에 없겠는데…….)"
무슨수로 돈을 구하지.
이렇게 인파가 많으면 소매치기를 하는건 나한테 있어서 그렇게 어려운일은 아니지만…… 역시 인간으로서 할 짓 안 할짓은 구별하자. (니가 할말은 아닌듯)
"왜 이러세요?"
갑작스럽게 높은 언성의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경질적인 그 목소리에 반응해 고개를 돌려보니,
"저랑 가까운 카페에서 율무차라도 한잔 하시겠어요!"
"윽, 저리 가요. 빈티 풀풀나게 생겨서, 재수없어!"
"………"
율무차?
헌팅을 시도하고있는 남자를 바라본다. 멀쩡하게 생겨서 드라마 대사로 하라고해도 못할 말을 하고있었다.
율무차라니 어느시대 인간이야!!
차마 못 보고 있어줄 광경이었지만, 남자가 입은 옷을 보고 납득이 갔다. 셔츠를 바지안으로 밀어넣은 신감각적인 패션이었기 때문이다.
타이즈를 입은 내가 뭐라고 할 처지는 아니군.
"제발 부탁합니다. 저랑 놀아주세요!!"
문제는 상대 여성이 완전히…………… 심각했다. 몸무게는 가볍게 90kg 넘을 것 같고, 키는 150전후반, 얼굴에는 숟가락으로 퍼내면 화장을 떠낼 수 있을정도로 두껍게 화장한데다 다리는 코끼리를 연상시키는……
"우욱"
속이 안좋아졌다.
폰카를 들이밀어서 실연을 당해 무릎꿇어있는 남자의 모습을 연신 찍어대고 있었다.
저런식으로 헌팅할 용기가 있다면, 방법만 제대로 가르쳐주면 못할것도 없을텐데…… 생긴것도 꽤 되는놈이 왜저럴까.
도움의 손길을 뻗어주기위해 나는 그쪽으로 달려갔다.
"이봐요, 사람이 여,여자에게 차였는데 재밌다면서 폰으로 찍으면 됩니까. 구경났어요? 어서 가세요."
찍는사람들을 몰아낸다. 스스로도 방금 그 인간을 [여자]라고 부르는데 저항감이 생겨 말을 더듬어버리고 말았다.
이미 멀리 가고 없지만.
일단 나는 무릎을 꿇고 실연을 맛보고있는 남자를 일으켜세웠다.
"일어나요."
"……다,당신은……?"
"그런식으로 하면 될 것도 안되겠어요. 율무차가 뭡니까?"
"율무차가 어때서요!!"
남자는 갑자기 눈물 콧물 질질 짜면서 달려들었다.
"우와악!? 아,아니 율무차가 어떻다는게 아니라, 그 때는 말하는 방식을 조금만 바꾸면……"
"흐흫, 흐흐흫!! 흐아아아아!!"
"왜 갑자기 울고 난리야!"
아 진짜 미치겠네.
슬슬 사람들이 다시 몰려오기 시작했다는걸 깨달은 나는 강제로 남자를 질질 끌어서 뒷골목으로 끌고갔다.
"사람 없지……"
휴.
인파에서 벗어났다는 생각에 일단 안도의 한숨을 쉬고, 꿇어앉아 훌쩍이고있는 남자를 본다.
………어쩌자고 내가 이런녀석을 구하러 뛰어들었을까.
"이봐, 일단 통성명부터 하자구. 당신 이름 뭐야? 내 이름은 김진혁이라고 하는데."
"………"
울음을 그친 남자는 고개를 들었다. 눈물과 콧물로 엉망이 되어있는 얼굴을 보고 내가 인상을 찡그리자 팔로 슥슥 자신의 분비물을 닦고는 말을 잇는다.
"제 이름은 김유진이에요.
정액맨……이라고 하셨죠?"
"………"
그러고보니 타이즈의 저주는 계속되고 있었다. 남자놈이고 하니 정액맨이라 불리는것도 상관없겠다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저,저에게 가르침을 주세요!!!"
"헐!? 갑자기 왠 가르침이야!"
유진은 갑자기 넙죽 무릎을 꿇어 큰절을 하더니 여자와 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달라고 빌어왔다.
사정을 들어보면 이렇다.
유진은 지금껏 평범하고 성실하게 남들보다 잘하진 못해도 남들에 뒤쳐지지는 않게 열심히 살아온 대한민국의 청년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친구들과 어울릴줄도 몰랐던 그는 노는걸 자연히 피하고 공부에 매달렸지만, 머리가 나쁜 탓에 이류대학에 머물러 세월아 네월아 보내고 있던 도중 입영 통지서가 찾아왔다고 한다.
이대로 친구도 사귀지 못하고 동정딱지도 못때고 군대에 가는게 너무 슬퍼서 헌팅을 시작했지만 3주째 124번 퇴짜를 맞고 3일 후면 군대에 가야한다고 한다.
"………"
뭐 이런 딱한놈이 다있을까.
나도 하마터면 이렇게 될 뻔 했지만, 프레미아를 만나 판타지세계로 굴러떨어졌으니 어떻게든 동정은 아닌데.
사랑스럽게 매달려오는 여러 여성들을 떠올리면, 확실히 아무것도 모르고 군대에 가는건 불쌍하기 짝이 없었다.
"좋아, 도와주지."
"저,정말입니까? 사부님!"
"……사,사부라고 부르지마! 아니, 정액맨보다는 낫겠지만…… 하아."
"평생 함께하겠습니다!"
"평생 함께 하지않아도 돼!"
소름돋는말도 아무렇지 않게할 수 있는 이유는, 이 남자는 인터넷도 접해본적이 없는 순수남 그 자체라고 한다.
생긴것도 꽤 된다. 오히려 머리빨 세우고 옷만 잘입어줘도 여자들이 따라올 것 같다. 키도 190정도 되는게………… 기본바탕은 상당히 좋아보이는걸.
"여자와 하룻밤 잘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사부님!"
………
아무리 그래도 3일안에 가능할까? 나도 헌팅은 처음이다. 물론 율무차대쉬보다는 여자와 대화하는 방법은 알지만…… 만나자마자 남자에게 몸을 대줄정도로 엉덩이가 가벼운 여자가 과연… 있을까 하는게 문제다.
"이,일단 네가 하는걸 보고 문제점을 짚어주겠어.
저기 지나가는 여자 보이지?"
"네."
나는 뒷골목 바깥쪽에 스커트를 입고 당당하게 걸어가는 20대 중반쯤 되는 여성을 가리켰다.
"저 여자의 번호를 따와봐."
만날 약속까진 무리라는 생각에 그렇게 말하자, 유진은 알겠습니다. 사부님! 이라며 쏜살같이 여성에게 달려갔다.
"저, 저기요."
………
시작부터 말을 더듬는 유진. 하지만 여성은 꽤 마음씨가 좋은건지 싱긋 웃으면서 네, 왜그러세요?라며 답한다.
"(서비스업쪽에서 일하는 사람인가보네.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깍듯한게……)"
멍하니 그런생각을 하고있는데 유진은 갑작스럽게 고개를 90도로 꾸벅 숙이고는
"저에게 폰번호를 주세요!!!!"
"………"
"………"
무거운 침묵이 감돈다. 멀리서 보고있는 나한테까지 전해져오는 쪽팔림에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저것도 어쩌면 재능이다.
"아,하하…… 저, 죄송하지만…… 가,가볼게요."
여자는 당연히 당황해서 지나쳐간다. 아까 그 여자처럼 심한소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유진은 다시 마음의 상처를 입어 그 자리에서 풀썩 쓰러졌다.
"……이런 상태니까 퇴짜를 맞는게 당연하지."
유진을 다시 뒷골목쪽으로 불러온 나는 설교를 시작했다.
"여자를 대하는데 그렇게 직설적으로 소리지르는 놈이 어딨어. 특히, 초면인 상대방의 정보를 캐는건데 가능한 자연스럽지않으면 허락해주질 않을거 아냐!"
"……우웃, 하지만 여자분의 앞에 서면 저는…… 몸과 마음이 떨려서 제대로 말도 못하고……"
"웃기지마!"
제대로 말 못하면 그런 대사가 나오겠냐!
"그냥 넌 용기를 잘못된 방향으로 쓰고있을 뿐이다!. 먼저 자연스럽게 대화를 거는게 중요할 것 같은데……"
'너무 어렵다'라면서 유진은 울먹이고 있었다.
……후우.
나보다 큰 놈이 이렇게 여리고 연약하니 원……. 칼라라면 답답하다면서 배때기에 구멍을 뚫으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부님의 시범을 보여주십시오!"
"뭐?"
유진은 갑작스럽게 그런 소릴 하면서 기대가 가득찬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윽……"
"사부님의 시범을 보면, 저도 그것처럼 하겠습니다. 시범을 보여주세요!"
"…………"
시,시범이라니.
확실히 말로는 누가 못하겠어. 중요한건 실전에서 어떻게 해야하는게 문제아닌가.
"……하,하지만 내 방법은 네가 하지못하는거야. 그러니깐 내 시범을 봐도 도움이 안 될……"
"………"
유진의 미심쩍다는듯한 표정에 나는 무심코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좋아, 보여주마! 이몸의 시범을, 잘 봐라! 여자를 원하는 어린양이여!"
"우오오오오옷! 사부님, 과연 사부님입니다!"
뭐야 이 빌어먹을 전개는! 나는 정액을 다루는것 외에는 재주가 없는 남자란말이다! (정액맨은 웁니다.)
후우, 하고 한숨을 쉬고 뒷골목을 나와 인파가 있는곳으로 간다.
유진은 기대에 가득찬 표정으로 내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