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49)

 "에이, 이 아저씨 하도 안 깨서 뒈진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네… 푸웁!"

 "닥치고 빨던 거나 빨아, 이년아."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보리스의 넙적한 양손이 그녀의 머리를 꽉 잡고 숙여서 그의 육봉을 가득 베어물도록 강제했다.

 벨라는 눈을 위로 치떠서 보리스를 노려보면서 입으로는 열심히 봉사해 주었다. 곧 보리스의 살기둥에서 하얀 액체가 튀어나와 그녀의 체리빛깔 입가를 물들였다.

 -하아, 하아

 보리스는 몹시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사정을 즐겼다. 벨라는 잠시 술을 몰아쉬다가 그의 살방망이에 침을 발라 깨끗이 청소해준 뒤, 눈꼬리를 흘기면서 말했다.

 "아좆씨는 바이에른으로 간댔지? 나는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서 해준거야."

 이에 보리스는 뭔가 이해한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넌 버건디니까 오늘 점심엔 내리겠군."

 이 선실에서 버건디로 가는 이는 오직 이사벨라 혼자 뿐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다른 곳으로 가는 길이었다.

 "어이, 릭, 글렌! 일어나보게."

 보리스가 큰 소리로 쌍둥이 형제들을 불렀다. 벨라 역시 말리지 않는다.

 "큭, 역시 오랄 한번으로 퉁치고 가기에는 아쉽지? 이년 좆물 한발 마시더니 벌써 흥분했구만."

 보리스가 비웃는다. 사실이라는듯 볼이 발갛게 상기된 벨라지만, 말로는 지지 않는다.

 "무식한 아저씨, 혹시 알린 없겠지만 사돈 남말 하신다는 속담 알아? 꼴린 건 마찬가지면서."

 쌍둥이가 벨라를 보고 얼굴에 음소를 가득 달고 달려오자, 그녀는 내친김에 윌리엄과 루카스도 불렀다.

 "도박 한판 칠래?"

 선내에 위치한 도박실들은 문만 걸어 잠그면, 남의 눈치 볼 것 없이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곳이다. 아침이라서 죽돌이들도 없을 것이다.

 도박실에 들어간 여섯 명은 일단 도박 규칙도 정하기 전에 하의를 벗고, 단체 펠라부터 한판 했다. 세상에서 제일 급한 게 성욕이라고, 벨라는 다섯 명 사이에 기꺼이 무릎을 꿇고 앉아, 좆방망이질을 맞았다.

 '크으윽. 일주일간 욕구를 참다 참다가 어제 한번에 풀었더니, 싹 사라지긴 커녕 완전 꼴리는 몸이 돼버렸어. 아이고 이 변태 같은 년아, 사서 고생하네.'

 벨라는 열심히 냄새를 맡고 핥짝핥짝 거리다가 안 되겠는지 일어서서 도박규칙을 제안했다. 이미 그녀에게 특별모닝페라를 받고 온 보리스를 제외한 나머지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지만, 점심까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기에 수긍하고 토의에 참여했다. 규칙은 어렵지 않았다.

 -'라이프게임'을 실행한다.

 -판돈은 여섯 명이 동일하게 걸지만, 벨라는 도박사가 되어 게임을 감시하고, 진행은 나머지 다섯 명이 한다. 기권은 불가능하다.

 -벨라는 나머지 다섯 명 중 한 명에 자신의 판돈을 걸 수 있다.

 -벨라는 도박실 안에서 모든 행위를 자유롭게 하거나 요구할 수 있다. 단, 게임판을 만지거나 폭력을 행사하는 등 물리적으로 게임진행을 막는 행위는 제외한다.

 -게임의 최종 승자가 모든 판돈을 가져간다.

 -벨라가 판돈을 건 사람이 게임의 승자인 경우, 그녀는 그를 사정시킨 횟수에 비례해 그로부터 일정금액을 배분받는다.

 -벨라가 판돈을 건 사람이 게임의 승자(B)가 아닌 경우, 그녀는 그를 사정시킨 횟수에 비례해 그에게 일정금액을 지불해야 한다.

 -만약 두 시간 내에 게임이 끝나지 않아 승자가 결정되지 않으면, 남성기가 달리지 않은 사람이 모든 판돈을 가져간다.

 '라이프게임'은 장시간동안 치밀한 판단과 분석이 요구되는 보드게임으로, 게임이 끝날 때까지 보통6~70분 정도가 소요된다. 다섯 남자들은 다들 자신이 돈을 딸거라며 자신만만해 했다. 마지막 조항은 그저 게임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 장난으로 넣은 걸로 알고 낄낄댔다. 그런 그들의 생각이 바뀐 것은 고작 삼십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벨라는 우선 게임이 시작하자, 도박테이블 아래로 들어가 무릎을 꿇고 자리를 잡았다. 주머니에서 맨들맨들한 은색 실크장갑을 꺼내, 첫 턴이었던 글렌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달랑거리는 성기를 확 잡았끌었다.

 "억!"

 타액을 정성껏 펴바르자, 그의 성기가 벨라의 얼굴을 뚫을듯 발기했다.

 벨라는 한명만 공략하지 않았다. 오른손으로는 첫 턴인 글렌의 불기둥을, 왼손으로는 그 다음 턴이었던 윌리엄의 불기둥을 잡았다.

 그리고 장갑과 맨손, 입안을 적절히 활용해 강약을 조절하면서, 사정시키듯 말듯 남자들을 조였다. 기둥 안쪽에선 액체가 나올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지만, 그녀의 손길은 교묘히 입구를 틀어막고 자극을 가라앉혀 주었다. 결국 글렌은 사정도 못하고 5분 넘게 어버버 거리다가 간신히 첫 턴을 성공했다.

 이 게임은 갈수록 경우의 수가 늘어나면서 고민이 많아지는 게임이었다. 40분쯤 지났을까, 게임이 겨우 두 바퀴를 돌아 글렌의 차례였다. 그는 아직까지 한번의 사정도 하지 못한 채 아래쪽에 피가 쏠려 눈이 충혈되어 있었는데, 벨라는 살랑살랑 엉덩이를 흔들며 그의 페니스를 자극했다.

 "에잇, 멍청한 년! 소원대로 박아주마!"

 글렌은 도저히 참지 못하고 그의 성기로 그녀의 비어있는 질 입구를 틀어막았다. 여전히 그의 차례인 상황이지만, 그게 뭐가 중요한가?

 "앙! 글렌, 이 찌질이 2호가 웬일로 남자다운 모습이네?"

 그녀는 뽀얀 엉덩이만 내민 채 열심히 글렌의 성기를 받았고, 붉은 장발은 탁자 밑에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윌리엄의 성기를 옭아매고 있었다.

 게임을 시작한지 한시간 반쯤 지났을까.

 글렌과 윌리엄은 다소 후련한 표정으로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릭, 보리스, 루카스는 마치 뱀파이어마냥 붉어진 눈으로 무릎을 긁고 있었다. 벨라가 글렌과는 두번, 윌리엄과는 한번 섹스하는 바람에 게임은 아직 반도 진행하지 못한 상황이다.

 벨라는 아예 테이블 위로 올라가, 도박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암캐 자세를 취하고 살랑살랑 거리는 중이다. 준비한 페로몬 향수를 뿌리자 향긋한 냄새가 도박실에 퍼진다. 머리를 돌돌 말면서 귀여운 척도 해보고, 자기위로도 해보는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자극에 익숙하지 않았던 루카스가 마침내 턴을 포기하고 육중한 몸을 날려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의자에 올라서서 벨라의 통통한 궁둥이를 붙잡는다. 그리고 그녀의 똥꼬에 그대로 꽂았다.

 "꺅, 아학! 당신도 여기를?!"

 "크윽, 빡빡하군. 이건 귀족답지 않게 엉덩이를 놀린 벌이오. 이사벨라 공. 흠흠."

 "아학, 잘못했어요. 살살 해주세요. 흑."

 이 장면을 보고 다른 사람이라고 인내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에잇, 이판 끝났네, 끝났어."

 시간을 보던 보리스도 포기하고 벨라의 입에 자지를 물렸다. 아침에 한발 시원하게 뽑아서 그런지, 더더욱 그녀의 입보지가 그리웠다.

 두 시간이 정확히 종료되었을 때, 벨라는 보리스와 루카스가 서있는 사이에 껴서 공중 더블 페너트레이션을 당하고 있었다. 게임은 겨우 반이 진행되었을 뿐이었다. 규칙에 따라, 그녀의 판돈 외에도 100골드에 달하는 돈이 그녀의 수중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혹시 물건 뜯기고 싶은 사람 있어? 절반 정도는 나눠줄 수 있는데. 웁!"

 두 거구에서 해방된 벨라가 실실 웃으며 도발하자, 글렌이 양손으로 그녀의 머리를 꽉 잡고, 다시 한번 물건을 꺼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걸레년아 닥치고 빨지 못해? 악, 아! 물건 뜯기고 싶단 뜻은 아니야. 아! 억! 알겠다고!"

 한 여자와 다섯 남자의 뜨거운 정사는 뒷처리 시간까지 포함해 삼십분 가량 지속되었다. 타는듯한 붉은 머리칼도 얼마나 좆물을 뒤집어썼는지 핑크빛에 가까워 보였다. 알몸 위에 던져진 10골드짜리 지폐 12개를 챙겨, 남자들의 밀착보호를 받으며 샤워실로 향한다.

 벨라는 여행의 흔적을 깨끗이 씻어낸 뒤, 그녀의 '이자벨라 마랑' 컬렉션 중 부르고뉴 스타일이 들어간 옷으로 갈아입었다. 화려한 붉은빛이 들어간 치마와 회색과 하늘색이 섞인 부드러운 코트를 입었으며, 와인색 챙모자를 쓴 상태였다. 갑판에 서니 저 멀리 항구가 보이는데, 바람이 무척이나 시원했다.

 이제 항구에서 대기하는 손님들이 보일 정도로 가까워져서, 몇 분 후면 정박할 것 같았다. 넘실대는 검푸른 강물 너머로 끝이 없어 보이는 포도나무 밭이 펼쳐져 있다. 이제 한여름인지라 한창 푸른 색 이파리와 녹색 꽃으로 뒤덮여 있다. 중간중간에 나있는 도보 너머로 시선을 돌리니, 그림 같은 레드와인색 성채가 눈에 띈다.

 연합수도 버건디(Burgundy). 프로방스인은 디종이라고도 부르는, 와인의 도시다. 때는 정오. 브뤼헤를 떠난지 아흐레 만이었다.

벨라가 아침마다 산책하는 버건디(Burgundy) 교외의 포도밭 

 개점식 이주 전에 출발했기 때문에, 도착 후에도 5일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벨라는 모처럼 부르고뉴 성 안에 위치한 고급 여관에 투숙해 뜨끈한 목욕을 즐겼다. 선실의 샤워시설은 열악했기 때문에 섹스 중에 남자들이 싸질러놓은 미끌미끌한 흔적들만 닦아내는 게 다였는데, 이곳에서는 제법 현대인다운 위생관념을 실천할 수 있었다.

 라벤더향 샴푸에 체리향 워시, 복숭아향 로션까지 써보니, 며칠 간 푸석했던 피부도 윤기를 되찾았다. 그녀는 오랜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잠은 밤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규칙적으로 잤다. 일어나서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명상과 검술수련이다. 동이 틀 무렵에는 홀로 교외의 포도밭을 산책하면서 포도꽃을 따보아 맺힌 이슬을 관찰하기도 했다. 새벽안개가 깔린 포도밭 인근에서 검술을 수련하기에도 좋은 공터를 찾아 놨다. 아침은 여관에서 갓 구운 빵과 스프에 각종 과실잼과 프로방스산 고급버터를 곁들여서 먹었다. 식후에는 로즈마리나 캐모마일을 이용한 허브티를 타놓고, 여관 로비의 소파에 앉아 여유롭게 잡지를 읽으며 오전을 보냈다.

 점심은 버건디에서 유명하다는 레스토랑을 돌아다니면서 맛보았는데, 어딜 가나 부르고뉴 지방의 와인이 곁들여져 멋진 풍미를 선사했다. 오후에는 의상점을 돌아다니면서 마음에 드는 옷이나 옷감을 구매하기도 하고, 역사가 깊다는 서점이나 골동품 점에 들어가서 견문을 넓히기도 했다. 석양이 질 무렵에는 몸매 관리도 할겸 라인강변을 따라 조깅을 한후, 저녁은 낮에 구입한 식재료로 객실의 주방에서 간단히 만들어 먹는 게 일상이었다.

 간만에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니 그동안 쌓였던 이런저런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다. 으슥한 골목길 같은 데서는 으레 그렇듯 부랑배들이 나타나 추파를 던지곤 했는데, 배를 타고 오면서 미친듯이 성욕을 충족시킨 벨라로서는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아, '꺼져!'라고 말하곤 했다. 한두 무리 정도는 그녀가 뒤에 맨 사브르나 검집을 보고 궁시렁대며 사라지긴 했으나, 대부분 꺼지지 않고 달려들길래 흠씬 두들겨 패고 용돈을 갈취하는 에피소드도 있었다.

 "조무래기들 몇번 혼내주고서 모은 거, 다 합쳐봐야 5골드.. 푼돈이지."

 E급 용병일 때만 해도 1, 2골드에 벌벌 떨던 기억이 있었으나, 사업을 시작한 벨라에게는 푼돈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기가 돈이 많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돈이 많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한 삶을 살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이 세계의 왕족이나 대귀족들은 수천만 골드에서 수십억 골드에 이르는 돈을 소유하거나 융통하고 있었고, 그들에게 알랑거리면서 고물을 주워먹는 대상인들 역시 벨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가진 게 많다. 그런 대상인도 본인이 고귀한 출신이거나 강력한 힘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결국은 다른 강자의 하수인에 불과해, 순식간에 숙청되고 재산을 빼앗기는 경우가 많았다.

 이사벨라는 그래서 언제나 강해지고 싶었다.

 그녀는 몰락귀족이기 때문에 일신의 무력 외에는 자신의 삶을 지킬 수 있는 별다른 수단이 없었다. 현대인으로서 살았을 때는, 근현대를 거치며 이룩된 국가의 보호체계가 개인이 원하는 삶을 보호하고 장려했지만, 아타락시아 세계는 강자지존의 규칙이 뚜렷했다. 기본적인 도덕은 있었지만 언제나 무력의 앞에서 쉽게 짓밟혔으며, 규율과 명분도 결국 강자만의 수단이었다.

 에우로파 대륙에서 소드마스터나 마도사의 경지에 오른 이들은 절대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대부분이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아 어릴 때부터 가문의 지원을 받은 왕공족들이었지만, 간혹가다 평민이나 노예 중에서도  뛰어난 재능을 지닌 이가 튀어나오기도 했다.

 소드마스터까지는 아니더라도, 소드 익스퍼트 상급만이라도 된다면 최소한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며 살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 정도의 힘에는 항상 책임이 따르기 때문에, 더 불행하게 된다는 소리도 있지만, 상관하지 않는다. 강해지고 싶은 건 인간의 본능이고, 적어도 지금보다는 덜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장 조금 전에도 그녀에게 재수없게 걸린 양아치 패거리가 평민 가정의 보름치 생활비 격인 1골드 가량을 강탈당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백화점 개점식날이 되었다.

 "라파예트 백화점의 개점식에 오신 내외빈 여러분께 말씀 올립니다. 지금 세 대공국, 열여섯 공국, 일흔 두 개의 자유도시로 이루어진 로사링거 연합의 맹주이시자, 신성한 샤를마뉴 대제의 후예로, 위대한 부르고뉴 대공국의 정당한 통치자이신 샤를 필리프 발루아 드 부르고뉴 대공 전하께서 드시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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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중세시대, 부르고뉴의 야망가였던 용담공 샤를.

 기나긴 수식어를 지닌 부르고뉴의 군주가 등장했다. 벨라가 슬쩍 눈을 들어 보니 용담공(勇膽公, Temerarie)이란 별칭답게 용맹한 인상이면서도 차분한 표정을 갖춘 40대 중년인이었다. 대공의 부인은 본래 프로방스 왕국의 공주였으나, 그녀가 죽고 난 후 대공은 브리타니아연합의 왕족인 마거릿과 재혼한 상태다. 대공의 유일한 자식인 마리 공녀는 전처의 자식이다.

 무슨 백화점 개점식에 군주가 방문하냐 하겠지만, 에우로파 대륙에 세워지는 첫 번재 백화점임을 기억하자. 애초에 벨라가 제출한 계획이 정부에 채택된 뒤, 이 부처 저 부처를 거치며 뼈와 살이 덧붙어 졌고, 그녀는 입안자 겸 지분 투자자 정도의 위치에 불과하다.

 단상에는 대공 부부와 자녀를 비롯해 연합의 다른 공족, 그리고 정말로 유력한 귀족이나 외빈들이 앉았다. 나머지 귀족이나 대부호들은 객석에 앉고, 일반 평민들은 빙 둘러서서 행사를 지켜본다.  

 벨라는 몰락귀족에 불과했지만, 나름 계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백화점 지분의 20%를 소유하게 되면서, 30%를 소유한 로사링거연합정부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지분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로 인해 개점식에서 대공에게 '감사의 말씀'을 올리고 소형 백화점 모형을 바치는 일을 맡았기 때문에, 단상 말미 쪽에 앉게 되었다.

 "다음은 본 백화점을 구상 및 기획하여 연합에 봉헌한 인재로, 브뤼헤에 거주하는 이사벨라 폰 트란실바녜 영애가 직접 감사의 말씀을 올리는 차례입니다."

 벨라는 우렁찬 박수와 함께 연단에 올랐다.

 "위대하신 부르고뉴 대공 전하 부처와 공녀 저하, 훌륭하신 내외빈들의 앞에서 이런 말씀을 올리게 되어 무한한 영광이나이다. 먼저 대공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덕이 없었으면 소녀가 감히 이러한 계획을 일푼이라도 구상하고 실행할 수 없었음은 자명한 이치일 것이옵니다. (5분동안 말한 내용 중략) 보잘 것 없는 말씀을 이만 줄이며, 위대한 연합과 성스러운 전하의 발끝에 라파예트를 바치나이다."

 귀빈들이 얼굴을 찌푸리거나 혹은 근위기사가 불같이 분노해 그녀의 목을 치려하지 않는 걸 보니, 무사히 잘 말한 것 같다. 입에서 1초마다 버터를 토해내는듯한 기분이지만. 어릴 때 가정에서 예법을 배우지 않았었다면, 새로이 예법을 배운다 해도 분명 부자연스러웠으리라. 귀족의 기세란 이와 같은 것이다.

 사회자를 맡은 어떤 남작으로부터 백화점 모형을 받아들고, 대공의 앞에 무릎을 꿇는다. 지금까지 이 세계에서 만나뵌 분들 중 제일 높으신 분이지만, 용병 특유의 대담함 덕분인지 별로 긴장은 되지 않는다. 미소를 띠고 또렷한 눈빛으로 대공게 고개를 숙이며 모형을 바친다.

 예의를 잃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게 자신감을 지닌 모습에, 대공의 눈에 이채가 서린다. 그는 모형을 건네받으며 선언했다.

  "대 로사링거 연합을 대표하여 받겠노라. 부르고뉴와 연합의 앞날에 영원한 축복이 있기를!"

 위엄에 찬 대공의 말을 끝으로 우레와 같은 박수가 이어지며 예식이 마무리 되었다.

 대공은 자리에서 떠나기 전, 이사벨라를 손수 일으키고 등을 두드려 주었다.

 "훌륭한 재원이군."

 "황공하옵니다."

 짧은 대화를 끝으로 샤를 대공이 떠나고, 귀족들도 움직이기 시작한다.

 벨라도 불편한 단상에서 얼른 내려가려는데, 뒤에서 누군가 그녀를 부른다. 돌아보니, 외빈석 1열에 앉아 있던 나이 지긋한 노귀족이었다. 평범한 노인 같아 보이면서도 무언가 예리한 기운이 느껴져 벨라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세 명의 기사가 호위를 서고 있었는데, 레드드래곤이 그려진 검은색 철갑옷을 입고 있었다.

 "이사벨라 폰 트란실바녜가 각하를 뵙습니다."

 단상 맨앞에 앉아있었다면, 적어도 공후급은 되는 고위귀족임이 분명하다. 머리숱이 하얗게 새어 있었지만, 눈빛에서 나오는 기세는 무시무시하게 강렬하다. 정중히 대응하며, 무슨 용무냐는 눈빛을 보내자 노인이 입을 연다.

 "나도 레이디를 보게 되어 반갑다네. 한 가지 간단히 물어볼 것이 있어서 그런 것이니, 너무 경계하진 말아주게나."

 "예, 편히 말씀하여 주십시오. 그전에 무례한 일이오나, 각하의 존함을 말씀해 주시기를 감히 부탁드리겠습니다. 예식에서 어떠한 언질도 듣지 못하였습니다."

 "허허, 맞아. 이곳은 서부였지. 내가 있는 지방에서 나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는데… 늙은이가 실례했군. 어린 나이로 보이는데 인상이 밝고 처신이 훌륭한 젊은이구만."

 노인이 혹시 화난 기색이라도 내비칠까봐, 이사벨라는 고개를 푹 수그렸지만, 다행히 그런 일이 생기지는 않았다.

 "본인은 왈라키아 공국의 군주, 몰다비아와 루테니아의 변경백이자, 드라곤기사단의 명예단장 블라드 체페슈 드라큘러스 폰 트란실바녜라고 한다네. 지금은 자식놈에게 모두 물려주고 한가롭게 여행이나 다니고 있지."

 군주라는 말을 듣는 즉시 벨라는 무릎을 꿇었다.

 '씨팔,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이런 니글거리는 행사는 오는 게 아니었어.'

 "공작 저하를 뵙습니다. 소녀가 감히 실례를 범했습니다."

 블라드 공작이 그녀의 내심을 짐작했다면 단칼에 그녀의 목을 날려버렸겠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트란실바녜라면 그녀와 같은 성씨인데, 저 휘황찬란한 타이틀을 보니 직계 중의 직계임이 분명하다. 왈라키아의 군주라면, 예전에 루카스가 벨라의 성을 듣고 떠올렸던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가시공작(Impaler)'이라는 칭호를 지니고 있었으니, 무시무시한 사람인 것 같다.

 "일어서게. 이제 짐작하겠지만 나는 그대와 같은 성씨를 쓰고 있네. 감히 우리 가문과 동명을 쓰는 가문이 있을리 없고… 내가 아직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것으로 보아, 방계 쪽의 일족으로 보이는데, 맞는가?"

 "그렇습니다, 소녀는 가문의 변변찮은 방계 일족으로, 베네치아 태생입니다. 제국 귀족원의 족보에 기록된 바, 300년 전 트란실바니아의 군주셨던 미하이 전하의 다섯째 아드님의 후손입니다. 이후 작위를 받지 못한지 기백년이 넘어 향촌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흐음, 그랬었군. 작위가 없다 하나 핏줄에 대한 자부심은 간직하도록 하라. 그대의 태양빛 같은 머리색은 우리 가문의 상징이지. 직계에서도 잘 나타나지 않는 건데, 부러운 일이군."

 '구라도 잘 치시네! 누릴 거 다 누렸으면서, 머리색 하나가 부럽다고? 에라이, 그래라. 나도 당신 나이는 안 부럽다!'

 벨라는 속으로 뭐라고 생각하든 예의바른 영애를 연기했고, 공작은 날카롭게 눈을 빛내며 말을 이었다.

 "내 눈이 틀리지 않았다면, 상당한 실력을 쌓은 걸로 보이는데. 상재도 있다니 가문의 홍복이군."

 '개떡 같은 소리 하네! 싹수가 있어 보이니 같은 가문이란 핑계로 좀 써먹어 보겠단 말 아니야?'

 "과찬이십니다. 이제 소드유저 상급이 되었습니다."

 "혹시 최상급은 아닌가?"

 '헉! 이 양반, 눈썰미는 귀신인데? 고수들은 급수까지 콕 찍어서 알아볼 수 있나.'

 "사실 얼마 전에 진전이 있었사온대, 아직 확신을 가지지는 못하여 미처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배를 타고 오면서 루카스를 만난 일을 들려주자, 공작은 매우 흥미를 보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물론 그와 얽혀서 파워섹스를 한 일은 적절히 생략했다.

 "좋은 인연을 쌓았군. 비스마르크 가문은 특별한 곳이지. 내가 그 나이 때는 온갖 일이 밀어닥쳐 잠잘 시간조차 부족했는데, 이 나이쯤 되니 잠은 안 오고 할일도 없어 심심하기 그지 없다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나 또한 그대의 검술을 견식해 봐도 되겠는가?"

 실례라고 하면 그의 곁에 있는 세 기사들이 당장이라도 목을 날릴 기세다.

 이건 벨라의 입장에서도 엄청난 기회가 될 수 있는 일이다. 공작은 상당한 실력을 지닌 직계혈족이므로, 그녀가 지닌 가전 검술의 원류, 혹은 거기서 더 발전한 무언가를 익히고 있을 테니 말이다.

 다만 3년간 이 세상을 살다보니, 저쯤 되는 사람이 정말 심심풀이로 뭔 일을 벌인다고 볼 수는 없었다. 단순히 먼 혈족을 만나 반가운 마음에 검을 지도해 주려는 걸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걸까? 만약 다른 의도가 있다면, 그것은 그녀에게 어떻게 작용할 것인가?

 아무튼 성은이 망극하다는 식으로 대답하고, 그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블라드 공작은 내성에 위치한 대공가의 영빈관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벨라는 얼떨결에 부르고뉴 대공 가문의 가장 깊은 비처까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중간중간에 마주친 경비병이나 기사들이 그녀를 흘낏거렸지만, 함께 걷고 있는 공작을 보고 그저 예를 표할 뿐 따로 제지하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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