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1/49)

 빅토리아와 대련을 앞둔 아라비아계 남성의 이름이 누레딘인가보다. 다마스커스는 동방대륙의 시리아(Syria) 지방에 위치한 도시로, 루테티아 못지 않은 대도시여서 벨라도 잘 알고 있었다.

 "흐음, 이베리아가 아니라 시리아 출신이라는 건가? 요즈음 동방에서 가장 무섭게 성장 중인 지역이네. 술탄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Yusuf ibn Ayyub)의 기세는 해협 건너편 에우로파 동부 지역에 중대한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것 같아."

 벨라는 동부 출신의 블라드 공작으로부터 동대륙에 대해 꽤나 자세한 얘기를 들어 보통의 에우로파인들이 아는 이상으로 많은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의외로 상세한 말을 들어서였는지 오셀로가 눈쌀을 찌푸리면서 뭐라고 말하려다 갑자기 조용해진다. 벨라는 오셀로의 주인 누레딘이 그에게 기세를 쏘아 보낸 탓임을 알았다.

 '얘들 봐라? 무언가 사정이 있나보군. 하긴 용병 치고 구구절절한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있겠어?'

 대화가 끊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전투가 시작되었다. 벨라는 언뜻 보이는 오셀로의 초콜릿색 복근을 살짝살짝 훑어 보면서, 빅토리아와 누레딘의 대련을 감상했다.

 벨라는 소드마스터인 빅토리아의 압도적 우세를 예상했는데, 의외로 호각의 대결이 이어졌다. 빅토리아가 검강을 숨긴 탓도 있지만, 누레딘이란 아랍인은 거의 벨라 못지 않은 실력에 상당히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상승의 정통 검술을 배운 뒤, 실전경험조차 풍부하다.'

 누레딘의 반월도가 날카롭게 휘어지며 빅토리아를 곤욕스럽게 만들 때마다 벨라는 연신 감탄했다. 실력과 경험이 탄탄한 조화를 이루어, 마치 블라드 공작과 같은 스타일이었다.

 옆에 있는 오셀로 역시 빅토리아의 솜씨에 무척 감탄하는 모양새였다. 빅토리아는 바이킹 소드에 강력한 힘을 실어, 상대의 유려한 기술을 번번이 무효화시켰다.

 "일개 여인이 누레딘 님을 상대로 저렇게까지 버티다니 대단하군."

 대련은 몇 분 지나지 않아 벨라와 로슈포르의 경우와 같이 심사관에 의해 중단되었고, 빅토리아는 A급 용병패를 받을 수 있었다.

 누레딘과 오셀로 일행과는 대련이 끝난 후에도 잠시 얘기를 나누었는데, 다른 에우로파인들에 비해 유연한 사고를 지닌 벨라와, 무력으로 상대를 판단하는 빅토리아를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 용병길드를 나온 후에도 계속 길이 같아, 알고 보니 같은 여관에 투숙하고 있었다.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오셀로는 그의 주인보다 한단계 낮은 B급 용병이었는데, 같은 여관에 투숙하는 벨라에게 종종 대련을 청해왔다. 벨라는 물론 몇 번씩 대련을 지속하면서 오셀로의 능력을 대충 파악하게 되었고, 대련은 항상 그녀의 승리로 끝났다.

 오셀로는 선천적인 근력을 바탕으로 철퇴와 쌍절곤을 강하게 휘두르는 스타일이었는데, 벨라보다는 빅토리아와 상성이 맞을 것 같았다. 벨라의 추천에 의해, 오셀로와 빅토리아의 비무가 잦아졌고, 반면 벨라는 기술과 실전이 적당히 조화된 누레딘과의 비무를 통해 자신의 실력을 점검하고 향상시킬 수 있었다. 때로는 넷이서 2:2로 짝을 이루거나 1:1:1:1로 나머지 전부를 상대하는 식으로 실전에 가깝게 훈련을 하기도 했다.

 그날도 여관 뒤편에 위치한 전용 수련장에서 네 남녀 간 격렬한 대련이 이어지던 차였다. 벨라는 황혼검을 놓고 적수공권으로 퀸의 능력을 이용해 오셀로의 정면을 공략했고, 오셀로는 그만 철퇴를 놓친 채 낙법을 잘못 펼쳐 미끄러져 버렸다. 그의 상의마저 풍압에 의해 반쪽으로 갈라져 버린 상태였다. 벨라가 순식간에 오셀로의 앞으로 파고들어 결정타를 날리려는데, 허공을 휘젓던 오셀로의 검은 손이 우연하게 벨라의 양쪽 가슴을 움켜쥐어 버렸다.

 "하앗!"

 벨라는 다리 힘이 살짝 풀리면서 그대로 균형을 잃고 오셀로의 검은 가슴팍 위로 붉은빛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몸을 겹치게 되었다. 적나라하게 울려퍼진 신음소리에 현장을 보게 된 누레딘은 당황하고 빅토리아도 얼굴을 붉혔다.

 벨라는 이미 흥분해 있었다. 경황 중에 가슴을 잡혔지만, 그곳은 빈유였던 시절부터 트라우마가 남아 오랫동안 그녀의 주요한 성감대 역할을 해오고 있었다. 예전의 동료 용병들 사이에서 가슴만 공략하면 바로 열린다는 말까지 돌 정도였다. 더구나 벨라와 빅토리아 모두 루테티아에 도착한 뒤로 백합 플레이만 계속했을 뿐 남자를 만나지 못한 상황이었다.

 찢어진 옷 때문에 훤히 드러난 오셀로의 가슴팍에서는 격렬한 대련의 여파로 남성 특유의 진한 땀냄새가 풍겼고, 그의 몸매는 그야말로 현대의 보디빌더 수준으로 훌륭했다. 상대가 초콜릿색 피부를 지닌 흑인이라는 사실조차도 벨라를 매우 흥분시켰다. 당황한 채 가슴을 움켜잡고 있던 오셀로가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그녀는 그를 끌어안고 가슴팍을 핥다가 냄새맡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잠시 당황스러워 하던 오셀로는 이내 웃으면서 한손으로 벨라의 머리칼을 쓰다듬어 주고, 다른 손으로는 그녀의 D컵 가슴을 주물럭대기 시작했다. 벨라의 머리에도 대련으로 인해 송글송글 땀이 맺혀 있었지만 그에게는 무척 향긋하게 느껴졌다.

 이내 벨라는 오셀로의 바지를 열어 그의 양물을 꺼냈는데 족히25cm는 넘는 거근이 툭 튕겨올라 그녀의 얼굴을 쳤다. 양물은 계속 발기하면서 아직도 커지는 중이었다. 벨라는 그녀의 아래쪽이 확 젖어드는 걸 느끼면서 더욱 음란한 미소를 지었다.

 벨라는 앞으로 엎드려 오셀로의 고간에 고개를 파묻은 채, 검은색 살기둥의 아래쪽을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다가 이내 혀를 꺼내 살살 쓸어올리기 시작했다. 마치 헤어진 연인이라도 만난듯 한입 베어물고 정신없이 빨아댄다. 벨라의 신들린 오랄 솜씨에 극히 흥분 상태였던 오셀로는 1분도 안 되어 그녀의 입 속에 정을 토해냈고, 곧바로 일어나서 벨라를 뒤로 돌려 엎드리게 하고 그녀의 바지를 내렸다.

 벨라는 암캐처럼 엎드린 채 몽롱한 눈빛으로 앞을 바라보았다. 빅토리아는 창백했던 하얀 얼굴이 새빨개진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고, 누레딘은 빅토리아에게 조금씩 집적대다가 거부당했는지 민망해하면서도 살짝 화가 난듯 보였다.

 그러나 흑인의 거근이 벨라의 촉촉한 꽃잎을 꿰뚫는 순간 모든 상념이 지워졌다. 푸른 눈이 반쯤 뒤집힌 채 입을 벌리며 연신 비음을 토해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이 그저 남자에게 박히기 위해 태어난 하나의 멋진 육체에 불과함을 느끼고 있었다.

 "하아아아아앗! 이거야…바로…"

 몬스터 이후로 만난 최고의 대물에 그녀의 질 주름이 쫘악 펴지며 여인에게 어마어마한 성적 쾌락을 선사해 주었다.

 -팍 팍 팍 파악 파악 푹 푹 푸욱 쳑 쳑 쳑

 오셀로는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를 움켜쥐고 척척 박아댔다. 그로서도 시리아를 떠난 뒤 참으로 오랜만에 맛보는 여자였다. 벨라의 그곳이 얼마나 쫄깃쫄깃하게 쪼여주는지, 사정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벌써 신호가 오고 있다.

 "어으, 죽여줬어.. 하아, 하아아.. 어디든 대줄 테니까 계속, 계속 마음대로 박아주세요. 아흑!"

 오셀로는 한층 공손해진 벨라로부터 오케이 싸인을 받고 질내에 두 번째 사정을 한 뒤에야 정신을 차리고 그의 주인을 쳐다보았다. 누레딘은 빅토리아의 배 위에 올라타 그녀의 몸 이곳저곳을 마구 주무르는 중이었다. 빅토리아는 몸을 털고 손발을 이용해 저항의 몸짓을 보였으나 누레딘은 그녀를 강하게 다루고 있었다. 그녀가 정말 저항하려고 했다면 이미 피와 살이 튀기는 전투가 벌어졌겠지만, 지금 벌어지는 싸움은 그저 결과를 정해 놓은 게임에 불과했다.

 누레딘이 빅토리아의 옷을 하나씩 벗겨내고 애무의 강도를 높여감에 따라 손발의 저항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마침내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팬티를 벗겨내고 질 속을 확 꿰뚫어 버리자, 바르르 경련하면서 조금씩 삽입이 용이하게 다리를 벌려주었다.

 "뭐야? 참나, 고고한 척 하더니만 벌써 안쪽은 흥건한데?"

 옆에서 흑백이 뒤엉켜 내는 신음소리가 더욱 커질수록, 빅토리아의 저항도 약해져 갔다.

 -으흐으음 흐으으으으으읍

 누레딘의 손가락이 세 개쯤 들어갔을 무렵, 마침내 빅토리아는 참고 있던 신음을 약하게나마 입술 사이로 토해내며 절정에 올랐다. 물이 튀어나옴과 동시에 그녀의 근육이 충분히 이완되면서 사지를 완전히 놓아버렸다. 늘씬하게 빠진 긴 다리가 누레딘의 인도에 따라 일자에 가깝게 쩍 벌어졌다.

 "어이, 빅토리아! 박아달라고 말해봐."

 누레딘이 능글능글한 얼굴로 말하자, 빅토리아는 고개를 홱 돌렸다.

 "흥! 그냥 알아서 해라."

 그러나 그 순간 누레딘이 그녀의 다리 사이로 얼굴을 파묻고 열려있는 구멍을 핥아대기 시작하자, 다시 열락에 빠진 얼굴로 크게 신음소리를 냈다. 신음이 한번 터지자 그 후로부터는 쭉 맛깔나게 이어졌다.

 "아아! 하아아! 핫! 흐앙!"

 누레딘이 클리스토스를 세차게 빨아대자 빅토리아는 손으로 그의 머리를 꽉 누르면서 다리를 오무렸다. 마치 절정에 오르기 직전인듯 했다.

 그 순간 누레딘은 고개를 들어올린 뒤 자신의 바지를 까고 육봉을 꺼낸 채 빅토리아의 얼굴 앞으로 가져갔다.

 빅토리아는 그의 검붉은 물건을 흔들리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물건이 가까이 다가오자 상체를 일으킨 채 자연스레 붉은 입술을 벌려 받아들였다. 누레딘은 대견하다는듯 그녀의 백금발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빅토리아는 바이킹 전사로서 지녀온 고고한 자존심이 상했는지 그를 무서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남색 눈동자에서 금방이라도 광선이 쏘아질 것 같다. 하지만 이 작은 키의 아랍인은 그녀의 가슴을 몇 번 주물러주고, 애무 시 반응이 왔던 부위들을 만져주자 다시 몽롱한 눈빛으로 돌아왔다.

 빅토리아의 펠라 솜씨는 다소 서툴렀지만, 누레딘 역시 본국을 떠난 이후 여자를 안는 게 오랜만이어서 몇 분 후에 사정감을 느꼈고, 빼내어 그녀의 새하얀 얼굴 위에 시원하게 정액을 싸버렸다. 시큼한 냄새가 코와 입으로 들어오며 프로방스 군함에서의 뜨거웠던 기억들을 상기시켰다.

 한 차례 얼싸를 당한 뒤 빅토리아는 훨씬 고분고분해진 느낌이었다. 다시 우뚝 선 누레딘의 육봉을 기대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데, 그가 다시 묻는다.

 "어떻게 해달라고?"

 그녀는 그를 한 차례 쏘아본 뒤 남은 옷을 모두 벗었다. 순백색의 건강한 나신이 드러났다. 오랜 운동으로 다져져 더욱 탄탄해 보인다. 누레딘은 침을 꼴깍 삼켰지만, 주도권을 잡기 위해 다시한번 참았다.

 "으흠, 그대도 많이 흥분한 것 같으니, 기분은 별로지만 특별히 나에게 기분좋은 짓을 해도 상관없다."

 한번 더 손가락을 넣어 질을 쑤셔준다.

 "흐아아아아아악!"

 잠시 후.

 "크윽….어서 그대의 보잘 것 없는 물건을 쓰도록 하여라."

 가슴과 하복부 이모저모를 잡아 비틀면서 계속 애무해 주었다.

 "하우우..….그, 그만하고 얼른, 얼른, 자지로 박아줘.."

 그제야 히죽 웃고 그녀의 엉덩이에 바짝 하복부를 밀착시킨다. 마치 맹수를 조련하는 느낌이다.

 -쑤우욱

 단단한 육봉이 한번에 푹 삽입되자, 빅토리아는 마침내 원하던 걸 받아들인듯 눈을 꼭 감고 몸을 떨었다.

 "아흑! 계속, 계속 박아줘. 하아, 하아아앙."

 "훗, 덩치 답지 않게 귀여운 신음소리인데? 이런 음란한 육체를 숨기고 있었구만. 후후, 아래쪽 색깔이 깨끗한 걸로 봐서는 경험이 적어보였는데, 몸이 잘 느끼는 체질인건가?"

 그 비결은 옆에서 열심히 흑인에게 몸을 굴리고 있는 벨라에게서 나왔지만 말이다. 빅토리아는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다는듯 금발을 열심히 흔들어재끼며, 처음 만난 황인의 품에 안겨서 황홀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흐아악! 미쳐, 하아아아앗! 돌이킬 수 없어.. 아앗! 꺄아아아아아아앗!"

 "후우우, 하아아…."

 누레딘의 몽둥이가 빅토리아의 깊은 가슴골 사이에 한번 더 정을 토해낸 뒤, 네 남녀는 옷을 여미고 수련장을 떠나 객실로 향했다. 그곳은 공개된 연무장이었기 때문에, 보통은 그들만 이용한다고 해도 언제든 남이 드나들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객실에서는 파트너를 바꾸어서 섹스가 계속되었다. 이사벨라는 누레딘의 육봉이 에우로파 사람들에게서는 흔히 보기 힘든 단단한 밀도였던지라, 아래쪽이 단단히 채워지는 느낌을 받으며 좋아했다. 북방계의 새하얀 금발머리를 지닌 빅토리아와 먼 남방에서 온 새까만 흑인 오셀로가 뒤엉킨 장면은 몹시 선정적이었다.

 빅토리아는 생전 처음 느껴보는 거대한 흑인의 육봉에 고통스러워하며 죽을 지경이었는데, 곧바로 사태를 파악한 벨라가 진기 인도를 실시해 고통을 쾌락으로 치환시켜 주면서 몇 시간동안 맛이 가버렸다.

 이날의 일탈 이후, 누레딘과 오셀로는 아예 그녀들의 옆 객실로 옮겨왔다. 남녀끼리 같이 수련을 하다가도 어느새 뒤엉켜 섹스를 하기 일쑤였고, 한명이 다른 용무로 외출한 경우라면, 남은 한명이 다른 두 명을 감당해야 했다. 벨라나 빅토리아 중 한명이 빠진 경우라면, 침대 위에 백색, 황색, 흑색이 하나씩 함께 어우러진 자태가 마치 인종 간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듯 했다.

 루테티아는 선진적인 문화와 예술로 유명한 도시였다. 벨라는 루테티아에 머무는 동안, 지루해 하는 빅토리아를 데리고 이곳저곳 명소를 다니며 에우로파 문명의 총화를 보여주었다.

 몽마르트 거리에 가서 전시회를 보고 화가들을 만나 초상화를 그려보았고, 세느강 유람선을 타고 루테티아의 화려한 야경을 만끽했다. 귀족들을 위한 박물관으로 쓰이는 루브르 궁전에 들러 기이한 재화들을 관람하고, 오색빛으로 빛나는 에펠탑을 방문해 수준급 마법사들이 펼치는 마법적 전시와 공연, 시연을 접하기도 했다.

 낙엽이 조금씩 쌓여가던 늦가을의 어느 날, 그녀들은 세느강의 시테섬에 위치한 노트르담 대성당을 방문했다. 신실한 신자는 아니었기 때문에 종교시설이 딱히 끌리지는 않았지만, 성당 자체가 워낙 화려했던터라 후순위로라도 둘러보게 된 것이다.

 병사에게 간단한 검사를 받은 뒤, 성당 내부에 있는 큰 홀에 들어서자 신부복을 입은 사제와 몇몇 신자들이 보였다. 미사 시간은 아니었던 터라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느지막한 오후의 햇빛이 서쪽으로 난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비쳐들어 멋드러진 장미 모양을 만들어 낸다. 벨라는 절로 감탄사를 내뱉으며 성당 내부를 관람했다. 종교적 내용이 담긴 여러 명화와 동상이 홀 곳곳에 비치되어 있었다.

 '최후의 심판' 부조가 새겨진 문간을 지나가 더욱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는데, 오른편에 위치한 순백색 동상이 눈에 띄었다.

 -Joanna Arcencis(아르크의 요안나)

 성녀 잔 다르크의 동상이었다. 동상의 뒤쪽 벽에는 그녀가 승리로 이끈 오를레앙 전투를 그린 유채화가 걸려 있었다. 웅장하면서 신성한 느낌이 주변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명화 속에서 잔 다르크는 순백색 갑옷을 입은 채, 밀려드는 적을 향해 성검을 겨누고 있었으며, 그녀의 주변은 새하얀 섬광으로 인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부르고뉴의 대공은 겁에 질린 채 도망치는 모습으로 묘사되었고, 잉글랜드의 왕자는 그녀와 맞서 싸우다 말에서 떨어져 신음하고 있는 모습이다. 훗날 샤를 7세가 되는 왕세자는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오를레앙의 성벽에 올라서있다.

 벨라는 잔 다르크가 생전에 지녔던 기억을 이어받았던 터라, 한동안 상념에 잠겨 그림을 바라보았다. 몇 분째 그러고 있었을까, 그녀의 뒤로 그림자 하나가 드리워졌다.

 "성녀는 시대를 잘못 타고난 불행한 영웅이었지."

 조용하면서도 또렷이 들려오는 목소리에 벨라가 뒤를 돌아보자, 하얗게 센 머리에 멋드러진 콧수염과 매부리코를 지닌 노인이 동상 앞에 서있었다. 그는 작은 두건이 달린 붉은색 망토를 두르고 있었는데, 인자한 웃음을 지으면서도 눈빛은 날카로운 게 마치 블라드 공작을 연상케 했다. 곁에는 시종으로 보이는 이 한 명이 공손히 그를 모시고 있었다.

 '성당의 신부인가?'

 나이로 보나 복장으로 보나 적어도 주교급 정도는 되어 보였기에 벨라는 고개를 숙여 성호를 긋고 그를 응시했다. 노트르담은 대성당급이었기 때문에 어쩌면 교구를 관장하는 대주교(archbishop)일 수도 있었다. 

 "내 정도 연배에선 그녀를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지. 홀로 하얀 백마를 탄 채 전장을 주유하며 수십 명의 적을 하느님께 돌려보내던 그 모습은 하늘에서 내려온 고결한 천사 그 자체였네."

 벨라가 흥미를 보이는듯 하자 노신부는 그림을 가리키며 말을 이어갔다.

 "그때 나는 사제 신분으로 전장에 동행해 병사들을 치료하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녀의 환한 광채에 비하면 내가 지닌 신성력 따위는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를 알 수 있었다네."

 교회에서 비록 잔 다르크를 성녀로 복권시켰지만, 불과 수십년 전에 그녀를 이단으로 몰아 화형시킨 것도 교회였다. 따라서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아직까지 그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을 꺼렸는데, 이 신부는 조금 다른 것 같았다. 잔 다르크를 곁에서 직접 접해보았기 때문일까?

 벨라가 지닌 성녀의 기억은 아마 성녀의 곁을 잠깐 스쳐갔을 노사제의 젊은 시절을 기억할만큼 세세하지는 않았다. 다만 확실한 건 저 신부가 자신의 의견을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지위를 지녔을 거라는 점이다.

 벨라가 계속 듣기만 했는데도, 신부는 조금도 머쓱해 하지 않고 계속 말했다.

 "하지만 오랜 전쟁이 끝날 무렵, 누구보다 빛날 것 같았던 성녀는 비열한 음모에 의해 공허히 회색 재로 사라져 버렸다네. 공식적인 마녀재판에 의해 처형된 마지막 희생양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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