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49)

 "흐흐, 말이 길었군. 우리를 알고 있다면 우리가 얼마나 무서운지도 잘 알겠지. 네년들이 죽인 암살자들 중에는 우리 형제들도 몇 명 끼어있으니, 이제 와서 빌어봤자 소용없다. 신선한 목들을 잘라내서 목걸이로 만들어 기념해주마."

 말이 끝남과 동시에 조각상들이 흩어진 잔해 곳곳에서 어쌔신들이 솟아나 벨라 일행에게 다가왔다. 벨라는 빅토리아로부터 리슐리외를 넘겨 받은 뒤, 퀸의 능력을 극한까지 발휘하여 이동하기 시작했다. 바깥으로 빠져나가봤자 인근 1km 이상은 어쌔신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물론 못 벗어날 건 없었지만, 이들이 두고두고 쫓아와 귀찮은 위협을 해대겠지. 이 자리에서 한번에 상대해 전멸시키는 게 최선의 전략이었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가시공작이 남긴 공략법이 있었다.

 "암살자의 악몽(Hassassin Nightmare)."

 벨라는 나지막한 소리로 기술명을 중얼거리며 순도 높은 혈마력을 뽑아 황혼검에 불어넣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붉은 빛으로 변함과 동시에, 트와일라잇에 검기도, 마나도 아닌 독특한 새빨간 기운이 촘촘이 맺히기 시작했다. 거친 암살자들을 상대하기에 잔 다르크의 기운은 너무나 온화하고 성스럽다. 이들을 상대로는 블라드 공작이 남겨준 저주받은 유산, 데모나하트의 마기를 유감없이 발휘해도 될 것 같았다.

 -와지직 와지지직

 벨라의 근처까지 접근했던 어쌔신 한 명이 별안간 사방에서 느껴지는 거대한 압력에 몸을 가누지 못하고 비명조차 못 지른 채, 벨라가 비스듬히 늘어뜨린 황혼검 사이로 끌려왔다.

 그의 형체가 검 앞에 다가왔을 때, 이미 그것은 인간의 형체라고 보기 어려웠다. 몸뚱이가 으스러진 채 압축되어 십분의 일의 크기로 줄어들어 액체인지 고체인지 모를 기묘한 상태가 되어 있었고, 그 고깃덩어리는 트와일라잇 주변을 감도는 새빨간 안개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와 동시에 안개 속에 맺힌 붉은 이슬의 농도가 더욱 짙어졌다.

 좌중의 인물들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조차 깨닫지 못한 사이, 순식간에 두 명의 어쌔신이 비슷한 과정으로 소멸되었다.

 "설마… 그 기술은…….."

 경악에 찬 누군가의 말이 미처 끝나기도 전에, 벨라는 진한 미소를 지은 채 충혈된 눈을 부릅 뜨며 황혼검을 나비가 날아가듯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붉은빛 안개 이슬 수십 방울이 벨라의 좌우상하 팔방으로 느릿느릿 퍼져 나갔다. 마치 생명체들이 한군데에 모여있다가 동시에 폭발하면서 피가 흩뿌려지는 듯한 장면이었다.

 벨라의 곁을 맴돌며 일격을 준비하던 하사신파 암살대의 대장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보았다는듯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불행 중 다행이랄까, 오랫동안 다져진 그의 몸은 그의 생각보다는 훨씬 빨리 반응했다. 그는 사력을 다해 그녀의 곁에서 멀어지기 위해 몸을 날렸다.

 하지만 단 한 방울은 애초부터 그를 겨냥한 것이었기에 피할 수 없었다. 그는 성당 저편으로 나가 떨어지면서 왼팔을 재빨리 베어냈다. 그 베어냄과 동시에 왼팔이 강력한 산(散) 혹은 부식액에라도 절여진듯 녹아내리며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성당바닥으로 사라져 버렸다.

 "왈라키아의 핏빛 악몽!"

 쇠를 긁는듯한 목소리가 두려움으로 인해 확연히 벌벌 떨리면서 목구멍을 비집고 나왔다. 마치 해리포터 세계에서 선량한 마법사들이 볼드모트의 이름을 발음하는 것과 같은 모양새였다.

 "어찌, 어찌 이곳에 그 괴, 괴물의 악몽이…."

 벨라의 주변을 맹수처럼 맴돌던 하사신 교도 십수 명이 세상에 존재했다는 흔적도 남기지 못한 채 녹아내렸다. 피 한 방울에 인간 한 명 씩 정확한 계산법이었다. 한두 번 피했다고 해도, 악몽은 자신이 증오하는 생명체의 흔적을 끝까지 쫓아가 그를 기어코 지옥으로 초대하고야 말았다.

 벨라의 근처 십수미터에 있던 암살자들 중 오로지 신체를 절단해 버린 하사신 대장만이 유일한 생존자였다. 담이 큰 리슐리외 공작조차 눈을 비비며 사방을 둘러보다가 벨라를 올려다 보았다.   한편 빅토리아가 있는 쪽에서는 또다른 상황으로 인한 침묵이 이어졌다.

 "에? 소드마스터(Sword Master)?!"

 짙푸른 남색 검강이 성당의 천장과 바닥 근처를 바이탈 사인(Vital sign)처럼 넘나들며 기사들과 어쌔신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에우로파 대륙에서도 극히 희귀하다는 최고 경지의 검사가 왜 하필 이곳에서 그들과 마주했다는 말인가?

 아토스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바이킹족으로 보였기에 힘이 강할 거란 건 주지하고 경계하며 상대했지만, 고작 익스퍼트급에 불과한 근위기사들이 검강을 줄기줄기 뿜어대는 적을 상대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저런 외양의 고수는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가 망연자실해 하는데, 리슐리외 공작이 벨라의 품을 벗어나 그녀에게 말했다.

 "우선 본공을 위해 이렇게 힘을 써주어 고맙기 그지없네. 그대가 세운 업적을 공식적으로 공표할 수는 없겠지만, 두고두고 만족할 수 있는 수준까지 사례하도록 하겠네."

 이사벨라의 눈은 흉포한 포식자의 것에서 벗어나 평소의 푸른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공작은 침을 한번 꿀꺽 삼켰지만, 차분하면서도 강한 힘이 들어있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그 역시 범상치 않은 인물이었다.

 "이 정도면 저들도 자신의 한계를 알았을 테니 보내줄 수 있겠는가? 마음 같아선 여기서 다 죽이고 싶네만, 그렇게 했다가는 균형이 급속하게 무너지면서 왕국에 큰 혼란이 일어날 걸세.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유리하지 않은 일이고."

 벨라는 순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단서를 달았다.

 "예, 영명하신 추기경 저하. 단, 암살교단의 어쌔신들은 소녀에게 맡겨주실 수 있겠습니까? 저들이 무슨 청부를 받고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이 나라에 크나큰 해를 끼칠 자들입니다."

 리슐리외의 허락을 득한 뒤, 벨라는 망연히 서있는 하사신 대장에게 다가갔다.

 "아타락시아 세계에서 힘이 부족한 자는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고 납작 엎드려 살아야 한다. 어중간하게 자만하는 자들에겐 돌이킬 수 없는 대가가 돌아갈지어니. 너도 본녀의 힘을 들어보았다면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일지도 알겠지."

 전투 전에 그녀가 들었던 말을 똑같이 되돌려 주었다. 푸른 눈가에서 살짝 붉은 빛이 감돌자, 대장은 움찔 떨었다가 전력을 다해 그녀의 정면으로 달려 들었다. 벨라의 손에서 뻗어나온 붉은색 기운이 그를 밀어내면서, 그의 신형이 성당의 창문 바깥으로 튕겨져 나갔다.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와장창 깨지면서 유리가루가 흩날린다. 그녀의 힘을 반탄력으로 이용해 도망치는 모양새였다.

 벨라는 성당 안을 빅토리아에게 맡긴 뒤, 땅에서 두 발을 떼며 훌쩍 솟아올라 깨진 창문 밖으로 나왔다. 대장은 어느새 저편으로 멀어지고 있었고, 바깥을 장악하고 있던 어새신들이 요소요소에 배치되어 그녀를 맞이하려 했다. 수백 미터를 나는듯이 달려 숲까지 도망쳐 온 대장이 어느 정도 마음을 억누르고 대처법을 생각해 보려는데, 귓가에서 뜨거운 입김이 느껴진다.

 "까꿍! 내가 왜 널 속는 척 내보냈을까?"

 다시 한번 도망치려 했지만 몸이 무언가에 꽉 잡혀 움직이지 않는다. 교태로운 목소리에 벌벌 떨면서 옆을 돌아보려는데 악몽과 같은 선홍색 눈빛이 보인다. 그리고 그가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뒤쪽 목덜미에서 통증이 느껴지며 날카롭고 광폭한 기운이 그의 신체를 장악하기 시작한다.

 "끄아아아아아악!"

 일이분 가까이 발버둥이 이어졌지만 기척을 차단한 탓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어쌔신들은 성당 근처에서 벨라의 흔적을 찾아 정탐하고 있었을 뿐, 후방의 수풀 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슴푸레 깔려오는 저녁의 어둠 속에서 한 차례 그로테스크한 장면이 지나갔다. 조금 전까지 괴로움에 몸부림치던 어쌔신 대장은 퀸의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이름은?"

 "라시드 알딘(Rashid-al-Din)입니다."

 "그래, 라시드. 수하들을 데리고 안가로 빠져나가 나의 명을 기다려라."

 "예! 삼가 하명을 받듭니다."

 조금 전까지 적대하던 관계라고는 전혀 예상할 수 없을 정도로 대화가 딱딱 맞아 떨어진다. 어쌔신의 대장 라시드는 충성스러운 신하와 같이 부복한 뒤, 그녀의 명을 받들어 암살자들을 데리고 사라졌다.

 뱀파이어가 된 탓에 그의 움직임은 이전보다 더욱 빨라지고 은밀해졌다. 벨라는 뱀파이어가 얼마나 고통스러우며 저주받은 존재인지 알고 있었지만, 하사신들과 같이 잔악한 인간 말종들에게까지 자신의 힘을 아끼고 싶지는 않았다.

 근위대는 인원의 삼분의 일 가까운 기사들을 잃은 채 이를 갈면서 패퇴했다. 아마 잠시 후면 그들이 보낸 특수부대들이 도착해 성당에 널린 시신과 잔해를 비밀리에 수습할 것이다. 벨라와 빅토리아는 리슐리외를 따라 그의 저택으로 향했다. 이제 미래의 일을 논의해야 할 차례였다.

 한달 후, 루테티아 시의 중심부에 위치한 리슐리외 추기경의 저택.

 성직자답지 않게 화려한 공작의 집무실에서는 한창 뜨거운 열기가 번지고 있었다. 부드러운 원목 책상 위에서는 탐스러운 진홍빛 머리의 미녀가 검은색 스커트를 걷어올린 반라의 모습으로 엎드려 뽀얀 엉덩이를 내밀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뻘은 넘어보이고, 조혼 풍습이 잦은 지방에서는 할아버지 뻘로도 볼 수 있는 장년인이 사제복을 입고 그녀의 은밀한 부위를 핥아대고 있었다. 적발 미녀의 음란한 구멍은 이미 흥분했는지 애액이 줄줄 새어나와 책상 위로 흐른다.

 책상 아래 쪽에서는 또다른 젊은 여인이 엎드린 채 엉덩이를 뒤로 빼내어 늙은 공작의 하물을 받아내고 있다. 50대 후반의 나이지만 리슐리외 공작의 하물은 사제답지 않게 튼실하면서 노련한 편이었다. 사생아가 많다는 소문이 사실인가 보다. 책상 밑에서 공작에게 깔려 있건만 유달리 새하얀 피부와 요정처럼 빛나는 길다란 금발 머리는 감춰지지 않는다.

 이사벨라는 일찍이 리슐리외가 추기경 답지 않게 음흉하고 세속적인 면이 많음을 파악했다. 카트린느 왕비의 정부(情夫)라는 은밀한 소문도 사실이었다. 노트르담 대성당에서의 은밀했던 사건 이후, 그녀들은 그와 더욱 은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그의 곁에 머물게 되었다. 그녀들은 사례비와 더불어 상당한 급료를 지불받게 되었고, 언제든지 떠날 수 있다는 조건까지 인정받았다. 재상의 곁에 머물고 가끔씩 그의 일을 처리해주며 접하는 고급 정보들은 매우 매력적이었다.

 아직 프로방스왕국이 로사링거연합과, 신성제국이 바이에른왕국과 본격적인 교전을 나누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대략 언제쯤 그러한 균형이 깨질지에 대해서도 예측할 수 있었다. 지금은 국경지대에 침략이 가능한 전력을 증강시키면서, 북부와 동부 각지에서 최대한 많은 국가들을 동맹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외교전이 한창인 시기였다.

 프로방스 국왕의 프랑수아 1세는 특유의 부국강병책을 실시해 귀족들의 군대를 징집해 전쟁을 벌이려 하고 있었고, 카트린느 왕비와 리슐리외 재상은 대귀족들과 연합해 어떻게든 국왕의 세력을 깎아 내리고 적국에 유리한 국면을 만들려 하고 있었다.

 일종의 매국노로 보일 수도 있었지만, 교권주의, 세속주의, 절대왕권, 봉건주의, 외교정책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복잡한 사정들이 얽혀 있었다. 어느 편이든 자신들의 이익이 곧 왕국의 이익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자들이 득시글거렸다.

 이사벨라는 리슐리외가 맡긴 상당히 더러운 일들을 훌륭하게 처리해 주었는데, 그 방식은 대체로 그녀 휘하가 된 하사신파의 암살자단을 이용한 것이었다. 덕분에 근위대에서는 밀레디라는 사악한 마녀를 의문의 바이킹족 소드마스터를 뛰어넘는 경계대상으로 삼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사벨라나 빅토리아의 흔적을 쉽게 찾을 수 없었는데, 가끔씩 리슐리외의 사저를 드나들며 은밀한 임무를 수행한다는 것 말고는 밝혀진 행적이 없었다. 그것은 바로 그녀들이 그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곳에서 위장된 일상생활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바로 리슐리외가 비밀리에 관리하는 번화가의 창관(娼館)이었다. 이사벨라는 황당해하는 공작 앞에서 자청해서 빅토리아를 끌고가 그곳에서 생활하였는데, 때로는 고급 창녀로 단장하여 배불뚝이 귀족들을 접대했으며 때로는 싸구려 창녀로 분장하여 하류층 인생들의 성욕을 풀어주었다.

 꽤나 인기가 좋은 창관이었기 때문에 고위귀족들은 물론이고 심지어 그녀가 만나봤던 근위대의 국왕파 인사들까지 들락거렸다. 심지어 대성당의 혈전에서 싸웠던 아토스와 포르토스마저 그곳을 방문해 벨라와 성교를 나누었다. 벨라는 심법을 통해 머리와 눈의 색깔을 자유롭게 바꿀 수 있었고, 현대 수준의 화장을 통해 인상마저 조절해서, 드래곤만 사용할 수 있다는 폴리모프 마법 수준에 가깝게 자신의 모습을 변화시켰다.

 퀸의 신기한 능력은 체형과 신체부위마저 섬세한 조절이 가능했다. 아마 그녀가 프로방스를 공개적인 방식으로 맘껏 농락해도, 모습을 바꾸고 도망친다면 상대편에서는 영원히 그녀를 잡지 못할 것이다.

 "이 엉덩이만 큰 멍청한 년!"

 -짜아아아악

 오늘도 오렌지색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한 빈유의 주근깨 미녀가 사창가의 어느 분위기 좋은 룸에서 박히고 있다. 변장을 마친 이사벨라 영애다. 그녀와는 악연인 근위대의 부단장 급 기사 포르토스였는데, 푸짐한 풍채에 근육이 가득한 몸을 지닌데다가 성격도 성급하고 사나워 여인을 거칠게 다루었다.

 -퍼억 퍼억 쩌억 쩌억

 다른 창녀들은 그를 상대했다가는 그날 영업에 지장을 받을 확률이 높아 기피하곤 했지만, 벨라로서는 오히려 그러한 부분을 후환없이 모두 쾌락으로 받아들이면서 그의 스타일을 마음에 들어했다. 더군다나 그는 입도 싼 편이어서 조심성 없이 중요한 정보들을 흘리고 다녀 그녀에게 쏠쏠한 부수입을 챙겨주고 있었다.

 "흥아앗! 좋아요! 흐에에에에!"

 사정감을 느끼고 빼내진 성기에서 뜨끈한 액체가 뿜어져 나오며 오렌지빛 머리칼 위에 후두둑 떨어진다.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방에서는 남색 머리칼의 장신 미녀가 몸을 굴리고 있다. 흉폭한 전사의 핏줄을 타고 난 북방의 지배자, 빅토리아다. 바이킹의 특징인 백금발의 머리가 눈에 띄는 탓에 눈 색깔과 비슷하게 염색한 상태였다. 체형을 자유롭게 변화시킬 수 없는 그녀는 정체를 들키지 않기 위해, 고위 귀족들보다는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는 한량들이나 양아치들을 상대로 몸을 팔았다.

 초창기에는 이러한 행동에 다소 자존심이 상했는지 회의를 품기도 했지만, 이사벨라를 따라 몇번 손님을 받다 보니 금방 적응해 버렸다. 아직 경험삼아 억지로 하는 척 나오고 있긴 하지만, 내심으로는 그냥 몸을 놀리고 싶은 날에 쾌락도 풀면서 수입까지 얻는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다른 창기들처럼 매일매일 영원히 붙잡혀 살아야 되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돈이 부족한 하층민들은 하룻밤동안 한 명의 창녀를 사기 위해 두세 명, 많게는 네다섯 명이서 돈을 모아 오는 경우들도 많았다. 그런 경우에 간혹 돈이 부족한 창녀들은 약간의 웃돈을 받고 그들을 정해진 시간동안만 상대하곤 했는데, 체력이 강한 빅토리아에게 자연스레 일감이 몰렸다.

 지금도 빅토리아는 거친 남자들 틈에 파묻혀 구멍들을 모두 꿰뚫린 채 눈이 돌아간 상태다. 다섯 명이나 되는 평민 남성들이 어떻게든 그녀의 몸에 올라타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녀의 뇌릿 속에 성교의 쾌락을 새겨주고 있다.

 그녀의 육체는 이사벨라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질과 항문이 개방, 개발된 상황이었고, 딥쓰로우에 스팽킹까지 이어지는 격렬한 플레이까지 무리없이 받아들였다. 이토록 짧은 시간에 이만큼 타락한 경우는 아마 에우로파 대륙 전역을 살펴봐도 드물듯 싶다.

 소드마스터의 질에 어떤 특별한 점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한번 빅토리아를 따먹은 평민들은 무리를 해서라도 빠른 시간 안에 돈을 모아 다시 그녀를 찾고는 했다. 섹스를 잘 모르는듯 고고한 태도를 뽐내면서도 은근히 즐기는듯한 표정이 남심을 미치도록 자극했다. 그녀가 창녀생활을 했던 한두 달 사이에, 가산을 탕진하고 파산한 남자들이 꽤 많았다고 한다.

 하루 일이 끝나면, 사창가를 관리하는 최종 단계의 포주에게 가서 일당을 받았는데, 놀랍게도 그의 정체는 A급 용병 테스트에서 만났던 애꾸눈 용병 로슈포르였다. 그는 본디 백작의 직위를 지니고 있는 귀족으로 리슐리외 추기경의 비밀스런 심복이었다.

 A급 용병의 타이틀을 지니고 정체를 감춘 채 배후에서 이것저것 더러운 사건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도무지 귀족이 할 수 없는 일들을 벌이는 걸로 보아, 정상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았다.

 로슈포르는 시험장에서 본 이사벨라의 인상이 깊었는지 그녀를 기억하고 있어서 상당히 놀라워 했다. 물론 지금에 와서는, 그와도 육체를 겹친 게 한두 번이 아닌 상황이니 서로를 인상깊게 기억하는 게 당연하다.

 연말까지 이어진 헤픈 생활은 그녀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고 부수입을 얻게 해준 것 외에도 여러 가지 중요한 성과를 남겼다.

 리슐리외 추기경 및 왕실의 중요 일원들과 모종의 관계를 쌓고 프로방스의 국력을 갉아먹은 것, 프로방스의 심장부 곳곳에 피로 이어진 충성스런 심복을 남기고 은밀한 세력을 보유하게 된 것, 누레딘과 오셀로라는 신뢰가능한 동료를 만든 것, 그리고 프로방스와 아스토리아 양측이 수집한 대륙의 정세를 취합해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시각을 가지게 된 것 등이다.

 그렇게 소소한 사건들 속에서 겨울이 깊어져 가며, 새해가 밝아왔다.

 성력 1381년. 이사벨라의 나이는 스물아홉, 빅토리아의 나이는 서른셋이 되었다.

 때맞춰 신성제국의 사신이 루테티아를 방문했다. 사신단의 정사(正使)는 제국 황제 카를 6세의 조카인 프리드리히 후작이었다.

 "하아아아아암~"

 좁은 창문으로 조금씩 태양빛이 새어들어오는 게 아침이 밝았나 보다.

 넓은 분홍색 침대에서 노란색 이불을 몸에 돌돌 말고 귀여운 자세로 자던 미녀가 눈을 떴다. 허리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사파이어빛 머리카락 사이로 흑갈색 눈이 깜빡인다. 이불 속의 몸은 물론 깨끗한 알몸이었다.

 "아우~~ 찌뿌둥해!!! 이짓도 오래는 못할 짓이네."

 어젯밤에 그녀의 몸을 정복한 행운아들은 루테티아에서도 유명한 대부호 네 명이었다. 접대자리에서 다른 창녀 셋과 함께 불려 나갔지만 다들 벨라를 점찍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남아 그들과 짐승처럼 어울려야 했던 건 벨라 뿐이었다.

  

 '아마 어릴 때 검술을 배워서 용병이 되지 않았더라면 평생 이렇게 살아야 했겠지. 으으. 끔직해라.'

 시종일관 차분하고 얌전하게 그들을 애무해주며 갈고 닦은 기술을 정성스레 쏟아부어 즐거운 섹스판을 벌였었다. 어젯밤에 했던 성행위를 통해 쾌락은 여전히 느낄 수 있었지만, 예전과 같은 정신적인 고양감은 점점 부족해지면서 재미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녀에게 성적 쾌락은 마치 마약과 같아서 항상 좀더 강렬한 쾌락을 필요로 했다. 전장으로 떠나야 할 때가 돌아온 것일까?

 빅토리아는 이제 자존심이 밑바닥까지 떨어져서 흠뻑 섹스에 빠져있었는데, 요즘은 스팽킹에 흠뻑 빠져 있었다. 특히 엉덩이를 맞는 걸 좋아했는데 평소에도  벨라가 손바닥이나 겁집으로 빅토리아의 탱탱한 엉덩이를 때리며 다그치거나 놀리곤 했다.. 정말로 이대로 가만히 놔뒀다가는 한 십년은 여기서 열심히 몸을 팔며 다닐 것 같았다. 어제도 화장실 가던 중에 문틈으로 슬쩍 보니까, 기묘한 흥분감이 서린 얼굴로 별 거지 같은 놈들에게 둘러쌓여 박히는건 물론 이요. 채찍으로 엉덩이까지 맞아가며 밤새도록 희롱당하고 있었다.

  

 여가시간에 검술연습은 꾸준히 하고 있는 모양이지만, 기껏 다양한 세상 경험을 시켜주겠다고 데려와서 여기에 던져두고 가는 건 너무 미안한 일이다. 이제 이번 달이 지나기 전에 대륙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인 전쟁이 일어나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 되었다. 빅토리아와 함께 말을 타고 전장을 종횡무진할 일이 상상하니 가슴이 콩닥콩닥 뛴다.

 그전에 오늘은 중요한 만남이 예정되어 있다. 이불을 박차고 벌떡 일어나, 남자들의 정액과 타액으로 쩔어있는 침구를 하나하나 외피를 벗겨 내어다 놓았다. 청결히 샤워를 하면서 사내의 흔적을 씻어낸 뒤, 가운을 걸치고 앉은 채 심법을 운용한다. 머리색은 보라색에 가까운 자줏빛으로 변했고 눈동자는 초롱초롱한 흑요색으로 바뀌었다.

 화장을 적당히 찍어바른 뒤, 귀족층이 입을만한 화려한 은색 스커트를 빼입고 금색 망토를 걸친 채 왕궁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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