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에 테레지아 황녀의 얼굴은 고통과 수치심 그 자체였다.
"흐음, 한쪽이 너무 고통스러워 하는데? 이거 일반적인 애무들로는 안 되겠군."
벨라는 자신의 손을 테레지아의 몸에 갖다댄 채 두 가지 기운을 동시에 운용하기 시작했다.
-룰루~~
"프리드리히! 나 한동안 건드리지 말고 계속 황녀 누님만 상대해줘. 철혈을 상대할 때는 무조건 때려 부수기 보다는, 뜨겁게 푹 녹여보는 게 어떨까 싶어서."
'너무 과하게 했다가는 빅토리아처럼 되어버릴 수 있으니, 적당히, 딱 적당히 해줄게. 오늘의 경험이 좋은 기억으로 남도록.'
테레지아는 다가오는 벨라의 기운을 느끼며 공포스러운 눈으로 고개를 저었지만, 뒤쪽에서 느껴지는 고통에 신음하며 무력히 받아들이는 수 밖에 없었다.
벨라는 운공과 동시에 그녀의 피를 모은 혈정(血精)을 테레지아의 입 속으로 흘려 넣었다.
"테레지아. 너는 극악무도한 패륜을 저질렀다. 스스로 원해서 했든, 누군가에게 조종을 당했든, 당장 이 자리에서 온몸이 산산조각 난 채 영혼마저 소멸당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지."
테레지아는 원망과 반항기로 가득 찬 눈빛을 보였지만, 벨라가 흉포한 기세를 개방하며 모처럼 위엄을 내뿜자, 사시나무 떨듯이 몸을 움츠렸다.
"지금의 너는 그저 불가피한 구속력에 굴복하고 있을 뿐이지만, 이제 나의 피를 마셨으니 곧 인간의 감정이 깨어날 것이고, 머지 않아 모든 것을 참회할 것임을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히 나와 내 충복을 공격했음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보존시켜 나의 권속으로 만든 것이다."
벨라가 그녀의 몸을 어루만지자 황녀의 단단하던 눈이 조금씩 흔들린다.
"나는 조그마한 힘으로도 너의 감정과 감각을 마음껏 조종할 수 있다. 예컨대 이런 식이지."
"하으읏!"
벨라의 손짓 한방에 황녀는 다리에 힘이 풀린듯 앞으로 엎어지며 처음으로 교성을 내뱉었다. 뜨거운 기운이 온몸에서 치밀어 오르자, 두 손을 이용해 풍만한 가슴과 여전히 박히고 있는 아래쪽 근처를 주무르며 입김을 내뿜는다. 마치 최음제라도 마신 것 같다.
-딱!
벨라의 손가락이 움직이면서 다시 한번 변화가 찾아왔다. 흥분은 여전히 일정 수준 남아있었지만, 이성도 유지되고 있는 수준이었다. 황녀의 보라색 안구에는 어느새 눈물이 고이고 있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황녀도, 그리고 벨라도 알고 있었다. 어느 정도 인간의 감정이 돌아왔는지, 수치심과 분함에 더해 죄책감도 깃들기 시작한다. 냉혈한 뱀파이어에게 한꺼번에 감정과 감각이 돌아오는 느낌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
"그대는 이제 나의 영원한 권속(眷屬)이 되었다. 내가 너의 아픔과 슬픔을 모두 가져갈 것이며, 원죄를 감당할 것이다."
황녀는 여전히 냉혹하고 오만한 성격이었으며, 타고난 인성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수 년간 그녀를 얽어매던 굴레가 끊어지고 온갖 감정과 감각이 밀려드는 파도 속에 휩싸여 엄청난 정신적 혼란에 처해 있었다. 이때 그녀와 링크를 연결하고 따뜻하게 보듬어 주는 벨라에게만은 진심으로 굴복하고 주인으로 따르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다.
"네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아. 더 이상 극단의 극단까지 너를 몰아붙이고 학대하는 일은 없을거야. 내가 원한다면 너를 그저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조종할 수 있겠지만, 그건 나도, 너도 원하는 바가 아니잖아. 나는 내 자유를 중요시여기는만큼 남의 자유의지 또한 존중해."
벨라의 말은 테레지아의 가슴 깊숙이 파고 들며 새겨진다. 어쩌면 그 말 또한 상대를 조종하려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벨라는 진심으로 자신의 신념을 믿고 있었으며, 테레지아는 자신의 새로운 주인이 내뿜는 위엄과 자애에 감화되었다.
"평소처럼 난폭하게 행동해도 좋아. 진실하게 싫은 느낌이 든다면 널 속박하지 않을게. 다만 그 전까지는 나와 같이 길을 걸으며 같은 곳을 바라보지 않을래?"
테레지아는 몽롱한 눈빛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때마침 뒤쪽에서 프리드리히가 벨라의 지시에 따라 그녀의 질내에 씨앗들을 사정한다.
"이제 네가 죽이려 했던 사촌동생, 이제 너의 유일한 혈족이 될 자의 품에 안겨 위로받고, 또한 위로하기를. 여왕 전하가 준비하신 만찬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어."
-끄덕끄덕
그날 테레지아 황녀는 자신이 죽이려 했던 사촌동생의 품에 안겨 다섯 번에 달하는 질내사정을 받아야만 했다. 전장을 전전하며 남성에 가까운 삶을 살았던 그녀가 처음으로 섹스를 체험하고 여성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몇 시간 후, 엘리제 궁에서 즉위식 기념 저녁만찬이 열렸다. 온갖 종류의 육류와 해산물, 채소, 디저트가 다양한 방식으로 서빙되어 테이블에 올려진다. 시종들이 테이블 곳곳을 돌아다니며 손님의 취향에 따라 와인이나 샴페인, 칵테일, 과실주스를 채워준다.
테레지아 황녀와 프리드리히 후작은 같은 테이블에서 화려한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 황녀는 몇 년간 굳어있었던 입맛이 돌아온 것에 탄성을 내지르면서, 누구보다도 맛있게 음식을 섭취하는 중이다. 벨라는 이번 만찬동안 시험삼아 달타냥에게 섭정 각하의 보좌를 맡기고, 신성제국 황족들을 파악 및 접대한다는 명목으로 합석한 상태다.
그런데 두 황족의 사이는 몇 시간 전부터 급격히 어색해진 상황이었다. 테레지아는 벨라에게는 비교적 공손한 태도를 유지했지만, 자신의 사촌동생을 매서운 눈빛으로 흘겨보고 있었다. 프리드리히는 그녀와 눈을 맞추지 못하고 우물쭈물 하는 중이다.
테레지아가 애피타이저를 다섯 접시 째 먹다가 아스파라거스 하나를 그릇 옆에 흘리자, 프리드리히가 재빨리 휴지를 건네준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손을 탁 쳐버리고 자신이 직접 다른 휴지를 꺼내어 테이블을 닦았다. 잔뜩 날이선 암코양이 같았다.
이번에는 입술에 홀렌다이즈 소스가 가득 묻어있길래, 벨라가 물휴지 한장을 건네주자, 감사를 표하며 공손히 받아서 입가를 닦는다. 프리드리히의 고개가 더욱 밑으로 숙여진다.
"에휴~"
벨라가 더 이상 이런 종류의 답답함을 참지 못하겠어서 한마디 하려는데, 때마침 메인메뉴의 서빙 전에 예정되어 있던 프로방스 왕립 오케스트라의 연주회가 시작되었다. 프로방스에서 제대로 된 정찬은 각종 형식과 예절을 갖춰 무척 느릿느릿 진행되기 때문에, 적어도 2~30분은 있어야지 첫 메인요리가 나올 것이다.
"잘 됐네. 따라 나와."
그 틈을 타서 벨라는 두 황족을 복도 저편에 위치한 조용한 화장실로 끌고 갔다. 주변의 문을 모 두 닫아 기척을 차단한 뒤, 의아하게 바라보는 이들에게 조용조용히 말한다.
"긴말 안할 게. 속옷만 내리고 섹스해."
"?!!!!"
적나라한 명령에 두 황족이 경악한 표정을 짓는데, 벨라가 내뿜는 기운이 그들을 잠식했다. 남녀는 순식간에 성욕이 끓어오르며 음란한 표정이 되어버린다.
"아아아…"
강도가 심해지자, 결국 테레지아는 허겁지겁 자신의 복잡한 복장을 풀 부분만 풀면서 최대한 빠르게 속옷을 끌어내리고, 엉덩이를 내밀어 박음직스러운 자세를 취했다. 프리드리히는 이미 예복 바지를 내린 채 끝까지 발기가 완료된 육봉을 꺼낸 상태였고, 이내 남녀는 성기를 결합시키면서 동시에 진득한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윽, 하아아앙…"
"크으으윽."
이미 테레지아의 질 안은 충분히 젖어있는 상태여서 피스톤운동이 수월하게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최대한 교성을 참았지만, 절정에 다다를수록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된다.
"하윽! 하아악! 하앙! 아앙! 하앗!"
"프리드리히, 알지? 친해지려면 질내사정해야 하는 거."
"크윽, 누나, 미안해요. 지금 나올 것 같아요."
"하으으으으으윽! 개 같은 자식! 마음대로 해! 아아아아앗!"
막간의 섹스는 적어도 성적으로는 충분한 만족감을 선사한 채 끝났다. 한바탕 쾌락에 빠졌던 사촌남매는 절정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떨어져 각자의 옷매무새를 정리하며 잘 하지 않았냐는 눈빛으로 벨라를 바라본다.
-짝짝짝
"훌륭했어! 이제 가자. 쌓인 앙금이 약간은 풀어졌겠지? 테이블에 돌아갔을 때 여전히 어색하긴 하겠지만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지 않니?"
벨라의 질문에, 순진한 프리드리히는 그렇다는 대답을 하고, 테레지아도 살짝 고개를 끄덕이다가 그녀의 말에서 무언가를 느꼈는지 얼굴이 새하얘진다.
벨라는 알겠다는듯이 끄덕이며 사악한 미소를 짓는다.
"에이~ 여전히 어색하면 안 돼지! 너희들이야 매번 이런 귀한 음식들을 먹고 자랐겠지만, 나는 오랜만에 먹는건데, 편안한 마음으로 좀 먹고 싶다고. 완벽히 앙금을 풀기 위해 한판만 더 뜨자."
그제야 말뜻을 이해한 프리드리히의 얼굴도 새하얘졌지만, 다시금 전신에서 성욕이 솟아나며 발동이 걸려버린다.
약 십오분 후. 벨라의 예민한 청각에, 만찬장에서 오케스트라의 단장이 마지막으로 앙코르 연주를 시작한다며 감사의 인사를 표하는 게 들려왔다.
"학! 하악! 하윽! 하악! 좋아! 좋아아!"
"크윽, 으으, 최고에요, 흐으, 누님!"
이제 프리드리히와 테레지아는 완전히 눈치볼 것 없이 섹스를 즐기는 중이다. 방금 그들이 있는 곳의 바로 옆 칸에 손님 한분이 일을 보고 나갔지만, 테레지아가 펼친 2단계 마법주문에 의해 소리의 일방적 이동이 차단된 상태라 들킬 염려는 없었다. 하지만 파티 중에 화장실에 와서 은밀히 성교를 나누는 건, 그 자체로 흥분되는 상황임에 틀림 없었다.
언젠가 벨라가 스트라스부르의 술집에서 당하던 모습처럼, 테레지아는 변기 위에 엎드린 채, 사촌동생의 물건을 힘주어 받아들이고 있다. 계속된 성욕 스위치 훈련의 결과, 수치심이나 모멸감, 분노감은 조금씩 자취를 감추어 가는 중이다.
이어 쾌락에 가득 찬 날카로운 비명소리와 함께, 테레지아의 질내로 프리드리히의 정액이 콸콸 쏟아져 들어간다. 벨라가 사소한 꼬투리를 잡은 탓에 시작된 네 번째 섹스가 끝났다. 뱀파이어의 체력은 인간보다 무한했으므로, 신체적으로는 문제가 없었지만… 두 남녀는 쾌락의 지속이 불러온 정신적인 피로에 지쳐, 활짝 드러난 소중한 부위들을 가리지도 못한 채, 30초 가까이 널부러져 있었다.
"이제 좀 친해졌니?"
"으응!!"
"물론이얏!!"
이제 두말하면 잔소리였다. 오케스트라는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시종들이 메인 메뉴의 서빙을 준비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벨라는 히죽 웃은 채 두 권속을 데리고 다시 만찬장으로 향했다.
첫 번째 메인메뉴는 버터로 구운 광어살에 발사믹 소스와 숙성 캐비어, 푸아그라 테린을 곁들인 요리였다.
테레지아는 거의 눈물까지 살짝 흘리면서 맛있게 요리를 먹다가, 문득 무언가 생각난듯 멈칫한다. 자신의 접시를 몇 초간 바라보면서 갈등하다가, 남은 광어 구이를 반 정도 잘라 캐비어 몇 알을 얹어 프리드리히의 접시에 건네준다.
"맛있게 먹고 힘내. 프리드리히."
"어? 으응? 윽! 어어."
프리드리히가 뜻밖의 선물에 멍청하게 되물어 보는데 테이블 밑에서 테레지아의 구두가 프리드리히의 발을 콱 밟았다.
'으으으으!'
체력이 범상치 않은 누님인지라, 눈물이 쏙 빠질 정도로 아팠다.
물론 테레지아는 같은 요리를 한 접시 더 주문해서 냠냠 맛있게 먹는다. 그러다가 프리드리히에게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참, 블라드 공작님을 따라다니면서 기사 수행을 받을 때는 어땠어? 재밌는 경험이 있으면 얘기 좀 들려줘."
"어? 아, 그거 작년에 다 말했는데 재미없다고……으윽! 큼, 음, 말이 잘못 나왔네. 하하, 다른 사람을 착각했네요. 그, 어떤 일이 있었냐면…."
반대쪽 발도 밟힌 것 같은 모습에 벨라는 슬쩍 미소지었다.
'생각보다 금방 친해지겠는데?'
"이제 소식이 올 때가 됐는데….."
"응? 아………."
벨라가 중얼거리는 걸 들은 테레지아가 무슨 의미인 물어보려다가 안색을 굳힌다. 비록 그녀가 저지르진 않았지만, 깊게 연관된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죄책감과 슬픔 어린 표정을 짓자, 벨라가 도리어 그녀를 위로한다. 사석에서는 서로 평대하고 벨라가 명령하는 입장이지만, 공석에서는 엄연한 신분 차이로 인해 존댓말이 거꾸로 사용된다.
"황녀답지 않은 표정은 짓지 마세요. 이제 어떻게 해야할 지 생각하는 게 중요합니다."
테레지아는 다시 냉정한 표정으로 돌아와 고개를 끄덕인다. 그때, 만찬장의 문이 세차게 열리며 왕국의 근위병 한 명이 허겁지겁 뛰쳐 들어왔다. 오케스트라 이후, 조용한 식사가 이어지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 근위병은 귀족들이 수군대며 바라보는 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즉시 카트린느 여왕 전하의 앞까지 가서 그녀를 호위하고 있는 기사에게 서찰을 전달했다. 서찰의 색깔은 선명한 붉은 색이었는데, 왕국의 보고체계에 따르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무조건 군주에게 보고가 들어가야 하는 긴급서찰을 의미한다. 일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었다. 기사는 서찰의 이상 여부를 잠시 검사한 후 여왕에게 이를 건넸다.
"…………..!!!!!!!!!!"
카트린느 여왕은 의아한 표정으로 봉인을 뜯고 내용을 읽다가 경악한듯한 표정을 짓는다. 만찬장의 귀빈들이 모조리 자신을 지켜보는 걸 알았기에, 그 표정은 1초가 지나지 않아 숨겨졌다. 그녀는 살짝 떨리는 손으로 섭정에게 서신을 건넸다. 리슐리외는 침착히 서찰을 읽어본 뒤, 태연한 표정으로 이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일어섰다. 그의 시선이 흘낏 벨라가 앉은 테이블을 향했다가 다시 떠난다.
리슐리외 섭정은 여왕을 대신해, 사회자가 서있던 연단 위에 올라서서, 마법 마이크를 들었다. 귀빈들은 궁금한 표정으로 그에게 집중한다. 테레지아와 프리드리히는 테이블 아래에서 한쪽 손을 꼭 마주잡고 결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며, 벨라는 은밀한 눈빛으로 사방의 사절들을 살펴보는 중이었다.
"흠, 흠. 경애하는 여왕 전하와 친애하는 각국의 사절 여러분. 우선 만찬 중에 갑작스러운 소식을 전하게 된 것에 양해를 구합니다. 별 것 아닌 일이었다면, 굳이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가 나와 발표할 필요도 없고, 근위병이 분위기를 깨고 들어오는 일도 없었겠지요. 매우 긴급하고 중대한 소식입니다."
리슐리외는 시종이 앞쪽에 갖다놓은 물잔을 들어 한 모금 들이킨 후 말을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