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 아스토리아 제국의 수도 비엔나에서 끔찍한 마법 테러가 발생했습니다. 합스부르크 황실 일가 전원이 모여 식사를 하던 만찬장이 불길에 휩싸여 폭발했고, 생존자는 오직 아티팩트의 보호를 받고 중상으로 그치신 카를 6세 폐하 뿐이시라는 소식입니다."
흥미로운 얼굴로 섭정의 말을 기다리던 귀빈들은 모두 얼굴에 경악 한줄기가 어렸다. 자신이 지금 제대로 말을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옆사람을 쳐다보는 이들도 있다. 몇 초 후, 상상도 못한 비극적 사건이 일어났음을 실감한 이들이 웅성웅성대기 시작하는데, 섭정이 박수 두어 번으로 다시 조용한 분위기를 불러온다.
"비록 현재 전쟁 중인 적국이지만, 아국은 대륙의 공의(公義)에 어긋나는 끔찍한 만행을 저지른 테러범을 강력히 규탄하며, 제국에 닥쳐온 불행한 비사에 깊은 애도를 표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도 합스부르크 가문에 속하신 슐레지엔 여대공 저하와 에스테르하지 후작께서 여왕 전하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와 계십니다."
섭정의 말에 테레지아와 프리드리히가 자리에서 일어나 한번씩 고개를 숙이고 다시 착석한다. 둘 모두 놀라움과 슬픔을 간절히 참고 있는듯한 표정이다. 딱히 연기라고 하기는 어려웠다. 미리 예상했다고 해도 그 충격은 여전했다.
계획이 완벽함을 알고 있었고, 그럼에도 결과가 바뀌기를 원했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그나마 황제가 생존했다는 말을 듣고 다행이라 생각했으나, 중상을 입었다는 말에 다시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원래 이쯤에서 테레지아의 은밀한 준비에 의해 여왕을 겨냥한 또다른 테러가 일어나야 했지만, 이는 벨라의 노력에 의해 완벽히 취소되었다. 벨라는 지금 만찬장에서 남들과 다른 어색한 감정을 지닌 이들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한 박자 늦게 놀람을 표시한 사람, 섭정이 핵심적인 어구를 말하기도 전에 미리 고개를 끄덕이며 슬픈 표정을 지었던 사람, 그 외에도 표정을 위장한 것 같이 보이는 사람들…. 의심되는 자들을 몇 분동안 꾸준히 관찰하니, 후보들이 하나둘 좁혀지기 시작했다.
메클렌부르크 백작 알브레히트. 그는 프로이센 왕국에서 파견된 귀족으로, 왕국의 재상을 맡고 있는 오토 폰 비스마르크 경의 장남이었다. 나이는 30대 후반 정도 되어 보였는데, 국왕의 사위이기도 했으며, 프로이센의 유력한 권력자이자 다음 세대를 이끌 인재로 소문나 있었다.
벨라가 언젠가 브뤼헤에서 버건디로 향하던 선박에서 만났던 용병인 '검은 사자' 루카스는 바로 알브레히트의 동생이었다. 벨라는 한때 루카스가 그녀의 검술을 관찰하면서 해주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분명히 헝가리의 바토리(Bathory) 가문에서 온 검객들이 그의 집안을 방문했다고 언급했었다. 물론 몇 년 전의 일이고, 그때는 대륙대전의 기미도 없던 시기라 아무런 상관이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벨라와 테레지아의 짐작에 따르면, 바토리 가문은 이번 테러를 은밀히 기획한 직접적인 원흉이었고, 이는 절대 흘려넘길 수 없는 단서였다.
다음은 라흐만이란 이름을 지닌 자로, 이베리아 반도 남부의 코르도바 왕국에서 파견된 사신이었다. 이 자에 대해서는 이슬람교를 믿는 무어인이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정보가 없었다.
코르도바 왕국은 본래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반도의 이슬람 왕국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왕국이었지만, 세비야, 발렌시아, 그라나다와 같은 신흥 왕국들에게 밀리고 있는 형세였다. 때문에 지중해 건너 남대륙이나 동대륙에 위치한 이슬람 세력들과 연계를 도모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프로방스 왕국 정보부에서 얻은 첩보에 따르면, 현재 서대륙 침략을 준비 중인 시리아의 야심가 술탄 유수프와도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 그는 잉글랜드 왕국의 요크 가문에서 왔는데, 현 국왕인 에드워드 4세의 동생이었다. 요크 가문은 신성제국과 같은 백군에 속했기 때문에 대립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벨라는 그에 대한 의심을 지우지 않았는데, 딱 봐도 야심이 줄줄 흐르는 재수없는 얼굴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이 그걸 숨길 생각도 없어 보였고. 어쩌면 비밀리에 홍군과 연합을 맺어 자신의 형을 밀어내고 왕으로 즉위하려는 속셈을 품고 있지 않을까?
'흐음… 이거 다 개연성은 충분한 놈들이네.'
물론 이들이 모두 범행과 연관되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다. 우연찮게 그런 행동을 한 자, 싸이코패스처럼 감정이 결여된 자, 혹은 그저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제국의 불행을 흡족하게 여기는 자일 수도 있다. 그래도 신중하게 시간을 들여 모조리 검증할 예정이었다.
"식사 중에 죄송합니다만, 금일의 만찬은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곧 시종들이 직접 숙소를 방문하여 음식을 가져다 드릴 테니, 부족하신 점이 있다면 그때를 이용해 주시길 바랍니다."
섭정의 말을 끝으로, 그날 저녁의 만찬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종료되었다.
이틀 후, 프로방스 왕국의 수도 루테티아에서 알프스산맥으로 이어지는 아피아 가도(Via Apia).
화창한 봄날의 초원 사이로, 스무 대에 가까운 마차들이 달리고 있다. 마차들이 하나같이 무척 크고 화려한데다 우수한 품종의 백마들이 이끄는 걸로 보아 권세높은 왕족이나 대귀족 일행들로 보인다.
바로 신성 아스토리아 제국과 부르고뉴 대공국의 사절들로, 새 여왕의 즉위를 축하하기 위해 방문했다가 귀환하는 길이었다. 두 국가가 모두 동쪽에 위치한데다 대륙대전에서도 같은 백군에 속했기에, 동부의 샹파뉴 지방까지 동행하게 되었다.
샹파뉴 게이트에 도달하면, 신성제국의 사절단은 '전송[Teleport]' 마법을 이용해 제국의 다른 게이트까지 고속이동할 예정이었고, 부르고뉴 사절단은 라인강의 수로를 타고 국경을 넘을 계획이었다.
사절단에는 보르도의 여자작 이사벨라 일행도 끼어 있었다. 노르망디 여공작 빅토리아도 그녀와 함께 했는데, 형제들 중 막내인 랑발손만 남고, 나머지는 영지와 새로운 봉토를 관리하기 위해 돌아갔다.
벨라는 리슐리외 섭정과 카트린느 여왕에게 작별인사를 올리고 달타냥에게 인수인계를 끝마치면서 프로방스 생활을 마무리했다. 흑림 슈바르츠발트로부터 노르망디 공작령으로 입국한지 약 15개월만의 출국이었다.
여왕은 그녀와 헤어지는 걸 몹시 아쉬워 했고, 섭정도 내색하지 않았으나 비슷한 심정으로 보였다. 리슐리외 섭정은 천성이 교활하면서 때로는 냉혹하기까지 한 인물이었으나, 벨라에게는 그런대로 잘 대해주었고, 의외로 경계도 하지 않았다. 벨라는 그 이유를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그동안 쌓인 떡정때문이라거나 혹은 손녀딸처럼 귀엽게 여겨서 그런 게 아닐까 짐작했다.
첨언하건대, 이는 리슐리외가 벨라가 소유한 잔 다르크의 성검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며, 그녀의 등장과 활약을 하느님의 공의가 실현된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리슐리외는 젊은 시절, 성녀 잔 다르크의 숙청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프로방스 왕실에 반감을 가지게 되었으나, 반역을 일으켜 왕실의 대를 끊을 생각 까지는 없었다. 하지만 벨라의 등장과 그로 인한 상황의 전개 속에서 이를 하늘의 뜻으로 여기게 된 것이다.
벨라는 떠나는 순간까지 달타냥에게 신경을 쓰며, 다소간 불안한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 섭정의 비서직은 은밀하고 조심스럽게 수행해야 할 일들이 많았는데, 이 당돌한 남장소녀는 여기저기 쏘다니는 걸 좋아해서 저돌적인 활동 행태를 보였다. 그런 것이 장점으로 작용할 때도 있었지만, 잘못해서 뜻밖의 벌집을 건드리거나 제 발에 제가 걸려넘어지는 경우들도 있어, 벨라가 뒷처리를 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왠지 모르게… 성별을 들켜버려 변태 섭정 각하 밑에 깔린 채 울부짖는다거나, 혹은 비밀스러운 일을 처리하던 중 뒷골목에서 덜미가 잡혀 순결을 잃는다거나, 또는 그녀의 정체를 알아낸 협박범에게 눈을 질끈 감고 정기적으로 대주며 다니는 남장소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에이~ 설마 소드 유저 최상급을 바라보는 녀석이 그렇게 허당짓을 하고 다니진 않겠지?'
확 물어서 뱀파이어로 만들어 버릴까 고민했지만, 흡혈증은 불행한 천형(天荊)인지라 전도유망한 소녀를 함부로 물들이기엔 죄책감이 들었다. 대신 하사신 부대를 일부 남겨, 어둠 속에서 달타냥을 보좌하도록 했다.
암살대의 암살자 중 몇 명은 현재 벨라의 시종으로 위장하여 동행 중이었다. 하사신 대장이자 벨라에게 첫 번째로 물린 뱀파이어 '라시드(Rashid)'는 루테티아에 남아서 비밀스런 세력을 관리하는 중이었다. 벨라는 그의 보고와 기억을 통해 하사신 파 교단이 받았던 청부의 내용을 알 수 있었는데, 놀랍게도 누레딘과 오셀로 일행을 뒤쫓아 암살하라는 의뢰였다.
누레딘은 벨라와 빅토리아가 A급 용병 테스트에 응시했을 때 그 상대로 만났던 아랍인이며, 오셀로는 누레딘의 시종인 흑인으로, 그녀들과 매우 가까운 관계였다. 벨라는 즉시 이를 누레딘에게 전해 주었고, 그 역시 놀라워하며 벨라에게 감사를 표했다.
본래 누레딘은 동대륙 시리아(Syria)를 다스리던 전(前) 술탄의 적장자였는데, 부친인 술탄이 죽고 난 후 군부에서 쿠데타가 일어나 궁정에 연금되었다. 군부의 장군들은 각자 지지하는 왕족들을 앞세워 싸움을 벌였고, 누레딘은 그 틈을 타서, 충실한 시종인 오델로와 함께 탈출해 멀리 도망친 것이었다. 아라비아의 뜨거운 사막을 헤매다가 남대륙의 오지를 거쳐, 겨우 서대륙에 도착해 용병으로 등록하고 인간다운 생활을 시작했는데, 무시무시한 추적자가 따라붙었던 것이다.
의뢰주는 정확히 알 수 없었으나, 시리아의 유력자로 짐작된다고 한다. 현재 시리아는 명장으로 이름 높았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Yusuf ibn Ayyub)가 쿠데타를 일으킨 다른 장군과 왕족을 모두 숙청하고 스스로 술탄으로 즉위한 상황이었다.
동대륙에서 그의 세력은 날로 확장되어 아라비아의 사막지대와 페르시아의 고원지대, 아나톨리아의 초원지대와 남대륙의 일부 지방까지 이르렀으며, 최근에는 서대륙 침략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복왕 유수프는 동대륙어로 '정의와 신념'을 뜻하는 살라딘(Saladin)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고 있다. 하사신이 받은 의뢰에는 전왕의 핏줄을 없애고자 하는 살라딘의 입김이 들어갔을 확률이 높았다.
아무튼 더 이상 프로방스에서 머물기 불안해진 누레딘과 오셀로는 벨라와 빅토리아를 따라 신성제국으로 가기로 결정했다. 신성제국의 중심부에서는 아직도 이교도 및 타인종에 대한 배척 성향이 강해 로브로 모습을 숨기고 다녀야 하겠지만, 그만큼 동방의 암살자들도 활동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록 인종은 다르지만, 벨라와 빅토리아, 누레딘과 오셀로의 궁합은 꽤나 잘 맞는 편이었다. 성격이나 무술 스타일 뿐만 아니라 섹스에서도 말이다.
벨라도 오를레앙 공 가스통이 죽고, 리슐리외 섭정의 비서직을 사임한 뒤부터 이 두 황인종, 흑인종과 가장 자주 관계를 가져왔으며, 빅토리아 또한 자신의 형제들이 대부분 떠나고 난 뒤부터는 주로 이들과의 섹스를 통해 성욕을 해소하는 편이었다. 물론 남아있는 막내동생인 랑발손과도 틈틈이 배덕한 열락을 이어나가고 있지만, 요즘 랑발손은 누나와 누나 동료들의 경지에 자극받아서 무술 수련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현재 마차에 타고 있는 일행을 총체적으로 언급하자면, 우선 부르고뉴의 사신인 마리 대공녀와 수행원들이 있었고, 신성제국의 사신인 테레지아 황녀와 프리드리히 후작 및 수행원들이 있었으며, 이사벨라의 일행을 구성하는 빅토리아, 랑발손 남매와 누레딘, 오셀로 주종, 벨라의 시종역할을 하는 어쌔신 몇 명, 빅토리아의 시종역할을 하는 바이킹족 몇 명이 있었다.
정오가 되었을 무렵, 마차들은 대로변에 널찍하게 만들어져 있는 야영장에 도착했다. 마부들은 말에게 건초를 잔뜩 주어 휴식을 취하게 했으며, 시종들은 야외에서도 고품질의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벨라는 요리를 기다리는 동안 독서를 하다가 문득 치밀어 오르는 한줄기 성욕에 빅토리아를 찾아갔다. 빅토리아가 아까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누레딘, 오셀로, 랑발손을 이끌고 우거진 숲속으로 가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다. 휘파람을 불며 오솔길을 따라가니 넓은 공터가 보이는데 신음소리가 들리는 게 벌써 거사를 치르고 있나 보다.
기대감에 차서 공터로 나왔는데 웬걸, 빅토리아가 그녀의 상징인 쌍검을 든 채 난감한 표정으로 서있고, 앞쪽에는 거구의 남자 세 명이 이곳저곳에 멍이든 채 쓰러져서 끙끙대고 있다.
'아이쿠, 내 머릿속에 음란마귀가 들어있었구나!'
랑발손의 바이킹소드와 누레딘의 할버드, 오셀로의 철퇴와 쌍절곤은 모두 공터 이곳저곳으로 날려져 뒹굴고 있었으며, 사방에 칼날같은 기세와 흙먼지가 자욱했다.
"세상에! 무슨 비무를 이렇게 과격하게 한 거야?"
벨라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자, 빅토리아가 쑥쓰러운 표정으로 금발머리를 긁는다.
"이렇게까지 때려눕힐 의도는 없었다만. 요즘 세 놈들이 합격진을 짜서 꽤나 애먹고 있었는데, 그걸 격파하면서 벽을 하나 넘은 것 같다."
"와우! 축하해, 빅토리아! 이거 등뒤가 더욱 든든해지는 느낌인데?"
벨라가 웃으면서 축하를 전했지만 빅토리아는 더욱 겸손한 표정을 짓는다.
"마스터 앞에 놓인 무한의 벽(Infinite Wall)에서 이제 겨우 세 번째 벽을 넘었을 뿐이다. 벽을 넘을수록 저 앞에 새로 놓인 길이 얼마나 험난한지가 보이니, 도리어 자신감을 갖기 어려워지는군.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벨라 다 네가 이끌어준 덕분이다."
두 미녀는 그렇게 하하호호 웃으면서 대화를 지속했다. 벨라 또한 이제 소드마스터의 경지가 멀지 않았음을 느끼고 있었다. 보통 익스퍼트 최상급의 검사가 마스터급의 경지에 도달하는 비율은 채 1%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벨라의 경우, 퀸의 능력을 가지게 되면서 신체적 능력과 정신적 능력이 계속 확장되어 보다 용이하게 상승의 경지로 진입하고 있었다.
벨라는 결국 그곳에서 성욕을 풀지 못한 채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세 거한이 큰 대자로 쭈욱 뻗은 꼴을 보니 저녁 때나 되어야지 정상으로 돌아올 것 같고, 빅토리아 또한 새로 얻은 깨달음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결국 부르고뉴 쪽 마차로 향해, 마리 대공녀와 함께 점심식사를 들었다. 마리와는 이틀 정도 더 가서 샹파뉴에 도착하면 헤어져야 하기 때문에, 최대한 많은 시간을 함께하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런데 점심시간동안 이어졌던 뜻밖의 음담패설은 몹시 흥미로웠다. 시작은 벨라가 '테러'의 배후로 의심하는 인물의 정보를 들어보려는 질문에서였다. 만찬장에서 본 세 명의 인물 중, 잉글랜드의 요크 가문 왕제(王弟)인 글로스터 공작 리처드(Richard)에 관한 것이었다. 리처드의 누나인 마거릿은 바로 부르고뉴의 현 대공비로, 마리의 계모였다. 즉 리처드는 마리에게 외삼촌에 해당하는 셈이다.
"마리야, 혹시 외삼촌 뻘인 리처드 공작님에 대해 잘 아니?"
질문하면서 벨라가 상상했던 대답은 '음, 별로 뵌 적이 없어서 개인적으로는 잘 몰라요', '잘은 모르지만 왠지 음흉하다는 느낌이 들어요', '아버님께서는 그 분이 야심가라고 그러시던걸요?', '새어머니께서는 장난끼 많은 남동생이라고 하셨어요' 같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마리의 대답은 그녀의 예상을 벗어났다.
"아, 리처드 삼촌? 진짜 끝내주게 섹스 잘하셔."
"어버버… 뭐라고?"
벨라가 자신의 귀를 의심하면서 당황스러워 하자, 소녀는 천진난만한 미소로 포크를 든채 부드러운 스테이크 조각을 한입 앙 찍어 먹으며 말을 잇는다.
"대물인데다 강도랑 지속도도 최고고, 마초스러운 게 딱 내 스타일이었달까? 히힛."
후식으로 나온 청포도를 오물오물 씹으면서 말하는데, 앙증맞고 귀여운 표정과 달리, 말의 내용은 음탕하기 그지 없었다.
"그, 그, 리처드 공작님이랑도 한 거야?"
마리는 그의 모습이 떠오르는지 살짝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으응.. 원래는 나도 상상도 못했는데, 어쩌다 보니 해버렸는걸. 그때가 바로 오랜만에 언니와 상봉한 뒤에 헤센의 왕자를 만나러 갔을 때였어."
마리의 얘기를 들어보니, 바로 벨라가 부르고뉴 사절단의 숙소에 몰래 잠입하여 그녀의 충격적인 모습을 발견한 그 날의 일인 것 같았다. 마리는 그를 전처럼 '루트비히 오라버니'가 아닌, '헤센의 왕자'로 부르고 있었다.
마리는 모처럼 예쁘게 화장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채, 만반의 준비를 갖춰 약혼자인 루트비히 왕자를 만나러 갔었다. 루트비히는 인형 같이 아름답고 순수해 보이는 약혼녀의 모습에 그저 얼굴이 빨개지고 입이 헤벌쭉 벌어진 채 어쩔줄 몰라했다. 마리가 활달하게 대화를 걸어보아도, 단답형으로 끝나 버렸다. 예컨대 이런 식이었다.
"오라버니, 헤센 왕국의 수도인 프랑크푸르트는 어떤 곳이에요?"
"어? 어, 아, 응. 조, 좋은 곳이야. 하, 하."
"그렇…군요. 호호. 그럼 동부국경에서 프로이센과의 전투가 한창이라고 들었는데 구체적인 전황은 어떤가요? 소드마스터이신 팔츠 공작님께서 활약 중이시라면서요?"
"으, 응! 맞아. 그래, 그래."
"………."
이거야 원, 마리가 얼마나 실감나게 성대모사를 하며 표현을 하는지, 듣는 벨라가 속이 터질 정도였다. 마리의 표정은 장난스러워 보였지만, 벨라는 그녀의 두 눈에 가득 들어있는 실망감을 느낄 수 있었다. 헤센의 루트비히 왕자는 마리와 비견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미남 왕자로 이름이 높았고, 실제로 벨라 또한 그의 모습을 보고 인형같다며 감탄할 정도였는데…
'아이구, 그 도련님 어쩌나…'
하지만 여기까지가 다였으면 마리가 그렇게나 실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아하는 여인 앞에서 머릿속이 하얗게 비워질 정도로 수줍어 하는 남자들은 많았으니까. 답답한 모습이지만, 나름대로 그만큼 그녀를 사랑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때 두 소년 소녀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정원에 한 무리 일행이 등장했다. 바로 잉글랜드 요크 가문의 사신으로 온 리처드 공작이었다. 길게 늘어진 불그스름한 얼굴에, 중년의 나이로 접어들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엷은 주름살과 더부룩하게 정리되지 않은 콧수염, 턱수염이 딱 왕자와 정 반대로 마초틱한 모습이었다. 그는 사랑스러운 조카딸이 약혼자와 함께 선남선녀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다가왔다.
마리는 마침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 것을 답답해 하던 중이어서, 이전에 몇 번 만난 적 있던 외삼촌을 불러들였다. 리처드는 마흔을 바라보고 있는 나이였기 때문에, 10대들의 대화에 끼어들기 난감해 하며 내키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사랑스러운 조카딸이 우웅- 거리며 귀여운 표정으로 보채자 결국 그 자리에 합석하게 되었다.
요크 가문의 제 2인자로 잉글랜드 왕국을 주름잡으며 야심을 키우고 있던 리처드는 마리와 대화가 아주 잘 통했다. 단지 잉글랜드나 브리타니아연합 내부의 정세 뿐만 아니라, 에우로파 대륙 전역의 정세와 다른 대륙의 사정에도 정통했으며, 정치철학과 통치론, 사회경제 같은 부문에서도 폭넓게 마리와 토론했다. 삼촌은 조카의 해박함과 깨인 지식에 놀라워하며 연신 감탄을 금치 못했다. 그저 어린 철부지 소녀인줄 알았는데, 그 지식과 지혜가 자신보다 뛰어났던 것이다. 루트비히 왕자는 그 과정에서 거의 한마디도 끼어들지 못하고 홀짝홀짝 차만 마셔댔다.
마리는 기본적으로 착한 심성이었기 때문에, 루트비히가 불편해할 것을 염려해 그를 여러 번 배려해 주었다. 하지만 그의 바보 같은 모습에 뾰로통한 것도 사실이었다. 약혼남을 좀더 적극적으로 굴게 만들고 싶었음일까? 마리는 옆에 앉은 리처드 삼촌의 곁에 바짝 붙어 앉아, 친척들 간 흔히 있을 수 있는 수준의 스킨십을 시작했다.
삼촌의 어깨를 감싸안고, 등을 쓰다듬고, 볼을 꼬집어보고, 턱수염을 만진다거나 가슴을 두드려보는 등 말이다. 그 자체로는 삼촌과 조카 간의 관계를 벗어나지 않는 수준이었지만, 그것들이 계속 쌓여가면서 오히려 마리가 조금씩 이상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녀의 스킨십은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과감해져 갔다. 철저하게 조교받은 여파가 무의식적으로 발현된 것이다. 그때쯤 리처드도 마리의 이상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소녀의 오밀조밀한 작은 손이 테이블 아래에서 자신의 허벅지를 쓰다듬고 있었고 심지어 허벅지와 허벅지 사이까지 파고 들어왔다. 그러다 실수였는지 '그 부위'까지 살짝 건드렸다. 마리도 화들짝 놀랐는지 손이 무릎 근처까지 빠져나왔다. 하지만 그 한번의 터치는 소녀에게 이성 대신 과감성을 불어넣었는지 이번엔 정확히 리처드의 남근을 옷 위에서 가볍게 휘어잡았다.
마리의 손이 조금씩 은밀하게 움직임에 따라, 죽어있던 육봉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다 솟아오른 줄 알았지만, 더 높이, 계속 솟아올랐다. 손으로 잡히는 거봉에 그녀의 눈은 휘둥그레 졌고, 침을 꿀꺽 삼킨 채, 마치 내릴 수 없는 열차에 올라탄듯 다음 행위들을 이어나가기 시작했다.
리처드는 지금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까 진지하게 고민했지만, 마리와 나누고 있는 얘기들이 너무나 흥미로운데다가, 자신의 마음 속에서도 서서히 도착적인 감정이 느껴지면서 이대로 더 머물러 있자는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다. 자신보다 똑똑한 머리에 넓고 깊은 지식과 지혜를 보여주는 조카딸이 여자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외모 또한 막 피어오르는 꽃봉오리 같은 것이 그 나이대에서 탑클래스라 할만 했으며, 핸드잡 실력을 보니 끼도 충분해 보였다.
어느새 마리의 손은 리처드의 바지 속으로 들어와 그의 뜨거운 육봉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으나, 그녀의 눈은 좌중을 자신감있게 바라보며, 입으로는 어려운 철학적 사상을 논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실수였는지 옆에 있는 티스푼을 테이블 아래로 떨어뜨린다. 친히 허리를 엎드려 줍는 동안, 몇 초 간이지만 부드러운 입술을 삼촌의 팬티 속에 갖다대고 혀를 내밀어 육봉을 쓱싹쓱싹 핥아준다.
"크윽."
리처드는 안 그래도 붉은 얼굴이 조금 더 붉히며 힘들어 했다. 그렇게 마리는 서너 번 더 티스푼이나 포크, 티슈 따위를 떨어뜨렸다. 네 번째에 이르렀을 때, 아예 테이블 밑으로 잠시 내려와 물건을 찾는 척 하며, 십초 가까이 '다른 의미의 물건'을 빨고 있는데 마침내 리처드가 참지 못하고 사정했다.
엄청난 양의 정액이 새어나와 마리의 입으로 들어갔지만 반이상은 팬티로 흘러나왔다. 소녀는 입에 들어온 씨앗을 꿀꺽꿀꺽 삼킨 뒤 태연히 입가를 닦으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얌전히 다시 앉은 뒤, 삼촌의 팬티에 남아있는 정액마저 다른 손으로 끌어왔다. 차를 마시는 척 하면서, 루트비히 왕자의 눈을 피해 손을 쪽쪽 빨았다.
그 과정을 모두 지켜본 리처드 공작은 완벽히 흥분했다. 이성이 반쯤 마비되면서, 소녀가 누나의 딸이라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는 불타오르는 야망만큼 뜨거운 성욕을 지니고 있어, 글로스터 영지에 수십 명의 첩을 두고 있는 카사노바였다. 미남의 외모는 아니었지만, 거친 야성과 뛰어난 체력, 그리고 성기의 성능으로 이를 커버할 수 있었다.
테이블에는 어느 순간부터 야릇한 냄새가 풍겼다. 이제 숙질에게 남은 생각은 단 한 가지 뿐이었다. 리처드는 당장 저 앙큼한 조카딸을 들어올려 테이블 위에 얹어 놓은 채, 스커트를 확 들어올려 자신의 성기를 꽂아넣고 싶었고, 마리는 삼촌의 거대한 물건에 위아래로 가득 꿰뚫리며 고양이 같은 신음소리를 마음껏 내지르고 싶었다.
"오라버니, 많이 피곤하시지 않으세요? 오늘은 제가 너무 삼촌과만 얘기를 많이 나눠서 죄송했어요."
"아, 아니야. 난, 괜, 괜찮은데….."
"아녜요. 제가 마음이 불편해서 그래요. 벌써 시간이 많이 흘러, 여왕 전하께서 준비하신 만찬이 얼마 남지 않았어요. 오늘은 이만 들어가시고, 다음에 또 좋은 날로 기회를 잡아서 뵈어요. 오라버니가 부르고뉴에 오시든, 제가 헤센으로 가든지 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