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라는 연이은 원투펀치에 정신이 멍해졌다. 아마 자신이 대한민국 출신이 아니라 순수한 대륙인이었다면, 당장 체사레나의 멱살을 잡았을지도 모른다. 정통 교리에 따르면 알타리엘과 니뮤에는 신의 화신이자 일체로 여겨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차라리 드래곤(Dragon)이라 했으면 좀더 현실감이 들 것 같다. 한 세기에 적어도 두 자릿수 이상의 재앙이나 기적을 일으키는 생물이었으니까. 사실 요정에 대해서는 세상에 확실히 알려진 이야기 자체가 없었다.
기독교의 신화는 기원전에 아타락시아 세계를 지배했던 마도제국 룬(Rhun)이 멸망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당시 대륙은 지금처럼 서대륙, 동대륙, 남대륙 셋으로 나뉘어 있지 않았고 '아타락시아'라는 이름의 통일대륙 하나만 존재하고 있었다. 제국의 수도는 모든 길이 통하는 세계의 중심지, '로마(Rome)'였다.
그러나 영원할 것 같았던 제국의 영광은 역사상 가장 참혹한 비극으로 끝이 났다. 룬의 마지막 지배자였던 태양황제 네로(Nero)는 인간의 한계라는 9단계 마법을 사용하던 마도사였다. 지금과는 달리, 당시엔 마나가 풍부하고 마법학이 융성하던 때라 8단계 이상의 마도사들이 한 지방에도 두어명 씩 존재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네로 황제는 오직 드래곤만이 가능하다는 '10단계'를 이루기 위해, 바벨탑이라 불리는 거대한 제단을 쌓아 세상의 근원을 소환하려는 미친 짓을 저지른다.
그곳에서 소환된 건 근원이 아니라 거대한 재앙이었다. 성경에조차 두려움으로 인해 제대로 표현되지 않는 마왕(魔王)이 등장했으며, 그가 이끄는 수천만의 악마군단이 쏟아져 나왔다.
당시 대륙에 존재하던 수천 명의 마도사들이 힘을 합쳐도 중과부적이었다. 네로 황제의 몸은 마왕에게 잠식당했으며, 온갖 끔찍한 학살과 사이한 타락이 세계적으로 발생했다. 팍스 로마나(Pax Romana) 하에 평화롭던 세상은 순식간에 종말의 위기에 놓였다.
이때 등장한 이가 바로 주(主) 알타리엘과 그의 충실한 수제자 성(聖) 니뮤에였다. 그들이 새로 연 신성한 가르침은 고통에 신음하던 세계로 소리없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기독교의 교리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사상 처음으로 신성력이란 힘이 등장한 것이다.
알타리엘과 니뮤에는 신성력으로 무장한 수백만 성도(聖徒)들을 이끌고, 대륙을 휘젓던 악마군단을 하나씩 몰살시켰으며, 마침내 마왕이 기다리고 있는 로마(Rome)의 바로 앞까지 이르렀다.
이때가 바로 성력 원년이 시작되는 해. 아마겟돈 전쟁(Amageddon War)이라 불리는 신화적 전쟁의 마지막 장면이 펼쳐진다. 이때 세상에 발생한 충격이 얼마나 컸던지, 알프스라는 천고의 산맥과, 지중해라는 거대한 내해가 생기며, 대륙이 셋으로 갈라지게 되었다고 한다.
알타리엘은 하느님에게서 받은 신성하고 고결한 능력으로 마침내 마왕을 쓰러트리고 하나의 반지에 가두는 데 성공한 뒤 죽음을 맞았으며, 그녀의 뒤를 따르는 최초의 성기사들은 분루를 흘리며 남은 악마들을 역소환시키거나 동대륙이나 남대륙 너머로 격퇴시켰다.
이후 알타리엘의 수제자였던 니뮤에가 폐허가 된 악의 도시 로마(Rome)를 신성력으로 모조리 갈아 뒤엎은 뒤, 바티칸(Vatican)으로 재건하고 초대 교황으로 즉위했다. 한편 룬 제국의 방계 황족이었던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가 현재의 콘스탄티노플을 새로운 수도로 제국을 재건하니, 지금은 영토가 수도 하나뿐인 비잔틴 제국의 시초였다.
1세기 뒤에 반지에서 풀려난 악으로 인해 '최후의 동맹 전쟁(Last Alliance War)'이 벌어졌는데, 주 알타리엘께서 부활하시어, 인간과 요정, 난쟁이, 호빗 등 세상의 모든 선한 종족을 연합시켜 악마들을 격파했다는 후속 신화도 유명했다.
인간을 포함한 대다수의 종족들이 이때 수만 년 간 쌓아왔던 기반들을 잃고 악의 세력에 의해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다. 이는 번식력이 가장 뛰어났던 인간종이 현재 대륙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게 된 원인이기도 했다. 마도제국 시절만 해도 들판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요정들은 차츰차츰 어딘가로 사라져 버리고 사멸되어 갔다.
"네 말은 요정들이 종교를 만들고, 인간들을 구원했다는 거군."
"그 말도 맞는 말이지만, 정확히 요정들은 이 세계를 구원하려고 한거지."
"그렇군. 그런데 체사는 그런 숨겨진 진실을 어떻게 알게 된 거야?"
언젠가부터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믿어버리는 벨라를 보며, 체사레나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 이제 별로 충격적이진 않은 거야?"
"응. 처음엔 좀 신기했는데, 이제는 무덤덤하네. 지금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만 해도 감춰진 진실이 엄청나게 많잖아? 당장 내 앞에 계신 어느 남장여성 분도 그러시고 말이야."
"흠흠. 벨라, 너는 볼수록 신기한 인간인 것 같다. 일개 몰락귀족 출신이라고는 믿을 수 없어. 아무튼 얘기를 계속하자면, 나는 성전기사단의 일원으로서 비밀스러운 임무를 수행하던 중, 남대륙 엘-사하라 사막 깊숙한 곳에 위치한 이교도 마을을 몰살시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의 일이었지…. 온몸이 타는듯한 열사의 사막을 한달 가까이 횡단했다. 체력이 약한 사제들은 모두 죽어버리고, 성기사들도 삼분지일이 나가떨어진 다음에야, 임무의 대상인 마을 하나를 발견했다. 사해(死海)라 불리는 죽은 소금의 호수 위에 떠있었지. 신성력을 두르지 않고 호수에 발을 디뎠던 동료의 온몸이 검은색으로 썩으면서 녹아내렸다. 과연 악의 소굴이 분명하다며 마을까지 쳐들어간 우리들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왜?"
"흠. 어째 리액션이 약해진 느낌이군. 그건 바로 마을의 주민이 흑요정(Dark Elf)들이었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우리는 교황 성하의 명령에 충실히 따르며 그들을 학살했고, 실력이 가장 뛰어나던 내가 먼저 그들의 대장로가 살던 집을 습격하게 되었지."
"우와, 다크엘프라니… 거의 700년 가까이 나타난 적이 없다고 들었는데, 그런 엄청난 오지에서 살고 있었군."
체사레나는 벨라의 감탄사를 흐뭇한듯 즐기며 이야기를 지속했다.
"나는 그 곳에서 대장로를 죽인 뒤, 그가 목숨처럼 지키려던 하나의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책은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너덜너덜해져 문서들의 꾸러미에 가까워져 있었지. 평소였다면 죄다 불태워버렸겠지만, 몇 년 간 계속된 비밀스러운 임무들에 회의감이 들던 터….. 아직 위서(僞書) 여부를 알 수 없다는 명목으로 스스로를 속인 채, 몰래 챙겨 나왔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종교관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흐음, 그 책의 내용이 사실이라고 믿는거야?"
확신에 차 신기한 얘기들을 한 것 치고는, 빈약해 보이는 근거가 아닌가. 사막 건너 다크엘프 마을에서 들고 온 책 한 권 때문이라니…
"'제목은 지워져 있었기에, 나는 사해에서 발견했다는 의미로 '사해문서'라 이름붙였다. 그 문서에 기록된 다른 무수한 비밀들이, 내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들과 일치했다. 아마 성경의 초기형태가 아닌가 짐작되긴 했는데…. 내가 이를 결정적으로 확신하게 된 건, 알렉산데르 교황이 요정에게서 신성력을 추출하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잠시 그때를 떠올리는듯한 체사레나의 얼굴에 미약한 분기가 서렸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장기 임무를 마치고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교황을 찾아갔던 날이었다. 몇 분 전에 교황이 집무실로 들어가는 걸 우연히 목격했기에, 분명히 그 안에 있으리라 확신하고 유령처럼 스윽 들어갔는데 아무도 없는 게 아닌가. 평소라면 기억을 의심하면서 얌전히 기다렸겠지만, 당시 나는 장기 임무로 인해 교황의….. 크흠, 성적인 은총을 받기 위해 안달이 나있는 상태였다."
"부끄러워 하지 말고 차분히 얘기해도 돼. 교황과의 섹스가 부여한다는 중독성은 잘 알고 있으니까. 그렇게 음란한 표정으로 자위 준비자세를 취하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한번 당해보고 싶어지는데!"
"으음…. 앞으로 절대 그럴 일이 없기를 바라지. 벨라 같은 색녀가 겪었다가는 최소한 십년은 못 빠져나올 것이다. 아무튼 그때의 나는 세밀한 기감능력을 발현시켜서, 일분도 안 되어 그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었다. 바티칸에서 모든 종합적인 능력을 따져봤을 때, 일인지상인 나만이 가능한 일이었지. 평소에 교황 성하의 기척을 찾는 일은 쉽지 않았는데, 웬일인지 그 날은 아주 잘 느껴졌다."
체사레나는 와인 한 모금을 꼴깍 마시며 말을 이었다.
"그의 존재는 대각선으로 이어지는 지하공간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은밀하면서도 강력한 밀도를 지닌 신성력이 그곳에서 샘솟고 있는 게 감지되었고,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듯 교황의 책상을 조심스레 옮긴 뒤, 카페트를 걷어내었다. 평범한 바닥이 보였지만, 신성력으로 인해 왜곡된 공간을 몇분간 집중해서 바라보자 작은 철문이 보였다."
딱봐도 수상한 비밀공간이었다. 이성이 반쯤 마비된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철문을 통과해 아래로 내려갔던 체사레나는 드넓은 지하실의 저편에서 대단히 수상한 광경을 발견했다. 지하실을 환히 밝히는 선명한 순백색 광채의 중심에 두 명의 형체가 보였다.
안력을 돋구어 보니, 바로 알렉산데르 교황과 푸른 생머리의 소녀였다. 놀랍게도 소녀의 귀가 뾰족한 걸로 보아 요정이 분명했다. 그녀를 본 체사레나는 지금 벨라가 겪은 기이한 느낌을 똑같이 느꼈다.
푸른 머리의 요정 소녀는 완벽한 알몸이었는데, 그녀의 팔과 다리를 구속하고 있는 백색 형틀에 매달려, 엉덩이를 뒤로 뺀 채 교황에게 정신없이 박히고 있었다. 삽입운동이 계속될 때마다, 그녀의 몸에서 환한 광채가 퍼지며 교황에게 흡수되었다. 체사레나는 그것이 엄청난 순도의 신성력임을 느꼈다. 교황은 신성력 덩어리를 끊임없이 추출하느라 정신이 없어서 미처 그녀의 기척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요정 소녀가 언제부터 이 지하실에 갇혀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오랜 시간동안 구속구에 구속된 채 교황에게 착취당해온 것으로 보였다. 소녀의 푸른 눈은 절망으로 가득 차 모든 것을 포기한듯한 눈이었다. 교황이 없을 때도 이곳에서 생활하며, 그에게 신성력을 착취당하고 음식을 받아먹는 것 같았다. 파렴치한 범죄행위였다.
그들이 나누는 대화의 내용은 더욱 놀라웠다.
"후후, 오늘도 순도높은 신성력을 선물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비비안(Viviane) 성하."
"아응.. 하응… 이 개자식…. 흐으응…. 내일은, 하악, 내일도 또 와줄거지?"
알렉산데르 교황은 신성력 폭탄을 맞으며 엄청난 쾌감을 느끼는 중이었지만, 소녀의 간절한 말에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소인도 매일매일 범해 드리고 싶습니다만.. 어린 사제였던 시절에 바벨탑의 유적에서 성하를 발견하고 긴 잠에서 깨워드린 뒤, 사십년에 가까운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매일매일 섹스만 반복하면서 하도 신성력을 뽑아낸 탓에, 어린 소녀로 변해버리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소인의 물건을 좋아하신다 해도, 자제할 줄은 아셔야지요."
"흐으으… 예전에 범할 때는, 니녀석의 자지를 흐응, 하루에도 몇번씩 받아들이는 거라고 가르쳤으면서…."
"그거야 성하께서 처음에 워낙 소인을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시면서 반항하셨으니까, 익숙하게 훈련시켜드리느라 그런 거지요. 올해까지 40년 동안 제게 조교받으시면서, 무려 33년 간 긴 하루하루를 버텨내셨던 건 정말 대단하신 기록입니다. 7년 전에 드디어 굴복하신 것도 결국 신성력의 과대추출에 따른 신체퇴행 현상 덕이 컸지요."
"큭. 바보 같은 시절은 말하지 마라. 차라리 그때처럼 반항 행위를 지속하는 척 하면서 매일매일 당할 걸 그랬다…"
"지금 한번의 행위로 서로 느낄 수 있는 쾌락도 이처럼 거대한데, 30년이나 걸렸다니 소인은 믿기지가 않습니다. 과연 이 바티칸을 만드시고 교황청을 세우신 사도(司徒) 다운 고결함이었지요. 슬슬 평소에도 자유롭게 풀어드리고 싶지만, 솔직히 어떤 일을 벌이실지 모르지 않습니까?"
"아흑. 쓰레기 같은 자식. 네놈에게 완전히 굴복했다고 신성력에 맹세한지가 벌써 7년째다. 한때 완전무결했던 본인의 성체(聖體)와 성의(聖意)가 이토록 타락해버렸는데 나를 풀어준들 네놈 밑에 깔리는 것 말고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이냐?"
"후후,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어찌 요정을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겠습니까? 오랜 세월을 살아오시며 몇 번이나 기적을 이루셨던 분이니, 무시해드리는 건 오히려 실례지요. 성하께서 조금 고통받으시는 덕분에 세계평화가 유지되고 있습니다."
몸은 사랑을 나누면서도 말로는 계속 그녀를 자극하는 교황의 모습은 얄밉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구속구에 고정된 요정 소녀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듯 교황의 물건을 받아들이며 쾌락의 신음을 토해낸다. 그녀는 심지어 혼자서 갇혀있을 때도 저 자세로 있어야 하는듯 했다.
은신하고 있었던 체사레나는 경악을 금치 못했는데, 대화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바로 눈앞의 요정 소녀가 약 1400년 전 바티칸을 세운 초대 교황 니뮤에 1세(Nimue I) 성하라는 말이었다. 만약 '사해문서'를 발견하기 전이었다면 믿지 못했겠지만, 소녀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니 그 금서에 표현된 니뮤에 성하가 20년은 족히 어려진듯한 모습과 일치하는 것 같았다. 인간족 남성으로 표현된 성화의 모습들과도 어느 정도 닮은 부분이 있었다
후에 찾아보니, 비비안(Viviane)이란 이름은 니뮤에(Nimue)를 요정어로서 표현한 것으로 아마 소녀의 본명인듯 싶었다. 고대의 전설을 수록한 책에 같은 이름으로, '호수의 귀부인(Lady of Lake)'이라는 별칭을 지닌 신비한 요정 여왕의 설화가 나오는데, 호수처럼 푸른 머리카락이 넘실대는 모습을 보니 무관하지 않아보였다. 설화에 따르면 그녀는 역대 교황의 상징인 전설적인 성검 엑스칼리버(Excalibur)의 원 주인이기도 했다.
"개새끼! 시발새끼! 하악하악, 하필이면 네놈 같은 놈이 나를 발견해서. 아아, 갈라드리엘이 보고 싶어.."
비비안의 푸른 눈빛에는 절망감, 매서움, 자애로움, 혐오스러움, 굴종감, 쾌락감과 같은 다양한 감정들이 섞여있었다. 하지만 알렉산데르 교황은 냉소를 지으며, 주변에 놓여있던 끔찍한 도구들을 손에 쥐었다. 소프트한 조교용부터 하드한 고문용까지, 이제껏 체사레나도 한번도 보지 못했던 다양한 성적 도구들이 주위에 널려 있었다.
"성직자께서 욕을 하시면 어떡하십니까. 후후, 시발년이. 닥치고 엉덩이 들어올려."
몽둥이와 검의 중간처럼 생긴 백색의 긴 무기가 비비안의 항문에 푸욱 꽂혔다.
"하으윽. 네, 드, 들어올릴게요. 잘못했습니다. 이것만은…..크으으으윽…"
체사레나는 그 몽둥이 형태의 검이 평소에 교황이 패용하고 다니던 성검 엑스칼리버인 것을 알아보았다. 엑스칼리버는 원 주인의 항문에 꽂힌 채 리드미컬하게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호수의 귀부인께서는 엄청난 두 대물에 의해 더블 페네트레이션을 당하는 느낌일 것이다.
"주 알타리엘, 그러니까 갈라드리엘 님께서 어디 계신지는 정말 모르십니까?"
"네에, 주인님.. 크흐흐흑, 그저 어머니가 살아있다는 것만 느껴질뿐. 크하앙, 이 지하실에 갇혀서는 짐작도 되지 않아요."
이 말인즉슨 기독교의 신화적 존재이자 신의 아드님(따님)으로 추앙받는 알타리엘의 본명은 요정어로 갈라드리엘이며, 비비안의 모친이라는 얘기였다.
"짐작이 되지 않아도 계속 생각해 보십시오. 일단 오늘은 가기 전에 엑스칼리버랑 몇몇 도구들을 계속 꽂아드린 채로 가겠습니다. 관심있으실 진 모르겠지만, 요즘 대륙의 정세가 급박히 돌아가는지라 처리해야 할 업무가 늘어난 탓에, 사흘 후쯤에야 시간이 날 것 같군요.
알렉산데르의 말투는 다시 부드러워졌지만, 비비안은 공포심과 굴종감에 절여진 눈으로 그녀에게 가까워지는 끔찍한 학대도구들을 바라보았다. 알렉산데르가 지닌 광대한 신성력의 비밀은 비비안의 존재 덕분이었지만, 그는 단지 신성력을 추출하기 위해 비비안과 만나는 게 아니었다. 마음대로 소녀를 짓뭉개고 가학하며 마음 속의 어두운 충동을 해소하려는 의도도 있었던 것이다.
"흐윽, 네놈은, 정말로, 흐으, 상종 못할 쓰레기 자식이다."
"호오, 그럼 이 즐거운 장난감들을 성하의 세 구멍에서 모조리 빼드리고 갈까요?
교황은 설치하던 도구들을 하나둘 빼내기 시작했고, 비비안은 고뇌어린 얼굴로 으으 신음소리를 내뱉다가 고개를 푹 숙이고 고개를 젓는다.
"………………아, 아니에요. 부디…… 잘못했으니, 흐윽… 네, 좋아요오! 하악, 바로, 바로 그렇게 이 노예년에게 빠짐없이 박아주시고 가셨으면……아흣크아앙!"
교황은 보상을 주듯, 비비안의 항문과 질에, 각각 다양한 질감과 크기를 지닌 서너 개의 페니스형 도구들을 잘 꽂아넣으며 배치했고, 각각이 회색 빛을 내뿜으면서 신기하게도 자동으로 강렬한 피스톤운동을 전개하는 중이었다.
대악마 롱기누스가 주 알타리엘을 찔렀다는 '롱기누스의 창', 최후의 전투를 앞둔 만찬 때 사용했다는 '성배'의 손잡이 등등 다양한 성물이 비비안의 몸 이곳저곳에 꽂혀 있다. 소녀의 아주 조그마한 유방에는 자동떨림효과가 있는 집게가 유두 인근에서 바르르대며 집혀 있었고, 그녀의 살갗 곳곳과 얼굴에는 볼개그와…….
아아, 각종 하드한 성행위에 익숙한 체사레나조차, 소녀가 암캐처럼 학대당하고 조련되는 모습을 차마 뜬눈으로 지켜볼 수 없었다. 교황이 정액인지 오줌인지 알 수 없는 체액을 비비안에게 맛있게 먹이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그 자리에서 조심스럽게 철문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올 수 밖에 없었다. 더 지체하면 들킬 수도 있었던 터라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가끔씩 교황이 엑스칼리버를 패용하지 않은 채 다니는 것, 임무 중에 깊은 오지에 들어가 요정의 주식들로 보였던 희귀한 식물이나 성분을 구해오는 게 있었던 것 등을 비롯해, 평소에 생각치 못했던 여러 가지 단서들이 하나의 사건에 의해 완벽히 짜맞춰졌다.
이사벨라는 완전 흥미진진한 태도로 체사레나의 목격담을 경청했다. 체사레나는 비비안을 두고 지하실을 몰래 빠져나오고 말았다는 죄책감에 휩싸여 있었는데, 숨어있는 도중에 눈이 여러 번 마주치며, 소녀가 그녀의 존재를 알아본듯한 게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체사레나는 자신의 얘기를 태연하게 즐기는 벨라의 모습에 약간 질린듯한 표정이었다.
"혹시 내 얘기를 안 믿는 건가?"
"그럴리가, 체사. 나는 그날 밤의 맹세 이후, 네가 하는 모든 말을 신뢰하고 있어. 나는 단지 바토리 여대공 전하를 사로잡으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조교를 해볼까 생각 중이었거든."
무슨 상상을 하는지 벨라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블라드 공작의 기억 덕분에 에르제베트 양의 모든 성감대와 취약부위, 섹스성향까지 알 수 있어. 그녀는 극단적인 S와 극단적인 M을 왔다갔다 하면서, 중간이 없는 성격이지. 내게 M의 성향이 있는 건 맞지만, 그녀가 M을 원할 때는 나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당하는 모습이 더군. 하루간 비천한 모습으로 영지의 술집과 사창가를 전전하며 욕구를 푼 뒤, 감사의 의미로 그곳에 살던 수백 명을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머리통을 쪼개버렸고, 성기술이 뛰어났던 한두 명의 남자만 감염시켜버렸네..."
"허어, 그 또한 인간이 할 짓이 아니군. 어찌 보면 알렉산데르 교황과도 비슷한 점이 많다. 아까 말하진 않았지만, 그날의 대화 중에는 비비안 성하께서 참람하게도…… 이미 배덕한 교황에 의해 수십년 동안 바티칸의 하층민 수천 명에게 돌려지며 윤간 조교를 당하셨다는 내용도 있었네. 고귀한 요정족이 그만큼 많은 인간 남성의 성기들을 받아들인 건 처음일 거란 말과 함께…."
체사레나는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물론 내게 있어 일순위는 루크레치아지만, 종교에 처음 입문할 때부터 경애해왔던 비비안 성하도 언젠가 내 힘으로 꼭 구출하고 싶다."
"어우, 어찌 인간의 악의가 뱀파이어와 쌍벽을 이룰만큼인지, 대단히 참람하고 공포스러운 일이군. 언젠가 루크레치아를 구출할 때, 여력이 남을지는 모르겠지만 나 또한 힘을 보태겠다."
벨라는 입안에 머금어진 달콤한 샴페인이 평소와 달리 씁쓸하게 느껴졌다.
"아무튼 에르체베트가 내 눈앞에 띈다면, S를 이루는 자존감을 철저히 부숴주고, 남자들에게 사소한 반항조차 할 수 없게 철저한 M으로 조교시켜버릴거야. 그래야지 고분고분 나에게 종속될 수 있을 것 같거든."
"오, 벨라. 그 말은 너 그녀를 죽일 생각이 아니라는 거야?"
체사레나가 놀란 눈빛으로 반문하자, 이사벨라는 음험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한계를 넘은 악인에게 있어, 죽음은 너무나 사치스러운 형벌이지."
그 말에는 체사레나도 어느 정도 동감하는 바였다.
"그 정도는 테레지아에 의해 재량이 주어진 사안이야. 더구나 제국 정부에서 계획대로 에르제베트를 공적(公敵)으로 공식선포하지 못한 건, 그녀가 동부 지방에 미치는 영향력이 생각보다 광범위했기 때문이디. 어쩌면 우리가 등 뒤에서 기습하기 위해 이동하려는 몰다비아(Moldavia)의 개척령들 또한 그녀의 영향력 하에 놓여있을 수도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