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5/49)

 이후 포주와 마담에게서 십분 정도 간단한 교육을 받았다. 그들은 가르침을 잘 흡수하는 그녀를 엄하면서도 흐뭇한 표정으로 바라 보았다.

 마담은 벨라가 한 기본화장을 싹 지워버렸다.

 "창녀들은 이렇게 화장하지 않는단다."

 그녀는 선배 창녀 한 명을 불러오더니 뒷골목 여자들이 하는 화장법을 제대로 가르쳤다. 분칠을 떡이 되도록 한 채 향수를 팍팍 뿌린다. 작은 화장거울을 보니, 어느새 벨라의 얼굴에서도 어디에서나 흔한 싸구려 창녀의 티가 나기 시작했다.

 "후후, 마리아. 새로운 신입의 이름도 마리아이니 잘 가르쳐보라고. 그러고 보니 둘이 꽤 닮았는데?"

 '설마 진짜 엄마는 아니겠지?'

 벨라는 말도 안 되는 상상에 고개를 흔들었다. 창녀 분장을 한 벨라의 모습은 마리아라는 선배 창녀의 모습과 꽤 비슷한 바가 있었다. 집시족인 것도 그렇고 머리카락도 새빨간데다 쭉 찢어진 눈매와 쳐진 코도 닮았다. 나이도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 정도 되어 보였으니 가능성은 있는 얘기였다.

 뭐, 집시 종족 대부분이 이렇게 생겼고 대륙에서 제일 흔한 이름이 마리아인만큼 아닐 가능성이 더 높았다. 그래도 상상만으로 온몸이 짜릿해 지는 느낌이었다.

 "호호호, 같은 민족이기도 하니까, 앞으로 엄마 마리아, 딸 마리아로 부르면 딱이겠는데?"

 두 창기를 살펴보던 마담이 재밌다는듯 말했다.

 선배 창녀는 전형적인 밑바닥 인생으로 살며 삶에 지친듯한 표정이었지만, 마담의 말에 고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벨라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언니는 또 무슨 변태 같은 소리여! 어쨌든 환영해, 신입. 여긴 세바스토폴에서 제일 알아주는 창관이라 유랑단에서처럼 굶어서 지내는 일은 없을거야."

 "네…. 네에. 반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어이, 5분 후에 같이 7번 룸으로 와. 얘를 데리고 온 손님들이 스무 명이나 넘게 기다리고 있으니까, 시간은 꼭 지켜. 너야 이 동네서 닳고 닳았으니까 잘 상대하겠지만, 딸은 아까부터 많이 당하고 왔으니까 몸 축나지 않게 잘 봐줘라."

 포주는 그 말을 마친 채 마담과 함께 화장대를 떠났다.

 선배 마리아는 직접 후배의 입술에 빨간 립클로즈를 발라주고, 이곳에서 쓰는 치렁치렁한 적갈색 붙임머리를 붙여주었다. 남아도는 끈 하나를 가져와 사과머리처럼 질끈 묶어주니 제법 귀여운 태가 난다.

 "썅! 나이가 드니 매일같이 떼거지 손님만 상대하게 되네. 몇 년만 더 버티고 돈 좀 모이면 이 바닥을 뜨든지 해야지 원."

 선배 마리아는 한숨을 푹푹 쉬다가 애써 미소를 지으며 벨라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여튼 반가워, 후배! 다른 창관은 집시로 가득 차있는 곳도 있지만, 이상하게 여기엔 나 뿐이어서 외로웠는데 잘 됐다. 그동안 낳은 자식들 중에 딸년 하나가 살아있다면 너보다 약간 나이가 많았을텐데. 요사이 순례 중인 극단에서 온거니?"

 마담에게 하는 꼴이나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걸 보면 성격이 꽤 드센 아줌마인 것 같은데, 같은 동족인지라 친절하게 대해주는 것 같았다. 벨라는 문득 드는 이상한 예감에 별 생각없이 떠오른 말을 내뱉었다.

  

 "아니에요, 선배님. 혹시 그럴리 없겠지만 요한(Johan)이란 아저씨 알아요? 베네치아에 살던 몰락귀족 용병이요."

 마리아는 후배를 손님들 상대하기 쉬운 복장으로 바삐 갈아입히다가 별안간 동작을 딱 멈췄다. 이상한 기색을 느낀 벨라의 얼굴도 삽시간에 굳어졌다.

 약 30분 후, 세바스토폴에서 제일 인기있는 창관의 특대형 스위트룸.

 "아앙! 흐아앙! 주, 주인님들! 제발 살살.. 하으읏!"

 두 명의 집시족 창녀가 족히 서른은 되어 보이는 남자들 사이에 둘러쌓여 육보시를 하고 있다.

 "이 두 년이 실제로 모녀관계라면서?"

 "자지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고 환장하는 것도 똑같네."

 "엄마년은 몇 년 전부터 나같이 연상 취향인 놈들 사이에서는 유명했잖아. 색스러운 아줌마 창녀로 말이야. 그동안 이년 따먹은 게 서른번은 넘어서 몸속 구석구석까지 잘 아는데, 딸년은 어떤지 실험해봐야겠다."

 사내들은 처음에 모녀관계를 그날의 컨셉으로 생각했지만, 따먹으면서 여자들의 반응을 보니 진짜인 게 분명했다.

 "흐윽! 엄마. 이십년이 넘는 세월동안, 우으, 어떻게 지낸거야?"

 "흑! 크흑! 아우욱! 계속, 윽, 이곳저곳 떠돌다가, 이렇게 된 건 몇 년 전부터야."

 "엄마도, 나처럼 완전히 앗… 걸레가 되어 버린...우우웁! 켁!"

 "하아아아, 너만은 이런 데 들어오지 말았어야 했는데. 여기서, 흣, 보게 될 줄이야!"

 "으으으읍! 후으으으읍!"

 하지만 딸의 입은 사내의 육봉으로 완전히 틀어막혀 도저히 대답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무슨 이런 기막힌 소설 같은 상황이? 이런 시기 이런 장소에서 어머니를 만나버리다니…..' '

 유년기 이후 약 20여 년 만에 사창가에서 상봉해버린 것이다. 벨라는 평소 모친에 대한 원망감이 컸기에, 솔직히 반가움보다는 일단 어이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묘한 흥분감도 올라왔다.

 "난 딸년 때문에 앞으로 여기 자주 찾을 것 같은데? 돈만 있으면 맨날 먹으러 오고 싶어. 여기 마리아 앤 마리아 세트 하나! 이런 식으로 말이야. 낄낄낄."

 "맞아맞아. 이년보다 이쁜 애들은 몇 명 알지만, 걔들은 이렇게 고분고분 얌전하게 남자를 받진 않는다고. 왠지 모르게 고양이 같은 색기가 좌르르 흐르는 게 몇번이고 따먹고 싶게 생겼어. 엉덩이도 토실토실하고 말이야."

 -찰싹

 "이렇게 쌔끈한 모녀덮밥을 무료로 시식하게 될 줄이야, 오늘처럼 운이 좋은 날이 또 있을까?"

 남자들은 그녀들의 앞뒤에 다닥다닥 붙은 채로 음담패설을 지껄여댔다. 두 모녀는 각자의 질속, 애널속, 입안, 손아귀를 검붉은 육봉들에게 내어준 채, 몸을 비틀며 뜨거운 신음을 내뱉는다.

 마침 마리아와 벨라의 입보지를 즐기던 사내들이 정액을 싸지르기 시작했다.

 그들은 흥미로운 장면을 만들기 위해 두 모녀를 가까이 붙여주었다. 뒤로는 쉴틈없이 남자들의 자지들을 받아들이면서, 앞으로는 얼굴을 맞대고 뜨거운 키스를 하며 각자의 입에 담긴 좆물을 교환한다.

 "누가 모녀 아니랄까봐. 딸년도 어린 나이에 벌써 음탕하기가 짝이 없구나. 거리에서부터 박히며 왔는데도 물찬제비처럼 팔팔하게 힘쓰는 걸 보니 창녀로서 대성하겠어."

 "감사합니다. 주인님. 앞으로도 마음껏 이용해주세요~"

 "그러마. 새로운 마리아를 맛보기 위해서라도. 후후."

 그렇게 자신의 성욕을 채운 남자들은 타락한 모녀의 모습을 관전하다가 하나둘 빠져나갔고, 이제 후끈한 돌림빵도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벨라는 살짝 얼굴을 찌푸리더니, 손놀림과 몸놀림을 더욱 급하고 강력하게 전개했다. 덕분에 남자들은 30초도 안 되어 그녀의 몸 여기저기에 백탁액을 발사할 수 밖에 없었다.

 "크윽, 어린 마리아는 박을수록 흥분하는지, 마지막에 꽉꽉 물어주네."

 진짜 마리아는 이미 십분 전부터 반쯤 탈진한 채로 구석에 누워 있다가, 벨라 쪽에서 기회를 잡지 못한 한 노인을 마지막으로 받아들이며 연륜있게 액을 짜내고 일을 끝마쳤다.

 벨라는 정액범벅이 된 얼굴을 손으로 한두차례 쓸어내렸지만, 이미 손도 마찬가지 상태였기 때문에 별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남아있던 남자들이 물휴지로 뒤처리를 끝마친 뒤 주섬주섬 옷을 꺼내입고 나가려는데, 별안간 '쾅' 소리가 나며 나무로 된 출입문이 산산조각난다.

 막 나가려던 남자들 몇 명이, 방으로 던져진 떡대들에 부딪히며 정신없이 나뒹군다.

 마리아는 깜짝 놀라 몸을 웅크리고 구석에 숨었지만, 벨라는 태연히 나신 이곳저곳을 물휴지로 닦아낸 뒤, 정액에 절여진 창녀복을 탁탁 털면서 입는다.

 마리아가 손짓하며 그녀를 불렀지만, 붉은 빛으로 변한 기묘한 안구를 보고 말을 잇지 못한 채 굳어버린다.

 "저치들 내가 아는 자식들이야. 일단 내 엄마니까, 끝내고 꼭 데리러 올게. 이번에는 예전처럼 떠나지 말고 여기서 얌전히 기다려줘. "

 그 말을 끝마침과 동시에, 벨라의 신형이 방안에서 귀신같이 사라지며 복도의 기둥 뒤편에 쓱 나타난다.

 창관의 중앙복도는 이미 아수라장이 된 상황이었다. 바닥에는 한때 문과 창문을 구성하던 조각들이 이리저리 흩어지며 돌풍에 쓸려다녔다. 방 안에서 정사를 즐기던 손님들과 창녀들은 난데없는 사건에 비명을 지르며 몸을 피한다.

 먼지가 자욱하게 날리는 사이로 두 거한의 모습이 보인다. 족히 마흔 명은 넘을 것 같은 떡대들이 파이프와 각목, 창, 단검 같은 무기들을 들고 양쪽 복도에서 우르르 몰려오며 달려들었다. 하지만 거한들은 그들이 다가오는 족족 억센 팔로 목을 틀어잡아 집어던지고 있었고, 때로는 두툼한 다리로 상대의 가슴을 뻥 차서 뒤에 있던 이들까지 복도 저편으로 날려 보냈다.

 "아구구구구."

 맨 뒤편에 서있던 포주는 울상을 지은 채, 옆에 서있던 이에게 다급히 묻는다.

 "과연 저 두 놈을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 우리 애들은 물론이고, 도시의 건달패들을 통째로 털어넣어 이백명 넘게 동원했는데도 이 지경입니다. 위쪽에 요청했다는 지원군은 대체 언제 오는 겁니까?"

 옆에 서있던 남자는 간단한 무장을 갖춘 중년인이었는데, 뒷골목 건달패는 아닌 것 같고, 개척단의 용병 정도로 보였다.

 "무리요. 그나마 나타샤가 있어서 이만큼이라도 버티는 거지. 총관님은 요즘 다른 일 때문에 무척 바쁘신데 괜한 일로 심기를 쓰시게 만든 것 같아 걱정이군. 그 아이를 함부로 내보낸 건 너무 경솔한 짓이었어."

 "하지만 그년 버르장머리를 뜯어 고치기 위해, 한시라도 빨리 돌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도 아주 우락부락한 놈들에게 풀어 놓아서 앙칼진 성격을 죽여놓으라면서요."

 "어허, 그것도 상대를 봐가면서 했어야지... 이 바닥에 있는 게 몇 년째인데 저토록 막나가는 놈들을 알아보지 못한 거요? 음…….. 저런 인상착의의 용병들에 대해선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데…. 하얀 금발머리에 2m가 넘는 장신… 무언가 떠오를 것 같군…."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의 눈길이 형제의 포악한 남색 눈동자에 가서 멎었다.

 "남색의 공포……..허억?! 저자들은 설마………바이킹(Viking)?"

 그의 눈이 세차게 흔들리는 걸 본 포주가 의아한듯 물어보았다.

 "바이킹이요??"

 이곳 몰다비아는 바이킹의 주요 거주지역인 북해(北海) 유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그 흉폭한 위험을 겪어보지 못한 곳이다. 하지만 대륙을 떠도는 용병들에게, 바이킹이란 이름은 절대 몰라서는 안 되는 공포의 위명이었다. 그들을 보자마자 전력을 다해 도망쳐야 하는…

 용병이 두려움에 떠는 걸 보고 포주도 불안감을 느끼는지 안색이 새파래졌다.

 나타샤는 포주가 쥐어준 몇 개의 단검들을 양손에 든 채 두 바이킹의 주변을 원형으로 맴돌며 그들을 공격하고 있었다. 몸 주변에는 아까보다 털들이 좀더 솟아나 있었고, 목의 갈기는 정전기라도 받은듯 바짝 서있다. 하지만 바이킹들은 그 큰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의 단검술과 비도술을 요리조리 잘 피해냈다.

 출입문 근처의 메인 홀에서 대치 상태가 이어지는 중이었는데, 정규군의 복식을 한 이들이 문을 열고 나타나 그들을 둘러쌌다.

 "우리는 변경백의 병사들이다. 감히 세바스토폴의 법을 어기고 폭력과 살상을 저지른 자들은 모두 무릎을 꿇고 항복하라!"

 "이제 슬슬 짜증이 나는군."

 "이곳에 아직도 치안대가 남아있었나?"

 그들의 앞으로 살이 뒤룩뒤룩 찐 대머리 중년 남자가 나온다. 턱수염은 더부룩하게 나서 얼굴의 반을 뒤덮고 가슴 위까지 닿아있었고, 적갈색 눈동자를 끊임없이 굴리며 번들거렸다. 나타샤는 혐오와 증오가 가득 뒤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지만, 곧 그쪽으로 다가가 형제들을 막아서며 도리어 그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었다.

 포주와 용병 사내는 그 중년인의 모습을 본 뒤로 벌벌 떨고 있었다.

 "총관님께서 직접 행차하시다니……..우, 우린 죽었다."

 총관이라 불린 중년인은 나타샤의 청회색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잘했다고 칭찬해준 뒤, 형제를 향해 느릿느릿 말을 꺼냈다.

 "본인은 현재 몰다비아 개척령의 변경백 대리를 맡고 있는 세바스토폴의 총관, 라스푸틴(Rasputin)이다. 이곳에서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제보를 듣고 왔지."

 만프리드와 랑발손은 다소 황당한 표정이었다. 총관이라면 변경백이 연속으로 죽고 실종된 지금, 개척령의 최고 권력자인 사람이었다. 아무리 영지가 막장 상태라고 해도, 어찌 그런 사람이 사창가 안까지 출입한다는 말인가?

 더군다나 목에 십자가 목걸이를 걸고 한팔에 묵주를 차고 있는 걸로 보아 기독교 사제로 보였다. 그의 생김새 자체는 이런 곳에 어울리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보자면 아주 언밸런스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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