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6화 (46/49)

 "뭐, 아무래도 좋지. 우리는 북해에서 온 바이킹 족이다. 우리들은 발키리의 가호를 따르니, 대륙의 하찮은 법령이나 예도 따위를 들먹일 생각이라면 때려쳐라."

 만프리드의 엄포에 라스푸틴은 전혀 동요하지 않고 부드럽게 말을 받았다.

 "호오, 위대한 북해의 전사들을 몰라 보고, 우리 영지민들이 무례를 범한 것이었군. 이 머나먼 동부까지는 무슨 일로 오신 것인가?"

 "그거야 너 같은 중늙은이가 상관할 일이 아니다. 오딘 신의 전사들은 땅과 하늘 사이로 공기와 물이 흐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라스푸틴은 살짝 눈쌀을 찌푸렸으나, 야만인들이 무슨 예의를 알까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바이킹 족의 막무가내식 침략방식은 대륙에 흔히 알려져 있었다. 그들은 프로방스 왕국을 침공해 그 영토 안에 노르망디 공국을 세웠으며, 심지어 서쪽 대해를 멀리 돌아 지중해로 들어와서는 이탈리아 반도 남단에 상륙하여 시칠리아 왕국을 세웠다.

 바이킹의 함선이 다닐 수 없는 내륙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강이 끝나는 곳에서 내린 뒤, 타고 온 배를 어깨에 맨 채 또다른 강이 나오기 전까지 영차영차 들고 다녔다. 단지 그 경로 상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주변의 평화로운 마을들을 아비규환으로 만들어 놓으면서 말이다.

 "이곳에 오래 머물 예정이라면, 나의 호위가 되는 게 어떠한가? 그대들의 말대로 제국법 따위는 상관없이, 봉급이든 여자든 넉넉하게 누리도록 해주지. 벌판 너머에는 그대들의 호연지기를 풀 수 있는 야만인들과 몬스터들이 우글거린다. 성내에서 마음대로 폭력을 쓰고 다녀도 상관없다."

 형제들은 잠시 그의 제안에 혹했으나 그들에겐 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

 "됐다. 나는 이런 비좁고 변변찮은 땅에 정착할 생각은 없다. 허약한 루스 녀석들과 드잡이를 해봤자 하나도 재미없는 일이지."

 라스푸틴은 눈앞의 두 사내가 그 무서운 바바리안들을 약골 취급하자 더더욱 탐이 났다. 실제로 북해의 동쪽에 사는 바이킹들은 가끔씩 황무지의 북쪽으로 넘어와서 바바리안들을 잡아가 노예로 삼곤 했다.

 바이킹족은 주로 바바리아인 노예들에게 노젓는 일을 시키며, 그들을 바이킹어로 '노젓는 이'를 의미하는 루스(Rus) 혹은 러시안(Russian)이라고 불렀다. 이를 대륙공용어로 번역하면 슬라브인(Slavian)이 되지만, 신성제국에서는 보통 바바리안(Bavarian)이라고 부르는 게 일반적이다.

 라스푸틴은 자신의 앞을 보호하던 나타샤의 작은 체구를 들어올려 그녀의 오동통한 가슴을 만지작 댔다. 주변의 병사들도 모두 음침한 웃음기가 담긴 눈으로 그녀를 쳐다보는 것을 보니, 가장 아래의 하급 병사들조차 이미 그녀를 따먹어본듯 했다.

 "나타샤를 원한다고 했나? 세바스토폴에 머무른다면 얼마든지 그녀를 안고 살아도 된다네. 이 아이는 본래 내 성노예니 말이야. 자, 나타샤."

 나타샤는 라스푸틴의 까끌까끌한 턱수염에 파묻힌 채 싫은 표정을 가득 지었지만, 이내 그의 바지를 열어 성기를 꺼내고 펠라를 시작했다. 놀랍게도 라스푸틴의 성기는 바이킹 형제 중 가장 대물인 만프리드와 비슷하게 30cm에 가까운 크기였는데, 나타샤가 구역질을 하면서 빨자 50cm 넘게 발기 되었다.

 두 형제는 눈앞에 펼쳐진 야릇한 장면에 마음이 동했지만, 며칠 후 트란실바니아로 떠나야 한다는 사정을 잊지 않았다.

 "우리는 이 동네에 눌러앉아 허약한 대륙놈을 호위하며 지낼 마음은 없다. 왜 돈을 준다는 데도 그녀를 팔지 않는다는 건가? 함부로 대하는 것을 보면 친척도 아니고 고작 시종일 뿐인데 이해할 수 없다."

 라스푸틴은 눈을 지긋이 감은 채 나타샤의 입속을 느끼다가 답답한 표정을 짓는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주위를 쓱 둘러보다가 이내 결심한듯 말을 꺼냈다.

 "어차피 자네들은 문명에 의탁하고 있는 자들이 아니니 솔직하게 말해주지. 이 조그마한 창녀 아가씨가 실은 몰다비아의 지체높은 변경백 나으리였다네."

 형제들은 지금 자신들이 무슨 말을 들은건지 의심하며 눈을 껌뻑거렸다. 라스푸틴이 해준 이야기는 몹시 놀라운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나타샤의 본명은 아나스타샤 폰 로마노프(Anastasha von Romanope)로, 전대 변경백의 막내딸이었다. 그녀의 집안은 웨어울프 출신이었지만 제국에 오랫동안 봉사하면서 작위를 얻고 개척령을 다스리게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용맹한 수인족 전사로 바바리아를 여러 차례 원정하며 영토를 넓혀 나갔지만, 몇 년전부터 주변의 왈라키아나 트란실바니아에서 지원이 끊어지는 바람에 급격히 사정이 어려워졌다.

 이러한 군사적, 재정적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정예군을 총동원하여 원정을 떠났으나 그것이 마지막 원정이 되어버린 것이다. 자식들은 본래 다섯 명이나 있었으나, 성에 남아있었던 건 막내딸인 아나스타샤 뿐이었다. 결국 그녀가 유일한 계승자가 되어 변경백의 지위를 물려받았다.

 아나스타샤는 나이는 어렸지만 아버지를 닮아 용맹한 전사였고, 실종 전까지 몇 주간 영지의 소요사태를 진압하고 훌륭히 내정을 이끌었다.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3주 전에 의문스럽게 실종되었다고 알려져 있었는데, 라스푸틴의 성노예가 되어 사창가에서 교육받고 있었던 것이다.

 라스푸틴(Rasputin)은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없는 기이한 수도승으로, 전대 변경백의 총애를 얻어 세바스토폴 총관의 직위를 꿰찬 인물이었다. 콘스탄티노플의 동방정교회로부터 사제서품을 받았으나, 신관으로서는 정말 드물게도 고위급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다. 서방가톨릭교회에서 흑마법사가 사제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었지만, 상대적으로 유연한 동방정교회의 경우 이처럼 간혹 존재했다.

 아나스타샤는 부모와 달리 그의 음침한 성격을 싫어했으며, 무언가 꿍꿍이가 있는 인물로 여겨 항상 경계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가 방심해서 낮잠을 자는 틈을 타, 몰래 침실로 잠입해서 부분세뇌마법을 걸어버렸지. 아무리 싫다고 해도 무조건 내 명령을 따를 수 밖에 없게 말야. 우리 불쌍한 여변경백님은 전날밤에 야만인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해 밤새 성벽 위를 뛰어다니셨고, 오전동안에는 졸음을 참은 채 영지의 격무를 처리하느라 몹시 지쳐계신 상태였다네. 한손에 검을 꼭 쥔 채 땀에 절어 자던 소녀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흐흐."

 그날, 바로 아나스타샤는 총관에게 순결을 잃고 그의 성노예로 전락했다. 형제가 본 것처럼 라스푸틴의 성기는 인간의 것이라고는 볼 수 없는 비정상적인 대물이었기에, 처녀였던 아나스타샤가 얼마나 고통스러워했을지는 상상조차 가지 않는다.

 라스푸틴은 쾌감을 증폭시키고 성욕을 일으키는 흑마법을 시전하여 아나스타샤를 철저히 조교했다. 조교 기술자들과 힘깨나 쓴다는 부하들을 불러서, 잠자는 시간까지 그녀에게 자지를 박아놓아 성노예 생활에 빠르게 적응시켰다. 그때마다 아나스타샤는 이를 갈면서 저항하려 했지만, 라스푸틴이 내뱉은 한마디 한마디에 굴복하여 몸을 굴릴 수 밖에 없었다.

 처녀를 잃은지 일주일 새, 삼백명이 넘는 부하들이 그녀의 안을 맛보았다. 몰다비아를 위해 절치부심하던 여변경백의 권위는 땅에 떨어졌다. 이후 라스푸틴은 새 변경백의 실종을 발표하고 스스로 대리통치를 시작했다. 아나스타샤는 아예 사창가로 보내 버려, 조교의 마지막 단계를 밟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나타샤라는 이름의 창기로 보름동안 훈련받았고, 잔혹한 인간 남성들에게 서서히 길들여져 가던 중이었다.

 만프리드와 랑발손은 그의 얘기를 몹시 흥미롭게 들으며 아나스타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라스푸틴의 이야기에 분한듯 눈믈까지 흘리면서 몸을 떨고 있었는데, 당장이라도 그에게 달려들어 물어뜯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현실은 잔혹했다. 여전히 라스푸틴의 밑에 꿇어앉아 그의 성기를 쪽쪽 빨면서 애무해야 했던 것이다.

 마침내 아나스타샤의 노력이 통했는지 라스푸틴의 긴 성기에서 허여멀건한 액체가 뿜어져 나오며 소녀의 입안으로 쏟아져 들어간다. 얼마나 많은 양이 장시간동안 쏟아지는지, 정액은 소녀의 입을 가득 채우고 빠져나와 그녀의 얼굴 위에도 지그재그로 잔뜩 흩뿌려졌다. 흡사 오줌을 누는듯한 모양새였다.

 "켁, 켁!"

 형제는 그 배덕한 모습을 바로 앞에서 지켜 보면서, 사라졌던 성욕이 다시 치밀어오르는 걸 느꼈다. 당장이라도 라스푸틴의 옆에 서서 정액범벅이 된 아나스타샤를 같이 범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꾹 참아야 했다.

 "좋다. 그녀를 빌려주면 여행길에 잠시 사용한 뒤 다시 데려다 놓는 걸로 하지."

 바이킹의 말에 라스푸틴은 분노했다. 저 답답한 야만인들에게 대화란 그저 상호 간 타협이 아닌 일방의 통보에 불과한 것이었다. 아나스타샤가 바깥으로 빠져나가 제국 정부에 영지의 실상을 알리고 탄원서를 제출한다면 그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말로 해서는 못 알아듣는 자들이었군."

 라스푸틴은 요사스러운 눈빛을 빛내며 품 속에서 회색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마법사의 오브인 것 같기도 했고, 신관이 들고 다니는 홀처럼 보이기도 했다.

 만프리드와 랑발손 형제 역시 각자 차고 있던 바이킹소드를 높이 뽑아들었다.

 "감히 나를 못 믿는 것인가? 위대한 노르망디의 공자(公子) 만프리드를?"

 도를 횡으로 거칠게 휘두르자 드센 풍압이 발생하며, 주변으로 접근하던 병사들이 나가 떨어진다. 어쩌다 보니 영지 최고의 권력자를 공격하게 됐지만, 바이킹 답게 뒷일 따윈 깨끗이 잊어버렸다. 섣불리 튀지 말라던 벨라와 프리드리히의 지시는 이미 머릿속에서 날아가버린 지 오래였다.

 "소드 익스퍼트!"

 랑발손의 검에서 선명한 남색 검기(劍氣)가 솟아오르자 병사들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예 엎어진 채 기어서 도망가는 병사도 있었다.

 현재 만프리드는 익스퍼트 상급, 랑발손은 익스퍼트 중급의 경지였는데, 이 정도면 A급 용병에 해당하는 실력으로 절대 흔하지 않았다. 몰다비아의 최강자는 익스퍼트 최상급의 실력을 지닌 전대 변경백이었는데, 그의 사후에는 대규모 개척용병단의 단장들 중 익스퍼트 상급이 두 명 있을 뿐이었다. 지난 원정으로 정규군이 반이상 사라진 탓에, 남아있는 기사단장도 중급에 불과했다.

 "총관님, 조심하십시오!"

 바이킹의 거도(巨刀)가 정면으로 짓쳐들었지만, 라스푸틴의 붉은 눈빛이 더욱 짙어졌다. 파도처럼 솟아난 검기가 머리통을 막 가르려는 순간, 그의 신형이 흔들리듯 옆으로 이동한다. 동시에 지팡이를 들자 붉은 빛이 측면을 향해 빠르게 쏘아진다.

 "바이탈리티 드레인(Vitality Drain)."

 "크으으윽!"

 4단계 흑마법 주문이었다. 만프리드는 오러로 전환될 수 있는 에너지의 상당수가, 광선에 적중된 왼팔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꽤 위력있는 마법을 신속하게 발동시킨 것으로 보아, 고위급 마법사로 보였다. 순간 불길한 기분이 느껴서 주로 사용하는 오른팔을 뒤로 빼놓은 게 다행이었다.

 아나스타샤는 입가에 라스푸틴의 정액을 가득 묻힌 채 랑발손에게 달려들고 있었다.

 이때 구석의 기둥 뒤에서 이를 지켜보던 붉은 머리 여인이 갑자기 아나스타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같은 창녀의 복식을 하고 있었기에, 아나스타샤는 깜짝 놀라 방향을 틀려고 했다. 하지만 그녀의 몸이 갑작스럽게 급 브레이크를 건 듯 앞으로 쏠리며 그 자리에 정확히 고정되기 시작했다.

 "스톱(Stop)."

 벨라가 손을 뻗으며 내뱉은 한 마디에 '달리기' 운동을 구성하던 몸의 모든 부분이 기능을 멈추고 비활성화되었다. 벨라는 왼손 검지를 들어 정액이 흐르는 아나스타샤의 콧등을 살짝 눌러 그녀의 기운을 삽입했다.

 "불쌍한 어린 뱀파이어(Vampire)야, 잠깐만 쉬고 있거라."

 두 여인의 주변에서 붉은 안개가 뭉개뭉개 일어나며, 아나스타샤의 눈이 몽롱해졌다.

 "음? 마법사인가?"

 라스푸틴은 옆쪽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현상에 눈쌀을 찌푸리며 벨라를 바라보았다. 복색으로 보아 이곳의 사창가에 소속된 창녀로 보였는데, 왠지모르게 꺼림칙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벨라는 정신을 잃고 털썩 쓰러지려는 수인족 소녀의 몸을 받아 랑발손에게 건네주었다.

 뒤를 돌아보니 라스푸틴이 기묘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고 있다.

 "네년은 또 뭐냐?"

 벨라는 슬쩍 웃으며 볼록 튀어나온 그의 바지춤을 한번 바라보았다. 이제껏 그녀가 보아온 인간들 중 가장 큰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더구나 아나스타샤에게 사정하는 모습을 보고 기겁할 수 밖에 없었다.

 "성직자께서 입이 험하시군요. 동방교회의 배덕한 대주교이자, 바티칸의 비밀추기경(In-pectore Cardinal)이신 그레고리 라스푸틴 전하."

 (참고 : 이 세계의 기독교는 콘스탄티노플의 동방정교회, 바티칸의 서방가톨릭교회로 분열됨)

 조용히 속삭이듯 귀에 박히는 말에 라스푸틴의 붉은 눈이 번떡 떠지며 순식간에 두배 가까이 확장되었다.

 추기경은 바티칸에서 교황 다음의 권위와 명예를 누리는 바티칸(서방교회)의 성직자로 전 대륙에 불과 11명 밖에 없는 존재였다. 그런데 바티칸과 껄끄러운 관계에 놓인 국가 소속이거나, 기독교가 박해받는 지역에 살거나, 기타 여러가지 이유로 공개적으로 추기경을 지명하기 어려운 경우, 교황은 오직 본인과 추기경단만 아는 비밀추기경들을 정원 외로 서임할 수 있었다.

 벨라의 말은 라스푸틴의 숨겨진 정체가 바로 그 비밀추기경이라는 뜻이었다. 겉으로는 동방정교회의 사제로 서품된 자가 은밀히 자신의 믿음을 배반한 채 가톨릭에 귀의한 것이다. 대주교라면 정교회에서도 총대주교 다음으로 높은 직위로, 전체 성직자 중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최고위직이었기 때문에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이사벨라는 한달간 심심할 때마다 체사레나와 대화하며, 교황청의 아주 은밀한 비밀까지 모두 알아낸 상태였다. 체사레나가 해준 얘기에는 '라스푸틴'이라는 이름의 괴상한 성직자의 정체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의 주군을 속이고 흡혈하는 요승(妖僧)이라니, 교황 성하께서는 이 사실을 아시는가?"

 라스푸틴은 평소의 느물느물하던 표정을 딱딱히 굳힌 채, 몹시 놀란듯한 기색으로 그녀를 경계하고 있었다.

 "어떻게….. 그대는 혹시 성하께서 보내신 성기사인가?"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그가 들고 있던 홀(笏)에서 검은색 광선이 새어나와 벨라가 존재하던 공간을 꿰뚫는다. 벨라는 물론이고 그녀 주변에 있던 기둥과 바닥, 나뭇조각들이 암흑에 휩싸이며 순식간에 녹아내린다.

 하지만 라스푸틴의 안색은 여전히 굳어있었다. 벨라의 신형이 바로 옆에 있는 다른 기둥 뒤에서 솟아났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오른손에 끼어진 반지에 어마어마하게 강력한 신성력이 잠재되어 있는 게 느껴진다.

 '사도급 성물! 성전기사단이 분명하다!'

 "데피니트 콰이엇 멜리그넌트 디스트럭션(Definite Quiet Malignant Destruction)."

 7단계에 해당하는 무시무시한 절대사멸주문이었다. 놀랍게도 라스푸틴은 마도사의 바로 아랫등급인 7단계의 흑마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더구나 마법의 요체 속에 기이한 신성력까지 불어넣어져 있었다. 그는 자신의 비밀스러운 정체가 발각되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한푼의 여유도 남기지 않고 전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마법은 시전 도중에 강제로 취소되었다. 끔찍한 파괴력을 지닌 검푸른 기운이 그의 지팡이 주변에서 안개처럼 맴돌다가 소멸되어 버린다.

 "호오, 나의 또다른 권속과 막상막하급이군. 이거 가만히 놔뒀으면 큰일났었겠는데?"

 벨라는 어느새 라스푸틴의 뒤편에 나타나 머리를 긁적였다. 하지만 라스푸틴의 몸은 마법이 갑작스럽게 해제된 순간부터 굳어져버린 탓에, 뒤조차 자유롭게 돌아볼 수 없었다.

 7단계 마법이 취소된 충격으로 인해, 라스푸틴의 입에서 피가 왈칵 새어나온다.

 "으윽, 잠깐, 이건 오해다! 서, 성하께서….."

 "비 콰이엇(Be Quiet)."

 벨라가 검지손가락을 입에 대고 '쉿'하는 모션을 취하자, 라스푸틴의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찰싹 달라붙어버린다.

 뒤에서 튀어나온 그녀의 손이 요승의 양물을 콱 움켜진 뒤 슬슬 쓸어내렸지만, 그는 그저 당황스럽게 눈동자만 데룩데룩 굴리며 서있을 수 밖에 없었다.

 "호호, 대화는 조금 후에 영주관에서 아주 뜨거운 방식으로 하자고.. 악을 저지른 자는 더 큰 악에 당하는 법이지. 당신, 부분세뇌 대신 전체세뇌 한번 당해보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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