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부
김원장이 운영하는 학원은 마치 카페같았다. 대학교 졸업 후 오랜만에 찾은 학원이라서 내가 잘모르는 건지 아니면 이 곳만 이렇게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공부했던 학원이 여관방이었으면, 이곳은 호텔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원장실이라고 마련된 방안 소파에서다리 쭈욱 뻗은 채 앉아 있었다. 잠시후 김원장이 쟁반에 커피를 들고 들어왔다.
“어때요? 깔끔하게 인테리어 잘 되었죠?”
웃으며 잔을 내려놓은 그를 나는 말없이 쳐다보았다.
“아... 오시게 해서 죄송해요... 제가 가서 설명해 드릴려고 했는데, 갑자기 수업 땜빵을 해줘야 되어서요.”
“괜찮아..내가 궁금해서 온거니깐....”
그는 소파에 등을 붙이고 느긋하게 커피를 입에 대었다. 나는 급한 마음에 바로 그에게 물었다.
“그건 뭐야? 그 동영상....”
“........혹시 뭘 보셨죠?”
“‘영상1‘이라고 적혀있는 거.”
“....그걸....어디까지 보셨어요?”
“....처음부터 보다가 성은씨가......”
그에게 본 그대로 말하기가 쉽지 않아 말을 흐렸다.
“아...알겠어요....어디까지 보셨는지...대락 감이 오네요...그럼 말씀드리기 더 편해지겠네요.”
그는 마시던 커피를 테이블에 내려 놓고 나를 응시했다. 그리고는 마치 중요한 이야기를 하듯이 힘주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석현의 이야기-
성은이 다니는 학교는 서울에 평범한 초등학교이다. 초등학교는 개학을 기점으로 일정기간이 지나면 선생님들이 지역에 따라 자리를 이동하는데 이번 이동은 성은에게 매우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다름아닌 성은이 초등학교 때 본인을 가르쳤던 선생님이 교편을 잡는 학교 교장선생으로 취임을 한다는 것이었다.
어느 회사나 그렇든 상사가 취임하면 단합이란 명목으로 회식을 자주 하듯 성은이 다니는 학교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개학과 동시에 교장이 바뀌었다고 했지만, 거의 한 달이 지난 지금 너무 회식이 잦았다. 계속해서 성은의 퇴근이 늦어지자, 본인이 일찍 퇴근하고 회식 중인 성은을 데리러 가기로 결심했다. 그날은 마침 수업 스케줄이 비어서 시간은 괜찮았다.
“오빠, 올려고?”
음악소리가 씨끄러운 술집에서 전화를 받는 듯한 성은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럼...우리 성은이 옛날 은사님이라고 하니깐, 인사도 드리고 좋지...”
“....그래? 알았어 오빠 보면 좋아하실거야...여기가 어디냐면....”
석현은 성은의 설명에 따라 능숙하게 장소를 찾았다. 성은이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막걸리 집이었다. 석현은 그곳으로 들어가자마 성은의 무리를 볼 수 있었다. 3명쯤 있는 무리...회식이라고 보기에는 인원이 적었지만 당시 그는 그것을 개의치 않고, 교장을 찾았다.
교장은 다름아닌 성은 옆에 앉아 있는 머리가 희끗한 노신사였다. 첫 인상은 전형적으로 인자한 아저씨 상이었고, 석현은 바로 그에게 다가가 깍듯하게 인사를 건냈다.
“처음 뵙겠습니다. 성은이 남편 김석현이라고 합니다.”
교장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악수를 건냈다.
“반가워요. 이성은 선생 옛날 선생입니다. 정말 반가워요.”
그는 석현에게 본인을 교장이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선생님이라고 친근하게 칭했다. 석현은 최대한 공손하게 그의 손을 잡았다.
“교장으로 영전하신 거 축하드립니다.”
“고맙네....참....석현 군도 교사라고 했었지?”
“네.. 얼마전까지 고등학교에 있었습니다.”
“아...얘기 들었어. 자.... 자리에 앉지.”
석현이 자리에 앉자 교장 맞은 편에 있던 남자는 잠에서 깬듯 일어났다, 아마도 취해서 졸고 있던 모양이었다. 그는 석현이 오고 얼마 되지 않아서 집으로 돌아갔고, 그가 떠나자 교장을 마주한 채 성은은 석현과 함께 자리했다. 그리고 성은, 석현, 교장 셋은 본격적으로 서로에게 잔을 권하며 술잔을 기울여가고 있었다.
***
“성은이가 어렸을 때는 엄청 말라서, 다 커도 키가 쬐끔할 줄 알았다네...”
“지금 어렸을 때 더 말라났나요?”
“그럼, 거의 수수깡 수준이어서 멀리서 보면 남자앤줄 알았다니깐..허허.”
“그래서 성은이가 어렸을 때 사진을 보여주지 않는군요..하하하”
성은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석현과 교장을 번갈아 보며 바라보았다.
“그만들좀 하셔요. 제가 무슨 동네 북이예요?”
“알았어. 알았어. 나중에 학교가서 다른 선생들한테 악덕교장이라고 소문낼라..”
교장은 그녀의 잔을 따르며 웃어보였다. 석현은 술을 반쯤 마시고 슬쩍 일어섰다.
“잠시만, 저는 화장실을...”
“오빠 담배 필려고 그러지?”
“아...아냐....”
석현은 정말 화장실로 갈려고 했지만, 화장실만 갈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선생님은 끊은지 10년이나 되었데. 그것도...한번에”
“아..아닐세, 한번은 나도 얼마나 힘들었는데...”
교장은 성은의 말에 난처한 듯 나를 바라봤다.
“괜찮아.. 여기서 피워도, 요즘에 누가 그런 거 신경쓴다고...”
“아...아닙니다. 저..저기..전 일단 화장실 좀.”
석현은 자리에 일어나며 성은의 옆구리를 못마땅한 듯 쿡 찔렀다. 그러자 성은은 자리에서 일어나 교장 옆으로가 앉았다. 그리고 보란 듯이 그에 잔에 술을 채웠다.
“선생님 있잖아요. 오빠가 제가 싫은 소리했다고 눈치 주네요.”
“아...그..그래..? 석현군이? 허허”
교장은 재밌다는 듯 웃었고, 석혁은 그녀를 살짝 흘기며 화장실로 향했다. 그는 처음 앉자마자 연거푸 받은 술이 올라오는 듯 화장실에서 살짝 헛구역질이 나왔다. 석현은 속을 진정시키기 위해 뒷문으로 나가 점차 차가워지는 밤공기를 쐬었다. 그리고 성은에게 시위를 하듯 담배 2대를 연달아 피웠다.
석현은 한동안 공기를 쐬어도 진정이 되질 않자, 근처 편의점에서 숙취해소 음료를 샀다. 본인 것과 성은, 교장것까지 구입한 석현은 본인 것은 비우고 다시 뒷문으로 들어가 그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로 향했다.
뒷문으로 들어온 석현은 교장과 성은의 뒷모습을 보며 천천히 그들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 석현은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다름 아닌 그의 손의 위치 때문이었다. 교장의 점잖은 말투와 달리 손이 성은의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는 교장이 성은에게 뭔가 말을 중이었고, 성은은 아무말 없이 듣고만있던 중인 것 같았다.
석현은 발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들을 지켜보았다. 교장의 손이 점차 내려가 성은의 등을 메만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손이 성은의 등에서 크게 원을 그리며 그녀를 메만지고 있었지만, 성은은 여전히 미동이 없었다.
잠시 후 교장의 손이 성은의 허리로 슬며시 다가가고 있었고, 그의 손이 성은의 허리를 감싸듯 안은 것이 보였다. 석현은 놀래 들고 있던 봉지를 떨어뜨릴뻔 했다. 하지만 다행히 바닥에 닿기전 잡을 수 있었다.
교장은 잠시 주위를 둘러 보는 듯 하더니 천천히 손이 내려가 그녀의 엉덩이 쪽으로 향했다. 교장의 손이 성은의 한쪽 둔부에 닿자 그제서야 성은은 교장을 바라봤다.
하지만 바로 그 뒤에 종업원이 주문한 파전을 테이블로 가지고 왔고, 교장은 성급히 손을 치웠다. 나도 그들에게 다가갔다.
“죄..죄송합니다. 숙취해소 음료좀 사가지고 오느라...”
“아...아....그..그래..고마워...”
교장은 석현을 보고 살짝 놀란 듯 목소리가 커졌다. 그리고 성은은 바로 일어나 다시 석현의 자리에 앉았다. 어색한 공기가 흘렀지만 교장은 개의치 않은 듯 계속 술잔을 채웠고, 석현은 계속해서 교장의 시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찾느라 술맛을 제대로 즐길 수 없어졌다.
***
몇 일 후 오후 6시가 조금 넘는 시간, 아직 학교에 있는 그녀를 데리러 석현은 학교로 가고 있었다. 부부동반 저녁 모임이 있기 때문이었다. 석현은 학교 주차장에 주차를 했고, 그녀에게 전화를 걸기 위해 핸드폰을 찾았다. 마침 그녀에게 전화가 왔다.
“오빠 어디야?”
“아...나 막 학교 주차장에 도착했어.”
“그래? 근대...어쩌지...나....”
성은은 난처한 목소리로 조용히 대답하고 있었다.
“왜? 무슨 일인데?”
“선생님이 감사장 보낸다고, 내용물 넣고 봉투 붙이는데 교장실에서 나보고 도와 줄 수 있냐고 그러셔서...”
“누구랑”
“글세. 나랑 선생님 둘이서?”
석현은 순간적으로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챘다. 본인도 학교에서 근무를 했던 터라 교장이 교사에게 그것도 퇴근 후에 시키는 것이 매우 이례적인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차에서 내려 바로 교장실로 향했다. 그곳에는 교장은 없고, 성은이 혼자 뿐이었다.
“어? 교장 선생님은?”
“아...잠깐 나가셨어.. 뭐 좀 사온다며....”
그녀가 앉고 있는 소파 가운데에 수북히 쌓여있는 감사장과 봉투가 눈에들어왔다.
“.........그럼....오늘 부부모임 같이 못가겠네.”
“미안해...선생님 부탁 거절할 수가 없어서....”
아직 성은은 뭔가 수상한 낌새를 못챘을까? 모두다 퇴근해 아무도 없는 학교에서 단 둘이 있는 것이 수상하게만 느껴지는 건 석현 본인 뿐일까?. 석현은 순간 그냥 데리고 나갈까 망설였지만, 그의 속안에서 끓어오르는 뭔가가 그를 유혹했다. 잠시 생각에 잠긴 그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저...저기...잠..잠깐..오빠 화장실 좀...”
“어딘줄 알어?”
“그.그럼...”
그리고 석현은 화장실을 가는 척 하며 바로 차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는 차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 학원에서 쓰는 스마트폰이 차안에 있었다. 석현은 또 다른 물품을 찾기 위해 트렁크를 열었다.. 얼마전 백화점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손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스마트폰을 동영상 촬영상태로 바꾼 후 렌즈를 가방 밖으로 살짝 노출 시킨채 넣었다.
석현은 다시 교장실로 돌아가 성은이 눈치채지 못하게 주변을 살폈다. 교장 책상 옆 탁자가 눈에 들어왔다. 이곳이면 그녀가 앉아 있는 소파와 주변이랑 다른 곳들을 한 눈에 촬영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석현은 탁자위에 손가방을 놓은 후 성은에게 다가갔다.
“저..저기 오빠 갔다가 다시 올게.”
“에이.. 그러지 말고 놀고 있어. 나도 이것만 붙이고 바로 가면 되는대 뭐...”
“아..아냐...오빠 속이 않좋아서 얼굴만 비추고 올게, 한...9시면 되나?”
“......왜? 속이 않좋아?”
“걱정하지마. 있다가 다시 올 때 전화할게. 교장선생님한테는 말하지 말고...”
성은은 석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그럼 있다가 데리러 와.”
성은은 다시 감사장을 접어서 봉투에 넣는일에 집중했고, 석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천천히 교장실을 떠났다. 모두가 퇴근해 조용한 학교는 석현의 발걸음 소리를 반기는 듯 유난히 크게 울렸다.
***
8시 50분 초등학교 인근 골목길....석현은 부부 동반모임에 참석하지 않고 오롯이 차안에서 3시간을 기다렸다. 성은에게 약속한 9시가 되자 바로 시동을 걸고 학교로 향했다. 밤이되자 학교 문이 잠겨 있어, 그는 관리실을 통해서 학교 내부로 들어갈 수 있었고, 여전히 교장실은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볼수 있었다.
“어...어? 석현군 왔나?”
그 곳에는 교장만 있었다. 석현은 주변을 둘러보며 성은을 찾았다.
“이선생은 지금 잠깐 화장실에 갔어. 그..금방 돌아올꺼야.”
“아. 네... 알..알겠습니다.”
석현을 유난히 반기는 듯한 그의 행동이 묘하게 과장된 듯 느껴졌다. 석현은 천천히 탁자로 다가가 눈치채지 못하게 손가방을 몸 뒤로 숨겼다.
“저..저는 잠깐 차에 가겠습니다. 학교 밖에 주차 했는데, 전화번호를 남기지 않은 것 같아서요.”
“그...그럼 거기 있게...이 선생 돌아오면 바로 전화하라고 할테니...”
교장이 다급히 나에게 말을 건냈다.
“네..알겠습니다. 그럼 먼저 들어가겠습니다.”
석현은 서둘러 차로 돌아가 손가방 안에 스마트폰을 찾았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아직 녹화 상태라서 서둘러 종료를 시켰다. 자그마치 2시간 40분짜리 녹화 영상이었다. 석현은 떨리는 손을 잡고는 숨줌이며, 저장된 동영상 재생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동영상이 재생되었고 스마트 폰 안....성은이 봉투를 붙이고 있는 화면이 보였다.
석현이 교장실을 나가고 10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교장은 오지 않은 상태였다. 석현은 좀 더 뒤로 동영상을 이동했다. 그리고 30분쯤 지나자 교장과 성은이 나란히 봉투를 접는 모습이 나왔다. 교장은 성은에게 미안한 듯 봉투를 본인이 더 많이 본인쪽으로 모았다.
“아니예요. 교장선생님 제가 할께요.”
성은은 교장이 가져간 봉투를 다시 가져오며 상냥하게 말을 건냈고, 그녀는 다시 감사장 접기에 여념이 없었다. 교장은 성은의 모습을 천천히 흝었다.
“흠...흠......”
성은이 봉투를 접으며 고개를 숙일 때마다, 석현은 눈이 커졌다. 잠겨진 셔츠 단추가 벌어져 그녀의 브레지어가 보이는 것 같았다. 스마트폰 조그만 화면에도 보였으니, 교장도 당연히 봤을 것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교장의 뒷통수는 그의 시선이 어디에 고정 되어 있는지 너무나 분명히 대변해주고 있었다.
“석..석현 군은 아직 학원인가?”
성은이 고개를 들자, 교장은 서둘러 다른 곳을 응시하며 질문했다.
“아...아뇨...오늘 모임이 있다고 그래서요..아마도..있다가 올꺼예요.”
“아...그..그래?”
그의 대답을 듣고 석현은 다시 영상을 1시간 이후로 영상을 넘겼다. 1시간이 조금 지나니 테이블 위에 가득 쌓였던 봉투는 어느새 한 개도 없이 마무리가 된 상태였다. 성은은 기분 좋은 듯 기지개를 폈다.
“야~ 이제 끝났네요.”
“이선생 고마워.. 이선생 덕분에 끝낼 수 있었네.”
“아뇨. 뭘요...제가 도와 드릴 수 있어서 좋은데요.”
교장은 그녀를 보며 흡족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교장은 일어나 성은이 앉고 있는 소파 뒤로 갔고, 그녀의 어깨위로 손을 올려, 주물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남자 손이 어깨에 닿자 쑥쓰러운 듯 그의 손을 잡았다.
“괜..괜찮아요..이러시지 않아도...”
“아냐..내가 고마워서 그래...이래뵈도, 내가 근육 푸는데 선수라니깐...”
“그..그래도..”
“에이...그러지 말고 있어봐. 내가 고마워서 그래...”
그는 다시 그녀의 어깨를 슬며시 주무르고 있었고, 성은은 긴장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교장의 주름진 손이 그녀의 어깨와 흰 목을 메만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