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부
낯선 어두운 방...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섹시한 신음소리에 선잠을 깬 재구가 중얼거렸다. “뭐야...?”
수정이 끙끙 앓고 있었다.
“오빠... 나 너무 아파. 나 뭐가 잘못됐나봐.”
그 소리에 재구가 잠에서 벌떡 깨어났다. 침대머리맡의 시계가 새벽 3:45을 찍고 있었다.
“왜 그래, 수정아? 어디 아퍼?”
“응, 오빠...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고 아랫배가... 우웩~”
수정이 황급히 손을 입에 가져다대고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고 있자 재구가 황급히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말했다.
“수정이, 너 지금 당장 완벽한 건강상태를 회복해서 내가 다시 잠자리에 들 수 있도록 편안하게 안마해 줘.”
수정의 얼굴에 화색과 편안함이 돌아오더니 한숨을 몰아쉬었다.
“고마워요, 주인님. 그런데 도대체 왜 그랬지? 정말 너무 언짢은 기분이었어.”
“뭘 왜 그래, 임마! 엊저녁에 너무 많이 마시더라니... 이그~ 술병난거잖아.”
“좋아, 이제 다신 술 안 먹어.”
재구가 허허 웃으며 베개로 엎어졌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하여튼 술 많이 먹는 사람치고 다음 날 그런 말 안하는 사람이 없더라. 두고 봐라. 다음에 기회가 오면 지금 그 말은 싹 잊어버릴 테니. 그래도 앞으로는 좀 조심해!”
“네, 알았어요, 주인님. 자, 이제 엎드리시죠.”
“아냐, 됐어. 안마 안 해도 돼. 너 술병 낫게 하려고 그런 거야. 침대위에 왕창 토해놓으면 안되잖아.”
“내가 토하지 않게 하려면 안마 받아야 해.”
“왜? 너 힘들잖아.”
“왜냐하면 내가 안마까지 해 줘야 미션이 완성되거든... 안 그러면 미션자체가 취소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
“아~ 그래? 좋아 그럼...”
재구가 엎드리자 수정이 그의 다리위에 타고 앉아 등에 안마를 하기 시작했다. 만약 다른 때 같았다면 끈적끈적한 섹스로 이어졌을 테지만 새벽 3:45분의 그는 곧 바로 잠으로 빠져들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뜨니 주변이 환했고 아까와는 달리 똑바로 누워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가 자신의 다리를 타고 앉아 있었다. 내려다보니 놀랍게도 시영이 낡고 커다란 티셔츠 한 장만을 걸친 채 잠에서 막 깨어난 듯 섹시하게 헝클어진 머리로 그를 부드럽게 쳐다보고 있었다. 재구가 깨어난 것을 확인하자 시영이 환하게 웃었다.
“성식씨는 아직 자고 있어. 그래서 손님에게 좀 그럴듯하게 아침 인사를 하려고...”
“어~....”
순간 재구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자신의 환상이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식이는 원래 뻥이 좀 쎄서 다 믿지는 않았지만 늘 자기는 알람시계가 필요 없다고 했었다. 왜? 시영이 아침마다 자지를 빨며 깨워주기 때문에.... 그 얘기를 들을 때마다 자신도 시영에게 그런 대접을 받아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물론 지금은 그 보다 훨씬, 아니 수천 배 더 좋은 방법으로 잠에서 깨어나지만.
재구가 잠시 환상에 빠져있는 동안 시영이 헐렁한 티셔츠를 벗어던지며 다시 사랑스럽고 날씬한 몸매를 드러내더니 그의 사타구니 쪽으로 기어와 한손으로 재구의 엉덩이 옆 침대를 짚고 몸을 기대더니 머리카락에 가려진 얼굴을 그의 성기 쪽으로 내리며 남아있는 한 손으로 벌써 단단해지고 있는 그의 좆대를 움켜쥐었다.
“세상에... 이 물건 완전 괴물이야.”
시영이 중얼거리며 천천히 잡고 있는 손을 위아래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재구가 완전히 발기되자 시영은 손을 놓고 천천히 머리카락을 귀 뒤로 쓸어 넘기더니 좆대의 뿌리 쪽을 단단히 쥐고 입을 가져다 대었다. 그녀의 혀가 귀두를 핥기 시작하자 재구가 신음했다. 시영이 한쪽짜리 보조개를 지으며 웃더니 귀두를 빨기 시작했다. 그녀의 머리가 느긋하게 위아래로 흔들리며 재구의 귀두가 무언가에 닿는 느낌이 들 때까지 조금씩 깊게 물고 들어갔다. 그녀의 동작은 느리지 않았고 재구의 자지는 점점 더 시영의 입술사이로 사라져갔다.
하지만 한 5~6cm를 남겨두자 그녀의 한계에 다다랐다. 시영이 머리를 두어 번 더 위아래로 움직이더니 ‘뽕’소리를 내며 재구의 자지를 뱉어냈다.
“어휴~ 이건 쉽지 않은 걸... 좀 쉬었다가 해야지...”
그리고는 재구의 허벅지를 베고 옆으로 누웠다. 그녀의 손은 다시 재구의 자지를 위아래로 흔들기 시작했고 비스듬히 누운 채 입술과 혀로 그의 음낭을 공격해 들어갔다. 구석구석 놓치지 않고 탐험을 계속하더니 불알을 입안에 빨아들여 혀로 굴리기 시작하자 재구의 신음소리가 높아지며 온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녀는 다시 고개를 들어 자지를 물고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고 혀는 공격적으로 귀두 아랫부분을 핥았다. 재구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녀의 목안 깊숙이 사정을 시작했다. 시영은 모두 삼키려 애를 썼지만 엄청난 양의 정액 중 일부는 어쩔 수 없이 그녀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마침내 재구의 자지를 입안에서 빼낸 그녀가 그의 아랫배에 고여 있는 정액을 보더니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에이~ 씨...”
그러더니 시영은 다시 재구를 놀래키며 고개를 숙여 그의 아랫배와 자지에 묻어있는 정액을 남김없이 핥아먹더니 고개를 들어 말했다.
“음식을 남기면 벌 받거든...”
재구가 정신을 차리고 둘러보니 수정이 보이지 않았다. 어디 간 걸까... 하고 생각하며 시영을 보더니 말했다.
“이번에는 내가 해 줄까? 나도 제법 잘 빨거든...”
시영이 행복하게 웃더니 셔츠를 주워 입으며 말했다.
“다음 기회가 있겠지?”
옷매무새를 바로 잡은 그녀가 다시 말했다.
“서둘러서 미안해. 하지만 이집의 황제께서 일어나실 시간이거든. 가서 69자세를 잡아줘야 할 것 같아. 재구씨 자지 정말 멋졌어.”
“고마워. 시영씨의 솜씨도 환상적이었어.”
“그럼, 어서 일어나. 난 가봐야겠어.”
말을 마치고 시영이 나가자 화장실에서 물 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정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안녕, 오빠. 잘 잤어?”
그녀가 입을 삐죽 내밀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치... 내가 오빠 멋지게 깨워주려고 했는데 벌써 일어났네.”
재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시영이 사라진 쪽을 자꾸 쳐다봤다.
“정말로 쟤가... 아니 니가... 저거 정말 걔였어?”
수정이 찡그리며 물었다.
“누구? 누가 정말 걔야?”
재구가 수정을 노려보며 말했다.
“너, 지금 장난치는 거지?”
“뭐가?” 수정이 재구를 똑바로 쳐다보며 되 물었다.
“너, 어디 있었어?”
“화장실에 있었지~”
“괜찮아? 꽤 오래 화장실에 있던 것 같은데.”
“응, 오빠. 새벽에 오빠가 빌어준 소원 때문에 말짱해. 시영씨가 재밌는 잡지들을 화장실에 많이 갖다 놨더라구.”
재구가 고개를 가로 젓더니 수정의 손을 잡고 목욕탕으로 다시 들어가 늘 그랬듯이 깔깔, 낄낄 거리며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옷을 챙겨 입고 주방으로 가보니 시영이 벌써 나와 있었다.
“어머, 일어들 났어? 커피 줄까?”
“좋지.” 재구가 시영을 찬찬히 살펴보았으나 별다른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우린 일요일엔 천천히 일어나서 브런치 뷔페 먹으러 가는데 같이 갈래?”
재구가 수정이 서로 쳐다보더니 거의 동시에 대답했다.
“좋아.”
시영이 웃으며 말했다.
“눈빛만으로도 통한다 이거지?”
“하하... 은희하고 병수는 아직 안 일어났어?”
“글쎄...” 시영이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어젯밤에 보니까 분명히 철썩철썩 때리는 소리가 들리더라구. 그리고 아침에 보니 어제 썼던 탁구채가 없어졌어. 우리 생각이 맞는 것 같아.”
묘한 표정을 지어보이던 시영이 다시 목소리를 원래대로 고쳤다.
“아무튼 곧 일어나겠지.”
잠시 후에 둘이 말짱한 모습으로 등장했다. 은희는 행복한 표정이었고 병수역시 행복한 표정이었으나 다소 쑥스러워 하는 모습이었다.
“다들 잘 잘잤어?” 은희가 밝게 웃으며 물었다. “성식씨는?”
“항상 이렇게 게으르지 뭐. 내가 가서 깨워올게. 우리 넷은 브런치 뷔페가기로 했는데 너희도 갈래?”
그들도 서로 쳐다보더니 그러자고 했다. 시영이 씩 웃으며 성식을 데리러 갔다.
그들은 패밀리 레스토랑의 일요일 브런치 뷔페로 배를 가득 채우고는 다시 또 만나자는 인사를 남기고 각자의 집으로 헤어졌다. 큰길로 나서자 재구가 말했다.
“술도 깨고 맑은 정신으로 말하는 건데 우리가 병수에게 한 일이 잘 한 일일까? 너무 갑작스런 일이 아니었을까? 내말은 그걸 도대체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느냐는 말이야.”
“음... 그래도 금방 기분좋게 받아들인 것 같던데. 벌써 좋은 쪽으로 사용하면서 아무 문제도 없어. 그리고 만약 원상태로 되돌린다면 무지 실망할거야.”
“그렇다면 됐어.”
수정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뭐가 잘못되면 다시 고치면 되지 뭐.”
“그래 니말이 맞다.”
잠시 후 차가 새로 문을 연 극장 앞을 지나자 재구가 물었다.
“영화 보고 갈까?”
“정말? 와~ 너무 좋아.”
수정이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수정은 영화 속으로 빠져들어 갔고 팝콘에도 푹 빠져있었다. 신나하는 수정을 위해 영화를 두 편이나 보고 나와 집에 도착하자 어느새 이른 저녁이 되어 있었다.
집에 돌아와 이것저것 찾아 요기를 하고는 침대에 누워 채널을 돌렸다. 수정은 성인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며 투덜거렸다.
“저건 가짜로 하는 거고... 연기도 형편없고... 에이... 싸구려... 저건 불가능한 자세네...”
수정이 재구를 쳐다보며 동의를 구했다.
“정말 형편없네.”
한참을 돌려보더니 수정이 말했다.
“오빠랑 하는 게 제일 좋아.”
“당근이쥐!” 재구가 수정을 끌어 안았다.
--------
재구는 수정에게 내일 아침 최소한 8시에는 샤워를 시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했고 수정은 정확하게 시간을 맞추어 재구의 아침 사정을 마쳤다. 재구가 샤워를 마치고 옷을 입은 후 가벼운 아침을 들며 수정에게 말했다.
“오늘은 너도 나하고 같이 출근하자. 좋은 옷으로 입어.”
수정이 흥분되고 긴장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나도?”
“응.”
재구가 자신의 컴퓨터를 켜서 수정한 계약서와 지난 주말 동안 구상한 다른 아이디어가 반영된 다른 버전의 계약서 몇 장을 챙기더니 수정에게 물었다.
“준비됐어?”
“응, 오빠. 나 어때?”
그제야 수정을 쳐다본 재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수정은 초록색 실크 블라우스에 진한 회색 바지를 입고 긴 가죽 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엔 엷은 화장이 드리워져 있었고 긴 검은 머리칼은 눈부시게 빗겨 있었다.
“수정이 정말 예쁘다.”
수정이 그녀만의 특별한 미소를 지었다.
“고마워, 오빠. 그럼 난 준비 됐어.”
그들은 약속 시간보다 몇 분 일찍 화인 상사에 도착했다. 로비로 들어서자 숙희가 반갑게 맞아주었다.
“어머~ 어서와 재구씨...”
순간 수정을 본 그녀가 갑자기 할 말을 잃은 듯 넋을 놓아버리자 재구가 입을 열었다.
“숙희씨, 이쪽은 나하고 같이 일하는 현 수정씨야. 수정아, 이쪽은 화인 상사에서 제일 열심히 일하는 안 희숙씨라고 해.”
숙희가 재구의 과분한 칭찬에 낯을 붉히더니 수정에게 손을 내밀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현 수정씨.”
“저두요, 안 숙희씨. 이제 자주 보겠군요.”
숙희가 재구를 보며 말했다.
“회의실에서 기다리라고 하던데, 내가 안내해 줄까?”
“음... 그럴래? 지난번에 와보긴 했는데 좀 헷갈리네.”
헷갈릴 것도 없다는 걸 재구나 숙희 모두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숙희의 안내로 회의실로 들어가 기다리며 잠시 웃고 떠들었다. 성기와 안 화영부장, 그리고 수영이 들어서자 재구가 말했다.
“고맙습니다, 안 숙희씨. 덕분에 많은 도움이 됐어요.”
숙희가 미소를 지으며 살짝 얼굴을 붉히더니 방을 나서며 문을 닫았다.
재구가 돌아서보니 모든 이의 시선이 수정에게 쏠리고 있었고 그녀는 차분하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사장님, 안 부장님, 그리고 부사장님, 저와 함께 일하는 현 수정양입니다. 수정아, 여기는 방 성기 사장님, 창고와 물류를 담당하시는 안 화영 부장님, 그리고 구 수영 부사장님이셔. 인사해.”
수정이 세 사람과 악수를 나누었다.
“저기...” 성기가 말했다. “이분이 저기... 바로 그 분...?”
성기가 말을 더듬자 수정의 미소가 커지며 말했다.
“네, 사장님. 데모 홈페이지 사진에서 보신 사람이 저 맞습니다. 그리고 만약 다른 분을 원하시지 않는다면 실제 사이트에도 제가 모델이 될 예정입니다. 동영상과 음성파일도 물론 제가 담당할 거구요.”
“어...” 성기가 다른 사람들은 바라보며 말했다. “아니... 뭐... 수정씨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성기가 헛기침을 하더니 자세를 바로 잡으며 말했다. “그리고 앞으로는 편안하게 대해요.”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자, 그럼 오늘은 뭐부터 시작해야하나? 계약서에 도장부터 찍어야겠지?”
“네. 하지만 그 전에 다른 말씀을 좀 드리고 싶어요. 물론 원치 않으시면 지난 금요일에 말씀드렸던 그대로 하면 되구요.” 재구가 계약서를 각자에게 나누어 주며 말했다.
“지난 주말에 생각을 좀 해봤는데 우리가, 저와 수정을 말합니다만, 귀사의 판촉팀역할을 하는 건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계약서를 좀 수정해서 최초 설치비를 많이 낮추는 대신에 홈페이지를 통한 판매가 일정부분에 달하면 매달 성과급을 지급받는 방식으로 해봤습니다. 지난번에 사장님께서 기존의 홈페이지가 어느 정도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는지 개략적으로 말씀해 주신 적이 있는데 그것을 바탕으로 작성한 예상수치도 함께 적었습니다. 새 홈페이지가 기존의 홈페이지 판매고를 넘지 못하면 성과급은 한 푼도 받지 않겠습니다. 그 밖의 내용은 전에 말씀드린것과 같습니다.”
“그 계약조건이 우리 회사엔 어떤 이익이 되나요?”
수영이 미심쩍은 눈치로 물었다.
“우선 홈페이지를 훨씬 저렴한 가격에 바꾸게 되구요 제가 성과급을 받는 만큼 판매도 성공적으로 신장되게 되지요.”
“그럼 당신에겐 어떤 이익이 돌아가나요?”
“전 이 홈페이지를 아주 성공적으로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귀사와 함께 많은 돈을 벌고 싶습니다.” 재구가 좌중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상의를 해 보셔야 할 테니 이렇게 하죠. 제가 기존의 홈페이지에 말씀하신 새 상품을 올려놓을게요. 한 30분은 걸릴 테니 상의들 하시죠.”
“그거 좋은 생각이로군.”
성기가 그렇게 말하더니 안 부장에게 다시 말했다.
“계약문제는 안 부장님이 안 계셔도 될것 같은데... 어떠세요?”
안 부장이 괜찮다는 시늉을 하자 성기가 재차 말했다.
“그럼 우리 안 수정씨한테 회사 구경 좀 시켜드리세요.”
안 부장이 수정에게 미소를 보이더니 말했다.
“그러죠! 자 이리와요, 아가씨. 우리 직원들이 아가씨를 보면 일이고 뭐고 다 틀렸네. 빨리 적응하도록 미리 보여줘야겠어.”
“자, 이쪽으로 오지, 아우님.”
성기가 컴퓨터 몇 대가 설치돼 있는 작은 사무실로 재구를 안내했다.
재구가 컴퓨터를 켜고 잠시 살펴보더니 말했다.
“형님! 형님 서버 한 번도 백업이 된 적이 없네요?”
성기의 눈이 커졌다.
“내가 컴맹이긴 하지만 그거 안 좋은 거지?”
“네, 형님. 무척 위험한 거죠.”
“왜요? 여태껏 아무 문제없이 잘 돌아갔는데?”
수영이 물었다.
“네, 하지만 그건 여태껏 스페어타이어를 한 번도 써 본적이 없으니까 필요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죠. 귀사의 모든 정보가 이 한 대의 PC에 다 들어있고 24시간 돌아가는데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어떻게 장담하겠습니까? 게다가 정품도 아니고 제법 오래 된 것 같군요.”
“조금 과장이 심하신 것 아닌가요, 김 재구씨?”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렇게 말씀드리죠. 만약 내 수입의 대부분이 저 PC에 의존한다면 난 아마도 겁이 나서 오금이 저릴 지경일겁니다. 지금은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 저 하드가 죽으면 귀사의 홈페이지도 죽습니다. 게다가 백업자료마저 없다면 그냥 날아간 겁니다. 그 결과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럼 우선 새 홈페이지가 완성될 때까지 새 상품 정보만 입력해 두고 예전처럼 그냥 놔두면 안 되나요?” 수영이 물었다.
“사적인 감정은 없습니다만, 부사장님, 전 백업이 이루어지기 전엔 저 PC 근처에도 안 가겠습니다.”
“아우님이 해줄 수는 없어?” 성기가 물었다.
“할 수는 있습니다만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첫째는 백업을 하는 동안 무슨일이 생겨도 제 책임이 아니라는 동의서를 작성해 주십시오.”
“터무니없는 말이에요!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우린 그런 동의는 해 줄 수 없으니까.”
수영이 독기를 뿜었다.
“부사장님, 귀사의 홈페이지가 저렇게 위험한 상황이 된 점은 유감입니다만, 제가 그렇게 만든 것은 아닙니다. 저는 다른 사람의 실수를 뒤집어 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수영이 막 일장연설을 시작하려 하는데 성기가 가로 막았다.
“저 친구 말이 맞아, 수영씨. 이건 우리 실수지 아우님 실수가 아냐. 내가 제대로 봤다면 아우님은 우릴 도우려는 것뿐이라구.”
성기가 깊게 한숨을 내 쉬더니 재구에게 말했다.
“조건이 두 가지라고 했지?”
이번엔 재구가 한숨을 내 쉬더니 말했다.
“네, 사장님. 지금상태에서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은 홈페이지를 통째로 다른 하드나 CD에 복사하는 거죠. 그러려면 홈페이지를 일시적으로 폐쇄시켜야 합니다.”
“얼마나 오래 걸리겠나?”
“한 두어 시간 걸릴 것 같습니다. 혹시 문제가 생길수도 있으니 세 시간만 주십시오.” 재구는 한 시간 정도를 예상하면서도 만일에 대비하며 말했다.
“내일 오전에 하면 안 되겠나? 그때가 제일 한가한 시간인데.”
“물론입니다. 다만 그때까지 아무 일 없기를 기도하며 기다려봐야지요.”
“그렇게 위험한 상황인가요?” 수영이 회의적으로 물었다.
“확답은 드릴 수가 없습니다. 어떤 PC는 설치하고 하루 이틀 만에 주저앉는 것도 봤고 또 제 친구 PC는 10년째 털털거리면서도 잘 굴러가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전 오늘 밤은 편하게 자지 못할 것 같네요. 물론 제 서버는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럼 백업만 하면 괜찮은 거야?” 성기가 물었다.
“지금 보다는 낳겠지만 PC 자체를 바꿔야 해요. 새 홈페이지는 제 서버에 올리세요. 제 서버는 매일 저녁 자동으로 백업이 되는데다가 복수 하드드라이브를 사용하기 때문에 하나가 죽어도 곧바로 다른 하나가 작동하게 되니까 거의 문제가 없습니다.”
“그럼 기존의 홈페이지도 새것이 완성될 때까지 자네 서버로 옮겨두는 건 어떤가?”
재구가 잠시 생각을 하더니 말했다.
“가능성은 있지만 일이 제법 복잡해집니다. 기존의 서버와 제 서버는 호환이 되지 않는 부분이 몇 가지 있어요. 한 2~3일은 걸립니다. 결정은 사장님께서 하십시오.”
성기가 또 한번 한숨을 쉬었다.
“할 수 없군. 그럼 우선 내일 아침에 이놈 백업부터 하고 빨리 새 홈페이지 마무리 해주게.”
“알겠습니다. 그럼 가서 상의해 보십시오. 전...”
“결정했네.” 성기가 놀라는 수영을 쳐다보며 말했다. “자네의 두 번째 제안대로 계약하세.”
“좋습니다! 그럼 서류작업을 지금 마무리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당장 하지 뭐. 우리 안 숙희씨가 공증인 자격이 있는 법무사거든.”
그들이 계약서를 다시 읽고 숙희를 불러 도장을 찍고 공증을 마쳤다.
“자, 됐네. 이젠 뭘 해야 하나?” 성기가 물었다.
재구가 시계를 보더니 말했다.
“어~ 아직 두어 시간 남았네요. 그럼 저희가 일할 곳이 어딘지 보여주시겠어요? 사진 찍을 준비 작업이라도 하면 좋겠는데...”
“그러지. 이쪽으로 오게.”
성기가 창고 쪽으로 재구를 안내했다. 지나가는 길에 안 부장과 수정을 만나 수정은 데리고 가고 안 부장은 다시 자기 일터로 돌아갔다.
‘어땠어?’ 재구가 속으로 물었다.
‘좋았어! 재미있을 것 같아. 그리고 안 부장님 너무 좋아. 재미있으면서도 되게 장난꾸러기 할머니야. 히히.’
‘내가 상황판을 좀 볼까?’
‘오빠 맘대로.’ 수정의 웃음소리가 새어나오는 듯 했다.
둘 사이의 대화는 목적지에 도착하자 중단됐다. 창고의 외진 구석에 커다란 커튼을 둘러 촬영장을 만들어 두고 있었다. 요정 수정의 도움으로 완벽한 에로사진 전문가가 된 재구가 봐도 제법 조명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자, 여길세. 지난번 사진작가가 조명시설이 잘 돼 있다고 그러던데.”
성기의 말에 재구가 동의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곳의 자네 사무실일세.” 문을 열어주며 성기가 겸연쩍게 웃었다.
“사실은 옷장인데 비어있고 에어컨 들어오고 카펫도 깔려있고 전기선과 인터넷선도 깔려있으니 쓸 만하지 않겠어? 물론 책상 같은 거 들여놓으면 말이야.”
재구가 미소를 지어보였다.
“네. 있을 건 다 있네요. 여기서 제 노트북으로 간단한 작업들을 할 수도 있고 어차피 본격적인 홈페이지 디자인은 집에 있는 워크스테이션에서 해야 하니까요.”
“좋았어.” 성기가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자넬 방치해두고 싶진 않지만 전화 몇 군데 해야겠네. 두 사람이 오늘 뭐 더 필요한 거 있나?”
“아뇨, 괜찮습니다.”
“그래, 그럼. 난 가보겠네. 뭐든 필요한 게 있으면 아무한테나 얘기하게. 우리 직원들은 하나같이 괜찮은 사람들이야.” 성기가 말을 마치고는 사라졌다.
재구가 바닥에 주저앉더니 수정에게 옆에 와 앉으라는 시늉을 했다.
“그래, 사람들 반응이 어때?”
“히히... 이제 모든 사람들이 이 앞으로 지나다닐 거야. 앞에 큰길이 날 것 같아.”
“널 보려고?”
“응.”
“신경 쓰여?”
수정이 키득거렸다.
“인터넷을 통해서 수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내 벗은 몸을 보게 될 텐데 요 몇 사람이 신경 쓰이겠어?”
“하지만 여기서는 실제로 너를 보게 되잖아. 인터넷이야 네 얼굴이나 인적사항이 알려지지 않겠지만. 그래도 괜찮아?”
“응. 사실 사람들이 내 몸을 보면서 나에 대해 상상한다는 것도 흥분되는 일이야. 하지만 내 신상은 알리지 않을 거지, 오빠?”
“물론이지. 그리고 여기서 찍는 사진이나 동영상이 절대로 밖으로 유출되지 않을 것이고 누구도 너를 알아보지 못하도록 분명히 해둬.”
“오빠 뜻대로 이루어졌어.”
재구가 몇 가지 점검을 마치더니 말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내일부터는 본격적으로 일이 시작될 테니까.”
재구가 노트북을 챙겨 로비로 향하는데 성기의 사무실에서 안 부장의 큰 목소리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재구가 웃으며 벽에 귀를 기대고 엿듣기 시작했다.
‘오빠, 진짜 못됐다.’
‘나도 알아, 쉿.’
“... 난 처음에 재구가 수정이를 외모 때문에 데려온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야. 애가 얼마나 똑똑하고 야무진지 몰라. 게다가 얼마나 싹싹한지... 재구도 처음부터 맘에 들더라니까. 그런데 부사장은 도대체 왜 그러는지 몰라. 쟤네 둘은 우리 회사의 복덩어리가 될 텐데.”
안 부장의 목소리였다.
성기의 목소리는 조금 더 알아듣기가 어려웠다.
“안 부장님 말이 맞어. 하지만 수영이 잘 알잖아. 곧 괜찮아 질 거예요. 하지만 너무 심하게 굴지는 못하게 자제 시킬 필요는 있을 것 같아. 그건 그렇고 요새 반품은 좀 어때요?”
여기까지 듣고 재구는 수정을 로비로 데리고 나가 숙희에게 인사하고 집으로 길을 잡았다.
재구의 수정의 본격적인 화인상사에서의 활약이 예고되고 있었다.
요정 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