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5/43)

"무슨 일이야?"

"왜 그랬어?"

"뭘?"

"다 알고 있으니 모른 척 하지마. 희지한테 왜 그랬어?"

아내는 살짝 동요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이 입 싼 계집애들...."

"그녀들을 탓하지마. 내가 우연히 들은 것뿐이야. 말해. 희지한테 왜 그런 짓을 한 거야?"

싸늘한 내 분위기에 아내는 입술을 오물거리더니 내 귀에 간신히 들릴 정도로 말했다.

"질투나서 그랬어."

"질투?"

아내가 희지에게 질투를 했다고?

"그게 무슨 소리야?"

"희지 동생은 나와 미라 동생에게는 없는 것이 있었어."

"그게 뭔데?"

"순수함. 나나 미라 동생은 이제 순수하지 않잖아. 그 순수함 때문에 당신이 희지 동생한테 신경을 더 쓰는 것 같아서 질투가 났어. 그래서 망가뜨리고 싶었어. 우리 두 사람처럼 희지 동생도 우리가 있는 곳으로 끌어내리고 싶었어. 그러면 당신이 희지 동생만 편애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

"편애라니. 내가 언제 희지한테 편애를 했다는 거야?"

"했어. 은근히 했어. 미라 동생도 그것 때문에 조금 서운해 하고 있어."

희지가 두 사람과 잘 어울리도록 신경을 좀 쓴 것뿐인데 아내와 미라에겐 그게 편애로 보였던가.

"그리고 희지 동생은 아직 젊어. 이대로 가면 당신의 관심이 희지 동생에게로만 갈까 두려웠어. 그래서 그랬어."

"희지를 미워해서 그런 건 아니고?"

"그렇지는 않아. 앞으로 같이 살아야 하는데 사이가 나빠서 좋을 게 없잖아."

"후우~"

결국 아내는 희지에게 자격지심을 가졌던 모양이다. 젊고 오직 내 손만 탔던 점이 아내에게 질투심을 유발시키고 그로 인해 희지에게 그런 짓을 하게 만든 것이다. 

"일단 오해를 풀어야 겠어. 우선 난 희지만 편애하지 않았어. 그저 당신하고 미라하고 잘 지내도록 배려를 해준 것뿐이야. 그리고....."

나는 아내를 데리고 샤워실로 향했다. 그리고 입고 있던 네글리제를 벗겨 아내의 알몸을 샤워실 거울에 비추었다.

"자, 봐. 누가 당신을 애를 두 명이나 낳은 유부녀라고 보겠어. 당신은 아름답고 섹시한 여자야. 희지에게 자격지심 따위 가질 이유가 없잖아. 미라에게 들어보니 찬수 녀석은 희지보다 당신하고 섹스를 하길 바랐다고 하던데. 그 말은 녀석과 같은 연령대의 젊은 놈들한테도 당신이 희지보다 더 매력적으로 다가섰다는 증거잖아."

".........."

"당신은 당신, 미라는 미라, 희지는 희지 대로 각자의 매력을 지닌 매력적인 여자들이야. 그러니 앞으로 질투 같은 거 하지마. 그건 오히려 당신을 더 추하게 만들 뿐이야."

"당신 눈에는 아직도 내가 매력적인 여자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

"그럼 말해줘."

"뭘?"

"미라 동생보다, 희지 동생보다 날 더 사랑한다고."

"똑같이 사랑해."

"그걸로는 만족 못해. 난 당신이 우리들 중 날 가장 사랑했으면 좋겠어. 난 당신의 아내잖아."

"후우~ 좋아. 대신 미라하고 희지한테는 비밀이야. 질투할 지도 모르니까."

"응."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자는 이정애, 바로 너야.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덮쳐서라도 내 걸로 만들고 말겠다고 결심을 했던 여자라고."

"정말이지?"

"그래. 정말이야."

"나도 이 세상에서 당신을 가장 사랑해. 물론 우리 아이들 빼고."

"너무 하는데?"

"애 아빠가 되서 애들한테 질투하기 없기."

"하긴. 내 새끼들은 논외로 쳐야겠지? 큭큭!"

"풋!"

아내에게 좀 화를 내려고 했는데 그 이유를 들어보니 화를 낼 수가 없었다. 

내 사랑을 갈구하는 아내에게 어찌 화를 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당신 안 잘 거야? 내일도 출근해야 하잖아."

"내일 회의에 사용할 자료를 조금 보고 있던 중이야."

"그런 거 밑에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할 텐데."

"그런 식으로 회사를 경영하고 싶지 않아."

"알았어. 당신 방식대로 해."

"그럼 들어가서 자. 생각해보니 나 아직 안 씻어서 샤워 좀 해야겠어."

아내는 내가 옷을 벗고 샤워기에 손잡이에 손을 가져갈 때까지 샤워실에서 나가지 않았다.

"왜?"

"아니, 같이 씻을까 해서."

"당신 씻었잖아."

"당신하고 같이 씻고 싶다니까."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가 갔다. 난 아내의 손을 잡고 내 품안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실로 오랜 만에 단 둘이서 함께 샤워를 했다. 

.

.

나는 장인어른을 불러 미라와 희지에 대한 얘기를 해드렸다.

처음에는 화를 내시던 장인어른께 아내도 알고 있고 인정한 일이라고 말씀드렸더니 화를 가라앉히시면서 차분하게 내 이야기를 들어주셨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 듣고 나신 후에는,

'남자가 능력이 있으면 첩도 두고 그러는 거야. 나도 젊은 시절에 그랬어. 지금은 네 장모 때문에 정리를 했지만. 내 네 장모한테는 나중에 알아듣게 설명할 테니 신경 쓰지 마라. 하지만 세상의 이목이란 것도 있고 회사 이미지도 있으니 말이 새어나가지 않게 조심하고. 그런데 3명을 상대하려면 정력이 많이 필요하겠구나. 평소 건강 관리 잘 해라.'

장인어른은 쿨하게 인정해주시며 응원까지 해주셨다. 이로써 마음에 걸리는 건 모두 사라졌다. 

한 달 뒤. 나는 아내가 팔았던 별장을 다시 사들였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도 있었지만 그래도 많은 추억이 담긴 그 장소를 되찾고 싶었다. 

오래 전 있었던 소문으로 인해 가격은 아내가 팔았을 때보다 더 내려가 있었다.

주인도 아직 없었고 말이다. 별장과 프라이빗 비치를 사들인 다음 대대적인 공사를 했다.

주변을 높은 펜스로 가리고 곳곳에 cctv와 방범 장치까지 설치하여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오지도 훔쳐 보지도 못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외부인 출입 금지, 무단침입시 경찰에 신고할 거라는 경고 표지판도 세워두웠다.  

"여보, 여길 왜 다시 산 거야?"

"정말 이곳에서 많은 일들이 있었잖아. 생각해보면 이곳이야 말로 모든 일의 시발점이 되는 장소였어. 그건 이곳이 우리가 일상에서의 일탈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라는 상징적인 의미도 가지고 있는 셈이 되잖아. 그런 곳을 내버려두기에는 조금 아깝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생각보다 아내와 미라를 알아보는 사람들은 적었다. 

동네 사람들도 그런 일을 일부러 퍼뜨릴 생각이 없었던 것 같고 아내와 미라가 이전과는 스타일이 조금 달라진 탓인지도 몰랐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동네에 갈 때는 선글라스를 끼라고 했다.

아내와 미라, 희지는 해변에서 놀라고 하고 혼자서 동네 마트로 가 식료품과 맥주를 샀다.

다시 별장으로 돌아가던 중 우연히 아는 얼굴을 보고 차를 멈춰 세웠다.

"찬수구나."

"혀, 형."

찬수는 찔리는 게 있는지 어색해 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내게 인사를 했다.

"다 알고 있으니 그리 어려워 할 필요 없다. 내 아내가 먼저 찾아온 거라면서."

"아, 네. 알고 계셨네요."

"그래. 아참, 그러고 보니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었는데 잘 됐다. 재형이는 잘 지내냐?"

"재형이요? 형, 모르셨구나. 하긴 누님들도 모르던 눈치더니."

"대체 뭘?"

"그게 사실요...."

찬수는 나와 내 아내들이 모르고 있던 사실을 알려주었다.

별장에서 벌어졌던 난교 파티를 동네에 소문을 낸 이가 바로 재형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우연히 그 당시에 별장 근처를 지나가던 재형이가 별장에서 모르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보고 몰래 다가가 봤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서 자기 여친이 남자들과 음탕하게 난교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거기에 더해 아내와 미라까지 있는 것을 보고 심한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 후 여친을 불러 그 이야기를 꺼내며 대판 싸웠는데 오히려 남자가 소심하게 왜 그러냐는 여친의 말에 이성을 잃고 동네에 소문을 내버렸단다. 

"그랬구나. 그럼 재형이는 지금 뭐햐냐?"

"어지간히 충격을 먹었는지 여기에는 더 이상 있기 싫다면서 이사를 갔어요. 얼마 전에 문자를 받았는데 군대에 간 모양이에요."

"군대라. 그러고 보니 넌?"

"저는 면제라서요."

"아니 군대 말고 재형이가 말했을 거 아니냐. 네 여친도 거기에 있었다는 걸."

"예. 알아요."

"심란했겠네."

"처음에는 그랬었죠. 그런데 지금은 상관없어요."

"상관없다니?"

"사실은요."

놀랍게도 찬수는 자기 여친과 헤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여친에게 앞으로 내가 더 잘할 테니 다른 남자는 만나지 말라고 애원했다고 한다. 찬수의 모습에 감동을 했는지 되려 사이가 더 좋아진 것도 모자라 지금은 결혼을 해서 함께 살고 있단다. 

"이야, 찬수 너 진짜 대단하다."

"뭘요. 그리고 여자 과거에 신경 써서 뭐하겠어요. 속만 쓰리지. 앞으로 저만 사랑해주면 되죠."

"가만? 그러고 보니 너 신혼이면서도 내 아내가 부르니까 쪼르르 달라간 거였냐?"

"하하. 그, 그게 누님 말씀은 이상하게 몸이 먼저 움직여서..... 아시잖아요. 누님이 워낙 섹시하시고 예쁘시니까 남자라면 어쩔 수 없다는 걸. 게다가 아내한테는 허락도 받았었어요."

"헐?! 그걸 허락했다고?"

"네.... 사실 우리 아내가 지금 임신 중이라 하질 못했거든요. 때마침 누님께 연락이 왔는데 그걸 아내도 듣고 있었어요. 그랬더니 다녀오라고. 다녀와서 자세히 얘기해 달라고 하더라고요."

그걸 허락하다니. 역시 걔들 같은 부류는 보통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동네에는 어쩐 일이세요? 그런 일도 있고 해서 이제는 안 오실 줄 알았어요."

"너만 알아둬라. 그 별장 다시 내가 샀다. 워낙 추억이 깃든 곳이라 그냥 내버려두기 그렇더라. 대신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오거나 훔쳐 볼 수 없게 단단히 방비를 해놨지."

"그러셨구나. 그럼 누님들도 지금 별장에 계신 건가요?"

"그래. 왜.....? 내 아내들 생각하니까 꼴리냐?"

짓궂은 질문에 찬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대답을 하지 못했다.

꼴리겠지. 아내가 임신 중이라 못하고 있을 테니 더욱. 

"별장에 한 번 와라."

"네?"

"뭐 한 번 뿐인 인생 그냥 즐길 수 있을 때 즐겨야지 않겠냐. 나도 아내들도 말이지."

"저, 정말이요?"

"그래. 뭐 아내들이 그럴 마음이 들었을 때의 이야기지만. 단, 조건이 있다."

나도 이제 나만 손해보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찬수에게 별장에 오고 싶으면 슬기도 함께 오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녀석도 알거라 믿었다.

찬수는 슬기가 임신 중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리는지 전화를 해서 말해보겠다고 했다.

싫다고 하지 않고 자기 아내에게 허락을 구하다니. 어진간히 내 아내들을, 특히 정애를 보고 싶었나 보다. 전화 통화가 끝나자 녀석이 엄지를 치켜들었다. 허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역시 보통이 아니었다. 그걸 보니 둘이 정말 잘 맞는 것 같다.

저녁에 별장으로 오라고 말한 뒤 나는 아내들이 기다리고 있는 별장으로 가 찬수와 했던 이야기를 말해주었다. 별장의 소문을 냈던 이가 재형이었다는 사실에 모두 놀랐고 왜 그랬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하자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는 듯 했다. 그리고 저녁에 찬수와 슬기가 올 거라고 말했다.

"찬수가 어지간히 당신 보고 싶었나봐."

"이이는 정말."

우리는 그걸로 아내를 놀리면서 크게 웃었다. 잘 보니 아내도 그리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물론 하고 싶으면 해도 좋지만 억지로 할 필요는 없으니 마음 내키는대로 하라고 미리 선택할 권리를 주었다. 

"정말 그걸로 괜찮아?"

내가 찬수 부부를 별장에 부른 이유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알고 있는 눈치였다.

그런 일까지 있었는데 정말 그래도 되는지 묻는 아내의 질문에 미라와 희지도 같은 질문이 담긴 눈빛으로 나를 보았다.

"이제 우리 모두 되돌릴 수 없는 길을 너무 멀리 와버렸잖아. 이왕 그렇게 된 거,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 하고 싶어도 못하게 될 정도가 되었을 때 후회가 남지 않도록 말이지. 단 내 통제 하에서."

내 통제에서 벗어난 탓에 우리는 이혼이라는 경험을 했다. 때문에 아내와 미라는 자중하고 항상 경계심을 가질 테니 걱정하지 않았다. 희지도 아마 마찬가지일 것이다.

"당신 뜻이 정 그렇다면....."

"윤호씨 뜻에 따를 게요."

"난..... 오빠가 그걸 원한다면...."

아내와 미라는 내 뜻에 따라주었지만 희지는 아직도 자기가 찬수와 섹스를 했다는 사실을 내가 모르고 있는 줄 알기 때문에 내 눈치를 살피는 걸 알 수 있었다. 난 그런 희지의 반응이 조금 재미있어 내버려두었다. 그걸 눈치 챈 아내가 나와 단 둘이 있을 때 살짝 타박을 했다.

"당신 못됐어. 희지동생 안절부절 못해 하는 게 그렇게 재밌어?"

"은근히 재미있네. 반성 좀 하라고 내버려둬."

"하여튼. 그런데 정말 괜찮은 거야?"

"그건 왜 물어봐?"

"보니까 당신 찬수 와이프 따먹으려고 작심한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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