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16화 (16/72)

다음 일요일 ... 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잿빛구

름이 낮게 깔린 채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비는 마사오에게 정욕적

인 감각으로 다가왔다

'올 거야,반드시 올 거야."

마사오는 몇 번이나 입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었다.

한 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그날 그 일이 있은 후 마사오는 마약

에 뇌를 다친 병자처럼 허탈해져 있었다. 거의 외출도 하지 않았

다. 그날의 그 뇌살적인 감각이 이번에는 심장을 죄는 듯한 먹운이

되어 마사오를 허탈과 황흘상태에 두는 것이었다.

마사오는 속으로 유리코를 희롱한 그 순간을 수도 없이 반추했

다. 어썰 때는 정말 그것이 진짜였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 일을 생각하면 마사오의 몸은 금세 욕망으로 소용돌이치고 마

사오의 그 부분이 뜨겁게 발기하는 것이었다

수치와 낭패로 격렬한 몸부림을 되풀이하던 유리코의 울먹이는

목소리가 마사오의 귀에 아직도 남아있다

늦는구먼, 마사오는 시계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설마 안 오는 것은 아니겠지. 마사오는 앉은뱅이 책상의 서랍을

열어 필름을 손가락으로 집어 올렸다.

아직 현상은 하지 않았지만, 이 필름이 여기에 있는 한 유리코의

생사는 내가 쥐고 있는 것이라고 마사오는 입가에 볕은 웃음을 떠

올렸다

마사오는 답답함을 느끼며 그을음 투성이의 유리창을 열었나

장바구니를 든 주부가 우산을 받치고 지나가는 모습이 보였다. 마

사오는 손을 뻗쳐 창턱 구석에 둘둘 말려있는 비에 젖은 신문지를

주워들었다. 유리코의 대변이었다 다갈색으로 변색되어 딱딱하게

굳어있는 그것을 본 마사오는 한쪽 볼을 일그러뜨렸다.

그 미인이 배설한 거야. 그날 유리코가 돌아갈 무렵에 변기의 오

물을 화장실에 처리하고 가=다고 한 것을 마사오가 거부한 것이

다. 오늘의 기념으로 여기 남겨 두고 가라고 했을 때의 유리코의

슬픈 표정이 마사오의 뇌리에 또렷이 남아있다

마사오는 왕조시대를 배경으로 한 어느 유명 작가의 소설을 기

억해 냈다. 궁중의 한 아름다운 여성을 연모하던 남자가 어떻게든

그 미녀를 잊으려고 노력한다. 그는 그녀의 가장 더러운 것을 본다

면 의외로 포기가 빨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여 어느 날 그녀가 배변

을 한 변기를 흄쳐낸다....... 아마 그런 줄거리였다고 생각하는데,

그러나 마사오는 신문지 속의 유리코의 대변을 보면서도 마음이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유리코에 대한 보고픔이 한층 더 불타오

를 뿐이었다.

어?마사오는 창 아래로 우산을 쓰고 지나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빨간 우산을 발견하고 눈을 반짝였다 하얀 레인코트 차림에 빨간

박쥐우산을 쓰고 눈을 내리깐 모습으로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것

은 틀림없이 유리코였다

마사오의 가슴은 기쁨으로 고동치기 시작하였다. 아파트의 난간

에 떨어지는 빗소리도 즐거운 노래소리같이 들렸다. 마사오는 날

아서 그녀를 맞이하러 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방안을 춤추듯

이 빙글빙글 돌았다.

이윽고 천천히 문을 노크하는 소리.

마사오는 일부러 점잖은 표정을 지으며 책상 앞에 앉았다

'늘어와.열려있으니까.'

조용히 문이 열리고 차갑고 기품있는 유리코의 얼굴이 살며시

내부를 둘러보며 들어온다

'기다렸어 '

마사오는 미소지으며 책상에서 일어나 유리코의 손을 잡고 안으

로 끌어들였다. 유리코의 슬픔에 얼어붙은 듯한 얼굴을 보자 마사

오는 안=고 그리운 것이 가슴속에서 끓어올라 와락 껴안고 싶

은 충동에 사로잡혔다.

'서있지 말고 들어와."

마사오는 유리코의 레인코트를 벗게 하고 우산을 벽에 세우며

자, 자. 하고 재촉하면서 방안으로 끌어들였다

유리코는 품위있는 블루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마사오가 어캐

오욕의 꼿

에 손을 얹으려고 하자 가썹게 뿌리치며 책상 앞에 앉은 유리코는

볼을 경직시키며 핸드백을 열었다

핸드백 속에서 제법 두꺼운 갈색 봉투를 꺼낸 유리코는 그것을

책상 위에 올려놓더니 마사오는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여기 100만 엔 있어요.'

'그래?그것 참 고맙군 '

마사오는 일부러 불량스런 말투를 쓰며 봉투를 열어 돈을 세어

보았다.

'100만 엔, 확실하구먼."

마사오는 돈을 봉투째 주머니에 찔러넣었다.

'마사오 씨.'

유리코는 슬픔에 젖은 눈동자를 마사오에게 향하며 두려움에 떠

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그러면 그때 찍은 필름 돌려 주실 수 있으시죠?'

마사오는 픽 옷으며 담배를 물었다.

'농담하지 마! 푸후. 그러니까 나와의 관계는 없었던 걸로 해달

라는 것이군.'

그리고는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한 모금 토해냈다

'놀고 있네 "

날씬하고 가베픈 유리코의 몸이 마사오의 한마디에 부들부들 떨

기 시작했다

마사오는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넌 완전히 내 여자가 된 거야.아직도 모르겠어?'

유리코는 완연히 겁먹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럼 나 돌아가겠어요."

그녀는 핸드백을 들고 일어섰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마사오는 유리코의 어깨를 뒤에서 붙잡아 옆으로 밀어붙였다

앗, 하고 유리코는 지저분한 방바닥에 쓰러졌다.

'나는 그날 이후 네 생각을 하며 밤에 잠도 제대로 못 잤어.그

런데 오자마자 돌아가겠다니 대체 그게 무슨 심보야?'

마사오는 비옷듯이 그렇게 말하며 현관문을 잠갔다. 그러자 유

리코가 황급히 일어섰다

안 돼요, 마사오 씨 오늘은 제발 용서해 주세요. 저 오늘 세 시

부터 피아노 레슨이 있어요.'

피아노 레슨이라고?'

마사오가 입을 크게 벌리고 웃기 시작했다

'무슨 애들 같은 소릴 하는 거야.피아노 레슨보다 섹스 레슨 쪽

? 장래에 훨씬 도움이 될 텐데,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마사오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서 있는 유리코의 손에서 핸드백

을 뺏아들더니 뒤로 돌아가 원피스 지퍼를 내렸다.

퍼뜩 제정신으로 돌아온 유리코는 원피스를 벗기려고 하는 마사

오의 손을 피해 양손을 가슴 위에 교차시키면서 벽 쪽으로 물러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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