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5화 (65/72)

지하창고의 쇠철창 안에 갇힌 유키 부인은 얼어붙은 듯한 표정

으로 최공의 한 점을 바라보며 조용히 정좌하고 있었다 희고 유연

한 두 팔로 가슴을 가린 부인의 기품 넘치는 얼굴로 몇 올의 귀밑

머리가 흘러내려,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관능이 도드라져 보였

다.

두 손을 묶었던 끈은 풀렸지만,먹전히 실오라기 한 올 걸치지

않은 알몸이었다. 빛을 발하듯 하는 아름다운 나신은 어슴푸레한

전등 밑에서 비단 같은 광택을 띠며 녹아들 듯한 부드러움으로 비

치고 있었다.

진바치가 말하는 야간 훈련 때까지 유키 부인은 우리 안에서 휴

식을 취하도록 되어있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부인의 상아빛 뺨에 눈물 한 방울이 떨어져 내

렸다 혼자 이렇게 우리 안에 갇혀 있으려니 너무나도 참혹하고 비

참한 의식이 끓어올라 큰 소리로 울고 싶어진다 아니, 실성해 버

리지나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하긴 차라리 실성해 버리는

쪽이 더 나을지도 몰랐다.

그때 진바치와 오몽이 콧노래를 부르며 지하계단을 내려왔다.

부인은 얼른 손끝으로 눈물을 흄치고는 하얀 뺨에 드리운 귀밑

머리를 빗어올리면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우리 안에서 훌쩍거리

거나 자세를 흩뜨리고 있으면 진바치가 언찮아 하기 때문이었다.

사부가 왔을 때는 단정하게 가슴을 펴고 예의바르게 맞아야

해.

진바치의 말이었다.

'앞으로 20분 후에 야간훈련이 시작된다, 알겠지?"

진바치는 쇠철창 안의 유키 부인을 들여다보며 누런 이를 드러

내고 웃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부인의 차가운 상아색 뺨을 넋놓고 쳐다보

던 오몽이 진바치를 향해 말했다.

아무리 봐도 질리지 않는 미인이야. 안 그래요,여보?'

'지금부터 시작할 훈련은 좀 괴롭겠지만 참고 견뎌야 해.대신

이 훈련을 마치고 나면 너는 완벽한 창녀의 자질을 갖추게 되는 거

야."

오몽은 곁눈질을 하며 담배를 물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돌이켜봤을 때, 가장 어려웠던 것은 뒷문

훈련이었어."

오몽은 담배연기를 천천히 내뱉았다.

'채신 그곳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 생리날에도 손님을 받을 수

있고. 좀더 훈련하면 두 손님을 동시에 즐겁게 만들어 줄 수도 있

지. 외국의 창녀들은 뒷문 기술이 꽤 발달해 있다더군. 하지만 내

가 미국이나 프랑스 창녀에게도 지지 않을 기술을 가르쳐 줄 테니

까 걱정 마."

오몽이 신나게 말하자, 부인의 그늘진 속눈썹이 애처롭게 부들

부들 떨리며 단정한 뺨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래서 전문가를 한 분 모시기로 했어. 보통 게이보이 미키라

고 부르지. 본명은 마츠자키 미츠오. 녀석은 부인과도 면식이 있는

것 같던데

진바치는 그렇게 말하고는 갑자기 뒤를 돌아보며 소리를 질렀

'미키, 이제 됐어. 이리 나와.'

그러자 지하로 통하는 계단 뒤쪽에서 기묘하게 생긴 남자가 슬

그머니 모습을 나타냈다. 남자라고 하지만, 얼핏 남잔지 여잔지 분

간이 가지 않는 이상한 복장을 하고 있었다 빨간 손수건을 목에

두르고 꽈란색의 반짝반짝 빛나는 셔츠, 하얀 바탕에 꽃무늬가 그

려진 판탈롱 바지에 머리는 다카라츠카 가극단의 남자배우를 연상

시키는 리전트형 헤어스타일이었다

마츠자키 미츠오입니다. 유키 부인, 오랜만이군요. 괄 기억하

고 계시나?'

미츠오는 말투까지 여자 같았는데, 분을 처덕처덕 바른 얼굴을

쇠철창 가까이 갖다댔다.

유키 부인은 미츠오의 얼굴을 대하는 순간 마치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오싹하여 몸을 뒤로 움츠렸다.

그는 언젠가 현월류 꽃꽂이, 시마하라 유키의 문하생이 되고 싶

다면서 단신으로 시마하라가로 쳐들어왔던 일종의 변태성욕자였

다 당시 유키 부인은 그를 한 번 보고는 이곳은 당신 같은 사람이

올 곳이 아니에요, 하고 단호하게 거절했으나, 미츠오는 그 뒤에도

끈질기게 시마하라가에 전화를 걸어댔었다

언젠가 긴자에서 현월류 꽃꽂이의 전시회가 열렸을 때, 미츠오

가 잔뜩 취해 전시회장에 뛰어들어와 당신 말야, 너무 건방져 하

며 덤벼들었던 일도 있었다. 부인은 술주정을 하는 미츠오를 전시

장 지하로 데리고 가 뺨을 세차게 때렸었다.

미츠오는 온화하고 기품 넘치는 아름다움을 지닌 유키 부인이

때와 장소에 따라서는 화를 낼 줄도 아는 여자라는 사실을 깨달았

는지 이후 다시는 시마하라가에 얼씬거리거나 전화를 거는 일조차

없었는데...... 그 기분 나쁜 호모가 지금 쇠철창 밖에 서서 고소하

다는 듯이 쇠철창 안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다

유키 부인은 황급히 미츠오로부터 시선을 거두며 눈을 꽉 감아

버렸다.

'호호호, 부인 사정은 가즈에 마마로부터 자세히 들었어. 난 말

야 지금 가즈에 마마의 제자로 들어와서 꽃꽂이 공부를 하고 있

어. 부인은 내게 상당히 심술궂었지만, 가즈에 마마는 나에게 아주

친절하시지 난 가즈에 마마를 존경하고 있어.

미츠오는 우리 안에 갇힌 채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있는 알몸의

유키 부인을 향해 마치 희극배우가 대사를 외우는 듯한 어조로 말

을 이어갔다.

'하지만 말야. 정말 가엾은 부인인걸! 그렇게 멋진 집에서 살면

서 수많은 제자들에게 떠받들어지던 현월류 꽃꽂이의 대가가 지금

은 사회적 지위도, 재산도 모조리 빼앗긴 채 우리 안에 갇힌 운명

이 되리라고는.... '

미츠오는 호모 특유의 끈적거리는 말투로 계속해서 떠들어댔다.

게다가 옷까지 빼앗기고..... 호호호, 가즈에 마마도 참 철저

하시지. 어지간히 부인이 미웠나 봐. 하지만 정말 아름다운 몸매로

군. 가즈에 마마가 미술품이라고 하던데 정말 말 그대로야 '

그떻게 정력적으로 떠들어대는 미츠오의 어깨를 진바치가 뒤에

서 두드렸다

'언제까지 시끄럽게 떠들어대고 있을 거야,적당히 해."

오몽도 킬킬거리며 웃었다.

그보다 지금부터 네가 맡은 일을 부인에게 설명하도록 해."

미츠오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서 껌 하나를 꺼내 입에 구

겨넣었다

어둠침침한 우리 안에서 유키 부인의 유연한 나신이 희미하게

흔들리고 있다 호모로 불리며 뒷골목만 누비고 다니던 미츠오, 그

소름끼치는 남자가 지금 진바치 부부와 손잡고 자신의 육체에 음

탕하고 잔학한 행위를 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부인은 마침내 참지 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떨며

오열하기 시작했다

'나도 가즈에 마마로부터 부탁받은 거야,시마하라 유키를 화전

차의 여왕이자 관록있는 창부로 만드는 데 내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이지. 즉, 나는 내 경험을 살려서 유키 부인의 항문을 연마하는

조교가 되는 셈이지 '

미츠오는 쇠철창에 손을 얹고 한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호모다

운 기묘한 웃음소리를 냈다.

'흑인 포르노스타인 조와 난 아주 절친한 사이야.

미츠오가 즐겁다는 듯이, 자기도 그와 해본 적이 있는데 녀석의

물건이 너무 커서 눈물이 찔끔 나왔었다며 진바치 부부를 웃겼다

'그 검둥인 좀 이상해. 게이뿐만 아니라 여자한테도 그곳에 하

지 않으면 흥이 나지 않는다는 거야."

그때 여러 사람이 지하계단을 내려오는 발소리가 들리고, 팬티

한 장만 걸친 유리코를 요세워 가즈에와 여제자들이 모습을 드러

냈다

마치코가 유리코를 뒷결박한 오랏줄을 쥐고 있었으며, 란코는

깊이 고개 숙인 채 오열하고 있는 유리코의 뺨을 재미있다는 듯이

꾹꾹 찔러대고 있었다.

'부인,오늘은 아주 멋진 손님을 모셔왔어.

가즈에가 그때까지 우리 안에서 잔뜩 몸을 응크리고 있는 유키

부인에게 유쾌한 투로 말을 걸었다.

부인이 가즈에의 목소리에 얼굴을 들어올린 순간 달구어진 화

젓가락에라도 찔린 양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어, 언니 !'

유키 부인보다 먼저 유리코 쪽이 울부짖기 시작했다.

검고 길다란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마구 흩트리며 우아하게 뻗은

섬세한 알몸을 격렬하게 몸부림치면서 흐느끼는 유리코. 부인은

얼굴을 무섭게 일그러뜨리며 믿을 수 없다는 듯 미친 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 유리코!"

울부짖다가 그대로 핏기가 싹 가신 굳은 표정으로

부인은 가즈에를 노려보며 소리를 질렀다

'대, 대체 어떻게 된 일이에요? 유리코에게는 손대지 않겠다고

약속했잖아요?'

'그런 약속을 한 것 같기는 하지만, 어쨌든 동생분께서 언니를

만나고 싶어 가만히 계시질 않는 거야 그래서 이렇게 일부러 여기

까지 모시고 오지 않았겠어?"

감사라도 해야 할 일 아니야, 하며 가즈에는 마치코와 란코 쪽을

돌아보며 웃었다

'하지만 유리코 양도 이미 이곳 비밀을 알아 버렸으니까, 이대

로 돌려보낼 수는 없겠지? 안됐지만 동생분도 똑같은 운명을 걷는

외에 달리 방도가 없겠어.'

'가, 감히 그런 짓을. .. !'

유키 부인은 눈물로 얼룩진 검은 눈동자에 증오의 빛을 가득

은 채 가즈에를 노려보았다

'아니, 제법 무서운 얼굴이네?'

미츠오가 부인의 분노로 일그러진 표정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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