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정한 옷차림의 여자직원은 북새통인 손님들의 극성으로 바쁜 와중에도 상냥한 웃음을 띠고 나에게 웃어보였다.
"어느걸 계산해 드릴까요 손님?"
난 그런 그녀에게 싱긋 웃어주고는 손에 들고 있던 두 권의 책을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내가 올려놓은 물건을 본 여직원의 표정이 흠칫 굳어졌다. 어이, 입꼬리가 떨리고 있다고.
나는 한숨을 쉬면서 나의 전재산인 만원을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재빠른 손놀림으로 세종대왕님께서 미소짓고 계시는 만원을 손에 쥔 여직원이 재빨리 두개의 물건을 검은 봉지에 담아 주었다. 여직원의 손에 세종대왕님의 얼굴이 휴지조각처럼 구겨졌다.
지금 시대는 2050년이다. 2012년에 운석이 떨어질꺼라던 현자 노스트라다무스님의 예언이 뻥으로 판명난지 38년이나 지났다. 나는 26살의 평범한 청년인 오덕후다.
뭐? 오타쿠 아니냐고? 내 이름이 오덕후다. 오자 덕자 후자. 우리 부모님께서 소중히 지어주신 이름을 함부로 폄하하지 말라고, 덕망이 있으라는 덕자에 후하라는 의미의 후, 즉 여러 덕을 후하게 받으며 자랄꺼라는 의미지. 우하하핫!
..뭐 어감이 별로긴 하지만. 어쨌든 나에겐 별난 취미가 하나 있었다. 옛날에는 별거 아니였다고 하긴 하지만, 이 시대에는 미성년자 이후 부터 애니나 게임등을 하면 오타쿠 취급을 받으며 경멸하는 풍조가 형성되어 있었다.
뭐, 게임좀 하고 애니좀 보니게 뭔 덕후겠냐만은, 어쨌든 사회의 시각이 그렇다는데 뭘 따지냐!
아니, 그보다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일단은 음후후후-.
내 방은 온갖 애니cd와 미연시게임, 피규어등으로 가득 차 있었다. 뭐? 오타쿠냐고? 난 오타쿠가 아니야.
단지 애니와 게임이 좋을 뿐. 뭐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물려주신 재산도 빵빵해서 일할 필요가 없는 탓에 하루 24시간 애니와 피규어, 10개의 컴퓨터를 돌리면서 생활하긴 하지만 말이지.
천천히 오늘 쇼핑의 부산물인 사랑스런 피규어를 제작해 선반위에 올려놓자 나는 마음 한 구석이 뿌듯해져 오는것을 느꼈다. 이런 뿌듯한 맛에 옛날 많은 오타쿠들이 피규어를
모았던것이 아닐까? 나는 푹신한 침대에 머리를 묻고 자신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눈을 감았던 나는 몸에서 느껴지는 기이한 느낌에 눈을 뜨고 말았다. 여기는.. 허공?
"뭐뭐뭐뭐뭐야아아?"
나는 놀랍게도 검은 밤하늘에 떠 있었다. 사람이 만유인력을 거스를 순 없는법! 뉴튼이 정의한 법칙에 따라 나는 수천미터의 상공에서 바닥으로 낙하해 가기 시작했다.
"우아아아아악!"
양껏 비명을 내지르는데 세상이 일그러지는 느낌이 들며 나는 정신을 잃고 말았다.
다시 눈을 뜬 나는 기겁을 하며 누워있던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소주한잔하고 잠든 것처럼 지끈 지끈 거리고 있다. 꿈, 꿈이었나?
나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고개를 들었다. 거기에는 생전 처음보는 뚱땡이가 얼굴에 개기름을 좔좔흘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눈을 비비고는 다시 뚱땡이를 보았다. 여전히 그 자리에 뚱땡이가 존재하자 나는 눈을 감으며 자리에 누웠다.
"꿈속에서 꿈을 꾸는 일이 있다더니 정말이구나. 자야지."
눈을 감자 뚱땡이의 음성으로 추측되는 걸쭉한 욕설이 들려왔다.
"현실을 외면하지말라능. 이건 꿈이 아니라능."
"닥치세요. 뚱땡이씨."
"나는 존귀한 몸이라능. 뚱땡이라고 부르지 말라능."
"아아, 나도 내 대뇌 한 구석에 너같은 뚱땡이가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않아."
그 순간 나는 눈에서 불이 번쩍 일어나는 것을 느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아아악! 시발 아프잖아!!"
나는 머리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고통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고, 뚱땡이는 개기름이 좔좔 떨어지는 주먹을 감싸쥐며 빙긋 웃었다.
"역시 엄청난 오덕력 이라능. 나의 오덕펀치를 맞고도 그 정도의 충격밖에 받지 않다니. 출중한 오덕들이 많던 2010년도의 오덕들도 이 정도의 오덕력을 갖춘 자는 많지 않았다능."
"이 시발 돼지새끼가 뭐라 하는거야?"
어이 웃지말라고. 개 기름 떨어지니까. 뚱땡이는 개 기름이 좔좔 흐르는 돼지족발이 연상되는 두툼한 손으로 어떤 피규어를 집어들더니 나에게 보여주었다.
"이게 뭔지 아냐능."
뚱땡이의 시기적절한 물음에 나는 반사적으로 대답해 버렸다.
"그거 세이버잖아."
"이거능?"
"그건 알 아지프."
"이건 뭐냐능."
"..그건 나노하의 페이트.. 라기 보다 왜 그런걸 물어보는거냐!"
뚱땡이는 감명받은 표정으로 나의 손을 잡았다. 그 불쾌한 느낌에 기겁했지만 뚱땡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역시 너는 이 시대의 유일한 오덕이라능!"
"오덕 아니거든?"
"오덕후! 너의 이름이 아니였냐능. 넌 오덕계의 별이 될 자질을 지니고 있다능."
"적당히 해라 임마. 형 폭발한다."
내가 몸을 부들부들 떨자 그 돼지같은 뚱땡이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들더니 얼굴에 착용했다.. 라기 보다 저거 스카우트잖아!? 오덕은 부들부들 떠는 나를 보더니 의미불명의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오옷!! 3만, 5만, 100만!! 이, 이런 오덕력이라니."
펑-!
뚱땡이의 얼굴에 차고 있는 스카우터가 작게 폭발을 일으키며 튕겨나갔다. 뚱땡이는 얼굴가죽이 얼마나 두꺼운지 화상을 입지도 않았다. 뚱땡이는 나를 보며 고개를 끄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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