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64)

 무승부

  

 마사오가 긴다꾸 장에 돌아와 방문을 열었을 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고마쯔하라는 일찌감치 도서관에 간 모양이었다.

 이불을 깔고 막 눈을 좀 붙이려는데 노크도 없이 방문이 급하게 열렸다.

 아끼였다.

 마사오를 노려보며 다가왔다.

 <어젯밤, 어떻게 된 거죠?>

 첫 외박이었다.

 너무 취해서 친구집에서 잤다고 하면 그만이다.

 마사오는 그렇게 말할 생각이었는데 아끼의 쏘는 듯한 눈빛에 순간 움찔했

다.

 그러는 자신이 못마땅했다.

 (난 아끼에게 정조를 지키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어.)

 요즘 부쩍 자신에게 간섭하려 드는 아끼에게 두 사람의 관계를 확인시키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끼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어떤 여자 방에서 자고 왔어.>

 <뭐라구요?>

 장난스럽게 마사오가 뺨에 입을 맞추었다.

 아끼는 힘껏 팔을 잡아 떼어내고 도끼눈으로 노려보았다.

 <했어요?>

 <응.>

 <어떤 여자였죠? 여학생.>

 <아니, 술집 여자.>

 <몇 살?>

 <삼십 정도.>

 <아무나 하고 자는 음탕한 여자였죠?>

 <그런 여자는 아냐. 나와는 우연히 기회가 맞았을 뿐이야.>

 <난 잠도 못자고 내내 기다렸어요.> 

 <미안해.>

 신경질을 부리며 소리치지 않아 다행이구나 안심하는데 웬걸 그건 계산 착

오였다.

 아끼는 뒤로 몰러서서 믿을 수 없ㄷ는 듯이 고개를  가로젓더니 이내 마사

오의 뺨으로 칼날 같은 손을 올려붙였다.

 <싫어! 그런 아줌마와는.>

 그리고는 여학생이 차마 입에 담지 못할 욕설들을 시뻘건  얼굴을 하며 마

구 내뱉었다.

 질투뿐만 아니라 자존심에 상처를 받은 분노였다.

 어쩌면 여학생과 그랬다면 용서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끼는 다시 마사오의 따귀를 갈겼다.

 마사오는 저항하지 않고 묵묵히 맞아 주었다.

 정말 잠자지 않고 내내 기다렸다는 건 충혈된 아끼의  눈이 말해주고 있엇

다.

 괜히 솔직하게 말했구나하는 후회와 함께 미안함이 들어서였다.

 아끼는 몸을 돌리더니 부서져라 문을 닫고 나가 버렸다.

 마사오는 이불 위에 누워 얼얼해진 뺨을 어루만졌다.

 (이제 아끼와 끝인가?)

 그래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아쉽기도 했다.

 헤어진다고 해도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안아 보고 싶어졌다.

 (이제 막 여인의 기쁨을 알기 시작했는데, 나에 대한 반발로  다른 남자와 

어울릴지도 모르겠군.)

 아끼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애였다.

 한숨 자고 나서 대중 목욕탕에서 시나노의 체취가 배어  있는 몸을 말끔히 

씻어냈다.

 수건으로 몸을 닦고 선풍기로 머리를  말리고 있는데 분신이 조금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고마쯔하라 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아끼를 부르자.)

 저녁 시간에 맞춰 돌아 온 고마쯔하라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오늘밤은 히요

꼬의 아파트에서 묵을 수 없냐고 물었다.

 고마쯔하라는 승낙을 하고 저녁을 먹은 뒤 밖으로 나갔다.

 마사오는 아끼의 방으로 갔다.

 마침 그녀는 막 방에서 나오는 참이었다.

 마사오는 다가가며 그녀의 팔을 잡았다.

 그러자 아끼는 몸을 돌리며 손을 홱 뿌리쳤다.

 <싫어. 건드리지 마.>

 <오늘밤, 고마쯔하라 씨는 오지 않아. 기다리고 있을 테니 언제든지 와.> 

 아끼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쨌든 마사오로서는 화해를 청한 셈이었다.

 이제부터는 아끼가 결정할 문제였다.            

 마사오는 방으로 돌아와 이불 속에서 책을 읽으며 아끼를 기다렸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시나노와 무리한 탓인지 서서히 눈이 감겨왔다.

 깜박하는 사이에 잠에 떨어졌다.

 눈을 떠보디 머리맡에 아끼가 반듯이 앉아 마사오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언제 와 있었어?>

 <혐오스러워. 죽여 버리고 싶어.>

 <몇 시지, 지금.>

 <아홉 시.>

 <삼십 분 정도 잔 거군.>

 <죽여 버리고 싶다니까.>

 마사오는 한 손을 아끼의 무릎 위에 올렸다.

 <화난 얼굴도 예쁘구나.>

 <바보 취급하지 마.>

 <자, 이리 들어 와.>

 이불을 들치며 마사오가 말했다.

 <그러려고 온 게 아니야. 난 당신 같이 비열하지 않아. 그래서  미리 말해 

두겠어요.>

 <뭘?>

 <나도 서른이 넘은 남자와 잘 거야.>

 <응?>

 <정말이야. 내일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했어요. 전부터 내게 흥미를  느끼

고 있던 사람이라 살짝만 꼬리쳐도 달려들 거에요. 그 말을 하러 왔어요.>

 아끼는 절대 거짓말은 하지 않으며 또 충분히 그런 일을 벌릴 애였다.

 <그만 둬. 너만 비참해질 뿐이야.>

 <그래야 마음이 조금은 가라앉을 것 같아요. 그만 가겠어요.>

 아끼는 일어섰다.

 마사오는 벌떡 일어나 아끼를 껴안았다.

 <가지 마.>

 <소리칠 거야.>

 <좋아. 마음대로 해.>

 아끼는 소리치지 않고 마사오에게 안겨 이불 위에 누웠다.

 입맞춤을 했다.

 아끼는 입을 꼭 다문 채 천장만 응시했다.

 마사오가 손을 가슴에 얹었다.

 부드럽게 주무르며 말했다.

 <그렇게 화내지 마. 그저 순간적인 기분에서 그런 거야.>

 아끼는 고개를 흔들었다.

 <남녀 관계는 다 순간적인 거예요.>

 아끼는 마사오의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그저 가만히 누워 있었다.

 물론 마사오의 몸에 손을 대지도 않았다.

 그래도 마사오는 애무를 계속했다.

 이윽고 손을 스커트 안으로 미끄러뜨려 꽃밭으로 들어섰다.

 <이제는 마음 풀어.>

 <무리예요.>

 이 정도면 화원에서 따뜻함을 발산할만 한데도 오늘밤은 그렇지 않았다.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꽃잎은 꼭 입을 다물고 있었다.

 (정말 화가 났군.)

 어쨌든 아끼의 기분을 고조시켜야 했다.

 마사오의 손가락은 교묘하게 움직였다.

 <소용없어요. 그렇게 해도. 난 절대 흥분되지 않을 테니까.>

 냉소적인 말투였다.

 마사오는 아끼의 귓볼을 가볍게 깨물었다.

 <나도 잘못했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리고 아끼가 훨씬 좋았어.>

 시나노 몸의 기억이 아직 생생했다.

 아끼의 몸은 감각적으론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점이 신선하고 사랑스럽다.

 마사오는 계속해서 다정한 밀어를  속삭이며 손가락으로 꽃밭을  어루만졌

다.  

 그래도 아끼는 가만히 있을 뿐 허리 한 번 움직이려고도 하지 않았다.

 -네가 아무리 노력해도 난 그럴 마음이 전혀 없어.-

 아끼의 마음은 그렇게 단단히 굳어져 있었다.

 어쩌면 그런 생각을 확실히 보여 주기 위해 마사오의  손길을 방치하고 있

는지도 몰랐다.

 (좋아. 그렇다면 나도 고집이 있어. 스스로 마음이 내켜 할 때까지  더 나

아가지 않겠어.)

 그런 반발심을 애써 죽이며 손으로는 부드러운 애무를 하고 입으로는 달콤

한 말을 속삭여댔다.

 아끼는 눈을 크게 뜬 채 천장을 응시하며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샘물도 전혀 넘치지 않았다.

 (여기에서 포기하면 내가 지는 거야.)

 아끼는 자기 몸이 그의 손길에 반응을 보이지 않도록 무척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마사오는 초조해 하지 않았다.

 한참이 지나가자 겨우 아끼의 화원에서 신호가 나타났다.

 약간의 물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점점 서서히 흘러넘치기 시작했다.

 마사오는 더욱 농밀하게 애무했다.

 드디어 비경은 호수가 되었다.

 마사오의 끈기가 부족해서 그만두지 ㄳ는 한, 아끼가 계속해서  애무를 허

락하는 이상, 이렇게 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래도 아끼는 가만히 있었다.

 마사오는 아끼의 옷을 모두 벗겨내고 자신도 알몸이 되었다.

 아끼는 나지막이 말했다.

 <안 돼요. 오늘밤은 기분이 안 좋으니까.>

 확실한 후퇴였다.

 다만 전선이 무너지자 뒤로 조금 물러나 제2의 전선을 구축한 것이었다.

 <싫어.>

 마사오는 아끼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기뻐하도록 만들겠어.>

 여기까지 오면 아끼와 화해한 것과 마찬가지라는 안도감이 들었다.

 마사오는 아끼의 의지를 존중하는 의미에서 곧 결합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

리 사이로 얼굴을 가져갔다.

 아끼의 젊은 꽃밭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과연 연상은 연상대로의 매력이 있고 젊음은 젊음 나름대로의  매력과 아

름다움이 있다.)

 꽃잎이 혀끝에 닿았다.

 그래도 아끼는 가만히 있었다.

 흘러넘치는 건 생리적인 반응이라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은  그럴 마음이 없

다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꽃밭을 혀로 부드럽게 휩쓸었다.

 아끼는 다리를 조금 바르르 떨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승부는 이제부터라고 마사오는 생각했다.

 게임이었다.

 그 게임에 마사오는 즐거움을 느끼지 시작했다.

 희미하게 아끼의 허리가 움직이더니 이내 경련이 일어났다.

 샘물은 끊임없이 흘러 넘쳤다.

 마사오는 잠시 멈추고 어떻게 변화되어 있는지 확인했다.

 투명한 샘물이 비너스에서 넘쳐 꽃밭 전체로 퍼져나갔다.

 비너스가 꿈틀거리며 분명하게 마사오를 요구하고 있었다.

 아끼의 의지를 배반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끼는 연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신음소리도 꾹 참아내며 냉정을 유지하려고 무진 애쓰고 있었다.

 (불량한 애이기는 해도 역시 사랑스러워. 터질 듯한 젊음이 있어.)

 확실히 마사오에게는 삼십 대의 성숙한 여자보다는 이 젊은  샘이 더 어울

리고 편안하다.

 그때 아끼의 말이 들려 왔다.

 <무슨 짓을 해도 내 몸과 마음은 별개에요.>  

 그렇지만 그 목소리는 상기되어 있었다.

 (아직도 고집을 부리는군.)

 더 이상의 애무는 필요없다는 판단이 섰다.

 마사오는 가만히 그곳에 이별을 고하고 몸을 일으켜 자신의 허리를 아끼의 

얼굴로 가져갔다.

 아끼의 눈이 덩어리를 노려보았다.

 <필요없어요. 술집 여자나 좋아하는 따위, 싫어.>

 아끼는 덩어리를 밀치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마사오는 그것을 아끼의 뺨에 밀착시켰다.     

 <정말로 싫어?>

 <그보다 내가 묻는 말에나 대답해요.>

 <뭔데?>

 <좋았어요?>

 아끼가 더 누그러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몸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도 풀어졌다.

 드디어 타협하려는 기미를 보여온 것이다.

 <응, 그래도 아끼가 훨씬 좋아.>

 <거짓말. 상대는 능숙했을 텐데?>

 <그러니까 네가 더 좋은 거야. 아끼가 더 사랑스러워.>

 <그래도 싫어.>

 갑자기 아끼는 마사오의 몸을 뿌리치려고 했으나 결과적으로 쥐게 되었다.

 그리고 이내 힘껏 움켜쥐었다.

 거부하는 마음을 나타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여자의 힘으로 아무리 세게 움켜쥐더라도 참을만 하다.

 오히려 쾌감이 느껴졌다.

 마사오는 의식적으로 덩어리에 힘을 넣었다.

 아끼도 그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사오는 입술이 자신의 몸에 닿도록 그녀의 얼굴을 돌렸다.

 아끼는 저항하면서도 마사오의 몸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조금씩 아끼의 얼굴이 돌려져 바로 입 위에 우뚝 솟은 덩어리가 놓여졌다.

 마사오는 엉덩이를 바짝 들어 첨단이 아끼의 입을 향하도록 했다. 

 아끼는 입을 꼭 다문 채 가만히 있었다.

 얼굴도 돌리지 않았다.

 <이제 그만 화 풀어.>

 <물어 버리겠어요.>

 <그럼 그렇게 해.>

 <괜찮죠?>

 <그래.>

 <그리고 난 그 남자와 놀 거예요.>

 <알았어.>

 마사오가 그쯤에서 타협한 것은 아끼의  자유를 구속하면 그것이 두  사람 

사이의 중요한 약속처럼 돼 버릴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드디어 아끼가 입을 벌려 마사오의 몸을 조금씩 삼키기 시작했다.

 <아... 좋아.>

 마사오는 그렇게 말했다.

 혹시 정말 깨물지 않을까 걱정을 하면서도.

 (설마 괜찮겠지?)

 역시 아끼를 신뢰하고 있었다.

 만일 그의 신뢰가 잘못된 것이라면 아끼는 발작적으로 그에게 상처를 입힐 

것이다.

 아끼의 이에 점점 힘이 들어감에 비례해 통증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 불안을 나타내면 오히려 상대를 자극하는 셈이 된다.

 문득 아끼의 힘이 늦춰졌다.

 이어서 갑자기 얼굴을 돌리며 마사오의 몸을 토해냈다.

 <바보, 상처가 나면 어떻게 하려고.>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상냥함이 담겨 있었다.

 <어머, 잇자국이 났네.>

 마사오는 가만히 있었다.

 아끼가 잇자국의 주위를 부드럽게 혀로 어루만졌다.

 드디어 아끼도 본격적으로 애무하기 시작한 것이다.

 한참이 지난 뒤 두 사람은 나란히 누워서 포옹하며  절정의 여운을 음미했

다.

 <아팠죠?>

 <조금.>

 <언제 다시 만나기로 했어요?>

 <안 만나.>

 이 정도로 아끼의 화가 완전히 풀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삽십 대의 남자와 관계를  갖겠다는 약속은 스스로 취소하게  될 

거라고 마사오는 믿었다.

 다음 날이었다.

 마사오는 강의를 마치고 곧장 긴다꾸 장으로 돌아왔다.

 옷을 갈아입자마자 아끼의 어머니가 들어왔다.

 <빨래감 있으면 내놓게.>

 몇 가지를 건네주며 물었다.

 <아끼는 방에 있습니까?>

 <친구와 음악회에 갔네.>

 외출했던 아끼가 마사오의 방문을 두드린 건 열 시가 지나서였다.

 방에는 고마쯔하라가 있었으므로 둘은 복도로 나왔다.

 <잠깐 정원으로 가요.> 

 아끼의 눈에는 도전적인 빛이 감돌았다.

 어젯밤 사랑을 나누고 헤어졌을 때의 달콤함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담 밑 어두운 곳으로 갔다.

 아끼가 마사오의 팔을 붙잡았다.

 <음악회에 갔다 왔어?>

 <아뇨, 어젯밤에 말했잖아요. 어떤 아저씨를 만난다고.>

 <......>

 <때려도 좋아요.>

 마사오는 아끼의 손을 떼어내고 벽에 기대어 섰다.

 (이 애는 내가 때려 주길 바라고 있는 걸지도 몰라.) 

 그러나 마사오는 손으로 아끼의 어깨를 짚었다.

 <거짓말이지?>

 <정말이에요.>

 아끼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사오를 응시했다.

 배신당했다는 기분은 들지 않았다.

 단지 아끼의 실천력이 어이가 없을 뿐이었다.

 <상대는 누구야?>

 <다시 만나지 않을 테니까 누구라도 상관없죠. 병은 없을 거예요. 그런 사

람은 아니니까. 이제 나와 끊을 거예요?>

 <그렇게 하자.>

 <그럼 난 예전의 나로 돌아가 아무하고나 잘 거예요.>

 <마음대로 해.>

 <그 사람, 능숙했어요.>

 <난 여기를 나갈 거야.>

 <그럴 필요까지는 없어요.>

 <너에겐 필요없더라도 나는 나가겠어.>

 아끼가 마사오를 와락 끌어안았다.

 <싫어. 헤어질 수 없어요. 다시는 바람 안 피울게요.>

 아끼가 뺨을 비벼대며 말을 이엇다.

 <무승부잖아요.>

 분명 두 사람의 관계를 고려했을 때 옳은 말이다.

 그러나 마사오의 마음은 이미 식어 버렸다.

 <이미 늦었어.>

 <화났어요?>

 <당연하지.>

 <왜요?>

 <좋아하는 마음도 있었으니까.>

 <용서할 수 없어요?>

 <응.>

 <알았어요.>

 아끼는 입술을 요구했다.

 <헤어질 테니 마지막으로...>

 입맞춤을 했다.

 아끼는 정열적인 키스를 했다.

 아끼의 손이 마사오를 더듬어 내려가 바지 위로 분신을 힘껏 쥐었다.

 마사오는 입술을 떼었다.

 <이제 끝이야.>

 <그럼 전 불량아로 돌아갈 거예요.>

 <그러지 않으면 좋겠어.이건 진심이야.>

 마사오의 몸은 전혀 반응이 오지 않았다.

 아끼의 손목을 잡아 떼어냈다.

 <정말 이사갈 거예요?>

 <그래.>

 전부터 2학기부터는 이런 하숙집이 아니라 혼자 셋방을 얻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번 일로 계획이 앞당겨진 것 뿐이다.

 마사오는 학교 게시판에서 마음에 드는 방을 발견하고 학생과에 신청했다.

 그러면 학생과에서는 학생증과 학적부를 대조한 뒤에 집주인에게 소개장을 

써준다.

 소개장에는 엄선된 결과라는 문구가 있지만 사실은 그저 신청 순서대로 하

는 것이다.

 마사오가 약도를 들고 찾아간 곳은 철도 주변의 주택가였다.

 역에서 오 분 거리로 오래된 이층집이었다.

 대문에 품위 있는 백발의 노파가 마중나와 있었다.

 객실에서 차 대접을 받았다.

 노파는 마사오를 찬찬히 뜯어보면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질문하는 요령과 어법의 정확함에 마사오는 혀를 내둘렀다.

 마치 구두 시험을 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보통은 학생이 방을 먼저 보고 의사가 있으면 주인과 타협을 한다.

 그러나 이 집의 경우에는 주인  할아버지의 대학 후배에 한해서  파격적인 

가격으로 빌려 주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조건도 까다로웠다.

 통금은 원칙적으로 밤 열한 시.

 친구를 재울 때에는 미리 허락을 받을 것.

 친구를 데리고 와서 술을 마시거나 소란을 피우지 말 것.  

 마사오가 노파의 조건을 수락한 건 전적으로 파격적인 임대료 때문이었다.

 노파의 이름은 기다하라 하쥬다로 예순 둘이었다.

 그녀의 남편은 중풍에 걸려 반신불수로 항상 안방에 누워 있는 환자였다.

 아들은 십 년전에 결핵으로 죽었고 삼십 초반의 미망인인 며느리는 조그마

한 회사의 사무원이었다.

 그리고 손주로 중학교 2학년 여자애가 한 명 있었다.

 마사오는 이층에 있는 조그만 방을 쓰기로 했는데 계단을 내려가면 부엌이 

있어 자취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아끼는 그의 의지가 요지부동이라는 걸 알고 나서는 손바닥 뒤집듯 냉정하

게 돌아섰다.

 곧바로 다른 하숙생과 관계를 텄다는 걸 거리낌없이 보여 주었다.

 마사오에게 아끼가 마지막으로 한 말은 과연 그녀다웠다.

 <내 몸을 기쁘게 해주는 건 당신만이 아니라는 걸 이제 알았어요. 결코 당

신을 쫓아가거나 매달릴 필요가 없게 된 거죠.>

 물론 마사오는 이사하는 집을 알리지 않았다. 

 그 애가 찾아 온다면 곤란해질 테니까.

 물론 자존심 강한 아끼가 찾아 올 리는 없지만.

 마사오는 일요일에 이사를 했다.

 며느리인 찌에와 손녀 유끼꼬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누었다.

 찌에는 거의 화장기 없는 얼굴이었다. 

 머리를 가지런히 빗어넘겨 묶은 갸름한 얼굴이 아름다웠다.

 마사오는 그녀에게서 무척 정숙하고 단정한 느낌을 받았다.

 자기 어머니를 쏙 빼닮은 귀여운 유끼꼬는 부끄러워하며  노파에게 매달린 

채 꾸벅 인사를 했다.

 여름 방학이 될 때까지 마사오는 찌에와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없

었다.

 간혹 복도에서 마주쳐도 찌에는 인사만 하고 곧 스쳐지나갈 뿐이었다.

 (이 여자는 일부러 나와 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날이 갈수록 그 느낌이 더욱더 확실해졌다.

 그러나 마사오는 자신을 보는 찌에의 아주 짧은 눈빛에서 자신을 싫어하고 

있지는 않다는 걸 넘겨 짚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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