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5화 (25/64)

  

 독신녀 아파트

 그날 오후 다섯 시, 약속대로 마사오는 도서관 옆 작은 광장으로 갔다.

 묘우미가 벤치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가서 괜찮았습니까?>

 <응. 열 시간쯤 푹 잠을 잤어.>

 <저도요.>

 <오늘밤은 집에 돌아가야 돼.>

 <그렇겠죠.>

 <당신, 내 잡지 동인 만날 용기 있어?>

 <그날 밤 그 남자요?>

 <아니, 그 남자는 잡지 동인이 아니냐.>

 <누구든 상관없습니다.>

 <그러면 가자. 다방에서 기다리고 있거든.>

 두 사람은 문학부 옆문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당신과의 일을 모두 말했어. 그랬더니 당신과 만나고 싶대.>

 문학 청년 중에는 괴상한 논리를 전개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태양 때문에 사람을 죽인 소설의  주인공이 인기가 있고, 종종  그 중에는 

그런 주인공을 흉내내는 사람도 있었다.  

 (조심해야겠군. 동인들은 손 안의 진주를 도둑맞은 것 같은 기분일지도 몰

라. 그러나 내가 감언으로 유혹한 것도 또 강제로 그런 것도  아니니 큰 염

려는 없어.)

 다방으로 들어가 구석 깊숙이 앉아 책을 읽는 여학생  앞으로 갈 때까지도 

만날 상대는 남자라고만 마사오는 생각하고 있었다.    

 <시루꼬, 왔어.>

 묘우미가 부르자 상대가 얼굴을 들었다.

 다소 차가운 인상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얼굴이었다.

 묘우미가 그녀를 소개했다.

 <같은 과의 시루꼬. 재주꾼이야, 벌써 동인 잡지 평에서 몇 번이나 호평을 

받았지.>

 그리고 마사오에 대해선 점심 시간에 얘기한 사람이라고만 말했다.

 마사오는 시루꼬와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았다.

 <전 마구 찌껄여대는 남자를 만날 거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당신은 운이 좋았을 뿐이야.>

 시루꼬는 적의가 담겨 있는 어조로 차갑게 말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순순히 마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업원이 물을 가져왔다.

 커피를 주문했다.

 시루꼬가 묘우미를 돌아보았다.

 <이제부터 뭘 할건지 말했어?>

 <아니, 아직.>

 묘우미가 마사오에게 물었다.

 <시루꼬 방에 가서 술을 마실래?>

 묘우미는 시루꼬 앞에서 이상하게 어린애처럼 보였다.

 (시루꼬라는 애는 상당히 당차고 엄한  성격 같군. 묘우미가 쩔쩔매는  것 

같아.)

 <전 상관없습니다. 하숙입니까?>

 <아니, 아파트. 버스로 십 분 거리야.>

 세 사람은 커피만 마시고 다방을 나와 버스를 타고  시루꼬의 아파트로 갔

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으며 시루꼬가 말했다.

 <여긴 독신 여자만 살아. 남자에겐 빌려주지 않지.>

 마사오는 그런 아파트가 있다는 건 들었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시루꼬의 방은 이층이었다.

 책이 책꽂이에 꽉 찼을 뿐만 아니라 그 옆에도 높이 쌓여 있었다.

 삼 년 동안의 실적치고는 대단한 양이었다.

 안에는 자그만 부엌이 있고 취사 도구가 갖추어져 있었다.

 여자다운 장식품이 일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퍽 인상적이었다.

 시루꼬는 방석 위에 마사오를 앉히고 묘우미에게 말했다.

 <묘우미, 함께 시장 보러 가자.>

 묘우미는 일어섰다.

 그저께 밤 그토록 개성이 뚜렷했던 묘우미가 평범한 여학생으로 생각될 정

도로 시루꼬는 남자다운 성격이었다.

 얼마 뒤에 여자들이 식료품을 가슴에 가득 안고 돌아왔다.

 즉시 술자리가 마련됐다.

 방 가운데 밥상을 놓고 세 사람은 빙 둘러앉아 정종으로 건배했다.

 묘우미가 마사오에게 말했다.

 <부담 갖지 말고 마셔. 시루꼬는 내가 여자가 된 걸 축하해 주는 거야. 그

런 자리에 당신도 있으면 좋잖아.>

 <예.>

 <난 전부터 묘우미를 부추겼어. 몇  번 그런 술자리를 만든 적도  있었지. 

그때마다 이 애는 동망쳤어. 겁쟁이였지.>

 <왜 부추겼는데요?>

 <체험하지 않으면 어린애잖아. 체험은 남자를  아는 게 아니라 자신  속의 

여자를 발견하는 거야. 자신도 모르면서  어떻게 인생을 논하는 소설을  쓸 

수 있어?>

 <그러면 시루꼬 씨는 벌써 베테랑이라는 건가요?>

 <그렇게 보여?>

 도전적인 눈빛으로 시루꼬는 마사오를 보았다.

 <예.>

 <시루꼬는...>

 묘우미가 대신 설명했다.

 <여기로 올 봄에 이사오기 전에 일 년 정도 남자와 동거한 적이 있어.>

 <상대는 같은 잡지 동인입니까?>

 <응.>

 마사오가 이번에는 시루꼬에게 고개를 돌렸다.

 <왜 헤어졌어요?>

 <헤어진 건 아냐. 함께 살기가 귀찮아졌을 뿐. 남자도 이불 속에서 나오면 

귀찮기만 하더군.>

 이제까지는 몰랐던 여학생들의 세계에 자신이 발을 들여놨다는  사실을 마

사오는 깨닫고 있었다.

 <내 첫 체험은 1학년 가을 밤의 공원 잔디 위에서였어. 상대는  학과 상급

생으로 좌익 투사로 처녀성 존중은 봉건제의 유물이니 그런  낡은 윤리관은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고 말했어. 여자는 더 자유로워져야 된다나. 난 그 말

에 공감했던 건 아냐. 허락한 건 성에 대한 흥미 때문이었어.  상상의 한계

를 느껴서 빨리 실체를 알고 싶었어. 난 그 남자에게 호감은 갖고 있었지만 

특별히 좋아한 것도 아니었지.>

 옆에서 묘우미가 마사오에게 속삭였다.

 <나도 처음 듣는 얘기야. 나와 친구가 되기 전 이야기야.>

 마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별이 반짝이는 하늘 아래에 나란히 앉아서 얘기하는 동안  키스하면서 잔

디 위에 눕게 되었어. 그의 손이 내 스커트 속으로 들어왔지.본능적으로 거

부했지만 상대는 끈질겼고, 나도  처음부터 얼마간은 기대하고  있었으니까 

차츰 저항은 약해지고 이윽고 애무를 받게 되었어. 그는 이렇게 말했어.  -

넌 체험해야 될 나이야. 그리고  지금은 여자의 계절이고.- 처음부터  끝까

지 이론적으로 설득했지. 지금 생각해 보면 유치한 겉발림이었어. 난  그에

게 설득당한 건 결코 아니야. 경험하고 싶다는 나의 바램과 그 잠재 의식을 

누르는 윤리관을 거부하기 위한 스스로의 결단이었어.>

 묘우미는 마사오의 잔에 술을 따랐다.

 시루꼬는 스스로 자신의 잔을 채웠다.

 <그의 손길이 신선했어. 지금 생각해  보면 능숙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기분 좋았어. 머리가 몽롱해 지는 듯했어. 이윽고 그는 날 벗기려  하기 시

작했어. 난 그가 말하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걸 보이

기 위해 스스로 벗겠다고 했어. 물론 그땐 그의 남성을 맏아들일 마음의 준

비가 되어 있었어.>

 묘우미가 물었다.

 <그곳에서?>

 <응.>

 <공원이면 사람들이 지나다니잖아.>

 <길에서 꽤 떨어져 있는 곳이었어.  마음에 드는 장소는 아니었지만  하는 

수 없었어. 그는 나를 덮쳐오고 난 별을 올려다보고 있었어. 그때  이 사람

이 이 일로 날 연인으로 여기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요?>

 <난 오늘밤만이고 내일부턴  지금까지와 똑같이  지내자고 다짐을  해두었

지. 그는 알았다고 하고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면서 나를 밀어붙였어.>

 <그럼 그때 당신은 아직 상대의 몸을 확인하지 못해겠군요.>

 <응. 사실은 만지고 또 보고 싶었지만 먼저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어. 그 

당시에는 나도 순진한 면이 있었으니까.>

 <그렇겠죠.>

 <꽤 시간이 걸린 뒤에 그는 일순간에 비집고 들어왔어. 통증으로  난 신음

하면서 피하려고 했지만 달아날 수가 없더군. 그는 계속 움직이기 시작했고 

난 단지 아프기만 했어. 애무받을 때와 달리 아무 것도 느낄 수 없었어. 어

이없는 체험이었어. 많은  여자들이 처음에 -아니,  겨우 이런 거야?-하고 

생각하잖아? 나도 그랬어. 그날 밤, 난 일기에 남자는 대단한 게  아니라고 

썼지.>

 시루꼬는 마사오에게 얼굴을 가까이 댔다.

 <어때? 그 다음에 내가 그 남자를 좋아했을 것 같아?>

 <글쎄요. 그러나 한 번만은 아니었겠죠.>

 <그래. 너무 어이없고 제대로 알 수도 없었으니까. 일주일 뒤에 그 사람이 

또 같은 장소로 날 데리고가려고 했을 때 난 여관으로 가.  이런 장소는 싫

다고 말했지. 그러자 그는 돈은 없고 자기 방에는 동거하는  친구가 있으니 

내 방으로 가자고 하더군. 그러나 난 내 방에 데리고 가는  게 싫어서 돈는 

내가 낼테니 여관으로 가자고 했지.> 

 <두 번째는 침착하게 체험했습니까?>

 <응. 손으로 만지고 눈으로 직접 보기도  했어. 또 그가 내 안에  있는 걸 

실감할 수 있었어. 그것이 실질적인 첫 체험이라고 난 생각해.>

 <그래서  그 뒤로 그 사람을 좋아하는 된 겁니까?>

 <아니, 그 두 번째가 그 사람과의 마지막이었어. 다음 날 만나서  이제 다

시는 성 관계를 갖지 말자고 통고했어.>

 <왜?>

 <이유는 여러 가지야. 첫째, 이것이 가장 큰 이유야. 기대했던 것과  달리 

즐겁지 않았다는 것. 둘째, 그 사람이 일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옆으로 돌아

누워서 불쾌했어. 셋째, 그 사람이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어 버렸어.  다른 

여자와는 반대로 귀찮아졌어. 그 사람이 가난하다는 것도 또 하나의 이유였

고.>

 <상대방이 승낙했습니까?>

 <응. 다만 내가 변했다고 말하더군. 그래서 난 그냥 그러고 싶다고  했고, 

그걸로 끝이었어. 그 뒤로 날  몇 번 유혹했지만 난 거절하고  키스도 하지 

않았지.>

 시루꼬는 묘우미의 어깨를 툭 쳤다.

 <묘우미, 어때? 오늘밤 이 술자리를 이 사람과 졀교 파티로 해. 넌 모르는 

사람과 뒤가 깨끗한 체험을 했을 뿐이야. 학부도 학년도 다르고  이제 다시

는 만나지 마.>

 <글쎄.>  

 묘우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흔들리는 눈빛으로 마사오를 보았다.

 <그렇게 할까?>

 <어때?>

 이번엔 시루꼬가 마사오의 잔을 채우며 물었다.

 <묘우미가 이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말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

 마사오는 잔을 비웠다.

 <묘우미 씨가 원하는 대로 하겠습니다. 전 그날 밤만으로도 멋진 밤이었으

니까요. 욕심은 부리지 않습니다. 아쉽지만 단념하겠습니다.>

 <정말?>

 <정말입니다.>

 <그러면 이대로 나가라고 하면 갈 수 있어?>

 <가겠습니다.>

 시루꼬는 턱을 앞으로 내밀었다.

 <그러면 나가. 이젠 없어도 돼.  그렇지만 아직 술이 남았으니까 삼십  분 

후에 말없이 나가 줘. 이런 얘기를 하려고 내가 당신을 보자고  했어. 묘우

미 혼자선 말을 못할 테니까.>

 마사오는 묘우미를 보았다.

 아무 말 하지 않고 그의 눈을 피했다.

 일부러 친구에게 부탁하지 않아도 될 텐데하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관계를 가진 뒤 끈질기게 여자를 따라 다니는 그런 남자가 아니야.)

 그런 자존심이 마사오에게 있었다.

 가는 여자는 잡지 않는다.

 이미 두 여자 사이에 그렇게 얘기가 되어 있었음이 분명했다.

 <알았습니다. 지금부터 삼십 분 동안 잘 마시겠습니다.>

 시루꼬는 술을 더 가져오기 위해 일어섰다.

 묘우미가 말했다.

 <당신, 화나지 않았어?>

 <예. 처음부터  그렇게 약속해잖아요.  전 묘우미  씨의 의사를  존중합니

다.>

 시루꼬가 돌아와 앉더니 자기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리고 <구름> 이 나온 다음 차츰 묘우미와도 친해지기 시작했고, 두  번

째 남자를 체험했어.>

 술기운에 눈가가 붉어진 시루꼬는 묘우미를 보았다.

 <이 말도 너에겐 처음이야. 넌 얌전한 애라 아무 말도 하지  못했어. 지금

은 말해도 되겠지.>

 <그럼 후꾸이 씨 말고도 또 있었단 말이야?>

 <그 사람은 세 번째야.  후꾸이 씨 전에 몇  번 고가와 씨와  관계가 있었

어.>

 <뭐?>

 <후후, 놀랬지?>

 묘우미는 머리를 저었다.

 <믿을 수 없어. 그 두 사람 제일 친한 사이잖아. 그러면 후꾸이 씨도 네가 

고가와 씨와 먼저였다는 걸 알아?>

 <물론이야. 처음에 내가 말했어.>

 <너도 카우에와 마찬가지구나.>

 <다르지. 카우에는 하나다와 스즈끼를 번갈아 가며 교대로 관계를  갖지만 

난 아니야. 더블 플레이는 한 번 뿐이야. 고가와 씨에서 후꾸이  씨로 옮긴 

거지.>

 <전혀 몰랐어.>

 <네가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면 고가와 씨와 체험하도록  술자리를 마련하

지도 않았어. 고가와 씨는 상당히  능숙한 사람이니까 너에게 멋진  체험을 

하도록 해줄 거라고 생각했지. 그는 내게 여러 가지를 가르쳐 주었어. 처음

으로 그곳에 키스를 받았고, 나도  했어. 섹스가 나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 그래도 그 사람이  좋아지지는 않았어. 어디까지나 친구였고  놀이

라고 처음부터 약속했었어.>

 <어쨋든 섹스 파트너로서는 고가와 씨에게 불만은 없었던 셈이군요.>

 <그 당시에는 그 이상은 몰랐으니까 충분히 만족했어.>

 <그런데 왜 또 다른 사람과?>

 <남자는 여러 여자와 관계를  갖고 싶어하잖아? 나도 마찬가지야.  그리고 

고가와 씨에게 속삭당하고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어. 그  다음에 고

가와 씨와 잘 때 후꾸이 씨를 말했어. 친구인데도 후꾸이 씨가 말하지 않아

서 모르고 있더군. 어쨌든 그날 그전처럼 즐기고 그 뒤로는 아무 일 없었던 

사이로 회복되었어.>

 <놀랍군요. 누가 끝내자고 먼저 말을 꺼냈어요?>

 <내가. 고가와 씨는 깨끗이 승낙했어. 남자들끼리 나중에 그런 얘기가  있

었ㄴ느지는 지금도 몰라.>

 <지금도 후꾸이 씨와 계속 관계를 갖고 있나요?>

 <응.>

 <그 외의 사람은?>

 <없어. 나, 이 남자 저 남자에게 흥미를 가질 만큼 호색적이진 않아.>

 마사오는 시계를 보았다.

 거의 약속한 삽십 분이 다 되었다.

 <그러면 약속대로 이제 돌아가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얘기도 재미있었

구요.>  

 시루꼬는 눈을 반짝이며 마사오를 쳐다보았다.

 <정말 돌아갈 거야?>

 <예.>

 <그래. 이제 묘우미와의 일은 깨끗이 잊어.>

 <물론 잊어야죠.>

 <당신 멋지군. 헉시 애를 먹이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난 약속은 지킵니다.>

 마사오는 일어섰다.

 묘우미도 따라 나섰다.

 <버스 정류장까지 바래다 줄게.>

 시루꼬가 거칠게 묘우미의 팔을 잡았다. 

 <여기서 헤어져.>

 그러자 묘우미가 다호한 어조로 말했다.

 <배웅 나가는 정도는 괜찮잖아. 너무 멋대로 참견하지 마.>

 <그래, 그러면 알아서 해.>

 시루꼬가 마사오에게 자신의 과거를 말한 건, 여자는 남자에게  몸을 허락

하더라도 깨끗이 헤어질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에서였을 것이다.

 아파트를 나오자마자 묘우미는 마사오의 팔을 잡았다.

 <나도 이대로 같이 갈래.>

 <예?>

 마사오는 놀랐다.

 <가방은요?>  

 <괜찮아. 월요일에 갖다 주겠지. 갖다 주지 않으면 다음에 찾으러 오면 되

고.>

 <시루꼬 씨가 기다리잖아요?>

 <지금 여덟 시 조금 지났지?>

 <예.>

 <아홉 시에 저 방에 아까  말한 후꾸이 씨와 고가와 씨가  오기로 되어 있

어.>

 <예.>

 <그래서 술과 음식을 준비한  거야. 그 중에서  일부로 당신을 대접한  거

고.>

 <놀랍군요.>

 <사실은 오늘밤 나도 저 방에서  자기로 되어 있어.내 짝은 고가와  씨지. 

전부터 시루꼬가 그걸 계획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내가 남자를  체험하고 나

니까 ㄳ고하게 진전된 거야.>

 <그럼 당신도 승낙한 셈이군요.>

 <응. 고가와 씨라면 하룻밤 부담 없이 즐기기엔 편한 상대야. 그레도 그만 

둘래. 도망치고 싶어.>

 <왜 마음이 바뀌었죠? 당신은 다른 남자를 체험하고 싶어했고 오늘밤이 좋

은 기회인데.>

 갑자기 묘우미가 마사오에게 와락 안겨왔다.

 <당신과 헤어지고 싶지 않아.>

 <그러면 저 방으로 돌아가 분명하게 말하면 되잖아요?>

 <이래도 내 결심을 알릴 수 있잖아.>

 <아니, 시루꼬 씨에게  나와 헤어질  수 없다고 말해요.  나도 말할  테니

까.>

 <그래, 좋아.> 

 두 사람은 길을 되돌아갔다.

 둘이 다시 들어서는 걸 보더니 시루꼬의 눈이 휘둥그래졌다.

 묘우미가 단호하게 말했다.

 <나, 이 사람과 돌아갈래. 좀더 사귀기로 했어.>

 그리고 방 구석에 놓인 가방을 들었어.

 시루꼬는 눈에 힘을 주며 묘우미를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좀 있으면 그 사람들이 올 텐데?>

 <네가 잘 말해 줘.>

 <널 유혹하디?>

 <아니.>

 마사오의 옆에 붙어서며 묘우미는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의 팔을 잡으며 젖가슴을 밀착시켰다.

 <역시 이 사람은 남이 아니야. 이제 다시 만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니까 가

슴이 아팠어.>

 <그런 애송이의 어디가 좋아?>

 <난 너와는 다른 것 같아.>

 시루꼬가 일어나서 다가왔다.

 <그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려.  그렇지 않으면 나도 변명해 줄  수가 없

어.> 

 <난 내 자신의 의지로 변심했으니까 넌 책임을 느끼지 않아도  돼. 다음에 

학교에서 만나면 내가 그 사람들에게 사과하겠어.>

 <너희들 관계는 억지야.>

 <그래도 좋아.>

 두 사람은 문을 닫고 복도로 나왔다.

 <배신자!>

 문에 무언가 부딪혀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시루꼬가 문에다 책을 던진 모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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