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1/64)

 건넛방의 소리

 그날 밤 열한 시가 지나자 마사오가 혹시나 하고  기대하던 소리가 드디어 

들여오기 시작했다.

 하시자끼 부부가 사랑을 나누는 소리였다.

 마사오는 이불 속에 들어가 누운 채로 전기 스탠드를 가까이 해 놓고 책을 

읽고 있었다.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싫어.>

 마사오는 별 신경쓰지 않고 계속 책을 읽어 내려갔다.

 그런데 잠시 뒤에 다시 소리가 났다.

 <아아...>

 몹시 달아오른 소리였다.

 처음에 들려 온 소리와는 달리 묘한 울림이 있었다.  

 마사오는 스탠드를 끄고 가만히 방문 쪽으로 기어갔다.

 남들이 사랑을 나누는 소리를 몰래 엿듣는다.

 뒤가 꺼리칙한 일이지만 그런 취미를 즐겨 밤마다 남의 창문을 기웃거리는 

사람도 있고 보면 그 재미는 역시 진한 것이다.

 마사오에게 지금 그런 재미가 제 발로 찾아왔다. 

 마사오는 장지문을 살짝 열고 귀를 갖다댔다.

 불이 꺼진 어두운 복도를 타고 여자의 신음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좀더 열어 보았다.

 건넛방 문틈새로 환한 빛이 새어나왔다.

 전등을 켜 놓은 채 즐기는 모양이었다.

 신음소리가 점점 절박해졌다. 

 그러는 중에 센까의 달뜬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다.

 <이제 이쪽으로 와요.>

 그러자 곧 후다닥거리는 기척이 들렸다.

 서둘러 결합을 위한 자세를 취하는 모양이었다.

 <아흐...>

 무게에 눌린 듯한 여자의 목소리였다.

 이어서 남자의 목소리도 섞여 들려왔다.

 <아, 좋아.>

 한껏 취한 목소리였다.

 그리고는 별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한참 거칠게 헐떡거리며 움익이고 있겠지만 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마사오는 그 광경을 보고 싶었다.

 그건 대단한 모험이다.

 마사오가 엉거주춤 앉은 채 망설이고  있는데 갑자기 센까가 높은  소리로 

말했다.

 <아... 좋아질 것 같아.>

 남자 목소리가 따라붙었다.

 <됐어. 함께 할 수 있겠군.>

 마사오는 혼자서 싱긋이 웃었다.

 웃음을 짓기는 했지만 정작 그의 몸은 여유가 없었다.

 터질 듯이 부풀어 있었던 것이다.

 잠시 사이를 두고 다시 센까의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아... 당신!>

 절정에 이르는 순간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도!>

 이어서 남자의 외침도 들려왔다. 

 마사오의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잠시 조용하다 싶더니 도란도란 얘기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곧바로 다시 결합할 가능성은 없을 듯했다.

 그래서 마사오는 조용히 문을 닫고 이불 속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 

 다음 날 마사오는 학교로 향하면서 오늘은 어떻게든 묘우미와 관계를 가져

야겠다고 생각했다.

 일주일째 묘우미를 안지 못하는 바람에 오나니하는 걸  유끼꼬에게 틀키고 

만 것이었다.

 마사오는 이미 묘우미의 시간표를 알고 있었고 오늘은 여관에  갈 돈도 있

었다.

 오전 수업이 끝날 시각에 맞추어 묘우미의 시간표에 적힌 강의실로 갔다.

 조금 기다리자 학생들이 나왔다.

 묘우미도 있었다.

 마사오를 보자 남들이 눈치 못 채게 눈빛으로 반갑다는  신호를 보내고 다

른 학생들이 가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따라오라는 신호였다.

 마사오는 그녀 뒤를 멀찌감치 떨어져 따라갔다.

 <추워졌지?>

 고개를 돌려 같이 강의를 받는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걸 확인하고 묘우미

가 걸음을 맘추었다.

 <예. 아침에 서리를 봤습니다.>

 <잘 때 이불 꼭 덮고 자. 감기 조심해야지.>

 <고맙습니다. 그런데 오늘밤 시간 있습니까? 용돈이 조금 생겼습니다.>

 <그래서 날 찾아 온 거야?>

 <예.>

 <기쁜데.>  

 묘우미의 말 끝에 요염한 웃음이 묻어나왔다.

 <그럼 우리 점심을 같이 먹고 이따 다시 만나.>

 <그러죠.>

 둘은 구내의 학생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묘우미가 곧 수업이 있었으므로 바로 헤어져야 했다.

 약속한 대로 오후 네 시에 학교 앞 서점에서 마사오는 묘우미를 다시 만났

다. 

 그녀는 오전과 달리 화장을 예쁘게 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버스를 신주꾸로 가서 우선 주점에 들어갔다. 

 <참, 그날 시루꼬 씨는 어떻게 했대요? 중간에서 곤란했을 텐데?>

 <그 뒤로 서로 아는 척도  안 해서 나도 잘  몰라. 그렇지만 신경쓰지 마. 

아마 자기네들끼리 잘 놀았을 거야.>

 <셋이서?> 

 <응. 시루꼬는 전부터 한 번쯤  여러 남자들과 함께 자 보고  싶다고 했거

든. 그날 좋았을 거야.>

 <시루꼬 씨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왜, 나는 그렇게 못 할 것 같아?>

 큰 소리로 묻고는 마구 깔깔거렸다.

 (경험해 보고 싶은 게 많은 여자니까 불원간 그런 자리를 만들겠지.)

 마사오는 그렇게 생각하며 술잔을 비웠다.

 여섯 시쯤 되어 두 사람은 거리로 나왔다.

 <그 여관으로 갈까요?>

 마사오가 물었다.

 <싫어. 가까운 데로 가.>           

 두 사람은 얼큰히 취한 채 어두워 오는 거리를 걸었다. 

 얼마 걷지 않았을 때 묘우미가 마사오의 팔을 꼭 잡더니 속삭였다.

 <나, 걷기 싫어. 빨리 들어가.>

 묘우미의 입김이 끈적했다.

 마사오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여관을 발견했다.

 <그럼, 저기로 들어가죠.>

 <응. 마사오, 아파트로 이사해, 응?>

 여관방에 들어가서도 둘이 포옹하자마자 묘우미는 같은 말을 했다.

 <예. 알아보겠습니다.>

 마사오는 묘우미를 벗겼다.

 옷을 하나씩 벗길 때마다 묘우미의 맑은 피부가 드러났다.

 브래지어와 팬티만 남자, 이번엔 그녀가 마사오를 벗겨 주었다.

 마사오는 곧 나체가 되었다.

 묘우미는 한 손으로 마사오ㄳ 어깨를 감싸안고 다른 손으로 마사오의 몸을 

꽉 쥐었다.

 <1주일만이야.>

 마사오는 묘우미의 브래지어를 벗겨내고 젖가슴을 잡았다.

 <다른 남자를 만났나요?>

 <아직은 그런 마음 없어.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도리가 없어.>

 유방을 잠시 만지작거리다가 마사오는 묘우미의 팬티 속으로  손을 밀어넣

었다.

 꽃밭은 이미 흘러넘치고 있었다.

 아마 걸으면서도 사랑의 샘이 솟아나기 때문에 묘우미가 걷기 싫다고 햇을 

것이다.

 둘은 나란히 욕실로 들어갔다.

 탕 안에서 포옹한 채 마사오는 유끼꼬의 얘기를 꺼냈다.

 물론 키스나 욱체적인 접촉은 말하지 않았다.

 <중2면 마사오가 생각하는 만큼  순진하지 않아. 마사오에게 그런  질문을 

한 건 그저 어린애의  호기심 때문만도 아니고.  부끄러우니까 아이 흉내를 

내는 거야. 사실은 그 애, 자긴 아이니까 아무 것도 모르는 척하고 마사오와 

뭔가 해 보고 싶은 건지도 몰라.>

 <몸은 아직 애인데요. 또래보다 덜 성숙했어요.> 

 <육체의 성숙과 마음과는 별개야. 아이에겐 아이의  성욕이 있어. 너무 귀

여워하지 않는 게 좋아. 이상한 일이라도 생기면 큰 일이야.>

 <설마? 나와 그 애가 관계를 맺다니! 그런 일은 절대 있을 수 없어요.>

 <거기까지는 무리더라도 서로 페팅은 할 수 있지 않겠어? 그렇게 되면 여

자애가 유혹했다고 해도 모든 책임은 마사오  씨 몫이야. 형사 문제가 된다

고. 부모가 고소하면 꼼짝없이 당해.>

 <그럴 리는 없습니다. 얼마나 귀엽고 청순한 눈동자를 갖고 있는 아이인데

요.>  

 <그 눈동자를 믿으면 안 돼. 그 애 자신도 자기  속의 색기를 아직 눈치채

지 못했을지도 모르지.>

 술을 마신 상태에서 오래 탕 속에 있는 건 좋지 않다.

 두 사람은 곧 욕실을 나와 그대로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마사오는 묘우미의 젖가슴을 격렬하게 빨았다.

 그리곤 오랜 애무 끝에 묘우미의 용암 속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묘우미는 낮은 신음을  연발하며 어깨를  꽉 껴안 채  마사오를 맞이했다.     

두 다리로 마사오의 허리를 휘감을 줄도 알았다.

 <멋져요!>

 마사오는 묘우미의 귀에 입을 대고 속삭였다.

 그리고는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사오는 이렇게 즐기다가 나중에 입으로 묘우미를 정상으로  이끌 작정이

었다.

 그래서 이런 움직임은 둘이 친밀한 사이라는 것을 계속 확인시키는 의식의 

성격이 강했다.

 때문에 마사오의 움직임은 차분했다.

 묘우미의 반응도 여느 때와 똑같았다.

 다만 마사오는 묘우미의 꽃봉오리를 보다 더 자극하기 위해서  바깥 쪽 부

위에 접하는 시간을 오래 가지려고 애쓰고 있었다.

 그래서 당길 때는 너무 멀리 빼지 않았다.

 <마사오 씨.>

 묘우미가 불렀다.

 그녀는 벌써 마사오의 움직임에 맞추어 허리를 비틀고 있는 중이었다.

 자연스러운 동작이었다.

 마사오는 그 동작에 이끌리고 있었다.

 묘우미가 먼저 말을 꺼냈다.

 <기분 좋아. 더 깊이 해죠.>

 <예.>

 <음... 으음.... 당신은 어때?>

 <황홀합니다. 계속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고 싶어요. 정점은 잠깐 순간이니

까. 너무 빨리 도달하면 싱겁잖아요. 오늘 밤은 당신은 돌아가야 되니까  그

때까지만이라도 이렇게 있고 싶어요.>

 <당신, 너무 뜨거워.>

 <당신도 너무 뜨겁습니다.>

 <마사오 씨.>

 묘우미가 다시 불렀다.

 좀전보다 은밀한 목소리였다.

 <예.>

 <나 이상해. 뭔가가 따끔거려.>

 <어디가요?>

 <모르겠어. 짐작가는 곳도 없어. 아...>

 <어떤데요?>

 <간지러운 것 같은... 또 그래.>

 묘우미의 반응이 조금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사오가 더 빨리 움직이도록 재촉하는 느낌이었다.

 마사오는 동작에 힘을 넣어 크게 움직였다.

 묘우미가 신음했다.

 <아... 기분 좋아. 간지러운 게 아니라...>

 <그래요. 기분이 좋은 겁니다. 내가 좋으니까 당신도 좋은 게 당연하죠.>

 <아아...>

 묘우미는 꽉 안고 있던 팔의 위치를 조금 바꾸어 가슴과 가슴이 더욱 밀착

되게 끌어안았다.

 서로 얽힌 다리에도 힘이 들어갔다.

 묘우미가 속삭였다.

 <마사오 씨.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야?>

 마사오는 묘우미의 귀에 대고 아주 노골적인 말을 속삭였다.

 묘우미는 따라 중얼거리더니, 

 <아, 그래. 우리는 지금 사랑을 하고 있어.>

 라고 가쁜 숨결 사이로 힘겹게 말을 내뱉았다.

 그런데 갑자기 말 끝에 강한 액센트가 주어졌다. 

 마사오는 짐각적으로 지금이 매우 중요한 순간임을 느낄 수 있었다.

 동작을 더욱 빠르고 크게 했다.

 <아... 앗!>

 묘우미의 목소리가 변하더니 소리쳤다.

 <해! 빨리!> 

 마사오는 급상승하려고 했다.

 묘우미도 절정으로 치달을 것 같았다.

 그녀의 뜻밖의 변화에 마사오도 적극적으로 격렬하게 움직였다.

 <묘우미 씨, 훌륭합니다.>

 묘우미의 몸 전체가 경련을 일으키며 신음 소리가 계속 터져나왔다.

 마사오는 이를 악물고 계속했다.

 드디어 묘우미는 온몸이 경직되더니 잠시 후 녹초가 되었다.

 <끝났어.>

 그렇게 중얼거리고 움직이지 않았다.

 마사오도 속도를 늦추며 작게 움직이다 서서히 멈추었다.

 <좋았어요?>

 묘우미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사오의 뺨에 뺨을 비벼댔다.

 <나, 어떻게 하지?>

 <뭘요?>

 <분명히 당신과 헤어질 수 없을 것 같아. 천벌 받을지도 몰라.>

 <그런 건 지금 아무래도 좋아요. 우리들 관계는 이제 막 시작한 겁니다.>

 <부탁이야. 잠시 이대로 있어 줘. 아직 계속되는 기분이야.>

 마사오는 묘우미의 머리결을 쓰다듬었다.

 <그래요. 이대로 있겠어요.>

 <달아나지 마.>

 <예.> 

 묘우미의 조임은 점점 약해지고 그 간격도 멀어졌다.

 그래도 역시 마사오는 가만히 있었다.

 묘우미는 크게 숨을 쉬었다.

 <좀 힘들어.>

 가슴과 가슴이 너무 밀착되어 있었던 것이다.

 마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상체를 조금 들었다.

 <당신은 아직이지?>

 <예. 이제부터.>

 <미안해.>

 <아니, 사과할 건 없어요.>

 마사오는 덩어리를 빼내고는 옆으로 누우며 묘우미를 끌어안았다.

 묘우미는 마사오의 얼굴을 정담어린 눈으로 응시하며 깊이 안겨왔다.

 <이렇게 계속 안고 있어.>

 <그래요. 팔은 풀지 않아요.>

 <몸 전체의 힘이 다 빠진 듯해. 지금 이 집에 불이 난다 해도 일어날 수조

차 없을 거야.>

 <그때는 제가 업고 피하죠.>

 <그 전에 옷은 입혀야지.>

 <물론이죠. 저도 당신을 몸을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으니까요.>

 묘우미는 손을 아래로 내려 좀전까지 자신이 받아들였던 마사오의 몸을 쥐

었다.

 그것은 묘우미의 풍부한 꿀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어머! 씻어야겠어.>

 마사오는 천장을 향해 몸을 돌렸고  묘우미는 상냥한 손길로 닦기  시작했

다.

 다 닦은 뒤에는 입술을 가져가 살짝 입을 맞춰 주었다.

 그날 두 사람이 역에서 헤어질 때 묘우미는 마사오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날 싫어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키스하고 싶어. 하지만 여기선 안 되겠지?>

 마사오는 묘우미를 보내고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이층 계단을 올라가자 건넌방 문이  열리더니 새로 이사온 부인이  얼굴을 

내밀었다.

 <어머! 지금 오세요?>

 <예.>

 고개를 가볍게 숙이고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센까가 복도로 나왔다.

 <제 남편은 아직이에요.>

 <야근이신가요?>

 <예. 혼자 있으려니 쓸쓸하네요.>

 <금방 돌아오시겠죠.>

 센까가 목소리를 맞추었다.

 <차 마시러 오지 않겠어요?>

 <고맙습니다. 옷만 갈아 입고 가죠.>

 <기다릴게요.>

 밤중에 여자 혼자 있는 방에 마사오를 부르는 건 좀 지나친 듯 싶었다.

 그러나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롭고 순수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신혼부부

 잠시 후 마사오는 간편한 차림으로 센까의 방을 방문했다.

 센까는 차 준비를 끝내고 사과를 깍으면서 시다리고 있었다.

 별로 가구는 없었지만 신혼 부부 방답게 화사한 분위기였다.

 <남편께서는 야근이 많습니까?>

 <예.그래도 오늘밤은 유난히 늦네요. 보통 때는 일찍 들어오는데.>

 두 사람은 처음 만난 사이에서 의례적으로 나누는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

았다.

 그러다가 불쑥 센까가 물었다.

 <마사오, 여자 친구는 있죠?>

 (역시 이 새댁의 최대 관심사는 남녀 문제야.) 

 관념적이고 이론적으로 따지려는 여자보다는 이렇게 소박한 여자가 대하기 

편하다.

 <고향에 있습니다.>

 어차피 앞으로 편지함에 꽂을 있을 다에꼬의 편지를 보게  될 것임으로 숨

길 필요가 없었다. 

 <어느 정도 사이?>

 <글쎄요.제 얘기는 별로 재미없을 겁니다. 그보다  두 분 연애하시던 이야

기나 들려 주십시오.>

 <나와 남편의 일? 후후...>

 즐거운 듯 센까는 웃었다.

 그녀는 유원지에 보트를 타러 갔다가  거기에 역시 친구와 같이  놀러왔던 

하시자끼를 알게 되었다.

 <사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그만 막차를 놓쳐 버린 일이 있었어요. 둘 다 

집에 갈 수 없게 된 거죠.>

 <남편께서 일부러 그러신 거 아닙니까?>

 <어머! 당신도 여간 아니군요.>

 센까는 깔깔거리며 웃더니 웃음이 잦아들자 대답했다.

 <그게 아니었어요. 당신은 아직  여자의 무서움을 모르는군요.  실은 내가 

일부러 그의 시계바늘을 이십 분 늦게 해놓았죠.>

 <예? 설마?>

 <정말이에요. 그가 손을 씻느라고 잠깐 시계를 풀어놨을 때.>

 <왜요?>

 <관계를 맺고 싶어서요.>

 <그러면 당신 쪽이 더 적극적이었던 거군요.>

 <그렇다기보다 그가 숫총각이었기 때문에.>

 <그렇군요.>

 <어쩔 수 없이 우린 여관으로 가야 했죠. 가을이었으니까 각로에  같이 들

어갔는데 글쎄 그는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거예요.>

 아무래도 센까는 마사오를 깔보는 것 같았다.

 마사오가 몇 살 아래니까 아이 취급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순진한 학생에게 성적인 자극을 주어 가슴을 두근거리게 해놓고 자신은 즐

거워한다.

 이것은 호색스런 여자들에게 흔히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내가 자리에 눕자고 말했죠.>

 <여관에 갔으니까 자는 거야 당연하죠.>

 <그러자 그 사람이 먼저 누우라고 하기에  난 고개를 돌리라고 하고는 일

어서서 옷을 벗었죠. 그 사람은 각로에서 나와 벽을 향해 앉아 있었어요. 잔

뜩 굳어 있는 것을 등만 보아도 알 수 있었어요.> 

 센까가 속옷차림으로 이불 속에 들어가 누웠는데도 하시자끼는  꿈쩍도 하

지 않고 차만 마시고 있었다.

 참을 수가 없어서 센까가 다시 말했다.

 <당신도 누워요. 그렇게 앉은 채 잠들면 감기 걸리겠어요.>

 그러자 하시자끼는 마지못해 이불 속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또 그 뿐이었다.

 그는 천장을 향해 누운 채 몸을 꼿꼿히 하고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면 당신은 그때 이미 남녀의 성 관계를 알고 있었습니까?>

 마사오가 묻자 센까는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나? 열여덟 살 때 처음 관계를 가졌죠. 첫 남자가  부드럽고 능숙한 사람

이어서 그한테 완전히 빠져 버렸죠. 아니, 실은 그 사람한테가  아니라 남녀

의 그 일에. 여자는 역시 첫 남자가 중요해요. 아시겠어요?>

 <예.>

 <남편을 만났을 때는 애인과 헤어진 뒤였기  때문에 솔직히 전 남자가 몹

시 그리웠어요.>

 두 사람은 겨우 그녀의 유혹으로 키스까지는 했다.

 그런데 하시자끼는 키스만 반복할 뿐, 아랫도리는  여전히 멀리 떼고 있었

다.

 센까가 다리를 가까이 대면 당황해서 허리를 죽 빼고 하는 것이었다.

 자연히 둘은 이불 속에서 쫓고 좇기는 꼴이 되었다.

 <난 그때 이미 그곳이 흥건히 젖어 있었어요.>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마사오의 반응을 살피는 듯했다.

 음탕한 눈빛이었다.

 <여자가 젖어 있는 것, 알아요?>

 머리를 갸웃하고 마사오의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마사오를 갖고 놀고 싶은 모양이었다.

 (좋아. 이 여자에게 맞춰 주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군.)

 <잘 모릅니다.>

 <정말 몰라요?>

 센까는 갑자기 무릎을 바싹 붙여오더니 상 위에서 찻잔을 쥐고 있는  마사

오의 손목에 자기 손을 올려놓았다.

 첫 접촉이었다.

 <여자가 남자를 원하게 되면...>

 센까가 설명하기 시작했다.

 의학적이고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실감나는 설명이었다.

 한숨을 쉬면서 마사오의 손등을 어루만졌다.

 끈적거리는 손가락 동작이었다.

 센까의 요염함을 마사오의 가슴이나 머리보다도 몸이 먼저  느끼고 묘우미

와 방금 정상을 맛보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다리 사이가 뜨겁게 부풀기 시작

했다.

 <난 키스하면서 손을 우리 둘의 배 사이로 넣고 우연인 것처럼 그의 그것

에 손을 댔죠.>

 <하시자끼 씨가 깜짝 놀랐겠군요.>

 <예. 놀라 가만히 있더군요. 처음  손등이 닿았을 때 단단해진 걸  알았죠. 

아무 짓도 하지 않았지만 남자니까 당연히  욕정은 있었겠죠. 그래서 난 크

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이번엔 마사오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당신, 무시무시하군요.>

 <꽉 쥐니까...>

 센까의 목소리가 한층 농밀해졌다.

 그때였다.

 밖에서 문여는 소리가 났다.

 <누가 온 모양인데요?>

 마사오가 말했다.

 센까는 황급히 손을 떼고 일어섰다.

 <그러면 다음에. 자, 어서 가 보세요. 이상하게 생각할지 모르니까.>

 이튿날 아침, 마사오는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욕실 앞에서 하쥬다와 맞주치자 할머니는 엄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을 고쳐쓰지 말라는 얘기를 아나요?>

 무슨 뜻인지 마사오는 금방 알아차렸다.

 고개를 깊숙이 숙였다.

 <죄송합니다. 차를 마시자고 해서 잠깐 같이 있었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

습니다.>

 <본인은 아무런 사심이 없었다 해도 오해가 생길 수 있어요.>

 <예. 알겠습니다.>

 그날 마사오는 마지막 수업이 휴강이어서 네 시도 못 되어 집에 돌아왔다.

 문을 열어준 사람은 하쥬다가 아니라 유끼꼬였다.

 <할머니께선 어디 좀 가셨어요.>

 찌에는 아직 퇴근 전이었다.

 <그래? 그러면 유끼꼬가 할아버지 시중을 들고 있었겠구나?>

 <예. 하지만 지금은 주무세요.>

 유끼꼬가 종종걸음으로 안으로 사라졌다.

 마사오는 방으로 올라가 평상복으로 갈아입었다.

 막 책상 앞에 앉자마자 복도에서 소리가 들렸다.

 <돌아오셨어요?>

 센까였다.

 <예. 이제 왔습니다.>

 문이 열리고 센까의 둥근 얼굴이 나타났다.

 <당신도 할머니께 꾸중을 들었나요?>

 <예.>

 센까는 살짝 들어오더니 문을 닫고 마사오 옆에 앉았다.  

 <미안해요.>

 <아니, 괜찮습니다.>

 <질투하시는 건지도 몰라요.>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부모님 대신 보살펴 주는 거죠.>

 <남편은 오늘밤도 잔업이에요. 오늘은  내가 이리로 올까요? 하던  얘기가 

남았잖아요.>

 <그럴까요? 조용히 얘기하면 아래층에서도 모르겠죠?>

 <그럼 몇 씨쯤?>

 <여섯 시.>

 센까가 은밀한 웃음을 남기고 사라진 뒤 마사오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책

을 뒤적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에는 유끼꼬가 방으로 들어왔다.

 손에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은 걸 보아서 공부를 핑계 삼아 올라 온 것은 

아니었다.

 <공부에 방해되지 않아요?>

 응석이 잔뜩 담겨 있는 목소리였다.

 <괜찮아. 무슨 일이지?>

 유끼꼬는 마사오에게 다가오며 잊고 있었던  것을 일깨워 주려는 듯  짐짓 

어른스럽게 말했다.

 <잊고 있었어요? 전에 내게 약속한 거 있잖아요.>

 그저께 밤에 헤어지면서 다음에 입맞춤해 주기로 약속을 했었다.

 유끼꼬는 등 뒤로 돌아 어깨를 껴안으며 마사오의 등에 업혔다. 

 정말 깜찍한 소녀였다.

 <그러면 이리 와.> 

 마사오는 가볍게 유끼꼬를 끌어안아 무릎 위에 앉혔다.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마사오는 힘껏 입술을 빨고 싶었지만 그대로 참았다.

 입술을 떼고 유끼꼬의 뺨에 쪽 소리가 나도록 다시 입을 맞추었다.

 <이제 됐어요.>

 유끼꼬가 눈을 떴다. 

 <나,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의사놀이를 한 적 있어요.>

 <그래?>

 <상대는 두 살 많은 동네 남자애였어요. 지금은 딴 동네로 이사갔어요.>

 <사이가 좋았나보구나.>

 <또 한 명은 한 살 많은 여자애, 모두 세 명이었죠.>

 <어떤 놀이였는데?>

 <쇠망치로 때리거나 누르는 거예요.>

 <쇠망치?>

 <예. 가볍게 등이나 가슴, 배를 때리고, 또 배 아래도...>

 <아프지 않아?>

 무릎 위에 앉아 있는 유끼꼬의 엉덩이가 불룩하게 느껴졌다.

 마사오는 유끼꼬의 머리결을 쓰다듬었다.   

 <아프지 않을 정도로 가볍게요. 때린 것만이 아니라 누르면서 돌리기도 했

어요.>

 <옷 위에서?>

 <예. 벗으라고 했지만 싫어서 벗지 않았어요.>

 <그래 잘했다.>

 유끼꼬는 마사오의 어깨에 턱을 올려놓았다.

 <그때 웬지 모르게 이상한 기분이 들었었어요.  그래서 그만 두었지요. 그

런데 일요일 아침에 오빠를 봤을 때 쇠망치가 무겁게 날 누르는 것 같은 기

분이 들었어요.>

 유끼꼬는 마사오의 어깨에 뺨을 비볐다.

 귀 근처를 입이 지나갈 때는 따뜻한 숨결이 귓볼에 퍼졌다. 

 <나...> 

 조금 떨리는 목소리였다.

 <다에꼬 씨에겐 미안하지만 그래도 오빠의 그것을 만져보고 싶어요.>

 전에 그런 말을 했을 때 마사오가 거절했고 유끼꼬도 순순히 수긍했다.

 완전히 안심하고 있는 터라 전혀 뜻밖이었다.

 대담한 말이다.

 그러나 자기가 대담하다는 것을 어린 유끼꼬는 의식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그건 무리야. 내가 유끼꼬의 소중한 곳을 만져 보고 싶다고 하면 너도 싫

잖아?>

 유끼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잠시 사이를 두고 말했다.

 <싫지는 않아요.>

 <그건 어른이 되어 애인이 생기고 나서 생각하는 일이야.>

 (난 유끼꼬로 하여금 이상한 것에 흥미를 갖게 했을  뿐만 아니라 그 흥미

를 더욱 부추기는 말을 하는군. 아니, 어쩌면 이 애는 전부터 강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었는지도 몰라.)

 마사오의 호색기는 더 나아가서 유끼꼬의 반응을 즐기고 있었다.

 무릎 위의 유끼꼬와 어릴 때의 다에꼬의 이미지가 가슴 속에서 겹쳐왔다.

 (이건 내 본의가 아니야. 어디까지나  이 애의 요구에 내가 진  것 뿐이야. 

별로 죄는 아니야. 이 애의  내부에 싹트는 여러 가지  의문을 해결해 주기 

위해서라구. 그래서 유끼꼬의  정서가 안정된다면 교육적인  일이라고도 할 

수 있지.)      

 <좋아, 그럼 유끼꼬가 원하는 대로 해줄까?>

 유끼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마사오는 유끼꼬를 다다미 위에 내려 놓고 문을 조금  열어 건넌방과 아래

층의 기척을 살폈다.

 아래층은 쥐죽은 듯 조용하고 건넌방에서는 라디오 소리가 들려왔다.

 문을 닫고 돌아오자 유끼꼬는 정좌해서 앉아 있었다.

 마사오를 보는 눈이 빛났다.

 <괜찮아요?>

 <그래.> 

 유끼꼬의 희망에 따르겠다고 결심했을 때부터 마사오의 몸은  부풀기 시작

해서 지금은 기세등등했다.  

 그것은 마사오 자신이 소녀인 유끼꼬와의 성적인 놀이를 하고 싶어 한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이제 어떻게 할까?>

 유끼꼬는 일어나 마사오의 등 뒤로 돌아갔다.

 <나, 부끄러워요.>

 역시 무서워서 돌아가려는 건가?

 마사오는 안도감과 실망을 함께 느꼈다.

 그러나 유끼꼬는 마사오의 등 뒤에서 상체를 기대어 왔다.

 마사오는 몸을 틀어 그녀의 어깨를 안아 돌리고 다시 허리를 껴안았다.

 유끼꼬의 몸은 옆으로 마사오에게 매달린 형태였다.

 아이가 어른에게 응석부리는 형태이기도 했고 애인끼리 껴안은 광경이기도 

했다.

 유끼꼬를 다다미 위에 눕히고 그 옆에 나란히 누웠다.

 두 사람은 서로 마주보았다.

 마사오는 유끼꼬의 머리 밑에 팔을 넣어 필베개를 해 주고 다른 손으로 뺨

을 살짝 꼬집었다.

 <자, 만져 봐.>

 짐짓 장난스런 표정으로 유끼꼬를 보았다.

 유끼꼬는 머리를 들어 마사오의 가슴에 이마를 대었다.

 <가슴이 벅차서 두근거려요.>

 <어떻게 되어 있는지 확인해 봐.>

 그러나 유끼꼬의 손은 마사오의 등에 달라붙은 채였다.

 <오빠도 해 줄래요?> 

 <응?>

 <같이 하면 할 수 있어요. 혼자서는 싫어요.>

 새로운 놀라움이 마사오위 가슴을 강타했다.

 유끼꼬의 귀에 입을 대었다.

 <내가 만져도 돼?>

 유끼꼬는 살며시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괜찮아? 나도 유끼꼬를 만지고 싶지만 그건 사건이야.>

 <사건?>

 <그래.>

 마사오는 크게 끄덕였다.

 이런 말은 확실히 해 두는 게 유끼꼬를 위해서도 좋다.

 <어른 남자가 유끼꼬 정도 나이의 소녀의  소중한 곳을 만지면 이미 그것

만으로도 범죄가 돼.>

 <그래도 들어가는 건 아니잖아요?>

 <만져도 안 돼. 신성하고 소중한 곳이니까.  경찰에게 유끼꼬의 가족이 신

고하면 난 붙잡혀 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을 거예요.>

 유끼꼬의 목소리가 냉담해졌다.

 토라진 느낌이었다.

 (난처하게 되었군.)

 마사오는 후회하기 시작했다.

 신뢰감의 발목을 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곳에 손을 댔다고 해서 순결이 손상되지는 않는다.

 작은 공범자가 되면 된다.

 결국 마사오는 유끼꼬의 어깨를 껴안고 귀에 입을 가져갔다.

 <유끼꼬도 나도 아무에게 말하지 않기로 하자. 우리들만의 비밀이야. 그리

고 너의 모든 의문이 풀리면 그때는 모두 잊을 것.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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