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철 안의 창녀
세사람이 맥주를 마시며 얘기하고 있는데 현관에 손님이 들어왔다.
기꾸가 나가서 손님을 맞아 방으로 안내했다.
마사오가 기요미에게 질문했다.
<하루에 몇 사람 정도 상대합니까?>
<퇴근 시간에 한 사람 잡으면 보통 두 시간 상대하고 그 뒤 계속 한두 사
람 더 상대하죠. 그리고 전철 종료 시간에 한 사람. 대개 하루 평균 세 사람
은 되죠. 맨 마지막 사람과는 같이 자는 경우도 많죠.>
<당신이 사는 집에도 데리고 갑니까?>
<아니오. 여관에 가요.>
<여기에?>
<내가 정해도 되겠다고 판단이 서면 여기로 오죠. 하지만 대개는 손님이
원한ㄴ 대로 해요. 그래야 손님도 안심할 수 있으니까요.>
<가격은?>
부끄러움 없이 기요미는 자신의 몸값을 말했다.
다른 길거리의 여자들보다 상당히 비쌌다.
기요미의 청순한 모습을 고려하면 무리는 아니라고 마사오는 생각했다.
<그럼 손님들에겐 피임 기구를 상요하게 합니까?>
<반드시 그래요. 상대편에서 모르도록 애무하면서 씌울 때도 있죠.>
<고도의 테크닉이군요.>
<그렇지도 않아요. 남자들은 의외로 둔감한 데가 있거든요.>
기꾸가 돌아와 차와 숙박부를 가지고 다시 나갔다.
기요미는 마사오의 잔에 술을 따름녀서 무릎걸음으로 다가왔다.
<학생은 사실 아줌마 아는 분의 아들이 아니죠?>
마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미있는 이야기를 잘 해 주시니까 오는 겁니다. 대개는 여자와 함께 오
죠.>
<그럼 나와 놀지 않겠어요?>
<아니오. 난 오늘밤 여자보다 맥주가 더 좋아요. 맥주를 마실 기회는 흔하
지 않거든요. 그런데 손님과 즐길 대마다 기분이 좋습니까?>
<아무리 그럴려구.>
기요미는 웃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몸이 남아나지 않아요. 좀전 학생의 경우, 좋은 척하고
속였는 걸요. 글쎄? 괜ㄳ겠다고 생각이 드는 경우는 사흘에 한 사람 정도
될까?>
<자제한단 말입니까? 잘 하려고 생각하면 잘 되고, 그러지 않으려고 하면
절제할 수 있단 말이에요?>
<대개는 그래요. 아니면 이 장사는 길게 할 수 없어요. 하지만 가끔씩은
굉장한 사람에게 걸려서 저절로 그렇게 돼 버리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사람은 어떤 남자입니까?>
그때 기꾸가 돌아와 자리를 잡았다.
<내가 좋아하는 물건을 갖고 있거, 부드럽고 능숙하게 오랫동안 해 주는
남자죠.똑같이 오래 하더라도 점점 식어서 고통을 주는 사람도 있어요. 여자
의 몸은 미묘하거든요. 또 놀랄 만한 액수의 돈을 주는 사람에게도 잘해 줘
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금액에 따라서 좌우되기도 한단 말이죠. 놀랍군요.>
<그만큼 나를 비싸게 사 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죠. 그런 경우에 자연히
몸에 반응이 그렇게 와요. 여자는 역시 현금에 약한가 보죠.>
마사오는 기꾸에게 얼굴을 돌렸다.
<당신도 기요미 씨처럼 억제하고 조절해 본 적이 있습니까?>
기꾸는 순진한 눈으로 고개를 저었다.
<난 못해. 오히려 그 반대의 경우는 있지만.>
<반대?>
<그래, 난 잘 하고 싶은데 잘 안 되는 경우. 나 같은 아마추어들은 오히려
그런 경우가 많지 않을까?>
또 현관에 손님이 들어왔다.
기꾸가 다시 일어나서 나갔다.
한참 여관이 붐빌 시각이었다.
기요미는 마사오의 무릎에 손을 얹으며 속삭였다.
<저, 그냥이라도 좋으니까 나랑 객실로 가지 않겠어요? 학생한테 잘 해주
고 싶어졌어. 오늘밤은 장사를 쉬고 싶은데.>
마사오는 고개를 저었다.
<그런 짓을 하면 아줌마께서 출입 금지령을 내리신다구요.>
<아줌마가 좋다고 하시면?>
<그럴 리가 없어요. 아줌만 제 여자 친구를 알고 계세요.>
<재미없는 친구로군요. 여자 친구에게 아무 밀도 하지 않으면 되는 거예
요.>
<아니오, 그보다도 아줌마 자신이 화를 내실 거예요.>
기요미는 가눙 자락 사이로 손을 집어넣으려고 했다.
마사오는 피하며 다시 고쳐 앉았다.
<전 오늘밤은 이대로가 좋아요.>
기요미가 한숨을 쉬었다.
<틀렸군. 그럼 장사나 나가 볼까.>
<그러는 게 좋으실 것 같군요. 빨리 가게를 갖고 싶으시겠죠?>
<그래요. 하지만 술장사는 안 해요. 작은 화장품 가게를 하고 싶어요. 그리
고 착한 남자를 만나서 결혼할 거예요.>
기꾸가 돌아왔다.
그와 거의 동시에 전화 벨이 울렸다.
객실에서 거려온 전화였다.
기꾸는 채 앉을 틈도 없이 수화기를 들었다.
<예? ...예. 이제 시간이 다 됐는데. ...연장이요? ...다른 사람으로? 손님,
그건 곤란합니다. 좀전의 그 애밖에 아는 애가 없어요. 그 애도 본업으로 하
는 게 아니고 오늘 처음 아르바이트하는 거라서. 글쎄 모르겠군요. 다른 굿
에 가셔셔 알아보시지요. ...예. 알겠습니다.>
기꾸는 전화를 끊자마자 비웃으며 말했다.
<내참, 어이가 없어서. 좀전의 그 학생인데, 글쎄 여자를 한 사람 더 구해
달라는 거야.>
<웃기는 사람이야.>
기요미가 불끈했다.
<내가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말이잖아.>
기꾸가 기요미를 달랬다.
<그럴 리가 있을려구. 두 번째니까 이번에는 또 다른 여자와 하고 싶었던
거겠지. 거절했더니 지금 나가겠대.>
기꾸는 곧 일어섰다.
방에서 나오는 그 학생을 현관에서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이윽고 기구의 인사 소리가 들리고 아끼와 함께 왔던 학생은 나갔다.
마사오가 기요미에게 물었다.
<지금 그 학생 능숙하지 못하던가요?>
<능숙한 척 하는 것과 능숙한 것은 달라요. 저 자식은 능숙한 척 하는 것
뿐예요. 오히려 이쪽이 흥이 깨져 버린다구요. 이런 장사를하고 있지만 학생
은 학생다운 게 좋아요.>
기꾸가 미처 방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또 손님이 들어온 것 같았다.
기요미가 요염함이 어른거리는 눈빛을 하고 마사오 옆에 붙어앉았다.
은밀하게 속삭였다.
<내가 좋은 거 가르쳐 드릴까?>
<예.>
<여자와 잘 때 절대 서두르지 말 것. 여자가 초초해 할 정도로 천천히 진
행하는 것이 좋아요. 대개 남자가 여자를 리드하고 여자는 남자에게 끌려오
죠. 그래서 항상 마음 속에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해 보고 싶은 욕망이 있
어요. 나도 이 장사를 시작하기 전엔 그랬어요.>
<그래요? 저, 남자 사냥하는 걸 한 번 보고 싶군요.>
<보고 싶어요? 그럼 지금같이 갈까요?>
<아니오. 오늘밤은 이대로가 좋아요. 다음에.>
<좋아요. 언제든지 부탁하세요.>
기꾸가 돌아왔다.
<이번엔 단골 손님이야. 회사 과장과 그 밑에서 일하는 아가씬데, 참 예의
바른 아가씨지. 돌아갈 때는 반드시 뒷정리를 깨끗이 해놓고 가요.>
<물건을 흘리고 가는 경우도 많죠?>
<시계, 반지 등 여러 가지 있는데 대개는 남자가 찾으러 와요. 아직 쓰지
않은 콘돔 같은 것도 흘려 놓고 가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건 가지러 오지
않으니까 계속 쌓이기만 해요.>
기꾸가 기요미를 쳐다봤다.
<기요미 씨 가져가겠어요?>
<예, 그럴게요.>
기꾸는 작은 나무 상자를 가져왔다.
그 안엔 고무 제품이 가득 들어 있었다.
기꾸가 마사오 쪽을 봤다.
<학생도 좀 가져갈래?>
마사오는 씁쓸히 웃었다.
<아니오. 전 괜찮아요. 다른 사람이 쓰려고 했던 물건이라 그런지 마음이
내키지 않는데요.>
기요미가 물건을 핸드백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아줌마, 이 학생 내가 장사에 상관없이 잘해 주겠다는데도 싫대요. 거절
당했어요.>
<그야 당연하지. 이 학생에겐 엄연한 애인이 있는데.>
<그럼 전 슬슬 출근이나 해야겠어요. 오늘은 많이 늦었네요. 멋있는 사람
이나 한 번 골라 볼까.>
<되도록 여기로 데려오라구.>
<예. 하지만 그쪽 의사에 맡겨야 할 경우가 많으니까.>
기요미는 일어서더니 마사오에게 훈시를 늘어놓았다.
<전철 안에서 여자가 접근해 올 땐 조심해요. 소매치기일 수도 있고 나 같
은 여자일 수도 있으니까 말예요.>
<예, 조심하겠습니다.>
마사오는 고개를 숙였다.
기요미가 나가자 기꾸는 마사오의 몸을 노골적으로 만지기 시작했다.
<오늘밤엔 자고 가도 되지?>
<아니오. 가야 해요. 외박하겠다는 말을 안 했어요.>
기꾸는 상체를 낮추더니 마사오의 중심으로 입을 갖다댔다.
마사오는 그에 응해 양손을 뒤로 해서 바닥을 짚고 상반신을 뒤로 젖혔다.
점차 기꾸의 애무는 농밀해지고 혀가 미묘하게 움직였다.
기꾸가 마사오에게 안기며 말했다.
<못 참겠는데 어쩌지?>
<그보다 좋은 사람이 생겼다고 했잖아요.>
<응. 이 근처에서 상점을 하고 있는 아주머니 주선으로 만난 사람이야.>
<그럼 재혼까지?>
<그렇지 않아. 그 사람은 그 아주머니 남편인 걸.>
<예? 그런데 왜 당신에게?>
<큰 수술을 해서 여자 구실을 못하게 됐대. 아직 사십 대 초반인데 안 됐
어.>
기꾸는 마사오의 성기를 오른손으로 잡은 채, 왼손으로 맥주를 들어 그의
잔을 채워 주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오른손은 쉬지 않았다.
마사오는 맥주를 마시고 왼팔로 기꾸의 어깨를 안고 오른손을 그녀의 허벋
지로 가져갔다.
기꾸는 무릎을 벌리고 마사오는 기모노 옷자락을 헤쳤다.
기꾸는 일단 마사오를 놓고 기모노 옷자락과 오비를 움직여서 마사오의 손
목을 다리 사이로 잡아끌었다.
마사오의 손은 따뜻한 기꾸의 허벅지에 가 닿았다.
그러자 곧 기꾸의 손은 마사오의 성기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상체를 약간 뒤로 기울였다.
손을 밀어넣자 곧 수풀이 감촉되었다.
비모를 더듬으며 아래로 향했다.
따뜻한 바다가 기다리고 있었다.
마사오는 손에 율동을 주었다.
기꾸는 허리를 약하게 떨면서,
<손님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하고 중얼거렸다.
내부에서는 끝없이 넘쳐흐르고 있었다.
손가락이 예민한 꽃봉오리를 건드리자 기꾸의 입에서 작은 신음 소리가 새
어나왔다.
그리고는 갑자기 다리를 조여서 마사오의 손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더니 상
체를 일으켰다.
<자, 위를 보고 누워.>
<하지만 오비는 풀지 않은 편이...>
언제 손님이 올지 모르므로 기모노를 벗을 수 없을 뿐더러 오비도 풀지 못
한다.
마사오는 위를 천장을 향해 누웠다.
기꾸의 얼굴은 새빨개져 있었고 눈도 충혈되어 있었다.
무릎으로 다가온 기꾸는 기모노 자락을 뒤로 젖히고 마사오 위로 올라탔
다.
<괜찮겠습니까?>
<그냥 그대로 가만있어, 내가 알아서 할게.>
마사오는 현관 쪽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새로 들어오는 손님 뿐먼 아니라 투숙해 있던 손님들이 나갈 수도 있었다.
기꾸는 몸을 뒤척이면서 마사오의 몸을 손으로 쥐고 허리를 낮춰 비너스에
맞추었다.
마사오의 둥근 부분에 따뜻함이 느껴졌다.
기꾸의 손이 방향을 조절했다.
기꾸는 조심스럽게 허리를 가라앉혔다.
따뜻함이 더욱 넓게 퍼져갔다.
깊숙이 빨려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그제께는 아끼, 오늘은 기꾸, 연달아 주의를 살피면서 해야 한다는 게 묘
한 기분이 든다.)
현관에서 소리가 나면 기꾸는 일어서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줄다리기
인간에겐 상황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는 면이 있다.
자신이 애인이 아닌 다른 사람과 서로 즐겼을 경우 그것이 한 번 뿐이었을
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 번의 그 행위에 별로 비중을 두지 않고 단순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고
결론지어 버린다.
그러면서도 자기 애인이 똑같은 일을 저질렀다면 괴로워하거나 질투하거나
화를 내기도 한다.
헤어져 버리는 경우도 많다.
자신에겐 관대하지만 애인의 잘못은 용서하지 않는 것이다.
마사오에게 묘우미의 친구인 시루꼬와의 관계가 말하자면 전자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특별히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그 뒤에도 집착 같은 건 생기지 않았다.
다시 시루꼬와 그런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는 않겠지만 스스로 그런 기회를
만들고 싶은 마음은 별로 생기지 않았다.
없었던 일로 하고 싶었다.
아마 시루꼬도 따로 애인이 있으므로 마사오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여름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토요일, 마침 시루꼬의 생일이었다.
마사오는 시루꼬의 집에 묘우미와 함께 초대를 받았다.
마사오에게 시루꼬의 생일 축하는 구실이고 궁극적인 목적은 묘우미와 함
께 밤을 보내는 것이었다.
어쩌면 묘우미가 모처럼 외박 허락을 얻어 시루꼬에게 마사오를 데려가겠
다고 먼저 말했을지도 모른다.
두 사람이 거의 시루꼬의 아파트에 다 왔을 때 묘우미가 마사오의 팔을 잡
고 매달렸다.
<열 시쯤에 나와서 여관으로 가요.>
마사오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단지 묘우미의 생각보다 한 시간 늦을 뿐이었다.
그 만큼 더 여유롭게 마음껏 즐길 수 있으므로 흔쾌히 승낙했다.
시루꼬는 전골 요리를 준비해 놓고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은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시루꼬와의 일은 묘우미에겐 지금까지도 비밀이었다.
<후꾸이 씨도 오겠다고 했는데 거절했어. 오늘밤은 우리끼리 조용하게 마
시고 싶어서.>
시루꼬는 손님은 예정대로 묘우미와 마사오 뿐이란 것을 새삼스럽게 밝혔
다.
곧 술상이 차려졌다.
시루꼬는 술을 차갑게 해서 내왔다.
맨 처음 대화의 화제는 학생 운동을 주제로 한 소설이었다.
시루꼬와 묘우미 사이에 견해 차이가 생겼다.
마사오가 소외된 여자들끼리의 논쟁은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계속되다가
이번에는 운동가들의 연애 문제로 화제가 자연스럽게 옮겨갔다.
묘우미도 알고 있는 좌익 계열 운동권인 학생이 좋지 못한 여자 관계로 제
명 당했다는 이야기였다.
<그 사람, 나한테도 추파를 던진 적이 있어.>
시루꼬는 눈살을 찌푸렸다.
<동거하던 요꼬가 내 친구인데 정말 뻔뻔스럽기도 하지. 남자가 여자를 꼬
이는 데도 여러 수단이 있는데 그 사람의 경우는 혁명 이론이었어. 과격한
이론을 펼쳐서 여자를 멍하게 만든 다음, 그 틈을 이용하는 거야.>
묘우미가 물었다.
<그래서 꼬임에 넘어갔어?>
<중간까지는 넘어가는 척했지. 나는 그런 이론 따위에 정신을 놓을 만큼
순진하진 않아. 첫 남자도 그런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하는 수작이 눈이 빤
히 보이더군. 그가 한참 동안 열변을 토하더니 입을 맞추려고 했어.>
<그래서?>
<그냥 놔뒀지. 그 정도에서 몸을 빼면 재미 없잖아. 상당히 능숙한 키스이
긴 했지만 어차피 내 쪽에서 남자를 놀리고 있는 것이라 이렇다 할 느낌은
없었어.>
<장소는?>
<이번에도 공원 잔디밭. 물론 시간은 밤이었고.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키스 다음엔 여기겠지?>
시루꼬가 자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마사오를 봤다.
<키스하면서 손은 자연히 그 쪽으로 가겠죠. 그게 순서겠죠.>
<그런데 그 남자는 그렇지 않았어. 키스하면서 잔디 위에 나를 눕히고 다
리를 더듬는 거야.>
<넌 어디까지 허용했는데?>
<손이 팬티에 닿았을 때까지. 손을 빼내고 몸을 일으켰어.>
마사오가 물었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그 사람과 즐기고 싶다는 마음은 생기지 않던가요?>
<나 같은 바람둥이 여작 그만두었을 리가 없다 이거죠?>
시루꼬가 웃었다.
<꽤 기분이 고조되긴 했어요. 상당히 능숙했으니까. 하지만 그 정도에 자
신을 쉽게 내던지진 않아요. 애초부터 호감이 가는 사람은 아니었어요. -나
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그럴 기분이 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일어섰
어요. 그리고 그대로 공원을 나와서 입구에서 잠시 기다렸는데도 나타나지
않기에 그냥 와 버렸죠 뭐.>
<결국은 퇴짜를 놓은 거군요.>
<그렇다고 생각지는 않아요. 난 내가 유혹하는 걸 좋아하지 당하는 건 좋
아하지 않아요.>
시루꼬는 대담한 눈으로 마사오를 보았다.
<요컨대 마사오 씨처럼 유혹하지 않고 유혹을 즐기는 타입에 흥미가 있어
요. 스스로 행동한다는 것이 즐거운 거죠.>
<나라고 해서 언제나 유혹당하지만은 않습니다. 그저 웬지 이쪽이 하기 전
에 상대 쪽에서 먼저 유혹해 오는경우가 많아서일 뿐이죠. 그 후에 그 사람
만났을 때 표정이 어땠습니까?>
<천연덕스러웠어요. -그때 생리였었나?-라고 묻기에 -착각하지 마-라고
말해 줬어요. 그냥 그 뿐이예요. 그보다 마사오 씨.>
시루꼬는 정색을 했다.
<묘우미와 이런 사이가 된 뒤로 여자를 몇이나 더 알았어요?>
<묘우미 씨를 만나 뒤로는 새 여자를 사귈 인연이 다했나 봅니다.>
정작은 질문라고 있는 시루꼬도 포함되지만 그것은 묘우미 앞에서 말할 필
요도 없고 말해서도 안 된다.
<과연 정말일까?>
<정말일 거야.>
묘우미가 그렇게 말했다.
묘우미는 마음 속으로 아마 기꾸를 의식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시루꼬에겐 비밀이다.
마사오와 묘우미의 사이를 격하시켜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 사람은 그럴려고도 하지 않는 것 같아.>
시루꼬가 제법 묘우미를 꾸짖는 투로 말했다.
<넌 지금 두 사람이 서로 신뢰하는 연인 사이라고 착각하는 모양인데, 넌
애인이 아냐. 애인은 따로 있고 넌 심심풀이 상대일 뿐이야. 단순한 여자 친
구에 지나지 않는다구.>
<그건 나도 알고 있어. 처음부터 그렇게 약속하고 시작했으니까.>
<그러니까 빨리 기요미즈 씨와 사귀어 보라는 거 아니겠어?>
묘우미는 마사오를 보았다.
<처음 듣는 이름이지?>
<예.>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말하지 않았어. 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은 시루
꼬의 권유에 따를 생각이 전혀 없다는 뜻이야. 이번에 <구름> 동인으로 들
어온 사람인데 웬지 자꾸 나한테 접근하고 싶어해.>
<웬지가 아니라구요. 그는 묘우미한테 완전히 빠져 있어요. 부잣집 아들인
데다 키가 크고 잘 생겼지. 그리고 성격도 좋지. 빨리 승낙하라고. 계속 망
설이면 내가 가로채 버린다.>
<제발 그러시지.>
<네가 정 그렇게 나온다면, 사실을 얘기할까?>
시루꼬는 꽤 취해 있었다.
묘우미의 고루함에 화가 난 듯했다.
<말해도 될까요?>
마사오를 보는 시루꼬의 눈이 빛났다.
마사오는 당황스러웠다.
(이대로 여기서 혼자 나가게 될지도 모르지만 할 수 없는 일이다.)
마사오는 수긍했다.
<좋을 대로.>
다음 순간, 마사오는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 내가 말하겠어요. 묘우미 씨, 내가 당신을 대신해서 나온 시루꼬 씨
와 함께 술을 마셨을 때의 일입니다.>
묘우미는 마사오 쪽을 보지 않고, 술이 담긴 잔을 들고 그것만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날 밤, 이 방에서 시루꼬를 안았단 말이죠?>
마사오는 깜짝 놀랐다.
<이 방에서>라고 한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걸 뜻한다.
단순한 의심이나 추측이 아니다.
<그렇습니다.>
잔을 옆으로 흔들면서 묘우미가 질문했다.
<그날 밤에만? 그 뒤에는?>
<그날 밤 이후엔 아무 일도 없었어요.>
묘우미는 잔을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마시고는 다시 식탁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시루꼬를 보았다.
<나, 알고 있었어.>
<어떻게?>
<옆집 야마시타 씨에게 들었어. 그날 아침 일찍, 난 학교로 가지 않고 곧
장 여기에 왔었어. 근처에서 출근하는 야마시타 씨와 마주쳤지. -남자가 있
으니 가지 말아요.-하는 거야. 그 사람이 말하는 인상 착의는 틀림없이 마
사오 씨였어. 그래서 난 그대로 학교로 갔던 거야.>
시루꼬는 침착한 태도로 태연하게 말했다.
<그럼 문제는 간단하잖아. 너만 이 사람에게 정조를 지킬 이유는 없어. 자
유로워지는 거야.>
지금까지 묘우미는 시루꼬와 마사오 사이의 일을 알고 있다는 내색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날 점심 때 교내에서 만나 여관으로 갔을 때도 마사오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었다.
참을성 있게 잠자코 있었던 건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던
건지 알 수 없었다.
<알고 있었군요.>
마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 동안의 묘우미에 대한 자신의 연극을 생각하니 무척 낯뜨거웠다.
묘우미는 마사오에게 다가와 그의 무릎에 손을 얹었다.
부드러운 태도다.
<너한테 숨기려 했어?>
시루꼬의 눈과 귀를 의식한 친절이었다.
<모를 거라고 안심하면서도 시루꼬 씨가 말해 버리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
었어요.>
<그럼 나에 대한 양심의 가책은 전혀 없었어?>
<아니, 고민은 많이 했어요. 고백하는 것이 옳은 일이니까.>
묘우미는 술을 들이키고 나서 자신의 심정을 털어놓았다.
<나는 나에게 숨기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기뻤어. 나와의 관계를 단순한
유희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증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지. 솔직하게 말했더라
면 오히려 난 실망했을 거야. 말해 주지 않는 것을 난 애정의 표현으로 해
석했어.>
시루꼬가 반론을 펼쳤다.
<이 사람은 너를 단순한 욕구 해소의 수단으로밖에 생가지 않아. 편리한
도구가 없어지는 게 두려웠던 거지. 지금 이 사람에겐 너 말고는 여자가 없
어. 고향에 애인이 있다지만 거긴 너무 멀지. 교활하게 널 이용하고 있는 거
야.>
<아니, 그렇지 않아요.>
마사오는 강하게 부정했다.
<전 묘우미 씨가 두려웠습니다. -그런 나도 한 번- 하는 기분으로 다른
남자를 사귈까 봐 걱정되었습니다.>
<정말?>
묘우미는 몸을 마사오 쪽으로 돌렸다.
<내가 다른 사람과 어울리면 안 돼?>
<안 된다고 말할 자격은 없지만, 싫습니다 매우.>
묘우미는 반짝이는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뻐.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어리석긴.>
시루꼬는 비웃었다.
묘우미는 다시 몸을 식탁 쪽으로 돌려 시루꼬를 응시했다.
<그보다 난 너를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었어. 의문스러웠어. 왜 지금까지
잠자코 있었던 걸까? 곧바로 말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애초에 그러기로
하고 그날 밤에 나 대신 마사오 씨를 만나러 간 거잖아?>
<그건, 네게서 이 사람을 훔쳤다는 비밀을 간직하고 싶었고, 이 사람이 네
게 알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에 협조한 거야.>
<그럼 좀전엔 왜 폭로하려 했던 거지?>
<고루한 너의 사고를 너무 고집했기 때문에 난 화가 났어. 기를 꺾어 놓고
싶었어. 그런데 네가 이미 알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어.>
<그래. 나는 이미 알고 있었어.>
묘우미는 고개를 끄덕이고 도전적인 눈빛으로 시루꼬를 응시했다.
묘우미와 시루꼬 사이에 살얼음 위를 걷는 같은 긴장감이 감돌았다.
계속하다간 진짜로 심한 말타툼을 벌일지도 모르는 분위기였다.
시간도 묘우미가 말한 열 시가 가까워져 있었다.
마사오는 묘우미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일어섰다.
<이제 그만 마시고 슬슬 일어날까요?>
그러자 시루꼬가 반사적으로 놀란 얼굴을 했다.
<벌써 가려구요? 오늘은 묘우미도 외박 허락을 받았을 텐데요?>
<예. 그래서 여관에 가려구요.>
<무슨 소리예요? 아깝잖아요. 그 돈이면 신간 서적 문고본을 열 권 이상도
살 수 있어요. 여기서 묵어요. 방해하지 않을 테니까요. 잠자리를 두 개 만
들어 둘이서 함께 자면 되잖아요.>
묘우미가 마사오를 보았다.
<어떻게 하겠어?>
시루꼬의 권유에 따르고 싶다는 눈빛이었다.
시루꼬에 대한 대항 의식 때문일 것이다.
<전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옆에서 시루꼬가 거들었다.
<그렇게 하세요. 일부러 여관까지 갈 거 없잖아요. 우린 서로 조심해야 할
사이도 아니잖아요?>
마침내 마사오와 묘우미는 시루꼬의 권유를 받아들여 묵기로 했다.
마사오는 다시 앉으며 시루꼬의 눈에 묘한 빛이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느
겼다.
술자리를 치우고, 잠잘 준비를 시작한 건 열두 시가 조금 지나서였다.
한쪽 구석으로 쫓겨난 마사오는 두 여자가 함께 방을 치우는 광경을 복잡
한 심경으로 바라보다가 복도로 나왔다.
소변을 보고 방에 돌아오니 이불이 깔려 있었다.
시루꼬가 이인용 잠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이리고 와서 주무세요.>
<예. 그럼.>
마사오는 셔츠와 바지를 벗어 옷장에 넣고 이불 속으로 들어갔다.
묘우미가 재떨이와 담배를 머리맡에 갖다놓았다.
물도 가져왔다.
여느 때와 똑같은 태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