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밀한 물음
마사오와 다에꼬가 아침을 먹고 출근하는 다까세와 함께 그 집을 나와 역
으로 향했다.
다까세가 다에꼬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사오를 데리고 조금 앞서 걸었다.
장난기 어린 표정으로 마사오의 팔을 잡아 끌며 나직하게 물었다.
<어젯밤에 일찍 잤니?>
<아니, 새벽이 되어서야 잠깐 눈을 붙였어.>
<미쯔요도 그 바람에 잠을 설쳤다고 하더군.>
<넌?>
<나? 들어가자마자 골아 떨어졌어. 너무 취했었나 봐. 그보다 오늘 아침
에 미쯔요와 너희들 이야기를 잠깐 했었어.>
<무슨 얘기?>
<결혼 전에 우리들이 그랬으니까 잘 알지. 다에꼬 씨와 여유 있게 만날 장
소가 마땅치 않지?>
<응. 늘 그게 고민이야.>
<우리 아파트를 이용하는 게 어때? 낮 시간엔 우린 둘 다 없고, 또 저녁이
든 밤이든 상관없어. 우리들은 자주 영화를 보러 가기도 하거든.>
<그럼 고맙지.>
<열쇠는 다에꼬 씨가 미쯔요가 일하는 의상실로 받으러 오면 되고.>
<정말 고마워.>
<전혀 부담갖지 말고 우리 집을 이용해. 넌 우리 부부의 은인이잖아.>
기차에서 내려 마사오와 다에꼬는 먼저 다에꼬의 집에 들렀다.
다에꼬의 어머니는 정원의 채소밭을 손보고 있었다.
어젯밤에 둘이 어떠한 시간을 가졌을 거라는 건 다에꼬의 어머니도 알고
있다.
좀 어색하지만 인사를 하는 것이 예를 갖추는 것이다.
정원에 들어선 다에꼬가 소리쳤다.
<엄마 다녀왔습니다.>
어머니가 뒤를 돌아 보았다.
<이제 돌아왔습니다.>
마사오가 인사를 했다.
어머니는 마사오에게 부드러운 미소를 보냈다.
<어서 와요.>
<지난밤은 다에짱을, 죄송합니다.>
어머니가 다가오면서 낮은 소리로 말했다.
<내가 허락했는데 뭘, 비밀이에요.>
<예. 고맙습니다.>
<마짱을 믿기 때문이야.>
그제야 어머니는 마사오가 짐을 들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어, 아직 집에 들리지 않았는가?>
<예, 먼저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려고요.>
짐 속에서 마사오는 준비한 선물을 꺼냈다.
<이것, 작은 정성입니다.>
아직 학생이므로 말 그대로 작은 선물이었다.
<고맙네. 이렇게까지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되는데.>
선물을 일단 받고서 어머니가 말했다.
<하지만 이것 다음에 가지고 와요. 어머니에게 보여드리는 것이 좋으니
까. 먼저 여기를 들렀다는 것을 아시면 좀 언짢으실 거야.>
<저희 어머니, 아직 모르고 계십니까?>
<그래요. 그러니까 차라도 대접하고 싶지만 이대로 돌아가는 게 좋겠어
요>
마사오는 혼자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 들어서며 큰 소리로 말했다.
<저 왔습니다.>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생각했구나.>
안에서 나온 어머니는 눈을 동글게 뜨고 말했다.
<이렇게 빨리, 어떻게 된 거냐?>
<휴강이 많아서 그냥 일찍 내려와 버렸어요.>
<그래? 많이 피곤해 보이는구나. 얼른 목욕부터 하렴.>
마사오는 어제 내려와 다에꼬와 함께 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어머니 기분이 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구나 다에꼬 어머니는 그의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알았으면 바라는 눈치였
다.
머리를 긁적이면서 마사오가 말했다.
<사실은, 저, 어제 도착했어요.>
역에서 다까세를 만난 얘기부터 오늘 아침까지의 일을 대충 설명했다.
<아니, 세상에 다에꼬 어머니가 허락했다고?>
마사오나 다에꼬의 집에서 어머니의 허락하에 새벽까지 둘이 함께 있은 적
은 몇 번 있지만 본격적인 외박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마사오가 곧바로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보다도 다에꼬
어머니가 마사오와 함께 다에꼬가 외박하는 것을 허락했다는 사실에 강한
흥미를 보였다.
<그러면 다에꼬 아버지는?>
<모르실 거예요. 어젯밤 회사가 너무 늦게 끝나서 친구 집에 묵은 걸로 말
씀드렸다고 하시더군요.>
<저런! 다에꼬 아버지께 그런 거짓말을 하시게 하다니.>
<어머니께도 비밀로 해주신 댔어요. 곧바로 집으로 들어오지 않은 걸 아시
면 화를 내실 거라고.>
<다음에 만나면 너의 무례함을 사과해야 한다.>
<예.>
<이런 일은 여자의 죄가 아니라 전부 남자인 네 책임이다.>
<예.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마사오의 팔을 붙잡고 소리를 죽였다.
<임신 예방을 했겠지?>
<물론입니다.>
<도꾜에서도?>
다에꼬보다 엄한 문책이었다.
마사오는 고개를 저었다.
<전 다에꼬 뿐이에요.>
<다에꼬 같이 착한 애를 배신하면 변변치 못한 인간이 된다.>
<예. 그런 일은 절대 없습니다.>
<정말이지?>
그렇게 목을 박고서야 어머니는 일어섰다.
도꾜에서 그럼 어떻게 욕망을 처리하느냐고는 묻지 않았다.
미시오는 얼른 목욕을 끝내고 자기 방으로 돌아가 깊은 잠에 빠졌다.
눈을 떴을 때는 시각이 오후 한 시가 넘어 있었다.
맑았던 하늘이 흐려 있었으나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부엌으로 가 보니 식탁에 국수가 차려져 있었다.
그의 인기척을 듣고 어머니가 방에서 나왔다.
<네가 깨어나면 출출할 것 같아서 만들어 놓았다. 먹을래?>
<예. 배고파요.>
마사오가 막 수저를 드는데 어머니는 혼자 소리를 죽이며 웃었다.
<왜 그러세요?>
<정육점에서 다에꼬 어머니를 만났는데 소매를 끌고 밖으로 나와서 그 얘
기를 하지 않겠니? 그때 내가 화를 내지나 않을까 하고 눈치를 보는 그 사
람의 얼굴 표정이 말이다.>
<죄송한데요. 제가 먼저 약속을 깨서.>
<괜찮아. 오히려 다에꼬 어머니는 기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더라.>
국수를 먹고 마사오는 다에꼬의 집으로 갔다.
어머니가 현관으로 그를 맞으러 나왔다.
<약속을 어겼지?>
곱게 눈을 흘겼다.
그러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아 배어 있었다.
<죄송합니다. 원래 저는 거짓말을 못하잖아요.>
<나중에 혹시 아시게 되면 더 서운해 하실까 봐 아무래도 자네보다는 내가
말하는 게 좋겠다 싶었는데. 다에꼬는 요 근처에 심부름을 갔으니까 곧 돌
아올 거야.>
어머니는 마사오를 응접실로 안내하고 차를 내왔다.
그리고 그의 도꾜 생활에 대해 자세히 묻기 시작했다.
주인집 식구들이며, 방은 따뜻한지, 술은 많이 마시는지,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지 등등.
그러다 마사오의 어머니가 물었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했다.
마사오는 분명하게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럼 욕망은 어떻게 처리하지? 여자를 사귀고 있지는 않나?>
마사오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그럴 시간이나 돈도 없고, 무엇보다도 다에꼬에게 나쁜 일이
니까요. 그런 건 생각지도 않아요.>
<그래? 그런데 학생들이 술을 마신 뒤에 사창가를 찾는 경우도 있다던
데?>
<그런 곳에 가는 학생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요.>
사실은 반수 이상이 그런 곳을 드나든다고 생각하면서도 마사오는 정색을
하고 부정했다.
그때 현관문이 열리더니 다에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왔습니다.>
밖에서 돌아온 다에꼬는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둘은 다에꼬의 방으로 갔고 어머니는 다에꼬를 위해 따뜻한 차를 가져왔
다.
다에꼬의 향기가 은은하게 느껴지면서부터 어찌된 영문인지 마사오의 성기
는 부풀어오르기 시작했다.
마사오는 다에꼬가 만져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빨래를 해야지.>
그렇게 말하고 어머니는 방을 나갔다.
장지문이 닫히고 발소리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하고는 마사오와 다에꼬는
자연스럽게 서로를 끌어안았다.
입을 맞추었다.
키스를 하면서 마사오는 다에꼬의 손을 이끌었다.
다에꼬는 바지 위로 불룩 튀어나온 마사오의 성기를 갖고 놀았다.
마사오는 다다미 위에 똑바로 누웠다.
다에꼬는 그의 뜻을 알아차리고 바지 단추를 풀었다.
우꾹 서 있는 성기의 끝에 입을 맞추고 뺨을 비벼대더니 이윽고 둥근 부분
을 입안에 집어넣고 안으로 혀를 휘돌렸다.
마사오는 점점 짙어오는 쾌감에 낮게 신음하면서 다에꼬에게 손을 뻗쳤다.
비부까지는 손이 닿지 않아서 대신 옷 위로 젖가슴을 어루만졌다.
이윽고 어머니가 돌아오는 기척이 났다.
마사오는 얼른 손을 떼었고 다에꼬도 아쉬운 표정으로 마지못해 바지 단추
를 채웠다.
마사오는 몸을 일으켜 다시 앉았고 다에꼬는 원래대로 조금 떨어져 앉았
다.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오자 다에꼬는 아무 말없이 방을 나갔다.
입과 물로 헹구러 가는 듯했다.
<지난 여름 방학 때, 죄송했습니다.>
도꾜로 올라가기 전 날, 미리 약속을 하고 한밤 중에 몰래 다에꼬의 방으
로 숨어들어와 새벽에 돌아갔었다.
아무에게도 틀키지 않았다고 안심했었는데 아침에 어머니가 다에꼬에게 간
밤에 마사오가 다녀갔었냐고 물었고 다에꼬는 차마 거짓말을 하지 못하고
그저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떨구었었다.
지금 그 일을 사과하는 동시에 다시 그런 기회를 엿보는 것이다.
<무슨?>
다에꼬 어머니는 무슨 말인가 의아해 했지만 곧 이해했다.
<아! 그 일.>
<죄송합니다.>
<젊으니까 그럴 수도 있지 뭐.>
전혀 책망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그래서 마사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내일 밤도 응석을 받아 주시겠습니까?>
<오라, 자네와 다에꼬가 상의했군. 그리고 다에꼬가 자리를 비운 게지?>
<아닙니다. 제 혼자 생각입니다.>
다에꼬 어머니는 한숨을 쉬었다.
마사오는 자신의 뻔뻔스러움에 스스로도 놀라고 있었다.
어머니가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다.
<좋아. 그러지. 몇 시쯤?>
<저는 아무 때라도 좋습니다.>
<열한 시라면 좋아. 어머니께 말씀드려요. 여름과 달리 겨울밤에 없어진
것을 알면 걱정하실 테니까.>
<그렇게 하겠습니다.>
어머니가 바싹 다가앉으며 물었다.
<그런데 자네들 언제부터야?>
<좀 오래 되었습니다.>
<작년 여름부터 그러는 것 같던데, 맞나?>
굳이 사실을 밝힐 이유는 없다.
마사오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에꼬가 기쁨을 알고 있나?>
별로 주저함없이 물어 왔다.
마사오를 편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
<그래? 그렇다면 잘 된 일이군. 이런 말한 것 저 애한테는 비밀이네.>
<알겠습니다.>
그때 복도에서 발소리가 났다.
둘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다에꼬가 들어오자 이번에는 어머니가 일어섰다.
<다에꼬, 내일 밤 열한 시다.>
어머니가 문 밖으로 나간 뒤 나지막이 그렇게 말하고 장지문을 닫았다.
다에꼬는 그쪽에 대고 머리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순식간에 얼굴이 확 붉어졌다.
독신주의 여선생
다음 날 마사오는 오후 세 시에 학교로 인사를 하러 갔다.
삼학년 때 담임이었던 우에하라는 교무실에서 난로를 쬐면서 처음 보는 어
떤 선생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인사를 했다.
유에하라는 무척 반가워했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나서 우에하라가 말했다.
<자, 그럼 이제부터 한 잔 해 볼까?>
<예. 좋습니다.>
우에하라가 마사오를 바라보고 있는 여교사를 돌아보았다.
<에이꼬 선생, 이 친구가 바로 마사오 군입니다.>
그러자 비쯔 또래의 작은 몸집의 여교사가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그러리라고 생각했어요.>
그녀는 마사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하얗고 부드러운 손이었다.
두 사람이 악수를 하자 우에하라가 옆에서 소개를 했다.
<올해 이 학교에 오신 영어 선생님이지. 그때 너도 이런 아름다운 선생님
에게 배웠더라면 영어를 좀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그 말에 마사오가 항의했다.
<선생님, 전 영어를 아주 잘 하는 편이었습니다.>
<참 그랬지. 내가 깜빡했군.>
그리고는 에이꼬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떻습니까? 에이꼬 선생 같이 어울리지 않으시렵니까?>
<글쎄요. 선생님이 자랑하시던 제자와 비로소 처음 만났으니 두 시간 정도
는...>
<좋아요. 나는 오십 분 짜리 수업이 있지만 자습을 시키면 되니까. 마사
오, 잠깐만 기다려.>
우에하라가 교무실을 나가고 마사오는 에이꼬와 남게 되었다.
<비쯔는 계속 만나고 있나요?>
마사오는 움찔했다.
<나와 비쯔는 여학교 동창이에요. 당신에 대한 얘기, 비쯔에게 많이 들었
어요. 언젠가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하지만 우에하라 선생님에게는
비밀이에요.>
<예.>
<비쯔, 곧 엄마가 돼요.>
(작년 여름 방학에 갔을 땐 당분간은 아이 없이 신혼 기분을 내고 싶다고
했는데. 마음이 변했나?)
<그래요? 축하할 일이로군요.>
<그럼, 조금 있다 봐요.>
에이꼬가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에 우에하라가 교무실로 돌아오면서 에이꼬에게 뭐라고 귀뜸을 하
고 마사오에게 돌아왔다.
<자, 가자. 새로 생긴 멋진 가게에 데리고 가 주지.>
두 사람은 교무실을 나왔다.
그런데 에이꼬는 따라오지 않았다.
<에이꼬 선생님은?>
<나중에 올 거야. 같이 가는 걸 누가 보면 재미없거든.>
<아, 예. 저, 두 분이 사귀시는 건가요?>
<아니, 몇 번 술을 같이 마시긴 했지만 전혀 그런 건 아냐. 재미있는 여자
야. 취하면 까다로운 이론을 펴기가 일쑤지만 그게 또 귀엽거든.>
<독신입니까?>
<독신주의자 같아. 품행이 아주 바르지. 어쩌면 남자를 싫어하는지도 몰
라.>
마사오가 따라간 술집은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표주박촌>이라고 쓰여
진 작은 가게였다.
두 사람은 가게 안쪽의 다다미방으로 들어갔다.
가게 여주인이 큰술병에 밀주를 담아 가져왔다.
<마침 잘 오셨어요. 술이 아주 잘 됐어요.>
<안주는 적당히 알아서 가져다 줘요.>
<예. 그러죠.>
아주머니가 나가고 두 사람은 밀주로 건배를 했다.
얼마 뒤에 에이꼬가 여주인의 아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식탁 위에 나지막한 풍로가 놓여지고 다시 그 위에 철판이 얹어졌
다.
에이꼬도 밀주를 마셨다.
고기 굽는 연시 속에서 세 사람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역시 두 사람이나 고교 선생이므로 우선 내년 대학 입시가 화제가 되었다.
그런데 올해 삼학년들의 성적이 별로 좋지 않아 진학에 곤란을 겪을 것 같
다고 많은 걱정을 했다.
<입시 경쟁은 점점 심해지는데 우리 학교는 지역적으로 불리한 점이 많으
니까요.>
그렇게 교사들을 위로한 뒤 마사오는 화제를 바꾸었다.
<그런데 학생들이 무슨 사고를 치거나 하지는 않나요?>
<응. 다행히 아직 큰 문제는 없었어. 적당히 연애를 하는 학생은 상당히
있지만. 몇몇은 최후의 선을 넘었을 테지. 자네들 때는 몇 명이나 여자를
알고 있었지?>
<삼학년 때는 음... 잘은 모르지만 반에서 서너 명 정도였던 것 같습니
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요?>
마사오를 바라보는 에이꼬의 눈에 선정적인 느낌이 배어 있었다.
동시에 마사오는 -나는 네가 그렇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어.- 라고 말하
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눈을 보며 마사오는,
(이 선생, 유혹하면 응해올지도 모른다.)
그렇게 직감했다.
그러자 다리 사이가 뜨거워지고 에이꼬에 대한 친근감이 일었다.
<우에하라 선생님 앞에서는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럼 우리 두 사람이 만났을 때 얘기해 줘요.>
<예. 그러죠.>
간접적으로 다음에 만날 것을 약속한 셈이었다.
우에하라가 에이꼬에게 물었다.
<여학생으로부터 그런 류의 상담을 받는 경우가 있겠죠?>
<가끔요.>
<어때요?>
<남학생에게 끈질기게 구애를 받아 곤란하다거나, 자신은 아무런 생각도
없는데 이상한 소문이 떠돈다거나 하는 크지 않는 문제일 경우가 대부분입
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는 좀 심각한 얘기를 하는 아이가 있었어요.>
<어떤 얘기를?>
<남학생과 함께 저녁에 강둑을 산책했는데, 갑자기 남학생이 덤벼들었대
요. 몽롱한 상태에서 결국 순결을 잃었는지 아닌지를 알 수가 없어 그 판단
을 해 달라고 다음 날 저를 찾아왔어요.>
마사오는 강한 흥미가 일었다.
여자들끼리 어떤 대화를 했을까?
그것을 들으면 에이꼬 자신의 남자 경험도 유추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자세히 상황 설명을 들었겠군요?>
술기운에 에이꼬의 눈가는 조금 붉어져 있었다.
<예. 그렇지 않으면 알 수가 없으니까요. 어쨌든 접촉이 있었던 것은 확실
했어요. 접촉이에요, 틀림없이.>
에이꼬는 젖은 눈빛으로 우에하라가 옆에 있는데도 마사오를 보았다.
(이 선생은 나에게서 이성을 느끼고 있다. 연하의 남자에게 흥미를 보이는
성격인지 아니면 비쯔에게서 모든 얘기를 들었기 때문인지. 아무튼 남자를
싫어하는 듯하다는 우에하라 선생의 추측은 틀린 것이다. 남자를 싫어하는
여자라면 이런 화제를 입에 담지도 않는다.)
<하지만 순결을 잃지는 않았다고 판단을 내렸습니다.>
<무엇을 근거로?>
<결정적인 통증은 느끼지 않은 거 같았고, 출혈도 하지 않았다고 하더군
요. 또 그 뒤로 이물질이 몸 속에 남아 있는 것 같은 느낌도 느끼지 못했다
고 했어요. 내 추리로는 그 남자아이가 너무 서둘렀기 때문에 그곳을 찾으
며 시행착오를 하다가 막상 들어가지도 못해서 배출해 버린 듯해요. 그리고
는 면목이 없으니까 그 여자아이를 놔주었겠죠. 젊은 남자들에게 종종 있는
일이죠?>
<예. 그렇죠.>
우에하라는 고개를 끄덕이고 마사오를 보았다.
<자네도 그런 실패를 한 적이 있나?>
<없습니다. 그러나 친구에게 들은 적은 있습니다. 그 녀석도 강제로 하려
고 했다고 그러더군요. 두 사람의 합의하에 한다면 그런 일은 웬만해서는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맞아. 자네는 악당이니까 살살 꼬여서 하지?>
에이꼬가 계속했다.
<그래서 나는 내 판단을 말해 줘서 안심시켰죠. 그래서 그 아이는 명랑한
얼굴로 돌아갔는데 가기 전에 아주 재미있는 말을 했어요.>
<어떤?>
<다음 번에 또 그런 일이 생기면 겁먹지 않고 오히려 손으로 성기를 힘껏
잡아당겨 남자를 혼내주겠대요. 대단하지 않아요? 나는 여학교 때 남자아
이들이 어떻게 자위하는지도 몰랐었는데.>
우에하라가 못 믿겠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고 물었다.
<정말 그렇게 순진했었나요?>
<예. 흥미도 없었어요. 오직 공부만 했죠.>
마사오가 물었다.
<그 여자아이, 그 뒤로 그 남학생과 절교했나요?>
<그런 것 같아. 지금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학교를 잘 다니고 있어
요. 새로 연애를 시작하는 건 아마 졸업하고 나서가 될 거예요.>
<그럼 선생님은 언제 연애를 처음 하셨나요?>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요. 상대도 학생이었는데 어딘지 모르게 당신과 닮
은 사람이었죠. 후후후. 정말이에요. 이 년 정도 사귀었는데 키스만 했죠.
몇 번인가 그 사람이 그 이상의 것을 요구했지만 제가 허락하지 않았어요.>
<왜 헤어졌나요?>
<어느 날 갑자기 없어졌어요. 행방불명이었죠. 얼마 뒤에 자살을 암시하
는 편지가 내게 배달되었어요. 이유는 밝히지 않은 채 말이죠. 그 뒤로 사
람도 시체는 발견되진 않았지만 아마 살아있진 않을 거예요. 작별의 말도
없이 결국은 영원히 끝인가 싶어 공허한 기분이 한동안 계속됐죠.>
<자살? 그렇다면 마사오 이 친구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군요. 이 애는 자살
같은 멍청한 짓은 절대 하지 않을 겁니다.>
우에하라는 껄껄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볼일을 볼러 잠깐 자리를 비
웠다.
그러자 에이꼬가 한 번 주위를 둘러보더니 소리를 죽여 말했다.
<비쯔가 낳을 아기, 혹시 당신 아이 아니에요?>
<예?>
마사오는 고개를 흔들었다.
<전혀 그럴 리가 없어요.>
<정말?>
<비쯔 선생님과는 결혼 후에는 만난 적이 없어요. 한 번 집으로 찾아간 적
은 있지만 다른 사람을 동행했었죠.>
에이꼬는 고개를 끄덕이고 검은 핸드백에서 쪽지를 건네 내밀었다.
<우리 집 주소와 전화번호예요. 빨리 집어넣어요.>
마사오는 그것을 받아 상의 안주머니에 넣었다.
<새해가 되면 전화드리죠.>
에이꼬는 밀주를 마사오의 잔에 따랐다.
<나는 지금까지 남자는 한 사람 뿐이었어요.>
<선생님 같은 미인에겐 많은 남자가 구애해 왔을 텐데 그럼 모두 거절하셨
나요?>
<무턱대고 거절하는 건 아니에요. 다만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
요. 나는 수동적으로 살고 싶지 않아요. 상대가 마음에 들면 내 쪽에서 먼
저 시도할 거예요.>
요염함이 어른거리는 눈으로 마사오를 노골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에이꼬의 눈가는 붉게 물들고 눈빛은 더욱 짙어져 있었다.
우에하라가 돌아왔다.
<바람이 더 차가워졌더군.>
에이꼬의 눈에서 일순간에 강렬한 빛이 사라지고 표정도 부드러워졌다.
어두워지기 시작하자 손님들이 들어닥치면서 가게 안이 시끄러워졌다.
삼십 분 정도 술을 더 마신 뒤 세 사람은 가게를 나와 곧바로 각자 헤어졌
다.
두 교사와 헤어지고 마사오는 집으로 돌아왔다.
<우에하라 선생남과 한 잔 했습니다. 식사는 됐어요. 좀 자야겠어요.>
현관에서 어머니에게 그렇게 말하고 방으로 들어가 잠을 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