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7 휴가 =========================================================================
“누나?”
“응...오랜만이네. 방에서 무슨 이상한 소리가 나서...”
문을 두드린 사람은 그의 누나였다. 김준은 어느새 옷을 빠르게 입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누나가 이 시간에 자신의 방에 온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일단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방에 방문한 누나를 반길 뿐이었다.
“그, 그게...뭐 좀 하느라...하하. 근데 무슨 일로...?”
“아, 저기...할 말이 있어서...들어가도 될까?”
다행히 누나는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동생은 침대 아래 누워서 두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최대한 몸을 숨기고 있었다. 침대가 그녀가 흘린 액으로 흠뻑 젖어있었지만 누나는 그것까지 신경 쓰지는 않았다.
“아니, 나가서 얘기하자. 안 그래도 좀 답답해서 산책 좀 하고 싶었는데.”
“나가서? 그래, 그러자.”
김준은 방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누나를 몸으로 막은 뒤, 밖으로 나가자고 했다. 누나는 그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꼈지만 이내 웃으며 그러자고 말했다.
김준은 그대로 누나를 데리고 밖을 나섰다. 누나와 함께 밖으로 나간 그는 왠지 모를 어색함이 느껴졌다. 멀리서 경호원이 자신과 누나를 따라오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단지 누나한테 임신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될지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김준에게 누나는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시는 바람에 그의 누나는 사실상 그와 동생의 어머니 역할을 해왔다. 집에 빚을 갚기 위해서 누나는 공부를 포기하고 일을 다니고, 집안일까지 도맡으면서 그와 동생을 돌보았다. 때문에 그녀는 지금까지 연애 한 번 제대로 못해볼 정도로 고된 삶을 살아왔다. 그러다가 이제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게 되면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그녀였다. 여기에 애까지 가지게 된다면 지난 삶을 모두 잊을 수 있을 정도로 행복해질 것이다. 김준은 그녀의 행복을 누구보다 바랐기에 꼭 임신을 선물해주고 싶었다. 다만, 걱정되는 부분이 있었기에 섣불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밤공기가 살짝 차갑게 느껴졌다. 하지만 걷기에는 크게 무리가 없다고 생각되었다. 할 말이 있다고 했던 누나는 아까부터 김준의 눈치를 보기만하고 꺼내지 않았다. 김준은 오늘 반드시 그 이야기를 마무리 짓고자 다짐하고 집 근처에 있는 공원을 돌면서 본격적인 대화를 나누고자 했다.
“아까 집에서 할 말 있다고 하지 않았어?”
“......”
“뭔데? 부탁할 일이라도 있는 거야? 편하게 말해도 괜찮아.”
누나는 아까부터 자꾸만 무슨 말을 꺼내려다가 말기를 반복했다. 김준은 최대한 누나가 먼저 그 이야기를 꺼내도록 유도했다.
“저...준아. 네가 저번에 말했던 거 말이야...”
“임신...말하는 거지?”
“응, 그거...정말로 할 수 있는 거야?”
김준은 이승진으로부터 얘기를 들은 후, 전화로 누나에게 이 사실을 한 번 말했었다. 당시 누나는 생각해본다고만 말했었다. 임신에 대한 아무런 정보가 없었기에 섣불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었다. 그렇지만 그녀도 이제는 결정을 내려야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실습 대상자가 되는 건 충분히 가능할거야. 대신, 임신이 된다는 보장은 없어. 단 하루뿐이라서. 그래도 괜찮겠어?”
김준이 현재 누나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누나를 실습 대상자로 선정되게 하는 것이었다. 능력자가 된 후로 6개월 동안 많은 돈을 벌었지만 대부분 빚을 갚는데 사용되어서 지금 그의 수중에 남은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3,4년만 더 있으면 충분히 누나가 중급 능력자들을 구입할 수 있도록 돈을 모을 수 있겠지만, 누나는 지금 당장 임신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였다. 그는 누나에게 더 좋은 것을 해주지 못한다는 점에 매우 미안함을 느꼈다.
“응...나, 한 번 해볼게.”
그녀는 김준의 제안을 수락했다. 김준은 임신일 시키는 능력자였지만 아직까지 임신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의미를 지니는지 모르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누나의 선택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누나, 꼭 임신을 해야겠어? 임신이라는 거, 어떤 과정을 거쳐야 되는지 내가 전에 설명해줬잖아. 그래도 하고 싶어?”
특히나 임신을 위한 과정이 걱정이 되었다. 그의 누나는 세상 어느 여자보다도 순수했다. 그가 과거에 클리닉에서 만났던 서아영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었다. 이중적일 수 있겠지만 그는 누나에게 그런 행위를 한다는 것이 조금은 거부감이 들었다.
“그래도 임신을 위해서는 참고 견뎌야지. 충분히 할 수 있어.”
“그건 그렇게 견딜 수 있는 그런 게 아니니까 하는 소리야. 누나처럼 순수한 사람은 견디기 힘들단 말이야.”
“그렇게 아픈 거야?” ”아니, 아픈 건 아니지만...누나, 자위는 해본 적 있어?“
김준의 누나는 순수 그 자체였다. 김준이 알기로는 그의 누나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위 한 번 해본 적이 없었다. 돈을 벌고, 가족들을 챙겨야 된다는 생각에 성욕을 강제로 억눌렀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가 바로 섹스를 하게 되면 견디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되었다.
“너한테 얘기 듣고, 저번에 태진씨랑 한 번 해봤어.”
그녀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말했다. 그는 그녀의 모습에 더욱 걱정이 되었다. 고작 자위 한 번 한 걸로 이렇게 부끄러워하는 그녀인데, 섹스라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말 그렇게까지 하고 싶어?”
“나, 엄마가 되고 싶어.”
“...엄마?”
“응, 엄마. 오래 전부터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어.”
그녀의 말이 김준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세상은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말은 이미 사라져버린 지 오래였다. 망해가는 세상에 사랑은 더 이상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녀를 말릴 수가 없었다.
“알았어. 그렇게 원한다니까 어쩔 수 없지. 클리닉에 가면 말해놓을게. 대상자가 된다면 아마도 다다음주에 진행될 거야. 나 휴가 나오기 전에 새로운 능력자가 새로 들어온다고 했거든.”
“고마워, 준아. 너는 진짜 사랑스러운 내 동생이야.”
그녀가 그를 껴안으며 말했다. 김준은 누나가 갑작스럽게 자신을 껴안자 뭔가 부끄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 준아. 그리고 또 할 말 있는데...”
“뭔데?”
임신에 대한 이야기가 마무리 되고, 집에 가는 길에 그녀가 또 한 가지 할 말이 있다고 말했다.
“하영이 말이야.”
“하, 하영이? 걔, 걔가 왜?”
동생에 관한 이야기였다. 김준은 동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괜스레 죄지은 사람처럼 말을 더듬었다.
“몇 달 전부터 하영이가 알바를 시작했거든? 처음에는 얘도 이제 철이 들었구나 싶었는데, 전에 친구한테 듣기로는 얘가 업소에 다닌다고 하더라고.”
“업소? 여자들이 다니는 그 업소 말하는 거야?”
“응, 얘가 너 떠난 후부터, 무슨 일이 있는지, 스트레스를 엄청 받더라고. 그걸 아무래도 거기서 푸는 것 같아.”
여기서 말하는 업소란 여자들이 다니는 곳을 말한다. 남성의 성욕이 사라져버린 이 세상은 과거의 세상과는 많은 부분이 달라졌다. 그 중에서도 남성을 위한, 남성의 성욕을 풀어주기 위해 만들어진 곳들 대부분이 문을 닫았고, 그곳은 여성을 위한, 여성의 성욕을 풀어주기 위한 곳으로 변했다. 불법이었지만 국가에서 딱히 제재하지 않았기에 조금만 걸어도 주변에 많은 업소들을 볼 수 있었고, 여성이라면 적어도 10명 중 3명은 그곳을 이용할 정도로 꽤 장사가 잘되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곳을 그의 동생 역시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아무래도 동생이 자신과 첫 스킨십을 한 뒤로, 성욕에 눈을 뜨게 되면서 그곳에 가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았어. 내가 한 번 말해볼게. 누나는 아무 걱정하지 마.”
“응, 알았어. 고마워. 준이 네가 집에 오니까 든든하고 참 좋다.”
일단 김준은 그녀에게 자신이 해결해보겠다고 말했다. 그녀의 고맙다는 말에 김준은 밖에 나오기 전에 동생과 했던 일이 떠오르면서 죄인이 된 느낌이 들었다. 하루빨리 동생과의 관계를 확실히 정리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렇게 두 사람은 모든 대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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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2일차, 학교
다음 날, 오랜만에 푹 잔 김준은 오후 늦게 집을 나와 학교로 이동했다. 오랜만의 그의 친구들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전화와 문자, SNS 등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지만 역시나 친구라면 술을 한 잔 기울이면서 대화를 나누어야 진정한 친구라고 할 수 있었다. 그는 오랜만에 만나게 될 친구들을 떠올리며 즐거운 마음으로 학교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뜻밖에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오랜만이에요, 선배님.”
“유희진?”
바로 그의 짝사랑녀였던 유희진이였다. 그녀하고는 술집 화장실에서의 사랑 이후에 단 한 번도 연락을 하지 못했었다. 서로 뭔가 어색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클리닉에 있는 동안 한 번 연락을 해볼까 생각도 해봤지만 혹시나 그녀가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었기에 차마 연락을 하지 못했다.
“오랜만이네. 그동안 잘 지냈어?”
“네, 잘 지냈어요. 선배도 잘 지내셨죠? 저는 선배 꼭 보고 싶었는데. 사실, 동철선배한테 선배 휴가 나왔다는 얘기 듣고 이렇게 찾아온 거예요.”
그녀는 김준을 꼭 만나고 싶었다고 얘기했다. 과거의 짝사랑했던 여자가 자신을 만나고 싶다는데 좋아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겠나. 김준의 입은 귀에 걸려있었다.
“정말? 나도 연락하고 싶었는데, 왠지 너한테 부담이 될 것 같아서 못했거든. 이럴줄 알았으면 할 걸 그랬네.”
“괜찮아요. 어차피 지금 이렇게 만났으니까.”
그런데 가만 보니까 자신을 보고 싶어 하던 사람치고 그녀의 표정이 그리 밝지는 않았다. 혹시 자신이 그동안 연락하지 않아서 삐친 것일까. 김준은 그녀가 왜 그런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는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김준의 눈에 들어온 것이 하나 있었다.
“근데, 너...배가...”
실은 아까부터 신경 쓰이던 것이 하나 있었다. 바로 그녀의 배였다. 그녀의 배는 불룩 튀어나와있었다. 혹시나 그녀가 살찐 것이 아닐까, 생각했던 그는 처음에는 일부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니까 아무리 살이 쪄도 저렇게 배만 튀어나올 수는 없었다. 그는 그녀를 불편하게 하는 게 저 배일수도 있다는 생각에 직접 물어보았다.
“저...임신 했어요.”
그러자 그녀에게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그녀는 임신을 한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