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엄마의 남자
텐트 옆에는 잎새 넓은 오동나무 두 그루가 길게 뻗어 있고, 잡풀들이 거의 허벅지 높이까지 올라와 있었다.
나는 오동나무 하나를 팔에다 안고 풀숲에 엎드렸다.
한 아름 안기는 것이 직경이 아마도 내 다리통보다도 큰 거 같았다.
어른들 말로는 색시가 시집올 때 오동나무 유목 두 그루를 가져와서 집 울에 심어 두었다가 세상을 등질 때 관으로 만들어 쓴다고 했다.
하나는 신랑의 것이고...
그런데 어쩌자고 신랑이 술 주정 좀 한다고 색시가 자식까지 데리고 도망쳤을까?
그 신랑, 색시 나가고 곧 얼어죽었다 하지만 오동나무 그대로 서 있는 걸 보면 이름 없는 나무로 싸서 묻었을 거 같다.
아니, 짚 멍석에 말려 묻혔는지도 모른다.
텐트 안에서 부스럭 소리가 났다.
"너, 학교는 가야할 거 아냐?"
"나중 조용해지면 가면 되지 뭐...."
"그냥 버티는 건데... 이 엄마가 죽일 년이야...!"
"또 그 얘기야? 이제 그만 하세요!"
"에라, 나도 모르겠다..."
안에서 들린 말들로 미뤄 보아선 그들 처지가 옛날 이 집에서 도망쳤다는 그 엄마와 아들의 모습과 꼭 같은 상황인 거 같았다.
세상에 어찌 이런 일이 일어날까?
혹시 그들이 돌아온 건 아닐까?
그건 어림도 없는 일일 것이다.
벌써 15, 6년 전의 일이라 그 아들은 이미 서른도 넘었을 것이다.
그 이후 안에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가끔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게 텐트 안에서 나는 소리인지 풀잎들이 부딪혀 내는 소리인지 혼돈스러웠다.
모기는 물어대고 시간은 흐르고.. 그런 속에 안의 모습이 점점 더 궁금해졌다.
나는 몸을 돌려 오동나무를 돌아 텐트 뒤쪽을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그쪽엔 옛날 집이 앉았던 자리인지 제법 높은 게 주춧돌인 듯한 넓적한 돌이 놓여 있었다.
그 돌 위에는 버너와 씻지 않은 그릇 두 개가 놓여 있었고, 주위에 라면 봉지들도 어질러져 있었다.
그 라면 봉지를 건드려 소리를 낼까 조심하면서 누워 있는 풀들을 세워 몸을 가렸다.
텐트의 방충망을 통해 안쪽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여자는 하늘을 보고 누워 있었고, 아들은 엎드린 채 앞쪽을 보고 있었다.
"엄마! 여기서 얼마나 지낼 거야?"
"나도 모르겠다... 휴...!"
"추워지면..?"
"그때 가서 생각하자. 왜 지금 춥니?"
"아침엔 춥더라..."
"사내놈이..."
여자가 이불을 들치고 품안으로 아들을 끌어들이는 모습이 보였다.
엄마가 아들을 안는 모습이 뭐 대수일까?
하지만 나는 가슴이 콩닥콩닥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랫도리도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부풀어올랐다.
내가 저처럼 엄마 품에 안겨본 게 언제인지 이제 기억조차 안 난다.
아마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는 한번도 없는 듯 하다.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그전에 병을 앓은 적도 없었던 아버지는 주무시다 아침에 못 깨어나셨다.
그것이 내 기억의 전부로 너무나 간단하게 세상을 떴다.
그때는 아버지의 존재가 뭔지 제대로 알 나이도 아니었다.
엄마는 밤을 세워 우셨지만 나는 그 뜻을 몰랐다.
그저 밤이 이슥할 때까지 약초 다듬는 일을 시키던 지긋지긋한 아버지가 사라졌다는 정도로 여길 뿐이었다.
그러나 정작은 아버지가 사라진 뒤부터 그 일은 더 늘었다.
외삼촌과 엄마가 산에서 캐던 약초를 밭에다 키우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그 후 엄마 옆에 내 이불이 따로 깔렸지만 적당한 간격이 있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 객지생활을 시작하면서 가끔씩 엄마를 찾아왔을 때에도 그 간격은 늘 그 만큼 벌어져 있었다.
그래서 남녀 칠세 부동석이란 말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제 나도 그 뜻을 알 나이건만 저들 모습을 보니 왠지 어머니의 품이 그리워졌다.
그런데 왜 가슴은 이토록 콩닥콩닥 뛰며 주체할 수 없이 부푸는 아랫도리는 왜일까?
나는 더욱 귀를 쫑긋 세웠다.
바로 코앞이건만 망원경까지 빼 들었다.
여자의 팔은 아들의 어깨에 허술하게 얹혀 있건만 아들의 팔은 엄마의 등을 꼭 죄고 있었다.
저건 추워서가 아닌 것이다.
도망가지 못하게 붙들기 위함도 아닌 것이다.
나는 안다.
나는 다 알만큼 큰 것이다.
컸기 때문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아랫도리를 주체하기 힘들 것이다.
아쉽지만 그쯤에서 물러나야 할 거 같았다.
한약을 따려놓고 기다리던 엄마가 필시 나를 찾아 나설 것이기 때문이었다.
망원경을 접어 넣기 전 확인한 그들 모습은 별 진전이 없이 그대로였다.
더 이상 일어날 일을 상상한다는 것은 천벌을 받을 일일 것이다.
나는 그곳을 벗어나자마자 뛰기 시작했다.
땀을 내어 집에 들어서야 할 거 같아서였다.
그런데 조용하던 산골에 갑자기 바람이 일렁이더니 발 앞에 우두둑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었다.
소낙비였다.
집 앞에 이르렀을 때 우산을 든 엄마가 밖에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얘! 어디까지 간 건데 이렇게 오래 걸리니?"
"저 위 폭포가 있는 데까지.."
적당히 둘러댈 수밖에 없었다.
방으로 들어와 약사발을 내밀던 엄마가 또 한마디했다.
"당분간 냉수와 기름진 거는 먹지 말라 하더라. 그리고 술 담배는 안 하지?"
"네!"
그렇게 말했지만 나는 술도 담배도 하고 있었다.
대견한 듯 바라보던 엄마가 내 추리닝에 붙은 오물을 털어내며 말했다.
"밤길 달리느라 미끄러진 모양이구나..!"
엄마가 털어 낸 것은 흙먼지였다.
그곳을 기어다니느라 묻은 게 확실했다.
순간 내 얼굴이 화끈거렸다.
또 묻었는지 추리닝을 계속 털어대던 엄마의 손이 멈칫했다.
아직 불룩해져 있던 내 앞섶을 건드린 거였다.
순간적으로 엉덩이를 뒤로 뺐지만 엄마의 손끝이 분명히 느껴졌다.
민망해 하는 내 앞에 엄마는 손을 내밀어 보였다.
엄마의 손끝에는 퉁퉁 불은 라면 찌꺼기가 집혀져 있었다.
"아무래도 그 추리닝 씻어야겠다..?"
밑을 보니 라면 찌꺼기가 옷 이곳저곳에 짓이겨져 있었다.
나의 얼굴은 더욱 붉어졌을 것이다.
안전부절하는 나의 속내가 엄마에게 들켰을 것이다.
엄마는 약사발을 들고 슬며시 밖으로 나갔다.
추리닝을 벗어 내어놓으라는 뜻이었다.
내가 추리닝을 벗고 입을 것을 찾고 있는데 엄마가 들어왔다.
나는 잽싸게 돌아서서 손으로 앞을 가렸다.
엄마는 겸연쩍게 웃는 것 같았다.
장롱을 뒤져 바지 하나를 꺼내 내밀었다.
그건 고등학교 때 내가 입었던 추리닝이었다.
그때보다 키는 많이 크지 않았으나 몸이 불어서 옷이 몸에 탱탱했다.
그걸 껴입은 내 모습은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특히 아랫도리 중앙 불룩한 모습은 엄마에게 함부로 보일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래서 어쩌지 못해 쩔쩔매고 있는데 엄마는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계속 웃고 있었다.
왠지 그날따라 불룩해진 앞섶이 좀처럼 식지 않았다.
엄마는 걸레로 방을 닦으며 나를 툭툭 쳤다.
그런 장난기 섞인 엄마의 모습을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러다 내 발에 묻은 흙먼지를 보고 빨리 씻고 들어오라고 호통쳤다.
밖으로 쫓겨 나온 나는 마당 한켠에 놓인 대야에 물을 받아 발을 씻었다.
구부린 등에 빗방울이 제법 따끔거렸다.
"이 미련한 놈! 처마 밑으로 와서 씻어야지!"
곧 따라 나온 모양이었다.
엄마는 발을 씻던 대야에 걸레를 담그고 그걸 들고 가버렸다.
마루 앞으로 올라와 멍청히 서 있는 내 앞에 물을 뜬 대야가 다시 놓여졌다.
"아예 몸을 다 씻으려무나! 땀투성이일텐데..."
엄마는 비에 젖은 내 넌닝을 강제로 벗겼다.
아직도 나는 엄마에게 어린 꼬마에 불과한 지도 모른다.
방금 입은 추리닝도 벗어야 했다.
엄마는 양동이에다 물을 떠주고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팬티까지 벗고 물을 뒤집어썼다.
방금까지도 촐랑대던 앞섶이 납작해졌다.
천만다행이었다.
다시 방으로 들어가자면 또 한번 민망한 꼴을 보이게 될지도 모를 상황이었는데..
"등 좀 밀어주랴?"
"아, 아뇨!!"
그 말에 나는 서둘러 몸을 행구고 팬티바람으로 안으로 들어갔다.
방에는 벌써 이불이 깔려 있었다.
어젯밤 그 만큼의 간격은 여전한 채...
엄마는 수건을 건네며 먼저 자리에 누웠다.
그런데 엄마의 얼굴에 아직도 장난끼가 서려 있었다.
반사적으로 내 앞섶을 내려봤는데 이게 어찌된 건지 또 불룩해져 있었다.
나는 수건을 내던지고 후닥닥 이불 속으로 기어들었다.
불이 꺼졌다.
어둠 속에서도 몰래 웃고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제법 지나서야 엄마는 그 장난끼의 속뜻을 내비쳤다.
"네 아버지가 내게 장가온 나이가 딱 네 나이 때지. 장가든 지 두 달만에 군에 갔으니까..."
그 때가 생각나서 장난끼가 발동했다는 말 같았다.
밖에서는 거친 바람소리와 함께 본격적으로 비를 따르기 시작했다.
간간이 번개와 천둥도 쳤다.
은근히 그 텐트족이 걱정되었다.
"소낙비겠지? 금방 그치겠죠...?"
"왜 폭포 밑에다 사발이라도 놓고 왔니?"
"아뇨! 그냥..."
집에 올 때면 폭포 밑에다 사발을 놓아 고기를 잡아오곤 하던 나였다.
엄마는 내가 사발로 잡아오는 고기로 매운탕을 정말 잘 끓였다.
집앞 담 밑에 지천으로 늘린 방아잎이 그 맛을 한껏 돋구는 요즘인 것이다.
"내일은 사발을 들고 가 고기를 좀 잡아야겠네..!"
"그러려무나! 많이 올 비는 아닌 것 같으니..."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아무래도 너무 일찍 잠자리에 든 것 같았다.
"테레비 볼래?"
"그래요!"
엄마도 잠이 안 오는 모양이었다.
TV에서는 9시 뉴스가 끝나고 시사대담 프로가 시작되고 있었다.
엄마는 영 관심이 없는 듯 돌아누워 버렸다.
딱한 엄마를 생각하여 내가 채널을 돌리자 한 곳에서 개그 프로가 진행되고 있었다.
엄마가 다시 얼굴을 돌렸지만 얼마 못 가 눈을 감아 버렸다.
개그 진행자의 노골적인 성 표현에 민망해졌던 모양이었다.
넌지시 본 엄마의 옆얼굴은 발갛게 달아 있었다.
내 나이 때에 장가를 왔다는 아버지 앞에서도 저랬을까?
엄마는 지금 그때를 떠올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직도 TV 위쪽 벽에는 아버지와 엄마의 결혼사진이 든 기다란 액자가 걸려 있다.
흑백사진으로 빛도 바래어 이제 누렇게 변해버렸건만 엄마는 아직도 그 사진을 내려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다른 사진도 함께 들어 있다.
나 어릴 때의 사진들.. 그리고 외삼촌과 외할머니를 포함한 동네 분들이 함께 찍은 사진들이 빼곡이 들어 있지만 가장 오래 된 듯한 그 누런 사진이 맨 중앙에 자리잡고 있다.
대부분 여자들의 삶이 그렇듯 엄마도 아버지가 영원한 신(神)이었을 것이다.
남자는 여자를 단순한 내조자로 맞아들이지만, 여자는 남자를 신으로 봉양하며 사는 게 오랜 우리의 정서이다.
아직 그 사진을 빼내지 못하는 것을 보면 내 엄마도 오랜 풍습으로 묶인 보수적 여자라는 증거일 것이다.
도시에선 바람난 여자가 그녀의 정부와 모의하여 남편을 죽이기도 하고, 남편이 사고라도 당하여 죽게 되면 그 시신이 식기도 전에 보상금 받아들고 재빨리 팔자를 고쳐버리는 요지경의 세상이라지만 이곳에선 아직 봉건적 유교사상이 지배하는 조선시대를 살고 있다.
여자가 팔자를 고친다는 것은 신을 배반하는 짓이라 여기는 것이다.
나는 슬며시 TV를 껐다.
엄마는 미동 없이 누워만 계셨다.
밖에선 벌써 비가 그친 건지 바람소리도 잠잠했다.
소낙비 그친 이곳의 밤하늘을 나는 잘 안다.
허연 구름이 산등성이를 넘어가면 언제 그랬냐는 둥 하늘엔 샛노란 별들이 촘촘히 얼굴을 내민다.
산골에서의 밤하늘은 이때가 가장 아름다운 것이다.
그들도 그 사실을 알까?
텐트의 문을 열고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을까?
"너 아직 없니?"
갑작스런 그 물음을 나는 제대로 알아듣지를 못했다.
"뭐요?"
"사귀는 여자 없냐고..?"
"곧 군에 가야 하는데..."
"그러니 엄마가 묻는 거지..?"
나는 엄마의 말뜻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엄마는 눈을 뜨고 천장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돌려 나를 한번 힐끔 보고는 다시 얼굴을 돌렸다.
"네 아버지가 군에 갈 때는 전쟁시절이라 여자가 있어야 악착같이 살아 돌아온다고 다들 서둘러 결혼을 시켜 보냈었지.."
아버지도 그래서 엄마와 서둘러 결혼했다는 말 같았다.
당시 나이로 보면 결코 이른 나이도 아니었을 텐데...
그리고 그 말은 엄마도 나를 결혼시켜서 군에 보내고 싶다는 말 같기도 했다.
엄마의 시선이 사진 액자로 가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그 액자 속의 사진이 제대로 보이는 걸까?
무얼 생각하고 계시는 걸까?
정말 나를 장가들여 군에 보내야 하는데.. 하고 생각하는 걸까?
"내일 저 사진들 내려야겠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나는 고개를 엄마 쪽으로 돌리고 엄마의 표정을 살폈다.
엄마의 시선이 내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사진인들 피곤하지 않겠니? 저렇게 10년 이상 매달려 있었으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버지 사진이 들어 있는데..."
엄마는 대답대신 눈을 감아버렸다.
10년이란 세월이 너무 길었다는 말 같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의 말뜻을 제대로 헤아리기는 힘들었다.
엄마는 잠시 눈을 떠 빤히 쳐다보고 있는 나를 처연히 바라보다가 다시 눈을 감아 버렸다.
어둠 속이지만 눈가에 난 잔주름들이 죄다 보였다.
"엄마!"
"왜?"
"외할머니가 얘기하신 그 남자 만나 본적 없어요?"
"얘는..!"
지난번 이곳에 들러 엄마와 함께 외할머니를 뵈러 갔을 때 외할머니께서 그 얘기를 꺼낸 적이 있었다.
시내에서 연탄공장을 하는 남자라 했다.
나이는 올해 쉰으로 상처한지 2년이 지났고, 자식들은 모두 출가시켰다고 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 자리에서 완강히 거부했다.
내가 함께 있어서 그랬을 지도 모른다.
"내가 한번 만나 볼까요?"
"쓸데없는 소리하네!"
엄마의 목소리에는 역정이 묻어 있었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완강한 거부의 몸짓을 내게 보이려는 듯 돌아누워 버렸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엉뚱한 방향으로 내달리고 있었다.
방금 내게 여자가 없냐고 물은 것과 벽에 걸린 사진들을 내려야겠다고 한 말이 같은 맥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내게서 정을 뗄 준비를 하고 있다고...
더 구체적으로 얘기하면 은근히 그 남자에게 끌리고 있는지도...
나 몰래 이미 그 남자를 만나 봤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런 생각까지 들자 내 마음이 갑자기 씁쓸해져왔다.
왠지...?
오랜 청상으로 지내는 어미에게 좋은 남자가 생기면 크게 반기며 앞서서 끈을 이어주는 게 요즘 자식들의 풍습이고 또한 도리로 여기는 시류이건만 나는 아직 마음이 안 열린 걸까?
엄마 옆에 다른 남자가 누워 있는 상상은 하기도 싫은 솔직히 괴로운 고민이었다.
그런 씁쓸한 딜레마에 빠져있는 내 귀에 엄마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휴...!!
그 소리에 나는 이불을 밀고 엄마 곁으로 기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