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의 말을 오해하기 전까지는 이 상황조차도 두 번 다시 없을 것 같았기에
이 상황에 녹아 드는 것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샤워 꼭지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가 멈췄다.
그 순간 담뱃불이 타 들어가듯이 몸이 빠르게 달구어졌다.
가슴에서부터 천천히 손을 쓸어 내려 굴곡진 복근을 지나 그 어느 곳보다 뜨겁게 달구어진 페니스를 잡았다.
열 감지 카메라로 본다면 이미 박자를 잃은 심장보다 더 붉게 보여지지 않을까?
귀두 끝엔 어느새 애액이 방울 져 맺혀있었다.
오일을 바르듯 검지 손가락으로 귀두 전체에 펴 발랐다.
오래 지나지 않아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가라앉은 누나의 음성.
대답할 틈도 없이 목구멍으로 마른 침이 넘어갔다.
“혹시 누나가 이러는 거 부담스럽진 않니?”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아니, 내가 너무 들이대는 건 아닌가 싶어서.”
“제가 먼저 그렇게 물었다면 누난 어떻게 대답했을까요?”
“그래도, 혹시나 해서.”
“누나, 누나 같은 사람이랑 이럴 수 있다는 건 모든 남자들의 로망일 거에요.”
“정말?”
“전 이게 무슨 복일까 싶거든요. 그러니까 앞으론 그런 말 하지 마세요.”
“나도 그래, 다른 사람도 아닌 재진이 너여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정말 무슨 복일까?”
“우리 지금 그런 이야기 꽃 피울 때가 아니지 않나요? 분위기 깨질라고 하는데……”
“아…… 맞다. 미안.”
잠시 침묵이 흘렀다. 어떻게 분위기를 잡아야 할지, 무슨 말이 적당할지 떠오르지가 않았다.
수화기 너머로는 누나의 얕은 숨소리만 전해져 왔다.
“누나, 정말 제 시험 끝나기를 기다렸던 거에요?”
“응.”
“그럼 하고 싶은 날 있었어요?”
“응, 니 번호 눌렀다가 그냥 끊어버린 적도 있었어. 그래서 더 기다려졌나 봐.”
“누나 지금 다 벗고 있어요?”
“아니.”
“어차피 벗을 거 아니에요?”
“그렇긴 한데, 네가 내 앞에 있다고 생각하면 다 벗고 있는 거보다 살짝 걸친 게 더 야할 것 같아서.”
“오~ 궁금해진다. 뭐 입고 있는데요?”
“창피해.”
“제가 누나 앞에 있다고 생각하고 입은 거라면서요. 그럼 제가 알아야 같이 호흡하죠.”
“음……”
“빨리 말해봐요.”
“위에는 브라 대신 코르셋 입었고 밑에는 끈으로 된 팬티.”
“코르셋이라고 하면 레이스 많고 갈비뼈 쪽까지 다 감싸는 거요? 가슴 쪽은 끈으로 조이는 그거?”
“응, 근데 레이스가 많진 않아.”
“아~~ 그거 진짜 남자의 로망인데. 정말 보고 싶다.”
“내일 나 출근하고 나면 내 방에 와서 봐.”
“입은 걸 보고 싶다는 거죠.”
“음…… 언젠간 때가 오겠지?”
“그럼 팬티는요? 끈으로 되어있다는 게 무슨 말이에요. 천은 없고 끈으로만?”
“아니, 연결부위만 끈으로 되어있다고. 왼쪽 골반에서 리본매듭 했는데 살짝 당기면 다 풀어져.”
“입고 다니면 안 풀어져요?”
“아마 그러지 않을까? 입고 다니지 않아서 모르겠네.”
“입고 다니지도 않을 걸 왜 샀어요?”
“미국에 있을 때 섹시샵에서 재미로 산 거야. 그러고 보니 천 조각도 얼마 안 붙어 있네.”
“앞, 뒤 살짝?”
“응.”
“누나 85 C 죠?”
“어떻게 알았어?”
“어쩌다 보니 대충 봐도 사이즈 나오더라고요.”
“정말 대충 본 거 맞아?”
“하하, 근데 누나 코르셋 입으면 가슴이 위로 밀려 올라가죠?”
“아무래도 그렇지.”
“지금 코르셋 라인 위로 가슴이 넘칠 듯 하겠네요?”
“응. 이건 깊이 파인 거라 가슴이 라인 위에 반쯤 걸쳐져 있는 것 같아.”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누나의 넘칠듯한 가슴이 눈 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순간 강하게 펌핑하는 심장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듯 했다.
“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현기증 나는데요.”
“흥분돼?”
“흥분이야 벌써 했죠.”
“얼마만큼?”
“아까 누나가 택시에서 제 꺼 만졌을 때만큼요. 그 때 어땠어요?”
“손바닥에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지던데.”
“그리고요?”
“크고 묵직하다는 느낌? 솔직히 꺼내서 빨아보고 싶었어.”
“아~ 그 말 굉장히 자극적이에요.”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그랬어, 근데 내가 만졌을 때 재진인 좋았어?”
“정신이 반쯤 나가버리던데요. 특히 손가락으로 버섯 밑을 긁을 때…… 조금만 더했음 사정했을지도 몰라요. 정말로.”
“다시 만져보고 싶다.”
“이제 막 꿈틀거려요.”
“정말로 빨고 싶어. 재진이 자지. 하~~”
“빨아 주세요. 혀끝으로 버섯 아랫부분을.”
수화기 너머로 거칠어진 숨소리와 쪽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만으로도 자기의 손가락을 내 페니스라 여기고 혀를 날름거리는 모습이 눈에 선하게 떠올랐다.
“재진아 클리 만져줘!”
“누나, 다리 조금만 벌려주세요.”
“벌렸어.”
“한쪽 가슴만 코르셋 바깥으로 꺼내세요.”
“오른쪽 젖꼭지 이미 코르셋 바깥으로 나와있어.”
“그 젖꼭지 빨면서 클리 애무해드릴게요. 자, 시작할게요.”
“아……”
기다렸다는 듯이 새어 나오는 짧고 강한 신음소리가 밤의 적막을 흔들었다.
나의 영혼은 어느새 벽을 뚫고 누나의 방으로 넘어가 누나 옆에 가로 누워있었다.
코르셋 위로 흘러나온 젖꼭지를 천천히 핥아가며 한 손으론 그녀의 클리를 가볍게 비볐다.
“나 누나 보지에 키스하고 싶어요.”
“그런 말…… 너무 자극적이야.”
“누나 내 위로 올라와서 페니스 빨아주세요. 전 누나 보지 빨게요.”
“아~~ 이 포즈 너무 야해. 재진이 자지 너무 섹시해.”
보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누나는 내가 원하는 자세를 잡고선 내 자지를 빠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것이다.
실상은 자신의 클리를 애무하고 있을 테지만.
수화기 너머로 연신 터져 나오는 그녀의 신음소리는 나를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재진아 나 어떡해…… 벌써 물이 사타구니까지 다 번졌어.”
“들려주세요.”
곧바로 수화기에서 지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말 줄줄 흐르는 건지 미세하게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그 소리에 반응을 한 건지 귀두 틈에서 애액이 주르륵 흘러 페니스를 잡고 흔들던 손이 다 젖어버렸다.
이렇게 많은 양은 나도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사정을 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손을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봤다.
정액이 아니었다.
한층 뜨거워진 페니스를 잡고 다시 움직이자 질컥거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누나 나도 들려줄게요.”
질컥거리는 소리가 아무런 잡음 없이 전해지길 바랬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이 소리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더도 말고 내가 느꼈던 황홀경만큼만 느껴주기를.
“아~~ 재진아… 재진이 빳빳한 자지 내 보지에 넣고 싶어.”
“누나.. 나도 누나의 뜨거운 보지에 쑤시고 싶어요.”
“나.. 못 참겠어. 손가락 넣고 싶어.”
“그럼 아프잖아요.”
“그래도 도저히 못 참겠어. 넣고 싶어. 재진아 박아줘! 아~~~~”
내가 무슨 말 할 사이도 없이 누나는 손가락을 넣었나 보다.
단발마의 신음이 긴 여운을 남기며 토해졌다.
“누나 엎드려요. 뒤에서 박아줄게요.”
“엎드렸어.”
“자~ 들어가요.”
“얼른 쑤셔줘.”
나는 무릎을 꿇고 앉아 손을 동그랗게 말아 쥐고 누나의 보지에다 박는 것처럼 허리를 앞뒤로 움직였다.
그 느낌이 진짜 삽입한 것만큼 하겠냐 만은
감은 눈 앞에 펼쳐지는 영상은 이 모든 것이 현실인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더 이상 누나를 흥분시키기 위한 멘트는 없었다.
그 때부터 쏟아냈던 신음과 요구들은 모두 나 자신이 원하는 것이었다.
몇 번의 사정 타임이 있었지만 그마저도 누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금이라도 더 이어가고 싶은 내 마음이 사정의 욕구를 밀어낸 것이었다.
“재진아… 나 더 못 참겠어.”
“누나 그럼 똑바로 누워요.”
“응.”
“우리 키스해요. 혀 내밀어 주세요.”
“재진이 혀 너무 달콤해.”
“누나 다리 쫙 벌려요.”
“벌렸어. 박아줘!”
“누나…… 이제 더 참지 않아도 되요. 느끼세요.”
서로의 목소리 하나에 의존해 하는 섹스였지만 이제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서로가 얼마나 몰입되어있는지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이미 우리는 하나로 뒤엉켜 끝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아~~~~~ 재진아……”
“누나… 으…”
사정의 욕구를 여러 번 참았던 탓일까? 정액이 가슴 위까지 뿜어졌다.
그리고 힘이 얼마나 들어갔는지 돌처럼 굳어진 근육 때문에 혈관이 다 막혀버리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눈이 떠지질 않았다.
엎어져 있는 몸을 바로 누이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되질 않았다.
시험준비로 쌓였던 피로, 어제 마신 술,
거기에다 혼신을 다한 누나와의 폰섹으로 육신의 모든 기가 다 빠져 나가버린 것만 같았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어쩌면 그 상태로 얕은 수면과 제정신의 경계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을지도 모르겠다.
피로가 조금은 가셨는지 눈꺼풀이 스르르 올라갔다.
하지만 창으로 들어오는 강한 빛에 이내 감기고 말았다.
딱히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도 없고 해서 눈을 감은 채 몸을 일으켰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이지만 무겁기는 말로 표현이 안될 정도였다.
정말이지 발이 지면을 떼지 못하고 바닥을 쓸면서 거실로 나갔다.
한쪽 눈을 힘겹게 뜨며 냉장고를 열었다.
그리고 머리를 냉장고 속으로 집어 넣었다.
겨우 양쪽 눈을 다 떴지만 그 이상은 도움이 되질 않았다.
미리 타둔 냉커피를 꺼내 컵에 따르고 담배 한 개피와 라이터를 챙겨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 끝에서 피어 오르는 연기와 내 입에서 뿜어지는 연기가 허공에서 뒤섞였다.
어젯밤의 누나와 나의 욕정도 그렇게 하나가 되었겠지 하는 생각에 묘하고도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그러나 어젯밤을 회상하기엔 담배 한 까치의 길이는 너무 짧았다.
「재진아 누나가 늦잠 자는 바람에 아침도 못 챙겨주고 출근해.
미안해서 어쩌지? 대신 오늘 일찍 들어와서 저녁 맛있는 거 해 줄게.
특별히 먹고 싶은 거 있음 문자 남겨줘!」
빈 컵을 싱크대로 가져가다 식탁 위에 누나가 남겨놓은 쪽지를 발견했다.
문자로 남겨도 될 것이었지만 혹시나 내 잠을 방해할까 싶어 그랬을 터였다.
아주 작은 것 하나도 세심하게 신경 써주는 배려심 많은 여자, 누나는 그런 사람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니 비로소 정신이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그제서야 뱃가죽이 등에 붙을 정도로 심한 허기가 느껴졌다.
여전히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그릇에 밥을 가득 퍼 담았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어 장조림, 간장에 조린 콩, 두부 부쳐놓은 것을 꺼냈다.
지금 내 몸에서 무엇보다 필요한 것이 단백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던가 보다.
참치 캔도 하나 따서 식탁에 올렸다.
의자에 앉을 생각도 못했고 맛을 음미할 틈도 없었다.
쉴새 없이 밀어 넣는 통에 목구멍에선 식도와 기도를 때맞춰 여는 것이 고역이었을 것이다.
봄은 춘곤증을 데리고 이미 보이지도 않을 만큼 달아나버렸지만
식사 후 포만감 뒤를 쫓는 나른함은 눈꺼풀을 무겁게 만들었다.
눈을 뜨자 30여분이 지나있었다.
짧은 낮잠이었지만 정신은 말도 못하게 상쾌했고
육체도 기를 되찾았는지 아랫도리는 욱신거릴 정도로 묵직해져 있었다.
어쩌면 단잠을 깨운 것은 빳빳해진 페니스를 본능적으로 소파에 비비적거리던 와중에
정신이 들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잠에서 깼을 때 자연 발기된 상태로 하는 섹스가 가장 좋다는 말을 어디서 주워들었지만
그것이 자위라고 하더라도 이제 홀로 하는 건 싫었다.
하지만 그 야릇한 기분을 그대로 가라앉히는 것도 뭔가 아쉬웠다.
때마침 머리 속에서 어제 누나가 입고 있었을 속옷이 떠올랐다.
홀린 듯 누나의 방문을 열었다.
거실과는 또 다른 향기, 화장품 냄새가 섞인 누나 고유의 향이
코 속에 퍼질 무렵 침대 위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코르셋과 팬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옆에 앉아 코르셋을 들었다.
생각과는 달리 거의 모든 부분이 붉은색 망사로 되어있었고
가슴부분은 누나 말대로 꽤나 깊이 패여 가슴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아래서 살짝 받쳐주는 정도로 보였다.
라인을 따라 전체적으로 가죽이 덧대어져 있었지만
앞쪽 끈 매듭을 꽉 조이면 어디라도 튿어져 버릴 것 같이 약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생각보다 훨씬 도발적이고도 야하게 느껴졌다.
팬티를 집어 들었을 땐 누나가 왜 입고 다니지 않았는지 바로 이해가 될 정도였다.
천이라곤 거의 질과 항문을 살짝 가리는 수준이고 나머지는 모조리 끈으로 되어있는 것이 너무나 도발적이었다.
나를 위해 입었다고는 하나 그 모습을 보여줄 것도 아닌데 굳이 이렇게도 야한 걸 입은 이유는 무엇일까?
자기 스스로 몰입하는데 더 효과적이었던 것일까?
궁금증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누나가 이 상황에 빠져들고 있다는 증거였기에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누나의 팬티 안쪽에 애액 마른 자국이 선명했다.
코 앞에 가져가 봤지만 그 어떤 냄새도 나지 않았다.
이번엔 누나의 애액이 묻은 그 곳에 맞춰 벌겋게 닳아 오른 내 페니스를 살짝 감싸봤다.
솔직히 전해지는 감촉이야 다른 천 조각과 무엇이 다르겠냐 만
누나의 그곳이 닿았던 곳에 내 것이 닿는다는 그 일치감은 흥분을 더하기에 충분하고도 남았다.
야릇한 기분에 취해 나도 모르게 손이 앞뒤로 움직여졌다.
곧 애액이 흘러나와 누나의 애액으로 젖었던 그 곳을 또다시 적셨다.
점점 누나와 내가 하나가 되어가는 듯 느껴졌다.
혼자 자위하려는 마음은 없었는데 내 의지로는 멈출 수가 없게 되었다.
눈은 이미 감겼고 황홀한 기분이 벌거벗은 내 육신을 감쌌다.
손놀림도 더욱 격렬해져 갔다.
그 때 거실 소파 위에 나뒹굴던 핸드폰에서 요란한 착신 음이 들렸다.
이런 걸 두고 산통 깬다는 표현을 하나?
어디론가 한없이 빨려 들어가다 갑자기 딱 멈춰선 느낌이었다.
전화를 받지 않으면 그치지 않을 것 같은 착신 음을 멈추려 거실로 나갔다.
핸드폰 LCD에 표시된 발신자, 이 모든 것을 멈추게 한 사람은 다름 아닌 수진이 누나였다.
“자는 거 깨운 거 아니니?”
“아니에요.”
“목소리 잠겨 있는 보니 자다 깬 거 맞네!”
“아뇨. 씻고 밥 먹고 TV보고 있었어요.”
“그랬어? 반찬이 별로 없었을 텐데……”
“없긴요. 동물성, 식물성 단백질 반찬이 가득 인데요.”
“찌게도 없었잖아.”
“그럼 오늘 김치찌개 끓여주세요.”
“그래, 니가 좋아하는 두부랑 돼지고기 넣고 맛있게 끓여줄게.”
“네. 기대할게요. 그럼 저녁에 봐요.”
“벌써 끊으려고?”
“점심시간도 끝났는데 안 바빠요?”
“응, 기말고사 끝난 애들이 많아서 그런지 학교가 썰렁하네.”
“연구소는 시험이랑 상관 없이 돌아가잖아요.”
“그렇긴 한데 오늘은 담당 교수님 서울 가셔서 연구원들도 다들 어디서 숨어있는지 조용해.”
“그럼 누나 혼자 연구실에 있는 거에요?”
“응. 연구실에 있다가 창고에 왔어.”
“창고요?”
“응. 우리 기자재 보관하는 창고.”
“거긴 왜요?”
“그러게? 누나가 여기 왜 왔을까?”
“그건 제가 모르죠.”
“정말 몰라?”
“네?”
“나 재진이 잡아 먹으러 온 거야.”
“절 잡아 먹으려면 집으로 왔어야죠. 하하하.”
“바보!”
“하하하. 어떻게 잡아 먹을 건데요?”
“농담 같니? 나 농담 아닌데……”
“거기 창고라면서요?”
“창고에서 하는 건 싫어? 난 여기 창고 혼자 들어올 때마다 기분이 좀 묘하던데.”
“그래요?”
“넌 지은이랑 주차장에서도 했었다며? 싫었어?”
“아뇨…… 색달랐죠. 그리고 저도 창고 같은 데서 하는 거 상상해요. 다만 여자들은 그런 데서 하는 거 안 좋아하는 줄 알았죠.”
“여자라고 다를 게 뭐 있어. 똑같지.”
“근데, 누가 들어오면 어떡해요?”
“들어오라지.”
“그러다 누나 덮치면 어쩌려고요?”
“그럼 당해주는 척하면서 나도 즐기면 되지.”
“진짜요?”
“걱정하지마 문 잠궜으니까.”
잠시 침묵이 흘렀다.
수화기로 들리진 않았지만 누나도 나와 같이 마른침을 삼키진 않았을는지.
“재진아 누나 뭐 입고 있을 것 같아?”
“혹시.. 다 벗으셨어요?”
“아니. 오늘 누나가 뭐 입고 나왔을 거 같냐고.”
“음……”
도대체 뭘 입고 갔길래 그리 물어오는 것일까?
특별한 것을 입었다면 아침부터 이미 계획이 있었던 것일까? 늦잠으로 정신 없이 나갔을 텐데……
“바보야, 그냥 평범하게 생각해. 내가 뭘 입었는지 알아야 니가 상상할 거 아냐.”
“아~~ 그 말이었어요?”
“그래. 너 자꾸 분위기 못 맞추면 앞으론……”
“앞으론?”
“음…… 맛있는 거 안 해줄 거야.”
다른 말은 잘 이해를 못했지만 그 말이 가진 의미는 알 것 같았다.
이제 불붙었는데 여기 와서 누나가 먼저 그만두는 일은 없다 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 동안은 내가 너무 앞서간다는 느낌이었는데
지금은 누나가 이 관계에 더 집착한다는 걸 깨닫고 나니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그제서야 눈을 감고 평소 누나가 출근하던 모습을 떠올렸다.
“옅은 회색 A라인 스커트에 스트랩으로 된 힐 그리고 슬림한 흰색 블라우스.”
“그럼 헤어스타일은?”
“포니 테일?”
“아침엔 그러고 왔는데, 지금은 틀어 올려서 펜을 비녀처럼 꽂았어.”
“그럼 헤어스타일 말고는 제가 말한 게 다 맞아요?”
“응 맞아. 근데……”
“근데,, 뭐요?”
“음…… 스커트랑 블라우스는 벗고 속옷 위에 연구 복만 입고 있어.”
“의사들이 입는 흰색 가운 같은 거요?”
“응.”
“우어~”
누나는 그런 연출이 남성을 자극한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내가 아는 누나는 분명 포르노를 보는 사람도 아니었고 남자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니었다.
서른도 안된 나이에 지금 그 위치까지 오르기 위해선 하루 24시간도 부족했을 터인데,
스스로 그런 걸 깨닫지 않고서야.
“누나, 남자들이 그런 설정 좋아하는 거 알고 있었어요?”
“아니, 몰랐어. 근데 남자들도 이런 거 좋아해?”
“그럼요. 그런 게 다 로망이라니까요.”
“난 그냥…… 내가 이런 모습으로 있다는 자체가.”
“그런 누나 모습에 누나 스스로가 더 흥분된다는 거에요?”
“응.”
그래, 이런 건 누가 가르쳐 주어야만 아는 것이 아니다.
평생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섹스의 유희를 맛보고
다시 그것을 억누르고 살아야 했을 누나는 상상으로 그 욕구를 대체했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욕구를 분출하는 사람들보다 더 많은 설정을 머리 속에 그릴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그렇게 혼자 상상하는 것에 더 익숙하지 않았을까?
그래서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본인에게 더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을까?
누나는 또래들이 누리던 즐거움과 본능을 포기해야 하는 엘리트 삶을 철저히 밟아 나가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