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화 (13/17)

그 삶에 약간 지쳤을 무렵 남자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 것이다. 

나는 한 때 누나 같은 사람이 외적 매력도 별로 없다던 유부남과 첫 관계를 가지고 

섹스의 유희를 즐겼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건 섹스의 유희가 아니라 

사랑을 확인하던 수단이었다는 걸 알았다. 

사랑에 대해 몰랐던 나로써는 모든 남녀관계가 섹스에 초점이 맞춰줘 있어 누나를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정도의 경험과 연륜이 있었기 때문에 누나가 기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다시 말해 누나의 삶에 틈이 생겼지만 그 자리는 외형적인 매력이 메울 수 있는 게 아니라 

지적으로 포용할 수 있는 능력만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제서야 젊은 여자들이 나이든 남자들에게, 심지어 가정이 있는 남자들에게도 

목숨을 걸고 매달리는 드라마와 같은 일들이 사실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 유부남과 누나 사이에 육체적인 교감이 없었다면 어찌되었을까? 

그 유부남이 섹스에 젬병이었다면? 

아마도 누나는 정신적인 교감에만 초점을 맞추고 

육체적인 교감은 저급한 걸로 매도하는 사람이 되어있지 않았을까? 

아무튼 본능에 눈을 뜨지 못했다면 오늘과 같은 이런 일은 없었겠지.

“저 사실 누나 방에서 누나가 입었던 코르셋하고 팬티 보고 있었어요.”

“정말?”

“네, 완전 섹시하던데요.”

“창피하게……”

“어제 누나 물 많이 나왔던가 봐요. 팬티 보니까 자국이……”

“그만해. 진짜 창피하단 말이야.”

“창피하긴요. 그거보고 완전 흥분해서 나도 모르게 그걸로 제 페니스를 감싸고……”

“진짜? 안 더러워?”

“누나랑 간접적으로 거기가 닿는다는 생각하니까 뿅 가던데요.”

“그럼 내 전화 받기 전까지 내 방에서 그러고 있었던 거야?”

“네, 누나가 전화 안 했으면 누나 팬티 위에 사정했을 거에요.”

“그냥 보기만 한 게 아니고 자위했었어?”

“첨엔 그냥 보기만 하려 했는데 누나 팬티로 제 페니스 감싸니까 손이 저절로 움직이더라고요.”

“그럼 재진이 지금 바지 벗고 있어?”

“바지만 벗고 있는 게 아니라 다 벗고 있어요. 일어나서부터 아무것도 안 입고 있었어요.”

“그럼 어제 입었던 청바지랑 남방 아무거나 입어줄래?”

난 누나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옷을 입고 자기한테 오라는 건지, 무슨 심부름을 시키려 하는 건지, 너무 갑작스런 요구였다.

“네?”

“속옷은 입지 않아도 되니까 그렇게만 입어줘.”

“아.. 네.”

여전히 누나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한 채 방으로 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었다.

“셔츠 단추는 잠그지 않아도 돼. 다 입으면 내 방으로 가.”

그제서야 뭔가 잡히는 것이 있었다. 

아마도 누나는 어떤 스토리를 머리 속에 그리고 있는 듯 했다. 

도대체 무엇일까? 누나가 풀어낼 그 설정과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묻지도 보채지도 않고 두고 볼 심산이었다.

“누나 방에 왔어요.”

“문 잠궈.”

“네. 잠궜어요.”

“이제 내 방이 여기 창고라고 생각해줘. 그럼 너랑 나랑 같은 공간에 있는 거야.”

“네.”

“내가 어떻게 하고 있으면 섹시할 것 같아?”

“누나 가운 길이가 얼마나 되요?”

“허벅지 중간 정도?”

“그럼 제가 보는 방향으로 등을 돌리시고 허리를 숙이세요. 가운 아랫단은 허리 위로 올리시고요.”

“잠깐만……”

“자세가 불편하세요?”

“응. 잠시만 있어봐.”

“네.”

“그냥 탁자에 엎드렸어. 가운도 안 내려가고 이게 더 편하네.”

“그럼 팔을 다리 사이로 뻗어서 클리 만져보세요.”

“뒤에서 보면 제대로 안보일 텐데 팬티 내릴까?”

“그럼 그렇게 해주세요.”

“뒤에 거울이 있어서 내 모습이 보여.”

“어때요?”

“아…… 몰라…… 기분이 이상해. 재진이 네가 보고 있는 것 같아서 더 흥분돼.”

“그럼 더 섹시하게, 제가 완전 넋이 나가게 해보세요.”

그 때부터 누나는 말이 없었다. 옅은 신음 소리와 불안정한 호흡 소리만 전해질 뿐이었다. 

하지만 감은 눈 앞에 지금 누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풀린 동공, 벌어진 입술, 탐스런 엉덩이부터 허벅지, 종아리, 발목으로 이어지는 뒤 라인.

어쩌면 누나는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더 취해버린 건지도 몰랐다.

“아~~ 재진아 나 미칠 것 같아. 나 좀 어떻게 해줘!”

“누나, 몸을 돌려서 탁자에 기대앉아요.”

“응.”

“다리는 좀 벌리고 가운 앞 단추 풀어요.”

“풀었어.”

“이제 브래지어 위로 한 쪽 가슴 빼세요. 제가 빨아드릴게요.”

“아~~~.”

나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누나의 젖꼭지 빠는 소리를 만들어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 몰입해 있는 누나의 귀에 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였다.

“재진아 너무 좋아. 오른쪽 젖꼭지는 손가락으로 긁어줘.”

“긁고 있어요.”

“조금만 더 세게. 그리고 젖꼭지 이빨로 살짝 깨물어줘.”

“누나. 거울에 비친 모습에서 시선 떼지 마세요.”

“나 정말 미친 것 같아.”

“누나, 이번엔 제가 누나 다리 사이에 무릎 꿇고 앉아서 클리 빨아드릴게요.”

“잠깐만……”

수화기 너머로 의자 끄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

“나 한쪽 다리 의자에 올렸어.”

“그러니까 누나 다리가 더 많이 벌어지네요.”

“응. 어서 빨아줘.”

“누나 물 많이 나왔어요?”

“응. 들려줄까?”

“네.”

곧바로 수화기를 타고 치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만으로도 사타구니 주위를 적실 만큼이나 많은 애액이 흐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때는 정말로 그 가랑이 사이에 얼굴을 쳐 박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 누나 물이 제 양쪽 볼에 다 묻었네요.”

“미안…… 물이 계속 나와. 어떡해!”

“아니에요. 그게 훨씬 자극적이에요.”

“재진아 이번엔 내가 빨아줄게. 내 책상에 너도 걸터앉아봐.”

“네.”

“남방 단추 하나도 안 채웠지?”

“네. 그냥 걸치고만 있어요.”

“자, 내 손이 남방 사이로 들어가서 재진이 가슴에 머물렀어. 재진이 젖꼭지 만져줄게.”

정말 누나는 허공에다 대고 내가 있는 것처럼 손을 움직이고 있을까? 아닐 것이다. 

손은 자신의 몸을 만지면서 감은 눈 앞에 내게 설명하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겠지. 

어쩌면 그것조차도 나를 흥분시키는 것보다 누나 자신이 더 흥분하는 소스가 될지도 모르지.

“키스해줘!”

“네.”

“달콤해!”

“저도요.”

“이제 재진이가 입고 있는 남방을 어깨아래로 내렸어. 그리고 입술로 재진이 젖꼭지 물고 그 사이로 혀가 움직이면서 젖꼭지를 애무하고 있어. 한 손으론 다른 젖꼭지 쥐고 있어.”

“아~ 너무 리얼해요.”

“내가 다시 몸을 세우고 재진이 입술을 덮쳤어. 그리고 양손을 아래로 내려서 재진이 허리띠를 풀고 단추를 끄르고 지퍼를 내렸어.”

“지퍼 안에 뭐가 있어요?”

“잔뜩 발기된 재진이 자지.”

“어떤데요?”

“위로 향해있어. 크고 딱딱하고 뜨거워. 빨고 싶어.”

“빨기 전에 손으로 부드럽게 만져주세요. 귀두 아랫부분, 택시 안에서 만지던 것처럼요. 그리고 다시 젖꼭지 빨아주세요.”

“응, 하고 있어. 기분 좋아?”

“네. 야릇해요. 눈이 안 떠질 정도로.”

“재진이 자지에서 물이 나와서 내 손을 적시고 있어.”

“그럼 이제 입으로 빨아주세요.”

“아~ 너무 커.”

자기의 손가락을 내 페니스라 여기고 빨고 있는 것일까? 

춥춥거리는 소리가 너무나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재진아 나 재진이 위에 올라타고 싶어. 그렇게 삽입하고 싶어.”

“네. 제 위로 올라오세요. 대신 누나가 제 자지 잡고 삽입하세요.”

“아~~ 재진이 귀두가 내 보지에 박혔어. 너무 커서 한 번에 못 넣겠어.”

“천천히, 천천히 넣어요.”

“재진아 내 엉덩이 꽉 잡아줘.”

“네.”

“그리고 젖꼭지 깨물어 줘! 아~~ 정말 하는 것 같아. 미치겠어.”

“저도 그래요. 아~~ 제가 박고 싶어요.”

“어떻게 해줄까?”

“뒤로 돌아서 엎드려 주세요. 뒤에서 박고 싶어요.”

“엎드렸어. 깊이 박아줘!”

“박았었어. 자지뿌리까지 다 들어간 거 같아요.”

“아…… 읍!! 빨리, 격렬하게 쑤셔줘!”

“네…… 하고 있어요.”

“아~~ 나 느낄 것 같아.”

“아…… 저도요.”

“재진아…… 거기 있는 내 팬티 위에다 사정해줘!”

“그래도 돼요?”

“응. 제발 그렇게 해줘!”

“네. 지금 누나 팬티로 제 자지 감싸서 움직이고 있어요.”

“아~~~ 나 느껴!!!!”

“으……윽 저도 나.. 와. 요!”

비릿한 밤꽃 향이 누나 방안의 향기로운 냄새를 밀어내며 퍼져갔다. 

고작 12시간 전에 모든 정액을 쏟아버린 줄 알았는데 

어느새 이렇게 많은 양이 만들어진 건지 사방으로 튀었는데도 그 작은 천 조각이 흥건히 젖어버렸다.

그로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평범한 누나와 동생 사이로 돌아가있었다. 

그 어떠한 스킨십조차 없었고 그런 종류의 대화도 없었다. 

누나와 나, 두 사람 다 마치 두 개의 다른 자신을 소유한 것 같이 말이다. 

그것도 궁합이라면 궁합일까? 

아니면 말이 필요 없을 정도인 파트너십이었을까? 

아무튼 설명할 길 없는 그 무언가 때문에 우린 외줄 타는 극도의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냥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진짜로 몸을 섞어 버렸다면 우리의 추억은 평범했겠지. 

어쩌면 우리 둘 다 결국엔 몸을 섞게 될 것이란 걸 알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랬기 때문에 그 과정이 조금은 더 특별하기를 바랬던 건 아닌지, 

어디까지 가게 되는지 두고 볼 심산은 아니었는지, 

무엇이던 간에 충분히 즐겨볼 마음은 아니었는지, 

아마 그것이었지 않을까?

시험 끝난 지 3일째, 아침부터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저녁이 되어서 거세졌다. 

세찬 빗줄기 소리를 들으며 물보라로 뿌옇게 변해버린 창 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사이 몇 모금 빨지도 않은 담배는 저 혼자 필터 바로 앞까지 타 들어가고 있었다. 

‘내가 피우지 않아도 결국엔 이렇게 다 타고 마는구나!’

갑자기 누나가 보고 싶어졌다. 목소리라도 듣고 싶어졌다. 

하지만 전화하기가 어려웠다. 왜일까? 생각해보니 내가 먼저 누나에게 전화를 한 기억이 없었다. 

언제나 기다리기만 했던 것 같다. 

넘어서는 안 되는 경계, 그 이상은 허락되지 않는 인연, 보이진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선, 그 것이 이유였겠지. 뭔가 허전하긴 했지만 애달거나 슬프거나 욕심이 나지는 않았다. 

그저 정체 모를 기분이 들어 기운이 빠진 것이고 결국엔 내리는 빗줄기 탓으로 돌려버렸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보면 빗줄기 탓이 아니었다. 

그 때는 상상도 못했지만 많이 돌아가야 하는 길을 아무 생각 없이 내디디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었다. 

어찌 보면 그 때의 나는 냉정과 열정 사이에 서있었고 운명은 그런 내게 냉정을 선택하도록 강요하고 있었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이성을 선택하도록 몰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띠링.”

핸드폰 문자수신 알림 소리가 울렸다.

<비 오는데 어디 나간 건 아니지? 선물 사갈 테니까 기대하고 있어. ^^>

‘선물? 무슨 날인가?’

해가 뉘엿뉘엿 저물 시간이었지만 거센 비 때문에 밖은 이미 깜깜한 밤이었다. 

환청인지는 몰라도 골목길 사이를 들어오는 자동차 소리가 들리는 듯 했다. 

아닐 수도 있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산을 들고 문을 나섰다. 

역시나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1층 주차장 한 켠에 있는 의자에 앉아 누나를 기다렸다. 

15분 정도 지날 무렵 골목길 사이를 진입하는 자동차 소음이 들렸다. 

이번엔 환청이 아니었다. 그리고 곧 내가 앉아있는 주차장 쪽으로 방향을 트는 흰색 자동차. 

자동차 헤드라이트 빛이 내 눈을 바로 비치는 통에 눈을 제대로 뜰 수가 없었다.

“나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네.”

“아유~ 예쁘기도 해라!”

“안쪽에 주차공간 없을까 봐 우산 들고 나왔는데 자리 있네요.”

“1~20분 지나면 여기 자리 없을 걸.”

“그나저나 무슨 날이에요?”

“그게 무슨 말이야?”

“아까 선물 사온다고 하셔서.”

“아~ 무슨 날이어서가 아니라.”

“무슨 선물인데요?”

“일단 비밀, 밥 먹고 나서 줄게. 어서 들어가자 누나 배고파.”

밖에선 비 오는 소리가, 주방에선 보글보글 된장찌개 끓는 소리가 서로 엇박자를 내고 있었다. 

TV는 켜져 있었으나 누구의 시선도 뺏지 못했고 그 소리조차 엇박자에 어울리지 못한 채 힘을 잃고 있었다. 

누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계란말이를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요리하는 누나의 뒷모습에 취해 멍하게 바라보고만 있었다.

“재진아.”

“……”

“재진아!!”

“……”

“재진아!!!!”

“아.. 네.”

“뭔 생각을 그렇게 골똘히 하는 거야?”

“아니에요. 그냥 멍하게 있었던 거에요. 근데 왜 불렀어요?”

“이제 반찬 꺼내도 되겠다고.”

“네.”

“요즘 들어 정성은 더 쏟는데 음식 맛은 더 안 나네.”

“전 항상 맛있는데요.”

“네 먹성이 좋아서 다행이긴 한데 그래도 좀 미안하네.”

“그런 말 마세요. 혼자 살았음 이런 식사 생각도 못했을 거에요.”

저녁 식사 후 따뜻한 커피 한 잔씩을 들고 베란다로 나갔다. 

베란다 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로 세상이 올록해졌다가 볼록해지기를 반복했다. 

시선을 돌려보니 커피가 아닌 온기를 마시려는 듯 누나의 입술은 커피잔에서 떨어질 줄을 모르고 있었다.

“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는 거야? 내 입에 뭐 묻었어?”

“아뇨, 예뻐서 본 거에요.”

“얘는 뜬금없이.”

“근데, 선물이란 게 뭐에요?”

“아…… 맞다. 깜빡 하고 있었네. 커피 잔 싱크대에 갖다 놓고 소파에 앉아 있어봐.”

“아직 다 마시지도 않았는데요.”

“커피는 또 타면 되고. 얼른 움직이세요.”

소파에 앉기도 전에 누나는 나에게 작은 쇼핑백 하나를 건네주었다. 

흔들림도 무게감도 없는 걸 보니 옷, 그 중에도 속옷인 것 같았다. 

그러나 입구를 막고 있는 스카치테이프를 띄어내자 

그 속에는 타이트한 민소매 티와 아주 짧은 검은색 타이즈가 있었다.

“설마 이걸 저보고 입으라고요?”

“응. 운동복 대신으로.”

“이걸 입고 산을 뛰라고요?”

“얘는…… 이건 집에서 스트레칭 할 때 입으라고 산 거야.”

“그래도 이건……”

“왜 싫어?”

“아니 그런 것보다,,, 이거 여자들이 입는 거 아니에요?”

“남자가 입음 어때서? 어차피 입고 돌아다닐 것도 아닌데. 싫어? 싫으면 관두고.”

신통치 않은 내 반응 때문에 누나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장난이 아니라 정말로 실망한 듯 보였다.

“싫은 건 아니에요. 싸이클 탈 때 이런 거 입잖아요. 그리고 농구 선수들도 유니폼 아래 타이즈 입어요. 다만 길이가 좀 짧은 게 아쉽다는 거죠.”

“그럼 누나가 내일 또 사줄게.”

“하하 아니에요. 생각해보니 스트레칭 할 땐 이게 더 낫겠는데요. 근데 저만 입어요?”

“아니, 내 것도 샀지롱.”

“커플 룩?”

“그런 셈이지. 자 입고 나와. 누나도 입고 나올게.”

솔직히 내키지 않았지만 누나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다. 

탐탁지 못한 얼굴이 되어 티셔츠를 벗고 민소매 티로 갈아입었다. 

상반신에 착 감기는 것이 생각보다 맘에 들었다. 

이런걸 핫팬츠라고 하는 것 같은데 아무튼 타이즈는 여전히 망설여졌지만 도리가 없었다. 

그러나 막상 입고 보니 뭐랄까 재미있다고 해야 하나? 

거울에 비친 모습은 요즘 이종격투기 선수와 같은 느낌도 나고 민망함도 뒤섞여 웃음이 절로 났다.

“다 입었어?”

“네.”

“그럼 나와봐. 누나도 좀 보자.”

“아, 이거 진짜 민망한데……”

“자꾸 그러면 누나 정말 삐진다.”

“알았어요. 나갈게요.”

문을 열고 나간 순간 눈 앞에 서있는 누나 모습에 민망함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내가 입은 것과 똑 같은 타이즈, 가슴 골이 훤히 드러나는 탱크 탑을 입은 누나 모습에 넋을 잃었던 것이다. 

섹시, 도발, 관능적인, 아름다움 등의 수식어로는 표현이 안 되는 

무엇인가가 사고하는 인간으로써의 기능을 가로막았다. 

그런 느낌은 시간이 흐른 후 아주 상급의 레이싱 걸 사진을 볼 때 종종 느낄 수 있었는데 

어쨌든 그 시초는 그 날 누나의 모습이었다.

“재진이 완전 섹시한데.”

“그 말은 누나한테 어울리는 것 같은데요.”

“그래? 나 괜찮아?”

“제가 코피 안 나는 게 신기할 정도로요.”

“예의상 하는 말 인줄은 알지만 기분 좋네.”

“절대로 그냥 하는 말 아니에요.”

“알았어. 하하. 근데 재진이 몸 좋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보니까……”

“좋긴요. 근육 양이 더 늘어야 돼요.”

“아냐, 근육 너무 크면 부담스러워. 난 이 정도가 딱 좋아 보여.”

“확실히 여자가 보는 기준이랑 남자가 보는 기준은 다르네요.”

“그런가? 아무튼 지금이 딱 좋아. 근데 너 속에 팬티 입었구나!”

“네, 안 그럼 완전 민망하죠.”

그 때 누나가 내 귓가로 다가와서 속삭였다.

“나는 안 입었는데!”

“……”

결국 난 방에 한 번 더 갔다 와야 했다. 

그러나 이미 발기해버린 페니스는 어쩐단 말인가? 

애국가도 불러보고 기억에서조차 가물가물한 주기율표, 

조선왕조의 왕 이름들을 열심히 나열해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하늘을 향하게 방향을 잡고 거실로 나왔다. 

다행히 누나는 등을 돌리고 몸을 풀고 있었고 그 사이 얼른 누나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무엇이 나를 그렇게 조심스럽게 만들었을까? 

관객의 입장이라면 이런 나의 모습을 극도로 소심한 혹은 

영 이해하기 힘든 성격의 소유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싶다. 

그러나 그건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착각이 아닐까? 

가령 같이 일하는 한 여인이 평소와는 다르게 가슴 골이 드러날 정도로 깊이 패인 셔츠를 입고 

말을 걸어온다면 시선을 고정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습을 화면으로 보는 입장이 된다면? 

물론 나의 경우는 누나와 평범한 관계는 아니지만 그 때까지는 대놓고 즐기는 관계가 아니었다. 

어쩌다 보니 누나가 이끌고 나는 그 만큼만 따라가는 입장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나는 여느 때와 같은 표정으로 여느 때처럼 몸을 풀고 있었다. 

그래서 나도 여느 때와 같은 나의 모습이 되기를 바랬던 건지도 모르겠다.

절대 쉽지만은 않은 맨손 운동을 반복하며 본능을 잊어갔다. 

누나도 옆에서 내가 짜준 프로그램대로 열심히 하는 중이었다. 

중간중간 이런저런 대화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TV가 그 자리를 메웠다.

어느덧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자신의 체중을 이용해서 하는 반복운동은 기구로 하는 것보다도 지겹고 고통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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