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4/17)

마지막 하 복근 운동은 그 중에도 절정이었다. 

그래도 그것만 하고 나면 끝이라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5세트씩 해냈다.

“오늘 따라 더 힘드네.”

“비 와서 그럴 거에요.”

“왜?”

“비 오면 항상 그렇더라고요. 이론적으로 맞는 건지는 모르겠어요.”

“피~, 빨리 끝내고 씻게 얼른 스트레칭 하는 거나 도와줘.”

누나와 나는 나란히 앉아 양 다리를 쭉 펴고 허리를 숙였다. 

이마가 무릎에 완전히 닿았을 때 천천히 10을 세었다. 

그리고 모았던 다리를 부채 펴듯 천천히 벌렸다.

“나 요즘 많이 유연해 졌나?”

“왜요?”

“전엔 이렇게 하면 골반이 결렸거든. 근데 지금은 그런 게 없어.”

“그럼 오늘 다리 일자로 찢는 거 해 보실래요?”

“될까? 어릴 때도 안됐는데.”

“저번처럼 제가 잡아 드릴 테니까 함 해봐요. 안되면 말고요.”

전에도 시도 했던 적이 있어서 인지 누나는 알아서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뒤이어 내가 누나 정면에 앉아 양 발바닥으로 누나의 양 발목을 지지한 채 누나의 양 팔을 잡았다.

“누나 시작할게요.”

“응, 천천히.”

“네.”

나는 내 다리를 벌리며 엉덩이를 앞으로 서서히 움직여갔다. 

위에서 보면 누나의 다리와 내 다리는 마름모 형태로 

내가 다가갈수록 양 다리 끝의 거리가 멀어지고 누나의 상체와 나의 상체가 사이가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이었다. 많이 유연해 졌는지 잠시의 멈춤도 없이 누나의 다리가 거의 160도 이상까지 벌어졌다.

“왜 멈춰?”

내가 멈췄던 것은 누나와 내 몸이 너무 가까워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유도 모른 채 누나는 멈추지 말라고 재촉했다.

“네.”

조금 더 다가가자 누나가 약간 버거운지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본능적으로 양 손을 내 어깨에 올렸다.

“이 정도면 거의 다 찢어진 건데. 그만할까요?”

“아니, 견딜 수 있을 것 같아. 근데 다 찢으려면 너랑 거의 끌어 안아야겠다.”

“도장에서 할 땐 사범님이 상체 끌어 안고 뒤로 누워 버려요. 이렇게 천천히 안 해요.”

“그래?”

누나가 갑자기 양 팔로 내 목을 감싸 안았다. 

누나의 큰 유방이 내 가슴 위에서 찌그러지는 것이 느껴졌다. 

몸에 힘이 풀리면서 정신이 몽롱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누나는 별 느낌이 없는지 그치지를 않았다.

“끝까지 밀어봐.”

“양 쪽 복숭아 뼈 벽에 닿은 것 같은데요?”

“응.”

“괜찮아요? 안 아파요?”

“견딜 만해. 근데, 이렇게 하는데도 거긴 안 닿네?”

“하하하, 저는 지금 180도까진 아니에요.”

“그럼 더 찢어봐.”

대화는 에로틱했지만 분위기는 그렇지만 않았다. 

약간의 호기심에 실험정신이 가미된 대화였다. 

아무튼 최대한으로 벌렸지만 스칠 정도지 여전히 닿지는 않았다. 

신체 자체의 문제인진 몰라도 180도 약간 오버되면 닿을 수 있을 것도 같았는데 

무용수나 요가 하시는 분은 가능하지 않을까? 

아무튼 서로 끌어 않고 몇 번이나 기를 썼지만 상상하던 모습은 연출되지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낑낑거리고 있는 서로가 우스워져 계속해서 웃었던 것 같다. 

“그럼 이렇게 하면 되지.”

말과 동시에 누나가 벌어졌던 양 다리를 내 허벅지 위로 넘기며 몸을 밀착시켰다. 

누나의 체중이 내 상체에 실리자 나는 뒤로 쓰러지지 않으려 팔을 뒤로 뻗어 몸을 지탱했다. 

그 사이 누나의 그곳과 나의 그곳이 맞닿았다. 

순식간에 부풀어 오른 페니스 위로 묘한 온기와 함께 압박이 전해졌다. 

잠시지만 시간이 멈춘 듯 아무런 움직임도, 아무런 소리도 없었다.

누나의 볼이 내 볼을 스친 후 우린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그 어떤 말도 없이 누나의 입술이 내 입술 위에 닿았다. 

그 순간 입술을 제외한 모든 신경은 다 죽어버렸는지 촉감이 전해지는 건 입술밖에 없었다. 

눈이 스르르 감겼다.

누나의 입술이 내 아랫입술을 머금고 있었다. 

그 사이에서 살며시 움직이는 누나의 혀끝이 느껴졌다. 

살짝 벌린 입술 끝까지만 혀를 내밀었다. 

아랫입술을 적시던 누나의 혀끝이 내 혀끝에 닿았다. 

서로의 입술은 스칠 듯 말 듯, 혀는 왈츠를 추는 것처럼 감미롭게 뒤섞였다. 

묘하고도 묘한 상황이었다. 

비록 전화상이었지만 우리는 시작되기만 하면 불같이 타올랐었다. 

바람으로 치면 강풍이었고, 물결로 비유하면 성난 파도였다. 

게다가 우리의 모습은 춘화도에서나 볼법한 장면이었지 수줍어하는 여인들의 첫 키스가 아니었다. 

분명 왈츠가 아닌 격정적인 탱고였어야 했다. 

하지만 예전에 느끼지 못했던 이 깊은 감미로움은 무엇이란 말인가?

누나의 도톰한 아랫입술을 내 입술 사이에 담았다.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입술의 주름이 느껴지지 않았다. 

부드럽고 또 부드러웠다.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내 윗입술 라인을 따라 누나의 혀끝이 움직였다. 

그 끝에서 누나의 혀가 나의 혀를 찾았다. 

서로의 혀를 놓칠세라 서로의 입 속을 끊임없이 왔다 가기를 반복했다. 

너무나도 단순한 이 입맞춤, 그 동안의 경험과 테크닉은 무용지물이었다. 

어떻게 해야겠다 라든지, 서로가 해오던 나름대로의 패턴은 처음부터 전혀 발휘되지 못했다.

‘이것이 키스인가?’

어느새 나는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었고 누나는 내 위에 앉아 서로의 입술만을 탐하고 있었다. 

한 시간이 흘렀는지, 두 시간이 흘렀는지, 이렇게 긴 키스는 처음이었다. 

키스만 이렇게 오래 할 수 있는 건지도 몰랐다.

너무 오랫동안 발기되어 있었던 탓이었을까? 아랫배가 욱신거려왔다. 

하지만 난 이 흥분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누나의 엉덩이를 꽉 쥐었다. 

내가 당긴 것인지, 누나의 의지였는지, 음경과 음부가 강하게 밀착되었다. 

그 순간 잠시 시간이 멈춘 듯 우리의 모든 움직임도 그대로 멈춰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누나의 엉덩이가 파도 위의 조각배처럼 아래위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페니스 아랫부분이 대패질을 당하는 것 같았다. 움직이는 건 누나인데 왜 나의 숨이 차오르는 건지? 

누나의 엉덩이를 쥐고 있던 양 손으로 누나의 가슴을 움켜잡았다. 

손바닥에 누나의 젖꼭지가 느껴졌다. 

순간 탱크 탑을 밀어 올려 누나의 가슴을 드러내고 싶은 욕망이 솟구쳐 올랐다. 

그러나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삽입의 욕구가 겨우 천 쪼가리에 가로막혀 애달파지는 것처럼 오늘의 모든 감정은 그러해야 할 듯싶었다. 

유두 위에 두었던 엄지손가락을 지긋이 눌렀다가 천천히 좌우로 움직였다. 

누나를 흥분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그저 누나의 가슴을 느끼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내 어깨를 쥐고 있던 누나의 손에 힘이 잔뜩 실렸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탓에 길을 잃은 듯 잠시 주춤거렸다. 

단 한번의 움직임에 누나는 호흡을 잃고 헉헉거리고 있었다.

가빴던 숨이 잦아들자 자신의 가슴 위에 멈춰있는 내 양 손등에 자신의 손을 살며시 얹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있는 내 손을 재촉하듯 이끌었다. 

손바닥에 다시금 누나의 풍만한 가슴이 전해졌다. 

볼록 솟은 유두가 손바닥에서 미끄러지듯 스쳐가더니 엄지와 검지 사이에서 멈췄다. 

살짝 꼬집듯이 유두를 쥐고 비틀었다. 

그 순간 누나의 몸이 동그랗게 말리더니 단단하게 굳어져갔다.

누나의 허리를 잡고 몸을 돌렸다. 

누나는 소파 위로 길게 누웠고 나는 그 위에 몸을 포개며 엎어졌다. 

숱이 많고 긴 속눈썹, 그 아래로 백색보다 더 하얀 공막, 그 중심의 까만 눈동자가 흔들렸다. 

발갛게 달아 오른 누나의 볼에 내 볼을 가져갔다. 

따듯하다 못해 뜨거웠으며 그 위에 버터가 녹아 흐른 듯 부드러웠다. 

딸기 향을 가득 머금은 입술을 찾았다. 

서로의 타액이 섞이며 촉촉히 젖기 시작했다.

달콤한 입맞춤이 계속 되면서 누나의 양 다리도 서서히 벌어졌다. 

그 사타구니 사이로 내 몸이 점점 빨려 들어갔다. 

수렁에서 건져내려는 듯 내 허리를 감싸고 있는 누나의 팔이 나를 강하게 끌어 당겼다. 

가마 속에서 달궈진 듯한 페니스가 누나의 질 입구에 강하게 밀착되었다. 

누나와 나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천 조각을 뚫어버릴 것처럼 엉덩이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약만 있을 뿐이지 그 어떤 테크닉도 필요 없었다. 

아까와는 다르게 시간이 빠르게 흘러가는 게 느껴졌다. 

그러나 시간의 흐름이 빨라진 것이 아니라 서로의 심장 박동이 빨라진 것이었다. 

페니스로 질 입구를 강하게 짓누르며 좌우로 흔들어대자 

누나는 자신의 엉덩이를 밀려 올리곤 내 엉덩이를 움켜잡았다. 

엉덩이를 앞뒤로 움직이니 누나의 엉덩이도 리듬을 타며 올라왔다 내려가기를 반복했다. 

내 엉덩이의 힘이 들어갈 때마다 그 엉덩이를 쥔 누나의 손아귀 힘도 점점 더 강해졌다. 

호흡이 너무나 거칠어져 입술을 띌 수 밖에 없었다. 

그러지 않으면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지경이었다. 

하지만 삽입될 리도 없는 엉덩이의 애처로운 움직임은 그칠 수가 없었다. 

여전히 내 엉덩이를 틀어쥐고 있는 누나의 손도 나를 더욱 재촉하고 있었다.

다시 페니스를 질 입구에 맞닿게 하고 좌우로 압박하며 엉덩이를 움직였다. 

그러자 누나의 다리가 허공으로 올라가며 페니스에 닿는 부위가 더욱 더 넓어지는 듯 했다. 

이 상태로도 사정을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전해지며 긴장이 고조되었다. 

누나의 양 다리를 내 어깨에 걸치자 훨씬 넓은 범위를 찍어 누르는 듯한 모양새가 되었다. 

코에서 뜨거운 김이 뿜어졌다. 

그 아래서 자신의 가슴을 틀어쥐고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이는 누나의 모습은 내 본능을 더욱 부채질 했다. 

누나의 손을 밀어내며 유두를 쥐고 비틀었다. 

혀를 내밀어 누나의 혀를 낚았다. 

서로의 입 속에서만 뒤섞이던 서로의 혀가 허공에서 요란하게 움직였다. 

페니스는 정말로 비집고 들어갈 기세로 누나의 음부를 강하게 찍어 눌렀다. 

누나와 나는 이미 호흡이 어지러워질 대로 어지러워져 숨쉬기조차 쉽지가 않았다. 

전화상으로 했던 낯뜨거운 대화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만 

서로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숨결과 거친 숨소리만으로도 분위기는 훨씬 고조되었다.

허리의 움직임이 멈추질 않았다. 강약조절 정도의 기본적인 테크닉도 없었다. 

발정 난 한 마리의 짐승이 된 듯 본능적인 기세 하나뿐이었다. 

요도에서 찌릿한 신호가 오더니 이내 페니스 전체로 울컥되는 느낌이 전해졌다.

“누나……”

한마디 외침을 내 뱉곤 누나의 품에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 

누나는 바위 같이 굳어져버린 나의 몸둥이를 매달리듯 강하게 끌어 안았다. 

그렇게 사정해 본 것도 처음이었고 그렇게 사정이 될 지조차 알지 못했었다. 

공기가 차분히 가라앉는 느낌이 온 몸을 휘감았다. 

어지러워진 호흡은 여전히 잦아들지 못했지만 내 머리를 부드럽게 만져주는 누나의 손길에 깊은 안식을 느꼈다.

“누나, 미안해요.”

“그렇게 말하지마. 섭섭해지려고 하니까.”

“그런 뜻이 아니라 저만 끝을 본 것 같아서요.”

누나의 가슴 위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던 터라 누나의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그제서야 미소를 짓는 듯 했다.

“참 이상해.”

“뭐가요?”

“재진이 네 말대로 난 끝까지 못 갔는데도 네가 사정할 때 마치 내가 사정하는 기분이 들었거든.”

“그럴 수도 있나요?”

“몰라. 처음이니까. 그래서 이상하다는 거야.”

“……”

“재진이 좋았니?”

“오죽했으면 삽입도 안 했는데 사정했겠어요. 저도 이렇게 사정한 건 첨이거든요.”

어느새 비가 그쳤다. 깊은 밤인데도 먹구름이 빠르게 흐르는 것이 보였다. 아니 느껴진 것인가? 

문득 어딜 향해 저리 바삐 움직이는지가 궁금해졌다. 

결국 사라질 텐데 마치 목적지가 있는 것처럼 생각된 것은 왜인지?

길었던 장마가 끝이 나자 폭염으로 세상이 바짝 타 들어 갔다. 

머리카락을 살랑살랑 흔들던 그 산바람들은 어디로 갔는지 이글이글 피어 오르는 아지랑이뿐이었다. 

타 지역 학생들이 모여 사는 원룸 촌이라 방학이 되고 나니 인적을 찾기 힘들고 

골목을 어슬렁거리던 똥개들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으니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 같았다. 

그것이 창 밖으로 보이는 늦은 7월의 모습이었다.

“재진아, 여기서 뭐해?”

“어…… 누나?”

“창 밖에 뭐 구경거리라도 있어?”

평일, 그것도 태양이 하늘 꼭대기에 걸리는 정오였다. 

그런데 누나가 느닷없이 집에 온 것이었다.

“아뇨. 그냥 있었어요.”

“도대체 얼마나 정신을 빼고 있었길래 전화도 안받고 현관에서 그렇게 불러도 모르는 거야?”

“그러셨어요?”

“그러셨다. 이놈아! 하하.”

손바닥으로 내 엉덩이를 가볍게 때리더니 뭐가 좋은지 마냥 웃었다.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를 보이며 맑게 웃는 모습에 덩달아 미소가 지어졌다.

“근데, 이 시간에 퇴근하신 건 아니실 테고…… 뭐 가지러 오신 거에요?”

“퇴근한 거 맞는데.”

“왜요?”

“뭐, 일찍 퇴근해서 불만이야?”

“아뇨, 그냥 웬일인가 해서요.”

“연구소 보수작업 한데서, 원랜 내일부턴데 오늘 오후부터 하기로 했대. 그래서 퇴근한 거야.”

“완전 땡잡으셨네요!”

“땡은 무슨 땡. 너 삼계탕 해 먹일라고 재료 사오느라 팔 빠질 뻔 했는데.”

“전화 하시지 그러셨어요.”

“전화 했다고요. 네가 안받으신 거고요.”

“아…… 그렇구나! 죄송해요.”

내가 도와준다 해도 그냥 TV나 보고 있으라 했다. 

소파 대신 식탁에 앉아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누나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고와 보였다. 누나라는 사람이 참으로 고와 보였다. 

한편으론 이 모든 것들이 내 것이 아닌데 라는 생각에 아쉬움이 밀려왔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욕심은 나지 않았다. 

머리로는 알 수 없었지만 가슴으로는 욕심 낸다고 내 것이 될 리 없다는 것을 막연하게나마 알았던가 보다. 

또한 소유욕을 다스리지 못하면 지금의 인연은 호사가 아니라 번뇌의 씨앗이 될 것이라는 것도 알았던 것 같다. 

나는 누나를 경계했던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경계했던 것이고 

그랬기에 누나와의 관계에서 소극적이고 수동적일 수 밖에 없지 않았나 싶다.

난 원래 비위도 약했고 입이 까다로워 가리는 것도 많았다. 

고등학교 시절 스포츠 분야로 진로를 잡았을 때도 주위사람들에게 지적 받던 문제였다. 

내가 두부나 콩, 참치 등을 즐겨먹었던 것은 좋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단백질을 보충하려는 습관에서 온 것이었다. 

아무튼 닭도 튀긴 것만 조금 먹을 뿐이지 다르게 요리한 것은 쳐다보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누나가 해 준 삼계탕은 언제나 국물까지 다 비웠다. 

그 전에는 먹어본 적이 없었으니 맛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저토록 즐겁게, 그것도 오로지 나를 위해서 해주는 음식을 도저히 거절할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그리고 한두 번 먹다 보니 전엔 왜 안 먹었는지 싶을 정도로 괜찮았다.

“아~ 햇볕 좋다.”

“덥잖아요.”

“그래도 이런 날 해변가에서 태닝하면 딱 이겠는데.”

“태닝하는데 꼭 해변가에서 할 필요는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아무데서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옥상 문만 열려도 좋겠구만.”

“옥상 문 열리는데요.”

“항상 잠겨 있던데.”

“저 열쇠 어디 있는지 알아요.”

“정말? 어디에 있는데?”

“옥상 문 옆 창문 틀에 숨겨져 있던데요. 전 요새 옥상에서 살 태워요.”

“야, 치사하게 나한테 말도 안 했어?”

“딱히 물어 보시지 않으셔서……”

“그런 걸 꼭 물어봐야 얘기하니? 뭐, 오늘 뭐 했다 이러면서 이야기 하는 거지. 바보, 멍충이!”

“하하하.”

“웃긴…… 일단 한번 올라가보자.”

이 동네는 외지 학생들 때문에 갑자기 만들어진 원룸 촌이었다. 

때문에 3~4층짜리 원룸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주위로는 밭과 산이었다. 

그 건물들 사이에서도 누나의 집은 산자락에 맞닿여 있었고 몇 채 안 되는 빌라 중 하나였다. 

3층짜리 빌라이긴 했지만 지하층이 언덕길 아래에 있어 보는 위치에 따라 4층으로 보이기도 했다. 

각 층마다 2가구씩 이었는데 지하층의 반은 주차장이어서 총 7가구가 살았다. 

그러나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만 알지 인사하는 사이는 없었다. 

누나의 집은 가장 꼭대기 층으로 계단 하나만 더 올라가면 될 정도로 옥상 접근성이 좋았지만 

누나 말처럼 문은 항상 잠겨있었다. 

그러던 것을 내가 운 좋게 열쇠를 찾아 놀이터로 삼게 된 것이었다.

“우와~ 깨끗하네.”

“제가 바닥청소부터 이것저것 다 치워놓은 거에요.”

“평상이랑 파라솔은 원래 있던 거야?

“평상은 원래 있었고요. 파라솔은 편의점에서 살 나갔다고 버리려는 거 얻어와서 고친 거에요.”

“완전 파라다이슨데. 저기 끝에 있는 건 뭐야? 창고?”

“그런 것 같던데요.”

“뭐 있어? 문은 열려?”

“문은 그냥 열리고요. 안엔 탁자 하나 달랑 있던데요.”

“경치나 한 번 볼까?”

문틀에 서서 옥상 정경을 본 후 뙤약볕이 내려 쬐고 있는 옥상 난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은 여느 소도시의 그것처럼 사람들이 사는 건물들이 내려다 보였지만 

뒤로는 나무들이 우거진 산 자락이 병풍처럼 서있었고

양 옆으로는 초록과 황색의 밭이 부채 살처럼 펼쳐져 있었다.

“우와 여기서 보니까 완전 다르네. 너무 예쁘다. 창으로 보는 거랑은 너무 달라.”

“그쵸? 정말 좋죠?”

“그래, 근데 이 좋은 걸 너 혼자만 감상했었단 말이야?”

“지금이라도 봤음 됐죠, 뭐! 하하. 어쨌든 제가 열쇠 찾은 덕이니까 한번 봐주세요.”

누나는 한 손으로 태양빛을 막으며 옥상 여기저기를 부산스럽게 뛰어다녔다. 

산을 바라보며 큰 호흡을 할 때 누나의 머리카락 아랫단이 공중으로 휙 감겨 올라가더니 

파란 하늘 아래서 나부꼈다. 

길을 잃고 방황하던 산바람이 갈 곳을 찾았던가 보다.

“재진아 얼른 내려가자.”

“벌써요?”

“아니, 태닝 해야겠다. 마실 거랑 읽을 거랑 이것저것 좀 챙겨오자.”

“태닝 오일은 저기 창고 안에 놔뒀어요.”

“그래? 그럼 내 건 안 가지고 와도 되겠네.”

누나는 다다닥 소리를 내며 계단을 뛰어내려가서는 정신 없이 이것저것을 꺼내고 챙겼다. 

그리고 냉커피에 아이스티, 심지어 화채도 만들었다. 

다시 옥상에 올라가기까지 대략 30분은 걸렸지 싶다.

소매가 긴 하얀 남방을 입고 옥상 여기저기를 다니며 사진을 찍는 누나의 모습이, 

마치 그 자체가 사진 한 컷 한 컷이 되어 나의 망막에 아로새겨지는 듯 했다. 

얼마 후 필름이 다했는지 누나가 필름 레버를 열심히 돌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제서야 허리 아래로 둘렀던 비치 타올을 벗고 태닝 오일을 바르기 시작했다. 

발가락 사이까지 바를 필요는 없는데도 버릇이 되었는지 비누칠을 하듯 구석구석 놓치지 않았다. 

정강이에서 무릎위로 올라오자 코코넛 향이 더욱 짙어졌다. 

다시금 오일을 손바닥에 부어 허벅지로 가져갔을 때 내 앞에서 사진기 셔터소리가 들렸다.

“표정 좋아!”

뷰파인더에 눈을 대고 내 모습을 담고 있었다. 

어느새 필름을 갈아 꼈던 모양이었다.

“나 몰래 많이 태웠네…… 짐승인간? 인간짐승? 그런 느낌이야.”

짐승이면 짐승이고 인간이면 인간인 거지, 짐승인간, 인간짐승은 어디서 배운 표현인지? 

어릴 때부터 외국생활을 해서인지 누나는 간혹 우리가 쓰지 않는 재미있는 표현들을 많이 했다. 

그렇다고 말을 버벅이거나 발음이 어설픈 구석은 없었지만 그런 표현을 할 때면 귀엽단 느낌이 들었다.

“누나도 찍어 드려요?”

“아니, 괜찮아. 난 사진 찍는 건 좋은 데 찍히는 건 별로.”

말을 마치기도 전에 카메라는 이미 가방 한쪽으로 들어가 있었다. 

가방 안에서 카메라 대신 들려 나온 것은 머리를 묶는 고무줄이었다. 

그 고무줄을 입에 물더니 고개를 살짝 뒤로 젖혔다. 

그리고는 긴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하려는 듯 머리를 살랑살랑 흔들었다. 

이제 아래로 곧게 펴진 머리카락을 틀어 올릴 모양인지 양손을 머리 뒤로 돌렸다. 

그 때 흰 남방 앞의 채우지 않은 단추 부분이 벌어지며 누나의 속살이 드러났다. 

‘No브라?’ 라고 생각하는 순간 가슴 골 아래로 하얀 끈이 보였다. 

도대체 어떤 디자인의 비키니기에 가슴 안쪽 라인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인지 궁금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