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7화 (17/19)

< --계약직 영주가 됩니다.

-- >

                 수정을 통해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전에 보던 독자님들은 15화부터 다시 봐주세요.

"그럼 어쨌거나, 몰렌느는 아솔렛 아가씨에게 증여가 될 영지가 아닌, 미래의 부군에게 증여될 영지로군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요…."

아솔렛 누나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나 가신 자문회의 직접적인 언급은 없었지만, 우리는 

이것이 추후 누가 레옹루아르 후작령의 후계자가 되는지에 대한 시험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어머니와 자문회가 마련한 두 장소, 몰렌느와 플모어가 그 시험의 장소이며 이곳에서 내는 성과가 후계자가 되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사항이 될 것이다.

게다가 아솔렛 누나는 더 절박했다. 그랑데시아는 여자가 영주가 된 적이 딱 한 번 밖에 없는 나라다. 그리고 그 딱 한 번이 우리 어머니, 아벨리네 드 레옹루아르의 경우고 이건 상당히 특별한 케이스다. 그 특별함이란 어머니가 브륜힐데의 계시를받아, 15살에 바이킹 부족장 목을 따고 노르망디 공작과 결혼하고 브리타뉴 공작을 종자 겸 후견인으로 삼고, 영웅적인 활약으로 국왕을 구출해낸 걸 말한다.

한마디로 거의 불가능한 경우,

하지만 이미 전례가 한번이라도 있다면 또 다른 사례가 튀어나올 수 있다. 그렇기에 전례를 남기는 게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아솔렛 누나는 그 전례를 활용하여 영주가 되기 위해선 최대한 공적을 세워야 할 것이다.

나의 경우는 어머니의 직계가 나 하나이기에 그냥 앉아만 있어도 영주 확정이지만.

몽셀로 경이 말을 이었다.

"그러고 보니, 아솔렛 아가씨께선 작년에 성인이 되셨군요. 그런데 성인식을 치루셨습니까?"

"…치루지 않았습니다."

"…그랑데시아의 레이디라면 성인식을 치러야 합니다."

"국법에는 없는 사항입니다!"

"관습이니까요. 모두 다 아는 걸, 국법에 적어 사제를 굳이 귀찮게 할 필요는 없죠. 성인식을 치루고 그때 만든 벌꿀주가 있어야 결혼이 가능한…."

"몽셀로 경—. 더 이상 저희 집안 이야기를 하면 당신이라도 용서하지 않아요."

어머니가 갑자기 몸을 떨며 몽셀로 경을 노려보며 말했다. 정확하고 침착한 어투였지만 그 뜻만은 나에게도 확실히 전해질 수 있었다.

"…죄송합니다. 후작님. 하지만 제가 말씀하고 싶은 건, 말해야겠습니다. 그랑데시아에서 귀족간의 결혼식은 성인식을 치

룬 두 남녀가 해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성인식을 치루지 않은 아솔렛 아가씨에게 결혼을 전제로 된 몰렌느에 대한 권리는 없어 보입니다."

"휴—. 몽셀로 경도 못 말리는군요. 하지만 저도 동의합니다."

"파울라!"

"단순히 관습이고 법률이고 개인 간의 결혼문제가 아닙니다. 영지의 위신과 안정성이에요. 모두가 하는 성인식을 아솔렛 아가씨 혼자 안하게 된다면 다른 귀족들이 저희 레옹루아르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할 겁니다. 농노들도 마찬가지고요."

"위신과 안정성은 곧 신뢰도죠."

브레스트 시장 고프레드까지 입을 열었다. 어머니도 주요 가신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파울라가 입을 열었다.

"아솔렛 아가씨, 결혼하지 않고 검을 잡고 싶은 것이라면 저희 발큐리아 수녀회에서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저는 발큐리아의 수녀가 되려는 게 아닙니다. 마법도 쓰지 못하고 재능도 없어요. 저는 단지…."

아솔렛 누나가 말을 흐리자 침묵이 찾아왔다. 몽셀로 경이 말을 이었다.

"제가 아솔렛 아가씨를 미워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아닙니다. 오히려 존경하고 있습니다. 아솔렛 아가씨께서 보통의 기사들을 넘는 훌륭한 견습기사라는 걸, 압니다. 아솔렛 아가씨

의 용맹과 무술은 대단합니다. 아마 미래도 어머님처럼 훌륭한 기사가 되겠지요. 하지만 아솔렛 아가씨는 공식적으로 계승권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후작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계시는 건, 영지를 불안하게 할 수 있습니다."

"계승권자가 둘 이상 있다면 어느 영지나 불안한건 마찬가지 입니다."

"네, 그래서 그 불안을 제거하기 위해 둘째 아들을 수도원이나 제국대학에 보내버리는 귀족들도 있죠."

"……."

"아솔렛 아가씨, 늦지 않았습니다. 가을이 다가오면 그때 열리는 성인식에 참가하시죠. 저희 발큐리아의 사제들이 불편함 없이 식을 열어드리겠습니다."

"모두 그만 입을 다무세요—. 레이디에게 말이 심하군요? 몽셀로 경!"

"죄송합니다."

"그리고 파울라! 우리 집안일은 우리가 알아서 한다고 몇 번이나 말했어요! 이 일은 나중에 이야기하기로 합니다."

"예."

나는 이런 혼란 속에서 아무 말도 안하고 있었다. 그리고 계속해서 아솔렛 누나의 얼굴을 봐라보았다. 가상현실게임의 특수 스트랩트가 적용되어 진짜 누나와 했다는 느낌을 주진 않지만 아솔렛이라는 NPC는 내가 이번 플레이에서 처음으로 살을 섞고 오랫동안 지켜보며 함께 기사수행을 해와서 그런

지, 뭔가 애정이 갔다.

예쁘다. 하기 보다는 매력적인 여자다. 어머니를 닮아 전체적으로 이목구비가 뚜렷하며 좌우대칭도 잘 맞는다. 요새 풀거나 묶어 올리던 생머리를 끝 부분에만 살짝 밴드를 하여 묶으니 더 매력적인 여성이 되었다. 언제나 살짝 멍하고 무표정인 얼굴이 지금은 상기되어 있다. 울고 있는 것이다.

회색의 가까운 벽안의 눈동자는 눈물이 고여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흘리지 않고 계속 눈에만 담고 있었다. 아솔렛 누나는 모르겠지만, 누나가 눈물을 담은 만큼, 누나의 눈 주위가 상기되었다.

그때 나와 아솔렛 누나가 눈이 마주쳤다.

분명 아솔렛 누나는 내 캐릭터 루이스보다 뛰어나다. 하지만 여자로 태어났기에 경쟁상대가 되지 못하고 이렇게 가신들에게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했다. 어머니의 의도는 몰렌느와 플모어 하나씩 우리 남매가 임시로 파견되어 남작일을 해보는 것이겠지만, 이제는 본전도 못 찾을 수도 있게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아솔렛 누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를 원망할까? 나를 증오할까? 그때 살을 섞어버리고 처녀를 빼앗아간 동생을 싫어할까?

어머니와 가신들의 이야기는 계속되었고, 우리 둘은 서로를 한참이나 봐라보았다. 내가 먼저 입을 열려고 했으나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보통 가상현실게임이라면 내가 아닌, 아바타기에 어떤 말이고 확확할 수 있지만, 이번에는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입술을 뻐금거리자 아솔렛 누나가 먼저 입술을 열었다.

"축하해. 루이스."

"…아솔렛 누나?"

"나는 여기까지인 것 같아."

아솔렛 누나는 웃었다. 어쩐지 힘이 없는 미소였지만 편해 보이는 미소이기도 했다. 최근에 들어 우리 둘이 경쟁자 아닌 경쟁자 관계가 된 후로 본 적이 없는 미소였다. 이해할 수 없었다. 차라리 이 순간에 나와 근친상간을 했다는 걸 약점 삼아 내가 몰렌느를 포기하게 만들면 된다. 하지만 아솔렛 누나는 그러지 않았다. 그저 웃었다.

아솔렛 누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어머니와 자문회 가신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몸을 바르게 폈다. 그리고 그게 입술을 열었다.

"어머니, 그리고 존경하는 자문회 여러분…. 여러분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저, 아솔렛 드 레옹루아르는……."

"제가 플모어로 꼭 가고 싶습니다!!!!!"

갑자기 아솔렛 누나가 잘 이야기하는데 누가 말을 끊었냐고? 당연히 나다. 나도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외치고 싶어졌다. 아솔렛 누나는 두 눈이 동그래져서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아솔렛 누나와 시선을 마주하지 않기 위해 당황하고 있는 어머니를 봐라보았다.

"뭐라고 했니…? 루이스…?"

"제가 플모어로 꼭 가고 싶습니다. 몰렌느가 싫습니다. 몰렌느가 그냥 싫습니다!"

"…진심입니까? 도련님?"

지금껀 몽셀로 경의 말이다. 참고로 말하는데 그랑데시아에

서 장다르메 지휘관이라는 역할은 대단한 것이어서 수련기사인 내가 감히 저런 식으로 소리칠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내가 우대할 사람도 아니지만, 상당히 존중해야 하는 지휘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싫은데 어쩌겠습니까? 몰렌느 전 남작은 정말이지 아솔렛 누나만 좋아했어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그 양반 기사들도 전부 아솔렛 누나만 좋아하는 거지 뭡니까? 제가 어릴 때 몰렌느 섬에 가서, 기사들에게 그 이유를 듣자 꼬추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대답이 도저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습니다."

"루, 루이스!?"

"흐, 흠…!"

"허허…."

어머니와 자문회 가신들의 다양한 반응을 보며 나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제가 몰렌느에 가면 그 기사들을 다시 만나고 부딪껴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제 작은 심보가 몰렌느의 기사들을 어찌할지 몰라, 아무래도 저와 같은 소인배는 플모어 같은 항구로 가야할 것 같습니다. 이름도 좋지 않나요? 플모어?"

"허허…. 루이스 도련님, 말씀드렸다. 시피, 플모어항은…. 조용한 항입니다."

고프레드 시장의 말에 나는 대답했다.

"그럼 조용한 항구도시에 가서 조용히 공부를 해 마음의 양식을 쌓으면 되겠군요. 이제 기사들이 검만 휘두르는 시대는 아니지 않습니까? 우리 레옹루아르는 제국사람이나 다양한 외국인을 만날 수밖에 없는 곳인데, 그렇다면 제국놈들에게 꿇리지 않을 교양을 쌓아야겠죠. 제국놈들이 항상 우리 그랑데시아 귀족들이 보고 머리에 쇳덩이만 가득 차다는 생각하는 걸 고쳐줄 겁니다."

"루이스……?"

"몰렌느 가서 잘해봐. 거기 기사들이 누나 좋아했잖아."

"하, 하지만…!"

"오! 몰렌느에서 누나에게 첫 번째로 화환을 준 그 남자아이는 이제 기사가 되었겠지? 만나기 싫어?"

"그, 그런 사실 없어!"

그때 어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주변의 가신들과 나와 아솔렛 누나의 시선이 어머니이자 최고 결정권자, 레옹루아르의 후작에게 쏠렸다.

"루이스…. 그 말…. 정말이니…?"

"예. 정말입니다. 저는 플모어에 가고 싶습니다."

"레이디에 대한 배려의 미덕이나 아솔렛에 대한 동정이라면 때려치우렴. 지금 네 옆에 있는 누이는 그랑데시아의 마지막 발큐리아가 수호하는 기사란다."

"예. 압니다. 저도 브륜힐데께서 똑같이 수호하는데 발큐리

아도 무심하지, 아솔렛 누나를 누나로 줘서 등짝이 남아나는 일이 없습니다. 정말 손이 매서워요."

"루, 루이스!"

"좋아. 그럼 루이스를 플모어의 임시 남작으로! 아솔렛을 몰렌느의 임시 남작으로 임명한다!"

♦♦♦♦♦♦♦♦♦♦♦♦잠시 후, 나는 내 방에서 짐을 싸고 있었다. 짐이라고 해봤자 별거 없었다. 검 끝.

나머지는 하인들이 전부 포장하니까. 각종 갑주와 부착물, 그리고 관리도구와 숫돌, 옷가지와 마구, 모포, 이불, 베개, 책

들, 심지어 장식까지. 거의 이사를 가는 수준이라고 보면 되겠다. 에우로파 대륙에서는 

"이동"

이라는 건, 거의 레이드 비슷한 의미였다. 숲속에 사는 몬스터의 습격에 대비해 정찰 기병을 보내고 대형을 짜고 이동한다. 당연히 이런 이동이 자주 있는 일은 아니었고, 그랑데시아에서는 영주일행이나 편력기사일행이 이동할 때 그들의 경호를 받기위한 상인들과 자유민들이 우르르르 같이 움직였다. 그들이라고 무장을 안 한다는 게 아니었다.

상인이라는 건, 에우로파 대륙에서는 기사 다음으로 전투를 많이 치러야 하는 족속들이니까. 제국의 육상상인은 일개 제국영주보다 더 무장을 잘하고 다닌다고 한다.

어쨌거나, 한번 이동이 있으면 우르르르 움직이는 관습에, 이 한번 움직이는 기회가 포착되면 이때를 노려 물자들을 한 번에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내가 조용히 플모어로 가는 짐마차에 짐들을 일꾼들이 올리고 있는 것을 볼 때, 동생 마리에가 다가왔다. 제국에서 유행한다고 하는 제국식 붉은 벨벳 원피스를 입고 있고 있다. 간단하게 묘사하자면 옆구리와 쇄골이 드러나는 원피스라고 할까?

붉은 색 소녀 원피스는 마리에의 하얀 몸과 검은 단발 머리카락을 더 돋보이게 해준다. 마리에는 아버지를 닮아서 하늘처럼 맑은 청안을 가지고 있었다.

원피스 아래로 하얀 두 다리 사이로 무엇인가가 보인다. 마리에의 미소는 마리에가 무엇인가 장난을 칠거라고 말하는 듯하지만, 마리에는 세나와 같은 엉망진창의 소녀가 아닌 한 송이의 꽃과 같은 착한 아이였다. 

"후후. 오.

라.

버.

니."

장난기와 미소가 가득한 얼굴의 동생은 나에게 수줍게 다가와 한 음절 한 음절씩 나에게 속삭여준다. 그리고 뒤에 숨기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것이 기대가 되는 듯, 몸을 꼰다. 그럴때 마다 원피스가 흔들리며 마리에의 하얀 다리를 보여주었다.

"왜? 마리에. 무슨 일이야?"

"짜잔! 플모어로 가시는 오라버니를 위한 마리에의 깜짝 선물이에요!"

마리에가 등 뒤에서 뽑아든 건 두꺼운 두 장의 책이었다.

"마리에! 고마워, 이건 무슨 책……………이야?"

내가 잠시 말을 끊은 건, 책의 제목을 봐서이다. 처음에는 제국인 가정교사에게 최근 제국어를 마스터한 마리에가 나에게 제국어로 써진 책이라도 주는 줄 알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랑데시아어 였고, 이게 유감스러운 이유는 책 제목이 심히 유감스러웠기 때문이다.

'프리슬란트의 행정과 관료제도.'

 '그랑데시아의 허상과 브륜힐데' ??"

그랑데시아와 제국은 서로 닭보고 개보는 사이다. 하지만 서로 이웃이니 나름 많은 교류가 있는데, 그랑데시아에서 가장 싫어하는 제국인은 그랑데시아의 브륜힐데 숭배가 이단적 행위라고 지적한다던가, 그거 바이킹여신 아니냐고 묻는 사람과 같은 부류다.

"…어…. 마리에야. 그랑데시아에서 읽기에는 심히 수준이 

높은 책들이구나. 하하하!"

"헤헤, 그렇죠?"

앞에 책은 별 문제 없어 보이지만, 그랑데시아인이 싫어하는 또 다른 건, 바로 제국의 행정제도다. 제국은 여러 나라의 연합국가지만, 우리가 상대하는 웨스터란트나 프리슬란트 같은 국가들은 전부 봉건제도를 탈피했으며 웨스터란트는 절대군주정을, 프리슬란트는 섭정의회라는 공화정을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두 국가의 정치체제를 그랑데시아의 봉건제와 비교될 수 있다는 거다.

"최근에 제가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들이에요. 플모어는 정말 평안하고 조용한 영지라고 들었어요. 오라버니가 그런 곳에 가서 공부를 하신다고 하길래. 오라버니의 동생이 도움이 될만한 책들을 가져왔답니다."

마리에야. 이건 도움이 아니야. 그랑데시아에서 저런 책을 읽고 다니다간 기사들에게 그랑데시아와 브륜힐데를 모욕했다며 결투 당해 죽기에 딱 좋은 책이야.

하지만 프리슬란트의 행정에대한 책은 도움이 될지 몰르고 마리에의 배려에 나는 마리에의 미소에 미소로 화답하며 동생의 단발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고마워, 마리에 많은 도움이 될 거 같아."

"가정교사선생님도 반드시 그랑데시안이라면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하셨어요. 오라버니도 이 책들을 읽고 저와 같은 깊은 감명을 받기를 원해요."

아아, 교육이 이래서 무서운 것이구나. 플모어에서 돌아오면 

어머니께 가정교사라는 양반에 대해서 물어봐야겠다. 그러고 보니 우리 레옹루아르 후작령은 제국 상인들과의 교류가 많아서 그런지, 많은 제국문화가 유입되어 있다. 우선 마리에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제국스타일이다. 그랑데시아 레이디라면 머리를 길게 기르고 다리와 팔이 보이지 않는 긴 치마를 입는다고, 그러고 보니 어머니의 가슴부의가 살짝 드러나는 복장도 제국식이로군.

"플모어에서도 잊지 않고 정기편으로 편지를 붙일께."

"오라버니,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렇게 말하고 마리에의 구두는 까치발을 들었다. 그리고 마리에는 눈을 감고 팔을 뒤로 뺃었다. 뽀뽀를 해달라는 거다. 마리에의 우아한 검은 단발과 붉은 원피스가 대조되어 하얀 

살결이 강조되어 보인다.

나는 까치발을 든 마리에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꺄르르르—! 고마워요. 오라버니, 저는 이만 가볼게요. 제국에서 들어온 새로운 책들을 번역해야하거든요. 오라버니 건강하시고 꼭 편지 붙이세요!"

마리에는 그렇게 말하고 우아한 발걸음으로 적사자성으로 사라져 버렸다. 이제 나도 슬슬 인부들이 쳉긴 짐을 감독하고 출발준비를 하려고 하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엘프 꼬맹이였다.

우리 집에서 엘프하면 누가 있겠는가? 바로 세나 드 레옹루아르지. 레몬빛이 가득한 상아색 머리카락을 길게 길러도 저 귀는 가려지지 않았다. 마리에가 우아한 제국 아가씨 같은 소녀라면 세나를 한 단어로 말하기가 힘들었다. 그랑데시아 레이디 같은 다소곳하고 품위 있어 보이지 않고 시골처녀나 인디언 소녀마냥 밝고 가벼워 보였다.

무엇보다 입이

"변태, 오빠. 죽어."

아니!? 내가 또 뭘 잘못 했다고!?

아니!? 내가 또 뭘 잘못 했다고!?!?

세나는 나무 뒤에 숨어 상체만 내놓고 나를 훔쳐보다가 저렇게 말했다. 나는 당황해서 세나에게 다가가자, 세나는 나무 뒤에 얼른 숨어버렸다. 내가 숨은 방향으로 걸어가자 세나는 또 반대 방향으로 달려 도망친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자 세나는 나무 하나를 사이에 두고 반대방향으로 돌기 시작했다. 애래서야 끝이 없다.

꼬맹이답게 세나의 체력은 그야말로 무한체력이었으니까. 이런 장난을 받아줘 받자 나는 힘들어진다. 내가 멈쳐서자 세나도 멈춰서서 나무에 몸을 기대며 나를 훔쳐본다.

"저어…. 세나야? 이 오빠가 뭘 잘못했는지 알려줄래?"

"변태! 변태! 변태애애에애!!!! 나가 죽어!!! 플모어에 가서 항구바닥에 머리박아 죽어버려!!"

아니, 그러니까 왜요? 죽기 전에 이유 좀 알고 죽고 매도당하기 전에 이유나 알고 당합시다. 요 꼬맹아. 

"세나야, 무슨 일 있는거야? 어머니 집무실 서재에 숨겨둔 사탕병이 발견되어도 그건 변태랑 무관하잖아?"

"그거 오빠가 숨겨뒀던거야!?!?"

칫, 가기 전에 사탕병 위치를 바꾸고 가야겠군. 꼬맹이에겐 하나의 사탕도 아깝지.

"음, 사탕 때문이 아닌가? 그럼 세나 침대 밑에 숨겨둔 슬라임을 드디어 보았나?"

"내 침대 밑에 슬라임을 숨겨뒀어!?!?"

"장난이지."

"우으으으으으으!!!!!!"

아아, 재미있다. 건방진 여동생을 놀리는 게 이렇게 즐거울 줄이야. 현실에서는 여동생이 없었는데 게임에서나마 여동생이 있으니 그야말로 암에 걸릴 것 같은 일상의 연속이었는데 이렇게 놀리니 10년 묵은 체증이 사라지는 것 같다.

"자꾸 그러면 섹스, 섹스, 섹스하고 10번 외치고 오빠가 귀엽고 순수한 여동생의 옷을 벗겨서 강제로 섹스섹스하려고 했다고 소리 지를거야."

"세나야, 정확한 단어를 써야지. 강제로 섹스를 한다는 뜻의 단어가 있어."

세나가 긴장이 풀어지고 있는 와중에 나는 조용히 그리고 아무런 악의를 보이지 않은 체 세나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세나에게 손짓했다.

"이리와, 조용히 말해줄게."

세나가 흥미로운 얼굴로 나에게 다가왔다. 나는 세나의 기다란 귓가에 내 입술을 가져다 되고 입을 열었다.

["잔득 범해버릴거야."]

그리고 나는 세나에게 떨어졌다. 세나는 내 말을 듣고 그자리에서 말똥말똥 푸른 눈을 감았다가 뜨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곧 표정이 변화하더니 경악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오빠가 날 짐승처럼 엉망진창으로 범할려고 해!!"

"아니다! 이 꼬맹아!!!"

아니, 저 녀석은 왜 처음 듣는 단어에 대해 어떻게 저런 콤보가 나올 수가 있는 거냐!?!?! 에고, 내 잘못이다. 장난이라도 떡밥을 던져준 건 나니까. 나는 도망가려는 세나의 기다란 귀를 잡았다.

"읏!?"

세나가 넘어지기 전에 나는 얼른 세나의 허리를 잡아 올렸다. 세나는 공중에서 바둥거리며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그때 세나의 몸에서 부터 무엇인가 떨어졌다. 세나가 들고 있던 것이다.

"으으으!! 놔! 놔!!! 바보 오빠!! 변태오빠!! 놔라고!!!"

"응? 세나야. 이건 뭐야?"

나는 그렇게 말하며 책을 주워 올린다. 그러자 잠깐 동안 세나의 저항이 없다가 내가 주워든 책을 보고 얼굴이 빨개지더니 더 격렬하게 저항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나는 책을 줍고는 책에 묻은 흙을 털어낸 뒤 제목을 읽었다. 

"지독한 사랑이야기."

 저번에 내가 항구에서 제국인에게 받은 걸 세나에게 선물한 그 책이었다. 이게 뭐라고…. 나는 세나를 땅바닥에 내려두고 책을 건네며 머리를 콩! 하고 때리며 말했다.

"저번에 내가 준 책이잖아?"

"루, 루이스, 오, 오빠…. 나 궁금해서 그러는데…. 오빠 이 책 읽어보고 나한테 준거야?"

"아니, 그냥 줬는데, 알잖아. 나 소설은 안 읽는 거."

그랑데시아는 애초에 소설문화가 없다. 소설문화는 제국문화다. 그랑데시아에서는 음유시인들이 각종 이야기들을 외우고 들려주며 그것에 대해 노래하며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랑데시아의 기사들은 종이 쪼가리보다 더 생생하게 들려주는 

음유시인을 더 사랑한다. 뭐, 간혹 글자를 모르는 기사들도 있고. 책은 수도사나 읽는 것이다. 그거 살 돈으로 검과 갑주에 칠할 기름을 더 사야한다.

"그, 그럼 읽어 라고!!! 다음부터는 세나한테 책을 줄때 반드시 읽고 주는 거야! 변태오빠!!!"

뭐지? 세나는 그렇게 말하며 내가 준 책을 다시 내 품에 턱! 하고는 던지듯이 안겨주었다. 세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도망치듯이 적사자성으로 사라져 간다. 뭐지…?

"야, 세나야. 오빠 플모어 가서 오래 있을 건데, 뭐 좋은 덕담하나 안 해주냐?"

그 말에 세나는 달리기를 멈추었다. 엘프 귀를 쫑긋거리더니 녹색 원피스를 펄럭이며 뒤를 돌아 나를 봐라보았다. 그리고

는….

"메롱———!!! 가서 고생이나 하고 와라고!"

아 진짜 저 꼬맹이가! 마리에 정도는 바라지도 않았지만 메롱 이라니! 메롱 이라니!

"루이스 오빠가 사라지면 오빠 방에서 마음껏 뛰어놀아야지! 헤헤! 잘됐다! 이제부터 오빠의 방은 세나의 비밀아지트다! 오빠 침대에서 멍멍이를 재우고 옷장에서 간식을 마구마구 먹어야지!"

나는 그 말에 세나를 향해 방긋 웃어보였다.

"세나야. 한 가지 알려줄게 있어."

"응? 뭔데? 사탕병의 위치는 이미 알았지롱. 헤헤! 이제 적사자성에서 아무도 나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아하하하하!"

"음모를 세울 때는 그걸 오빠에게 알려주는 게 아니란다."

"그런데 이거 어쩌냐? 이런~. 이런~. 오빠는 플모어로 가버리는데~? 아솔렛 언니도 사라진다. 헤헤. 이제 나의 세상이다! 크하하하!"

"음모를 알아 첸 이 루이스 오빠는 뭘 하는지 알아?"

"눈물을 흘리며 플모어로 사라지겠지!"

"가기 전에 요망한 여동생 혼내주고 간다아아아아!!!!!!!!!!!"

"꺄아아아아아아악!!!!!!"

나는 말하는 동안 천천히 세나에게 걸어가다가 소리치며 세나에게 달려가기 시작했다. 세나는 내 갑작스러운 뜀박질에 놀라 자리에서 한번 붕— 떠 넘어질 뻔 하다가 겨우 중심을 잡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아우! 진짜 인부들의 작업 감독해야 하는데! 정말이지 요망한 막내 여동생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우리 둘의 레이스는 적사자 성까지 이어졌다.

"꺄아아아아악!! 루이스 오빠가 날 범하려고 해!!!!"

"아! 진짜 조용히 하라고! 세나!!"

"잡아봐! 잡아봐아아!!!"

"사탕병 다시 숨겨둘거다!"

"오빠가 숨기기 전에 내가 가져갈 건데!?"

세나는 내가 잡으려고 할 때 마다 내가 범하려고 한다. (…….)는 비명을 질렸기에 그걸 들은 가신들이 나를 멈춰 세워서 이게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았다. 그리고 세나는 모퉁이에 숨어 나를 비웃으며 지켜보았고…. 뭐, 가신들도 세나가 장난꾸러기인걸 알지만 이렇게 수위 높은 농담이 나오는 줄 어디 예상이나 했겠는가?

결국 우리는 적사자 성까지 들어가 대 레이스를 펼쳤다. 어제 우리의 운명이 결정된 집무실이 비어있기에 세나는 얼른 들어가 사탕병을 찾아 보물처럼 껴안고 달리고 있었고 나는 그런 세나를 따라 달리다가 세나가 멈춰있는 걸 보고 세나를 덮썩 잡았다.

"잡았다!! 세나! 이 오라버니를 놀렸겠다! 요망한 여동생에게는 궁디팡팡이다!"

"……."

"궁디팡팡이다! 궁디팡팡이야! 이 오라버니에게 잘못했다고 싹싹 빌 때까지 궁디팡팡이라니까 세나야! 왜 대답이 없어!?"

"……."

"…그러니까 루이스 네가 막내 여동생의 엉덩이를 때리겠다

고…?"

나는 그제서야 세나가 굳어있는 이유를 알아내었다. 아솔렛 누나가 앞에서 내가 세나의 옆구리를 잡고 있는 것 웃으며 봐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 작품 후기 ============================수정을 통해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전에 보던 독자님들은 15화부터 다시 봐주세요.

다시 돌아왔습니다. 제가 생각보다 멘탈이 약하네요. 허허왜 조아라에 글 올리려면 멘탈이 튼튼해야 하는지 알아버렸습니다.

조아라는 넓고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뭐 이제 휘둘리지 않고 내쫒아야죠.

내일부터 다시 하루한편 들어갑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