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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2/40)

[TS] 은하보안관 이브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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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대기 흐름을 따라 먼지 입자가 구름처럼 아른거린다. 항성에서부터 온 가시광선은 먼지구름을 통과하여 버려진 석탄공장의 거미줄처럼 얼기설기 설킨 판자 지붕 사이로 떨어져 희끄무레한 빛그물을 드리웠다.

드리워진 빛그물은 바닥에 널브러진 긴 은발의 소녀에게 떨어졌다. 흩뿌려진 빛은 새하얀 머릿결에 부서지며 마치 별빛이 반짝이는 것처럼 소녀의 주변에서 신비하게 흐드러졌다.

투명하리만치 새하얀 피부에 빛무리에 감싸인 다소 앳된 얼굴의 소녀, 수천억 명이 가입한 초광속 성간 통신 ‘스타 스트링스’의 드높은 아이돌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는 아름다운 이목구비의 소녀는 지독한 악몽을 꾸는지 미간을 찌푸린 채로 끔찍한 신음을 삼켰다.

“끄응… 윽. 아니야… 나는… 흐! 흐응!”

아쉽게도 아이돌을 연상시키는 소녀의 외모에 겉차림은 '이질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될 정도로 문란했다.

입가와 아랫도리에는 흉하게 굳어버린 정액자국이 있었고, 만지기만 해도 손가락에 땟국물이 묻어나올 듯한 천떼기가 그 위로 아무렇게나 덮어 씌워져 있었다. 근처에는 출처를 알 수 없는 약과 술병까지 널브러져 있었다.

“으아… 또 그 꿈이냐… 아고, 죽겠다.”

소녀의 목소리는 술과 약에 취한 중독자처럼 갈라졌다.

동공은 풀려 확장되었고 머릿속은 띵하고 속은 메스꺼웠다. 소녀의 목구멍은 뻑뻑하게 굳었고 내장은 불타는 것 같았다. 하물며 눈에 들어오는 형체도 온통 흐물거렸다.

심지어 꺽 하고 트림을 하자 목구멍 깊은 곳에서 술과 약, 정액 냄새가 섞여 올라왔다.

“…씨발.”

어수선한 쓰레기장 가운데서 몸을 일으키던 소녀는 상스러운 욕과 함께 크게 휘청이더니 다시 천장을 향해 쓰러졌다.

어젯밤의 상대는 질 나쁜 약을 탔는지 몸 상태가 말이 아니었다. 으레 하룻밤을 보내고 난 뒤에 그렇듯 허리의 통증과 전신의 찌뿌드드함은 덤이었다.

소녀가 허공을 응시하고 있자, 심장이 벅벅 뛰며 고된 생명을 느끼게 해주었다. 심장에서부터 발끝까지 뻗어가는 혈류를 따라 감각이 돌아왔다. 그것만으로도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지만 하복부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이물감에는 인상을 확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제 질 안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아직도 끼워져있는 느낌.

이런저런 물건을 삽입 당해 봤기에 그게 돈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는 느낌.

깨닫고 나니 아침을 맞아 더러운 기분이 더더욱 더러워졌다.

“참… 취미도 고상하셔라.”

소녀는 익숙한 듯이 제 아랫도리에 손을 뻗어 음부에 손가락을 넣었다.

흉하게 피부에 들러붙은 정액을 무시하고 보면, 마치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것처럼 깨끗한 연분홍색의 틈바구니에 자그마한 검지와 엄지가 스륵 비집고 들어가더니 페니 지폐와 함께 빼꼼 머리를 내민다.

적어도 어젯밤의 상대는 기절할 때까지 박아놓고 튀지는 않았단 증거였다. 돈 없는 거지들의 행성 라임비에선 싸놓고 튀는 작자들이 태반인데도.

“300페니, 하룻밤치곤 조금 모자란데.”

그래도 안 튄 게 어디야.

소녀는 정액과 애액으로 번들거리는 페니 지폐를 툭툭 털어냈다.

종이 질감의 플라스틱 재질로 만들어진 구겨진 페니 지폐는 몇 번 털어내자 금방 제 모습을 되찾았다. 초고열과 초저온 같은 극한상황에서도 버틸 수 있는 지폐답게 끈적한 단백질 자국 따윈 씻어내면 충분히 쓸 만했다.

“그건 그렇고. 이거 잘 안 지워지는데.”

소녀는 제 피부 위에 싸질러 놓은 정액을 손톱으로 떨어트리며 뇌까렸다.

왜 나노머신은 상처는 없애면서, 정액자국은 안 지워놓는지.

어쨌든 지폐에 붙은 자국이나 몸에 붙어버린 허여멀건 자국을 지우는 게 수고스럽긴 해도. 싸놓고 튀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다고 기분이 나아지는 건 아니다.

딱딱한 부스러기를 떼어내며 제 아랫배를 매만지는 소녀의 기분은 여전히 좆같았다. 좆이라면 자지러질 정도로 굵고 튼실한 좆이었다. 좆, 빨면 참으로 맛있는 즙이 나오는 것.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아랫배의 뭉근함을 달래주는 소중한 것.

짝! 소녀는 뒤틀린 자신의 사고를 뺨을 후려치며 바로잡았다.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트린 몸 속의 나노머신은 오늘도 배갯영업을 부추기는 호르몬을 내뿜어댔다. 나노머신에서 인공적으로 생성된 호르몬은 오롯이 암컷으로서의 음욕을 부추겨 소녀를 발정기라는 이름의 나락 속에 빠트렸다.

나노머신은 질과 자궁에 쏟아낸 타인의 정액을 흡수하고 남자를 유혹하도록 지시했다. 30년째 자라지 않는 소녀의 육체에 가두고, 꾸준히 음욕을 부추겼다.

나노머신은 평범한 여인이 다달이 월경을 맞듯 다달이 소녀를 발정기 속에 빠트렸다. 특히, 황무지나 다름없는 슬럼 행성인 라임비에서 벗어나려 시도할 때는 때를 무시하기까지 하며 발정시켰다.

“끅…”

그래도 아직까진 괜찮았다.

도망갈 계획 따윈 십수 년 전에 접었고.

어젯밤의 상대가 무슨 약을 처먹었는지 뱃속에 출렁거릴 만큼 다량의 정액이 들어있었고, 얼마나 많이 싸질렀는지 살살 움직이기만 해도 음부에서 희멀건 정액이 스며 나왔다.

발정기인 신체를 달래는 데는 정액만 한 특효약이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저 소녀의 몸에 주사된 나노머신은 소녀의 몸을 이렇게 개조했을 뿐이다.

본래 행실이 이토록 문란하고 너저분했던 건 아니지만, 밑바닥까지 떨어진 소녀는 그저 그렇게 살 운명이 되어버렸다.

정액을 갈구하는, 남자의 품 안에 안길 수밖에 없는 몸으로……

[오늘 오후에는 라임비 42, 45지구에 수정 폭풍이 지나갈 것으로 예상되며 예상되는 지구에 사는 분들은 모두 강화복을 착용하시거나 강철창문을 덧대어 주시길 바라며…]

폐허나 다름없는 석탄공장 어딘가에서 AM 라디오 기상캐스터의 목소리가 들렸다.

석탄공장은 소녀만의 아지트가 아니었다.

빈민 행성에서 집조차 구할 수 없는 빈민들이 각자 거주 구역을 나눠 살아가는 곳이다.

여타 슬럼들이 그렇듯 폐쇄된 석탄공장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활기는 어디에도 찾을 수 없었다. 모두가 제 살아가기 바빴다. 어느새 소녀의 앞에 서서 늘 하듯 생글생글 웃으며 아침인사를 하는 아이를 제외하면.

“언니, 일어났어? 몸은 괜찮아?”

처절할 정도로 더럽혀진 자신과는 달리 이런 쓰레기장에서도 아직 순수함을 잃지 않은 사랑스러운 아이, 레아.

눈앞에서 홀로 빛나는 아이는 7년 전 갓난아기 때부터 주워 기른 소녀의 둘도 없는 보물이었다.

“응. 언니는 괜찮아. 우리 착한 레아.”

그 보물 같은 아이는 소녀를 걱정하는 마음을 듬뿍 담아 애처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체개조된 변종인간이 전 은하에 퍼져 있는 세상에서도, 참으로 보기 드문 라임 색 눈동자가 소녀의 죄책감을 부추기듯 꿰뚫어 보고 있었다.

“언니, 나 때문이면 그만해도 돼. 나도 이제 자랐으니까 언니를 보살필 수 있어…”

“아니야, 언닌 괜찮아.”

아이는 입술을 앙다문 채 애써 괜찮다는 소녀를 노려보았다.

무법행성으로조차 쓰이지 못한 빈자들의 행성이기에 살아남은 아이들은 무척 억세고 강했다. 달리 말하자면 강하지 않으면 살아날 수 없었다. 걷는 것보다 소매치기를 먼저 배웠고, 제 살기 위해 남을 속이는 방법을 먼저 배웠다.

그런데도 레아는 지켜주고 싶은 순수함을 가지고 자라났다. 드센 억새풀들 사이에서 짓밟히기 직전에 구해낸 작은 빛이었다. 이렇게나 험한 상황 속에서 제보다 언니를 먼저 챙겨주는 마음씨에 소녀의 가슴이 뭉클해졌다.

“레아, 그건 됐고. 아침부터 먹자.”

“피- 이미 먹었어. 어서 일어나서 언니도 먹어.”

레아는 쓰러져있는 소녀를 일으켜 세웠다.

일어나보니 어느덧 벌써 레아의 키가 소녀의 턱 끝까지 올라왔다.

벌써 이만큼 자랐냐고 싶더라도, 레아가 순수한 인간은 아니겠거니 하고 넘겼다. 또래보다 훨씬 똑똑한 것도 그렇고 어딘가 유전자가 바뀐 애겠지. 어쩌면 몸속에 기계장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미 본인도 반쯤 변종인간이지 않은가. 이 세상엔 순수한 인간이란 없으니까.

“언니, 여기 물.”

“고마워.”

소녀는 약 기운에 제정신은 아니었지만 제법 서 있을 만했다. 레아가 건네준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는 레아와 함께 석탄공장 중앙의 배급소를 향했다. 석탄공장의 배급소는 라임비 45지구 소유주가 무료로 식사를 나눠주는 곳이었다.

배급소에 가까워질수록 같은 인류라고 보기도 힘든 인간들이 줄지어 배급을 기다리고 있었다. 몸속에 박힌 기계장치를 드러내고 어딘가가 흉하게 비틀어져 있고, 얼굴이라고 할 만한 것이 지쳐있으며, 땟국물과 먼지로 가득 싸인 사람들,

라임비에서도 월 소득 300페니가 안 되는, 99% 최하층 빈민들의 모습이었다.

그나마도 배급품은 정상적인 음식도 아니다. 허여멀건 국물에 정체를 알 수 없는 고깃조각이 둥둥 떠다니는 거라도 받고자 삼삼오오 모여있었다.

혹시 모른다. 저기에 어제 죽어버린 옆 칸의 사람이 재료로 들어갔을지도.

자선사업이라 언제 끊길지도 모르지만 공짜가 어디던가. 자선사업의 구조따윈 몰라도, 소녀에겐 레아만 곁에 있으면 되었다. 꼬물꼬물 자그마한 손으로 줄의 끝까지 걷는 동안 부축해주는, 천사 같은 레아만 있으면 되었다.

하지만 세상에 레아와 자신만 있었으면 오죽 좋았을까.

어떤 이유에서건 온갖 생체실험을 받아 인간의 범주로 분류하기에 아슬아슬한 생명으로 이뤄진 기나긴 줄의 끝에 도달하니, 근처 그늘에 숨어있던 무리가 소녀에게 다가왔다. 나이를 언제든지 속일 수 있는 세상에 나이가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만, 십 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사내 다섯 명으로 이뤄진 패거리였다.

“야, 걸레. 우리한테 볼 일 있지 않나?”

패거리를 먼저 발견한 레아는 소녀의 옆에서 움츠러들었다. 소녀는 팔을 뻗어 레아를 보호하듯 뒤로 숨겼다.

주변에는 사람들이 많았건만 아무도 소녀들을 지켜주지 않았다.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곳에서 힘 센 무리가 누구이며, 제 살기 위해선 약자를 무시하고 방조하는 것이야말로 도움된다는 걸. 오히려 그들은 구경거리 삼았으면 삼았지 도와주지는 않았다.

“옆에 애도 있는데 그만하지?”

“워- 워- 우리가 바라는 게 뭐가 있겠어? 옆에 애새끼는 꺼지라고 하고. 우리끼리 할 이야기가 있지 않나?”

소녀는 땀방울이 맺힌 이마를 쓸었다. 아침으로 허여멀건 죽 대신 최소 남자 서넛은 더 먹어야 할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것도 무상으로.

소녀는 아침에 다리 사이에서 주운 300페니를 레아의 손에 쥐여주며 레아를 손짓해 물러냈다. 레아는 눈물을 머금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아났다. 소녀에게 볼일 있다는 패거리는 퍽도 고맙게도 애써 레아를 무시해 주었다.

**

소녀는 패거리와 함께 그래피티로 얼룩덜룩한 복도를 통해 인적 드문 구역으로 향했다. 유달리도 그래피티에 ‘이브는 창녀.’ ‘이브는 정액받이.’ ‘이브는 공용 좆집.’ 따위의 낯뜨거운 글자가 많이 쓰여있었다.

소녀는 애써 무시하려 했지만 다섯 패거리 중 하나가 일부러 피하는 소녀의 시선을 유심히 관찰하더니 까마귀처럼 끽끽거렸다.

“널 위해 이런 선물도 해주고. 우리가 공짜로 광고도 해주고 좋은 거 아냐? 봐, 저건 어제 쓴 거라고. 좆나 멋있지 않나?”

까마귀처럼 웃는 남자는 ‘이브 라케이니아는 속 좁은 년‘라고 쓰여진 그래피티를 가리켰다. 옆에는 마치 제 뱃속을 묘사하기라도 하는 양 생겨먹은 해부도와 함께. 내용을 무시하고 보면 쓸데없이 정교하고 잘 썼다는 게 문제다.

소녀, 이브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남아있는 약 기운에 대답하기 힘들었을뿐더러 그래피티를 보곤 질 나쁜 고객만 꼬였기 때문이다. 굳이 선물을 받는다면 벽보에 이름 새기기보단 돈이 훨씬 나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았다는 건 부정하지 못했지만.

소녀의 무시를 마치 암묵적 동의라고 여기기라도 한 듯 까마귀가 미친놈처럼 입술을 핥았다.

“실제는 저것보다 훨씬 더 쫄깃한데.”

이브는 억지로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욕지기를 억눌렀다.

순순히 이들을 따라온 건 다름아니다. 맞는 게 아프다는 원초적인 이유도 있었지만, 길거리를 전전하던 것보단 석탄공장에 엉덩이라도 붙이고 있는 게 좋으니까. 차라리 몸이라도 주고 집세를 대신하는 셈 치는 거다. 제 몸은 닳질 않으니까.

게다가 저 패거리 대장, 루이스의 먼 친척이 바로 45지구의 소유주이기도 하다. 사실상 이 폐공장을 저 젊은 깡패놈이 갖고 있는 셈이다.

“도착했다. 뭐해? 어서 안 열고?”

그래피티가 가득한 복도를 지나자 군데군데 녹슨 쇠문이 나타났다. 대장이 명령하자 패거리 중 하나가 문을 허겁지겁 연다. 그러자 삐걱거리는 철괴 소리와 함께 음습하게 무언가를 저지르기 좋은 석탄공장의 밀실이 나타났다. 루이스 패거리의 아지트였다.

소녀와 패거리 다섯을 들이자 문이 쾅 닫히고, 오래된 LED등에서 창백한 불빛이 들어온다. 한때는 누군가를 감시하기 위해 구형 CCTV들이 가득했을 방인데 이젠 그 흔적만 남아있었다. 아지트 내에 그득한 수컷 냄새에 발정기 소녀의 몸은 정직하게도 반응했다.

이브의 아침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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