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 은하보안관 이브 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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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폭풍에 날아간 판자 지붕 사이로 휘영청 빛나는 두 개의 달빛이 비추었다. 그 아래 달빛마저 부서트릴 만큼 아름다운 은발을 지닌 소녀는 감은 눈가를 가늘게 떨었다.
두 달의 공식 명칭은 위성 라임비-에이(LIME:V-A) 와 라임비-비(LIME:V-B).
각각 산화구리가 주성분인 붉은 달과 칼슘과 나트륨 염화물이 주성분인 푸른 달이었다. 날씨가 맑은 날에는 위성에 있는 도시도 보일 만큼 본성과 가까이 있다. 이브는 두 달을 감을 듯 말 듯 졸린 눈으로 바라보면서, 첫 후원자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들은 저 달들을 선택의 결과라고 부른단다. 푸른 달은 따뜻한 희망이고, 붉은 달은 차가운 절망이지. 과연 네가 선택할 앞길에 어떤 일이 있을지 정말 궁금하구나.’
그녀의 ‘후원자’ 였던 37지구 소유주는 참 인상 좋은 중년의 남성이었다. 콧수염도 있었고 좋은 일만 하다가 늙은 사람처럼 넉살 좋은 웃음을 짓곤 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인류가 이미 누릴 수 있었던 영생을 누리려 하지 않고, 제 명대로 살려는 사람이기도 했다.
이브는 내심 그 사람을 존경했다. 아무것도 없는 소녀를 지옥의 밑바닥에서 구해주고 후원하려고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는 꼭 지키는 사람이었다. 그가 이브를 바라볼 때에는 그 눈동자에 욕정 한 점 없었다.
그때 뭐라고 답했던가.
‘정말 아름다운 이름이네요! 처음 들어봐요.’
입에 침도 안 마른 채, 제 나이 또래의 아이처럼 아부했었지.
정말 그 시간만큼은 희망에 가득 차 있었다. 정체를 숨긴 채 스타 스트링스의 아이돌로 살아가다가, 몸속의 나노머신을 제거해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그 후원자와 소녀는 같은 꿈을 꾸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거장으로 가는 우주 엘리베이터에 타기 전까지는…
“아흐응!”
저열한 쾌락이 다시금 끓어오르며, 목구멍에서 튀어나온 단말마 같은 교성이 메아리쳤다.
그때의 악몽이 되살아나서, 이름도 제대로 모르는 37지구의 부자가 유령이 되어 그녀의 주변을 맴도는 것 같았다. 제 엉덩이 아래 깔려 죽어가던 부자는 이브를 저주했다. 분명 그럴 사람은 아니었지만, 이브는 자신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그가 자신을 저주했다고 믿고 싶었다.
‘이 괴물아! 네가 그 죄를 짓고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으냐?’
“흐윽…!”
이브는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일어났다. 새벽잠을 설친 건 꽤 오랜만이었다.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내고는 곁에서 새근새근 잠든 레아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일어났다. 레아는 이브의 팔 한쪽을 잡은 채 웅크리고는 깊은 잠에 들어 포근한 숨결을 미약하게 내뱉었다. 꽤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것 같았다.
체온이 오르는 발정기가 끝난 탓인지 밤공기는 매서울 정도로 차가웠다. 이불 대신 쓰는 넝마 조각을 거둬내니 소녀의 피부에 가벼운 소름이 돋았다. 어쩌면 지금도 약 기운에 취해 환각이나 꿈을 꾸고 있을지도 모르는 노릇이다.
바람이라도 쐬고 와 정신이라도 차려야겠다 생각한 이브는 곧바로 망토를 둘러썼다. 상처가 있었던 자리는 매끈한 피부로 되돌아와 통증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목가슴에 망토 매듭을 묶는 손가락이 오들오들 떨렸다. 이브는 사치스러운 나노머신 때문에 영생자가 되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생각조차 못했던 소녀의 몸에 영원히 갇힌 괴물이 되어있었다.
“괴물…”
빈자들에게는 부자들이야말로 괴물이다.
하물며 그 괴물들을 처벌하는 초월적인 힘을 지닌 은하보안관은 괴물 중의 괴물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그 은하보안관들 중에서도 으뜸으로 치던 미친놈 ‘퀘이사 라케이니아.’라면…
과연 자신은 그 무서운 괴물의 이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적어도 빌릴 수조차도 있을까?
고민에 고민이 피라미 떼처럼 꼬리를 물고 달라붙었다. 곧 엄청난 무게로 불어난 고민이 이브의 발목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정말로, 나는 예전의 몸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소녀의 나약한 몸이 정신에 영향을 너무 많이 끼치는 모양인지 고민이 너무 많아진다. 정리하고 난 뒤엔 마음 편히 알터를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브는 조심스레 판자문을 열곤 나섰다.
이번에는 레아가 깨기 전에 돌아오겠다고 다짐하면서.
* * *
라임비는 로봇보다 인간이 싼 행성이다. 물조차 메말라버린 행성에 부도, 겁도 없이 정착한 최초로 인간들은 먹고살기 위해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들은 행성 지하에서 이미 멸종한 지 1억 년쯤 지난 석탄화 된 유기물들을 발견하였고, 산업혁명 시대에나 썼을 법한 석탄공장을 지어 에너지를 만들었다.
석탄공장은 45지구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에너지를 공급해 주었다. 근처의 석탄광산들이 문을 닫기 전까지 활활 타오르며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제공했다.
그러나 물이 메말라버린 지 오래된 행성에는 과거에도 유기물이 그리 번성하지는 못했었다. 석탄광산은 100여 년 만에 바닥을 드러냈고 오래전에 폐쇄되어 겉모습을 제외한 모든 것을 잃었다. 아낌없이 주고 껍데기만 남은 공장은 빈자들의 쉴 공간이 되어주었다.
석탄공장 2층에 있는 베란다, 한때는 석탄을 때던 노동자들이 휴식시간에 바깥 공기를 쐬고 담배라도 피우라고 만들어 둔 휴식공간이었다. 지금도 이브가 종종 가고는 하니 베란다는 휴식공간의 역할을 아직도 하고 있는 셈이다. 베란다로 향하는 복도의 벽에는 너덜너덜한 포스터가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세레니티 컴퍼니, 여러분들의 윤택한 삶을 위하여!]
맑은 고딕 360, 열심히 일하는 사람의 픽토그램, 흑백의 디자인.
빼곡히 붙어있는 모든 포스터가 같은 종류였다.
소녀는 바닥에 떨어진 정체 모를 포스터를 걷어차며 베란다에 도착했다. 활짝 열린 베란다는 간밤에 휘날렸던 수정조각이 바닥에 흩뿌려져, 테라의 달보다 더 밝은 두 개의 달빛을 머금어 유달리도 반짝반짝 빛났다.
밟을 때마다 뽀득뽀득 바스라지는 수정의 길에는 이미 누가 지나간 듯 발자국이 남아있었다. 발자국을 따라가니 이미 베란다의 가장 좋은 자리는 다른 남자의 차지였다. 그는 지나치게 말끔한 차림으로 난간에 기대어 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브는 그를 경계했다. 말끔한 차림을 한 사람은 적어도 말끔한 옷을 구할 부가 있는 사람이다. 그는 술과 약 냄새 대신 커피와 차 냄새 날 것 같은 사람이었다. 거지들에게 부자들이란 모두 경계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웬만하면 시비 걸리는 일도, 마주치는 이조차도 없어야 했다. 베갯영업을 하는 때를 제외하고는.
그리고 이브는 몸을 섞고 싶지도 않았다.
“이브, 너지? 기다리고 있었어.”
익숙한 어조에 이브는 경계심을 풀었다. 이상하긴 했지만 아는 목소리였다.
“뭐야… 피그마였냐? 여기서 뭐하고 있어?”
피그마는 4년 전, 막 석탄공장에 들어왔을 때 만난 놈이었다. 제법 키도 크고 인상도 제법 준수하고, 유순한 성격에 실력도 좋았다. 빈민가에는 안드로이드를 다루고 고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그런데도 실력은 매우 좋았으니, 그는 기계들의 의사나 다름없었다.
문제는 장점이라곤 그게 다였다. 안드로이드를 인형이라고 부르며, 인형밖에 모르는 바보이자 천재였다. 달리 말하면 인형 오타쿠다. 이브에게 인형처럼 생겼다고 사귀자며 고백했던 머저리였다. 처음 만났을 때 이브에게 고백한 말이 ‘넌 잘 만들어진 섹스로이드 같다.’ 였으니까.
진짜 여자가 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팍 식어 뺨을 때리고 끝났을 말이다.
이브는 ‘뭐야 이 새끼? 사내새끼가 나이 먹고 인형 놀이나 하는 계집애 같은 새끼. 고추나 떼라.’라고 답했다.
나중엔 그게 순수히 기계에 대한 열정에서 오는 사이코적인 사고방식이라고 생각하니 이해는 못 해도 수긍 정도는 할 수 있었다. 손기술이 세심하니 밤 기술이 좋기도 했고. 박는 것밖에 몰라서 여자를 돈 주고 사는 물주들과는 천지 차이였다. 거기다 쌈짓돈도 넉넉히 쥐여 준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피그마는 몸을 여러 번 섞은 썩 괜찮은 물주이자 섹스 파트너였다.
처음을 떠올린 이브는 피식 웃음이 나왔다.
떠날 때가 되니 이곳이 퍽 그리워지기라도 한 건가.
겨우 엔조이 상대에게 아쉬운 감정이 들다니 이브답지 않았다.
“그냥, 달 보면서 앞으로 어떤 선택이 기다릴지 고민하고 있었지. 쓸쓸하고 괴로워서. 새벽이 되면 원래 생각이 많아지는 법이잖아?”
“고민이 대체 뭐길래 꼭두새벽까지 안 자고 보고 있냐?”
이브는 ‘남자새끼가 달 같은 거 보고 새벽까지 감상에 빠져 있으면 고추 떨어진다.’라는 말은 생략했다.
피그마는 이브가 생략한 말을 듣기라도 한 것처럼 고개를 살짝 숙이며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나. 세레니티 컴퍼니에 들어가게 됐어.”
세레니티 컴퍼니.
이브는 걸어오며 지겹도록 많이 본 포스터를 떠올렸다. ‘세레니티 컴퍼니, 여러분들의 윤택한 삶을 위하여!’, 퍼즐 조각이 맞춰지듯 이름도 몰랐던 컴퍼니의 정체를 쉽게 유추할 수 있었다. 라임비 컴퍼니의 자회사로서 아마도 이곳을 재개발하려는 회사일 터.
자본이 딸리니 나노머신을 대기 중에 뿌리지도 못하고 시멘트와 콘크리트를 갈아엎는 수준이 겨우인 회사다. 그 겨우밖에 안 되는 재개발 덕분에 이브는 석탄공장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이브는 낮에 너무 엄청난 사람을 만났었기 때문인가, 내막을 다 알고서도 화가 나진 않았다. 그래서 무덤덤하게 대답했다.
“잘됐네.”
퉁명스럽기까지 한 이브의 대답은 피그마가 기다리던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충격이라도 먹길 바랐는지 피그마의 얼굴에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래…? 나는 더 극적인 대답을 원했는데. 인형 정비 실력이 늘었다거나. 너의 손재주는 역시 은하 최고구나. 같은 말이라도…”
이브는 제정신으로 아부를 못 한다. 이브가 립서비스를 할 땐 잠이나 섹스나 약이나 술, 혹은 뭐 비슷한 거에 취한 심신미약 상태일 뿐이다.
피그마가 천재적이라고는 하나 그건 어디까지나 라임비와 근방 행성계에서나 통용될 말이다. 저 천재가 더 뛰어난 사람을 만나 자기 한계를 깨달을 땐 제가 비참함을 느끼고 나가떨어질 때를 생각하니 오히려 측은하기까지 했다.
자기가 뛰어나다고 믿는 사람은 더 뛰어난 천재들과 비교되기 시작할 때 가장 비참함을 느낀다. 모차르트에게 살리에리가 그렇지 않았던가. 그리고 그들은 극단적인 선택을 향한다… 딸리는 연산능력을 늘리고자 뇌에 칩을 박다가 재벌가의 노예가 되거나, 혹은, 폐인이 되거나.
“축하해. 그게 내가 해줄 말이야. 할 말은 그게 다야?”
“그렇… 구나… 그래, 하고 싶은 말이 더 있어. 그래서 네가 올 때까지 기다렸고.”
이브는 더 말해보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 고백할게. 이제 나도 후원자가 될 수 있어.”
후원자라.
개인이 가진 부는 우주시대 이후 계급이 되었다. 라임비의 길거리 창녀와 세레니티 같은 중소규모 컴퍼니 신입의 차이는 중세로 치자면 천민과 기사쯤 된다. 우주시대 초기로 치자면 노숙자와 다국적 대기업 대리 차이쯤 된다. 실제로 우주시대 초기의 다국적 대기업이나 세레니티의 규모는 비슷할 것이다.
이미 인류가 은하 개척을 마무리 지어가는 이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삶이 윤택해지고 혼자서 먹고살 능력 되는 이들은 아이들의 후원자가 되어주곤 했었다. 부자들은 수명도 몇 배는 되니, 다 큰 피후원자와 눈맞아서 사는 경우도 있었고.
“사실 네 후원자가 되고 싶었는데… 역시 안 되겠지? 대답하지 않아도 알아. 너를 독점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청년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소녀의 보석 같은 눈동자가 청년을 응시했다.
“그러니까 레아를 나에게 맡기는 건 어때? 내가 레아의 후원자가 되어 줄게.”
“뭐라고!?”
이브는 당황해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침울함을 삼켜야만 했다. 오만 가지 생각이 거품처럼 삽시간에 떠올랐으나 곧 꺼져서 명확해졌다.
이브는 연고 없는 무일푼이다. 퀘이사의 부관이었던 알터가 정말로 이브를 다시 찾아낼지 확신할 수 없다. 그가 이브를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다시 돌아가는 게 확정된 건 아니다.
다시 말해, 알터는 보증수표가 아니다.
그렇다면 이 남자한테 레아를 맡겨야 할까?
그 순수한 아이를… 항상 자기만 바라보며 위해주며, 씩씩하게 자란 아이다. 라임비 같은 슬럼 행성에선 쉽사리 볼 수 없었던 아이다. 어쩌면 전 우주를 뒤져도 레아 같은 아이는 못 만날 거다. 레아는 자기만을 위해 사는 아이가 아니라 남을 위해 사는 아이였다.
이브는 레아가 없는 삶을 상상해 보았다.
…역시 안 된다. 죽기보다 싫었다,
하물며 자기와 몸을 몇 번이나 섞은 남정네에게 맡기는 건 더더욱.
“나쁜 뜻으로 말한 건 아니야. 레아를 데려가서 해코지할 생각도 없어. 그러니까 나를 믿고 맡겨 줬으면 해서 그러는 거야. 나는 레아의 인형 같은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고 싶으니까.”
피그마의 계속된 설득에 이브의 마음이 흔들렸다. 라임비에서 제정신인 남자를 찾는 건 힘들다. 피그마는 취향이 좀 이상한 것 빼곤 꽤 좋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이때 퀘이사였다면 어땠을까? 자신을 과거의 자신과 비교하는 건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만큼은 저만치 먼 곳에서 바라보는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퀘이사 라케이니아라면 책임도 못 지는 애는 안 만들었겠지만, 애가 있었다면 혼자서 책임질 사람이었다. 소녀는 가까스로 입술을 열었다. 그리고 30년 전에 죽어버린 퀘이사의 입을 빌려 말했다.
“안돼. 레아는 지금까지 내가 길러왔어. 앞으로도 그럴 수 있고. 미안하지만 그 제안은 거절하지.”
“그래… 역시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겠지. 그럼 평소처럼 둘이서 술이나 마실래?”
마침 생각 정리를 위해 술도 필요했다. 제정신보단 얼큰하게 취한 상태로 있고 싶었다. 피그마는 술 사주는 물주이자 덤으로 유희를 주는 상대로 여기기엔 적당했다.
“그래, 그 정도는 해 줄게.”
“좋아. 가자.”
피그마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저 이브는 역시, 그에겐 과분한 인형이었다.
**
두 사람이 사라진 베란다의 어슴푸레한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그림자가 나타났다. 그림자의 주인은 얼굴 한 편이 불에 그슬린 듯 일그러져 있었다.
그림자의 주인이 통화기를 들자 4차원 좌표 공간을 통해 스타 스트링스에 접속하는 가벼운 비프음이 들린다. 그는 통화기를 향해 얼음장처럼 차가운 목소리를 내뱉었다.
“퀘이사 라케이니아. 그 가증스러운 작자를 드디어 찾아냈습니다.”
[역시 그 남자 뒤를 밟길 잘했어. 혼자서 시시덕거리며 30년이란 시간 동안 남자랑 몸을 섞으며 조용히 숨죽이며 살았다 이거지? 알고 보니 우리 전설적인 은하보안관께서 나이도 안 찬 계집애 몸에 들어가 남자랑 자는 취미 있는 게이 새끼라고 세간에 까발려지면 아주 볼만한 추문이 되겠어.]
스타 스트링스 너머에서 비꼬는 풍의 매력적인 목소리가 대답했다. 얼핏 들어선 여자의 것인지 남자의 것인지 구분하긴 힘들 만큼 가늘었다. 대답을 듣던 그림자의 얼굴은 웃는 듯한 형태로 일그러졌다. 그리고 웃는 것처럼 불에 그슬린 자리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들렸다.
[난 자네를 믿네, 레드호크. 조용히, 그리고 천천히. 놈이 했던 대로 되갚아줘야지. 굳이 무리하면서까진 잡지 마. 어차피 쥐새끼 같은 놈들이라 금방 빠져나가겠지. 대신 실컷 갖고 놀아줘.]
그림자의 흉하기 짝이 없는 입꼬리가 씨익, 올라간 것 같았다.
“알겠습니다, 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