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6화 (36/40)

[TS] 은하보안관 이브 36편

<-- 막간: 우주선 오르비아 -->

베히모스식 워프선 오르비아.

개인용 워프선이라고는 하나 아광속 전투선을 겸용하는 거대한 워프선은 은하보안관을 비롯해 전투에 직접 임해야 하는 이들에게 200년 전부터 유행이었던 워프선이다. 크기는 고전시대의 항공모함의 두 배에서 다섯 배에 달한다.

전장은 550m에 달하고 중량은 50만 톤급이다. 이는 고전 게임에 등장했던 전투순양함의 크기와 비슷했다. 반면에 형태는 조금 다르다. 앞뒤로 이종물질을 발생시킬 수 있는 거대한 원통형의 구조물이 있고 가운데에는 인공중력을 발전시키는 고리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내부에 소형 전투기들을 실을 수도 있었고, 선체 앞뒤로는 레일건과 우주에 존재했다는 정보조차 소멸시켜버리는 소형 블랙홀 미사일을 적재하는 부분이 있다. 무엇보다도 웅장한 자태만큼은 여객용 워프선인 프라이머식에 밀리지 않는다. 

본래는 5천 명에서 1만 명 사이의 선원을 수용하기도 하지만 오르비아는 모두 인공지능으로 돌아간다. 입구부터 맞이해주는 오르비아의 기계 목소리가 이브의 귀에는 익숙하게 들렸다. 우주선은 현재 알터의 것이지만, 한때는 퀘이사의 것이기도 했다.

[어서오십시오, 알터 카이로스 수석 은하보안관님. 그리고 오랜만입니다. 퀘이사 라케이니아 은하보안관님. 곁에 있는 분은…]

“오랜만이다 오르비아. 여긴 레아 라케이니아, 내 딸이야.”

[음… 딸이라, 역시 인간의 생식은 이해하기 힘듭니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신체에서 비슷한 크기의 아이가 나오는지-]

“입 닥쳐줄래?”

[죄송합니다. 도를 넘었습니다.]

신기한 듯이 기계 팔을 뻗어 카메라를 들이대던 오르비아가 이브의 일갈에 기계 팔을 거두었다. 레아도 무서워서 이브의 등 뒤에 숨어 벌벌 떨다가 나왔다. 이브는 처음으로 겁먹은 아이 같은 레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퀘이사 보안관님의 크기와 중량이 많이 작아지셨네요.]

“그런 사정이 있다.”

이브가 상당히 불쾌해하자 알터가 급히 대답했다. 수다스러운 우주선 오르비아는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으나 이브의 표정을 분석하고는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는 그만두었다. 인간에게 칭찬받는 것이 오르비아의 보상 회로를 자극시키고, 인간에게 불평 듣는 것이 체벌 회로를 자극시키기 때문이다.

오르비아는 그들이 이동할 때마다 미로춰럼 이뤄져 있던 복도를 살아있는 생명체의 내장처럼 스스로 열어 길을 만들어 주었다. 보기에 따라 기괴하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힐끔거리는 레아를 제외하고는 익숙한 광경이기도 했다.

세 명은 함장실까지 다다랐다. 마지막 문이 열리며 함장실이 열리는 순간, 이브는 익숙한 광경과 함께 마치 어제 일처럼 함장실에 있던 자신이 떠올랐다. 오랜 시간이 지나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곳에 들어오며 느껴지는 그리움은 이브의 눈시울을 붉게 달구었다.

“아… 변하지 않았구나.”

이브는 작게 탄식을 내뱉었다. 새삼스레 빛 바랜 기억이 이브에게 쏟아졌다.

그러나 많은 것이 바뀌어있었다. 비행기의 조종간 역할도 하는 함장실의 인테리어는 그대로였으나, 모든 물건이 2배쯤은 커져 있었다. 의자에 앉으면 계기판도 다 안 보일 정도로 높았다. 모두 2미터를 충분히 넘었던 퀘이사에게 맞춰져 있던 것들이다. 이젠 알터에게 맞춰져 있기도 했다.

“오랜만에 선장 역을 맡아 보시겠습니까?”

“수석 은하보안관이 부선장을 맡는다니, 그런 하극상을 하라고?”

“농도 지나치십니다.”

알터는 허심탄회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브도 웃음을 터트렸다. 진심으로 터트린 이브의 웃음은 듣기엔 참으로 순수하고 소녀다운 웃음이었다. 오르비아는 보상회로를 만족시키고자 이브에게 적절치 못한 칭찬을 했다.

[웃음소리도 예뻐지셨습니다.]

인공지능의 잘못된 판단에 이브의 표정이 싹 굳어버렸다.

“…넌 좀 닥쳐.”

[저는 말하면 안 됩니까? 야속하십니다.]

오르비아가 카메라를 축 늘어트렸다. 레아는 오르비아가 불쌍해 보여 이브를 바라보았다.

“이건 언니가 너무 심했는데.”

“오르비아는 말이 너무 많아서 안 돼. 레아, 너도 엄하게 대해야 해.”

[역시 따님밖에 없습니다.]

오르비아는 벌써부터 줄을 갈아탔다. 이브는 아연한 표정으로 오르비아의 카메라를 노려보았으나 오르비아는 카메라를 절레절레 젓더니 레아를 향했다. 마치 교태를 부리듯 레아에게 다가가자 레아는 활짝 웃으며 카메라 머리 부분을 쓰다듬었다.

이브는 가볍게 혀를 찼다. 이 오르비아 워프선의 주인은 자신…이 아니라 알터였다. 이브는 알터에게 뭐라도 좀 해보라는 눈빛을 보냈으나 알터는 그저 가볍게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네가 얘 오냐오냐 키웠지? 오르비아 얘 가만 내버려 두면 자꾸 기어오른다고 했잖아.”

“…글쎄요.”

알터는 난처했다. 오르비아와 알터는 항상 공적인 관계 그 이상을 넘지 않았다. 오르비아는 착실한 워프선이었고, 알터가 은하 곳곳으로 갈 때마다 그의 발이 되어주고는 했던 이동 수단일 뿐이었다.

그런데 이 상황이 또 과거로 돌아간 듯했다. 현장부관이었던 알터는 퀘이사와 함께 다니던 시간이 많았던 만큼 오르비아와 접촉할 일도 많았다. 참 오랜만이었다. 이렇게 대화를 많이 걸어오는 오르비아는 겉으로 표현은 잘 안해도 이브의 몸으로 돌아온 퀘이사를 제 방식대로 반기고 있었다. 

오르비아가 레아에게 꽂혀 있는 동안, 알터는 다시 이브에게 물었다.

“그래서, 선장 한번 해 보실래요? 항상 오르비아하고만 역할을 맡아서 말이죠.”

“…그래, 이전하고는 똑같나? 센서나 지시등이 바뀐 건 없고?”

“30년 전 방식하고 크게 달라진 건 없습니다. 앉으시죠.”

알터는 이브를 선장의 조종석에 앉혔다. 안전벨트가 헐렁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커다란 의자였다. 오르비아는 삐진 것처럼 안전벨트를 줄여주지 않았다. 이브는 오르비아에게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오르비아, 레아하고 놀아주는 건 좋은데 내 안전은?”

[죄송합니다. 조정하겠습니다.]

조종간을 비롯해 계기판과 의자 모두가 이브에게 맞춰 줄어들었다. 이제야 이브는 과거에 보았던 수십 가지의 계기판과 조종간을 볼 수 있었다. 이브에게 맞춰 최신식이 아니라 30년 전 방식으로 바뀐 것이었다.

“잘했어.”

[정말입니까? 제가 음성장치로 잘못 인식한 거 아니지요?]

“시끄러워.”

[너무하십니다.]

“…뭐, 스타포트 관제탑에서 출항 허락이 나왔으니 출발해 보실까요?”

알터는 모든 정보를 선글라스로 보고 있었다. 통신도 마찬가지로 자동 변환되어 오르비아가 전달해 주었다.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하는 편인 이브는 잘 쓰진 않는 방법이었다. 이브는 크게 하품을 하더니 조종간 위에 손을 얹었다.

“오랜만인데.”

“달라진 건 없습니다.”

역시, 이것도 알터 혼자 할 수 있는데도 준비한 이벤트였다. 이브가 빨리 스타 스트링스의 일원이었던 과거에 적응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배려. 선장석에 앉아 그리운 조종간을 확인한 이브는 이 배려가 싫지만은 않았다.

싫지만은… 않았다.

이전처럼, 씩씩하게 외쳤다.

“계기판 확인하자.”

“예.”

“인공중력.”

“0.98G 체크.”

“스트링스 통신.”

“스타 스트링스 체크.”

“GPS(Galaxy Positioning System)?”

“GPS 작동.”

“레이더.”

“1광년 거리, 체크.”

“선체 손실 센서.”

“앞뒤 양측 다 체크.”

“기압 설정.”

“0.98기압, 녹색 채널입니다.”

“긴급 배터리.”

“98%, 체크”

“연료?”

“EXM(이종물질) 3500KG, 연료 4만5천톤.”

“총중량.”

“53만 2134톤.”

“워프 돌입 속도.”

“시속 500km”

“현재 시간.”

“테라시간선 GMT 기준 2754년 2월 19일, 오후 3시 10분.”

날짜와 시간이 이브의 계기판과는 틀렸다. 알터가 실종된 오르비아를 찾아 선내에서 퀘이사를 수색했나 찾지 못하고 납치당했다는 사실을 알았던 그 시절 그 시간 그대로였다. 오르비아는 그 때의 정보를 리셋당해 모두 잃었다. 그래서 알터는 이브를 찾지 못했다.

새삼스레 이브는 과거의 시계를 보며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렀는지 느꼈다. 이 자리에 다시 앉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기도 했고, 사람의 성정이 바뀔 정도로 오랜 시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시간동안 이브의 바뀌지 않은 점도 있었다.

안전에 대한 의식이었다.

“오르비아, 시간 안 맞잖아. 왜 2724년으로 되어있지?”

[죄송합니다. 수정했습니다.]

곧바로 오르비아가 이브의 계기판의 날짜를 바꾸었다.

“이러면 사고 난다고 했잖아. 하나라도 틀리면 출발 못 해.”

[알겠습니다.]

“알았으면 다음, 왜곡광 감쇄 장치.”

“요즘엔 기묘광 회절 장치로 바뀌었습니다. 74.1입니다.”

“…바뀌었네.”

모든 게 이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이브는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다. 그만큼 예전과는 이것저것 달라졌을 것이다. 계기판을 다 확인한 이브는 마이너한 항목은 오르비아에게 맡기고 다음 단계를 지시했다.

“마이너는 오르비아가 체크하고, 파킹 브레이크 해제.”

“해제.”

“경고 시스템 체크.”

“확인.”

“정비 완료.”

“정비 완료.”

모든 정비 과정을 마치자 이브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오랜만에 작동하는 초광속 워프였다. 공간을 접어 이동하는 알큐비에레 엔진이기에 정말로 상대성 이론에 따라 광속을 넘을 수는 없으나, 은하의 공간좌표계로 보면 어쨌든 초광속 워프엔진이다.

“목표 위치.”

“목표지점은 X: 12º 23’ Y: 18º 82’ Z: -136º 11’ 21.2145광년.”

“작동 속도.”

“14AU/s, 하루에 약 19.04광년입니다.”

이는 오르비아가 내는 적정 속도였다. 이브가 알던 것보다 10Au/s나 빨라졌다. 얼마나 기계학습식 인공지능 오르비아의 이종물질을 기술이 올랐는지 알 수 있는 상태였다. 대략 계산하면 하루하고도 조금 지난 시간이면, 여기서 약 1만광년 떨어진 테라와 웜홀 게이트가 연결된 코르디스까지 갈 수 있었다.

“정말 이 속도로 낼 수 있나?”

[맡겨만 주십쇼.]

“좋아, 가자. 추력엔진 올리고.”

“추력엔진 온.”

거대한 기체가 거북이 움직이듯 천천히 이동했다. 알큐비에레 엔진이 작동하기 전까진 은하를 우주하는 인류에겐 한없이 느리게 느껴지는 속도였다. 반면에 거대한 소행성 크기의 스타포트의 모습은 빠른 속도로 뒤로 멀어져 갔다. 

속도를 나타내는 계기판은 빠르게 상승했으나 모든 것이 먼 거리에 있기에 풍광은 느릿느릿하게 움직였다. 오로지 가장 지근거리에 있던 스타포트만이 빠른 속도로 멀어져 조막만하게 보이는 시점이었다.

“495, 500. 워프 돌입 속도입니다.”

“레버 올려.”

그 순간, 번쩍하며 공간이 왜곡되었다. 우주에는 어떠한 소리도 흔적도 남지 않았다. 같은 항로를 움직이는 워프선이 있을 리도 없고, 있어도 속도가 다르면 마주쳐도 부딪히지 않는다. 모든 사고는 출항할 때와 회항할 때뿐.

그리하여 아직도 워프선은 가장 위험한 출항과 회항 시에만 인간과 자의식을 지닌 인공지능이 함께 운행한다. 초광속 시대에도 인간의 영역은 여전히 남아있다.

워프 상태에 돌입하자 이브는 크게 숨을 내쉬었다. 여전히 워프선을 운행하는 건 긴장되고 짜릿했다. 손바닥에 땀이 절로 고였다. 부선장인 알터는 자동항법장치에 맡기고 자리에서 먼저 일어났다.

“그럼 도착할 때 다시 부탁드립니다.”

“맙소사, 정말 이럴 때만 신을 부르고 싶어져. 없다는 걸 알면서도.”

“말투도 예전처럼 돌아오셨네요.’

“…그렇네.”

이브는 다시 웃었다. 알터를 만나고는 자주 웃게 되는 것 같았다. 웃음소리는 이전 같지 호탕하지 않고 소녀답게 소박하고 귀여웠지만, 라임비에서처럼 매일 진창에서 구르고 어두웠던 상태보다는 백 번 나았다. 이브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나아지고 있다. 과거의 퀘이사처럼 돌아가고 있다.

“코르디스에 돌아가면 맥주나 한 잔 할까?”

“…별로 추천하고 싶지는 않네요.”

알터는 고개를 저었다. 이브의 주사가 어떻게 바뀌었는지 며칠 전,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었다. 예전에도 좋지 못한 뜻으로 개가 되었는데, 지금은 암캐가 되었다는 정도로 바뀌었으니…

“야, 맥주 정도는 내가 살 수 있다.”

“아뇨, 남들 앞에서도 마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나노머신을 빼내고 돌아갈 때까지는요.”

“야, 씨. 나하고 몸 섞을 수도 있…잖……?”

이브는 재빨리 알터에게서 고개를 돌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이브에게 그 말의 의미를 되묻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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