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7화 (37/40)

[TS] 은하보안관 이브 37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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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디스(Cordis)는 라틴어로 심장이라는 뜻이다. 아마 이곳에 웜홀을 옮겨와 정착했던 최초의 인류들은 코르디스가 인류의 새 심장이 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코르디스는 인류가 지닌 20개의 웜홀 게이트 중에서 가장 별 볼 일 없는 곳으로 소문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별 볼 일 없는 웜홀 게이트 거점이라 해도 주위 1300여 개의 행성과 이어진 스타 웨이가 있고, 얼마나 수많은 통신이 오가며, 수많은 워프선이 대기 중인 곳이기도 하다. 그만큼 중심지라는 의미는 별 볼 일 없는 것이 아니었다.

라임비에서 코르디스로 향하는 스타 웨이의 절반쯤 다다랐을 시점이다. 우주의 등대라고 칭해지는 ABIO-131 펄서의 신호가 오르비아 근처를 지나갔다. 기점과의 오차율은 0.131%, 14AU/s라는 가공할 만큼 빠른 속도에서도 워프선은 거의 정확하게 목표를 향해 순항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장 역할을 맡았던 이브는 출발한 직후부터 오르비아가 새로 내어준 침실에서 계속 잠들어 있었다. 알터는 부선장 자리에서 오르비아와 대화를 나누었다.

[페이님께 전달은 받았습니다.]

“봤다시피 보안관님은 심각한 상태야. 사려 깊게 생각하여 이전처럼 대해드려야 해, 조금이라도 현재 외모에 대해 주지시켰다간 영영 못 돌아오실 거다.”

[자아의 붕괴가 일어난 거네요. 다른 프로그램이 섞인 것처럼…. 저는 워프선 인공지능이라 인간을 잘 알지는 못하지만요. 그래도 스타 스트링스에서 검색은 할 수 있으니 최대한 배려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최대한 신경 쓰이지 않게 해 드려. 대신 과거를 기억나게 해. 알았지?”

[알겠습니다. 상냥한 인공지능 오르비아에게 맡겨만 주시지요.]

오르비아와의 대화가 끝난 후 알터는 깊게 한숨을 쉬었다. 오르비아가 이브에게 툭툭 내던질 때마다 등줄기를 따라 땀이 삐질삐질 흘러내렸다. 워프선에 오기 전, 여러 차례나 통신을 나눴음에도 실제 보고 선내에서 움직이는 꼬마를 퀘이사 보안관님이라고 판단하는 건 또 다른 이야기니까.

알터는 여전히 앉은 채로 선글라스에 뜬 정보로 스타 스트링스의 시스템을 확인했다. 코르디스에서 웜홀 게이트, 일명 포탈이 통과할 수 있는 크기까지 열리는 데는 일주일이 걸린다고 한다. 또 일주일이나 미뤄지는 셈이다.

알터는 과연 자신이 정말 이브를 돌릴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다. 일어나서 정처 없이 선체의 아무 곳이나 떠돌아다니다가 정신 차리니 눈앞에서 잠들어 있는 이브의 곁을 돌고 있었다.

잠들어있는 소담한 이브의 가슴이 숨 쉴 때마다 오르내리고 있었다. 다행히도 악몽을 꾸진 않는지 평온한 얼굴이었다.

스타 스트링스의 구독자 수천억을 보유한 아이돌처럼 한없이 귀여운 소녀. 하지만 저 속에 든 건 전설적인 은하보안관이자 직속 상관, 그 갭은 실로 어마어마했으니까. 알터 본인도 믿기지 않았다.

“페이야.”

[예, 보안관님.]

“코르디스 포탈 컴퍼니에 압박 좀 넣으면 안 되나?”

[저번에도 모데스티아 포탈 컴퍼니에 압력 넣었다가 포탈 말아먹을 뻔했다고 안 해주잖아요. 아시면서 그러시죠…]

웜홀 게이트 크기는 진동한다. 진동의 진폭은 에너지를 넣지 않으면 점점 줄어들기에 크기가 커지는 시기에 맞춰 에너지를 집어넣는다. 벌어졌다가 쪼그라들었다가, 작아졌을 땐 플랑크 길이까지 쪼그라들기에 그 시기에 워프 게이트를 통과했다간 우주의 먼지조각으로 변해버린다. 실제로 그 시기에 밀항하다가 먼지조각이 되는 용감무쌍한 자들은 많았다.

포탈은 특이점 소실 현상을 이용하여 만든 인류문명의 진수이지만 그 엄청난 에너지 소모 때문에 은하의 절반에 걸쳐 사는 인류일지라도 20개밖에 만들어내지 못했다. 포탈을 운영한답시고 나댔다가 부도 나는 재벌가도 상당히 많았다. 코르디스의 포탈도 언제 폐쇄될지 모른다. 실제로 부도난 컴퍼니 때문에 50년 전에 소멸한 포탈도 있었다.

그렇다고 당장 부도나진 않겠지만.

“…어차피 코르디스에서 남은 일도 있으니 처리하고 가도록 하지.”

[근처 휴양지 주소라도 좀 보내 드릴까요? 쉬다 오시는 것도 좋을 텐데요. 안식년인데 쉬지 못하시고 뺑뺑이 도시는 거 힘드실 텐데요.]

“이것도 일이야. 은하보안관은 자나 깨나 정의를 생각해라. 그리고 이번 일로 비밀 결사단 놈들 다 쓸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어……]

페이는 방금 자신이 잘못 들은 건 아닌지 양쪽 볼을 탁 쳤다. 정돈하지 않은 더벅머리에 대충 자고 일어난 듯한 인상의 작전부관 페이는 알터의 말이 얼마나 어처구니없는 일인지를 떠올렸다.

[…그거 조금.]

우주 마피아도 보통 마피아가 아닌, 은하계 마피아 세력의 절반 가까이 규합한 그 세력을 끝장낸다는 건…. 무척이나 허무맹랑한 말이다. 그야말로 갓 부관이 된 애송이나 할 법한 생각이었다.

이제는 전설이 되어버린 은하보안관 퀘이사 라케이니아가 돌아와도 반파 정도가 고작일 터다. 그분은 카인 성계를 해방시키고 반 토막 난 게헨나스를 만든 분이니까.

[무서운데요.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불가능하면, 가능하게 만들어야지.”

알터는 확신을 지니고 말했다. 그 무서운 알터가 확신을 지니고 말하니 페이도 별말 할 수 없었다. 알터의 말에는 힘이 있었고 알터에게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지위가 있었다. 게다가 알터가 지닌 부는 퀘이사의 수많은 실패를 보고 쌓아두었기에 몇몇 재벌가와 필적할 만큼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제 상관에 대한 의심은 품어선 안 되었다. 그러나 상대가 비밀결사단이 아닌가?

“루드 크로노스, 그 사람에게 전갈을 전해라.”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세요? 아무리 같은 기수시라지만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는 잘 아시잖아요. 답장받기는커녕 전달이 될까도 문제인데.]

마침 통신을 들은 건지 이브가 깨어났다. 알터는 이브의 몸이 꿈틀거리자 반사적으로 일어나 자리를 뜨려 했다. 그러나 악몽을 꾸지 않은 이브는 개운함을 느꼈고, 또렷하게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인기척을 낸 것이었다.

이브는 방에서 떠나려는 알터를 불러세웠다.

“알터, 날 이용해서 루드를 불러.”

[어… 지금 목소리는 어느 분입니까?]

방울같이 울리는 귀여운 목소리에 페이의 관심이 쏠렸다. 목소리를 듣자마자 귀를 호강하는 가슴 한쪽이 뭉클해지는 기분, 스타 스트링스의 그 어떤 아이돌들을 봐도 별 감상 느껴지지 않았던 페이는 목소리만 듣고 첫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그간 알터는 페이와 통신할 때 이브가 보고 들을 수 있는 곳에서 하지는 않았다. 페이가 이브를 퀘이사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실제 눈으로 보고 이해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현재 퀘이사를 이해하지 못하는 주변인들에게 보이기 싫었던 것도 있었다.

지금의 통신은 알터의 실수나 다름없었다.

페이는 알터가 보이는 홀로그램을 이리저리 돌리더니 이브가 보이는 시점을 찾았다. 다소 앳된 얼굴에 새하얀 은발. 외모도 아름다웠다.

“페이, 존경을 표해라. 이분이 퀘이사 라케이니아 보안관님이시다.”

알터는 페이에게 주의를 주었다. 그리고 선글라스 내에만 보이던 화상을 홀로그램으로 전환했다. 페이의 모습이 허공에 생겼다. 그는 양옆에 수없이 많은 서류 태블릿들을 쌓아 놓고 눈을 뻐끔뻐끔 뜨며 바라보고 있었다.

“보안관님, 통신하는 상대는 제 작전부관 페이입니다.”

[아, 안녕하세요….]

페이의 얼굴이 발그레해졌다. 이브는 굳이 페이의 반응을 읽지 않아도 부관이라는 놈이 얼마나 고된 업무를 보고 있으며, 그 와중에 자신을 보고 멍청한 눈으로 반해버렸는지 알 수 있었다. 원하지 않아도 30년간 그런 눈빛이 익숙해져 버렸다.

“저거 상태를 보니 알터, 저놈한테 너무 업무를 많이 맡기는 거 아니냐?”

[맞습니다. 업무량이 너무 많아서 일에 치여 죽을 것 같습니다.]

“…시정하겠습니다.”

알터가 이브에게 고개를 숙였다. 페이는 알터가 저렇게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처음 보았다. 무려 은하보안국의 수장인 하지드 하윈즈 보안국장님께도 제 할 말 다 하고 사시는 분이지 않는가? 

그러나 페이가 이브에게 보이는 관심이란 호기심과 애심이었지, 존경심이 아니었다. 이브는 그를 시험해 보기로 한다.

“무슨 시정까지야, 네가 작전부관이니 이 일을 일임해도 되겠지? ‘애송이 나무늘보야, 어디서 뭘 하는지 모르겠지만 빨리 튀어 와라.’ 이렇게 쓰고 내 사진이나 홀로그램 하나 보내주면 바로 나타날 거다. 코르디스 102지구 테라 타운의 숏벅스 카페로 오라고 해.”

이브는 이전처럼 거만하게 말했다. 작은 몸집에 침대에서 일어나 이불을 끌어안은 허술한 모습이었다. 페이는 이브를 살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알터는 한숨을 쉬더니 선글라스의 통신 종료 버튼 위에 손을 얹었다.

“끊겠다.”

[자, 자, 잠시만요. 조금만 더 보고-]

뚝. 통신이 끊어짐과 함께 페이의 홀로그램이 사라졌다. 알터는 돌아가면 정신교육을 실시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무리 현재는 보안국에 적이 없다고는 하지만, 전 은하보안관님께 일말의 존경심도 표하지 않는 모습은 도를 지나쳤다. 두 사람이 마주쳤을 때 제가 의심하던 상황이 일어날 것이다.

그러나 알터가 생각해보길, 페이보다는 루드가 더 문제였다.

“루드가 보안관님을 좋은 눈으로 보진 않을 텐데요.”

“괜찮아. 내가 미끼가 되지 않으면 안 나타날 거 아니까.”

“하기야, 이 은하에서 루드에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는 건 당신밖에 없을 테니까요. 순식간에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정보도 다 긁어오겠죠… 문제는 루드의 뒤에 이젠 누가 있는지 모른다는 말입니다.”

알터는 루드가 아군인지 적군인지를 파악할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건 소녀였다. 자기가 미끼가 된다고 말한 다음에야 알터는 루드 크로노스의 성벽을 떠올려버렸다. 같은 부관이었기에 허술하게 짚고 넘어갔던 점이었다.

레드호크를 따돌린 뒤였지만, 그는 언제든 따라올 수 있다. 뒤를 잡은 흑성마교도 있다. 지금 조사중인 비밀결사단도 언제든 자기들에게 해가 된다면 뒤에서 칼을 찌를 수도 있다. 모두를 상대하려면 안식년을 반납하는 한이 있더라도 은하보안국이 보호할 수 있는 영역에 돌아가야 했다. 코르디스는 다소 위험했다.

“…보안관님.”

“왜?”

“루드가 아군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알터는 확답을 얻기 위해 물었다. 그러나 이브는 어색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군이 아니라면,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야지.”

“확신은 아니시군요.”

이브는 고개를 돌려 먼 곳을 바라보았다. 창밖이었다. 워프 속도로 움직이는 와중에는 멀리서 등대 역할을 하는 펄서의 빛 말고는 그 어떤 빛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우주의 어딘가에 있는 공허처럼, 그저 어둠만이 가득한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

스타 웨이의 끝에 가까워지자 수많은 통신이 오간다. 통신은 대부분 알터가 처리했으며 이브는 다시 선장석에 앉았다. 워프의 끝에서 이종물질들을 거두고, 접힌 공간을 원래대로 돌려놓는 과정 또한 굉장히 위험했다. 출항 시기와 도착 시기에는 사고가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숨을 크게 들이쉰 이브는 다시금 손에 땀이 흘렀다. 만나야 할 사람도 많고, 어쩌면 루드를 만나는 데는 이런 몸인 채가 더 나을 수도 있을 거다.

“속도 늦추고, 복행속도 설정.”

“현재속도 10AU/s, 복행속도는 500”

“기어 내리고 워프 종료시점 회복속도는 300으로, 매뉴얼대로 하자.”

“좋습니다. 10초 뒤에 워프를 종료하고 일반속도 돌입하겠습니다.”

알터는 오르비아의 타이머를 작동시켰다. 어떠한 농담이나 잡담도 없었다. 이브가 긴장하고 있는 만큼 알터도 긴장하고 있었다.

“도착 위치는?”

“코르디스 17스타포트입니다.”

“좋아, 근처 X12 Y34 지점을 통해 가지.”

워프가 종료되자 풍경이 다시 돌아왔다. 하얀 주계열성과 붉은 행성인 라임비와는 달리 푸른 주계열성의 빛을 받고, 테라처럼 아름다운 푸른색 행성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행성 근처에는 빼곡하리만치 둥둥 떠다니는 수없이 많은 워프선들이 마치 요새처럼 코르디스를 두르고 있었다.

그리고 코르디스의 중력권 근처에는 [코르디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라는 문구가 공용어로 큼지막하게 펼쳐져 있었다.

“가시죠, 코르디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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